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vs 포스트 모더니즘
[지상현의 Homo designans·13] 디자인의 변화

지상현/한성대 교수
출처:<프레시안>(www.pressian.com) 2007-10-18


디자인의 역사는 아직 일천하다. 디자인사(史)라 부를 만한 것도 별로 없다. 디자인의 역사를 미술사처럼 선사시대부터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정직하게 보자면 100년이 채 안 된다. 이 짧은 동안의 디자인적 사실에 관한 연대기가 디자인사의 전부인 것이다.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역사가들이 미술사를 일반 문화사에서 독립시켰듯, 디자인사가 독립된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디자인적 사실을 보는 독특한 관점의 개발이 필요하다.

무엇이 디자인을 변화시키는가: 디자인 역사와 디지인 유행

당장의 실용성이 중시되는 디자인에서 역사를 논하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디자인에서는 유행의 예측이 매우 중요하다. 디자인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디자인 유행의 예측력에서 갈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 유행의 예측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변수들이 너무 많아 매우 어렵다.

사실 예측의 어려움은 디자인 유행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주가의 예측, 기상 예측, 정치적 변화의 예측 등 모든 예측에는 불확실성과 가변성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분야의 예측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디자인 유행에서도 마찬가지 원리는 있을 터다.

여기서 디자인 유행을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과거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내는 디자인사다. 이렇게 보자면 디자인사는 매우 실용성이 큰 분야라 말할 수 있다.

현재 디자인 유행에 영향을 주는 2대 요인으로 꼽는 것이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다.

신기술에 의해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면 가전제품, 가구, 패션의 유행이 확 변한다. 컬러 TV가 나오면서 환경의 색채가 다채로워졌고 표면가공기술 덕분에 하이-그로시라는 광택 나는 재질의 가구가 유행했던 것이 그런 사례다.

최근에는 "크로스 오버(Cross Over)"가 유행의 핵심어라고 한다. 이 말은 제품군 간(間) 표면 소재가 서로 넘나든다는 말이다. 예컨대 가구의 소재가 전자제품의 표면을 장식하고 전자제품의 질감이 가구에 적용되는 식인데, 이는 표면처리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근무 형태가 다양해지고 주 5일 근무를 하면서 출근복과 일상복 디자인의 차이가 줄어든 것은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면서 생겨난 유행이다.

그러나 이 두 요인만으로 유행을 제대로 예측하기는 힘들다. 더 많은 지식과 방법론이 필요하다. 디자인사는 그런 지식과 관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예컨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 스타일의 등장과 명멸을 "바우하우스-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사(史)적 관점에서 정리해 볼 수 있다.

▲ 모더니즘 작가인 말레비치(좌)와 로드첸코(우)의 작품. 극도로 단순한 구도와 직선, 장방형과 같은 기본적인 조형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다. ⓒ프레시안

바우하우스: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

바우하우스는 그로피우스라는 건축가가 1919도에 설립한 건축조형학교 이름이다. 나치의 박해를 받고 폐교와 복교를 거듭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대디자인의 초석을 다진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학교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칸딘스키, 클레, 모홀리 나기, 파이닝거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바우하우스는 학교 이름을 넘어서는 일종의 디자인 문화운동을 지칭할 정도가 되었다.

바우하우스에 참여한 교수들은 대부분 모더니즘 작가들이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조형의 아름다움을 지배하는 단일한 원리가 있다고 믿고 그 원칙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기본적인 원리 혹은 형태소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니 직선이나 원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이 넘쳐나는 추상화를 그리게 된다.

이런 모더니즘 미술의 정신과 중요한 양식적(style) 특징들이 바우하우스를 통해 디자인으로 넘어오게 된다.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기능주의, 전통적 조형 원리의 중시, 기하학적 단순성과 추상성, 양식적 통일성, 싫증나지 않도록 구체적인 비유나 상징을 가급적 억제하는 것 등이 디자인판(版)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쉽게 말해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고 쉽게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단순하면서도 조형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디자인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에 임하는 작가들의 자세도 매우 진지했고 디자인 기간도 상대적으로 매우 길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바우하우스 디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모홀리 나기가 디자인한 파커 51 만년필이다.


▲ 모홀리 나기가 디자인한 파커 51만년필의 6가지 시리즈들. 1941~1948 ⓒ프레시안
 
▲ 바우하우스 참여작가인 브러이어의 철제의자(1925). 현재도 이와 같은 디자인이 생산되고 있다. ⓒ프레시안

1941년에 처음 생산된 이 파커 만년필은 1980년대에도 팔릴 정도로 수명이 길었다. 조형원칙에 충실하고 오랜 시간 다듬어진 이런 디자인은 열광적인 선풍을 일으키기는 힘들어도 꾸준히 사랑받는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에 형식주의가 강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바이블 노릇을 하고 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또 다른 사례로는 1920년대에 디자인된 브러이어의 의자 디자인을 들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이 디자인은 지금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포스트 모던 디자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의 원칙이나 조형원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통적 배색법이나 조형기법을 중시하지 않고 탈기능주의가 강하다. 당연히 조화로움보다는 강렬한 느낌이 강해진다. 주(主)와 종(從)의 구분도 적어 정돈된 맛이 없지만 대신 다채롭다. 스타일의 일관성이 없어 서로 다른 두 개의 양식(style)이 한 디자인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어렵게 말하면 '이중 코드(dual code)'라고 한다. 형태가 해체된 듯한 모습인 경우도 적지 않다. 구체적인 비유나 상징도 많다. 쉽게 말해 포스트 모던 디자인은 부담없이 경쾌하게 유희하듯 하는 디자인이다.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같은 진지함이나 무게감은 부족한 대신 튀고 감칠맛이 난다. 감각적이어서 눈에 띄지만 싫증나기 쉽다.

포스트 모던한 문화 전반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디자인에서는 그렇다.

디자인스타일의 변화가 미술사적 변화와 궤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이 가는 부분은 주로 양식(스타일)에 한정된다. 마케팅의 맥락에서 움직이는 디자인에는 미술양식 변화의 관념적 배경들이 들어설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하여간 아래 사진처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들은 "바우하우스-포스트모던 디자인"이라는 양극(兩極)척도 위에 포지셔닝 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해보면 스타일의 다양성이나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이나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속에 암암리에 스며든 두 개념의 작용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독일 연방미술관(좌).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기능성을 강조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전형이다. 우측의 두 건물은 해체된 형태, 두 양식의 공존, 탈 기능주의 등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다. ⓒ프레시안


▲ 절제, 단순성, 기능성, 수평수직의 단정한 형태를 보여주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의자, 편집디자인, 찻주전자 (좌). 구체적인 사물이나 스토리의 등장, 과장되거나 해체된 형태 등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의 의자, 포스터 디자인, 시계, 신발, 소파(우). ⓒ프레시안

바우하우스와 포스트 모던한 디자인이 주는 심미적 효과를 생각해보면 기업의 심벌마크처럼 장기간 사용해야 하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모더니즘의 성격이 강하고 과자나 스낵류 포장 디자인에서는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을 해볼 수 있다. 크게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도 나름의 바우하우스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70년째 같은 디자인으로 팔리고 있는 '리츠' 크래커는 기존의 조형원리에 충실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이상 같은 디자인으로 팔리고 있는 일본 '에비센(새우깡)'은 바우하우스 스타일에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우측의 어린이용 스낵 포장은 좌측 디자인보다는 자유롭고 파격적이면서 상품명도 길고 서술적이다.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 70년째 변하지 않고 판매되는 리즈 크래커는 주와 종이 분명하고 전통적 구도와 배색기법에 충실하다. 반면 우측의 과자는 여러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며 주와 종이 분명하지 않은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 강하다. 글자체도 손으로 자유롭게 쓴 듯 한 격식파괴가 있다. 중앙 좌측의 새우깡은 바우하우스 스타일에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 약간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시안

기업의 심벌마크에서도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의 좌측 끝은 바우하우스 성격이 극단적으로 강한 경우이고 우측 끝은 포스트 모던한 성격이 강한 심벌마크다. 그 둘 사이에 여러 기업의 심벌마크를 놓아볼 수 있다. 가장 우측에 있는 동화은행 마크는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해체형(포스트 모던 스타일의 한 특징) 양식이 적용된 디자인이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 대우나 KBS의 디자인은 기하학적 단순성, 대칭, 중앙집중 등 형식주의적인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갖고 있다. LG나 프르덴셜 보험사의 마크에는 얼굴이나 산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들이 등장하고 있어 포스트 모던한 성격이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고 국민은행의 별모양이나 동화은행의 수렵도는 선의 자유로움과 해체된 윤곽으로 보건데 포스트 모던한 성격이 매우 강하다. 타오르는 불을 형상화한 서울예대의 마크 역시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다. ⓒ프레시안

이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유행의 변화 그리고 기업, 국가, 분야별 선호 디자인의 차이에는 나름의 흐름이 있다.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이라는 두 힘의 줄다리기가 다양한 스타일의 차이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식의 흐름 말이다. 나와 상관없는 난해한 관념인 줄 알았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렇게 생활환경에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분류해 놓은 사례들은 엄격한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임의로 분류해본 것일 뿐이다. 그래서 다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바우하우스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설명도 도식적으로 단순화한 감이 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디자인사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유행 예측과 같은 실용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건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면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새로운 접근은 기초연구에서 공급된다. 앞에서 길게 설명한 바우하우스-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도 디자인 양식 변화측정과 분류를 위한 기초연구의 실용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 우리 디자인계도 이런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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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의 글 다 날려 먹게 만들어?

어째, HTML언어가 지맘대로 먹히냐???

 

이왕 말 나온 김에 기능 좀 업그레이드 합시다.

텍스트에 음악을 같이 올려 놓으면,

수정시에는 html 편집 모드로는 아예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이건 음악은 아예 링크시키지 말라고 일부러 막아놓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다른 사이트들은 아무 문제없는데....

 

난 음악을 많이 링크시키는 편인데, 음악 링크시킨 글 한 번 수정할려면,

링크시킨 음악 삭제한 뒤 글 수정하고 난 다음, 삭제시킨 음악 소스 찾아서는 다시 카피해 붙이고...

뭐 이런 작업을 매번 해주어야 글 하나 수정할 수 있어요...

도대체 이런 짓 해가며 글 수정하는 내가 정신 나간 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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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10-2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나간 넘 여기 또 있음 -_-;

내오랜꿈 2007-10-2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여기 올리는 글은 다른 블로그에 같이 올려둡니다...-.-
 

어느 노점상의 죽음은 '한나라당 정권'의 미래
 
[손석춘의 길] 노점상의 자살은 한나라당이 장악할 대한민국의 축소판
 
손석춘
출처:대자보(www.jabo.co.kr) 2007 10 18
 

뜬눈으로 샜을 새벽 4시 30분
일용 일이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나간 아침
어디론가 떠돌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설움 참지 못하고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 줄까.

 
우리 시대의 현장 시인 송경동의 슬픈 노래다. 40대 후반 ’붕어빵 노점상’의 자살 앞에 선 시인의 울분이 묻어난다. 시인이 아닌 먹물로선 더 난감하다. 대체 어떤 글로 이 세상을 이야기 할까.
 
고 이근재. 아내와 더불어 10년 넘게 지하철 역 주변에서 먹거리 노점을 했다. 몸에 문신이 가득한 폭력배가 날뛰며 노점상을 단속하던 바로 다음날, 조용히 목숨을 끊었다. 자신은 물론, 함께 노점을 하던 아내가 단속반에게 온 몸을 구타당했단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던 마흔여덟 살 고인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나마 일용직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을 때, 공원 나무에 목을 맬 때의 피멍 든 가슴을 상상해보라.
 
고인의 죽음 앞에서 불현듯 젊은 엄마의 최후가 겹쳐졌다. "살고 싶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아이를 기어이 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떠밀고 투신자살했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도시빈민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살풍경은. 예순아홉 살까지 평생 남의 땅에서 농사지은 농부가 생존권 집회장에서 공권력에 맞아 죽지 않았던가. 늙은 농부에게도 경찰의 진압봉과 방패는 사정없이 내려 꽂혔다. ’할아버지 농부’가 참혹하게 맞아 죽은 열 달 뒤, 마흔 다섯 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집회장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경기도 고양시의 무차별적 노점철거에 노점상들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 노컷뉴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도시빈민, 농민, 노동자들이 줄이어 목숨을 잃고 있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아니다. 붕어빵 노점상의 죽음 앞에 옷깃을 여미며 쓰는 까닭이다.
 
한나라당 지자체의 살풍경, 그렇다면 한나라당 정권은....
 
’노점상 단속령’을 내린 고양시 시장은 사과는커녕 아무 책임도 없다고 되레 눈 부라린다. 언죽번죽 세상을 비관한 자살이란다. 고양시 자유게시판에는 ’시장 찬가’가 울려 퍼진다.  노점상은 ’세금도 내지 않는 범죄자’라는 네티즌의 글을 보면서, 꿋꿋하게 더 단속하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하릴없이 절망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대체 누가 우리를 저토록 차가운 사람들로 만들었을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점상 단속은 단순히 경기도 고양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청도 이미 노점특별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10월16일 서울시의회에선 가판대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조례 개정안이 통과됐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서울시와 경기도의 지자체 단체장들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신자유주의로 치달아 온 노무현 정권에 더해 지자체를 장악한 한나라당의 권력은 ’붕어빵 노점상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불러오고 있다.
 
기실 도시빈민의 생존권보다 거리 미화를 더 중시하기는 박정희 독재시기 이래 군사정권의 오랜 전통이 아니던가. 그렇다. 에두르지 않고 곧장 묻는다.
 
경기도 고양의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과 40대 빈민의 자살은, 법치의 이름아래 날뛰는 조직폭력배의 활극은, 40대 후반 가장의 피맺힌 자살 앞에서 고양시장과 시청이 대처하는 모습은, 중앙권력까지 한나라당이 장악할 때 대한민국의 내일을 여실히 보여주는 축소판이 아닐까.
 
이미 이명박 후보는 노사관계에서도 법치주의를 강화하겠노라고 으름장 놓고 있다.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무심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집권했을 때 서울과 경기 곳곳의 지자체 권력과 더불어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까. 그 살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과연 나 혼자만 일까.
 
* 글쓴이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공동대표, 한겨레신문 노조위원장, 논설위원 역임. 현재 <손석춘의 청년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새사연(http://eplatform.or.kr/)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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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이야 200% 공감한다. 그러나 스멀스멀 일어나는 이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이명박만 아니면 괜찮다는 말인가? "어느 노점상의 죽음은 '한나라당 정권'의 미래"라고? 정말 이런 류의 글들은 너무 싫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죽어간 노점상, 농민, 노동자의 숫자가 부족해서 그런가? 이른바 노동유연성이란 명목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의 길을 터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그냥 노점상 단속 자체의 비인간성, 생존권 박탈이라는 초점으로만 글을 써도 충분하지 않은가? 왜 여기에 이명박이 들어오고 한나라당이 들어오는가? 민주신당인지 뭣인지 하는 인간들이 정권을 연장하면 과연 지금보다 무엇이 더 나아진다는 말인가? 좋은 글을 쓰다가 왜 마지막에 '삽질'하고 있습니까? 손석춘 선생! 그리고 제목도 참 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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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유혹(La Grande Seduction)

출처 : www.jinbonuri.com 2007-09-01





삶은 여전히 힘들고 별반 나아진 것 없이 흘러가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노라!"는 대선주자들의 외침은 무척이나 공허하게 흐른다. 무관심과 냉소로 점철된,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어떠해야 하고, 우리의 참여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 <대단한 유혹>은 이 물음에 하나의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영화의 배경은 캐나다의 조용한 한 어촌마을이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이는 사회복지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그들'. 무려 8년을 아무 일도 하지 못한('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채 실업수당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조건'을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다. 그 '진지한 투쟁'이 영 생뚱맞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 눈에 그들의 모습은 멋적은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휴먼코미디 영화를 볼 때처럼.

영화 속의 '무료한 현실탈피과정'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늘 여유있는 삶을 꿈꾼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가끔씩 낚시를 즐기며 저녁에는 선술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술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비록 모두들 꽉 짜여진 틀 속에 갇힌 삶을 살아가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한번씩 그러한 삶을 꿈꾸곤 한다.

우리가 꿈꾸는 그런 삶을, 영화속 어촌마을 사람들은 한사코 거부하면서 '인간'이라는 화두에 얼마만큼 진지할 수 있는가를 이미지화 한다.

'놀라운 일'이라고는 찾기 힘든,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무기력한 나날을 살아가는 <세인트 마리>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피동적인 복지' 대신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애쓰는 그들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차분하면서도 커다란 울림을 던져준다.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려는 시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웃들과의 따뜻한 공감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두가지 정 반대의 사건이 오버랩되었다.



하나는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불로장생수 사건. 이른바 '늙지 않는 성분이 포함되었다는 샘'을 홍보도구로 이용하여 관광지로 유명해지지만 결국 마을 사람 전체의 조작극이었다는 것이 들통이 나서 도덕적 비판을 받았던 사건이지만 그후 세월이 흘러 그 마을이 실제 장수마을임이 밝혀져서 더 유명해졌다는 일화다. 또 하나는 얼마 전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전남 신안의 한 작은 섬에 끌려가 40여 년 동안이나 '잃어버린 삶을 살아야 했던 한 사내'의 엽기적인 사건이다.

하나는 조작극을 벌였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듯 그 과정의 시도와는 별개로 그러한 조작극을 벌여야 했던 현실탈피의 과정이 이해되어지는, '장수마을'임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연출이 해프닝에 그치면서 외려 '이해 할 수 있음'의 기억들을 전달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엽기적인 사건은 이웃들의 무관심과 외면으로 인해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과정 속에 담긴, 추한 이웃들의 비인간적 이미지가 몹시도 불편한 기억으로 남는다.

영화는 몇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삶의 과정은 피동적이고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복지가 아니라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노동의 댓가라는 것. 또 하나는 산업화의 과정 속에 내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다 중요한 가치', 곧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나의 친구들이 아니라 내가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라는 걸,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겨야 하는 '적자생존'을 가르치는 교육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잃게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의사를 속이기 위해 급조된 마을의 '크리켓 경기장면'은 희극적 요소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지만, 함께 사는 이들이 힘을 합쳐 이루려는 눈물겨운 투쟁의 과정 속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순수성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누군가를 속이려 했던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고, 그것이 속임을 당하던 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애'라는 것이 확인되고 속이는 과정을 담당했던 이들에게 진정성이 있었기에 마을사람들은 용서를 받는다.

일상에서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일상을 보면서 사람들에 따라서는 영화를 그저 '비현실적인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거나 작위적인 일상에서 잠시 머리를 쉬게 하는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좋다. 비현실적인 일상의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하자. 어디 세상에 '착한' 사람들만 살고 있겠는가. 그러나 8년을 노동하지 못해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은 비현실적인 모습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다. 어쨌든 이 영화는 논픽션이니까.

하루 빨리 이런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진보누리>에 실린 글인데, 원글은 앞뒤 문맥과 글 전개가 영 어색하기에 가져오면서 글 내용과 문맥을 대폭 손질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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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잊힌 전쟁, 버려진 사람들
   
[세계의 창] 잊힌 전쟁, 버려진 사람들 | 글 정인환
출처:<월간 인권 9*10>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http://www.humanrights.go.kr)

아프가니스탄은 ‘그들만의 전쟁’으로 버려진 지 오래다. 아프간에 남은 건 빈곤과 가혹한 삶뿐이다. 모든 세력이 아프간을 사이에 두고 자기들의 이권을 추구하는 동안 힘없는 아프간 국민들만 희생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잊힌 땅’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잊혔다. 적어도 지난 7월 19일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되기 전까지, 이따금씩이라도 아프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난 봄 카불 북부 바그람 공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고 윤장호 하사가 비명에 간 직후, 잠시 그 비극의 땅에 눈길을 주긴 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곳에 남아 있는 다산▪동의부대 장병들도, 가혹한 삶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아프간 주민들도 이내 철저히 잊혔다.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잊힌 전쟁’으로 불렸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병력 손실도 거의 없었던 탓인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기 바쁘게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를 서둘렀다. 2003년 3월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땅은 차츰 지구촌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그해 5월 1일 부시 대통령은 전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올라 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이 들불처럼 번지는 저항세력의 공세에 서서히 발목을 잡혀가는 즈음, 아프간 주둔 미군도 ‘유령’의 출몰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쫓기듯 파키스탄 국경 산악지대로 숨어들었던 탈레반이 어느새 조직을 추슬러 아프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치고 빠지기식 게릴라 전투를 재개한 탓이다. 도로매설 폭탄과 자살폭탄 공격에 허덕이는 미군이 ‘베트남의 악몽’을 떠올릴 즈음, ‘아프간의 이라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테러와의 전쟁’은 9·11 동시테러가 벌어진 지 9일 만인 2001년 9월 20일 워싱턴에서 서막이 올랐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지도부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탈레반 정권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 다음날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알카에다 지도부가 9·11 테러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내놓기 전에는 이들의 신병을 넘겨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탈레반 정권은 같은 달 말, 빈라덴을 파키스탄이나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로 보낸 뒤 현지에서 이슬람법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하자는 수정 제안을 내놨지만, 전쟁을 피하기엔 이미 때가 늦은 뒤였다. 그해 10월 7일 전폭기를 동원한 공습과 함께 토마호크 미사일이 아프간으로 날아들면서 ‘항구적 자유’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9·11 테러가 벌어진 지 26일 만의 일이다.

전쟁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인 그해 12월 7일 탈레반의 심장부인 남부 칸다하르가 북부동맹군의 손아귀에 떨어지면서 탈레반 정권의 붕괴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12월 22일 전쟁 발발 78일 만에 카불에서 하미드 카르자이를 임시 수반으로 하는 아프간 과도정부 수립식이 열렸다. ‘전쟁의 땅’ 아프간에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그로부터 6년 8개월이 흐른 지금, 아프간은 어떤 모습일까?

장터에 들이닥친 최악의 유혈사태

지난 8월 2일 오후,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 바그란 지역의 작은 마을 부그니. 금요성일(이슬람에서는 매주 금요일 점심 합동예배를 한다)을 하루 앞둔 이날은 부그니 마을에 ‘멜라’라고 불리는 주례 장터가 들어서는 날이었다. 상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프간 농촌지역에서 주례 장터는 생필품과 각종 공예품, 농산물의 물물교환과 매매가 이뤄지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 이날도 수백 명의 주민들이 장터에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3시께, 갑자기 어디선가 전폭기가 날아들더니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200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 명이 다쳤다. 올해 아프간에서 벌어진 최악의 유혈참사로 꼽을 만하다.

언론 활동을 통해 분쟁의 땅에 민주주의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전쟁과 평화 보도연구소(IWPR)’가 8월 7일 내놓은 자료에서 목격자들이 전한 ‘현장 상황은 참혹하다.’는 말 외에 따로 표현할 길이 없다. 따가운 오후의 태양 아래 한가롭게 장을 보던 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의 아비규환 앞에 처참히 스러져갔다. 천행으로 살아남은 이들은 병상에서 “섬광이 번쩍인 뒤 살점이 날아다녔고, 뼈가 허옇게 드러난 채 널브러진 주검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고 전했다. 폭격이 잦아든 뒤 현장으로 달려온 주민들은 산처럼 쌓인, 머리가 떨어져 나간 주검의 옷가지를 살펴가며 숨진 가족의 몸뚱이를 확인했단다. 한 마을주민은 IWPR과 한 인터뷰에서 “희생자 중엔 어린이와 노인들도 많았다.”며 “왜 그들이 죽어야 하느냐.”고 울부짖었다.

미군과 나토군에 의한 오폭 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가 나서 일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였을까? 오폭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아프간 정부가 내놓는 의견은 한결같다. “동맹군에 충분히 항의했다. 민간인 보호에 더욱 각별한 주의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문제다. 탈레반이 민간인을 인간방패 삼아….”

부그니 마을 오폭 사건에 대해서도 현지 주둔 미군 쪽에선 목격자들의 증언과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놨다. 미군 당국은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내 “동맹군은 2명의 탈레반 고위 지휘관이 바그란 지역 외곽에서 회합을 열고 있는 장소에 정밀 타격을 가했다.”며 “공격 목표지점 인근에 무고한 아프간 주민들이 없음을 확인한 뒤 유도폭탄을 투하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이런 인식의 간극은, 탈레반 세력이 강한 헬만드주는 물론 아프간 전역에서 현지 주민들과 미국 주도의 ‘동맹군’ 사이가 어떤 상태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탈레반을 포함한 각종 무장세력의 유혈공세도 아프간 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다.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지난 4월 내놓은 <인명피해-아프간에서 저항세력의 공세가 가져온 결과>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아프간에선 탈레반 몰락 이후 가장 격렬한 교전상황이 벌어지면서 민간인 인명 피해가 급증했다. 이 단체는 “도로매설 폭탄공격을 포함한 각종 유혈사태가 전년 대비 최소한 2배로 늘었다.”며 “바깥으로 알려진 사례만 집계해도 2006년 한 해 동안 모두 189차례 폭탄공격이 벌어져 500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자살폭탄’ 테러 그리고 아편 천국

외국군의 점령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삶의 조건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없다. 돌아온 탈레반은 대다수 아프간 주민들에게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도처에서 벌어지는 억울한 죽음은 외국군에 맞서 싸울 명분을 만들어낸다. 인터넷 대안매체 <인터프레스서비스>가 지난 8월 9일 아프간 정치평론가 하비불라 라피의 말을 따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탈레반이 권좌에서 축출된 이후 미국 주도의 동맹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규모는 오히려 급격히 늘었다. 공습 피해자는 대부분 무고한 민간인이지, 탈레반 조직원이 아니다. 게다가 외국군의 장기 주둔은 아프간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대신 결혼식장에 폭탄이 날아들고, 한적한 농촌 마을에 중무장한 외국군이 들이닥쳐 탈레반 색출 작전을 벌이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외국군에 맞서 싸우는 탈레반에 가담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1979년 친소 정권 보호를 명분으로 옛 소련의 탱크가 아프간 땅으로 진입해 들어온 이후 내리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프간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테러와의 전쟁’에 아프간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모두 들씌울 필요는 없겠다. 미국의 공격 이전에도 아프간은 충분히 가난했고, 또 불행했다. 평균 수명은 44.5세에 불과했고, 영유아 5명 가운데 1명이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숨졌다. 30분마다 여성 1명이 임신과 관련한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해 2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고, 성인 70%가 문맹이었다. 농촌 인구 가운데 적어도 30% 이상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자리에 카르자이 정권을 세우고 호기롭게 아프간의 재건·복구를 약속했다. 한국군도 그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서둘러 바그람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아프간에 쏟아 부은 천문학적 군사비에 비해, 재건·복구 관련 예산은 이상할 정도로 인색했다. 지난 2002~2006년 아프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이 사용한 군사비는 약 825억달러에 이르는 반면, 같은 기간 재건▪복구 예산은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3억달러에 불과했다.

‘아프간의 석유’로 불리며, 아프간 국민총생산(GN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편 생산량이 탈레반 몰락 이후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것도 이런 서글픈 현실의 반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7월 4일자에서 “아프간 전체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12% 정도가 아편 재배에 나선 상황”이라며 “영국군이 탈레반과 격전을 치르고 있는 헬만드주를 중심으로 올해 아프간 아편 생산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했다. 탈레반의 근거지인 헬만드주에서 아프간 전체 아편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으니, 그 수익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는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테러와의 전쟁’은 허깨비를 쫓는 싸움이다. 군사전술에 불과한 ‘테러’를 ‘이즘’의 반열에 올려놓고 벌이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그 전쟁이 쉽게 끝날 리 없다. 앞선 이데올로기 전쟁은 반세기 동안 ‘차갑게’ 이어졌다. 이미 30년 세월 전쟁의 포화를 감내해온 아프간 주민들이 얼마나 더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 정인환 님은 <한겨레 21>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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