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들의 노골적 선동


서태지.

그의 이름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지형에서 가지는 의미와 그 한계는?

글쎄, 쉽게 논할 주제가 못 되지만 지난 번 서태지 컴백공연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서태지”와 “오빠”를 연호하는 객석 풍경과 하드코어 계열의 강렬한 사운드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 어색함이라니...

낯설기로 따지자면 이보다 앞선 2000년 6월, 첫 내한 공연을 가졌던 하드코어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r The Machine:RATM)의 무대도 만만치 않았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붉은 별, 뒤집혀진 성조기, 3집 이름 『더 배틀 오브 로스앤젤레스(The Battle of LosAngeles)』에서 따온 '더 배틀 오브 서울' 등 밴드의 좌파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무대 장식과, 그 아래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헤드뱅잉을 하며 하드코어 음악에 흠뻑 취한 젊은이들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하기사 80년대 중반에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노찾사"와 "꽃다지"의 노래들은 최루탄 맞아가며 눈물로 부르던 노래인데 지금은 노래방에 앉아 솜씨 자랑하는 곡목 가운데 하나로 되어 있으니 이 정도에 새삼스레 놀랄 일도 아니지만...

서태지 컴백의 영향인지 어쨌는지 1년 여가 흐른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 홍대앞 등 서울의 록카페를 지배하던 테크노는 그 자취를 감추고 대신 하드코어의 세상이 됐다고 한다.

국내에서 이러한 하드코어의 대중화에 서태지가 결정적인 구실을 하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하드코어의 진면목을 보여준 건 단연 "RATM"이다.  자본가의 착취와, 경찰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메시지 때문만이 아니라, 펑크와 메탈 등의 록 사운드에 갱스터랩과 같은 힙합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는 '노골적인(하드코어)' 음악은 선구적이었다.  국내 락 밴드들은 물론 힙합 성향의 가수들 다수가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이들을 우상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현존하는 락밴드 가운데 RATM은 가장 급진적이며 전복적인 밴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무기로 자신들의 사상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RATM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반대로 이들을 증오하는(?) 세력도 만만찮다.  RATM이 공공연하게 적으로 규정한 자본가들과 공권력을 남발하는 제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앨범에 'parental advisory'(부모의 조언 요망, 곧 미성년자에게 판매할 수 없는 음반이란 뜻이다) 딱지를 붙이고 싶어 안달하는 음반검열조직(공식적인 조직은 아니고 우리 나라로 치면 가칭 '청소년 타락방지를 위한 전국 애국 학부모회' 같은, 미국의 사이비 조직이다), 낙태반대주의자들, 기독교 세력 등은 RATM의 음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8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남부럽지 않은 부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한 이들이 소외계층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며 이들이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불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RATM은 자신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들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사실 그들은 자비를 들여 데모테잎을 만들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들의 행동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Mumia Abu-Jamal의 석방을 촉구하는 게릴라성 거리공연을 비롯해 온갖 사회운동의 현장마다 팔을 걷어부치고 쫓아다니며 자신들의 명성과 특권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는 것 역시 하나의 이용전략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인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보기에 RATM 만큼 팍스아메리카나 체제와 문화적 제국주의, 정부의 억압에 항거하는 좌익적 외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까지 묘사되는 1990년대에 들어와 가장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선언을 Punk, Hip Hop, Thrash를 혼합한 특출한 사운드로 자신들의 색깔을 표출하고 있는 밴드인 것이다.

이런 그들이 밴드 결성 9년째(2000년)에 접어들어 발표한 새 앨범 『레니게이드즈(Renegades:이단아들)』는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작업이자 이들 음악의 기원을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앨범 이름이 뜻하듯이 이들이 생각하기에 주류 팝뮤직계에서 '이단아들'이라고 생각되는 뮤지션들의 곡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편곡한 것으로 록과 힙합의 '클래식'을 완전히 자기들의 색깔로 바꾼 리메이크 음반이다.

처음, 라이브 앨범에 보너스로 싣을 2곡을 녹음하러 평소의 애창곡을 준비해 스튜디오에 들어갔으나 이들은 의외로 이 작업에 흥미를 느껴 총 12곡을 녹음해 먼저 이 앨범을 내놓게 됐다.  12곡 가운데 10곡은 아예 자신들이 만든 음악처럼 리메이크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힙합과 락 음악을 하드코어 스타일의 음악으로 재해석해 낸 점이 색다르다.  원곡과는 다른 RATM만의 해석을 내려 마치 신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기 팝"의 「다운 온 더 스트리트」와 "마이너 스레트"의 「인 마이 아이즈」 두 곡 정도가 원곡의 느낌을 유지한다.  이렇듯 음반에 실린 원곡과 그 주인들은 "RATM"의 기호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록에서는 노동계급을 약탈하는 자들에 맞서 싸우는 이를 상징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더 고스트 오브 톰 조드」, 자유무역의 허위를 거부하는 "밥 딜런"의 「매기즈 파암」, 그리고 혁명적인 60년대 말에 나온 "롤링 스톤즈"의 「스트리트 파이팅 맨」을, 힙합에서는 가장 직설적인 랩을 구사하는 갱스터랩 그룹 "EPMD"와 "사이프레스 힐" 등의 노래를 볼 수 있다.

예전의 앨범 재킷에 비해 이번 재킷의 겉모습은 다소 평범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분명한 주장이 담겨 있다.

“나는 돈 위에 메시지를 쓴다”

는 문구로 시작하더니 마지막 쪽에 1달러 지폐에 붉은 글씨로

“당신은 노예가 아니다”

라고 적고 있다.



01. Microphone Fiend by Eric B & Rakim
02. Pistol Grip Pump by Volume 10
03. Kick Out the Jams by MC 5
04. Renegades of Funk by Afrika Bambaataa
05. Beautiful World by Devo
06. I'm Housin' by EPMD
07. In My Eyes by Minor Threat
08. How I Could Just Kill a Man by Cypress Hill
09. The Ghost of Tom Joad by Bruce Springsteen
10. Down on the Street by The Stooges
11. Street Fighting Man by Rolling Stones
12. Maggie's Farm by Bob Dylan



200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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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적으로 이사하는건가요? 글들이 어찌나 무지막지하게 올라오는지 다 읽어내기도 힘듭니다그려... ㅎㅎ 그래도 참 아는 사람이 여기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게 처음이라 색다른 맛이 나네요. 가끔 내 얘기도 있고 말입니다. ㅎㅎ

내오랜꿈 2007-09-14 02:22   좋아요 0 | URL
이사라? 그렇기도 하네.

그것보다는 한 3년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다. 엠파스 블로그는 아내와 같이 쓰면서 카테고리를 나눠 쓰고 있었는데, 2005년부터는 아예 쓴 글이 없다. 엠파스 블로그에서 내가 쓴 글들은 전부 2005년 이전 글이지.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에도 거의 쓰지 않았다. 그 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사이트에서 피 튀기며 싸웠었는데...

지난 번 거금도에서 내가 '포기했다'고 한 의미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한 싸움을 포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민노당에서 주사파 애들이 주도권을 쥐고 생지랄을 하는 시점이기도 했고...

그랬는데, 회사도 그만두고 시간도 많이 남고 해서 다시 글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그래서 이참에 아내와 같이 쓰던 블로그를 아예 독립된 공간으로 옮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블로그 글 중에 내가 썼던 글을 어느 정도는 이쪽으로 옮겨 놓고 본격적으로 시작할까 싶다. 아직까지는 다시 쓰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골드미스 혹은 패배한 개의 상처 핥기

반짝거리는 청춘의 거품이 꺼진 뒤 살아남은 사람들, 30대 이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

▣ 이다혜 <판타스틱> 기자


일본에는 ‘패배한 개’(負け犬·‘마케이누’라고 읽음)라는 표현이 있다. 30대 후반의 칼럼니스트 사카이 준코가 ‘마케이누의 절규’라는 부제가 붙은 <결혼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사용, 미디어를 타고 확대재생산된 말이다. 그 뜻은, 30대 이상의 여성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여자. 일에 성공해 멋있게 살아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지 않으면 여성으로서 ‘패배’했다는 뜻이다. 그런 독신 여성이 증가하는 이유를,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1980년대 말, 20대 여성들은 경기 호황을 타고 직장의 꽃이라 불리던 OL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직장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독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고도 많은 여성들은 독신으로 남아 사회생활을 계속하는 편을 택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남희)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패배한 개’는 부정적인 함의의 표현이지만, 이 표현이 들불처럼 번져 사용된 이유는 이런 여성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사람들은 거의 기혼인데 본인은 미혼.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에 불탄 적도 없는데 어쩌다 보니 직장에서는 중견 사원이 되어 있고, 어쩌다 일 때문에 화라도 낼라치면 ‘히스테리 부린다’는 쑤군거림을 듣고 있다. 결혼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스스로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패배’한 건지는 더더욱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30대 중반의 독신 여성이 되어버린 사람들.

일본의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골드미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문화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독신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번쩍거리는 수사 없이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독신 여성들은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에서 가장 주요한 타깃으로 자리잡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아끼지 않고 돈을 쓰기 때문이다. 출판 시장도 그중 하나다. 영미소설에는 칙릿(chick-lit)이라고 불리는 여성소설 장르가 있다.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들도 있지만, 20~30대 이상의 독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도 많다. <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는 제목과 달리 서른네 살인 여자 주인공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 준은, 동승했던 20대 여성이 죽었지만 자기는 살아남았다는 점을 쉬이 극복하지 못한다.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은, 차에 타고 있다 죽은 20대 여성이 만들었던 ‘스물다섯 살 생일까지 해야 할 일’에 적힌 스무 가지 할 일을 대신 완수하는 것이다. 직장 일은 안 풀리고, 교통사고의 정신적 충격은 극복이 안 되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상태에서, 준은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런 책들은 10년 전쯤 유행했던 에쿠니 가오리를 필두로 한 연애소설들과는 약간 다르다. 권태로운 일상이라는 말은 현대의 독신녀들에게 사치다. 밥벌이를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어려움 역시 이야기의 한 축이 될 수밖에 없다. 혼자, 밥벌이를 하면서, 무엇이든 극복해나가야 한다. 고통의 원인은 남자친구의 결혼일 수도, 회사 일의 어려움일 수도 있다. 또한 가족 누군가의 죽음일 수도 있다. 단순히 왕자님이 나타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 그녀들은 상처를 핥으며 언젠가 나아질 것을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많은 일본에 이런 독신녀에 대한, 독신녀를 위한 소설들이 많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왕자를 기다리기보다 왕자를 키우는 게 낫다는 인식은 <너는 펫>처럼, 연하의 남자를 (애완동물처럼) 부양하는 커리어우먼의 이야기를 만화로, 드라마로 유행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케이크 같은 나이

<그 여자, 31살>(나카지마 다이코)의 주인공은 서른한 살인 미도리. 미도리는 어느 날 위가 셀프 로데오 기계처럼 벌떡대고, 미열이 나는 이상한 증상에 시달린다. 옛날에 미도리를 좋아한다며 따라다니던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심해졌다. 미도리는 ‘서른한 살이나 먹은 나의 테마는 과연 잘생긴 남자인가, 일인가’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병원에 가도 딱히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혼자만 아는 병을 싸매고 끙끙거리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은 한방이다. 한의원에 찾아간 미도리는 잘생긴 한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생기를 찾는 이유는 잘생긴 한의사가 아니라 한의학이다. 한의학 책을 탐독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면서 스스로를 치료해가는 것이다.


△ 권태로운 일상이란 현대의 독신녀들에게 사치다. 소설 속 30대 이상의 여성들은 커리어우먼 포장의 반대편에서 고통이나 실패를 ‘극복하며’살아간다.



서른 즈음의 여자들이 나이에 대한 강박을 갖기 시작하는 이유는 거의 우스울 정도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아서 이브날인 24일(24살)에는 잘 팔리다가 당일인 25일이면 더디게 팔리다가 크리스마스를 넘기면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는 식의 농담이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문득 ‘만 나이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30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시작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나이에 대한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 특히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받는 압박감은 오늘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D. H. 로렌스의 단편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는 오래전 아버지가 양자 삼아 키운 남자와 결혼을 강요당하는 서른네 살의 마틸다 이야기다. 마틸다는 어둠 속에서 아버지인 줄 착각하고 13살 어린 ‘사촌’의 이마를 만졌다는 이유로 “결혼을 안 하면 유산도 없다”는 아버지의 협박에 궁지에 몰린다. 지금이 그때와 달라졌다면, 그 이유는 여자들이 직장을 갖고 일을 하면서 경제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내 나이 서른하나>는 서른한 살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서른한 편의 단편을 담은 소설집이다. 여기 수록된 ‘자동차’에는 BMW 콤팩트에서 사는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다니며 자동차 할부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고, 신용카드는 물론 휴대전화와 스포츠클럽 플래티넘 회원 카드도 가지고 있다. 차를 팔고 월급을 아끼면 집을 얻을 수 있고, 게다가 가족도 번듯하게 살아 있지만, 그녀는 자동차에서 노숙과 다름없는 생활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아버지가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호통친 뒤 남자친구와의 짧은 동거 끝에 내린 결론이다. <워킹 걸 워즈>의 주인공 스미다 쇼코는 그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나이는 서른세 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규모 종합음악기획사 과장이다. 입사식은 유쾌했고 두근두근 설레기도 했지만, 9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나자 혼자 점심 먹는 일에 익숙해졌고, 미래 따위는 상상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무엇도 되어 있지 않고 해놓은 것도 없고, 그저 서른세 살의 자신이 있을 뿐이다.

파트너도 찾고 있어, 별로 불편하진 않아

연애나 결혼에 아주 뜻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30대의 미팅의존증은 ‘모라토리엄’이라고 표현이 걸맞는다. <걸>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미팅을 수시로 하는 30대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는 분명히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구실과 지금의 상태로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마음이 우리를 미팅 자리로 내몰고 있다.” 지금 이대로도 귀찮지만,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의무적으로 미팅을 하며 스스로를 달랜다는 뜻인데, 이쯤 되면 독신녀의 삶이라고 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기에 모든 것을 꾹 참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반 가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멋지게 보이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휴가는, 사실 속내를 살펴보면 혼자 모든 것을 버텨내느라 지친 상태에서 발견한 생존용 탈출구와 다름없다.

30대 이상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런 여성소설의 공통점은 일종의 ‘극복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계발과 처세술이 등을 떠미는 성공지향적인 커리어우먼의 포장과는 정반대되는 지점이다. ‘패배한 개’라는 명칭이 들어맞을 법한, 고통이나 실패를 딛고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가와카미 히로미가 <선생님의 가방>에서 그린 서른일곱 살 오마치 쓰키코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고교 시절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그와 술친구가 된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2년, 정식 교제를 시작하고 3년이 지나 선생님은 세상을 떠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단한 연애담이 아니다. 각각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마음에 맞는 술친구를 발견하고 함께 늙어가는 시간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인기 많은 남자가 좋다. 남이 싫어하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 늘 들어주는 역할이다. 의외로 가족 관계는 양호하다. 때로 순정만화를 읽는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요시다 슈이치의 <7월24일 거리>에 등장하는, 여자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묘하게도 대부분의 독신녀들의 공통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열심히 일하고, 남이 싫어하지 않았으면 해서 무난한 성격을 갈고닦고,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다 보니 자기 얘기를 할 타이밍을 놓치는. ‘골드미스’ 운운하는 꼬리표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으쓱대는 게 아니라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나이를 먹은 것뿐이다. 반짝거리는 청춘의 거품이 꺼진 뒤에도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패배한 것도 아니고, 승리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상처는 스스로 핥아 낫게 하는 수밖에 없다. 성별에 관계없는, 결혼 여부를 떠난, 그 깨달음이, 30대 독신녀들을 위한, 그들에 대한 소설들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출처:한겨레21 제677호 2007년09월11일
(
http://h21.hani.co.kr/section-021108000/2007/09/0211080002007091106770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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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서의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누가 나에게 꼭 읽어야 할 책 한 권만 소개해 달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권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20세기 영화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철저한 사회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보잘 것 없는 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책들은 좀더 '왼편'에 기울어진 책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 책 만큼 틈틈이, 자주 손에 접하게 되는 책은 드물다. 한 번 읽고 서가에 모셔놓는 책이 아니라 글을 쓸 때나 다른 책을 읽다가도 다시 꺼내 들춰보게 되는 책인 것이다. '현대편', '고대 중세편', '근세편(상/하)'으로 나누어 번역되어 있는데, 순서 상관없이 어느 편의 어느 장이라도 독자적으로 읽을 수 있다.

"모든 예술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져 있지만 예술의 모든 측면이 사회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하우저 자신의 표현처럼 예술작품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이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신념과 그러면서도 예술이라는 인간행위가 지닌 독자성과 복잡성에 대한 인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의 경우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은 고독한 천재의 영혼의 산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의 천박한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1,000만 관객 운운하는 '영화의 시대'인 요즘에는 '문화'나 '예술'을 일상의 삶이나 정치, 경제와 같은 사회 전반의 영역들과 연결시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상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나 예술은 아주 '고상한' 무엇이고 그것에 대한 이해도 일부 전문가들의 몫이라 치부되곤 했다. 더구나 문화나 예술을 하우저의 관점처럼 거대한 사회사의 일부로 바라보는 건 예술에 대한 불경 정도가 아니라 '정신의 위대함을 물질적 요인들로 환원시키는 빨갱이들의 사상'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우저는 선사시대의 자연주의적 예술에서부터 20세기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 이르기까지 제목 그대로 '예술사'가 아니라 '예술의 사회사'라는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시킨다. 따라서 이 책은 우선 풍부한 지식 창고라는 점에서 훌륭한 교양서라 할 수 있다. 전체를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소설가를 평가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보편성으로 위장한 근대 예술양식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의 긴밀한 연관 등에 대한 분석은 다소 진부하면서도 여전히 교훈적이다.

하우저는 발자끄, 루소, 스탕달, 디킨즈,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등 유명한 작가들을 다 오늘에 되살려 앉혀 놓고, '사실'과 그 복잡하고 풍부한 연관으로서의 '역사'를 그들이 어떻게 반영하고 표현하고 꿰뚫어 봤는지, 아울러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떤 일신의 영화를 누렸고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낀 개인적 고뇌와 번민은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건 '사실'에 대해 각 작가들이 취한 자세와 관점의 차이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해낸 어느 작가는 그 계급적, 정서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대의 진보를 선명하게 구현해내고, 정치적·이념적으로 급진적이었던 또다른 작가는 그 반대편에 서게 되고...

또한 소설의 독자들이 대중과 지식인층으로 갈리면서 대중에 영합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한 작가가 있고, 비록 소수 지식인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 시대의 대중에게 한발 앞선 비젼을 보여준 경우도 있고...

널리 읽힌다는 것과 유익하다는 것, 유익하다는 것과 올바르다는 것, 이념적으로 옳다는 것과 사실을 제대로 들여다본다는 것,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과 본질을 꿰뚫는 것 등이 서로 일치하기보다 불일치하고 화합하기보다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복잡하게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다.

우리가 문화나 예술작품의 이해를 목적으로 찾게 되는 수많은 것들을 보면서 꼭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우저의 이런 사회사적 관점이 아닐까? 때문에 뭔가 내용있는 읽을 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해드리고 싶다. 그 분량과 내용의 깊이가 만만친 않지만 그것을 헤쳐나가는 기쁨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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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토요일. 서울에서 여수까지 장거리를 달려온 피로함에도 반가운 마음에 걸친 술 한잔이 길어지는 바람에 원래 계획에 있던 여수의 향일암 일출은 일요일 아침에 시간이 되면 가자는, 다소 '무책임한' 합의를 한 덕분에 몇 시간 눈 붙이고 콩나물 해장국으로 든든한 아침까지 챙겨먹은 후 화순땅으로 출발했다. 띄엄띄엄 자리해 있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며 파란 들녁이 계속 이어질 것 같던 길 끝에 불현듯 닿은 쌍봉사 주차장.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웬만한 곳에서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을 사찰 주변의 그 흔한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 하나없이 한산한 곳에 자리한 쌍봉사. 마치 어느 마을 고택에라도 들어온 줄 착각할 만큼 산속으로 드는 맛이 거의 없는지라 초행길인 나는 '정말 쌍봉사야?' 며 재차 남편에게 확인 절차를 가졌다. 똑같은 생활의 반복인 자폐적인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로움으로 일행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능수버들 늘어진 연못 주변을 서성거리다 해탈문으로 들어섰다.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에 몇 개 밖에 없다는 3층 목탑양식의 건물이 이색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국보였던 이 대웅전은 안타깝게도 1984년에 화재로 불타버리고, 기록에 따라 복원한 것이라 한다. 소실되기 전의 목조건물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목탑의 전성기였던 수십 세기 전 옛맛을 유추해봄직 하다. 비불자들은 구경꾼으로 마당을 서성거리는데, 불자인 남편 친구는 아이들과 함께 곧장 부처님께 직행하는 신실한 모습을 보였다.^^



제법 깊은 산골에 자리한 절집이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압이 제대로 안 되어 대웅전 건물이 거의 타들어갈 무렵 근처 마을에 사는 한 농부가 불속에서 구해낸 부처님(가운데)을 보니, 저 무거운 걸 어떻게 업고 나왔을지 신기하다. 신도들이 성금을 모아 금으로 옷을 입혀 안치한 지금의 모습을 보고 또 봐도 佛者는 아니지만 佛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좌우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의 미소는 그 어떤 것도 녹여낼 만큼 넉넉하고 매력적이었다.



대웅전 뒤 왼편으로 철감선사의 부도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자생 차나무들과 대숲에서 죽순이 쑥쑥 자라고 있어 짙어진 신록과 함께 싱그러움을 더해주지만, 바람 한자락이 아쉬울 만큼 무더위에 지친 약자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아이답게 팔팔한 둘째 녀석은 엄마의 손을 이끌며 걸음을 재촉하는 기특함을 보이고, 몇번의 동행으로 지구력이 다소 떨어짐을 확인한 첫째 녀석은 제일 힘겨워하며 늦장을 부린다. 공짜로 국보를 만나러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음인가. 윗쪽엔 포크레인이 한참 길을 정비중이라 신발은 이내 먼지를 뒤집어썼다.



<철감선사 부도비>는 비신은 없어졌고 귀부와 이수만 남았다. 거북의 입에는 여의주를 물었으며 오른쪽 앞발은 막 세상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이려는 중이고, 나머지 발은 땅을 굳게 디뎌 역동성이 느껴지는 재밌는 형상이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기법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우수작이라 하는데, 구름 속에서 두 용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현란하게 보인다.



사진의 오른쪽에서 보이듯 지붕돌 추녀가 조금 상해 있긴 하지만, 석조문화재의 백미로 꼽히는 <철감선사 부도>는 화려하고 참 잘 생겼다. 연한 석재인 대리석으로 만든 로댕의 작품보다 오히려 조각하기 어려운 이 화강암으로 만든 우리 부도를 보니,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앞을 다투는 지리산 연곡사 부도나 여주 고달사지 부도와 함께 자유자재로 돌을 다루었던 이름모를 석공의 섬세함을 절로 예찬하고 싶어진다.

기단 윗 부분에 상반신은 인간의 모양,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를 확대하여 찍었었는데, 사진 정리를 하다가 실수로 삭제되었다. 한참 부도 앞에서 머물고 있으니 일꾼인지 공양주인지 주변의 풀을 베고 있던 할머니께서 봉지의 과일을 깍아 먹으라고 재촉 하셨지만, 아침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았고 새참으로 준비하신 먹거리에 손대기가 죄송하여 마음만 흠뻑 받고서 산비탈을 내려왔다.



엉경퀴가 아닐까 싶은데, 부도를 보고 내려오면서 눈에 들어온 들꽃이다. 대웅전 앞마당의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놓여있어 잠시 땀을 식히는 사이, 운전사인 남편이 시동을 걸어 차안을 시원하게 했음에도 일행들이 오지 않으니 담 너머로 살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쉽지만 운주사 가는 길에 잠시 들린 절집에서 의외의 많은 것들을 본 흡족함을 안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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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마지막 비행기를 놓친 남편의 부재와 출장끝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져 토요일은 남편이 올 때까지 하루 종일 이불을 끌어안고 지냈다. 세상이 얼마나 좁던지... 예전에 내가 "갑"이었을 때 투자를 해 주면서 좋은 인연으로 남았던 사람들을 이번 출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 만남도 의외여서 반가움이 컸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중요한 결정에서 도리어 내가 도움을 받게 될 줄.... 나로선 다행한 일이지만, 그 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남편이 귀가를 하고서도 우리는 오랫만에 휴일날 집에서 이틀을 오롯이 장판 디자인이나 하며 한가하게 보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종로에 나가 볼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리라던 계획이 진짜 계획으로만 그치고, 그렇게 집에서 삐질삐질 보내다가 콧바람도 쐴 겸, 어제 오후 잠깐 집에서 4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선창포구"에 갔다. 이곳은 넓은 갯벌을 안고 있는 작은 포구로 갯골을 따라 들고 나는 포구여서 반듯한 선착장이 없고, 조업을 하는 큰배들은 갯골 바깥에 대놓고 마을까지는 선외기로 드나드는 그야말로 아주 영세한 포구이다.

지금은 이미 갯벌도 메워져 포구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사실은 물 한방울 없는 마른 포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봄 가을 꽃게와 대하가 나는 철이면 생물을 사러 자주 다녔다. 더불어 금방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젓갈을 오천원치만 청해도 그 양이 백화점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사온 젓갈류 등은 우리 집을 찾는 가까운 지인들 손에 들려주기도 했었다. 주로 우리가 먹고 싶을 때도 찾았었지만, 손님이 왔을 때 어중간하게 요리 한답시고 깐죽대기보다는 속편하게 꽃게는 찜 하고, 대하는 즉석에서 소금구이로 내 놓으면 폼도 나고 대인기다.

영덕대게도 맛있지만 알이 꽉찬 꽃게는 서해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속살의 단단한 맛이 대게보다 더 좋아서 철마다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또 대하철인 가을에 운이 좋으면 배에서 직접 내린 씨알 굵은 자연산을 싸게 살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단골집도 있다),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는 각종 조개들이 싱싱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 좋은 주인을 만나면 게를 살 때는 모시조개를 한 바가지씩 얹어 주기도 하는 인심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특히 생새우가 많이 나는 곳이라 김장철 주말엔 다소 붐비기는 했어도 그리 멀지 않은 소래포구에 비할 바도 아니고, 처음 갈 때만 해도 별로 알려진 곳이 아니었던지라 값도 싸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그러더니 점점 차량이 많아지고 사람들의 수가 늘어간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오랫만에 찾은 이번 나들이에서의 느낌은 이미 옛날의 선창포구가 아니란 것. 마을 어귀에 각종 횟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서울 차 넘버까지 주차장을 메울 정도로 입소문이 나서, 가격도 결코 만만치 않아 이제는 가기가 꺼려질 정도다.

저녁으로 알이 꽉찬 암게를 사서 오랫만에 찜을 해 먹으리라는 포부(?)를 안고 갔건만 1kg 가격을 듣고는 그만 뒤로 자빠졌다. 아무리 비싸도 암게가 35,000원을 결코 넘지 않았었는데 50,000원이나 부르는 것이다. 작은 어시장을 남편과 몇 바퀴나 돌기만 하다가 씁쓸한 마음으로 그냥 발길을 돌렸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인가. 단지 꽃게가 다른 때부다 단순히 비싸졌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이 이미 돈맛을 알아버린 장터국밥집의 변신을 보았다고 해야 하나? 사진은 사지도 않은 터에 대놓고 찍지 못하고, 구경하는 남편의 등 뒤에서 몰래 찍은 것이라 확실히 감도가 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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