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폭력 광기’ 고발한 피울음

세상을 바꾼 노래 ①

 
 

 2007/09/28

 
 


» ‘인종폭력 광기’ 고발한 피울음

현대에 들어 대중음악은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와 호흡하며 때로는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 그리고 한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섰던 노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가 현대사의 주요 고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거나 새로운 유행, 새로운 흐름을 불러 일으킨 노래를 매주 한 곡씩 골라 노래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를 소개한다.

빌리 홀리데이 <스트레인지 프룻>(1939년)

“화사한 남부의 목가적 풍경 속에/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뒤틀려 (포플러 가지에 매달린 검은 몸뚱이)/ 달콤하고 청명한 목련 향기와/ 불현듯 코를 찌르는 살이 타는 냄새….”

에드가 앨런 포의 괴담 한 토막이 아니다. 로트레아몽의 잔혹시 구절도 아니다. <스트레인지 프룻>의 노랫말은 차라리 사건기자의 르포르타주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고문하고 목 매달달아 죽인 흑인의 주검을 “남부의 나무에 열린 괴상한 열매”로 비유한 이 노래는 미국현대사의 치부인 인종차별 폭력의 참상을 소름 끼치도록 세밀하게 묘사한다. 대중음악의 정서적 임계점을 넘어서는 날카로운 단어들의 충격파는 그러나 빌리 홀리데이의 나직한 목소리와 맞닿는 순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울림이 된다.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룻>은 인종차별에 최초로 현대적이고 직접적으로 저항한 음악이다. 이전에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노래는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블랙 앤 블루>나 어빙 벌린이 만든 <서퍼 타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곡은 앞선 전례들을 순진한 동요로 만들어버렸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감성이 아니라 각성에 부친 노래였다는 점에서 본질부터가 달랐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뉴욕 브롱크스의 고등학교 교사였던 유대계 백인 애벌 미로폴이었다. 린치 현장의 기록사진에 충격을 받은 그는 1937년 루이스 앨런이란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악보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홀리데이다. 1939년 1월, 뉴욕 최초의 인종개방 클럽인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초연은 그 자리에서 이미 팝음악의 전설이 되었다. 홀리데이는 곧바로 이 노래를 녹음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논란을 두려워한 소속사 콜럼비아는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결국 홀리데이는 인디레이블 코모도를 통해서야 레코드를 발매할 수 있었다. 1939년 4월 첫 번째 세션에서 빌리 할리데이는 최고의 버전을 만들어냈다.

비평가 요아힘 베렌트는 “재즈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진리”라고 전제한 바 있다. 그리고 홀리데이가 바로 그 “진리의 화신”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마치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홀리데이는 이 곡을, 치밀어 오르는 울분과 설움을 억지로 삼켜내고서야 겨우 목구멍 너머로 내놓을 수 있는, 고통스럽게 토해낸 한숨처럼 노래했다. 그의 해석에 원작자 미로폴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홀리데이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스타일로 내가 이 노래에 바랐던 비탄과 충격의 질감을 완전하게 구체화시켰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예상대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힘겨워하면서도 모든 공연 마지막에는 이 곡을 불렀다. 노래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노래에 담긴 아픔을 두려워했지만 그조차도 끝내 떨쳐냈던 것이다. 홀리데이는, 적어도 이 노래에 관한 한, 위대한 가수 이전에 용감한 인간이었다.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그는, 비평가 랠프 글리슨의 말처럼 “인생을 통해 <스트레인지 프룻>의 가사를 체화”했던 것이다. 뒷날 유색인종/여성/동성애자라는 이름의 ‘괴상한 열매’들이 천부의 인권을 외치며 거리에 섰을 때,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이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세상에 많다. 하지만 영혼까지 흐느끼게 하는 곡은 흔치 않다. 빌리 홀리데이의 <스트레인지 프룻>이 그런 노래다.

박은석/음악평론가



--------------------------------------------------------------

위의 사진에 보이듯이 'Strange Fruit'이란 백인에 의해 린치를 당해 나무에 매달려 죽은 이의 모습을 묘사한 묘사한 말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남부에서 일상적으로 있어왔던 일이었지만 다음과 같은 사건 하나가 훗날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930년 8월 7일 인디애나 주 매리온에서 '폭도들'이 주립교도소에 난입한다. 그들은 백인 남자 한 명을 살해하고 그의 여자 친구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흑인 십대 3명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 중에서 토마스 십과 어브램 스미스라는 소년은 린치를 당해 죽었고,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죽은 그들의 시체는 다른 흑인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며칠 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 사건으로 유죄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가운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 <앵무새 죽이기>일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우리 나라에선 <알리바마 이야기>로 출시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몇 편의 영화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내용만 머리에서 맴돌 뿐 제목이 기억나질 않는다. -.-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빌리 할리데이의 이'Strange Fruit'이 가장 인상깊게 흐르던 영화속 장면은 켄 로치 감독의 <다정한 입맞춤(AE Fond Kiss)>이었던 것 같다.

굳이 이 일화가 아니더라도 재즈는 '미시시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음악이다. 이런 재즈가 우리 나라에서는 뭔가 고상하고 교양있는 인간들의 전유물 비슷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역사는 퇴색된 채. 역사는 퇴색된 채. 하긴 혁명도 돈이 되면 상품으로 전화되는 세상에서 이게 무슨 대수랴. 그래도 너무 고상한 척 재지는 말자. 아픈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음악이니까.




 

 

 



Billie Holiday - Strange fruit(1939)




Strang Fruit

Southern trees bear strange fruit
남쪽 나무에 이상한 열매가 하나 열렸네
Blood on the leaves, blood at the root
이파리에는 핏자국,뿌리에도 피가 고여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흑인 소년 하나가 남풍에 흔들리네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이상한 열매 하나,포플러나무에 매달렸네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화사한 남부의 목가적인 풍경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쏟아질 듯 튀어나온 눈알과 비틀린 입
The scent of magnolia sweet and fresh
목련꽃 향기 달콤하고 신선한데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어디선가 갑작스런 살 타는 냄새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여기, 까마귀들이 쪼아먹을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비를 모으고 바람을 빨아들이는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 to drop
햇살에 썩어가고 나무에서 떨어질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여기, 이상하고 슬픈 열매가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 2007-10-0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끔찍한 노래로군요

내오랜꿈 2007-10-06 01:57   좋아요 0 | URL
네에, '끔찍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노래죠. 노래가 설마 끔찍한 건 아니겠죠.^^
 

문화 스케치 | 2004/07/27 (화)
출처:
www.jinbonuri.com

이름  
   배따라기 
제목  
  Jean-Michel Basquiat...


바스키아 [Basquiat, Jean-Michel, 1960.12.22~1988.8.12]
"80년대 화단의 제임스 딘" 또는 "검은 피카소"





27세의 나이에 마약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 낙서화가 바스키아. 그의 그림을 보면 나는 자유를 느낀다. 제 안의 것을 가능한 모든 평면에 풀어냈던 바스키아. 그를 억압한 것은 무엇이었고 그 안의 자유는 얼마나 큰 형체였기에 스물일곱의 나이조차 감당치 못하고 사라졌을까.

바스키아는 회계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빈민가에서 널빤지를 깔고 생활한 흑인 화가다. 그림 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했고, 살아있다면 마흔 살이 더 되었을 사람. 기자가 바스키아에게 물었다.

"그림 안에 있는 이 글을 해석해주시겠소?"

"해석이요?

그냥 글자예요."

"압니다. 어디서 따온 겁니까?"

"모르겠어요. 음악가에게 음표는 어디서 따오는지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디서 말을 따옵니까?"

"......"


 
타르(TAR)마을ⓒ, 1981, 244X244cm :
금속 판넬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유성 크레용


무제, 1981, 61X51cm :
나무 판넬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종이 꼴라쥬


무제, 1982, 244X244 :
십자 모양 프레임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트렁크, 1982, 183X183 cm :
프레임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피렌체, 1983, 212X390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치아라를 위한 피아노 레슨, 1983, 167.5X152.5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잿물, 1983, 167.5X152.5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즐거움, 1984, 218.5X172.5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종이 꼴라쥬


큰 탑, 1984, 152.5X122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실크 스크린


인물3A, 1984, 182X121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보행자1, 1984, 152.5X122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기도하는 사람, 1984, 172.5X218.5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실크 스크린


페즈 디스펜서, 1984, 183X122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유성 크레용




사회에서 버림받은 길거리의 낙서광이었으나 오늘날 팝 아트 계열의 천재적 자유구상화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27세의 짧은 생애를 통틀어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려 애썼던 브루클린 출신의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

우리나라에선 조금은 생소한 장 미셀 바스키아는 철저하게 버림받은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생존적 본능이 뚜렷이 나타나는 충격적이고도 충동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기존 제도에서의 의식과 감성의 허구를 폭로하고 거부하면서 비인간화를 주도하는 일체의 모순을 말없이, 그러나 어느 표현수단 보다도 더 강렬하게 웅변하고 있는 것.

바스키아의 이러한 아픔을 달래주던 동반자는 첫째는 그림, 둘째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앤디 워홀이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자신의 세계를 이해해 준 워홀. 그는 바스키아에게 정신적인 아버지였다. 비록 앤디 워홀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되지만 바스키아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 1987년 2월 워홀이 죽자 바스키아는 실의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잃은 듯 매일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방황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거리에서 시작된 열정적인 천재화가 바스키아의 예술세계가 거리에서 끝을 맺은 것이다.

오늘날 바스키아의 그림들은 지하철, 거리의 벽을 장식한 지저분한 낙서를 미술의 차원으로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들은 전세계를 돌며 전시되어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내오랜꿈 --------------------------------------------

영화 <바스키아(Basquiat)>는 비디오 가게에서 이것저것 뒤지다 가끔씩 건지는 보물 목록 가운데 하나였던 작품이다. 영화가 바스키아의 생을 얼마나 리얼하게 재구성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쓰레기더미 위에서 피어나는 그 어떤 천재적 광기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바스키아에 관한 책은 그리 많지 않은데, <바스키아의 미망인>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책 가운데 바스키아의 삶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별난 법학자의 그림이야기>는 원래 <낙서 화가 바스키아 감옥가다>란 표제로 출간되었다가 제목을 바꾸어 출간된 책이다. 25편의 글 가운데 바스키아를 다룬 한편의 글만 가지고 표제로 올렸던 것인데 조금 심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바스키아 (Basquiat)
감독 : 줄리안 슈나벨
주연 : 제프리 라이트, 데이빗 보위, 베니치오 델 토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내셔널가 - '메이데이'에 즈음하여...

문화 스케치 | 2004/04/30 (금) 15:40






인터내셔널가 (역사의 새주인-최도은)

인터내셔널가(Hannes Wader 독일)
인터내셔널가(중국)
인터내셔널가(redarmychoir 러시아)
인터내셔널가 (Sheffield Socialist Choir)
인터내셔널가(랜드 앤 프리덤)
인터내셔널가 (Ani Difranco Utah Phillips)
인터내셔널가 (Billy Bragg)
인터내셔널가 (Robert Wyatt)
인터내셔널가 (newsreel)
인터내셔널가 (piano)
인터내셔널가 (jazz)

인터내셔널가 (소리물결)
인터내셔널가 (역사의새주인)
인터내셔널가 (역사의 새주인-최도은 Live 버젼)




내오랜꿈. 통신생활을 해오면서 자주 들었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내오랜꿈님의 '오랜''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PC통신을 시작한 게 94년 말부터인데, 처음 천리안을 가입했을 땐 영문 아이디라 별다른 질문 같은 게 없었지만 98년부터 한글 아이디가 허용되자 쓰고 있던 아이디를 '내오랜꿈'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영화동호회'나 '현대철학동호회' 등 몇 개의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자주 글을 남기다보니 자연스레 듣게 된 질문이었던 셈이다. 천리안에서 인터넷 사이트로 옮긴 뒤에도 아이디나 대화명을 그대로 쓰다보니 가끔 그 '오랜꿈'이 뭐냐는 메일을 받곤 한다. 굳이 메일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농담성의 질문들을 포함해 심심하면 듣게 되는 질문이다.

글쎄, 한 마디로 뭐라 말하기엔 참 난감한 질문이다. 만약 20대의 나였다면, 단호하게 한마디 했을 수도... 이놈의 세상 뒤집어 엎는 것이라고...

과연, '내''오랜''꿈'은 무엇일까?

언젠가 어느 대학 교지에 영화 관련 글을 청탁받아 쓰면서 말미에 덧붙였던 구절이 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에겐 (꿈꾸는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의심과 해답 그리고 절망과 희망을 반복 하면서, 쓰러질 때마다 부여잡은 '화두'를 바짝 끌어당겨 의지하곤 하던 시절이 있었을 게다. 이른바 '낙엽만 져도 눈시울이 뜨거운' 시절. 그 시절엔 의심이 큰 만큼 삶에 대해 고민하는 자세도 진지하고, 작은 깨달음에도 온 가슴이 감동으로 떨렸을 게다.

그러나 의심의 '사정거리'가 멀어지는 시절이 있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소위 기성세대로 접어 들면, 의심도 감동도 모두 화석화되고 만다. 아니, 화석화하는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의심의 사정거리와 감동의 박자가 너무나 짧아진다.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로만 돌아가는 의심의 눈초리, 주로 물질적인 것에 쉽게 흔들리는 마음…

이런 게 인생이라고(설마??) 덮고 또 덮어버리는 게 아마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일 게다. 이런 일상의 흐름을 깨뜨리려는 노력은 상당한 댓가를 필요로 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잃어버릴 수도 자신의 삶 전체를 새로이 설계해야 할지도, 아니 어쩌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는, 들뢰즈/가타리의 표현을 빌자면, '탈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기 쉬운 말로 '혁명가'니 '(전위)예술가'니 하고 부른다."

내가 꿈꾸던 것들은, 아니 꿈꾸는 것들은 어쩌면, 어디엔가 안주하고 나태해지려는 내 자신의 삶의 방식을 향한 끝없는 반추가 아니었던가 싶다. 끝이 없는 여정일지라도 그 속으로 '탈주'하려는 욕망 같은 것.

내일은 '노동절'이다. 노동이라는, 노동자라는 말조차 시민권을 제대로 획득하지 못한 이놈의 나라에선 굳이 '근로자의 날'이라는 희안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그 차이, 노동절이냐 근로자의 날이냐는 '사소한' 단어선택의 차이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 민중들의 저항의 역사에서는 피와 눈물과 땀이 배여있는 날이다. 그 피와 눈물과 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인터내셔널가'일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인터내셔널가"를 처음 들은 건 <레즈>였다. 전곡이 흘러나오는 그 장면의 감동이란... 위 사진은 <랜드 앤 프리덤>의 영화포스터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에서도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면서 행군하는 장면이 나온다. '메이데이'를 맞아 각국의 인터내셔널가를 한 번 감상해보시길....

옛날에 '언더'에서 돌아다니던 독일 민중가요 모음 테잎이 있었다. 쇤베르크의 애제자이자 히틀러 암살기도를 했다 실패한 덕에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한스 아이슬러'라는 독일 혁명가가 편곡한 것이었는데, 그기에도 '인터내셔널가'가 있었다. 지금 위의 '인터내셔널가'들보다 훨씬 힘차고 웅장한 음악이었는데, 아쉽게도 아무리 인터넷 감색을 해도 그 음악 파일을 찾을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스아이슬러의 테잎은 이제 그 생명력을 다해 가고 있는데... 아쉬운 마음에 브레히트가 작사하고 한스 아이슬러가 곡을 붙인 연대의 노래 등 3곡을 아래에 첨부한다. 한스 아이슬러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느껴보시길...

각국의 인터내셔널가를 들어보면 언어적인 영향인지, 내 개인의 주관적 감상인지는 몰라도 독일버젼이 가장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독일어의 그 강한 액센트는 인터내셔널가의 맛을 그대로 살려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번안된 인터내셔널가의 여러 버젼 가운데 최도은씨의 노래가 유독 가슴에 와닿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 것이라 짐작한다(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곡이 바로 독일어 버젼이다).


통일 전선의 노래 (Einheitsfront) - 브레히트 / 한스아이슬러
연대의 노래 (Solidaritaetslied) - 브레히트 / 한스아이슬러
Mackie Messe - 브레히트 작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오랜꿈 2002/12/16




한스아이슬러

1. Solidaritatlied
2. Der Heimliche Aufmarsch
3. Bankenlied  


한스 아이슬러. 쇤베르크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기도 하고, 브레히트 미학의 음악적 적용에 있어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받았던 예술가이기도 했던 사람.

80년대 우리 나라 '언더' 문화운동, 특히 노래운동에 있어서 작곡의 하나의 전형으로 추앙받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운동의 흐름에 깊숙히 관여했던 사람들은 비합으로 돌아다니던 그의 노래 테잎을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었는데, 재작년에 이사하면서 오래된 테잎들을 보니 아직 그의 테잎이 하나 남아 있었다. 물론 10여 년이 훨씬 지났기에 지지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그 생명력은 다한 채로...

가끔 인터넷 상에서 한스 아이슬러의 음악을 찾아보곤 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는데, "노동의 소리"란 사이트에서 위의 3곡을 찾을 수 있었다.

한스 아이슬러의 음악과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된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의 생애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와 망명음악


「Solidaritatlied」는 한때 동구권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곡 가운데 하나인데, 이 곡은 예전의 "새벽"이 부른 「오월의 노래3」의 기본악상이 된 곡이기도 하다.

또한 이 곡은 브레히트가 가사를 쓴 노래로서 1930년 전후로 그가 한창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쓰던 시기의 작품이다. 당시의 좌파운동가들에게 가장 애창되던 노래였다고 할 수 있다. 행진을 할 때 쓸 수 있도록 후렴에 하나, 둘, 셋 이란 구호를 붙인 것이 재미있고 가사가 가진 날카로움과 웃음이 인상적이다. 4절로 된 노래인데 아래의 가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노래는 역시 당대 금속적인 목소리로 명성을 높힌 Ernst Busch이다.

1. 사람이란 곧 사람이다.
그러니 먹을 것이 있어야지, 아무렴.
허튼소리로는 배가 안불러.
그걸 먹을 수는 없으니까.
<후렴>그러니 좌로! 둘, 셋,
동지들 여기에 그대 자리가 있다.
모두 노동자 연맹에 가담하자.
그대들 또한 노동자니까.

2. 사람이란 곧 사람이다.
그러니 옷도 입고 신도 신어야지.
허튼소리로는 몸을 못 녹여.
아무리 두들겨봐도 마찬가지야.
<후렴>그러니 좌로!, 둘, 셋,........

3. 사람이란 곧 사람이다.
그러니 장화(높은 사람)를 좋아하지 않아.
노예를 보기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주인님은 더욱 아니지
<후렴>그러니 좌로! 둘, 셋,.........

4.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다.
그러니 아무도 구해주지 못해.
다만 노동자의 운동만이
노동자를 해방시킬 수 있지.
<후렴>그러니 좌로! 둘, 셋,......



「Der Heimliche Aufmarsch」는 아이슬러가 곡을 쓰고 역시 Ernst Busch가 노래한 것인데, 아마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에 의해 종국을 맞이하는 파시즘의 광기가 섬뜩한 시대의 지하음반 중에 수록된 것이라 알려져 있다.

「Bankenlied」역시 바이마르 말기의 가두시위를 위한 합창곡이라고 한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겠지만, 독일어의 그 강한 액센트 때문이지도 모르겠지만, 똑같은 곡이라도 독일 민중가요가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음에 올릴 각국의 "인터내셔널가" 모음을 통해서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집 과수원의 첫모습은 아래 사진 속의 과수원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먼저 사진 오른쪽의 배밭은 배나무가 아니라 복숭아 나무로 뒤덮여 있었고, 사진 왼쪽 끄트머리에는 딸기밭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딸기밭이 없어지고, 대학교 들어갈 무렵, 복숭아 나무를 베어버리고 배나무를 심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 과수원의 배나무는 40년이 넘은 것부터 20년 남짓한 것도 섞여 있는 셈이다.

그런 과수원이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여야 할 운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식들, 주로 누나와 자형의 도움으로 어머님께서 꾸려 오셨지만, 이제는 도저히 힘에 부쳐서 경작하기가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그렇게 말려도 안 들으시던 어머니께서 순순히 올해부터는 안 하신다고 그러는 걸 보면 당신도 어지간히 기력이 딸린다는 걸 아시는 것 같다.

이제 저 과수원은 온전히 남아 있는 당신의 자식들이 책임져야 할텐데, 자식들 그 누구도 이제 와서 농사를 주업으로 하여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저 과수원의 운용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나오는 의견들이 고구마, 감자, 마늘, 옥수수 등을 심으면서 염소, 닭 등을 풀어 키우자는 안으로 모아지고 있는 중이다.

뭐, 자식 다 키워낸 형제자매들의 소일거리인 이상 무엇을 재배하든 무엇을 키우든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번 기회에 시골집을 다시 짓는다는 것인데, 늘상 전원 생활이 어쩌고 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멀리 갈 것도 없이 저 과수원을 배경 삼아 눌러 앉는 것은 어떠냐는 고민을 시작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아직은 이야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고 아내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두 마디 의논해본 것에 불과하지만, 요즘 회사일과 관련된 내 신상의 변화 가능성 때문에 갑자기 현실적인 대안의 하나로 부각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생판 모르는 땅에 새로 집 지어서 농작물 심는 것에 비하면 이미 경작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저 과수원은 확실히 매력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아래 글은 아내가 3년 전, 이 즈음에 울산집에 갔다가 쓴 글이다. 저때만 해도 '생생했던' 어머니셨는데, 지금은 몸, 정신 모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고집만 피우신다.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즐거운 명절이어야 할텐데..... 

2007년 9월 23일.





일흔 다섯의 노모가 일평생 살림을 불리고, 5남매의 등록금이 되었던 과수원은 집을 나서면 5분 여 거리에 있습니다. 금이 좋았던 과수농사의 옛영화를 뒤로 하고 주변에는 빚만 잔뜩 진 농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듯 수지가 안 맞아 방치된 것과는 달리, 쉼없이 오르내리며 어머님의 손길이 닿은 땀의 과수원 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배는 유난히 달고 맛있다고들 합니다. 넘칠 정도로 부지런하신 어머님을 위해 형님댁에서는 서울 근교에 얼마간 텃밭을 사서 모시려고 해도, 자식에게 신세 안지려는 마음만은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대쪽이십니다.






새해에 갓 태어난 조그만 강아지였던 똘똘이가(시댁에서 기르는 강아지는 죄다 이 이름만 씀) 3개월 사이 훌쩍 자란 모습으로 동행을 청하고, 어느 집 소가 버려진 텃밭에서 한가로이 봄볕을 희롱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먼저 온 복사꽃은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데, 아직 배꽃은 저 만큼 더디 오고 있습니다.






흙을 깨우고,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느라 사시사철 새까만 어머니의 손톱을 두 번밖에 깍아드리지 못한 것이 부끄러움이요, 이제는 한가롭게 노니는 저 소처럼, 혹은 다른 어머니들처럼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때도 되었건만 당신 하시는대로 놔두라는 말씀이 자식들에게는 쓰라림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줄당기기에서 결국 자식들의 채근으로 듬성듬성 잘라버린 배나무의 그루 수가 적다고 어머니의 일손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오랫만에 다니러온 작은 아들이 세찬 바람에도 배나무가 잘 견딜 수 있도록 삼각대를 세우고 야무지게 묶고 있는 중입니다.






여지없이 두꺼운 흙을 뚫고 파랗게 돋아난 산나물입니다. 배나무 베어낸 자리에 어머님은 작년부터 힘들게 산에서 이것들을 캐다 심으셨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안 계시더라도 자식들이 손쉽게 뜯어다 먹게 하기 위한 준비라 하실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부드럽게 내리쬐는 봄볓을 받아도 이보다 더 따사로울까요?

마치 종합선물 셋트 같은 어머님의 손길이 닿은 먹거리들로 며칠간은 식탁이 봄의 무공해 푸성귀들로 풍성할 것 같습니다.



과수원길 - 동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