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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이 책에는 「야성의 부름」과 「불을 지피다」두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야성의 부름」에서 주인공인 개의 이름이 벅이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벅이 퍽 아름답다. 제목마저 어쩜 이리도 멋지게 지었는지. 이제야 만난 잭 런던 이라는 작가,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글을 왜 이리 잘 쓰는지 언감생심(?) 작가를 향한 질투심에 휩싸인다. 심지어 표지그림 마저 섬뜩하게 아름답다.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구만.
책을 읽는 동안 이외수, 『들개』가 생각나기도 했고 그것에 꼬리를 물어 서머싯 몸, 『달과 6펜스』도 떠오른다. 특히, 이 글귀를 읽으면『들개』의 주인공이 쥐를 잡아 먹으며 허기를 채우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들개 그림만 미친듯 그려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삶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정점을 나타내는 환희가 있다. 그런 것이 살아있음의 역설이다. 그 환희는 살아있기에 찾아오지만 살아있음을 완전히 망각할 때에야 찾아온다. 그 환희, 살아 있음의 망각은 감흥의 불꽃 속에서 자아를 잊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전쟁에 미쳐 자아를 잊고 생존을 거부하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달빛 속에서 번개처럼 앞질러 가는 살아 있는 먹이를 잡기 위해 늑대의 오래된 울음소리를 내며 앞장서서 달려가는 벅에게도 바로 그 환희가 찾아왔다. 그는 시간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며 본성, 자신보다 더 깊은 본성의 일부, 그 심오함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는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과 조수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파도, 근육과 관절과 심줄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완벽한 기쁨에 압도당했다. 솟구치는 삶은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맹렬히 불타오르며 움직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냈고 별 아래, 움직이지 않는 죽은 물질의 표면 위로 환호하면서 날았다.
평온하게 살던 벅의 인생 아니, 견생(?)에 위기가 닥쳐오고 시련을 겪는 벅과 그 동료들의 팍팍한 여정이 일제시대 사할린으로, 간도로, 만주로, 일본으로... 끌려가 죽거나 죽을 만큼 고통받던 우리네 조상들과 겹쳐져 마음이 쓰라렸다.
상처입었던 자신의 야성을 따뜻한 인간의 사랑으로 깨닫는 역설(?)이 이 소설의 절정이 아닐까. 벅의 몸짓에 마음이 흔들린다. 벅이 어떻게 움직여도 마구마구 끌려다니고 말 것 같아. 한없이 거칠어 매혹적인 녀석, 노천명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에 걸맞을 드높은 자존심 덩어리같으니. 내 손에 결코 잡히지 않을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고 꽉 껴안아 어루만지고 싶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것 같다. 그런다고 내 마음일랑 알아 줄 리 없지만.
야성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뜻이 있다. 한자가 다른 성품성 자와 소리성 자를 쓴 '야성(野性): 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 과 '야성(野聲): 짐승의 소리같이 괴상하게 들리는 거친 소리'. 작가도 역자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두 가지 뜻 모두 반영이 된다. 고 나만의 결론을 내린다. 야성은 '본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숙명이야.
이 책에 나오는 눈덧신토끼, 말코손바닥사슴, 호저(산미치광이:호저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난 정확히 잘 몰랐다.)를 처음 찾아보았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보는 듯 놀랍고 흥미롭다. 자연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 겁나지만 두근거리고 신나는구나.
눈덧신토끼(눈신토끼). 눈 오는 환경에 적응한 신발 모양의 뒷발. 자연은 참 섬세하기도 하지.
말코손바닥사슴.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숲의 왕"이라 불린다고 한다.
호저(산미치광이). 고슴도치랑 닮았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순수한 기쁨에 취한다. 그래, 이 맛이지 하며 좋아서 바동거린다.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을 야금야금 다 알고 싶어라. 이러하니 꼿꼿하기 이를 데 없는 벅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나.
두 번째 단편인 「불을 지피다」또한 짧지만 강렬하다. 인간의 오만을 가볍게 비웃는 개의 코웃음(내게는 그렇게 들렸다.)이 통쾌하다. 나또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간이라 같은 종족의 편에 서야 할진대 자연의 법칙에 '기쁘게' 복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