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전집 2 - 8시집 <서으로 가는 달처럼>부터 10시집 <안 잊히는 일들>까지
서정주 지음 / 민음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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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의 운율을 배운 건 미당을 통해서이다.'라고 어디에선가 말한 사람은 아마도 정호승일 것이다. 미당의 화사집을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곽재구는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에서 미당의 시편들 중 '질마재 신화'의 편편들을 극찬하고 있다.  내가 고딩이었을 때 국어교과서에는 '국화 옆에서'가 실려 있었고,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운운은 장학퀴즈의 단골문제였으며, 송창식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을 불렀었다.

유종호는 미당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시인부락의 촌장이라고 하면서 '그 수많은 정치적 오류들로부터조차 우리를 눈멀게 하는 미당의 절창'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정치적 오류였는지 예술적 신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간에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미당의 친일 전력과 더불어 군사정권에의 협조 전력이다. 만해나 윤동주, 김남주 등을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미당이 우국지사였다면 그런 시들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에 나오는 시편들을 읽어보면 미당의 역사관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 허무주의라고 할까 혹은 만사 관용주의라고나 할까, 괜찮다..괜찮다...다 괜찮다. 만사 다 괜찮다는 것이다.

'미당 시전집2'에는 1980년대 이후에 발표한 시집들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풍물 기행시집인 '서으로 가는 달처럼', 유구한 반만년 우리 역사의 모모한 인사들이 등장하는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개인사적인 추억들을 소재로 한 '안 잊히는 일들' 세편이다. 민중시인 김정환은 미당의 후기시를 가리켜 더 이상 '절창'이 아니라고 하면서 '완연한 대가의 풍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들을 무차별로 반복·인용 혹은 응용하는 우매한 제살 깎아먹기'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당의 시는 읽어볼만 하고 또 읽어봐야만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떤 목적으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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