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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 숨으로 인생을 헤쳐온 제주해녀가 전하는 나를 뛰어넘는 용기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10월
평점 :
제주에 사는 언니가 마흔 넘어 여태(?) 시집을 안 갔다. 경복궁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궁중떡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다 알게 된 언니인데, 몇 년 전에는 궁중떡 전수를 접고 제주로 돌아가 떡집을 차렸다. 떡집 일이라는게 어지간한 사람은 못 버틸 만큼 고된 노동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통 궁중떡을 전수받는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고 있었다. 제주여자여서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니에게 왜 시집 안 가는지 물었더니, 게으른(?) 제주 남자와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서 라고 했다. 제주에 살다보니 제주남자 외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 제주여자는 해녀가 되어 남편을 벌어먹이고 살림하고 육아까지 해내지만 제주 남자는 그냥 놀고 먹는다는 얘기. 그런데도 '기꺼이' 그 삶을 수용한다는 것. 그래서 내 머릿속 해녀 라는 말은 '모질고 고단한 인생' 이라는 뜻을 지녔다.
제주 여행을 다니면서 부터 잠녀(해녀)에 관심이 생겨났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해녀들의 쉼터이자 탈의장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시름을 푸는 곳인 불턱을 찾아 헤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바깥을 걸어다닐 여건이 되지 않아 처음으로 해녀박물관을 찾은 것도 그래서였다. 예전에 디자인을 전공한다는가 했던 사람이 해녀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그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 사람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책에 언급된, 조소를 전공했다는 사람인가보다. 책을 읽고 나니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다.
차라리 소로 태어날 것이지 제주 여자로 태어나 물질을 해야하는 운명을 한탄할 만큼 고통스럽고 한 많은 해녀의 삶을 풀어놓은 얘기에, 해녀박물관에서 잠깐 보여주었던 영상이 떠오른다. '우리 어멍이 이 힘든 일을 하라고 시켜서 너무나 서러웠다' 며 울먹이는 해녀의 노래가 구슬퍼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허접스러운 해녀노래 CD를 사서 여행동안 듣고 다녔다. 좋은 취지를 살리지 못 하고 이토록 허술하게 만들어 파는 것이 안타깝다.
작가가 오랜 세월 기자로 일했기에 취재가 가능했을 듯하다. 당장 해녀들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도 이런 섭외, 인터뷰는 어려울 것 같다. 제주 출신이고 제주올레길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니 제주 구석구석을 잘 알아 내용이 알차다. 글과 함께 실린 사진도 제주에 오래 살며 제주 사진을 찍어 온 사람의 솜씨라서 해녀들의 모습, 제주바다를 잘 담아냈다. 해녀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글과 사진이라니 이보다 더 나을 수 있으랴.
얼마 전 인터넷에 누군가 제주 사람들은 집에 귤나무가 있다면서요? 그랬더니 제주 사람들이 댓글 달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면서도 자기네 할머니집에는 귤나무가 있긴 있다. 또 다른 댓글에, 모든 제주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자기네 집에 한 그루 쯤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댓글이 여럿이었다. 작가의 친동생 마저 해녀에게 장가들었다고 하니 어쩌면 제주 사람은 다들 해녀랑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털웃음 웃었다.
해녀학교에 대한 글을 읽으니 그 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녀가 되기에 한참 늦은 나이이고 몸도 건강하지 않지만, 해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산소통 없이 오로지 자기의 숨으로 해내는 물질을 배워보고 싶다. 인간물고기(?)라 우길 만큼 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두 번 체험해 본 스쿠버 다이빙으로 들여다 본 바닷속 세계는 환상이었다. 다시 물 밖으로 나오기 싫을 만큼 신기하고 즐거웠다. 바다생물을 보는 것 자체가 기쁜 것이지 해산물 채취에 욕심은 없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 마침내 힘찬 생명체가 온 몸을 뒤틀며 하늘로 솟구쳤을 때 낚시꾼이 느끼는 그 짜릿한 감각, 팔딱거리는 생명을 다시 놓아주는 빈 낚시질이 그저 좋을 뿐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을 추구하는 그네들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본래의 길 아닌가. 인간의 손을 타면 무엇하나 부스러지고 망가지지 않는 게 없는 세태를 보며 해녀들의 삶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치를 찾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해녀박물관을 둘러보면서 해녀들의 삶이나 업적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화감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해녀들에게 더 많은 흥미가 생기고 그네들에게 조금 다가간 기분이 든다.
해녀박물관에 있던 해녀조각상이다. 전에는 해녀박물관 밖 풀밭에 있었던 모양인데 훼손 위험 때문인지 전시장 앞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