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책장에서 찾은 두 번째 책이다. 몇 년 전에 언니 책장을 내가 다 정리해버려서 남은 책이 거의 없다. 이제 언니는 책을 사지 않고 빌려서 본다. 정작 내 책장은 정리하지도 못하면서 남 책장을 비워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지. 매순간이 응급인데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 매번 맞는 선택을 해야한다면 그 압박감을 어떻게 감당할지.
몇 년 전 남편이 빗길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는 연락받고 응급실에 도착한 순간 바로 뒤에 요란한 소리를 내던 구급차가 멈춰섰다. 그게 남편을 실은 차였다. 몇 군데 부러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장기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구급차 싸이렌 소리 강박증이 생겼다. 그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누군가 많이 다쳤겠구나 싶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날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는 직업군은 어떻게들 사는걸까.
나는 그를 죽게 놔둔 무책임한 의사이자,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자라는 사실 가운데서 방황했다. 그를 진료했던 순간을 아무리 복기해봐도 그를 도저히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떳떳하게 살아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명징한 우울과 죽고자 하는 강렬한열망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것은 비참함. 이 예정되어 있는 나의 운명을 암시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곧 나는 마음속에서 불처럼 번져나가는 우울과 열망을 느꼈다. 우울은 확실히 다양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깊은 우울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깊이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깊이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때처럼 죽고자 하는 열망에 깊이 시달린 적이 없었다. 그 안에서나는 얼굴이 반만 남은 사람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했다. 일은 계속해야 했고,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으며, 나는 그들의 가면을 혼자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끊임없이 두려워했다. 이 이야기는 내게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치명적이었기에, 나는 평생 이 일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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