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착한 108,000원 짜리 전집 세트다. 아마도 똥폼잡고 구도자연 하던 20대의 한 때였지 싶은데, 소생은 죽음의 한 연구를 읽고 그야말고 압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소설이었다. 아래의 첫 문장을 보면 대번에 그 포스를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는 한국 소설 중에 첫 문장이 제일 긴 소설이기도 하다. 뭐 그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소생은 우연히 이 전집을 발견하고는 한 터럭의 주저함도 없이 구입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어쩌겠나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늙어빠져 도를 구하기는 영 어려우니 경전이라도 받들어 모셔야 할 것 아닌가.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 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가 그친다는 남녘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추신 1. 알라딘에서 나온 '장미의 이름' 리커버 특별판을 당근 예전에는 가지고 있었는데 팔아치우고나서 깊이 후회하여 다시 구입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절판이라, 몹시 절망하던 차에 쟝쟝님이 이웃 마을인 교봉마을에서 새로운 특별판이 나왔다고 하여 국 식기 전에 얼른 구입하게 되었다. 


추신 2. 박상륭 전집은 분량이 쟝쟝 4500여쪽에 이르는데, 종이는 마치 사전류의 종이처럼 팔락팔락하는 얇은 재질이다. 어쨌든 정본이라고 하니 그런 줄로 알아 고맙고. 한가지 궁금한 것은 본 전집을 펴낸 출판사는 '국수'라는 출판사인데 알라딘 검색을 해보니 초등학교 자습서 종류만 겨우 십여종 펴낸 출판사인데 무슨 사연 연유로 이런 돈 안되는 큰 일을 해내었는지 궁금하니 누구 아시는 분 있으면 좀 알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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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2-12-06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한 연구 단 첫장도 못 넘겨보고 책장에 모셔두고 있는 1인. 20대 때 읽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붉은돼지 2022-12-06 19:45   좋아요 1 | URL
그때는 뜻도 전혀 모르면서 그냥 그 분위기에 완전 매혹되어 읽어내었던 것 같습니다. 뭐 지금도 무슨 말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만요 ㅋㅋㅋㅋ

서니데이 2022-12-06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한 연구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전자책으로도 있었네요. 종이책만 생각했는데.
사진속의 특별판은 종이가 얇아도 페이지가 많아서인지 두꺼워 보여요. 사진 잘 봤습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붉은돼지 2022-12-06 23:00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종이책인줄 알았는데 전자책이었군요. 종이책은 상하분권은 절판되고 합본이 나와있네요..
이 전집은 책도 두껍고 페이지 수도 많고 무게는 묵직한데 종이는 얇고 무슨 사전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07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왕 전집 꽂아두면 뿌듯하게 멋있게 나왔네요. 그치만 읽기는 불편할 것 같고… 저도 스무살에 읽은 죽음의 한 연구랑 안 읽고 모셔둔 잡설품 종이책이 아직 잘 있는데 전자도서관 가니 두 가지 다 있어서 빌렸습니다…붉은돼지님 구매기 덕에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ㅎㅎㅎ

붉은돼지 2022-12-07 12:19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 여기 젊은 한시절 외롭고 쓸쓸한 구도의 길에서 홀로 고민하고 방황하던 그 존함도 범상치 않은 순례자 한 분이 또 계셨군요..ㅋㅋㅋㅋㅋ 저도 죽음의 한 연구 읽고나서 칠조어론 시도해봤는데 용맹정진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책은 팔랑 종이에 자간이 빽빽하고 무겁고 두꺼워서 읽기는 많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냥 모셔 두는 걸로......

반유행열반인 2022-12-07 14:11   좋아요 1 | URL
저 오늘 다시 읽기 시작했으니 아직도 젊은 한시절 외롭고 쓸쓸한 구도의 길에 고민하고 방황중인 걸로 하겠습니다 ㅋㅋㅋ 칠조어론이 뭐였나 다시 보면 알겠지요 ㅋㅋㅋ(읽고 다 까먹음 젊은 시님이랑 소저랑 막 구도(!)하던 거만 마음에 남았던…) 아 칠조어론은 작가님 다른 소설이었군요 ㅋㅋㅋㅋ

붉은돼지 2022-12-07 16:21   좋아요 1 | URL
그 옛날 어릴 때는 도터져 성불(?)하려고 이른바 구도소설류 - 김성동 <만다라>, 이문열 <사람의 아들>, 조성기 <라하트하헤렙> 등등 - 를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만(물론 박상륭의 소설이 뭐 최고봉이었습죠)...이제 한참 나이들어 닳고 닳은 생활인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예전같은 감흥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파란 2022-12-08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찬란한 20대에 군대간 친구에게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옆에 있는 반가사유상83호 실버제품도 있던데요.

붉은돼지 2022-12-08 12:40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브라운색 사유상은 고무재질(?)인데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로 여러 색상이 있더라구요.
앞 조금 큰 청동 사유상은 불국사 기념품점에서 구입했습니다. 제가 얼마전에 경주에 갔는데요 석굴암 미니어처도 좀 만들었으면 좋겠더라구요. 아 제가 이런 자질구레한 기념품 모으는 걸 좋아해서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2-12-26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돼지님 덕에 저도 결국 못 참고 질렀습니다 ㅎㅎㅎ저도 국수 출판사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윤병무라는 시인이 주로 시집 이외의
본인 책 출판하시는 출판사 같던데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대형 출판사 니들이 안 내면 내가 낸다 이러고 내신 것 같은데요 ㅎㅎㅎ 받아들고 보니 분량이나 만듦새나 뭔가 인류문화유산 보급형으로다가 저렴하게 내어 주신 것 같습니다. 꽂아만 놔도 뿌듯뿌듯

붉은돼지 2022-12-26 20:18   좋아요 1 | URL
아이고 열반인님도 구입하셨군요. 심히 축하드립니다. 이제 큰 한 걸음 내디디셨으니 언젠가 이 전집 다 읽으시면 문득 득도하거나 성불하거나 뭐 그리할 수도 있겠지만......어쩌면 천길만길 나락으로 추락하거나 어쩌면 주화입마해서 불지옥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입지요...부디 용맹정진하시길 ㅎㅎㅎㅎ

beomjin713 2024-03-0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사유상 정보 알 수 있을까요..?

붉은돼지 2024-03-02 14:33   좋아요 0 | URL
앞에 것은 몇 년 전에 불국사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것이고, 뒤에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