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 선재 스님의 삶에서 배우는 사찰음식 이야기 선재 스님 사찰음식 시리즈 2
선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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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면 띠지부터 떼어내는데 이 책은 선재 스님 사진이 있어 차마 떼어내지 못 하였다. 책을 보다가 어느덧 띠지가 위로 올라갔는데 띠지 있던 자리에 예쁜 그릇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엔 탐스럽고 귀여운 무랑 버섯 그림이 있고. 푸릇한 풀을 배경으로 한 스님의 웃음이 푸르다.

 

스님의 얘기가 뭉클해 책을 읽다보면 이쪽 저쪽에서 눈물이 와락 터져나온다. 안 그래도 눈물 많은 수도꼭지인데 나이가 들어 그런지 부쩍 울음이 잦다. 마음을 살짝만 톡 건드려도 구멍난 둑처럼 눈물이 샌다.

 

홍신자의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무슨 일을 하든 그 한 가지 일에 온 마음을 써서 집중하라고.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는 일만 생각하라고. 선재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러하다. 불가에서 말하는 'Vipassana' , 호흡을 의식하라는 말. 언제나 깨어있어 지금을 살라는 가르침.

 

얼마 전 괴물쥐라 불리는 뉴트리아 쓸개즙에서 곰 보다 2~3배 많은 웅담성분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뒤 뉴트리아 포획이 늘어나 동이날 지경이라고 한다. 이러다가 생태계 파괴를 일으키는 뉴트리아를 사육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몸에 좋다면 어떤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의 행태에 씁쓸해 하며,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게 아니라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에 새롭게 공감하였다. 스님처럼 모두가 욕심없이, 지혜롭게 살 수는 없을까.

 

며칠 전 처음으로 대장 내시경과 위 내시경 검사를 했다. 위 내시경 검사는 한 끼만 먹지 않고 바로 할 수 있었는데 대장 내시경 검사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다. 두 번 했다가 사람 피 말려 죽이겠다. 전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에 설사약(관장약)과 물 2L를 30분 간격으로 2시간 만에 먹고 장을 비워내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건강염려증인 내 우려와 달리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와 남편이 "거 봐. 아무 이상 없다잖아." 라며 잔뜩 핀잔을 주었다. 음식이 삶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시간이다. 평소에 식이조절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왔다면 굳이 고통스러운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혀로 느끼는 입맛에만 유독 가탈하게 구는 어리석음을 되돌아본다. 여기저기 맛있는 곳만 찾아다니려 하는 내 안 가득한 욕심을 들여다보고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채우려 한 것인지 살핀다. 음식이 삶의 바탕이고 인생이고 수행임을 깨우쳐나가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새긴다.

 

조용히 앉아 명상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 깨끗한-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음식을 정성껏 조리해 천천히 맛보며 먹는 것도 수행임을 잊고 산다. 현대의 속도에 따라 급하게, 빨리 바로 입에 털어넣을 수 있는 음식을 반성없이 먹어치운 내 몸에게 미안해하며 다독인다. 자연을 닮아 햇볕 담은 음식을 시간을 들여 조리하고 꼭꼭 씹으며 음식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모든 여정과 수고에 감사를 보내는 마음도 수행이다.

 

1년 과정이라는 선재 스님 사찰음식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 사찰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에 깃드는 병을 살펴보고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은 수행이다. 음식도 수행이다. 먹으며 도닷가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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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5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7-02-25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장내시경 그건 참 ㅠ 고생많으셨어요.
먹는게 건강을 좌우한다는 걸 저도 새삼 느낍니다. 선재스님의 사찰음식... 저도 관심이 부쩍 생기네요..

samadhi(眞我) 2017-02-25 11:13   좋아요 0 | URL
대장 내시경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자연식 먹고 많이 움직이고 병원 근처로 가지 말기를 권합니다. ㅎㅎ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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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게 또 뭐가 있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지식쇼핑 검색에 들어간다. 낮은 가격순으로 검색하며 파는 곳마다 들어가 상품평을 꼼꼼이 읽는다. 꼭 필요한 물건인지 따져보지 않고 금방 혹해서는, '나중에라도 쓸거니까 사자' 하며 '구매하기' 버튼을 누른다.

 

보통 사람들보다 가구를 몇 개쯤 적게 가지고 있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가진 게 좀 적다고 으스대면서. TV와 소파를 가져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침대와 장롱 없이도 지냈는데 아랫녘으로 이사오면서 언니가 사줬다. "공간만 차지하는 침대가 싫어" 했으면서 이제는 "침대 없이는 잘 못 자" 게 됐다.

 

야구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야구하는 계절이면 날마다 컴퓨터로 야구중계를 본다. 그때마다 남편이, "소파에 누워 커다란 화면으로 야구를 본다고 생각해봐, 신나겠지?"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한다.  "고. 화. 질!" 이라며 한번 더 강조하는 남편에게 하마터면 넘어갈 뻔 한 적이 많았다. 책 말고는 더이상 소유물을 늘리는게 두렵고 싫어 버텨왔지만 야구 생각만 하면 흔들리는 이 마음을 어이할거나. 야구에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소유의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안다. 그래도 아직은 사는 재미마저 내던질 자신이 없으니 이건 그대로 두자.  

 

이 책을 읽다 말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무얼 줄여볼까 궁리한다. 이 책을 워낙 여러 번 읽어서 읽을 때마다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준 물건이 꽤 된다. 그만큼 새로 생겨난 물건들이 조금씩 늘어나기도 하지만 물건을 줄이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조금 전에도 엄마께 드리려고 안 쓰는 살림살이와 장식용 책을 모으는 친구에게 줄 책 몇 권을  주섬주섬 챙겨두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정리정돈을 하거나 뭔가 버릴 것들을 찾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대, 이 책의 마력을 믿슙니까?'    

 

물건씨의 집세까지 내지 말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놀랍고 신선하다. 이건 생각도 못해 본 일인걸. 집안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 '무엇'의 몫까지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니. 없어도 되는 물건을 줄이고 나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휑하게 넓어지겠다. 작가가 더 좁은 집으로 이사했다는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 나도나도! 그래야지. 해보지만 이 놈(?)의 책.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르는 책욕심을 어찌할거나. 책을 사서 쟁여두고도 또 새로운 책에 눈독들여 보관함에 담아두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하다 기어이 사고 만다.

 

언제부턴가 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게 되었다. 있는 책이나 다 읽고 사라는 남편 잔소리를 뒤로 하고 어느새 새로운 책을 고르고 있다. 촌스러운(?) 구닥다리라 전자책은 눈에 안 들어와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 맛 이라며 책을 끌어안고 쓰다듬는다. 책장 가득 꽂힌 책들을 훑으며 흐뭇하게 씨익 웃는다. 이 애욕(?)덩어리를 언젠가 처분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작가가 인용한 스피노자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법정스님이 지내시던 산골오두막으로, 소로우가 머물다 간 월든호숫가로 달려가고 있다네. 

 

그러고보니 '보관'이라는 개념도 깨져버렸다. 냉장고를 비워야겠다. 곧 쓸거라며 쌓아두고 쟁여두기를 당연하게 여겼는데 '지금', '바로' 쓰지 않을거라면 '쓸데없는' 짐이 될 뿐이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면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거잖아.

 

이 작가 솔찮하시(전라도 말로 굉장하다는 뜻)! 소유가 불필요 함을 딱 들어맞게 쉽고도 분명히 말한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해 무심코 행동한 일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버리고 나서 행복을 찾은 작가가 구하는 단순한 삶이 수행과도 닿아 있어 가만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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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7-01-06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도 비어있고 옷장도 비어있고 그릇
장도 거의 비어있는데 집이 항상 꽉차 있어요. 책상. 책장. 책... 그리고 덩치 큰 애들... 텅 빈 집에서 살고 싶어요 ㅎㅎ

궁극적으로 비워야 할 건.. 제 머리 속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samadhi(眞我) 2017-01-06 08:07   좋아요 0 | URL
냉장고 옷장 그릇장 비어있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럽네요.

텅 빈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려 용을 써야겠어요.

지금행복하자 2017-01-06 08:11   좋아요 0 | URL
ㅋ 냉장고가 비어있어 아이들이 먹을것이 없다고 투덜대요~ ㅎㅎ
냉장고속 음식 하루이틀 지나면 결국 안 먹게 되요~ 몇번 버리다보니 안 채우게 되더라고요~

samadhi(眞我) 2017-01-06 09:20   좋아요 0 | URL
‘이건 뭐 사람을 키우는지 소를 키우는지...‘ 하게 되는 식신들이겠네요. 한창 자랄 때라 ㅋㅋㅋ

울언니도 날마다 10대 짐승(?)들을 사육하며 자신도 마구 먹어댄다고 합디다.

버리다보니 자꾸 채우지 말아야 하는데도 음식물을 채워넣고 또 버리는 무한지옥에 빠져서 못 헤어나오네요.
버리기 귀찮아서 쌓아두는 것도 있고요. ㅋㅋ

yureka01 2017-01-06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미니멀라이즘^^..

samadhi(眞我) 2017-01-06 08:59   좋아요 2 | URL
단순 명쾌하지요.

겨울호랑이 2017-01-06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TV를 치웠더니 여러모로 얻는게 많네요.^^: 이것도 단순하게 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ㅋ

samadhi(眞我) 2017-01-06 10:02   좋아요 2 | URL
TV에 정신을 빼앗기게 되는 게 싫더라구요. 우리집에 티비 없는 거 알고 남편 선배가 자취할 때 쓰던 걸 줬는데 연결도 하지 않고 처박아 두다가 자취하는 남편 친구에게 줬답니다.
참, 수신료도 안 내구요.
한동안 자동으로 빠져나갔던 거 한전에 연락해서 받아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1-06 10:07   좋아요 2 | URL
문장에서 주어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ㅋ제가 실수 했네요 저희 집도 TV 를 치웠답니다. 그래서 samadhi님 의견에 적극 공감합니다^^

samadhi(眞我) 2017-01-06 10:09   좋아요 2 | URL
연의 때문에 마음먹으신 것 같은데 연의가 처음엔 서운해하지 않았나요? ㅋㅋ 아님 아빠가 더 많이 놀아줄 수밖에 없으니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겨울호랑이 2017-01-06 10:14   좋아요 2 | URL
^^: 아이들은 아직 습관이 되기 전이라 적응도 빠른 것 같아요. 밖에서 신나게 놀지요. 정작 타격은 저와 아내가 받았다는 ㅋㅋ

samadhi(眞我) 2017-01-06 10:16   좋아요 2 | URL
눈에 선하게 그려져요. 쩔쩔매는 두 분을 보며 천진하게 웃음터뜨릴 연의의 모습이 ㅋㅋㅋㅋㅋ
욕보시네요.

samadhi(眞我) 2017-01-06 10:22   좋아요 2 | URL
참, 호랑이님이 실수하셨다고 생각 안 했는데요. 잘 알아묵었^^거든요. 오히려 제 댓글 때문에 그렇게 느끼셨으려나 싶네요.

겨울호랑이 2017-01-06 10:22   좋아요 1 | URL
^^: 쓰고 난 후 읽어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듯해서요^^: samadhi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samadhi(眞我) 2017-01-06 10:41   좋아요 2 | URL
네. 연의아버님도 불타는 금요일에 연의랑 뜨겁게 놀아주세요. 고생하실 게 뻔한데 제가 너무 심하게 놀려대는거죠? ^^
호랑이님이 그림을 그리신 이유를 알게 됐네요.

하나 2017-01-0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속도와 책 사는 속도의 차이 저도 요즘 느끼고 있죠... ㅎㅎ 정말 못내려놓을 책... ㅎㅎ

samadhi(眞我) 2017-01-06 10:10   좋아요 0 | URL
멍하게 있다가 속수무책 당해버린 느낌이에요. ㅋㄷ
 
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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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고 멍하니 있다가 왕왕 울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두근댄다. 소름이 훅 끼쳐와 갑자기 한기가 든다. 숨이 차서 숨쉬기가 힘들다. 김숨 작가가 숨을 쉬게 하지 않고 숨을 막히게 하는구나. 답답한 내 속을 누가 좀... 울먹이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영화 [귀향]에서 영상으로 직접 보았을 때보다 책을 읽고 그려지는 장면이 더욱 선명해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갈 때마다 이가 갈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끙" 신음소리를 물었다. 어쩔 줄 몰라 책을 잡은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손을 꽉 움켜쥐고 있다.  

 

세상에, 기껏 초등학생, 중학생 나이의 어린 여자아이들이다. 가난으로 배곯는 순진한 시골 구석 아이들을 속여 데려다가 또는 무작정 잡아가, 짐승에게도 하지 못 할 짓들을 시키고는 없었던 일, 지난 일로 하자고 한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분들을 따뜻이 감싸주지 못할 망정 온갖 망언으로 상처를 후벼판다. 50년이 지나서야 어떤 마음으로 힘겨운 고백을 하셨을지 그래, 당해 보지 않은 당신들이 어찌 알까마는 인간에게 있는 거룩한 마음, 공감을 내어주지 못 하는가. 그저 운이 좋았을 뿐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분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었으리라.

 

지금은 고향이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그때 사람들에게 고향은 엄마와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자기 동네 말고 바깥으로 나가본 적 없는 시골 여자아이들에게 어떠했으랴. 새삼 [귀향] 이라는 영화 제목이 와닿는다.

 

그 소녀들이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이럇샤이 마세(어서오세요의 일본말)" 라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에 대해 느끼는 맨 처음 감정이 수치심이라고 한다. 그네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애꿎은 자신을 책망한단 말인가. 열 서너 살에 성장을 멈추어 버린 소녀할머니들 마음은 무엇으로 위로받을 건가. 무엇으로 되살아 날 건가.

 

읽기만 해도 그 일을 내가 당한 듯 몸이 아려오고 밑이 빠질 것 같고 얼굴이 부어오르고 불에 지진 듯 아프다. 읽기만 했을 뿐인데도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글을 쓴 작가는 어떠했을까. 어휘 하나 고르는 데에도 조심스러워 말을 고르고 골랐을 작가가 존경스럽다. 아프고 아프다. 제발, 이 아픔을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치유해 나가야 하겠다. 날치기로 강행한 그들만의 합의 따위 집어치우고 일본정부에게서 정식으로 공식 사과를 받아내 그분들 억울함, 설움,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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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04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백배입니다. 새벽에 혼자 펑펑울었습니다. ㅠㅠ

samadhi(眞我) 2017-01-05 07:16   좋아요 0 | URL
시이소님 댓글만 봐도 다시 눈물이 핑 도네요.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을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 숨으로 인생을 헤쳐온 제주해녀가 전하는 나를 뛰어넘는 용기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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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언니가 마흔 넘어 여태(?) 시집을 안 갔다. 경복궁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궁중떡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다 알게 된 언니인데, 몇 년 전에는 궁중떡 전수를 접고 제주로 돌아가 떡집을 차렸다. 떡집 일이라는게 어지간한 사람은 못 버틸 만큼 고된 노동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통 궁중떡을 전수받는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고 있었다. 제주여자여서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니에게 왜 시집 안 가는지 물었더니, 게으른(?) 제주 남자와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서 라고 했다. 제주에 살다보니 제주남자 외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 제주여자는 해녀가 되어 남편을 벌어먹이고 살림하고 육아까지 해내지만 제주 남자는 그냥 놀고 먹는다는 얘기. 그런데도 '기꺼이' 그 삶을 수용한다는 것. 그래서 내 머릿속 해녀 라는 말은 '모질고 고단한 인생' 이라는 뜻을 지녔다.

  

제주 여행을 다니면서 부터 잠녀(해녀)에 관심이 생겨났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해녀들의 쉼터이자 탈의장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시름을 푸는 곳인 불턱을 찾아 헤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바깥을 걸어다닐 여건이 되지 않아 처음으로 해녀박물관을 찾은 것도 그래서였다. 예전에 디자인을 전공한다는가 했던 사람이 해녀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그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 사람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책에 언급된, 조소를 전공했다는 사람인가보다. 책을 읽고 나니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다.

 

차라리 소로 태어날 것이지 제주 여자로 태어나 물질을 해야하는 운명을 한탄할 만큼 고통스럽고 한 많은 해녀의 삶을 풀어놓은 얘기에, 해녀박물관에서 잠깐 보여주었던 영상이 떠오른다. '우리 어멍이 이 힘든 일을 하라고 시켜서 너무나 서러웠다' 며 울먹이는 해녀의 노래가 구슬퍼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허접스러운 해녀노래 CD를 사서 여행동안 듣고 다녔다. 좋은 취지를 살리지 못 하고 이토록 허술하게 만들어 파는 것이 안타깝다.

 

작가가 오랜 세월 기자로 일했기에 취재가 가능했을 듯하다. 당장 해녀들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도 이런 섭외, 인터뷰는 어려울 것 같다. 제주 출신이고 제주올레길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니 제주 구석구석을 잘 알아 내용이 알차다. 글과 함께 실린 사진도 제주에 오래 살며 제주 사진을 찍어 온 사람의 솜씨라서 해녀들의 모습, 제주바다를 잘 담아냈다. 해녀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글과 사진이라니 이보다 더 나을 수 있으랴.

 

얼마 전 인터넷에 누군가 제주 사람들은 집에 귤나무가 있다면서요? 그랬더니 제주 사람들이 댓글 달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면서도 자기네 할머니집에는 귤나무가 있긴 있다. 또 다른 댓글에, 모든 제주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자기네 집에 한 그루 쯤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댓글이 여럿이었다. 작가의 친동생 마저 해녀에게 장가들었다고 하니 어쩌면 제주 사람은 다들 해녀랑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털웃음 웃었다.

 

해녀학교에 대한 글을 읽으니 그 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녀가 되기에 한참 늦은 나이이고 몸도 건강하지 않지만, 해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산소통 없이 오로지 자기의 숨으로 해내는 물질을 배워보고 싶다. 인간물고기(?)라 우길 만큼 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두 번 체험해 본 스쿠버 다이빙으로 들여다 본 바닷속 세계는 환상이었다. 다시 물 밖으로 나오기 싫을 만큼 신기하고 즐거웠다. 바다생물을 보는 것 자체가 기쁜 것이지 해산물 채취에 욕심은 없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 마침내 힘찬 생명체가 온 몸을 뒤틀며 하늘로 솟구쳤을 때 낚시꾼이 느끼는 그 짜릿한 감각, 팔딱거리는 생명을 다시 놓아주는 빈 낚시질이 그저 좋을 뿐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을 추구하는 그네들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본래의 길 아닌가. 인간의 손을 타면 무엇하나 부스러지고 망가지지 않는 게 없는 세태를 보며 해녀들의 삶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치를 찾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해녀박물관을 둘러보면서 해녀들의 삶이나 업적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화감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해녀들에게 더 많은 흥미가 생기고 그네들에게 조금 다가간 기분이 든다.

 

 

해녀박물관에 있던 해녀조각상이다. 전에는 해녀박물관 밖 풀밭에 있었던 모양인데 훼손 위험 때문인지 전시장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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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7-01-03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명숙씨의 글은 [제주 올레 여행]을 통해 읽었어요.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얘기와 제주에서 올레길을 일군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어요.
해녀 이야기도 관심이 생기네요.
오래전에 [숨비소리]라는 소설을 읽다가 말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 소설을 다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samadhi(眞我) 2017-01-03 21:35   좋아요 1 | URL
네 산티아고길에서 힌트를 얻어 올레길을 만들었다고 하니. 전국에 올레길 열풍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생각돼요. 작가가 일한 곳이 꼴통 신문이 아니라서 더 믿음이 가더라구요.
명랑한 사람 같았어요.

겨울호랑이 2017-01-03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녀 조각상만 보더라도 그분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지는듯 합니다...

samadhi(眞我) 2017-01-03 21:3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게다가 얼굴은 실제 그분들 얼굴을 본뜬 걸로 압니다.

2017-01-04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7-01-04 10:15   좋아요 1 | URL
그네들의 숨이 삶이죠. 어떻게 그리 견뎌냈나 싶어요.

하나 2017-01-0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소로 태어날 것이지... 제주 여자로 태어나 물질을 해야한다는 말이 참 마음을 울리네요. 제주에 놀러갔을 때, 잠녀들을 보면서 와 대단해!!! 라고만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의 속내를 잘 몰랐던 거...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만 드네요.

samadhi(眞我) 2017-01-04 10:38   좋아요 0 | URL
정말 고달픈 삶을 헤쳐나오신 분들이죠. 제주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저는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겠어요. 저같은 의지박약이 제주여자였다면, 물질을 해야했다면 못 버텼을 거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04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참 좋네요. 다른 글보다 정성을 쏟은 느낌이 듭니다.
글구.. 저도 떡집에서 아르바이트 한 적이 있어서 그 노동 강도를 알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중 유독 떡집 알바가 비싸서 무작정했는데... 아휴.. 힘듦....힘듦..

samadhi(眞我) 2017-01-04 11:14   좋아요 0 | URL
앗 곰발님께 칭찬을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제 생각대로 글을 풀지 못 해 어리바리 어중간한 글이 됐다 여겼거든요.

떡집 일은 떡시루 설거지가 최강이지요. 그때는 20대라 잘도 해냈는데 재작년에 추석 대목에 일 할 때는 몸이 우라지게 아파서 죽겠더라구요. 사장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ㅋㅋㅋ 제 떡 빚는 솜씨가 괜찮다고 하였으나 제 몸이 그 고된 노동을 배겨낼 수 없어서.

오거서 2017-01-04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amadhi 님의 여행을 통한 체험과 사색 덕분에 책 내용을 좀더 실감나게 전달하는 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samadhi(眞我) 2017-01-04 19:40   좋아요 1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사색이라 부를 것도 없어 부끄럽네요.
 
야성의 부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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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야성의 부름」과 「불을 지피다」두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야성의 부름」에서 주인공인 개의 이름이 벅이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벅이 퍽 아름답다. 제목마저 어쩜 이리도 멋지게 지었는지. 이제야 만난 잭 런던 이라는 작가,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글을 왜 이리 잘 쓰는지 언감생심(?) 작가를 향한 질투심에 휩싸인다. 심지어 표지그림 마저 섬뜩하게 아름답다.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구만.

 

책을 읽는 동안 이외수, 『들개』가 생각나기도 했고 그것에 꼬리를 물어 서머싯 몸, 『달과 6펜스』도 떠오른다. 특히, 이 글귀를 읽으면『들개』의 주인공이 쥐를 잡아 먹으며 허기를 채우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들개 그림만 미친듯 그려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삶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정점을 나타내는 환희가 있다. 그런 것이 살아있음의 역설이다. 그 환희는 살아있기에 찾아오지만 살아있음을 완전히 망각할 때에야 찾아온다. 그 환희, 살아 있음의 망각은 감흥의 불꽃 속에서 자아를 잊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전쟁에 미쳐 자아를 잊고 생존을 거부하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달빛 속에서 번개처럼 앞질러 가는 살아 있는 먹이를 잡기 위해 늑대의 오래된 울음소리를 내며 앞장서서 달려가는 벅에게도 바로 그 환희가 찾아왔다. 그는 시간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며 본성, 자신보다 더 깊은 본성의 일부, 그 심오함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는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과 조수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파도, 근육과 관절과 심줄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완벽한 기쁨에 압도당했다. 솟구치는 삶은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맹렬히 불타오르며 움직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냈고 별 아래, 움직이지 않는 죽은 물질의 표면 위로 환호하면서 날았다.

 

 

평온하게 살던 벅의 인생 아니, 견생(?)에 위기가 닥쳐오고 시련을 겪는 벅과 그 동료들의 팍팍한 여정이 일제시대 사할린으로, 간도로, 만주로,  일본으로... 끌려가 죽거나 죽을 만큼 고통받던 우리네 조상들과 겹쳐져 마음이 쓰라렸다.

 

상처입었던 자신의 야성을 따뜻한 인간의 사랑으로 깨닫는 역설(?)이 이 소설의 절정이 아닐까. 벅의 몸짓에 마음이 흔들린다. 벅이 어떻게 움직여도 마구마구 끌려다니고 말 것 같아. 한없이 거칠어 매혹적인 녀석, 노천명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에 걸맞을 드높은 자존심 덩어리같으니. 내 손에 결코 잡히지 않을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고 꽉 껴안아 어루만지고 싶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것 같다. 그런다고 내 마음일랑 알아 줄 리 없지만.

 

야성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뜻이 있다. 한자가 다른 성품성 자와  소리성 자를 쓴 '야성(野性): 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 과 '야성(野聲): 짐승의 소리같이 괴상하게 들리는 거친 소리'. 작가도 역자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두 가지 뜻 모두 반영이 된다. 고 나만의 결론을 내린다. 야성은 '본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숙명이야.  

 

이 책에 나오는 눈덧신토끼, 말코손바닥사슴, 호저(산미치광이:호저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난 정확히 잘 몰랐다.)를 처음 찾아보았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보는 듯 놀랍고 흥미롭다. 자연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 겁나지만 두근거리고 신나는구나.

눈덧신토끼(눈신토끼). 눈 오는 환경에 적응한 신발 모양의 뒷발. 자연은 참 섬세하기도 하지.

 

말코손바닥사슴.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숲의 왕"이라 불린다고 한다.

 

 

호저(산미치광이). 고슴도치랑 닮았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순수한 기쁨에 취한다. 그래, 이 맛이지 하며 좋아서 바동거린다.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을 야금야금 다 알고 싶어라. 이러하니 꼿꼿하기 이를 데 없는 벅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나.

 

두 번째 단편인 「불을 지피다」또한 짧지만 강렬하다. 인간의 오만을 가볍게 비웃는 개의 코웃음(내게는 그렇게 들렸다.)이 통쾌하다. 나또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같은 종족의 편에 서야 할진대 자연의 법칙에 '기쁘게' 복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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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1-0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지적 동물 시점인 책인가요?
저는 진아님 서평을 보고 ‘넌 동물이야, 비스코츠!‘이 책이 생각나요.^^

samadhi(眞我) 2017-01-02 11:54   좋아요 1 | URL
동물관찰자시점 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17-01-02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7-01-02 15:31   좋아요 1 | URL
그 소설 좋아서 여러 번 읽어서 저는 대충 기억하는 거지요. 예술혼을 불태우는 남자 얘기죠.
개가 나오니까요. ㅋㅋㅋ 야성을 상징하는 들개. 그 남자도 들개와 같아지는 그런 현상(?)
그래서 야성과 통한다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