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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평점 :
얼굴로 뜨거운 것이 몰려와 눈물을 토해냈다. 코끝에서 매운 기운이 눈까지 올라가 자동으로 눈물이 톡 떨어진다. 건조해 보이는 간결한 문장이 따사롭고 정답다.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을 그저 그윽하게 쓰다듬는 손길같은 문장에 마음이 놓인다. 앞부분을 읽다가 이렇게 메모해 두었는데 그 뒤에 읽은 "리사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내게는 한량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라는 문장이 딱 그 느낌을 말해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 맛이나 조리과정을 묘사하는 소설들에 마음이 간다. 투닥투닥 요리하는 소리, 음식 냄새 등을 담은 장면들을 자주 묘사하는 김애란 소설도 그렇고. -그래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는 뭔가 정이 안간다- 이 소설도 찾고자하는 기억이 자연스럽게 맛과 맞물려 나온다.
기억을 더듬어 가다 만나게 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면에서 흐느껴 울다 베개가 젖었다. '이 소설, 참 좋다' 소리내 말해본다.
소설을 읽다가 군데군데 생겨난 샘물처럼 눈안에 눈물이 퐁퐁 고였다. 혼자있는 방에서 "흐엉" 하고 소리내 울기도 하였다. 자꾸만 고이는 눈물 때문에 쉴새없이 눈꺼풀을 깜빡여야 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 글에 마법 주문이라도 걸었나. 시도때도 없이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러다 코도 눈도 다 닳겠네.
내게도 연희씨처럼 나를 아껴준 이가 있다. 대학 때 우거지해장국집에서 겨우 한 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그 한 달 인연을 20년 동안 이어왔다.) 식당 주인이었던 분이 손님들에게 나를 딸이라 소개하며 정말로 친딸로 대해주셨다. 나도 그때는 기운이 넘쳐나던 시절이어서 식당 손님들에게 곰살맞게 굴었고 식당일이 익숙지 않아 서툴었지만 즐겁게 일했다. 아부지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단골 트럭기사님도 있었다.
식당 메뉴나 가게 입구에 "연중무휴"(대학 선배는 식당에 올 때마다 GOD가 부른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하던 노래를 한자어로 고친 게 생각난다고 웃어댔다) 같은 글씨를 쓰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찾아갔을 때 내가 형광종이에 쓴 글씨가 낡고 빛이 바랜 채 남아있었다. 볼품없는 내 글씨가 아까워서 떼지를 못하셨다는 거다.
주인공이 34년 만에 잠깐 자기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가 주인공 얼굴을 만지는 장면을 읽다가 목이 꽉 메어서 내 또다른 엄마, 꽉여사 생각에 바로 전화했다. 언제나 반가워하시고 연락될 때마다 고맙다고 하신다. 내가 더 고마운데. 표현에 서툰 무뚝뚝한 우리 엄마보다도 다정하고 살갑다. 피보다 더 진하고 더운 정을 느낀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구상만 해보았던 소설이 떠오르고 갑자기, 재미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내 수준엔 딱 거기까지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게 한 것만으로도 좋은 작가가 쓴 좋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한동안 마음에 닿는 소설이 없어서 소설 읽는 게 시들했는데 얼마 만에 만나는 괜찮은 소설인지.
우리가 외로운 건 "잘했다" 소리를 듣고 싶은데 듣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닐까. 날마다 남편을 쿡 찔러서 안아주테효~ 하며 반강제로 듣는 그말,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잘했다, 잘했다", "장하다, 장하다" 누군가를 다독이며 그리 말해주면 이 땅에서 외로움이 조금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너를 기다렸다고, 내게로 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