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X파일 -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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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상호 기자 하면 자꾸 세월호가 떠오르며 자동으로 눈물부터 난다. 세월호 사건 이전엔 이 기자를 잘 몰랐고, 팽목항에서 날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와 팩트피비 합동 방송을 지켜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너무 괴로워 방송을 볼 수 없을 것 같아도 그 소식을 듣지 않으면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이기자의 방송만 기다리곤 했다.

 

삼성X파일 보도가 한창일 때는 취업 시험 준비하느라 세상 일에 도무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저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 그 중대한 사건을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삼성을 노조도 없는 비양심 기업 정도로만 인식하다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잇따라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그때에서야 비로소 실상을 알아가며 재벌들의 행태를 조금씩 이해하고 이제는 삼성의 파랑색 기업 로고만 봐도 입맛이 떨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 흔한 삼성 전자기기 하나 없고 카드마저 해지했다. 어차피 구매력 약한 내가 삼성 물품을 사주지 않는다 해서 타격을 입지도 않겠지만 그저 내 작은 의지(?)의 표현이다. 대다수 삼성 소속 회사원들이야 아무 죄(?)도 없지만.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헛소리를 마치 진리마냥 떠들어대는 삼성가(?)의 야비한(?) 행태가 가소롭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 삼성이라는 족벌기업의 본질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런 거대기업과 맞짱 뜬 이상호 기자가 존경스럽다. 혼자 그 외로운 싸움을 하느라 얼마나 힘겨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본세상에서 자본에 먹히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 이상호 기자가 나처럼 눈물 많은 수도꼭지라서 더 정이 간다. 남자는 평생 3번만 울어야 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이 땅의 보통 남자와 달리 남의 아픔에 진심으로 울 줄 아는 그 사람이 멋있다.

 

이 땅의 민주화는 언제 찾아올 수 있을지.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 경제, 언론인들의 행태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세력이 주류이고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이 아무 영향력 없는 서민을 무력하게 한다. 이상호같은 기자가 목숨 걸고 보도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정재계의 결탁, 삼성의 머슴(?)같은 떡검의 존재, 재벌독재도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을 일이다. 여전히 보통 사람들은 삼성을 대단한 기업,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땅의 경제화는 없었을 것이라 믿듯이 삼성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기업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겠지. 그리고 끄떡하면 이런 기업이 대다수의 국민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어쩌면 집단 세뇌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세뇌 상태를 깨어나게 해주는 이 책을 아직 의식을 갖추지 못한 잠재적(?) 시민들이 읽어야 하겠다. 굳이 잠재적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민"은 단순히 군중이 아니라 민주화를 지향하는 의식 또는 의지를 갖춘 민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삼성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고까지 말하고 싶다. 삼성이 망해 없어진다고 이 나라가 없어지는지 한번 보자고. 그네들이 우기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윤리를 기본으로 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가짜 기업이 사라지고 노동자가 조직의 근간인 극히 정상적인 기업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객관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할 언론마저 자본에게 잡아먹힌 가운데 꿋꿋이 싸워온 몸도 튼튼(지병이 있는 사람이지만), 마음도 튼튼(광장공포증마저 있지만), 팔팔히 살아있는 이상호 기자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MBC에 복직돼 구내식당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던 이상호 기자의 사진을 보며 같이 울었는데 20여일 만에 다시 중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에 분노했다. 끄떡하면 고소고발당해 법정을 집처럼 드나들고 발로 뛰는 진짜기자가 드문 세상에 고발기자 이상호, 누나기자(?) 주진우 같은 진짜 기자들이 속속 생겨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삼성X파일을 취재하고 고발한 이상호 기자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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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12-01 11:5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이상호기자랑 주진우 기자를 쪼~아 하지요. 이분들처럼 사명감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을 욕먹이는 대다수 주류언론인들이 문제지요.
 
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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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시험 공부는 그렇게 안 하더니만, 학원에서 중학생들 가르치면서 열심히 공부한 남편이 교과서 지문으로 나온 이 책이 재미있다고 꼭 사라고 오래 전부터 노래를 불렀다. 도서정가제 이후로 소설책은 거의 중고로 사고 있어서 중고 나오기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 이전에 꽤 많았던 중고가 이 악의적인(?) 제도 시행 이후 귀해져서 중고책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 직배송 책을 사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안 그래도 책 안 읽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바보로 만들려고 하는지. 우민화정책(?) 대 성공이다. 그래, 대단한 정부 만만세다. 마침 알라딘 직배송 중고가 나와서 사게 됐다. 집에 있는 책을 중고로 팔려고 해도 책 속에 메모를 많이 해 놔서 그리 할 수도 없고. 책 읽을 때 모르는 낱말 뜻을 책 위 아래 빈 곳에 적어두는 버릇이 있어서 깨끗한 책이 별로 없다.다들 나처럼 책에 메모하는 버릇이 있어 중고로 책을 팔지 않는 건가.

 

중학교 때 언니가 공부하라고 사준 위기철,『논리야 놀자』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처박아 둔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위기철이라니. 전에 영화가 나왔을 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옆에서 재밌다고 해서 읽게 됐는데 과연 좋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쉬임없이 웃게 되지는 않지만 갑자기 풉! 하고 웃게 된다. 꼬마가 주인공인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게 마련인데-가끔 그걸 노리고 쓰는 어설픈 소설들이 있는데 작위적이어서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 이 책 또한 재미나다.

 

남편이 재미있다고 했던 일화는 21종이나 되는 중학교 교과서 지문에 나온 일부일테지만 기종이가 골방철학자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나 하고 주인공 여민이는 그다지 알고 싶어하지 않아했던 부분이다. 꼭 누군가가 떠올라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풍뎅이영감 부분에 나온 아이들의 잔인성은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 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아이들의 잔인함을 접할 땐 어김없이 그 영화가 떠오른다. 골방철학자는 도무지 남 얘기 같지 않아서 괜스레 불편해진다. 어디에나 이해받지 못하는 인생이 있구나. 이 서평의 제목으로 쓴 꿈을 따는 아이라는 말 때문에 배꼽 잡았다. 갑자기 받아쓰기에서 "주었습니다."를 틀려서 틀린 거 10번 써오랬더니 "었습니"만 10번 써 간 꼴통 조카녀석 생각이 났다. 이 책의 부제로 "꿈을 따는 아이"를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작가가 오랜 세월 문장을 갈고 다듬은 티가 난다. 이 소설을 쓰면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늘 문장에 신경 쓰며 살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문장이 정확하고 간결해 읽기 좋다. 특히, 작가의 작명솜씨가 뛰어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름과 별명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가난한 시절 얘기는 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해진다. 내가 잘 모르는 지역의 사투리처럼 다른 세상(책에 나오는 기종이의 표현에 따르면) 일이라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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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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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고등학교 때 빠져있었다던 김용의 [신조협려]를 읽기 위해 전편과 다름없는 이 책을 읽었다. 차마(?) 무협지를 사서 읽기는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더니 역시나 책 속 여러군데 음식 흘린 자국들이 너저분하게 묻어 있다. 깔끔한 성격이 아닌데 유난히 책에는 가탈을 부리는 건 왜 일꼬?

 

추석 연휴 전에 빌려서 신나게 읽다가 추석 대목에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바람에 읽고 싶어도 읽을 새가 없었다. 그랬더니 이놈저놈이 휙휙 날아가는 꿈을 꾸고 일을 하는데 자꾸 소설 생각이 났다. 그 얘기를 하니 남편이 이제 곧 한달 내내 꿈 꿀거야. 그런다.

 

중국 사람들이 신필(神筆)이라 부른다는 김용, 이 작가의 이야기 보따리 속에 아직도 못 다 꺼낸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소망은 굴뚝 같은데 떠오르는 이야기는 없다. 떠올라도 단편적으로 대강의 줄거리만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 뿐 구체적으로 인물들을 설정하고 극적인 사건은 무엇이며 시대적 배경-이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에 철저함을 부여해야 하고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이며... 끝도 없는 작업을 쉽게(?) 해내는 걸 보면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얘기들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신기하고 부럽다.

 

무협소설이다보니 문학성은 많이 떨어진다. 소설에서 환상성의 가치를 높게 보는 내게는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장르이긴 하지만 개연성도 약해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에 당황하게 된다. 이 맛으로 무협지를 즐겨읽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무엇보다 재미 없으면 안 읽는 나같은 사람들이 빠르게 집중해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이 참 좋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이런면 저런면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풀어 공감이 간다.

 

강호는 의리에 살고 죽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틀이 깨졌다. 단순히 누가누가 무공이 더 강한가를 가지고 싸우는 걸 보면 참 유치하다 싶기도 하고 어차피 인생살이라는게 단순하게 따지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기대한 수행자의 태도는 거의 엿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몽고와 금나라에 치어서 정통성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 조차 장담하기 힘든 격동의 시대, 송을 지키려는 협객들과 금에 협조해 송을 치려는 세력 간 갈등을 그려낸다. 실존인물과 허구 인물을 같이 등장시켜서 실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저 선하기만 한 인물이 없다보니 인물의 입체성이 부각되어 더 재미있다.

 

읽는 내내 답답하게 느껴진 것은 넓디 넓은 중국대륙에서 무선전화, 인터넷은 고사하고 유선전화도 없던 시절이다보니 가까운 사이도 소통이 되지 않아 끄떡하면 오해를 하게 된다. 그 오해 때문에 싸우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속고 속이고...조금 더 이른 나이에 읽었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신조협려』를 요양원에 봉사차원으로 장기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도서관 사서와 실랑이를 벌였다. 『신조협려』는 사조영웅문 다음 이야기인데 그 책을 장기대출 해주면 어떡하느냐고. 도서관에서 그 책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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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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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여인의 편지」를 읽을 생각에 「체스이야기」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아주 흥미롭다. 일석이조라는 상투적인 말이 뜻밖에도 반가운 이 책, 왐마 오진거!

 

작가는 한 가지에 집착하는 병증 또는 사람에 관심이 높은가보다. 두 가지 단편 모두 독특한 소재로 집착에 대해 말한다. 전체적인 번역이 조금 구식이어서 거슬리긴 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착착 감기는 번역이 참 드물다.

 

이 책을 산 이유가 「낯선여인의 편지」여서 두번째로 실려 있던 그 단편을 먼저 읽었다. 이 드물게도 낯선 여자도 그렇지만, 이 여자가 줄곧 지켜봐 온 남자 또한 독특하기 그지 없다.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가 사실은 안면인식장애는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이런 관계가 다 있나.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중적인 심정이 드는  건 나도 몇 번 쯤 그런 편집증적인 열정 또는 열망 같은 것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다지 길게 가지는 못했지만. 긴 집착엔 단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질리지도 않고 꿋꿋이 자신의 열망을 이어간다는 것이 보통 의지로는 될 수 없으니.

 

미대를 가보겠다고 재수할 때 친구랑 둘이서 홍대 시각디자인과에 무단침입(?) 해 거기에 내 이름과 같은 이름자(한 글자)를 가진사람의 사물함에 늘 목에 걸고 다니며 아끼던 일자형 호각을 두고 왔다. 일년 뒤 선배(?)에게 꼭 돌려받겠다고 차디찬 맹서(?)를 하였지만, 결국 홍대도 아닌 다른 미대에 떨어지고 말아 눈물나게 아까워 했다.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열망같은 것을 한번쯤 가슴에 품어보기도 하지 않는가. 이 글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열망에는 발끝에도 닿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 어린 나이에(10대 초반이면 초등학생인데) 어떻게 그리도 확고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 시대적인 힘(?)도 있었겠지만.-현대사 이전 근대까지만 해도 10대, 20대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이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대 사람들은 단명했기 때문인가, 이른 나이에 성숙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불을 찾아 헤매는 부나비' 같기도 하다. 농담처럼 "우리과(나같은 꼴통을 비롯해 나와 너무도 닮아 내 아들로 불리기도 하는 조카를 아울러 이르며)는 오늘만 살아, 내일은 없어." 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하는데. 이 부나비같은 여자, 무섭고 독하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독립적이다. 그 정도 되니까 그렇게 살아갔겠다. 어딘가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나 모르게 세상 참 다채롭게 흘러가네.

 

「체스이야기」또한 예상 외의 이야기였다. 일단 체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따분하고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집착병(?)을 앓게 된 사람과 그렇게 된 연유를 들려준다. 나치의 또다른 고문방식(?)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속 일화들도 떠오르고. 딱히 비슷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가막소(?)에 갇힌 상황만으로 그랬다. 체스라는 게임 자체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곳에서라면 면벽수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쭙잖은 충고를 하려고도 했는데 실제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죽고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갑갑한 공간에 고립돼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고 음악을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았던 그 겨울이 떠오르며 그보다 몇 배는 더 미쳐버릴 것 같은 공간에서 과연 무엇으로 자아를 놓지 않을 수 있었을지. 머리터지게 생각을 쥐어짜고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때 사실은 답이 없는 그 문제의 답을 알아맞힐 수 있을지. 그걸 해결하고도 미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러고도 나는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실존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작가는 병적인 집착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암울한 시대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이력이 이해가 간다. 가만히 있어도 병들 수밖에 없었을 시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비정상일 때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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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9-0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정말 재미있게 쓰는 작가`입니다. 인정 ~~

samadhi(眞我) 2015-09-08 10:47   좋아요 0 | URL
곰발님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낯선여인 얘기는 여자가 쓴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여성의 시각에 접근했더라구요.
 
불의 검 애장판 세트 - 전6권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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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혜린의 만화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김혜린이 더이상 작품을 내지 않는 것이 아쉽고 아깝다. 언제라도 작품을 내주길 기다리고 있다. 역사의식이 투철한 진짜 작가. 만화가 아닌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김혜린의 만화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고 소설이다. 한 편의 대하소설.

 

오랜만에 다시, 『불의 검』을 집어든다. 10년도 더 전에 산 책들이라 군내(?)라고 해야 하나. 오래된 냄새가 묻어있다. 벌써 몇 번째 읽는 지 세는 것도 까먹었다. 몇 년 동안 읽지 않다가 오랜만에 읽었더니 새록새록 감상이 일어난다. 역시, 김혜린. 하고 엄지를 들어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 읽고 나면 힘이 불끈 솟는 책이다.

 

불의 검. 제목만 들어도 비장하고 멋지다. 김혜린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비장미가 스며있다. 그리고 언제나 약자(?)들의 투쟁사가 꼼꼼하게 그려져 있다. 만화에서 문체를 얘기한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문학성이 가득하다. 대사가 마치 시어 같다. 지금은 잊혀지고 있는 민족성. 어찌보면 독립전쟁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불칼, 철기를 얻기 위한 투쟁. 그 속에서 속절없이 스러져간 숱한 민초들의 귀한 목숨을 기억하자고 한다. 역사는 언제나 이긴 자의 기록이지만, 그 승리를 위해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하 많았음을 잊지 말자고.

 

김혜린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너무 용감무쌍하고 빡세게 살아서 나같은 범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으리란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일반적인(?) 영웅들과 달리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그것을 인정하는 솔직함이 지극히 인간적이다. "사람"의 얘기를 하고 싶어하니까. 온 마음을 다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다 말해버려서 절필(?)같은 걸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작가의 진심이 담겨있다. 그래도 아직 못다 들은 말들이 많아 마냥 기다리고 싶다. 이것도 저것도 듣고 싶고...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있다고 아직똥 멀었다, 졸라대고 싶다.

 

겉으론 순정만화인 것으로 되어있지만, 다 큰 어른들의 얘기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될 줄 알았던 어린시절, 우러러 봤던 진.짜. 어른들의 고뇌를 그려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떻게 하여 우리들에게 불칼을 전해주었는지... 가지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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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9-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저도 이 만화 읽었습니다.
정말 만화에서 문체를 이야기하는 게 엉뚱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다른 문학 작품보다 문학성이 뛰어나서 놀랐습니다.
이별`를 이 작가는 별리`라고 하더군요....
그 묘한 가냘픈 그림체와 별리;라는 문체가 만나면... 뭐 게임 끝이죠....
아마 이 작품은 희귀의 걸작이 되지 않을까요. 진정한 걸작임...

samadhi(眞我) 2015-09-07 16:15   좋아요 0 | URL
이른바 ˝순정˝만화를 읽지 않는 남성독자도 읽는 게 김혜린의 작품일 거예요. 우리 남편부터 남편의 친구들까지 읽게 되었지요. 그 덕분에 제 책이 더 낡게 되었지만요. ㅠㅠ

걸작이어서 그 뒤 작품을 내지 않나봐요. 김혜린은 처녀작부터 어리숙한 맛도 없이 너무 훌륭했으니까요. 대단한 사람이지요. 김혜린은 차기작을 내놓아라!! 라고 작가의 집 앞에서 시위라도 할까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9-07 17:23   좋아요 0 | URL
아마 장인 정신이 빚어낸 최고의 작가가 아닐까요 ?
비교할 만한 작가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쉽게 말해서 그냥 아트만화 같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고증에 꽤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솔까말, 요즘 역사 드라마보다 더 사실적이라고나 할까요....
뭔가 리얼리티가 이씀.... 참.. 특이한 만화입니다.


작가가 몸이 약하다고 하죠 ? 이 작가가 작품을 내놓지 않는 것은 범죄이지만
작품 때문에 몸이 더 약해지신다면 걱정이므로 ... 저는 더 내놓아라, 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혹 모르죠... 최대의 대하 걸작을 남몰래 작업하고 계시는 줄도 모릅니다. ㅎㅎㅎ

samadhi(眞我) 2015-09-07 17: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드라마로 제작되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지만 비천무 영화를 망가뜨려놓은 거 보면(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안 봐도 빤~해서 ㅋㅋ) 드라마 제작자가 망치느니 만들지 않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냥 쉽게 만화는 수준이 어쩌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작가지요. 학창시절부터 제일 좋아한 작가예요. 건강하고 짱짱(?)해져서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혜린 작품 보고싶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