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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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두었던 책을 이제야 꺼내 읽는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읽어 치우면 안 될 것 같아 읽기를 미루다가 면 재질로 된 옷처럼 편안한 느낌이 드는 책 표지를 쓰다듬어가며 읽는다. 표지 그림이 파이윰 초상인데 그 오래 전 얼굴이 현대인과 다름없다는 것에, 2세기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표현이 섬세해 놀란다. 아이다와 사비에르를 보고 그린 듯한 착각이 들 만큼 그림이 편지 주인공과 잘 어울린다. 


편지글 이어서 자꾸 딴생각-회상-에 빠졌다, 다시 읽다 가만히 등을 기대고 시간을 거슬러 가본다. 책 곳곳에 내가 모르는 단어들, 시대 상황, 사정 등등이 나와 그 뜻을 찾아가며 읽는 맛도 재미지다.('재미있다' 를 전라도 식으로 표현하는 말. 재미지다는 말이 재미있다 보다 더 재미난 느낌이다.)

 

남편이 막 병장을 달 무렵에 보낸 메일을 받고 그 답메일로 군대 주소를 묻고는 처음 편지를 보냈다. 그때만 해도 어린 시절 "국군아저씨께" 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다섯 달 동안 편지 50여 통을 보냈으니 군대에 소문이 짜했다 -'짜하다'가 표준어일 줄이야. '퍼진 소문이 왁자하다' 라는 뜻이다.- 고 한다. 남편이 말년휴가 나온 뒤 서로 얼굴을 처음 봤는데 남편이 복귀한 뒤에도 편지가 날아드니까 같이 있던 소대원들이, '아니 그 사람 왜 그러느냐고. 병장님 얼굴을 보고도 어떻게 연을 안 끊을 수가 있냐' 고 했단다. 내가 꽃미남 밝힘증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감당이 안 돼 잘생긴 사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우리 남편이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인상 좋다는 소리를 듣지^^. 


편지는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빛이 난다. 어쩌면 감옥과 비슷한 군대에서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기쁨이었을 거다. 일상이 아닌 비일상에서 편지라는 매개가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고 기다리는 가슴을 쥐락펴락하게 하는지. 읽다가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 온다. 가슴이 뛰어 편지를 품에 안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리움 가득 담은 한 글자, 느낌표 하나, 그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뿐인데 황홀해지는 기억. 우리가 나눈 편지는 수줍고도 과감하며 넋이 나갈 듯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며칠 전 열흘 만에 서울에서 돌아와 뭘 물어보려고 전화걸었더니 "마침 네가 와서 기분 좋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 하는 말에 딴청을 피웠지만 그 순간 찌르르한 느낌이 온 몸으로 퍼진다. 여전히 마냥 좋은 우리는 따라쟁이가 되어 서로를 흉내내며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헷갈리는 말들을 하며 배시시 웃는다. 


남자가 쓰는 여자 시점 편지가 참으로 로맨틱하다. 박주연 같은 여성 작사가가 쓴 남자 시점 노랫말도 그렇고 이성을 주인공으로 글을 실감나게 쓰는 것을 보면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게 된다. 여성성을 마음껏(마치 내가 쓴 편지라도 읽은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편지를 쓸 때마다 첫 글귀에 상대방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마저) 뿜어내는 글을 보면서 작가가 여자 속에 들어와 본 적이 있는 건 아닐까? 한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획일화(?)를 연인끼리 사랑을 주고 받는 연애편지로 빗대어 그리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작가는 작가구나. 가끔 요즘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태도를 취하며 산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며 비슷한 옷차림과 비슷한 꿈을 꾸고. 점점 물질 만을 바라며 기준이 한 가지가 되어 풍족하게 살며 고생하기 싫어하고 어딘가 뒤처지는 것 같으면 같이 안 놀고(?) 싶어하고 자기 부류가 아니길 바라기까지 하는 듯하다. 


내 친족이지만 갑자기 잘나가게(?) 된 사람이 벤츠를 몰면서 하는 말이, "야, 비켜~! 잘 안 나가면 좀 빠지라고." 농담이라 얼버무렸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농담으로 라도 그런 소리 말라고 했지만 내가 선비질(?)하는 걸로 보였을 거고 지가 못 나가니 저런다 생각했을 것이다. 상도 따위 없는 자기 남편이 얼마나 여러 사람에게 못할 짓 해가며 돈을 버는지 알면 충격을 받으려나. 아니면 '그게 뭐 어때서? 그럴 수 있지' 하고 오히려 두둔할 지 모른다. 자본주의 끝에 가 있는 지금 이 세계는 부(富)가 곧 선(善)이므로. 


아이다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을 관찰하고는 짧은 편지 안에 자신이 보고 느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언자 같은 말투였다가, 상상을 자극하기도 하고 곁에 있는 듯 속삭이기도 하면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매불망 아이다 편지를 기다렸을 사비에르 심정이 되어 아이다를 한시바삐 만나 보고 싶어진다. 편지 곳곳에 쏙쏙 박혀있는 글에 잠시 머물러 본다. 아이다가 건네는 말이 시처럼 고요해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어보며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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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06-02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후감이 좋아서 읽어보고 싶어 지네요

samadhi(眞我) 2022-06-02 15:51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 라기 보다 느낌이 좋더라구요.
 
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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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쉽게 시를 썼는데 난 겨우 서평 쓰는 것도 어렵다. 생각이 두서없다 보니 문장은 더 뒤죽박죽이 된다. 책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 상태로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지만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려고 일부러 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책을 읽었는지조차 가물거리기도 하니까.


군대간 조카에게 마커스 주삭, 『책도둑』을 보내주었는데 휴가 나온 아이가 그 책을 집에 두고 갔다. 마침 언니는 『책도둑』을, 나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도둑』과 『별을 스치는 바람』이 꽤나 비슷한 상황과 분위기를 띄고 있는 것이 공교롭다. 서울에서 책을 반납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언니에게 반납기한 연장해 두었으니『책도둑』다 읽으면 『별을 스치는 바람』도 읽어보라 권했다. 『책도둑』이 히틀러 치하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유태인들과 양심있는 독일인 이야기라면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일제시대 고통받고 죽어간 조선인들과 양심있는 일본인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고 내처 영화, 〈동주〉도 보았다. 스기야마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소설에는 동주와 함께 자라고 일본으로 유학가고 같이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비슷한 시기에 죽은 송몽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최치수 라는 인물이 송몽규와 비슷하게 그려진다. 허구이기에 가능하겠지만 최치수만은 통쾌하게도 그 지옥을 벗어났다. 실제로 송몽규가 최치수와 같은 결말을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송몽규에게는 악몽이겠다. 윤동주 없이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일테니까. 


윤동주가 점점 기억을 잃고 난 뒤에 한번 더 소설 속에 인용된 「별헤는 밤」을 읽으니 그제야 그 시가 동주가 쓴 유서로 읽힌다. 동주가 자기 죽음을 예감한 듯해 가슴이 저리다. 그동안 이 시를 읽을 때 별다르게 느끼지 못한 것은 영화 속 송몽규와 비슷한 관점을 가져서이다. 무장독립투쟁이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일제와 직접 싸우는 것만이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지식인들이 민중을 교화 대상으로 여기고 계몽운동을 벌이는 것이 지식인들이 취해 있는 우월감이라 생각했다. 중학교 때 읽었는데도 심훈, 『상록수』같은 작품은 역겨울 정도였다. 식민지 상황이 아닌 지금 읽으면 불교 선(禪)이나 자연 속에서 찾은 삶이 깨달음을 주기도 하겠지만 당장 모두가 죽게 될 지도 모르는 판국에 현실도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자기들만 유유자적한' 청록파 시인들이 비겁하게 보였다. 그래서 일제와 직접 부딪치지 않았다 보았던 윤동주도, 그 시도 내겐 관심 밖이었다.


이 책을 통해 윤동주처럼 여리지만 단단하고, 부드럽지만 굳센 이들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야만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이 사람을, 삶을 바꾸고, 문학이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그린 작가 뜻이 이상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뭉클하다. 책을 읽다가 곳곳에서 무언가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역시나 이정명은 이정명이다. 시같은 단어와 문장들을 읽는 눈에 글자가 번져 시야가 흐리다. 이제는 「별헤는 밤」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또륵 굴러 떨어진다. 이정명은 긴박하게 추리해나가는 전개를 통해 우리가 잘 아는 전형성을 가진 인물을 새롭고 뜻깊게 그려낸다. 그러니 이정명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나' 라는 화자보다 스기야마라는 입체성 있는 인물에게 끌린다. 스기야마가 변해가는 과정이 스기야마 시선으로 더 많이 펼쳐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식민잔재로 숱한 문제들이 산적한 채 이 나라 구석구석이 병들어 있고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지만 일본인들 잔학성에 치가 떨려 차라리 제국 후손이 아닌 식민지 후손인게 어쩌면 더 낫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야만성이 그 후손들 유전자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나. 


책에 인용된 프랜시스 잠,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라는 시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인체 실험도구로 쓰인 조선인들을 얘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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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의 기술 - 한평생 호흡하는 존재를 위한 숨쉬기의 과학
제임스 네스터 지음, 승영조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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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감기약 광고 문구다. 감기약 효과를 알리려 만든 문구겠지만 뜻깊은 말이다. 어쩌면 모두가 당연스레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겠다. 왜 입호흡이 안 좋은지, 코호흡을 왜 해야하는지 이 책을 읽다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이 책은 저자가 10년 동안 호흡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호흡 전문가들과 펄모노트(pulmonaut: 폐, 호흡기를 뜻하는 접두사 pulmo와 탐험가를 뜻하는 접미사 naut를 조합한 단어로 호흡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들을 찾아다니면서 호흡법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몸소 겪어보며 쓴 책이다. 처음에는 양장본도 아니면서 책값이 뭐 이리 비싸냐고 투덜댔는데 읽어보니 값어치를 하네.


자기 몸이 망가질지도 모르는 실험에 자비까지 들여 몸소 참여해서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이 실재한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다. 나라면 웃돈을 얹어주겠다고 해도 못한다고 손사래 칠텐데. 


요가를 하다보니 늘 호흡을 먼저 생각한다. "요가는 호흡이 전부다." 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요가 시간 내내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세요.", "요가 하다가 딴 생각이 들면 얼른 호흡으로 되돌아오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입버릇이 됐다. 


중학교 때 오쇼 라즈니쉬(나중에 미쿡에서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들로 추방까지 당했다는 걸 그 시절엔 몰랐다.)가 쓴 [뱀에게 신발신기기]라는 우화 모음집같은 책에 나온 글귀가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언제나 깨어있으라." 또 비슷한 시기에 짝사랑했던 국사선생님이, "불교에서 쓰는 Vipassana( 비파사나 라고 하셨다.)라는 말이 있는데 '현재에 충실하라' 는 뜻이다." 라고 하셨다. 나중에 위빠사나(Vipassana:산스크리트어에서 'V'는 'W'소리가 나기도 한다.) 본래 뜻이 "호흡을 의식하라" 임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언제나 깨어있으라'는 말이 '위빠사나'이고 '호흡을 의식하라'는 얘기다. 호흡을 의식하면 깨어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삶이-오래 전부터 고민했던 것이- 연결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잊지 않고 그쪽으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그 뜻에 다다르기도 한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요가를 몰랐던 시절에도 요가 아사나(자세)를 몰랐을 뿐 요가를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책에서 요가 얘기가 자주 나오는 바람에 얘기가 딴 데로 샜는데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고 호흡에 대해 고민해보고 실제로 여러가지 호흡법을 실행해보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온 호흡법을 따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해보면서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지. 그렇게 해보는 것 자체가 중하니께. 다 제쳐두고 코호흡 하나만 기억해도 괜찮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생명력을 강하게 하는 호흡을 찾아가기도 하고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세계 여러 펄모노트들이 해온 방법들을 따라가는 여정이 흥미롭다. 그저 코로 숨을 쉬었을 뿐인데 자신을 넘어 인간 전체를 이해하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본질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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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16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장에 바로 담았습니다. 호흡 너무 중요하죠~ 국사샘이 큰 가르침을 주셨네용~👍👍

samadhi(眞我) 2021-07-16 01:03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열렬히 좋아했던 분인데 저 시집갈 때도 오셨어요. 자유영혼을 지닌 분이었어요.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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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로 뜨거운 것이 몰려와 눈물을 토해냈다. 코끝에서 매운 기운이 눈까지 올라가 자동으로 눈물이 톡 떨어진다. 건조해 보이는 간결한 문장이 따사롭고 정답다.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을 그저 그윽하게 쓰다듬는 손길같은 문장에 마음이 놓인다. 앞부분을 읽다가 이렇게 메모해 두었는데 그 뒤에 읽은 "리사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내게는 한량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라는 문장이 딱 그 느낌을 말해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 맛이나 조리과정을 묘사하는 소설들에 마음이 간다. 투닥투닥 요리하는 소리, 음식 냄새 등을 담은 장면들을 자주 묘사하는 김애란 소설도 그렇고. -그래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는 뭔가 정이 안간다- 이 소설도 찾고자하는 기억이 자연스럽게 맛과 맞물려 나온다. 


기억을 더듬어 가다 만나게 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면에서 흐느껴 울다 베개가 젖었다. '이 소설, 참 좋다' 소리내 말해본다. 


소설을 읽다가 군데군데 생겨난 샘물처럼 눈안에 눈물이 퐁퐁 고였다. 혼자있는 방에서 "흐엉" 하고 소리내 울기도 하였다. 자꾸만 고이는 눈물 때문에 쉴새없이 눈꺼풀을 깜빡여야 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 글에 마법 주문이라도 걸었나. 시도때도 없이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러다 코도 눈도 다 닳겠네.


내게도 연희씨처럼 나를 아껴준 이가 있다. 대학 때 우거지해장국집에서 겨우 한 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그 한 달 인연을 20년 동안 이어왔다.) 식당 주인이었던 분이 손님들에게 나를 딸이라 소개하며 정말로 친딸로 대해주셨다. 나도 그때는 기운이 넘쳐나던 시절이어서 식당 손님들에게 곰살맞게 굴었고 식당일이 익숙지 않아 서툴었지만 즐겁게 일했다. 아부지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단골 트럭기사님도 있었다. 


식당 메뉴나 가게 입구에 "연중무휴"(대학 선배는 식당에 올 때마다 GOD가 부른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하던 노래를 한자어로 고친 게 생각난다고 웃어댔다) 같은 글씨를 쓰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찾아갔을 때 내가 형광종이에 쓴 글씨가 낡고 빛이 바랜 채 남아있었다. 볼품없는 내 글씨가 아까워서 떼지를 못하셨다는 거다. 


주인공이 34년 만에 잠깐 자기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가 주인공 얼굴을 만지는 장면을 읽다가 목이 꽉 메어서 내 또다른 엄마, 꽉여사 생각에 바로 전화했다. 언제나 반가워하시고 연락될 때마다 고맙다고 하신다. 내가 더 고마운데. 표현에 서툰 무뚝뚝한 우리 엄마보다도 다정하고 살갑다. 피보다 더 진하고 더운 정을 느낀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구상만 해보았던 소설이 떠오르고 갑자기, 재미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내 수준엔 딱 거기까지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게 한 것만으로도 좋은 작가가 쓴 좋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한동안 마음에 닿는 소설이 없어서 소설 읽는 게 시들했는데 얼마 만에 만나는 괜찮은 소설인지. 


우리가 외로운 건 "잘했다" 소리를 듣고 싶은데 듣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닐까. 날마다 남편을 쿡 찔러서 안아주테효~ 하며 반강제로 듣는 그말,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잘했다, 잘했다", "장하다, 장하다" 누군가를 다독이며 그리 말해주면 이 땅에서 외로움이 조금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너를 기다렸다고, 내게로 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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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3-16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글 너무 좋아요! 이 소설도 읽고 싶지만, 아직 쓰지 않은 진아님의 소설이 더 읽고 싶어요.

samadhi(眞我) 2021-03-16 21:45   좋아요 1 | URL
수준이 안되지요. 게으르고요.ㅎㅎ 역사소설, 야구소설, 추리소설... 몇 가지만 정해두고 그냥 꿈만 잠깐 꾸었습니다.

붕붕툐툐 2021-03-16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읽고 싶은 책장에 찜해놓습니다. 사마디님 너무 행복하게 잘 사시는 거 같아 부럽습니당~😍👍😄🙆

samadhi(眞我) 2021-03-16 22:08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자체가 즐거운 인생처럼 보이는데요.

붕붕툐툐 2021-03-17 21: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다 가면입니다. 쓸데없이 사회성만 발달했네요~ㅋㅋ

samadhi(眞我) 2021-03-17 22:03   좋아요 1 | URL
그거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아직(?) 팔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붕붕툐툐님 생기발랄함에 힘을 얻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7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잘 읽는 분들은 그만큼 상상력도 풍부하고 잘 공감하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감수성이 발달한 분들이겠지요. 삶 속에서 소설을, 소설에서 삶을 발견하는 samadhi님의 모습이 페이퍼에 잘 담겨있어 좋네요^^:)

samadhi(眞我) 2021-03-17 00:12   좋아요 2 | URL
재밌어서 읽어요 ㅎㅎ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서 못견딜 때가 있어요. 요즘 그런 소설들을 쉽게 찾지 못했는데 이 소설 캬아~ 심봤다! 입니다. 이 소설은 내용도 좋지만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감성으로 읽게 됩니다.
 
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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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사랑처럼 우주는 그렇게 노래한다. 자연과학, 특히 나처럼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어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처음에 물리학자가 쓴 글이어서 쫄았다가 우리 언니 말투처럼 친근해 술술 읽는다. 물론 못 알아듣는(?) 부분도 꽤 있다. 책에서 언급된 물리학이나 수학 용어 등을 찾아봐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가보다, 아하 그렇구나(실제로 알아듣진 못하지만) 해가며 읽는다.

재미난 소설도 아닌데 손에서 책을 놓기가 싫어진다. 저자가 글을 쉽게 쓰려 애쓴 흔적이 또렷이 보여 고맙다. 과학 수학은 넘을 수 없는 단단한 벽으로 치부해 두고 늘 멀리해왔는데 이런 수업을 들었다면 전공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진동과 파동이라는 말 대신 떨림과 울림이라니. 과학이 아니라 시같고 소설같다. 모든 것이 우주. 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책이다.

TV를 켜면 스포츠 채널만 골라봐서 이 책 저자가 알쓸신잡3에 나왔다는 것도 몰랐다. 언니도, 수학 전공하는 조카 녀석도 아는 사람이었네. 이 책 소개를 하니 책이라곤 들여다보지 않는 조카도 흥미를 보인다. 다 읽고 조카에게 넘겼다.

얼마 전에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는 유투브 영상을 재밌게 봤다며 남편이 양자역학에 대해 신나게 얘기해주었는데 그 동영상 주인공도 이 책 저자였단다. 요가를 하다보니 양자역학에 부쩍 관심이 생겼는데 인연인가 보다. 전작주의 작가로 찜했다.

저자가 가진 줏대가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과학이 특별한 이유라고 하니 과학에 경외감이 든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던 천진한 장금이도 떠오른다.(대장금 드라마에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안다고 하려면 물질 증거만을 가지고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과학 태도라는 말에 일본식 과장이 섞인 거라고 느꼈던 과학자와 형사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일본드라마 설정이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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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8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