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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취발이가 소무에게 젊음을 과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 뒷절 중놈에게서는 노린내가 나고, 이 사자어금니같은 취발이님에게서는 향내가 나느니라."
살면서 대학 때 추었던 봉산탈춤 대사들을 읊고는 한다. 전란으로 영감과 헤어져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였으나 첩을 들인 사실에 분노한 미얄할멈이 영감에게 "이제 너와 나는 더이상 볼 것이 없으니 재산이나 나누자" 를 가끔씩 남편에게 써먹고는 혼자 즐거워 한다. 요즘은 야구를 볼 때도 자주 쓰는데 결정타를 쳐서 기아를 구렁텅이에서 살려내는 필이라는 용병선수를 향해 취발이가 노장을 골리면서 하는 말 중에서 "...이 엉덩이밖에 없다"를 "삐리밖에 없다"로 응원 대신 외치곤 한다.
조지 오웰이 쓴 29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가볍게 읽다 잠들 요량으로 꺼내들었다가 읽는 재미가 쏠쏠해, 흥분으로 잠들기가 어렵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책의 소제목 중 하나처럼 "나 좋을대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읽으면 된다.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이 김수영과 참 많이 닮았다.
가장 좋았던 에세이,「두꺼비 단상 」은 내가 좋아하는 "봄" 이야기다. "봄"을 발음하기만 해도 따뜻하고 행복감이 밀려오던 때 내 아이의 이름을 "봄"으로 지어야지, 했었다. 그 이름이 너무나 흔해서 일찌감치 버렸지만. 하필 둔하고 못생기고 느리작거리는, 징그럽기까지한 두꺼비로 봄의 얘기를 꺼내다니 멋쟁이 아저씨(?)같으니라구. 두꺼비를 조금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잖아.
「나 좋을대로 」제목만으로 얼마나 자유로운지. 평범한 일상을 꾸밈없이 그려내는 데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아줌마들 수다 모임에서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는 정보통 큰언니같다. 하지만 과하지 않고 소녀같은 감성을 지녀야 하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은 처음부터 웃음이 터진다. 책의 서두부터 느낀 건데 조지 오웰은 무엇보다 묘사가 뛰어나다. 묘사의 절정을 보게 된단 말일세. 조직에서 밀려 난 어느 명예퇴직자의 고백처럼 짠해서 남 얘기 같지 않아.
「물 속의 달 」은 꿈꾸는 조지 오웰? 하마터면 속아 넘어 갈 뻔 했잖아. 조지 오웰의 글이 당시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지도 알게 됐고. 나 또한 조지 오웰이 바라던 곳을 비슷하게 가꿔보고 싶다. 조지 오웰의 다정함이 녹아있다. 그냥 그렇게 바라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람일 것 같다고.
「정치와 영어」는 말글의 오염이 심각한 것을 마냥 답답해하고 화를 내며 따져 대기만 하는 내 자신에게 잘못 쓰이는 언어를 어떻게 정확히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고자 싸부로 따르겠나이다. 우리말에 영어의 오남용이 많아 생각 못 해본 것인데, 영어도 외래어 때문에 몸살을 앓는구나.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는 요즘의 현실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약자의 이야기다. 얼마 전 엄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서 지내시는 동안 보았던 병원풍경이 겹친다. 가난한 자에게 "안식"과 같은 죽음이 찾아올 수 있을까? 정신의 자유를 얻는다면 그깟 육신의 죽음이야 무에 대수인가. 하고 수행하는 수밖에 없는가.
「정말, 정말 좋았지」이 역설적인 제목은 블레이크의 시집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내용과 딱! 들어맞다.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김진표의 "학교에서 배운 것들" 이 떠오르며 학교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든 장면들이 눈 앞에 밀려든다. 나이만 먹어 미성숙한 가짜 어른들에게 상처받고 잔뜩 주눅 든 겨울나라의 아이들을 "욕봤다" 하며 부등켜 안아주고 싶다. 어린시절, 이른바 후원자라는 배 볼록 나온 영감탱이(?)가 장학금 혜택을 준다며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정말?) 생색내기용으로 함께한 강제산행(?)을 끔찍하게 기억하는 남편과 시누이의 심정을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우리 시누이는 몇 십년 동안 익명으로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어, 이러면 학교에 밥 먹으러 가냐며 무상급식을 중단한 홍거시기(?)가 자동으로 떠오르며 입 안 가득 욕을 물고서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데...
「간디에 대한 소견」은 반인본주의적인 간디를 비판한 조지 오웰의 견해를 인용하고 싶다. 이보다 더 명료할 수 있을까.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신의를 위해 '흔쾌히'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이는 특정한 타인에게 사랑을 쏟자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