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훈 _ 문학평론가]


▲ 『남한산성』은 한겨울밤 편전을 울리는 신하들의 울음에서 시작, 봄볕아래 사공의 딸 나루를 쌍둥이자식 중 누구에게 시집보낼까 생각하는 서날쇠의 혼자웃음으로 끝맺는 소설이다.
김훈은 어디선가 주격조사 ‘은/는’과 ‘이/가’의 식별 불가능해 보이는 차이가 결정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자가 사실 대신 의견을 기술할 때 쓰는 조사라면, 후자는 의견 대신 사실을 기술할 때 쓰는 조사라고 한다. 그것들을 구별하지 않을 때, 말은 실체의 가면을 쓴 헛것, 헛것의 가면을 쓴 실체가 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김 훈은 조사(助詞)의 용례에 민감하지만, 통사론이 전공인 언어학자는 아니다. 김 훈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대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칼의 노래』)로 소설의 첫 문장을 쓰는 소설가다. 김 훈은 ‘버려진 섬인데도 꽃은 여전히 피고 있구나’라는 감상의 미문이 아니라, ‘꽃이 피었다’는 계절의 주기와 순환의 사실을 적는 건조한 기록으로『난중일기』가 시작한다는 데에 주목한다. 생각해보면, 7년의 전란을, 아귀지옥의 세상을 사실의 언어로 끝끝내 기록하는 자의 내면은 헤아릴 길 없는 것이다.

김훈은 무엇보다도 말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말이 사람들을 다루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가다. 말을 다루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은 실체다. 그러나 김훈은 사람들이 말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 실체인 말이 헛것으로 바뀌는 과정을 응시한다. 말은 발화되는 순간, 주관이냐 객관이냐를 떠나 욕망에 붙들린다. 말하는 자는 욕망하는 자요, 욕망에 사로잡힌 자다. 말은 욕망이기에 사람들은 말한 것보다 적게 말하며, 말한 것보다 많이 말한다. 말은 결핍이고 과잉이다. 여기서 세상은 사람이 말을 다루는 세상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다루는 세상이다. 말이 사람의 주인인 세상에서 헛것인 말은 세상을 조종하고 사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헛것일까 싶었는데, 말은 어느새 효력 있는 실체가 된다. 사람은 사라지고 말들만 남는다. 말은 실체고 헛것이며, 헛것인가 싶으면 실체다. 가히, 어지러운 말(言)먼지의 세상이다.

김 훈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칼의 노래』에는 헛것이자 실체인 말이 현실과 맺는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대한 통감(痛感)할만한 성찰이 담겨있다. 임진년전란이 일어날 무렵, 길삼봉이라는 이름이 출현한다. 길삼봉은 혹세무민하여 군사를 양성하고 조정을 위협하는 도당(徒黨)의 중심인물이라고들 한다. 들은 사람은 많은데, 본 사람은 없다. 허깨비인지 실체인지, 실명(實名)인지 허명(虛名)인지도 알 수 없다. 몇몇 사람들을 잡아왔고 실토를 하게했다. 처음의 심문은 “길삼봉은 누구냐?”였다. 시간이 지나자 질문의 구조가 바뀐다. “누가 길삼봉이냐?”『칼의 노래』는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질문의 구조가 바뀌자 길삼봉의 허깨비는 피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여덟 살, 다섯 살짜리에게 길삼봉의 실체에 대해 물었고 자백하지 못하자 무릎을 으깨어 죽였다고 써 있다. 비평가 서영채도 지적했지만, ‘길삼봉은 누구냐’와 ‘누가 길삼봉이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후자는 이데올로기적 질문으로 동지와 적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질문이다. ‘길삼봉은 누구냐’에서 길삼봉은 한 명이지만, ‘누가 길삼봉이냐’에서는 모두가 길삼봉일 수 있다. 2001년 9. 11테러 직후, 미국언론은 ‘아랍인 테러리스트’라고 썼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깃발이 뉴욕시내를 뒤덮었을 즈음, ‘아랍인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 아랍인’으로 둔갑해 있었다.

『남한산성』의 첫 문장은『칼의 노래』의 첫 문장과는 정반대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말이’가 아니라, ‘말은’이다. 사실이 아니라 의견의 언어이고, 욕망의 언어이다. 의견과 의견이, 말과 말이 칼과 칼 대신 부딪치고 대립한다.『칼의 노래』가 칼을 든 주인공이 있고 그의 언어가 세상과 부딪히는 소설이라면,『남한산성』은 말(言語)이 주인공이고 말에 들린 자들이 세상을 만드는 소설이다. 40여 일치의 식량, 바닥 난 탄약, 배고픔과 추위로 헐벗은 군사들이 성 안에 있다. 백성들이 있고, 임금이 있고, 신하들과 사대부들이 있다. 말하는 자들은 주로 신하들, 사대부들이다. 성 안에 갇힌 임금의 신하들은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그들은 성 밖에서 청(淸)의 이십만 대군을 맞아 칼과 총, 대포로 전투를 벌이는 대신에 성 안에서 말싸움을 벌인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말하지만, 나중에는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청을 치고 명(明)을 도와 이백년 동안 지켜온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구하자는 크고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편, 치욕을 감내하더라도 살 길을 도모하여 종묘사직을 보존하자는 작고 낮은 목소리가 후벼 판다. 대의를 밝히는 목소리가 화(和), 전(戰), 수(守)는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그 셋은 다르다고 말한다. 대의를 말하는 자는 죽음이 가볍다 말하고, 사세를 살피는 자는 죽음이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최명길을 죽여 사직의 앞날을 보존하자 하는 김상헌과 척화파의 말이 있고 성문을 열면 날 죽여도 좋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최명길의 말이 있다. 다들 옳은 말이고, 옳은 사람들이다.

"김훈은 무엇보다도 말을 다루는 사람
들에 대해, 그리고 말이 사람들을 다루
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가다."
- 본문 중에서
성 안에 갇힌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지고 격렬해질수록 아름다워지며 아름다워질수록 허무해진다. 그런데 치욕의 날이 가까워올수록 말들은 서로 부딪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 알아볼 수 없게 변하기도 한다. 치욕을 감내하자는 신하는 자신의 말이 곧 길이라고 하고, 치욕은 안 된다는 신하는 말은 길과 다르다고 말한다. 또다른 자는 말은 길이 아니지만 글을 밟는다면 글과 길은 곧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말은 의미를 잃고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그렇기에 임금은 말한다. 말이 아름답다, 준열하다, 어지럽다, 괴이하다, 어렵다. 임금은 말들의 안팎에 있다. 임금은 성문을 열고 치욕의 길을 밟지만, 그것은 누구의 뜻을 따랐다기보다 주어진 길을 간 것뿐이다. 칸이 오줌을 누는 동안에는 임금도 하던 절을 멈춰야한다.

사람이 말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소모한다. 말이 바닥난 곳에서 임금이 울고 조정대신들이 운다. 말이 끝나고 소멸된 자리에 울음이 있고 울음이 끝난 자리에서 말이 시작된다.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수어사 이시백처럼 울지 않는 자가 더러 있고 말과 울음,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사관 또한 울지 않는 자로 잠깐 비친다. 그럼 성곽 안쪽의 말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성 바깥에는 20만 대군을 호령하고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는 칸의 말이 있고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통역관 정명수의 말이 있다. 정복자의 화포처럼 펴 내지르는 말이 있고, 일찌감치 “말의 신기루”를 터득하여 말의 안팎을 넘나드는 말이 있다. 이들의 삶과 말의 물질성 편에서 보면, 성안의 말은 헛것이다.

말이 그 실체를 드러나는 자리에 백성의 삶이 있다.『남한산성』은 성 안팎의 나라 잃은 백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병을 건너게 하고 그 대가로 식량을 마련하겠다는 사공은 “나를 따르지 않겠느냐?”는 김상헌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오.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 김상헌은 사공을 칼로 벤다. 이 놀라운 장면의 끝을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날 새벽에 강은 상류부터 먼 하류까지 꽝꽝 얼어붙었다.” 김상헌은 청병을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공을 벤 것이고, 사공은 먹고살기 위해 돌아가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백성인가”라고 김상헌은 물었던 것이고, 이것이 백성이라고 죽은 사공은 아마도 대답했을 것이다. 대장장이 서날쇠도 있다. 연장을 다루는 자, 장인에 대한 김훈의 외경감이 엿보이는 인물설정이다. 서날쇠는 쇠를 녹여 갖가지 연장을 만들고, 좋은 흙을 골라내며, 똥을 삭혀 저장해둔다. 물, 불, 공기, 흙 모두를 다룬다. 말의 현란함과 삶의 단순성이 교차하고, 비상사태와 일상이 맞물린다. 대의냐, 치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과 자식을 돌보기 위해 살아야하는 백성들이 있다.

『남한산성』은 한겨울밤 편전을 울리는 신하들의 울음에서 시작, 봄볕아래 사공의 딸 나루를 쌍둥이자식 중 누구에게 시집보낼까 생각하는 서날쇠의 혼자웃음으로 끝맺는 소설이다. 김훈에게 던지는 세간의 질문, 당신은 누구편이냐에 대한 김훈의 묵시적 대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웃음이 아닐까.



*복도훈 문학평론가는 2005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주요 평론으로 「포스트모던 문명의 불만, 괴물들의 이상한 가역반응」, 「시체, 축생, 자동인형」, 「연대의 환상, 적대의 현실」 등이 있다. 공역서로 슬라보예 지젝 외,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 b,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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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의 세 가지 매력
[문화+프리즘] <보름달이 뜨는 밤>, <가을 이야기>, < O 후작 부인>

출처 : <컬쳐뉴스> 2007-10-24
[정이창 _ 문화비평가]


에릭 로메르의 영화 세편. 위에서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 <가을 이야기>,  < O 후작부인>
▲ 에릭 로메르의 영화 세편. 위에서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 <가을 이야기>, < O 후작부인>
에펠탑, 바캉스, 포도밭, 철학적 수다.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에릭 로메르의 영화도. 올해로 여든일곱이 된, 이제는 노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이 노년의 감독은 이미 오래전에 경력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누벨바그 동료들과 달리 여전히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젊은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아마도 작은 영화들(영화의 규모나 미학이나 태도에 있어서)을 꾸준히 만들면서 영화적 체력과 도전정신을 소모하지 않고 비축해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을 분위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 - 남녀관계의 어긋남에 대하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릭 로메르의 회고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사항은 <보름달이 뜨는 밤>의 상영 여부였다. 오래전 프랑스문화원에서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던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내가 처음으로 만난 그의 영화로 내겐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대체로 비슷한 구성을 취한다. 주인공을 난감한 상황에 밀어 넣은 뒤 그 또는 그녀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만든다. 난감한 상황이란 주로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고, 이는 정서적 흔들림과 도덕적 갈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감정에 개입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한다. 그래서 나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선택과 결단과 기다림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의 주인공 루이즈는 사랑의 달콤함은 누리면서도 사랑이 주는 구속에서는 벗어나고 싶어한다. 파리 외곽에서 레미와 같이 지내는 루이즈는 애인이 모든 일을 함께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자 파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두집 살림을 한다. 한편 옥타브는 그녀에게 친구 이상의 관계를 집요하게 원하고, 바에서 만난 바스티앙은 그녀를 침대로 유혹한다. 루이즈는 자신이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고 생각한다. 레미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애인으로, 옥타브는 가끔 만나는 친구로, 바스티앙은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 문제는 남녀 사이가 그렇게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다.

결국 루이즈는 레미의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그녀의 우려대로 레미는 루이즈의 친구의 친구와 눈이 맞아 그녀 곁을 떠난다. 그러면 이제 루이즈는 쿨하게 관계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할까. 아니면 홀로 된 자의 자유를 만끽할까. 그녀는 독립적인 삶을 항상 중시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표정을 보니 왠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돌아가던 시절에도 그녀 표정은 항상 그늘져 있었다. 예쁜 용모 덕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지만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마치 자신의 확신을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보름달이 뜨는 밤>과 흥미로운 관계에 있는 영화는 <겨울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 펠리시아 역시 많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고민을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하지만 주소를 잘못 건네는 바람에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샤를르를 우연히 시내에서 만나자 현재의 애인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샤를르의 품에 안긴다. 영화는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루이즈와 펠리시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루이즈는 겉으로는 씩씩한 척하지만 자신의 삶에 확신이 없고, 펠리시아는 자신의 선택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럼 에릭 로메르는 이들 중 누구 편일까. 앞서 말했듯이,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선 인물을 보여주고 관찰할 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가을 이야기> - 중년여성의 사랑 찾기

▲ 에릭 로메르, 이제는 노장이라는 말로도 부
족한 이 노년의 감독은 이미 오래전에 경력
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누벨바그 동료들과
달리 여전히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젊은 감각
을 잃지 않고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취향을 크게 타는 편이라서 남들에게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그 영화가 바로 <가을 이야기>다. 중년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다른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사변적인 대사가 있고 사건이 천천히 진행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가을 이야기>는 현실감 넘치는 대사에 무엇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등장인물도 여럿이고 사건들도 비교적 많이 일어나고 서로 풍부하게 얽힌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보통 주인공들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갈등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 마갈리는 (그리고 다른 인물들 역시)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카메라조차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적극 관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주제는 중년여성의 사랑 찾기다. 마갈리는 남편을 오래전에 잃고 포도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산다. 그런 그녀에게 짝을 맺어주려는 두 명의 후원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서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친구 이사벨로, 딸의 결혼을 앞두고 문득 시골에서 외롭게 지내는 친구가 생각나서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 또 한 명은 마갈리의 아들의 여자친구다. 그녀는 엉뚱하게도 자신이 틈틈이 만나고 다니던 옛 스승을 남자친구 어머니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두 명 모두 당사자 모르게 일을 진행시키다가 이사벨의 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모두들 만나게 된다.

주인공이 중년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이 영화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리저리 생각하고 재는 젊은이들과 달리 이들은 새로운 기회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렘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중년의 로맨스를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마갈리의 얼굴은 가끔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프랑스 남부의 시골 풍경은 적막하고 때로는 황량하기까지 하다. 아무런 감정도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사진 같은 분위기다. 이것이 로메르가 보여주는 중년의 모습이다. 이럴 때는 스쳐가는 한 자락 인연도 소중한 법. 소극적이고 다소 위축되어 보였던 마갈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에 몸을 맡긴다.

<가을 이야기>는 노년에 이른 에릭 로메르의 완숙한 경지를 내보인 작품으로 그가 평생 영화 작업에 매달리며 깨달은 인생의 교훈을 담담하게 펼쳐 보이는 영화다. 문득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말년에 만든,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남게 될 어머니에게 인연을 맺어주려는 영화 <가을 햇살>이 생각난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이렇듯 풍요로운 결실과 함께 겨울이라는 외로움을 예비하고, 우리는 외로움에 대비하기 위해 마음을 분주히 놀린다.

<O 후작 부인> - 한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 에릭 로메르 회고전 포스터
우리는 에릭 로메르를 문학적인 영화를 주로 만든 모럴리스트로 생각하지만 그도 평생 이런 양식의 영화만 만든 것은 아니며 가끔은 외도를 했다. 그는 시대극을 세 편 만들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1976년에 나온 <O 후작 부인>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스탠리 큐브릭은 <배리 린든>(1975)이라는 시대극을 만들었고, 리들리 스코트는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결투자들>(1977)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O 후작 부인>은 에릭 로메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이례적인 작품이지만 세계 영화사에서도 독특함으로 유례가 없는 영화다. 독일 작가 클라이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독일어 대사를 사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오직 한 장면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대략적인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남편을 잃은 후작 부인은 전쟁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대피하는 와중에 병사들에게 겁탈당할 위험에 처했는데, 러시아 백작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이후 백작은 집요하게 부인에게 청혼을 하지만, 엄격한 규율에 재혼하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한 부인은 결정을 계속 미룬다. 그런데 몇 달 후 갑자기 그녀의 배가 불러온다. 그녀는 분명 성관계를 가진 기억이 없는데 의사의 진단 결과 임신으로 밝혀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문제의 장면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백작에 의해 위기에서 벗어난 부인은 지친 몸으로 임시 거처에 마련된 침대에 누워 달콤한 잠에 빠진다. 그런데 이 장면이 아주 수상하다. 헨리 퓨젤리의 그림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포즈로 누운 부인의 가운의 주름이 마치 꿈틀대는 벌레들처럼 너무도 생생하고 육감적이다. 카메라는 이 장면을 집중해서 잡은 다음 부인을 바라보는 백작의 표정을 줌인으로 잡아낸다. 이 장면이 안겨주는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도 이 장면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O 후작 부인>은 강렬한 이미지 하나와 이를 설명하기 위한 평범한 (혹은 지루한) 나머지 장면들로 구성된 영화다. 물론 19세기의 성윤리와 경직된 귀족사회의 규율을 비판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영화는 일차적으로 이미지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마치 연극 세트처럼 말끔히 정렬된 무대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을 따라가는 카메라다. 때로는 가만히 정지해서 인물들이 프레임을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인물의 감정이 움직이는 장면에 이르면 그의 동작을 천천히 따라간다. <O 후작 부인>은 로메르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영화이지만 새로움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꼭 한번 찾아서 볼 만하다.



* 정이창 문화비평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10대를 보냈고, 팝 음악과 영화로 20대 청춘을 보냈다. 음악, 영화, 책 등을 벗삼아 자유기고가와 번역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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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로메르 회고전>이 끝나면 다음주에는 씨네큐브에서 <국제단편영화제>를 한다. 월터 살레스, 프루트 첸, 톰 튀그베어 감독 등이 만든 단편영화라... 다음주 주말에는 아내를 꼬드겨 광화문에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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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굳힌 작가 김훈.

‘칼의 노래’(생각의나무)를 시작으로 ‘현의 노래’(생각의나무) 그리고 ‘남한산성’(학고재)까지 김훈의 역사소설이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은 30~40대 남성 독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될 정도다. 여기저기서 한국소설의 위기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김훈은 이런 한탄에서 비켜나 있다.

이런 기현상에 대해 평론계는 김훈에 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내놓고 있다. 특히 계간지 ‘창작과비평’과 ‘문학의문학’ 가을호는 김훈의 역사소설 비평을 동시에 내놓아 화제가 됐다. 창작과비평은 문학평론가 김영찬씨의 ‘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이라는 평론을 실었고, 문학의문학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씨의 ‘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라는 글을 담았다. 두 평론은 김훈의 역사소설과 작가 김훈에 대한 장점과 한계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point 1 김훈의 역사소설이 사랑받는 이유

‘김훈의 소설에서, 전쟁이란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됨됨이를 축약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알레고리다. … 따라서 그의 소설은 역사소설이라는 외양을 하곤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역사의 옷을 빌려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와 자아의 자리를 되새기는 자의식적 소설이다. … 따라서 사실은 이렇다. 그것은 모두 ‘세상의 길’ 위에 선 ‘나’의 이야기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역사는 오늘의 삶과 자기 정체성을 되비쳐 볼 수 있는 유력한 준거틀이다. 소설가들이 역사를 빌려오는 것은 얼크러진 현실의 복잡한 정황 때문에 그것을 전체로서 그러쥐고 통찰하기 어려울 때다. … 1인칭 서술자 이순신의 목소리는 실은 김훈 자신의 목소리다. 김훈은 교묘하게 복화술을 한다. 이순신이 모멸과 치욕의 현실 앞에서 드러내는 자의식은 실은 김훈 자신의 자의식이다.’(‘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김영찬씨와 장석주씨는 김훈이 역사소설에 매진하는 이유를 ‘도피’라고 설명한다. 김영찬씨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불편하니까,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한 단계 걸러주는 것이다”면서 “독자는 역사소설을 통해 현실과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김훈의 문체가 보여주는 미학적인 아우라 같은 것을 함께 느낄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장석주씨는 “김훈의 역사소설은 현실과 맞서기 어려울 때 찾는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소설에서 하는 것보다 역사소설을 통해서 하는 것이 독자나 작가 모두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현실소설에서는 많은 제약을 받지만, 역사소설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point 2 변하지 않는 허무주의

‘김훈의 소설에서 세상의 참혹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세상이 살육과 유혈로 얼룩지고 지배와 폭력이 창궐하며 고통과 죽음이 흥건한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참혹함이란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질서에 압도되는 김훈의 인물들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는 정념이다. 그것은 무력한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어떻든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고 굴욕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하고 도저한 체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 김훈의 소설은 그렇게 저 불가피를, 그리고 불가피 앞에 선 자의 우울과 허무를 냉정한 시선으로 드러내놓는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이순신의 사유, 고뇌, 외로움, 불안, 절망은 박제된 역사적 인물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구체적 현전이다. … 오로지 제 운명의 버거움을 힘겹게 견인해가는 자의 버거움이 드러난다. 대타적세계(세상과 불화로 인해 고립되는 것)와의 되먹임(피드백)의 고리가 끊긴 곳에 제 실존을 세운 자는 필경 허무주의자로 나아간다. 허무주의자는 생존 상의 가치가 결여된 선택과 행동을 취한다.’(‘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작가 김훈에게는 ‘허무주의자’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하지만 김훈의 허무주의는 독자들에게 큰 사랑과 동감을 얻어내고 있다. 김훈이 펴낸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이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등의 에세이집에서도 그의 허무주의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김훈의 역사소설에서도 허무주의가 깊숙이 깔려 있다고 두 사람은 평가하고 있다. 김영찬씨는 “김훈에게는 허무주의, 파시스트, 남성우월주의 등의 단어가 따라다닌다”면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 왜 그런 규정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point 3 김훈은 역사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

“거대한 불가피 앞의 무력한 우울과 신음을 통절하게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게 미학화하는 김훈의 소설은 … 그러면서도 김훈은 일각의 그들과는 달리 결코 공상이나 판타지, 취미나 텍스트 등으로 도주하지 않고 현실의 감각을 환기시키면서 그것을 진지한 사유와 성찰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다. 저 스스로 2000년대 문학의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바로 그 안에서 그와는 또다른 길과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는 김훈 소설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김훈 소설은 진화 중이다. 진화의 단계에서 역사소설은 악보 상의 휴지부(休止符), 잠시 쉬어가는 쉼표다. 김훈은 이 휴지부, 쉼표를 빠르게 건너갈 것이다. 지금까지 김훈 소설은 그 본질에서 독백이다. 앞으로 나올 소설은 독백에서 벗어나 다향의 울림을 가진 대화일까?’(‘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역사소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훈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앞으로도 역사소설을 통해 그의 매력을 계속 발산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소설로 변신을 꾀할 것인지. 두 평론가는 김훈이 이제는 현실소설로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장석주씨는 “‘남한산성’의 인물 캐릭터가 너무 기계적으로 나뉘어 있고,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평하면서 “(김훈이) 언제까지나 역사소설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작품은 현실소설이 될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작품성 측면에서 보면 현실소설이 실패할 확률은 60% 정도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예상을 하는 이유는 역사소설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 않은 단점이 현실소설에서는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성우월주의나 몸에 대한 파시슴적인 요소들이 현실을 다루면 다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김영찬씨 역시 “역사소설은 이제 그만 쓰고 현실문제를 다룰 것 같다”면서 “그렇다고 그의 작품 성격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평한다. 또한 “현실소설을 펴냈을 때는 역사소설이 보여줬던 흡입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두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역사소설에는 김훈의 매력과 장점을 부각하고 동시에 독자들이 불편할 만한 내용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김훈이 현실소설을 냈을 때는 그동안 잠복해 있던 불편함이 여과 없이 나올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훈의 다음 행보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오랜꿈 ----------------------------------------------------------------

분명 현실도피요, 현실역사에 참여하지 못한 자의 비겁함이리라. 그래서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할말이 많아지는 허기짐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 허기짐은 사소한 행위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비장하고 숭고한 고뇌와 결단 끝에 내린 선택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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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말을 부정적 언어로 만들어 놓고 청와대에 앉아 있는 인간은 다 떠나고 미국만 남아 있는 이라크에 파병연장을 한다고 '지랄'이다. 뭐, '자기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파병반대했을 거'라나 어쩐다나? 아주 '생쇼'를 해라.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랬나? 지금이라도 그만 두면 환영할 사람 많을 걸?

이 와중에 또다시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등장하고 있다. 도대체 저넘의 후보단일화 소리는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진보와 개혁을 위해' 후보 단일화 해야 한다고? 집권여당, 민주당 등등을 '진보'라고 믿는 교수라는 인간들 머리 속을 해부해보고 싶다. 한나라당만은 절대 안 된다고? 왜 안 되는데?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럼 사람도 아닌가? 아예 그 사람들을 대한민국에서 없애버리지 그래?

5년 전에 후보단일화론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노무현이 대통령되어서 할 수 있는 정도는 이회창이 집권한다고 해도 진보세력과 시민단체, 야당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을 압박해서 쟁취할 수 있는 것들보다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 판단이 틀렸었다. 지금은 그 말을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무엇을 쟁취하기는 커녕)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한국사회의 진보세력 발전에 엄청난 장애물이 될 것이다"라고.

아마도 수십 년 뒤 진보세력들은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다. 진보라는 말을 부정적 언어로 만들어놓은 정신나간 작자가 한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걸 극복하느라 죽을 고생 다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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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이인제' 보고 단일화 하라는 교수님들

이명박,정동영,이인제,문국현,권영길,심대평 그리고 비주얼도 우울한 대선

이민
출처:<대자보>(www.jabo.co.kr) 2007/10/20 [05:22] ⓒ대자보


비주얼도 우울한 대선

주말이니 오늘은 가벼운 이야기 몇가지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고 그 산하기관으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있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같은 전국단위 선거의 공식방송토론을 주관하는 기구다.
 
대선 TV토론은 등록한 모든 후보가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리그로 나뉘어 진행된다. 5년 전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기억 속엔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의 토론이 주로 남아있지만, 이한동과 장세동, 그리고 스님 한 분이 나오는 토론이 다른 시간대에 별도로 편성된 바 있다.
 
편의상 1부 리그와 2부 리그라 부른다면, 1부 리그 참가기준은 현행법상 이렇다. ① 국회의원 5인 이상의 정당추천 후보 ② 직전 전국단위선거 정당득표율 3% 이상인 정당추천 후보 ③ 선거기간개시일전 30일간 언론기관 여론조사결과 평균지지율 5% 이상인 후보.
 
지금까지 등장한 후보들을 이 기준에 맞춰보면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심대평 후보가 1부 리그 참가 자격을 획득한 상황이고, 최근 여론조사 추세를 감안하면 문국현 후보가 무난히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TV를 켜는 순간 한 숨부터 나올 것 같다. 이변이 없는 한 저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단일화가 되면 후보가 줄겠지만 여섯 명이 모두 나온다면 어느 지점에서 쟁점이 형성될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자칫 웃찾사는 되지 않을까?
 
▲2007대선, 무원칙이 난무하니 대선이 희화화 되고 있다. 그 중에 압권은 이른바 진보개혁 교수 27인이 권영길 이인제까지 묶는 단일화 주장이다.     ©이미지 합성
이와중에 한 동안 조용하던 노대통령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최근 치솟은 지지율에 자신감을 회복한 모양이다. 별다른 제재가 없다면 그 스타일을 감안할 때 각 후보의 공약이나 TV토론 내용에 시시콜콜 코멘트를 달 것이다. 장외토론자가 한 사람 더 있는 셈이다.

그래서 어쩌면 후보와 후보가 아니라 현직 대통령과 야당 후보가 선거전의 중심에 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한 것은 노대통령이 뭐라 말할수록 그와 가까운 순서대로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이다. 혹여 그것을 노리는 것은 아닐까?

‘권영길ㆍ이인제’ 단일화를 촉구하는 진보개혁 교수들

지난 18일 오전 진보와 개혁을 위한다는 교수들 27명이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후보단일화의 추진만이 진보개혁세력이 다시 살아나고 결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 권영길’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좋고 정치에 개입할 자격이 있는 것이니 누구는 빠지라고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교수들이 “주제넘게” 정치에 개입한다는 무식한 비난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어딘가 모르게 비주얼이 좀 이상해서 하는 소리다.

정동영과 이인제는 과거 민주당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고 정동영과 문국현은 범여권 후보로 분류가 되고 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정동영과 문국현을 들어내고 이인제와 권영길을 놓고 보면 진보개혁세력 단일화를 이 커플에게 주문하는 것은 솔직히 좀 웃기지 않은가?

"정동영과 문국현의 정책은 상호보완적일 수 있고 그것은 정책연합으로 결합될 수 있다"고 교수들 본인이 정치적으로 판단했다는데 그것까지 시비 걸 생각은 없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인제와 권영길은 뭐가 호환된다는 것인지 그 설명은 빠져있으니 그게 의아스러운 것이다.

교수들은 성명서에서 “대선 승리만을 위한 정치적 야합이나 선거공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니 야합과 공학 대신 충청대통령과 진보대통령이 충청과 진보를 가지고 정책연합을 하라는 얘기인가? 그러면 우리사회가 진보하고 개혁이 된다는 것인가?

교수들은 정동영과 문국현, 이인제와 권영길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의 형성과 구축에 적극 기여하고자 한다”고 자신들의 포부를 밝혔다. 이인제와 권영길을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묶어내는 정책패러다임, 이 대목에서 차라리 개그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개그를 하라!

오늘날 정치가 망가진 책임의 9할 이상은 물론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러나 ‘배제적 양극화 사회’를 남긴 채 민주화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성찰이 필요한 곳이 비단 정치권만은 아니지 싶다. 진보와 개혁을 위한다는 교수들, 함께 성찰하자.

교수들이 개그맨으로 전업한 가운데 난데없이 들려오는 추억의 그 이름, 이회창이다. 이인제의 컴백과 장외주자 노무현에게 자극 받은바 크신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권영길 후보도 있다. 어차피 비주얼 기대하기는 틀려먹은 대선이다. 거물들의 리턴매치, 성사만 된다면 빅 매치 아닌가. 갈수록 태산이다. / 정치 칼럼니스트



진보교수? 조폭논리로 민노당 괴롭히지 말라

[레디앙의 눈] 교수들의 단일화 촉구 비판 "아예 반공법을 부활시켜라"

레디앙
출처:<대자보>(www.jabo.co.kr) 2007/10/20 ⓒ대자보


18일, ‘진보개혁 교수’ 27명이 ‘진보개혁진영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2007년의 대통령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의 역사를 결산하는 한편 이에 바탕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적 계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특히 대내적으로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국민의 삶의 질을 증진 …… 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정치가 이렇듯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재벌과 언론 그리고 검찰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즉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가 정당과 정치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에 우리는 대통합 민주신당과 민주당 그리고 창조한국당, 나아가 민주노동당 등 진보개혁세력이 후보단일화에 적극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 과거에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진보개혁세력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진보개혁세력의 각 정당과 후보는 우리 민주주의 발전의 대승적, 거시적 관점에서 후보단일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 일동, 「‘정책 경쟁’을 통한 진보개혁진영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한다」, 10. 18 

     
▲올 초에 열렸던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주최 토론회. 이 토론회에서 정해구 교수(오른쪽)와 정대화 교수(왼쪽 두 번째, 현 대통합민주신당)는 연합론을 주장하였고, 이재영 기획위원은 독자론을 주장했다.     © 참세상 제공
 
첫째, 진짜로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후보단일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에 돈을 내든 자원봉사를 하든 할 일이다.
 
세상 어디에 자유주의 정당의 영구 집권으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나라가 있는가?
 
어느 나라에서든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의 집권이나 그런 정당의 성장에 의해서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진전되었고, 보수당이나 자유당만이 강력한 일본이나 미국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후진적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 않는가?
 
둘째, ‘과거에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진보개혁세력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인식은 시대 변화에 눈감은 과거지향적 역사관이다. 예전에 같이 놀았으니, 지금도 같아야 한다는 논리는 해병전우회나 조폭의 논리이고, 그런 식이면 굳이 한나라당을 제외할 이유도 없다. 이런 것이 바로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못 넘어서게 하는 퇴행적 세계관이다.
 
역사에 있어 민주화란, 다양한 세력의 이해 분화를 위한 과도 과정이다. 1997년 이후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그 때에서야 발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민주노동당이 범여권과는 전혀 다른 곳에 역사적 계급적 기원을 두고 있음을 말한다.
 
셋째, 이들에게는 후보단일화를 촉구하고 나설 자격이 없다. “다함께 잘 해 보세요”라는 중재나 알선은 제3자가 하는 것이지, 이해 당사자가 할 말이 아니다. ‘개혁 교수’ 27명의 면면이 그러하다.
 
김연철(고려대, 정치학)은 통일부 장관 시절 정동영의 보좌관이었고, 지금은 후보 자문역이다. 김태일(영남대, 정치학)은 열린우리당 대구시당 위원장이었고, 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위원이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이었고, 서동만(상지대, 정치학)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었다. 정해구(성공회대, 정치학)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일했고, 조현옥(이화여대, 정치학)은 한명숙 캠프로 가기 직전까지 청와대 비서관이었다.
 
자, 이렇다면 이들의 후보단일화 요구는 ‘개혁 교수’들의 중재가 아니라, 전현직 여권 정치인들이 민주노동당더러 “너 나오지 마”라고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후보단일화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언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게 선거 때마다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너 나오지 마”라고 괴롭히는 것은 정치 테러다.
 
이런 구걸과 협박은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민주노동당 같이 작은 정당은 괴롭히지만, 남 도움 없이 제 힘만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미숙아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셈이다.
 
‘선출되지 않고,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정당과 정치를 압도’하는 것은 재벌, 언론, 검찰 탓만이 아니다. ‘선출되지 않고’ 임명되어 정치에 몸담았다, 어느날 슬그머니 돌아와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마음껏 향유하며 아르바이트 정치를 하는 사람들 탓이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개혁파 교수 정치 금지법’이나 ‘정치 교수 복직 금지법’이라도 만들고 싶다. 하지만 나로서는 남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죄악이라 굳게 믿으므로, 선거 때마다 귀찮게 후보단일화 어쩌구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은 선거에 나오지 말라고 공직선거법이나 헌법을 개정하라 권한다. 그도 아니면 아예 반공법을 부활시켜라. / 이재영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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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 화공들은 색을 만들어 그렸지만
[석유문명과예술] 색의 지식을 파괴하는 석유문명과 자본주의

출처:<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2007-10-20
박승옥 _ 시민발전 대표


치자 오베자 소목으로 염색한 천을 말리고 있는 모습
▲ 치자 오베자 소목으로 염색한 천을 말리고 있는 모습
사람의 눈은 물체의 색을 바라볼 때 3원색을 기본으로 삼는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과 침팬지의 눈은 정확히 같다.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일부 포유류 동물들은 두 가지 색을 기본으로 보는 2원색 감각 눈을 갖고 있다. 개와 고양이는 물체를 볼 때 색을 보기는 하지만 사람과 침팬지처럼 다양하게 보지는 못한다. 물론 박쥐처럼 색을 보지 못하는 색맹도 있다.

그러나 일부 새들은 4~5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삼는다. 이들 새는 우리가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보다 훨씬 찬란하게 자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곤충과 어류, 포유류는 자외선을 보기도 한다.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 동박새는 지구 자장을 눈으로 분명히 볼 수 있다. 이들이 보는 세계는 사람이 보는 세계보다 얼마나 아름답고 풍부할 것인가. 공작 수컷의 화려한 꼬리와 비비원숭이의 얼굴과 엉덩이 색, 아마존 밀림의 그 수많은 형형색색의 새 깃털은 그 자체가 그림이고 예술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럼에도 사람의 눈은 축복이다. 사람들은 이 자연의 선물로 세계를 보면서 느끼고 그리고 이 느낌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부터 무엇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늘 유물과 유적 등 눈에 보이는 것만을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땅에 그림을 그려 의사표시를 하거나 바위를 돌로 긁거나 모래를 쌓아 무엇인가 형상화해보는 행위는 참으로 오래된 일상생활이었다고 짐작된다. 물론 증거는 세월의 이끼에 덮여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멸종되어 가고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산악지대와 열대우림 원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인류학 보고서들을 보면 실제로 수렵채취 부족들의 예술행위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또 탄성을 자아낼만큼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색채는 바로 자연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식물과 동물, 광물 등에서 얻었다.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도기나 채색도기 등이 한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안료로 이산화망간 등 광물질을 사용했다.

살아있는 들소가 막 뛰어나올 것만 같은 생생한 그림으로 유명한 1만 6천년 전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안료로 이산화망간 등 광물질을 사용했다. 3만년 전의 쇼베 동굴 벽화와 아프리카 나미비아 동굴벽화 또한 천연 광물질을 사용했다. 이런 원시 벽화 가운데는 아직도 그 안료가 무엇인지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밝히지 못한 것까지 있다.

사실 근대 이전의 그림은 모두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였다. 아름다운 붉은색 크랍 색소는 꼭두서니 뿌리에서 뽑아냈다. 황제의 보라색은 시리아 달팽이에서 추출된 것이다. 아라비아의 노란 크로커스 꽃에서는 왕의 사프란이라고 불리는 노란색이 나온다. 물론 이런 천연 염료는 만들기도 어렵고 재료도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식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금값보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보라색과 노란색 등 일부 색은 황제나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하고도 특별한 색이었고 귀족과 왕가의 전유물이었다. 동양에서도 노란 색은 황제의 색으로 고귀하게 다루어졌으며 중국산 군청색은 매우 비싸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색이 권력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은

신라시대에도 신라 왕실이 일반 백성들의 붉은 천 사용을 금지시켰다. 붉은 천 낭비를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쪽, 홍화, 치자, 차조기, 꼭두서니 등의 식물로부터 잿물을 사용해 은은하고도 다양한 천연색을 얻었다. 널리 알려진 감물들이기나 백반으로 봉숭아물을 들이기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색을 얻는 손쉬운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색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끝이 없을 정도이다. 열여섯에 이미 유명세를 타고 열아홉에 붓을 꺽은 랭보는 프랑스어의 모음을 색깔로 표현하는 시를 썼다. 검은 아, 하얀 으, 빨간 이 등으로 표현한 랭보의 시는 말과 색과 향기의 교감을 노래하면서 아마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세계와 자연의 강렬한 소통 욕구를 그렇게 시로써 표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은 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밤을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는 검은 색은 수십 종류가 있다고 동생에게 말한 바 있었다. 고흐는 그만큼 예민하게 자연을 관찰하고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예찬하던 자연주의자였다.

그러나 어쨌든 근대 이전 모든 그림은 천연염료로 그린 것이었다. 조선시대 도화서에서는 화공들이 직접 색을 만들어 썼다. 그리고 때에 따라 값비싼 색을 쓰는 것은 황실과 귀족의 특권이었다.

▲ 석유에서 온갖 무지개빛 색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의 혁명은 열일곱살의 윌리엄 헨리 퍼킨이 1856년 석탄타르에서 아닐린 보라색을 얻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의 합성색인 이 색에 티리안 보라색(Tyrian Purple)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새로운 염색재료는 1859년부터 비단염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석탄과 같은 종류의 탄소화합물로서 사이좋은 이복남매인 석유에서 온갖 무지개빛 색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석유는 이제 색을 만드는 마법의 검은 액체가 되었다. 값싼 석유로부터 값싼 색을 엄청 다양하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현대 대중미술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왕실에서만 사용되던 푸른색은 대청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왕실 소유의 대청재배지는 특별관리지역이었다. 그런데 석유로 만든 인디고블루는 푸른색을 대중들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원래 인디고블루는 인도의 관목 잎사귀를 오줌과 함께 오랫동안 처리해서 만든, 유럽의 대청보다도 훨씬 광채나고 귀티나는 푸른색이었다. 오죽하면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했을 때 맨먼저 인도로부터 수입된 것이 바로 인디고블루였다. 1577년 신성로마제국은 인도로부터의 인디고블루 수입을 금지시켰다. 1654년에는 아예 황제령으로 사용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 금지령은 173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풀리게 되고 대청 경작지 농민들은 다른 대체 작물을 찾아나서야 했다. 포르투칼과 스페인, 그 뒤를 이어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이 식민지 주인이자 해양강국으로 이 인디고 불루로 수세대에 걸쳐 부를 축적했다.

그만큼 색을 둘러싼 역사에서 석유가 이룩한 혁명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와 함께 19세기 중반 바이엘(1863년), 획스트(1863), 바스프(1865) 등 세계에서 손꼽는 색조 콘체른들이 탄생했다. 이들 거대 화학회사들은 석유에서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뽑아내 떼돈을 벌었다. 물론 바스프가 있던 루트비히스하펜 시는 그 댓가로 늘 유황 냄새가 도시에 퍼져 있었고, 시민들은 화가들의 그림을 위해 최근까지도 그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했다. 새로운 색 생산 기술은 지금까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산업분야이다. 예컨대 아크릴 물감은 1956년에 상품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또다른 상실도 있다. 인공색의 등장과 함께 자연에 대한 지식, 천연염료에 대한 지식이 사라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파괴해야만 성립되는 체제이다. 공동체가 사라져야만 토지에서 추방된 자유로운 인간, 임금노예가 될 자유만 있는 노동자가 넘쳐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자본주의와 결합된 색조 산업은 천연색에 대한 지식도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야만 색을 팔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색의 지식을 파괴하는 석유문명과 자본주의

근대 화학농법의 창시자로 알려진 리비히는 또한 열렬한 석유화학 전도사이기도 했다. 그는 전기 기술도 발명되기 훨씬 이전에, 석유로부터 색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발견되기 훨씬 이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도시 전체를 불꽃도 피어오르지 않고 타오르는 불빛도 없는 등으로 아주 밝게 비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꽃도 안 일고 따라서 이글거리며 타는 불도 필요없다면 등 안에 공기가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이나 모레, 누군가 숯 한 덩이로 오색찬연한 다이아몬드를, 백반으로부터 사파이어와 루비를, 석탄타르에서 영롱한 크랍 색소나 또는 유익한 퀴닌(말라리아 특효약), 아편 등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발견하리라 믿습니다. - 귄터 바루디오,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뿌리와이파리, 2004

열렬한 진보낙관론자이자 비록 농업을 망친 주범이기는 하지만 리비히는 그야말로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긴 했다. 실제로 그가 말한 바대로 유럽의 밤은 원자력과 석탄 등으로 만든 전기로 휘황찬란해졌고, 석유로부터는 영롱한 붉은 크랍색뿐만 아니라 수많은 색조를 만들어내 오늘날 길거리 여성과 남성들의 총천연색 의상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윽고 사람들은 석유문명의 토대 위에서 이제껏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한 풍요와 함께 석유로 만든 문화예술을 한껏 꽃피우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현대 건축은 석유가 없으면 그렇게 거대하고 정교한 구조물을 지상 위에 세울 수가 없다. 르 코르비지에를 비롯한 현대 건축가들의 작품은 석유가 없으면 불가능한 건축물들이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연극과 현대음악, 심지어는 춤까지도 이제는 석유가 없으면 상연이나 공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도대체 지금 어떤 예술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 심각하고도 근원이 질문이 필요한 때이다.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 우리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찢어지고 파헤쳐진 산과 들, 굉음 속에 엔진톱으로 허리를 잘리고 넘어지는 나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헤드폰을 낀 채 우아한 음악이나 그림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를 진정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




* 박승옥은 구로동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10여 년 동안 시골을 돌아다님. 지금은 에너지전환 운동 시민기업인 시민발전 일과 전태일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기고와 강연으로 한국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 일하고 있음


편집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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