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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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이 넘는 분량이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다. 빨리 읽히는데 쪽수가 줄어드는 게 아까워 딴청 부리며 아껴 읽었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늘 하는 짓(?)이다. 우리 부부끼리 늘 하는 말대로 "난 가끔 딴 생각해" 하며 읽는다. 그런다고 책 분량이 더 늘어나지는 않지만 계속 읽고 싶은 마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혹적인 소설이다. 이야기 구성과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겨울나라인 노르웨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호기심 가득하다. 옮긴이는 영국드라마, 셜록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유머가 없는 것이 안 닮았다. 그게 좀 아쉽네.

 

책을 읽는 초반에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인지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주 조금씩 드러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는데도 재미있단 말이지. 마이클 코넬리 소설이 그렇듯 이야기가 촘촘하면 굳이 "짜잔~" 하며 반전 요소가 크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다. 범인의 심리가 이해는 가는데 어린 녀석이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나 싶다. 어려서 더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메밀꽃 필 무렵」처럼 살짝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눈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을 통해 유전자를 느낀 당사자에게는 그만큼 충격이었으리라. 범죄심리는 자기 해석이 강한 게 문제가 아닐까. 쓰라린 경험을 했으면 제발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따뜻하게 위로받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는 연습을 하고서 상처를 조금 무디게, 흉터가 옅어지도록 애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단 말이야. 그 과정이 없으니 독단적으로 사고들을 치는 것 아니냐.

 

눈사람을 떠올리면 차가운 눈덩이지만 오히려 따뜻하고 다정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모자라기에 더 다가가고 싶은 편안한 존재, 그래서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게 아닐까.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닮은 그네들의 작품이기도 하니까. 그런 눈사람이 이 이야기에선 거의 괴기로 변하지만. 눈사람을 범죄현장에 끌어낸 건 북구 특유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아이디어가 참 기똥차다. 동심이 파괴되는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자.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해리 홀레 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 눈이 내리면 내 기억보다도 조카녀석이 생각난다. 모처럼 함박눈이 와서 경비 아저씨가 눈을 쓸어 한쪽으로 쌓아둔 곳에 그 녀석이 철푸덕 엎어져서 신나게 헤엄을 치던 장면이 자꾸만 생각나 끅끅 웃음이 난다. "눈을 굴려터, 눈을 굴려터 눈따람을 만들자~" 서툰 발음으로 천진하게 부르던 그 녀석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제목을 그냥 『눈사람』으로 할 것이지. 굳이 스노우맨이라 할 필요가 있는지. 그래야 잘 팔리는지. 눈사람이라는 뜻 말고 다른 뜻이 있는지. 번역에 맞는 말이 한국어에 없다면 모를까. 이런 일에 일일이 속 터져 하는 내가 문제인지. 책 만드는 사람들이여, 제발 자각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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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3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끝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한계를
지녔던 눈사람..

결국 시간의 한계에 놓인 인간은 눈사람과 같은가..싶어요.
문제는 이런 한계를 겸허하게 바라 보지 않고
겨울이 지나도 여름이 와도 계속 눈사람으로
존재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문제겠지요..

samadhi(眞我) 2016-11-13 18:37   좋아요 1 | URL
눈사람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네요. ㅎㅎ

매너나린 2016-11-1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눈사람 ㅎㅎ 같은책 다른 느낌이네요ㅋ
요네스 뵈의 책은 대체로 흡입력이 뛰어나고 스릴과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는듯 합니다.
네미시스와 박쥐도 괜찮게 읽었어요^^

samadhi(眞我) 2016-11-13 18:38   좋아요 0 | URL
네 자꾸 읽고 싶게 만드는 힘있는 작가네요.

감은빛 2016-11-1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네요.

그렇죠. 눈사람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스노우맨이라고 한 건지. 참!

samadhi(眞我) 2016-11-18 15:58   좋아요 0 | URL
잘 썼어요. 이야기가 촘촘하더라구요. 감성적이기도 하고.
 
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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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외로울 때, 배고플 때, 심심할 때... 언제든 아쉬울(?) 때 제동이 오빠야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지난 번 김제동 토크콘서트 갔을 때 내 친구 생각이 났다. 책벌레로 유명하고 대학 때 골수 운동권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아이인데 대학1,2학년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다가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 재작년에 페이스북으로 그 아이가 내게 자기 친구 누구누구 맞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페이스북 알림 설정을 해두지 않고 한참 후에 들어가서 확인해 그 친구랑 다시 연락이 닿았다. 내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나를 찾기는 쉬웠으리라. 여태 장가 못 간 건지 안 간 건지 알 수 없지만 제동 옵하랑 시집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모를 내 친구랑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도 김제동 못지 않게 사람들 웃기는 선수인데. 생각도 잘 맞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남편에게 이 얘길 했더니 둘 다 시집장가갈 마음 없는 거야. 그런다. 정말 그런 겁니까?

 

울다가 웃다가 너무 웃겨서 눈물이 막 터진다. 김제동의 글은 참 따뜻하구나. 대학 축제 사회보는데 유명한 가수가 늦게 와서 별 짓을 다하며 바람잡이를 해야했고 막상 가수가 오니 바로 찬밥이 되었다는 김제동의 허탈한 마음, 그리고 그 모습이 최고였다고 말했다는 사람 얘기를 하는데 왈칵 울음이 터졌다. 노무현과 만난 김제동 어머니 얘기에도, 세월호 아이들 얘기에도 내내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그러다가도 김제동 식구들 일화가 이어지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밤늦게 침대에서 미친 사람처럼 크하하하 웃어댔다. 층간소음 때문에 아래층에서 쫓아 올라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지금처럼 답답해 미치겠고 뭔가 억울하고 화나는 이 나라에 김제동 같은 사람이 있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김제동이 너무 일찍 아버지를 여읜 얘기에 공감이 간다. 나도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마음 알겠다. 나도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거 보고 아빠한테 씨익 웃으면서 "아자!" 소리 한번 해주면 좋았을 텐데 한 적 있다. 아버지의 호칭을 고민하는 것도 비슷하구나. 어릴 땐 아빠라고 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꼭 아"부"지 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10년 동안 아빠라고 부르기라도 했지만 김제동은 한번도 그리 해보지 못 했을 테니 내가 더 낫긴 하네.

 

남편이 어릴 때 살던 동네의 손재주 좋은 멋진 형 얘기를 들려준 적 있다. 팽이도 잘 만들고, 무엇보다 대단했던 건 썰매를 예술적으로 만들어 그 썰매를 타고 행복했었다고 얘기했는데, 김제동에게도 그 형처럼, 그 형보다 더 멋진 썰매를 만들어 준 매형이 있었다고 한다. 썰매는 남자 아이들의 로망인가보다. 내게는 쥐불놀이 깡통 만들어 준 사람이 최고였는데. 살면서 제일 재미났던 놀이가 딱 한번 해 본 쥐불놀이였다. 어디에서 찾아낸 건지 분유통을 주워와서 밑바닥을 못으로 일일이 구멍을 뚫어... 사실 이 과정까지 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는 신나게 불깡통을 돌려댔던 행복한 기억, 그 따뜻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오줌싸개로 유명했던 나답게 다음날, 어김없이 이불에 실례를 하고 동네 아줌마들에게 방망이로 얻어 터졌겠지만.

 

노무현이 생각나는 노오란 책표지와 책 속에 끼워진 노오란 책갈피가 마음에 불을 환히 밝혀준다. 추운 날, 사람이 그리워 애가 탈 때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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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나린 2016-11-04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읽기만 해도 맘이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이죠. 진한 사람냄새가 나는..^^

samadhi(眞我) 2016-11-04 00:40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든든한 버팀목같아요. 마구마구 친해지고 싶어요 ㅋㅋㅋㅋ

yureka01 2016-11-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설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죠.재동이^^..

samadhi(眞我) 2016-11-04 09:17   좋아요 1 | URL
식구들 일화를 읽을 때 유레카님 얘기가 생각나 더 크게 웃었어요. 그 식구들 지나가면 웃겨서 다들 쓰러진다고.
 
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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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우울이 커다란 장막처럼 둘러싸인다. 누구에겐 그 시절이 정말 신나고 행복했던 시간이겠지만 내겐, 이른바 선별고-연합고사를 보고 상위권 아이들을 선별해 입학이 허락된 곳-에서 치어 지내던 기억 뿐이라 조금도 즐겁지 않다. 중학교 때 제법 공부 좀 한다고 콧방귀 뀌던 아이들이 자신보다 더 "잘난" 아이들에게 밀려나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끼며 부적응, 격리현상(?)을 겪는다. 서정인,『강』이라는 단편 소설에 그때 우리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서정인이 그 소설에서 한 말 "아, 잃어버린 것의 상실함이여!" 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던 기억이 있다.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그마저 잃어버렸으니...

 

작가의 학창시절은 우리 때와 달리 유쾌, 발랄, 호탕했던 가보다. 그래, 우리보다 한참 앞 세대들은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고 하지. 그랬을 거라 짐작이 되기도 하고. 촌스럽고 썰렁하지만 인간적으로 웃어줄 수 있는 여유가. 아직 시가 날카롭게 살아있던 시대여서인지 작가가 책 속에 시를 많이도 인용해 두었다. 말투는 또 얼마나 예스러운지. 등장인물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으레 교양있는 척(?) 할 때 쓰는 말투로 얘기한다. 요즘처럼 "말이 짧지" 않고 조금 느리게,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보급되지 않던 시절답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도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덧 학창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겨울이면 바깥보다 교실이 더 추워서 햇볕을 쪼이려고 밖으로 나가 광합성 효과(?)를 몸으로 느끼곤 했다. 교복치마가 얇아 덜덜 떨면서 스타킹 위에 체육복 바지를 껴 입으면 가정선생들이 얼마나 잔소리를 해대는지. 여자는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하고 추워도 참아야 한다는 말인데 여성스럽지 못 하다는 구태의연한 얘기들을 들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 여성성에 대한 시각이 남성 위주로 되어 있었구나.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이 소설에도 대화 곳곳에 성차별이나 여성다움에 대한 편견이 가득하다. 시대적인 분위기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작가가 종교적 색채도 지나치게 자주 드러낸다. 사상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네.

 

의성어와 의태어 표현이 환상이다. 작가에게 사사받고 싶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언어도 신선하고 묘사도 탁월했다. 매력적인 인물도 등장해 기대감을 한껏 키웠는데 이야기가 갈수록 거품이 푹 꺼져 시들해졌다. 머저리클럽 회원이 6명인데 주인공과 문수라는 아이의 특징만 알 수 있고 나머지는 주변인물처럼 취급해 버리고 말아서 뭔가 아쉽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특히, 영민이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 정말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겠구나 싶었는데 작가가 그 아이를 총애(?)하지 않은 것인지 요란한 등장 이후로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주인공 이름은 참 잘 지었다. 동.순. 이름에 "순" 자를 붙이면 왠지 촌스럽고, 남자 아이라면 여자 아이로 오해받기도 할 텐데 주인공의 동글동글, 섬세한 성격을 이름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작명 솜씨도 뛰어나야 해. 하마터면 항렬자에 맞춰 "창순"이가 될 뻔한 내 조카 녀석도 생각났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이름이 더 나았을 것도 같다. 요즘엔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니니.

 

마지막엔 고교 졸업 얘기가 나와 내 졸업식이 떠올랐다. 한번도 부모님이 못 오신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이야 뭐 의미 없고 중학교 땐 큰언니가, 고등학교 땐 넷째 언니가 와 주었고 대학교 땐 큰언니 대학원 졸업이랑 날짜가 겹쳐서 엄마는 큰언니 졸업에만 신경을 쓰셨다. 막내 딸이 졸업하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으셨다. 생각해 보면 엄마답다 웃음이 나지만 그때만 해도 조금 서러웠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특별한 날엔 짜장면이었는데 그 이후론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많아져 짜장면이 찬밥 신세가 됐구나.

 

작가와 같은 세대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기억이 괜찮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낀다면 읽어 볼 만하다. 사춘기 소년의 성장을 풀어낸 이야기는 風이 아닌 望이라는 뜻의 영화, "바람(wish)"이 훨씬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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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1-0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니 한겨울에 왜 교복 치마를 입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samadhi(眞我) 2016-11-01 10:34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짓이라고 봐요. 그땐 싸워야 하는 이유를 몰라 학교 체제와 싸우질 못 했는데요. 그냥 담벼락을 넘나들고 땡땡이만 칠 줄 알았거든요. 지금이라면 투쟁했을 텐데.

samadhi(眞我) 2016-11-01 10:36   좋아요 0 | URL
보시기에 좋았더라 겠죠 어떤 놈들인지.

매너나린 2016-11-01 10:38   좋아요 0 | URL
요즘엔 여자 애들 교복 바지도 입게 해주더라구요^^그래서 저희딸은 매일 바지만 입고 갑니당~~

samadhi(眞我) 2016-11-01 10:44   좋아요 1 | URL
이제야 좀 정상으로 사는 거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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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낚였다. 아으 책 값 아까운 거. 신간이라 헌 책을 구할 수도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없어 끌리는 제목에 눈 딱 감고 사버렸더니 이게 뭐냐고. 책 후기가 호평일색이었던 것에 혹했던 내 잘못이다. 대체 누가 이 책을 읽고 후기를 쓴 거냐고. 책을 고를 때 후기를 보지 않을 수 없는데, 평가 좀 제대로 내립시다요들. 별점이 4점도 4.5점도 아니고 꽉 찬 5점이었다. 이 책 읽고 후한 점수를 준 사람들이 너무해.

 

제목이 무척 거창하다, 끌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다. 뭔가 으스스한 사건이 전개되고 우수에 가득한 눈동자를 한 사연 많은 주인공이 사건을 좌지우지 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에 책을 펼쳐 들었다. 대체 언제 설레게 해줄 거냐고. 흥미진진 예상 못 한 반전을 던져줄 거냐고. 끝까지 그런 건 없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과잉"기억"증후군. 자폐를 앓는 이들에게 볼 수 있는 서번트 증후군인 주인공 이야기다. 죽음과 맞바꾼 큰 부상으로 생긴 후천적 증상이라는 설정까지는 좋았다. 그러고는 그게 다인 거야.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여 오히려 기대감을 살짝 낮추고-베스트 셀러 같은 거 믿지도 않을 뿐더러 나와 잘 맞지 않으니- 그래도 그런 작가니 설마 재미는 있겠지 했건마는. 마무리를 보니 속편을 위한 떡밥을 던지고 있다. 이런 허접한 작품 주인공을 계속 내세워 연속으로 만들고 곧 영화화할 모양이다.

 

그나마 별점을 두 개라도 준 것은 제3의 성을 다루었다는 거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 양성을 모두 갖고 태어나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고단한 인생. 정체성을 찾아 평생을 헤매고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오해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이를 소재로 한 것은 괜찮은데, 결국 그 존재에 대한 편견을 더 굳혀버리고 만 듯하다. 기껏 그런 사람을 인터뷰라도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그 인물의 고뇌와 번민을 들어보아야 할 게 아닌가. 그 사람 인생을 허무하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듯해 화가 나기까지 해. 이 놈의 작가야, 뭐하는 거야. 차라리 제3의 성을 다룬 일본 만화 로쿠하나 치요,『IS(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가 훨씬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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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7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10-27 10:40   좋아요 0 | URL
ㅠㅠ 별점 4개 짜리는 뭔가 모자란 맛이 있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별 4개 반짜리가 사실 현실적으로 좋은 작품인 경우가 많더라구요. 꽤 드물기도 하구요. 신간인 것을 감안했어야 하는데. 유레카님 말씀대로 5점 짜리는 비현실적인 건데 제가 잠시 돌아가지고요. ㅋㅋㅋ

매너나린 2016-10-27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기가 호평이 많아서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진아님 말씀 들어보니 재고해 봐야겠네요^^솔직하신 리뷰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samadhi(眞我) 2016-10-27 10:42   좋아요 1 | URL
이 녀석 중 3짜리 제 조카예요. ㅋㅋ 다들 제 아이인줄 아시나봐요. 꼭 읽고 싶으시면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보세요.

2016-10-27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10-27 10:54   좋아요 1 | URL
그건 아니고 평균인 듯해요. 우리는 반 개 짜리를 선택할 수 없구요. 책 정보에 별점이 같이 나오잖아요. 그땐 반 개가 표시돼요. 평균치.

매너나린 2016-10-27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실수했을까봐 얼른 수정했습니다ㅋ
죄송해요^^;;

samadhi(眞我) 2016-10-27 10:44   좋아요 1 | URL
아니예요. 제가 오해하게 한 걸요. 언니네에 얹혀 살 때 자식처럼 키웠던 녀석이라 그런 오해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무척 아끼는 녀석이예요.

매너나린 2016-10-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는 또다른 엄마라는 말이 맞는것 같아요^^

samadhi(眞我) 2016-10-27 10:47   좋아요 0 | URL
언니랑 형부를 안 닮고 저를 닮아 꼴통이랍니다. 그녀석도 저 닮았단 말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라서요. ㅎㅎ. 중2병을 심하게 앓더니 이젠 좀 사람답게 군다고 하네요. 늘 보고 싶네요. 키운 정이 있어 그런지.

yureka01 2016-10-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해 됩니다..3개 와 4개 가 동시에 있을때는 3.5개로 표시 될 수도 있겠다 싶네요..그런데 선택은 안되나 봐요..

samadhi(眞我) 2016-10-27 10:48   좋아요 1 | URL
네. 선택은 안 되더라구요. 반디앤루니스는 반 개를 표시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훨씬 섬세하죠.

시이소오 2016-10-2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호평만 믿고 봤다가 허걱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네요. 특히 장르소설들. 출판사 관계자들의 조작질이 아닐까요?

samadhi(眞我) 2016-10-27 15:54   좋아요 0 | URL
제 생각도 그래요 출판사와 서점이 같이 연출한 것 같다는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당신이 병드는 이유 - 현대 영양학의 몰락과 건강
콜린 캠벨.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이의철 옮김 / 열린과학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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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엉망이라 읽는 내내 교정을 하다가 집중력이 심하게 떨어졌다. 녹생당원이라는 의사가 번역한 것인데 전문번역가에게 맡기고 감수만 했더라면 좋았겠다. 의욕만 앞선 역자 앞에선 좋은 책도 무용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식 어투 투성이다. "의" 와 "적" 의 남용, "에서의", "으로서의", "있어서", "에의"...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이며, 주격 조사를 써야 할 곳에 목적격 조사를 쓰지 않나, "기전"이라는 말을 꽤 많이 썼는데 이것도 일본식 한자조어이다.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란 말일세. "기제"라는 말로 바꾸는 게 낫겠는데. 역자의 평소 말 버릇이나 글쓰기 습관이 눈에 선하다. 가까이 있다면 일일이 토달고 있을 거다. 역자 탓을 했지만 출판사는 교정, 편집 안 하고 뭐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칠 게 너무 많아 손 댈 엄두가 안 난다면 이 상태로 책을 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독서모임 주제 책인데 무려 저번 달에 나온 책이라 헌 책을 구하기는 커녕, 도서관에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새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이 알라딘 아이디가 없어서 급하게 아이디 만들어 남편 전화기로 이것저것 어플 깔고 알라딘혜택이 다른 인터넷서점에 비해 짠 걸 잘 알고 있었는데 잠시 잊고 주문했다가 부랴사랴 출고준비중이던 책을 취소했지만 해피머니로 주문한 거라 환불이 되어도 결국 알라딘에서만 책을 사야했다. 뭐 하고 있었나, 내 발등 내가 찍었네. 취소했던 책들을 재주문해야 하는 헛짓을 하고 만다. 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는데 막상 읽어보니 더 속이 터져 내내 투덜거리며 읽었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저자의 전작『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 의미 있는 얘기를 다 해버린 건지 이 책은 막상 해야 할 얘기보다는 환원론 비판에 초점을 두어서 집중을 흩트린다. 보편 독자를 생각하고 쓴 것이겠지만 나같은 독자는 이런 얘길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구. 그러고보니 내가 오해한 거였다. 저자 소개란에 이 책의 원제가 나와있었거늘 눈여겨 보지 않았던 거다. 원제는 『Whole』이다. 그러니 저자는 "총체론"이라는 주제에 맞게 얘기하고 있었네. 원제와 한국식 제목이 어긋난 영화들 보며 웃거나 비판한 적 많았는데 책도 문제구나. 역자의 잘못인지, 아무래도 출판사의 농간(?)인 듯한데 이건 아니잖아. 『총체론 』 이라는 제목을 보고 책을 집어들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고 그럴싸한 말로 바꾼 걸 그렇다치자. 독자는 책을, 저자를 오해하게 되는데 이건 어떻게 할거냐고. 저자의 좋은 취지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적어도 내게는.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독서모임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 책을 절반이나, 절반 이하로 읽었다고 한다. 책이 도무지 읽히지 않아서 자꾸 딴 짓을 하다가 모임 시간에 닥쳐서 급하게 앞쪽 조금, 중간 부분, 중요하다고 느끼는(그럴 리 없는) 부분만 보며 띄엄띄엄 대충 읽었다. 지하철 안에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후다닥 읽었다. 사람들 얘길 들어보니 나보다 더 많이 읽은 사람이 없는거야.

 

병들게 하지 않는 자연식물식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면서 자연식물식이 뭔지 그냥 알아서 짐작하라는 건가. 의도는 알겠는데 설명 좀 해주었으면 했다. 동물성 단백질이 암을 일으킨다는 얘기가 꽤 충격이긴 하다.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게 영양학의 주된 이론이었는데 오랜세월, 우유를 팔아먹기 위한 음모(?)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완전"까지는 아니어도 "훌륭한" 식품이라 생각했다. 근력운동을 할 때 헬쓰 강사들이 늘 강조하며 우유는 꼭 챙겨먹으라는 얘기도 귀에 딱지가 앉게 했으니까. 우유와 유제품,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늘 아팠을까. 모임을 함께 하는 교사 중 한 사람은 영양 때문이 아니라 윤리 때문에 채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축의 성장환경이나 도축과정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고 아이들에게 사진과 영상 자료들도 보여주며 교육한다고 한다. 비짐승적인(?) 환경과 잔인한 도축과정을 알지만 이 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어떻게 바꿀거나. 내 간사한 혀 때문에 더 비참해 이런 책 읽기를 꺼린다. 『육식의 종말』도 몇 번이나 읽다가 말았다. 일부러 다 읽지 않았던 건데. 말로만 "우주", "공생" ,"전 지구적" 어쩌고 떠들어댔지만 더 도망갈 데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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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1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책은 끈기가 요구되는 책이 좀 많더군요....요즘 고지방저탄수다이어트가 유행이더라구요....

samadhi(眞我) 2016-10-21 08:55   좋아요 1 | URL
그래서 역자가 누군지도 눈여겨 봅니다. 정보가 없을 때가 많지만.
고지방저탄수 문제가 많다고 여겨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요. 이 책만 읽어봐도 그런식 다이어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감은빛 2016-10-2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에 완전 공감합니다!
출판사에 다닐 때, 번역 원고 교정보다 보면 진짜 속이 터집니다.
아예 글을 싹 다 고쳐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어투가 너무 심해서요.
주어와 목적어가 안 맞는 비문도 너무 많구요.

책 제목도 참 그렇네요.
마치 실용서처럼 제목을 달아놓았는데,
원서 제목은 [총체론]이었다니.

samadhi(眞我) 2016-10-21 17:1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건 역자의 역량부족보다 편집자가 더 문제라고 봅니다.

감은빛 2016-10-2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정보를 통해 번역자 정보를 보니, 그 전에 두 권은 감수를 했고,
이 책이 첫 번역인 것 같네요.
말씀하셨듯이 출판사의 입장과 편집자의 자세가 문제라고 봅니다.
출판사 입장에선 책을 빨리 찍어내야 하니,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쳤을 것이고,
편집자 입장에선 글이 읽히지 않아도,
회사가 원하니 그냥 어쩔수 없다 싶었을 수도 있겠네요.

감수에서 번역을 직접 하겠다고 생각하신 분이시라면,
좀 더 번역에 대한 공부를 하셨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구요.

samadhi(眞我) 2016-10-21 17:51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 참석자 모두 공감하고 매끄럽지 않은 글 때문에도 채 다 읽지 못한 듯해요. 출판사 상황이 열악한 줄 알지만 세상에 출간물을 내놓는 곳이라면 응당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텐데. 그러니 엉망인 저작들이 넘쳐나고 괜찮은 작품이 묻히기도 하지 않나 싶어요.

한은정 2018-12-0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으면 얼마든지 좋은책 많아요. 전 아마존애서 whole 구매했었어요. 이 책살까말까하다 안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