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omy Sunday - Erika Marozsan


'웬만한' 영화는,
아무 생각없이 때려부수거나 사람 골비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빠짐없이 보는 편이다.

한 때는 어줍잖게 그 영화들을 분석한답시고
아니, 문화운동의 더 없는 방편이라 생각하여 영화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영화사의 문제 작품들을 수소문해가며 본 적도 있었다.

그게 93,4년경이었으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셈이다.  
지금이야 모든 영화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는 않지만
어쨌던 영화 한 편이 주는 여운이나 잔영, 혹은 의미들을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오래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원래 내 취향은 아니지만 '우울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류의
영화들은 이상하리만치 오래도록 내 기억을 붙들어매곤 한다.

왕자웨이 감독의 [아비정전]이나 [화양연화] 같은 영화나,
장자크 베넥스 감독의 [베티블루 37.2],
롤프 슈벨 감독의 [글루미 선데이] 같은 영화들.

그 중에서도 영화보다 음악으로 더 유명한 [글루미 선데이]는
시도때도 없이 머리를 엄습해오는 그 지독한 선율이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배급사의 선전 문구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자살하게 만든
바로 그 음악 어쩌고 하며 영화의 상업성을 한껏 부풀리고 있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위의 선전문구는 그야말로 과장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이 음악 하나 때문에 그 당시의 그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했다면
지금은 왜 이 음악을 듣고 자살했단 뉴스는 찾아보기 힘드냔 의문 같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떠오르는 것 아닌가?

그때 그 당시 젊은이들의 자살은 단순히 이 'Gloomy Sunday'라는
음악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2차대전 직전의, 한쪽에서는 나찌즘의 등장으로 맹목적 민족주의가 판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페인 내전에서 보듯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동세대간의 반목이 총칼을 들게 만드는 그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기댈 수 있는 미래가 대체 어떤 것이 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뭔가 특이한 센티멘탈리즘에 빠지게 만드는 음악이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고...
세상은 지랄같고, 미래는 암담하고...
그러니 자살이라도 할 수밖에.

어쨌거나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아 본 적이 있다거나 비오는 밤
창가에 서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 적이 있다거나 하는 분들은
[글루미 선데이]의 영상에 한 번 잠겨 보시길.....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Heather Nova의 것인데,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 노래를 불렀었다.


200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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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오아시스' - '정상'과 '병리'의 경계에서



언젠가 『박하사탕』 O.S.T. 음반을 이야기 하면서 언급했었지만, 이창동 감독은 역시 리얼리스트다. 영화판에서, 영화감독에게 리얼리스트라는 게 무조건적인 칭찬으로만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작가'라는 위치를 끌어들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작가라는 위치가 영화감독이라는 이름과 언제나 평행선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독자와 관객 앞에서 최소한 자신의 할 말을 추스르고 마음에 없는 말이나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은 하지 않는 게 적어도 작가라는 이름을 지키는 최소한의 자존심에 해당될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적어도 상업성(이걸 '직업의식'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미화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작가라는 자존심을 쉬이 버리지는 않을 맨 앞줄의 감독이라는 믿음을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에서도 당당하게 드러낸다.

'경쟁력 제로'의 인간 홍종두.

"전 삼촌이 싫어요. 이런 말 하면 안되겠지만, 형님이나 어머니도 마찬가지실 거에요. 삼촌이 없었을 때는 집안이 평온했어요. 아무 걱정거리도 없는 거 같았어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전 정말 삼촌이 싫어요."

자기 남편의 교통사고를 대신해 2년 6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나온 종두에게 형수가 하는 말이다. 영화 속에서 짐작되듯이 2년 6개월 동안 가족 가운데 어느 누구 하나 면회 한 번 가지 않았고 이사간 집도 알려주지 않을 만큼 노골적으로 경원시 한다. 물론 종두 가족의 이런 노골성은 영화속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그는 이 경쟁사회를 살기엔 너무 경쟁력 없는, 한 가족에게 짐만 되는 인간이니까. 사회성 실조, 목표의식 부재, 자존감 결여의 이 경쟁력 없는 인간에게 세상이 보내는 눈길은 한결 같을테니까.

말 한 마디 하기 위해 온 몸을 뒤트는 뇌성마비중증장애인 한공주.

"아가씨, 옆집 여자가 밥은 잘 챙겨 주죠? 밥 안 챙겨 주면 이야기 하세요. 한 달에 20만원이나 주는데... 20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에요."

공주의 가족들은, 공주의 명의로 분양 받은 장애자 아파트로 입주하면서 공주를 전에 살던 낡은 아파트에 버려 두고 간다. 옆집 여자에게 매달 20만원씩 주면서, 공주에게 밥 챙겨주라는 부탁을 남기고. 이 대목은 관객에게 참 불편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고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종두에게 종두 가족이 보이는 경원시와는 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종두는 가족의 냉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그 속에 융화되어 있지만 공주는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우리 누구나가 그럴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지만 함부로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기에 공주 오빠 내외의 처사는 관객들에게 심한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장애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사회적 약자의 한 유형으로서 한공주의 캐릭터가 선택되었지 장애인 한공주의 캐릭터가 선택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요약한 종두와 공주의 캐릭터 설명이 '전부 다'라고 할 만큼 영화 『오아시스』는 너무나 쉽고 단순한 영화다.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어딘가 모자란 듯 말하는 종두와 말 한마디 하기 위해 온몸을 뒤트는 공주, 볼품없는 이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놓고 아무런 수식이나 치장 없이 전형적인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간다. 좀 거칠게 교훈적으로 요약하면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남녀가 편견과 냉대를 딛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빼고 더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딱 이만큼'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에게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스토리텔링을 꼬아 놓았다든가 알 수 없는 복선을 심어 놓았다든가 하는 식으로 관객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멜로 드라마 구조이면서도 철저하게 주인공과 관객의 감정이입을 차단시켜 놓는 장치들 때문이다.

공주와 섹스하다가 들킨 종두가 경찰서로 잡혀가고, 종두의 가족들조차 종두에게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한치의 의심없이 강간으로 단정하는 데 더해 공주의 오빠와 합의금을 계산한다든지 하는 장면들. 그러나 가족들이 악하기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인물들로, 관객 자신조차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하게끔 그려진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완 감독이 이 영화에 출연(종두의 동생 '종세'역으로 나온다)하면서 이창동 감독의 연출기법을 훔쳐본(?) 걸 기록한 바에 따르면(『씨네 21』 365호) 설경구조차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종두 스스로가 강간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지 못 하느냐'고. 이창동 감독과 '대판' 싸우는 지경으로까지 갔었는데, 결국 이창동 감독의 의견대로 따라간 모양이다. 사실 좀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종두가 아무리 사회의식 결여에 목표의식이 부재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를 변호하지도 못할 만큼의 인간은 아니기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대목은 납득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관객에게 불편함 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은 『씨네 21』 편집장 조선희씨 와의 인터뷰에서(『씨네 21』 364호)
"나는 관객이 충돌의 경계에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내가 만든 싸구려 판타지의 세계로 깊숙이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경계선 밖으로 멀리 밀어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사랑은 서로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영화에서 종두와 공주가 이루는 사랑의 정점에서 종두가 공주에게 해주는 일은 공주 아파트 앞의 나뭇가지들을 잘라주는 것이다. 혼자 사는 공주에게, 매일 보는 벽걸이 카펫의 오아시스 그림을 찔러대는 나뭇가지 그림자는 가장 큰 공포였던 것이다.

이 소박한 이창동 감독의 사랑의 정의에 담긴 진심을 외면하기란 참 힘들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감정이입을 차단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 대목에서 만큼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우리 편, 저편으로 구분돼 평행선을 달리는 구성을 작위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있다 하더라도, 경찰서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나와 마지막으로 하는 일,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자르며 춤추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영화자체가 그러하기에 온통 종두와 공주 관한 이야기만 언급했지만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또한 뛰어나게 사실적이다. 종두의 형 내외, 공주의 오빠 내외, 공주 옆집 여자내외 등 영악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한두 가지씩은 대변하고 있기에 더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인간들이란 자신이 가진 사악한 속성들을 사실적으로 드러낼 때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가 불편해하지 않겠는가!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영화 초반 핸드헬드로 다소 심하게 흔들리던 프레임은 중반 이후로 갈수록 핸드헬드로 찍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크레인 쇼트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 있는 화면을 연출한다. 화면의 떨림이 너무 심해 6회분의 촬영을 전면 재촬영 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프레임을 구분해볼 수 있는 나조차도 크게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눈에 띄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음악 사용의 배제이다.


지난 번 『박하사탕』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이재진이 맡았다. 『박하사탕』에서처럼 뚜렷하게 이야기가 구분되면서 음악 또한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에 비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와 코끼리가 나오는 장면 말고는 어디에 음악이 쓰였나 싶을 정도로 『오아시스』에서의 음악의 역할은 미미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메인 타이틀의 경우는 이전의 음악들보다 좀더 리듬이 강화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타악기와 피아노의 반주, 그리고 바이올린 선율이 목관악기의 따뜻함과 섞인다. 그러나 성기완 같은 음악평론가는 『오아시스』의 O.S.T. 음반이 "어딘지 영화 색깔보다 조금은 지나치게 세련되지 않았나 하는 점은 약간 아쉽다"면서 "이번 영화에서는 약간 더 거칠었어야 영화를 더욱 살릴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굳이 별로 부각되지도 않는 음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재진 때문이다. 그가 맡은 영화음악 리스트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박하사탕』, 『파이란』, 그리고 『오아시스』. 음악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면, 위의 영화 목록들은 그의 음악 실력을 대변해주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지하고 투철한 작가정신. 이창동 감독의 작가정신은 철저하게 '리얼리즘'적이다. 현실의 핵심요소들을 진지하고 투철하게 바라보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듯하다. 물론 이번에는 '오아시스'라는 환상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방식은 환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다. 어쩌면 진부하기조차 하다. 그런데 이 진부함은 그냥 진부함은 아니다. 진부한 것을 그리겠다는 마음의 발로로서 진부하게 된 그런 진부함이다. 하나도 어려운 게 없다. 아니, 사실은 의도된 어려움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굉장히 의도된, 어떤 의미로는 매우 세련된 이미지들이다.

이창동 감독의 리얼리즘적 작가정신을 보고 있노라면 '표현(하기)'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생각할 필요가 생긴다. 현실 속에 가만히 살지를 않고 그걸 '표현'하면서 산다. 그 속에서 어떤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어느 영화평론가의 언급처럼 "'인간의 타락'은 허용하지만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의 타락'은 인정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그가 앞으로도 그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결코 버리지 않을 유일한 감독이라는 데 주저없이 손을 들게 된다.

200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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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참꼬막


 

설날을 앞둔 일요일, 아침을 먹고 드라이브 삼아 나선 길은 고흥 유자밭을 거쳐 벌교에 이르렀다. 벌교 역앞을 들어서자 제철을 맞은 꼬막들이 가게마다 망태기에 가득 쌓여있다. 이곳에서는 이즈음 여느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꼬막이다. 이곳 벌교를 무대로 시작되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이 꼬막맛을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태백산맥>에서 묘사된 꼬막 채취과정은 그야말로 삶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난다. 멋모르는 여행객에게는 카메라 셔터의 대상으로 보일만치 아름다운 보성만의 겨울 낙조 속에 오로지 여인네들의 고된 노동으로 채취되는 과정을 그린 '염상진의 애상'은 수북이 쌓인 꼬막 더미를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만든다.

"꼬막은 찬바람이 일면서 쫄깃거리는 제맛이 나기 때문에 천상 뻘일은 겨울이 제철이었다. 꼬막은 뻘밭이 깊을수록 알이 굵었다. 뻘밭이 깊으면 그만큼 깊이 빠지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용기도 아니었고 무모함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생계였다. 꼬막을 잡아야만 하루 목숨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인네들은 살을 찢는 겨울 바닷바람에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려 맨살을 드러낸 채 뻘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소금물을 머금은 뻘의 차가움을 얼음물의 차가움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끈적끈적하고 찐득찐득한 뻘은 장딴지만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빠지게 해서는, 그대로 물고 늘어졌다. 뿐만 아니라 뻘 속에는 여러 종류의 조개들이 박혀 있어서 그 껍질들이 예고없이 다리를 긁어댔다. 한차례 뻘일을 하고 나면 조개껍질에 긁힌 상처가 일삼아 바늘로 긁어놓은 것처럼 온 다리를 실핏줄로 감고 있었다. 앞이 휜 널빤지 위에 왼쪽다리를 무릎꿇어 몸을 실리고, 왼손으로 단지오 흰 널빤지끝을 함께 잡고, 오른발로 뻘을 밀며 오른손으로 꼬막을 더듬어 찾는 겨울바람 속의 여인네 모습은 그대로 극한에 달한 빈궁의 표본이었고, 모진 목숨의 상징이었으며,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이었다." - 소설 <태백산맥>4권 중 PP72~73 -



제철인 줄은 알았지만 처음부터 벌교꼬막을 먹으러 갔던 것은 아니다. 고흥 읍내의 식당들이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아서 나오는 길에 점심 해결할 곳을 찾다보니 벌교가 선택된 것 분이다. 벌교역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찾아간 <역전식당>. 꽤나 알려진 곳이다.



벌교 읍내의 식당 대부분이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여 손님들은 방 안에서 상을 받는 구조다. 실내에 자리가 없어서 탁자가 몇 개 놓인 협소한 실외에 가방을 내려놓고, 꼬막정식(만원/일인분)을 주문했다. 찬바람이 불어야 제맛이라지만 계절에 관계없이 벌교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밑반찬으로 꼭 나오는 것이 이 꼬막이다. 이곳은 짱뚱어탕 전문집으로 짱뚱어탕과 전골이 유명한데, 아무래도 제철(여름)이 아니기에 꼬막정식을 시킨 것이다. 유명인이 찾은 식당임을 과시라도 하듯, 벽 곳곳에 다녀간 인사들의 사인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 도배된 인사들의 면면을 구경하고 있는데, 너무 이르다 싶을 정도로 굴과 꼬막이 반반 섞인 해물전과 된장국부터 상으로 배달된다.




연이어 통꼬막, 양념꼬막, 회무침이 차례로 깔리기 시작하면서 금방 상이 가득찬다. 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참꼬막을 안주 삼아 고흥에서 사온 유자 막걸리 한 모금을 들이키니 여기가 무릉도원이다^^. 에라, 운전은 모르겠다, 선언하고 차키를 아내한테 인계하고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다. 아내에게도 벌교읍내를 한 두 시간 거닐고 가자며 한사발을 따라주니 좋아라 하며 마신다.



그 재료가 무엇이건 무엇이건 새콤달콤하게 갓 버무려낸 무침의 맛이야 일러 무엇하랴. 더구나 막걸리 식초를 소스로 삼은 초무침이라면 더더욱. 양푼이에 김가루랑 참기름 넣어 슥슥 비벼 먹으면 제격일 것 같은데, 통꼬막과 양념꼬막으로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난 뒤라 더이상 덜어갈 여유가 없기에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며칠 뒤, 여수에서 설을 쇠러 상경하는 길에 일부러 벌교시장에 들렀다. 그 일주일 새, 10kg에 사만원이던 참꼬막(새꼬막은 참꼬막의 반가격)이 설 대목을 맞아 육만원으로 올라 있다. 한 망을 사서 서울의 가족들과 먹기에는 많은 양이라 이만원어치만 구입하여 가지고 올라가서 직접 삶아 보았다. 너무 삶아 버리면 말라서 쫄깃한 맛을 잃어 버리기 때문에 몸체가 줄지 않고 탱탱하니 잘 삶아내기 위해 불 앞에서 심혈을 기울인 결과 그런대로 벌교 식당들 흉내내는 수준은 되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아마도 3월 말까지는 꼬막이 제철일 것 같으니, 먹고 싶거든 여수로 오시길. 내 벌교에서 구해다 삶아 놓을 테니....

2007년 2월 21일

여수에서


쇼스타코비치 왈츠 No.2-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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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현대 차이철학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라

니체로 시작된 차이 사유
현대철학이
되레 차이를 불변의 것으로 인식
차이를 적극 생산하는 게 올바른 길
자본논리엔 ‘소수 정치학으로 맞서야


출처:인터넷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34654.html) 2007/09/07


일단 진은영의 재주는 글을 쉽게 쓴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가 좁은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칸트 해설서 만큼(<'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쉽게 쓰여진 칸트 해설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해서 그의 전작 만큼이나 쉽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더더욱 니체를 용수의 <중론>을 끌어들여 니체의 영원회귀를 용수의 空과 비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 김성철 교수의 <중론> 해설서를 읽었는데, '뜬구름'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경험이 있기에..-.-..



‘니체,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펴낸 진은영씨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관문이다. 그를 통과해야 현대철학의 지평이 제대로 열린다. 진은영(37)씨는 니체 철학 전공자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그린비 펴냄·1만5900원)은 그가 모교인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을 갈무리해 펴낸 책이다. 니체 철학의 함의를 풍성하게 담은 그의 책을 사이에 놓고 한겨레신문사 자료실에서 그와 만났다.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차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 성과는 특히 하이데거·바타유·푸코·데리다·들뢰즈 같은 일군의 탈근대 철학자들이 이루어낸 것입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들을 모두 니체의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니체 철학을 베이스캠프로 사용해 현대철학이라는 산을 등정했다는 것이죠.”

» ‘니체,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펴낸 진은영씨


그는 현대철학의 출발점에 니체 철학이 있는 이상, 니체를 공부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탈근대 철학에 도입된 차이 개념을 사유하고 차이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작업은 니체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철학이 ‘차이’ 개념에 주목하는 것은 근대 철학의 폐해를 극복할 길이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대 철학이란 요약하자면, 동일성의 철학이다. 하나의 보편적 기준을 상정하고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거기에 폭력적으로 복속시키거나 복속되지 않으면 배제하고 추방해버리는 철학이 동일성의 철학이다. 이 철학의 폭력성을 극복하자는 것이 탈근대 철학이고, 그때 탈근대 철학이 구사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니체는 말하자면, 차이의 철학으로 가는 직행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니힐리즘(허무주의), 힘에의 의지(권력의지), 영원회귀,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차이의 철학’이다. 이 가운데 니힐리즘은 니체가 평생을 두고 싸운 사유의 주제였다. “니체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목표는 ‘니힐리즘의 자기극복’이었습니다.” 왜 니힐리즘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니체는 자기 시대가 니힐리즘에 철저하게 감염돼 있다고 보았다. 니체가 니힐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탄식하는 단순한 허무의식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 자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현실 너머의 ‘진짜 세계’, ‘초월적 본질’을 찾는 모든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상계 너머의 영원한 이데아(본체계)를 찾는 플라톤주의와 그것의 쌍둥이인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현세 부정의 관념으로서 전통적 니힐리즘이다. 신이 죽어버림으로써 이 전통의 니힐리즘은 끝났지만 그것을 대체해 새로운 신이 등장했다고 니체는 말한다. 현실 세계를 관통하는 어떤 법칙을 찾아내 거기에 매달리거나 자본·화폐·국가 같은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니체가 인식한 현대의 니힐리즘이다. 니체는 이 니힐리즘을 극복해야 할 질병이라고 규정했다.

“그 질병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니체가 발견한 개념이 ‘힘에의 의지’입니다.” ‘힘에의 의지’를 니체의 말로 풀면 이렇다. “이 세계는 곧 시작도 끝도 없는 거대한 힘이며, 힘들과 힘의 파동의 놀이로서 하나이자 동시에 다수이고, 자기 안에서 휘몰아치며 밀려드는 힘들의 바다이며, 영원히 변화하며 영원히 되돌아오고, 어떤 포만이나 권태나 피로도 모르는 생성이다. 영원한 자기창조와 영원한 자기파괴의 세계가 ‘힘에의 의지’다.”

이 힘들의 흐름은 영원히 되돌아와 영원히 되풀이되는데, 그것을 가리켜 니체는 ‘영원회귀’라고 말한다. 그때의 영원회귀는 똑같은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다. 영원회귀는 차이의 반복이다. 다시 말해, 차이를 만들어내는 반복이다. 그리하여 삶은 끝없는 변화와 생성 속에서 반복하되 항상 차이나는 반복이 된다. 삶과 세계는 차이의 바다, 차이의 축제가 된다. “그런 식으로 니체는 차이를 새롭게 사유했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근대의 동일성 철학을 돌파하는 차이의 철학은 바로 여기에서 성립했다. “그러나 이 차이의 철학은 차이라는 개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유행하는 탈근대적 차이철학에도 동일성 철학의 폐해가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차이를 불변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차이를 ‘승인’하는 형태의 철학에서 그런 경향이 발견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걸로 끝내버리는 것인데, 그래서는 차이와 차이의 진정한 만남도 없고 그 만남을 통한 또다른 차이의 생성도 없다. 이런 ‘차이 승인’의 철학을 그는 ‘탈근대적 니힐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현대적 니힐리즘을 극복하려면 차이·다름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사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이를 즐기는 것,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 생산 활동’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차이의 철학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 생산 철학’도 오늘날 자본주의적 지배 전략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끝없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면서 ‘차이’와 ‘다름’의 판매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지금 자본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차이의 철학은 거기에 합당한 정치학과 윤리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책은 차이의 철학이 자본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고 자본의 포획욕망에 저항해 그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소수 정치학’을 내세운다. 지배의지로 뭉친 다수성의 논리와 맞서 싸워 다름의 풍요로움을 지켜내고 또 그 풍요로움을 창조하는 소수성의 정치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차이의 철학’은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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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맥주 2007-09-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람돌이의 댓글을 기냥 눌러 봤더니 여기로 연결되네요.
이완의 포즈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선배의 서재도 따로 있었군요.
선배의 오랜 꿈은 무엇이고,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라는 신념은 선배의 삶에 어떤 가치로 나타날까요. ㅋㅋ 이렇게 말하면 부담되겠당.
첫페이지부터 좀 심각한 책 이야기들이지만 종종 놀러오죠. ㅎㅎ

내오랜꿈 2007-09-12 15:07   좋아요 0 | URL
인터넷 생활하면서 하도 많이 받았던 질문이라서... 아이디가 조합으로 이뤄져 있으니 다들 궁금한 모양이더군.

뭐, 별로 심각할 것도 없네요. 누구든지 읽어낼 수 있는 책이고. 난 역사 전공도 아니면서 앤드루 고든의 <현대일본의 역사>라든가, 유모토 고이치의 <일본 근대의 풍경>을 읽어 보잖아. 관심의 차이겠지, 뭐.

아 참, <일본 근대의 풍경>에 보면 개항 이후 일본에서 맥주가 정착하게 되는 과정이 간단하게 나와 있어. 요코하마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되어있더군.
 


세발낙지 - 영암 독천마을



본격적인 휴가철로 접어들기 직전인 7월 중순의 주말, 서울에서 친구 한 넘이 여름휴가 대체 주말나들이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곳 남도야 한여름 휴가철에도 부산이나 강릉처럼 그리 심하게 붐비지는 않는 곳이니 어디든 특별한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코스를 잡으면 최소한 실망하는 일은 없게 마련이다.

수원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라 오는 길에 아내를 픽업하여 오랬더니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운전하면서 금요일 저녁 늦게 도착했다.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토요일 아침, 전라도 땅을 처음 밟아 본다는 친구부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화순 운주사를 거쳐 흔히 남도 답사 일번지라 일컫는 강진 일대를 둘러 보는 코스를 잡았다.

운주사 가는 길에 쌍봉사의 철감선사 부도탑을 둘러보고 운주사의 이름없는 불상들도 감상하고 다산초당의 마루에서 드러누워 보기도 하면서 빡빡한 오전 일정을 끝낸 뒤, 월출산을 끼고 돌며 30년 전통을 가진 영암의 독천식당을 찾아갔다. 나도 처음 가는 집인지라 은근히 찾는 길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독천마을 자체가 온통 낙지전문 식당들 일색이었다.



보통의 여느 시골읍내 분위기가 물씬 나는 독천은 알고 보니 낙지마을로 꽤 유명한 곳이다. 밥 때를 조금 넘겨 찾은 이 식당은 주변 여러 식당에 비해 입소문이 자자하고, 소박하지만 낙지 전문 요리집 답게 3단으로 된 수족관에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싱싱한 산낙지 무리를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원래 이 집은 낙지의 개운함과 갈비의 구수함이 만난 갈낙탕이 유명하다지만 일행들은 밥과 함께 나오는 갈낙탕보다는 다른 요리를 원한다. 먼저 마리당 삼천원 하는 세발낙지를 10마리 시키고 위장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낙지요리를 맛보기 위해서 구이, 데침을 반씩 시켰다.



제일 먼저 나온 <산낙지>. 철양재기의 옅은 식초물에 담겨 나온 녀석들은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꼬물거린다. 성질 급한 놈은 벌써부터 위기감을 느꼈는지 그릇 밖으로 기어나온다. 보통 낙지는 횟집에서 먹는 것처럼 잘게 썰어 참기름에 찍어 먹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의 세발낙지는 젓가락에 둘둘 말아 통채로 씹어먹어야 제맛이 난다.

낙지 대가리를 잡고 한번 손으로 훓어내려 물을 쭈욱~ 빼고는 나무젓가락에 둘둘 감아 초고추장에 찍은 다음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서 입 안에 넣어 씹기 시작하면 된다. 입안에서 꼬물거리는 감촉을 느끼면서 잠시 뒤 다시 소주 한 잔을 먹어주고 계속 씹으면 어느새 세발낙지 몸통의 고소한 맛이며 대가리에 들어있는 먹물의 쌉싸름한 맛이 어울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맛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곳 낙지마을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세발낙지 한 마리면 소주가 한 병이라고 했단다. 먼저 씹기 전에 소주 한 컵(맥주잔)을 마시고 씹으면서 한 컵. 먹어 보면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생전 처음 산낙지를 통채로 먹어보는 친구는 물론 처음에는 못먹는다고 손사래를 치던 두 여자들도 신기해하면서 나를 따라 통채로 씹기 시작한다. 맛있는 것 앞에서 여자들의 징그럽니 어쩌니 하는 '아양'은 한낱 술안주에 지나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자들의 합세 때문에 결국 10 마리가 모자라 몇 마리 더 추가하여 먹고 나니 입주변은 온통 빨간 초고추장 투성이다.



산낙지도 곧잘 먹는 아이들을 위해 살짝 익힌 <낙지데침>을 주문했다. 싱싱한 것을 익혔으니 살이 입에 살살 녹을 만큼 부드러웠지만, 아무래도 깨소금 송송 넣고 참기름까지 발라져 나오니 그냥 생각없이 먹으면 몇 십 마리는 앉은 자리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술안주를 위해 낙지에 양념을 발라 먹음직스럽게 구운 <낙지구이>가 나왔는데,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운전을 했지만 이제는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길 작정이었으므로 연신 들이킨 술이 벌써 두 병을 넘어섰는데 도무지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밥과 함께 나온 <낙지연포탕>. 낙지가 아주 부드럽게 씹히며 자극적인 그 어떤 양념도 허용하지 않고 박을 넣어 연하게 은근히 익힌 탕으로 국물 맛이 일품이었고, 젓갈 등 밑반찬들이 짜지 않고 정갈했다. 역시 남도다 싶은....

흔히 뻘 속의 인삼(人蔘)이라 일컫는 낙지는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봄철 농사철을 맞아 논과 밭갈이에 지쳐 쓰러진 소에게 낙지 2~3마리를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기록했고, 동의보감에서는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에 버금간다"고 할 만큼 콜레스테롤과 많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빈혈이 있는 사람에게 특효라고 한다. 서울이나 부산쪽 사람들에게 이곳 영암은 멀게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일단 와서 먹어보면 오며가며 투자한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느낌을 가득 안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0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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