<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다보니 피츠제럴드의 묘지 이야기가 나온다. 소콧 피츠제럴드의 묘는 미국 메릴랜드 주의 작은 마을에 있다. 국도변의 조그마한 천주교 성당 뒤편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묘지. 묘비에는 <위대한 게츠비>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의 역자는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인 권남희다. 소생 생각에, 이 책은 무라카미가 썻으니 당연히 일본어로 썻을 것이고, 아마 <위대한 개츠비>의 저 구절도 일본어로 된 것을 권남희씨가 번역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역말이다. 그런데 별 할 일 없는 소생이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 <위대한 게츠비> (김욱동 역)를 꺼내 마지막 장을 펼쳐보니 <셀러드...>에 나오는 구절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다. 권남희씨는 아마도 개츠비의 저 구절만은 민음사판을 참조한 모양이다. 한 텍스트가 옮겨지고 또 옮겨지면 어떻게 되는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지 오렌지가 되는지 한번 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참고로 소설가 김영하가 옮긴 문학동네판 게츠비에는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있다. 이 구절만으로 볼 때는 민음사판과 문학동네판 어느 것이 더 좋은 지 더 마음에 드는 지 모르겠다. 그게 그거 같고 저게 저거 같다.
이야기가 약간 옆 길로 빠졌는데 소생이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번역이 아니라 묘비명이다. <샐러드...>에서 하루키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소생 생각에도 저 묘비병은 인생을 흥청망청 살아버린 피츠제럴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한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는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한 줄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또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작가(그리고 러너) / 1949~20**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소생은 아직 한번도 묘비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하루키는 가끔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소생 생각에는 하루키상의 묘비명으로는 후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소생도 묘비명을 잠깐 생각해 봤다. 인생을 흥청망청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신통방통한 게 나올리도 만무하다. 그저 생각나는 것은 “ 붉은돼지. 왔다 가다.” 혹은 "꿀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