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고 아늑한 곳에 초가삼간 집을 짓고…
[지상현의 Homo designans·4] 환경심리학과 자기 집안의 디자인

지상현/한성대교수
출처:<프레시안> 2007-06-14


  시애틀 호텔의 로비에는 커피숍이 두 군데 있다고 한다. 한 군데는 로비 한 켠에 칸막이 없이 있어 전망이 탁 트였고 출입이 쉽다. 다른 한 군데는 몇 개의 기둥이 공간을 구분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공간이다.
  
  힐데브란트라는 미국의 건축가가 이 두 공간에 머무는 고객들의 성비를 조사했다. 트인 커피숍에서는 남녀 차이가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막힌 공간에서는 여성이 6:4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시애틀 호텔에 가보지 않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그림에서 보는 것과 유사한 커피숍에 여성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유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 도쿄 시오도메 근처 빌딩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 원시 조상들은 이 기둥과 같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쉬거나 사냥감을 기다렸을 것이다.

우리는 '전망 좋은 곳'과 '아늑한 곳' 중 어디를 선호하나?

  힐데브란트, 애플톤 등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환경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지리학자인 애플톤이 자연환경에 대한 관찰을 통해 기초개념을 개발했다면 힐데브란트는 이 이론을 인공환경에 적용해보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게 자식을 낳고 양육하기 위한 장소와 먹이감을 찾기 위해 전망을 찾던 원시조상의 습성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특징을 암시하는 환경에서 선조와 동일한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은 환경의 특징을 크게 둘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도피처'다. 전망은 포식자나 먹이감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기 쉬운 환경이고 도피처는 숨어서 자식을 양육하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높이 솟은 건물, 산, 높은 나무, 창문, 탁 트인 벌판, 어둠 속에 드리운 햇살 등은 전망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무성한 나뭇잎, 담, 그늘, 굴과 같은 것은 도피처를 암시한다. 사람에 따라 도피처 혹은 전망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두 특징이 균형을 이룬 것을 가장 좋아한다. 앞서 소개한 시애틀 호텔의 경우를 보면 상대적으로 내성적이고 방어적인 여성이 도피처 중심의 장소를 더 좋아한다는 얘기가 된다.
  
  힐데브란트는 재미있는 조사를 한 가지 더 했다. 19~20세기 영미소설에 아늑하고 즐거운 주택의 전형으로 묘사된 사례들을 분석한 것이다. 주택들의 공통점은 숲과 들판이 만나는 경계에서 숲 쪽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숲은 도피처이고 들판은 전망의 성격을 가진다. 그 경계부분에서 숲으로 약간 들어가 있다는 것은 도피처와 전망의 성격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약간 도피처 쪽으로 기운 장소가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의 전형이 된다는 뜻이다. 그림을 이용한 필자의 조사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왼쪽은 전형적인 숲과 들판의 경계에서 숲 쪽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한 실재하는 주택이다. 아늑한 느낌을 준다. 반면 오른쪽은 동화책용 일러스트레이션인데 여기서 집은 스토리 상 들판 한가운데 불안하게 있어야만 했다.

'올드 보이'의 '불안한 전망'
  
  전망-도피이론은 자연환경이나 건축물뿐만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까지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올드 보이'에서 주인공 최민식을 15년 동안이나 가둘 수 있었던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유지태가 사는 집을 보자. 사방의 벽이 통유리로 처리돼 있고 고층이라 시원한 파노라마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완벽한 전망은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지태의 전망에는 결핍이 있다. 소위 "영역전망"이 없다.
  
  전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역 전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야생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원시 조상이 높은 산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고 가정하자. 멀리 다른 종족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이 종족이 그냥 옆으로 지나갈지 계속 다가올지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이상 가까이 오면, 다시 말해 부족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면 경계병은 부족 전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공격준비를 할 것이다.
  
  이 원시조상은 전망을 자기 부족의 세력이 미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파노라마에 대한 전망으로 나누어 관찰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전자가 바로 영역전망이다. 다시 말해 누가 다가오거나 침입하면 "당신 누구요?"하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전망을 말하는 것이다. 안정감이 중요한 아파트와 같은 거주지에는 옹색하기는 하지만 베란다가 영역전망을 제공한다. 안정감보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업무용 건물에서는 베란다와 같은 영역전망의 호사를 누리기기 쉽지 않다. 그런 곳에 유지태는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전망만 결핍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도피처의 성격도 약하다. 도피처는 거주자를 은폐할 수 있어야 한다. 커튼이나 블라인드와 같은 것이 그런 장치다. 유지태의 공간에는 그런 것은 고사하고 창가에 라디에이터 박스조차도 없이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게 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는 들여다보이지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지태의 거주지는 시원한 파노라마가 암시하듯 대단한 권력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역전망과 도피처로서의 조건을 결핍한 위태로움을 상징한다. 비정상적으로 파노라마만 강화된 공간은 복수심에 불타 왜곡된 유지태의 성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파노라마만 지나치게 강화된 공간은 도리어 불안감을 줄 뿐이다.

전망-도피 이론을 실제 생활공간에 적용해 보니

  도시 환경을 정비할 때에도 전망-도피 이론은 매우 유용하다. 인간의 심성에 맞는 환경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롯본기에 있는 모리공원의 벤치 위치는 전망-도피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100점짜리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산책로를 바라볼 수 있지만 자신은 녹지 속으로 조금 들어가 있어 도피처와 같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그 아래에 있는 벤치의 위치도 산책로에서 3~4미터 정도 녹지 속에 파묻히듯 있다. 그러면서도 지대가 높아 전망도 확보하고 있다. 지나가는 행인과 눈을 마주치는 어색함을 피하도록 설계된 듯하지만 그 이상의 심리적 의미가 있어 시민에게 편안함을 준다.

▲ 수많은 한국, 대만, 중국의 전문가들이 도쿄 롯본기의 모리 타운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는다. 모리타운 구석구석에서는 인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최근 여러 지자체의 주택가와 공공건물에서 담장 허물기를 시도하고 있다. 담장 허물기는 전망과 도피처의 균형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성과 만날 수 있어 우리 환경의 아름다움을 한 차원 높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간판정비보다 도시 환경에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의 담장 허물기나 거리와 구내공간이 통합되어 있는 디자인진흥원 등을 보자. 좁은 보도를 걷던 행인들에게는 구내의 녹지를 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고 구내에 있는 학생이나 교직원들에게는 담장으로 가려져 있던 보도와 차도를 볼 수 있어 담장에 갇혀 있던 녹지를 영역전망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해준다. 전망과 도피처가 균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 고려대학교의 담장 허물기. 오른쪽 사진은 대학 구내에서 거리를 볼 때의 풍경이다. 담장에 갇혀 있던 녹지가 거리와 건물 사이의 영역전망을 제공한다.

▲ 디자인 진흥원의 구내 광장은 거리와 그대로 연결되어 공원화 되어 있다(왼쪽). 반면 연세대학교의 담장은 아직도 높아 보행자에게 충분한 전망을 제공하지 않는다(오른쪽).

'담장 허물기'가 꼭 능사는 아냐

▲런던의 전형적인 빅토리아식 주택. 정원은 건물 뒤에 있다. 전면의 작고 높은 화단이 거주자의 영역전망을 제공한다.

  그러나 담장 허물기 사업에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특히 주택의 경우 담장을 완전히 허물어서는 안된다. 담장을 완전히 없애버리면 도피처의 성격이 너무 약해져 거주자가 안정감을 잃게 되고 실제 도난에도 취약하다. 보안이 철저한 대형 건물이나 대학은 큰 문제가 없지만 개인주택은 어렵다.
  
  많은 지자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담장 허물기의 목적이 환경미화와 주차공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쫒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러다 보니 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담장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거주자가 편안함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담장 허물기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급기야 다시 담장을 세우는 집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을 개선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게 될까 걱정스럽다.
  
  담장 허물기가 거주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안정감을 주려면 담장을 낮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완전히 허물었을 경우에는 영역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화단 등을 꾸며 영역전망을 확보하게 해야 한다. 건물이 도로에 바짝 붙어 있는 경우에는 런던의 주택에서 보듯 좁은 화단이라도 만들어 영역전망을 확보하고 누가 창문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바로 당신이 '호모 데지그난스'다"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 정도의 이해만 있어도 우리 환경은 눈에 띄게 아름답고 쾌적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담장을 허물어 단절된 이웃과 소통하라는 감상적 접근은 이웃 간에 새로운 갈등만 만들 가능성이 크다.

▲ 잡석과 사철나무를 이용한 허리 높이의 담장(왼쪽)과 시멘트와 석회만을 이용한 담장.

  이제 지금까지 이야기한 관점에서 여러분의 주변 환경을 직접 디자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디자인은 디자이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호모 데지그난스(디자인 하는 인간)'다. 직접 하기 어렵다면 상상이라도 해보기 바란다. 내가 사는 아파트나 학교의 담장을 꽃나무나 예쁜 측백나무로 바꾸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높은 담장을 허리 높이의 담장으로 바꾸거나 잡석을 쌓아 작은 정원을 꾸며볼 수도 있다. 혹은 담장의 일부만 없애볼 수도 있다. 영역전망도 확보하고 보안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차양을 설치하는 것도 권한다. 자연에서 그늘은 도피처를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야생의 많은 짐승들이 그늘에서 쉬고 숨는다. 차양이 만드는 그늘은 거주자나 보행자 모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것이다.

▲ 차양의 그림자는 보행자와 거주자 모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좋은 수단이다. 초저녁 퇴근길에 만나는 동네 슈퍼의 엉성한 차양조차도 그렇다. 나뭇잎은 그림자와 더불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도피처 요소다(왼쪽). 좁은 공간이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나뭇잎을 이용해 안정감을 즐길 수 있다(오른쪽).

  환경심리학에서는 좁은 공간일수록 작게 나누어 사용하라고 한다. 작게 나뉜 구석들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만들며 도피처의 성격을 강화시켜준다. 베란다를 없애 거실을 크게 만든 아파트가 시원한 느낌보다는 단조롭고 허전한 느낌을 주는 것과 맥이 통하는 이야기다. 베란다를 그대로 두고 그곳에 작은 화분들을 이용해 작은 화단을 꾸미는 것이 영역전망의 성격을 강화시켜 편안한 느낌이 커진다. 이왕이면 베란다 타일의 색과 유사한 화분들로 꾸며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런 상상들이 모이고 쌓이면 언젠가 우리의 몸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환경은 이렇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꿔나가는 것이 좋다. 삶이 묻어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전문 디자이너들이 세세한 환경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하면 환경은 작위적이 되고 또 다른 획일성을 낳게 될 것이다.

▲ 텅빈 베란다 보다는 화초와 같은 볼거리가 있어야 영역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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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5) 벨기에 플랑드르의 담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09월 21일
-비는 사람들을 書庫에 가뒀다-

‘담(Damme)’을 소개하는 책자 속, 그윽한 수초(水草) 사이로 흔들리는 보트와 풍차 사진이 그림 같다. 허공에 사뿐이 뜬 구름, 빵과 술이 담긴 바구니며 풀밭 위에서 식사를 즐기는 한 쌍의 연인도 보인다. 모든 사진 속에서 빗줄기는 단 한 줄도 비치지 않는다. 사진이 재현하는 허구적 현실이다.

거리에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지나가는 담의 행인들.

과연 비바람을 맞지 않고 플랑드르 땅을 밟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찍을 틈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안달이 날만큼 비는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그 빗줄기가 이곳으로 오던 길에 브뤼셀 남부역 화장실에서 목격한 몹쓸 장면에 대한 충격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했다. 그곳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고릴라 같은 경찰 둘이서 초라한 동남아 사내를 악을 쓰며 난폭한 몸짓으로 몰아세우고 두들기는 광경과 마주쳤다. 벨기에제(製) 가방에 달랑거리며 붙은 귀여운 고릴라의 다른 모습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고질인지라,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디 이런 일을 한두번 목격했던가. 그러나 이날따라 빗줄기가 한결 추저분하게 느껴졌다.

경매장의 모습. 낮은 홍예로 궁륭을 얹은 15세기 건물이다.

최근 유럽에서 기차역들이 깨끗해졌다고 좋아라하는 여론이 있다. 인권보다 ‘위생’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간 무고한 유색인이 얼마나 수모를 당했을까. 그런 식으로 깔끔을 떠는 사람들은 청소를 너무 좋아한다. 그러니까 인종 청소도 서슴지 않는다. 콩고를 식민지로 통치했으면서도 멸종위기에 처한 유인원을 애틋하게 그린 이미지로 그 기억을 희석시킨 사람들이다. 쇠락하던 소도시를 살리려는 그들의 노력도 애틋했을까?

담은 인구 1000명가량의 포구였다. 너무나 유명한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브뤼주에 바로 붙어 있다. 브뤼주 시내에서 운하를 따라 버스를 타고 곧게 뻗은 가로수길을 잠시만 달리면 금세 닿는다. 가장 인기를 끄는 신혼여행지로서 연중 시즌이 따로 없는 브뤼주의 깜찍한 위성도시인 셈이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브뤼주를 거쳐 마을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1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가 몰락했던 브뤼주는 지난 세기에 관광산업으로 체면을 되찾았다. 초콜릿 산업과 세 군데 미술관만으로도 브뤼주는 풍요롭다. 브뤼주라는 거목 밑에서 작은 버섯 같은 신세가 된 이 마을은 자력갱생을 모색하던 끝에 책을 붙잡았다.

마을에 책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가 1997년이니 벌써 10년을 넘겼다. 여기에는 불어권 발롱 지방과 네덜란드의 책마을이 큰 자극이 됐다. 담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처음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책마을이다. 서점은 10집이다. 5월에서 9월까지는 상시로, 겨울철에는 주말에만 문을 연다. 그리고 매달 2번째 일요일 광장에서 난장을 벌인다. 연간 다섯 차례 도서경매를 개최한다는 점이 다른 책마을과 다른 점이다.

익명의 사진가가 촬영한 피폭된 서재의 모습.
이날 마침 경매가 있었다. 경매는 약간 낮은 홍예가 바구니 손잡이 형태로 아늑하게 실내를 덮은 관청 부속건물에서 열렸다. 흠뻑 젖어 동정의 시선을 받을 만큼 꾀죄죄한 꼬락서니를 무릅쓰고 필자 또한 그 경매를 지켜보았다. 여기에서는 개인소장품보다 행정당국에서 문서고(文書庫)에 더는 수용하기 어려워 처분할 물건을 내놓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얀 네이링크는 공무원으로서 서점친목회의 협조를 얻어 이 일을 주관하고 있다. 네이링크는 이런 행사를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좀더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단골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경매를 찾는 사람이라면 물론 아마추어 애서가와 학자들이 주류이고, 뜨내기는 드물다. 거래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책자는 성격이 비슷한 여러 권 단위로 묶여 있다. 경매는 차분한 분위기가 지나쳐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경매이니 만큼 고지도(古地圖)에 대한 경합은 만만치 않았다. 동해나 독도의 표기 같은 것에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세계지도는 희귀했다. 그러나 지도상에서 네덜란드 사람이 일찍이 “그 어디 메인가”라는 뜻에서 ‘켈파르트’라고 표기한 제주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옛 건물 사진의 복제 인쇄물에 대한 인기는 대단하다. 종루(鐘樓)와 정문현관이 하나로 합쳐지고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건물구조를 장식요소로 변형시킨 독특한 이 고장 건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런 종루는 지난 2차대전 중에 미군의 맹폭으로 대량 유실되면서 급격히 희소해졌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인문학자 마를란트의 동상 앞에서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금실로 테두리를 장식한 사진 앨범이 몇점 눈에 들었다. 작은 종이상자에 든 사진 한 뭉텅이를 골랐다. 기묘한 아마추어 사진가의 사진이다. 지난 전쟁 때 허물어진 자기 집을 샅샅이 촬영한 것이었다. 아마 책꽂이 사진치고 이렇게 황량한 것은 다시 없으리라. 박살이 나고 허공에 걸린 액자와 엉망으로 된 살림살이를 모두 사진에 담았다. 부서진 피아노에서는 전위작가가 건반을 미친 듯이 두드려대는 굉음이 울릴 듯했다. 그 방 한구석에 책장이 사탑처럼 기우뚱하게 서 있는 사진도 있다. 바닥에는 책이 나뒹군다. 전선의 참호와 기념비적 건물의 잔해를 촬영한 것은 더러 있어도 자기 집 안의 책장이라…. 집주인은 필경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서재 속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카메라를 겨누었을 듯하다. 눈으로 부른 애도곡이다.

마을에는 책방마다 관련 서적이 무수한 전설적 영웅의 박물관이 있다. 15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민담이었다가 소설가 샤를 드 코스테르가 개작한 의적(義賊) ‘틸 윌렌슈피겔’은 이 마을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민중영웅의 일대기는 네덜란드,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다양한 이본이 나왔다. 에스파냐 황제 펠리페2세의 통치 하에 나라를 잃는 수모를 겪은 네덜란드 민중의 신산한 심정의 발로였다. 틸은 부모를 종교재판의 고문과 화형으로 잃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플랑드르 해방의 상징이다.

경매장의 책들 뒤로 플랑드르 고유의 종루가 정면을 대신하는 전통건축의 사진이 보인다.
박물관을 나서자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를 가르며 우수수 자전거떼가 몰려왔다. 주말을 즐기러온 동호회원들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사람들은 마을 복판에 서 있는 야곱 반 마를란트(1235~93)의 동상을 둘러싸고 주위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인솔자의 즉석 특강을 경청했다. 마를란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원전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이 마을 출신 인문학자이자 시인이다. 말하자면 저지(低地)의 가난하고 어둡던 땅에 불을 비춘 계몽가였다. 그는 이곳 성당에 묻혔다.

이 소도시형 책마을에서 다닥다닥 붙은 15세기 이후의 건물은 마을의 귀중한 자산이다. 건물들은 벽돌 한 장 빠트리지 않고 두껍게 여러 겹으로 페인트칠을 했다. 페인트색은 밝은 원색과 강렬한 흑백의 대조로 이어진다. 모두 방수성(防水性)이다. 한낮에도 꼭꼭 문을 걸어 잠그는 버릇도 습기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둑어둑한 책방의 실내는 서가를 숨바꼭질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디오게네스’ 서점에서 쥘 데스트레, 프란츠 헬렌스, 장 드 보쉐르 등의 단행본 문집은 애장가의 군침을 삼키게 한다. 이들은 미술에서 문학을 끌어낸 주역이다. 그러나 이들의 글은 아쉽게도 미술사와 문학, 비평과 전기 어느 장르로도 분류하기 애매한 성격 때문에 그 빼어난 문체에 걸맞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이중에서 쥘 데스트레(1863~1936)의 선집은 최근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고장 사람에게는 산업지대의 고통과 노동운동, 화가 반 고흐도 혹독하게 겪었던 몽스·보리나주 등 탄광에서 자행된 아동과 여성에 대한 살인적인 착취 등의 기억이 여전히 깊이 각인돼 있다. 예술가들 또한 가톨릭 극우파와 어용예술가의 국제주의 경향에 반기를 든 위대한 전통이 있다.

서점 앞에서 조촐하게 진열된 책을 찾는 여인.
쥘 데스트레는 광산촌과 중공업단지에서 19세기 벨기에 노동자의 현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직시했다. 그는 발롱 지방의 독립성을 주창하고 사회당 창립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세상살이를 주목한 사실주의 미술을 장려했다. 가톨릭 보수세력 일색인 플랑드르를 편애하던 왕당파의 예술관과 다르다. 그의 이념은 종종 지역주의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부당한 주장이다. 특히 고약한 정치적 담합으로 탄생된 ‘벨기에’라는 국가의 허구성을 비판한 점이야말로 그의 사상의 백미이다.

데스트레는 미술사에서 가장 해묵고 거창한 논쟁거리인 민족문제도 제기했다. 초기 르네상스 걸작으로 아동화처럼 어색해 보일 수 있는, 뒤틀린 실내의 뒤틀린 탁자 곁에서 성경을 읽는 ‘동정녀상’을 그린 15세기 화가 로히에르 반 데어 베이덴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다. 미술사가들은 반 데어 베이덴이 네덜란드어권의 플랑드르 사람인지, 프랑스어권의 발롱 사람인지를 두고 한 세기 이상 논란을 거듭했다. 이 거장을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결정적 영향력을 포함해서 미술사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호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방마다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린 반 데어 베이덴를 둘러싼 화첩과 장서들을 들춰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반 데어 베이덴은 아들을 잃고 슬픔에 젖은 동정녀의 눈물을 극진하게 그렸다. ‘어머니인 동시에 영원한 처녀’라는 자애와 순결의 절대적인 존재로서 동정녀의 눈물은 이 세상 어느 보석보다 값진 것으로서 신앙심 깊은 옛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책꽂이에 가득한 이 화가의 화집 사이에서도 동정녀의 눈물 방울은 줄줄이 굴러 떨어진다.

한편 누구나 잘 알다시피 벨기에는 세계 최대의 만화 생산·소비국이다. 담에서는 책방마다 수북한 만화책을 찾기에 그만이다. 일본 만화는 풍부한데 아직 우리 만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만화책도 최근에는 다시 작아지고 있다. 그래도 8절 국배판이 장편만화책의 고정적인 판형처럼 굳어졌다. 만화의 고전이 된 카스테르만 출판사의 작품들, 역대 앙굴렘 만화제의 수상작들도 보인다. 장편만화로 인쇄하기 위해 그린 원화(原畵)의 가격도 고시니, 쉬텐스 같은 거장의 경우 수천만원을 호가한 지 오래다.

장편만화가 프랑수아 쉬텐스 같은 거장의 음습한 플랑드르 도시를 다룬 멜로드라마는 코끝만 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가 그린 ‘시들지 않는 꽃집’의 주인공도 매력적이다. 무기력한 중년의 꽃집 주인 콩스탕 아벨스는 수돗물이 끊어진 어느 날 비바람을 무릅쓰고 수도국을 찾아간다. 그는 수도국 직원 티나의 안내로 꽃을 살리는 비법을 찾아 서고(書庫) 속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거대한 책더미를 뒤지다가 그 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속에 파묻힌 채 뜻밖의 사랑을 나눈다…. 이렇게 책도 사람도 어떤 사건조차도 축축하게 젖는다. 이래저래 플랑드르 사람들은 빗줄기 속에 희로애락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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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을 디자인하다
[지상현의 Homo designans·5] 조화 배색과 대비 배색

지상현/한성대 교수
출처:<프레시안> 2007-06-28


  아래 그림은 미국에서 물리학을 하는 동생이 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장난삼아 한반도 지도를 단순화(위상학적으로)시키고 남과 북을 청색과 적색으로 구분한 후 시계반대 방향으로 90도 회전을 시켜보았단다. 그랬더니 태극 일원(一圓)문양이 나타나더란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어떤 형태건 회전시키면 그 궤적이 점하는 면적은 원의 형태를 갖게 된다. 국토가 상하로 긴 나라라면 그 어디라도 태극문양과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동생은 분단 상황이 마치 태극무늬 속에 예견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하게 되더란다. 물론 동생도 자본주의가 청색이고 공산주의가 적색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우리들이 임의로 덧씌워놓은 색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색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왜 그런지 모르면서도 청색과 적색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장이 높은 곳의 하나라는 한반도의 상황을 쉽고 명료하게 전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두 색은 매우 조화롭고 안정된 상태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음양오행의 관점이다.

▲ 한반도 지도를 단순화한 뒤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시키자 태극 일원문양이 되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음양오행론에 따라 색채를 사용해왔다. 음양오행의 기본이 되는 음과 양의 기운은 태극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은 음과 양의 두 기운을 모두 가진 완전함을 상징한다. 갈라져 나온 음과 양은 더 분화돼 오행을 이루게 되는데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기운이 그것이다. 이 기운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 오방색으로 순서대로 청, 적, 황, 백, 흑색이 된다. 오방색의 기본이 되는 것이 태극의 청과 적이고 각기 음(陰)과 양(陽)을 뜻한다. 그래서 청색과 적색의 태극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 말해진다.
  
  오방색(五方色)에 오간색(五間色/ 녹색, 벽색(엷은 하늘색), 홍색, 유황색, 자색)을 더한 색채들이 조상들의 팔레트를 채웠는데 각종 고미술품에서 보는 색채들이 그것이다. 오간색이라고 해서 보조적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색동저고리에는 오방색에서 검정색을 빼고 오간색인 홍색이나 유황색을 더했고 단청에는 오간색인 녹색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색채들의 화려한 대비가 우리 전통 배색의 특징이다.

▲ 단청에는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얼금단청, 금단청 등의 종류가 있다. 여기서 보는 것은 모로단청인데 머리초만 그리고 나머지는 긋기만 했다. 긋가를 한 면의 배경은 전부 녹색이다.

▲ 추석과 같이 경사스러운 날에는 형편이 허락하는 한 유색 옷을 즐겨 입었다. 소녀들이 입은 치마와 저고리가 마치 진달래 꽃과 잎처럼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랜 사진을 컴퓨터로 색복원을 한 것이다.

  우리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좀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백색옷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신분체계를 나타내기 위해 강요당한 측면이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대 조형대학의 정시화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평민들이 물들인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신분이 높을수록 자색, 검정색, 적색을 입고 무당 등 특수 신분에만 유색 옷을 허락했다고 한다. 태종 6년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신호(申浩)가 '무색 옷은 좀먹기 쉽고 만들기 어려우므로 청색옷을 입게 해달라고 상소까지 했다고 전한다. 선조들이 청색을 좋아했다는 것이 정시화선생의 지론이다. 보통사람들이 색동옷 등 물들인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혼례 날이나 명절이 되어서였다. 저간의 사정을 볼 때 우리가 백색을 사랑했던 민족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도리어 강한 원색과 대비를 즐기고 싶어 했지만 신분체계 등의 이유 때문에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적 색감을 가장 잘 살린 화가를 꼽으라면 필자는 박생광 선생을 든다. 질박한 황토색의 김환기나 박수근 선생의 그림도 좋지만 두 분과는 또 다른 전통적 배색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생광 선생이 발굴한 전통색은 심미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해왔던 것이라는 점과 현대의 배색법에서도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박생광의 무당

  서구의 배색법, 아니 현대의 배색법은 심리적 효과를 기준으로 개발됐다. 크게 보아 조화(Harmony) 배색과 대비(Contrast) 배색기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유사한 색끼리 배색하면 조화배색이고 상이한 색끼리 놓으면 대비배색이다. 초등학교 때 배운 색상환을 생각하면 쉽다. 서로 인접해 있는 색들은 유사한 색이고 마주보고 있는 색은 가장 상이한 색이다. 이렇게 보면 적색과 녹색, 청색과 노랑(황색)이 대표적인 보색이다.

▲ 대비배색과 조화배색의 사례 좌측은 색상이 보색에 가까운 대비를 이루고 우측 것은 유사한 색이지만 명도와 채도에서 차이가 난다. 대비냐 아니냐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색상을 기준으로 한다.

▲ 맨 왼쪽은 동일색조의 조화배색이다. 가운데는 셔츠와 슈트, 셔츠와 넥타이는 대비배색이지만 슈트와 넥타이는 조화배색이다. 맨 우측은 넥타이가 셔츠나 슈트와 대비배색이다.

  유사한 색끼리 하는 조화배색은 비교적 쉽다. 색상을 유사하게 하면서 밝기나 채도에서만 차이를 주면 대충 조화가 된다. 양복을 입을 때 짙은 청색 슈트 속에 엷은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는 것이나 회색바지를 입는 것이 바로 조화배색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화배색만 하면 단조롭고 맥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대비배색을 추가해 액센트를 줌으로써 생기를 불어넣는다. 위 그림의 ②에서처럼 짙은 청색 슈트에 엷은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는다면 이는 대비 배색이다. 여기에 짙은 청색 계통의 넥타이를 맨다면 슈트와 넥타이는 다시 조화배색이 돼 슈트와 셔츠 사이의 대비배색이 주는 활달하지만 튀는 느낌을 완화시킨다.
  
  현대식 배색법의 기본이 바로 이것이다. 패션 뿐 아니라 건축, 제품, 회화, 디자인에서 기본이 되는 배색법이다. 이런 배색기법은 색채의 심리적 효과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래서 단청이나 색동에서 보는 배색 역시 따지면 대비배색이라 할 수는 있지만 동일한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배색은 색채의 상징적 의미를 중시해 다분히 관념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로 서구의 배색기법을 접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우리도 서서히 심리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배색을 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옷이나 생활소품에서는 그동안 제한되었던 관념적 배색의 욕구가 발현되기 시작해 고채도의 색 혹은 보색대비가 주를 이루게 된다. 반면 남성정장, 자동차, 건물 등에서는 점잖고 튀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인지 조화배색 일색으로 변해갔다. 우리환경에 색채가 부족하다고 하는 평가도 이런 대목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80년대 까지만 해도 승용차나 건물은 검정색과 회색 일변도였고 버스는 엷은 청회색에 짙은 청색 줄이 그어진 정도였다. 남성정장도 비슷해서 검정이나 밤색 슈트에 흰색이나 엷은 노란색 셔츠를, 짙은 청색슈트에는 흰색 혹은 하늘 색 셔츠를 입고 회색바지를 입었다. 핑크색 셔츠와 같은 대비배색은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핑크색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승용차의 색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짙은 청색슈트에 카키색 셔츠나 바지를 입는 대비배색은 보기 힘들다.

▲ 카키색이나 엷은 브라운 색에 청색 바지나 셔츠를 맞춰 입는 대비배색이 서구에서는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른쪽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유사색조의 진한 셔츠나 바지를 입는다.

▲ 아직도 서울을 벗어나면 버스의 도장은 조화배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사진은 부산 시내버스의 모습이다.

  배색에서도 각 민족의 성정을 읽을 수 있는데 우리의 환경에서 대비배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품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심리적 욕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미술심리학에서는 '심리적 긴장'이라는 용어를 쓴다. 무거운 것을 들 때 팔, 다리의 근육이 긴장을 하고 이완을 하듯이 어떤 정신적인 작업을 할 때에 우리의 심리는 긴장을 하고 이완을 한다. 이 정신적인 작업에는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무엇을 지각하는 일도 포함된다. 객관적으로 긴장의 정도를 측정하기 쉽지 않아 학자에 따라 이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도 하지만 다양한 미적 경험을 설명하는데 이처럼 유용한 개념도 없다. 그래서 미술심리학에서는 중요하게 다룬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뇌 역시 적당한 긴장은 정신활동에 유리하지만 지나치면 불리하다. 적당한 자극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적당한'의 기준은 민족이나 시대에 따라 변한다. 앞서 우리가 대비배색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적당한'의 기준이 좀 높아졌다는 뜻이 된다.
  
  시각을 통한 심리적 긴장에는 색채의 효과가 크다. 색채마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다르지만 보다 선명한 효과는 색들이 조합되었을 때 나타난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배색으로 대표적인 것이 지나치게 유사하거나 다른 색채들이 조합돼 있을 때다. 예컨대 양복 슈트와 바지의 색이 매우 유사할 경우나 매우 다를 경우 촌스럽다고 느낀다. 우리 시각은 무엇을 보면 유사한 것끼리 묶는 방식으로 대상들을 서로 구분한다. 아주 중요하고 기초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동일하다고 보기도, 다르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이 작업이 원활해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긴장을 느끼게 된다. 이런 긴장의 결과가 촌스럽다는 심미적 인상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반대로 너무 다를 경우에도 심리적 긴장은 커진다. 소위 "색채의 충돌"이라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검정 양복에 흰바지나 과거의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처럼 채도 높은 빨간색 셔츠에 파란 바지의 조합은 매우 부담스럽다.

▲ 왼쪽에서 세 번째는 셔츠와 슈트 사이가, 네 번째는 슈트 상, 하의 사이가 애매하다. 마지막 사례에서처럼 다르려면 확실하게 달라야 한다는 것이 긴장론의 배색법이다. 이 그림에서 보듯 심리적 긴장의 정도는 심미적 평가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태극의 배색은 매우 심리적 긴장도가 높은 배색에 해당된다. 우리 거리의 풍경이 혼잡하다는 이야기도 대비배색이 많아 행인들의 심리적 긴장도가 높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의 성정이 심리적 긴장도가 높은 것을 좋아해서 태극문양이나 오방색(흑, 백, 적, 청, 황)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의 성정이 좀 열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를 지배하던 관념 역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현대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미의식을 지배하던 관념적 토대가 심리적 토대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의 자극적인 전통색들은 나름의 조정과정을 거쳐야 했다. 언젠가 간판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일제 식민지, 6.25, 급격한 산업화 등을 거치며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은 우리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우리와 같이 음양오행의 기반 위에 색채를 사용한 중국에도 보색대비가 많았다. 우리와 달리 검정색과 금색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 이외에 보색의 충돌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법들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적으로 보색대비가 주는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가령 상이한 두 보색 사이에 흰색이나 검정색과 같은 무채색을 연결색(bridge color)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태극기를 보면 태극 일원문양의 주위는 넓은 흰색이다. 이 흰색이 연결색으로 작용해 보색대비가 주는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가 있다. 태극기는 월드컵을 계기로 패션이 되기도 했는데 흰색이 없었다면 패션이 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두 보색 사이에 음영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 총장실에서 발견한 베이징 대학의 기념접시(아래)는 중국의 배색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필자의 눈에도 들었지만 함께 방문한 일행들 대부분 역시 이 접시를 멋지다고 느꼈고 한 눈에 중국 것이라는 점을 알아 챌 수 있었다.
  
  이 접시는 중국의 전통적인 적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보색 충돌이 생각만큼 심하지 않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이 접시는 녹색 접시 위에 글씨가 양각돼 있고 테두리 문양은 덧끼워서 만들었다. 그래서 녹색과 적색 사이에 작은 틈과 그림자들이 생겨나고 두 색의 충돌을 완화시킨다. 물론 녹색의 채도를 낮게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녹색 바닥에는 잔 홈들이 나 있는데 이 홈들이 만드는 음영이 녹색의 채도를 실제보다 낮게 보이게 한다. 이렇게 채도가 낮아지면 보색의 충돌은 약해지고 심리적 긴장도 더불어 작아진다.


  만약 국내 대학에 이와 유사한 한국식 전통배색의 기념품을 제안하면 어떨까. 한국의 전통배색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전위적이고 점잖지 못하다고 거절하는 곳이 많을 것이다. 이 접시는 플라스틱이어서 가격도 싸다. 아마도 우리 돈으로 만원 미만이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 옆의 기념접시는 값비싼 주석으로 돼 있어 개당 10만원이 넘는다. 국내에서는 어설프게 서구 문양을 흉내 낸 국적 불명의 이런 접시가 대접받는다.
  
  마찬가지로 기념접시와 같은 어설픈 흉내 내기를 우리는 자주 만난다. 예식장 건물, 대중 사우나의 욕실 벽을 장식한 부조, 신혼집 벽에 걸린 하얀 액자들에서 말이다. 문화적으로 좀 세련됐다고 하는 인사동이나 삼청동의 카페에서조차 이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앞서 소개한 박생광 선생의 그림을 필자가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배색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법들을 개발하고 잘 적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생광 선생은 청색과 적색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검정색 얼룩을 경계부분에 만들어 두 보색이 직접 만나지 못하게 했다. 또한 고채도의 넓은 적색면이라고 생각한 곳도 자세히 보면 농담의 변화가 있고 군데 군데 다른 짙은 색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장치들이 적색이 주는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적색 면 옆에 있는 다른 색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 기법들은 발생단계상 조화배색에 비해 늦게 나타나는 어려운 것들이다. 단적으로 말해 박생광 선생은 전통배색의 현대화를 이룬 것이다. 선생은 전통배색의 현대화를 위해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법들은 한국적인 배색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환경을 현대적이면서도 우리답게 만드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한국적인 소재를 이용해 디자인하려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의 작품을 보면 서구적 관점에서 이미 한번 걸러진 소재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생광 선생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유추가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과거 같으면 마을 어귀의 성황당이나 명절날 색동옷에서 수시로 만나던 색상들인데 이제는 낯설어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한번 놓친 전통의 맥을 다시 잇는 일이 녹녹치 않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우리 환경이 전통적 보색대비로 뒤덮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환경의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이런 전통의 맥도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뿐이다. 분명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구성했던 그리고 지금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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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을 알면 '인간'이 보인다
[지상현의 Homo designans·6] 문화의 원형과 만나는 디자인

지상현/한성대 교수
출처:<프레시안> 2007-07-12


  1년째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컬쳐 코드(culture code)'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원래 심리학자다.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의 절반이 넘는 기업에 마케팅 자문을 해주고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도와주고 있지만 본래 소비자 심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의 이면에 있는 원형(archetype)을 찾는 임상심리학자였다. 연구실에만 있던 원형에 대한 지식과 통찰을 이용해 기업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찾는 원형이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무의식적 심상을 말한다. 집단의 오랜 경험이 누적돼 나타나는 이 원형은 각 개인의 마음 속에 숨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인의 지프와 미국인의 지프는 서로 다르다"
  
  원형이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칼 구스타프 융인데 그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아니마(여성성), 아니무스(남성성)처럼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에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중요도가 다른 원형들이 삶의 다양한 국면만큼 있다고 한다. 예컨대 '입학식'과 '결혼'에 대한 원형도 있을 것이고, 둘 가운데는 결혼에 대한 원형이 더 중요할 것이다. 입학식이야 하루로 끝나는 행사여서 원형과 일치하지 않는 입학식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파이유가 원형 분석을 통해 기업에 자문한 내용 가운데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크라이슬러 사에서 나오는 '랭글러'라는 지프차도 그 중 하나다. 원래 프랑스인인 라파이유는 어린 시절이던 2차세계대전 중에 지프를 타고 파리로 입성해 어린이들에게 초콜릿을 뿌리는 미군을 보고 커서 미국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의 프랑스인들의 마음 속에는 미군과 그들이 타고 온 지프에서 해방자의 이미지를 느꼈고 이것이 지프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됐을 것이다.
  
  반면 미국인들은 지프에서 전혀 다른 원형을 본다. 말을 타고 산과 들, 심지어 강까지 건너며 서부를 개척했던 미국인들은 지프의 전천후 기동성에서 과거 조상들이 탔던 말과 같은 자유로움의 원형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판매되는 지프의 전조등은 그의 조언에 따라 말의 눈과 같은 인상을 주기 위해 본래 사각형이던 것을 둥글게 바꿨다고 한다. 반면 유럽시장에서는 초기의 사각형 전조등 모델을 그대로 하여 출시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 1987년 전 세계에서 출시된 4각형 전조등은 말과 같은 짐승의 이미지를 갖기는 힘들다. 미국에서 이를 둥근 전조등으로 교체한 후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현재는 유럽에서도 둥근 전조등으로 팔리고 있다.

"행복한 패배자"

  또 다른 사례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06년 10월호 "최강의 영업력"이라는 특집기사에 실린 "행복한 패배자"라는 그의 글에 소개되어 있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팔고 계약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수한 실패를 맛봐야만 하는 직업이다. 야구로 치면 3할대의 타자라도 7할의 실패를 맛봐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과정에서 세일즈맨들은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좌절도 할 것이다. 소위 성공한 세일즈맨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 세일즈맨들은 어떻게 이런 실패를 극복하고 씩씩하게 다음 영업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공통적으로 평범한 세일즈맨들이 갖지 않은 원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행복한 패배자"라는 원형이다.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기업가, 운동선수, 과학자,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실패를 칭송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실패를 해보면 이런 문화나 속담에 진심으로 기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순진할 정도로 영화 속 주인공의 실패와 성공스토리를 현실과 동일시하고 속담의 내용을 믿는다. 이들은 마음속에 "행복한 패배자"라는 원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원형을 가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결과가 실패일 때 거기서 나름의 행복감조차 느낄 수 있는 단순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약아 속담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조금 둔감하게 만들어 이런 원형을 갖고 사는 쪽이 성공확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미국은 아직 사춘기>라는 저술에서는 세계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미국의 정신연령은 아직도 사춘기 소년 정도라는 정치문화평론까지 하고 있는데 물론 그 평론의 바탕에는 미국인들, 특히 부시대통령의 행적을 통해 미루어 짐작한 몇 가지 원형이 있다.
  
  '원형'을 통해 집단의 욕구를 파악한다
  
  호모 데지그난스라는 제하의 글에서 원형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한 이유는 랭글러 지프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이 원형이 디자인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라파이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융의 원형이론에 기초해 소비자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뉴질랜드의 포커스 그룹에서 개발한 "니드스콥(NEEDSCOPE)"도 그중 하나다. 이것들은 모두 융의 원형이론에서 출발했지만 개념을 단순화하는 등 실생활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원형이론이 이렇게 각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집단 무의식을 말하는 원형에서 그것에 대응되는 욕구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원형을 파악한다는 것은 그 집단의 욕구를 이해하는 셈이 된다.
  
  예컨대 커피를 생각해보자. 누군가의 커피에 대한 원형 속에 '친교의 수단'이라는 특징이 포함돼 있다고 하자. 필자의 친구 중에 그런 사람이 몇 있다. 이들은 사람사귀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다른 동료를 찾는다. 이들이 커피와 관해 그리는 장면은 정다운 사람들과 담소하며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무슨 일 있어?"하며 다가온다.
  
  반면 '커피 한 잔'을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데 아마 어려서 자주 본 미국 드라마의 영향인 것 같다. 과학자나 교수가 커피를 마시며 사색을 하고 책을 읽는 장면을 인상 깊게 봤고 그것이 커피와 관련된 원형에 속하게 된 것으로 짐작한다. 하여간 이 부류에 속한 이들은 서재에 홀로 앉아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그릴 것이다. 물론 이 두 부류가 명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다만 두 장면이 뒤섞인 가운데서도 어느 한 쪽에 중심이 더 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두 원형은 깊이 감춰진 각기 다른 두 욕구를 대변하고 있다.
  
  원형은 타고난 것이라 할 정도로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새로이 형성되거나 수정되기도 한다. 커피와 같은 것에 대한 원형은 새로이 형성되는 것일 텐데 이런 원형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TV를 통해 처음으로 급류타기를 보았다고 하자. "재미있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과 "무섭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이런 인상들이 급류타기에 대한 원형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재미있겠다"는 인상에는 "타고 싶다"는 욕구가, "무섭겠다"는 인상에는 "피하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커피를 친교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친교에 대한 욕구가, 마음을 가다듬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생각과 주변을 체계화하고 질서를 부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볼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소비자의 욕구와 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동서식품의 맥스웰과 맥심의 광고전략은 확연히 다르다. 맥스웰은 안성기와 같이 친근하고 편안한 배우를 모델로 하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그대와~" 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 맥스웰이 친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암시하는 것이다.

▲ 반면 맥심은 커피 향과 맛에서 유추한 분위기 위주로 광고한다. 예컨대 이미연의 고혹적 매력과 커피의 그윽한 향을 연결시키는 식이다.

  우연인지 국내의 커피 광고 가운데 전자의 욕구를 핵심 메시지로 삼아 광고하는 곳이 있다. 그들의 정확한 의도를 필자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친교의 수단으로 커피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이 브랜드의 광고에서는 객지의 역에서 만난 두 청년이 커피를 통해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남편이 아내의 손님들에게 커피를 서빙하기도 한다.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 보듯 이 회사는 몇 년째 일관되게 해당 커피 브랜드를 친교의 수단으로 각인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반대로 마음을 가다듬는 수단으로 보는 소비자층을 위해서는 느긋하게 창밖을 내다보며 그윽한 커피향을 맡는 모습이 제격일 것이다. 그러나 후자에 해당하는 광고는 아직 국내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소비자의 욕구와 이런 방식으로 만날 때 소비자와 브랜드의 관계는 가장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마치 공통의 원형들을 가진, 다시 말해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끼리 이루어진 커플이 가장 오래 지속된다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마케터나 디자이너들이 소비자의 마음 속에 있는 원형을 이해해야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쉬워진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의 무의식적 욕구를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소비자가 선호할 디자인을 예측하라는 말이 된다.

'원형'과 '리더십', 그리고 디자인

  물론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세계적 디자인 회사 텐져린의 CEO인 마틴 다비셔는 디자인의 생명은 '리더십'이라고 했다. 디자인 트렌드는 예측하기보다는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얼핏 보면 라파이유와 다른 입장인 것처럼 보인다. 라파이유는 문화의 원형을 읽고 예측하라는 입장이고 다비셔는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두 말이 상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장의 '문화적 원형'과 어긋난 디자인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설혹 그 디자인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마케팅 비용이 들겠는가.
  
  문화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우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석된 제품과 관련한 원형은 구체적이지 않기 십상이고, 소비자들이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를 구체적으로 시각화시키는 것은 온전히 디자이너의 몫이다. 뭔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느끼는 잠재된 욕구 혹은 원형을 구체화시켜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디자인과정은 어찌 보면 예측이라 할 수도, 창작이라 할 수도 있다. 결국 다비셔가 말하는 리더십은 소비자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형이라는 큰 물줄기를 한두 개의 시각적 이미지로 유도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모 전자회사의 휴대폰 사업부문에 자문을 한 적이 있다. 사전에 몇 가지 조사를 해봤는데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민국이라는 문화의 결 속에 휴대폰, 노트북, DMB 등의 제품과 관련된 특정한 원형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것으로 삼성전자의 노트북 컴퓨터 광고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헤드라인이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무의식적 욕구를 흡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소비자들이 가진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문화적 원형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민족답게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고 싶어 한다. 그리고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는 가장 전형적인 장면으로 어디서나 디지털 기기로 통신이나 게임을 하고 필요한 문서작업을 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디지털 유목민"이다. 필자가 조사한 내용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는 우리 소비자들이 공유한 문화적 결과 딱 맞아 떨어지는 광고 캠페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이런 분석이 휴대폰으로 가면 더 복잡해진다. 한정된 지면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디지털 유목민"을 놓고 이것이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된 원형을 정확히 읽어냈다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보다는 막연하고 포괄적이던 디지털 기기와 관련된 소비자들의 심상을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함축된 이미지로 응집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비셔의 말과도 통하고 라파이유의 주장과도 맞아 떨어진다.
  
  디자인이나 마케팅이나 결국 요체는 '인간을 제대로 아는 것'
  
  며칠전 모기업 경제연구소의 임원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디자인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컬쳐코드 이야기까지 화제가 옮아갔다. 얘기를 듣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디자인이나 마케팅이나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면에서는 같은 일을 하는 셈이군요".
  
  필자가 의식하지 못하던 것을 그 임원이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감각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디자인에 대해 깊게 이해해준 것도 고마웠지만 디자인의 기본적인 과제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임을 새삼 돌아보게 해줬다. 소비자의 욕구와 깊게 만나야 한다는 말은 인간을 이해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디자인이 치유와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바로 이런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 이제 호모 데지그난스(디자인적 존재)인 당신의 컬쳐 코드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당신이 좋아했던 광고, 디자인, 가요의 가사를 통해 당신이 가진 막연했던 욕구나 삶을 거꾸로 이해해보는 것이다. 난해한 철학서를 통해서만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들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치던 광고나 디자인에서도 스스로를, 또 우리를 돌아볼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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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4) 프랑스 아키텐의 마스 다주네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09월 14일
-2000년전 길 위에 펼쳐진 사상의 좌판-

길바닥에 즉흥적으로 펼쳐놓은 책들. 손님은 상자를 마음대로 뒤적이는 재미를 맛볼 뿐만 아니라 통째로 들고 갈때 더 유리하다는 점을 권하는 전시방식이다.

주말에 일하지 않는 택시… 모든 것이 엉망이다. 중요한 행사는 주말에 열어놓고 막상 주말에 대중교통은 운행하지 않는다. 택시를 부르는 전화는 부서지고 녹슬어 있었다. 마르망드역의 안쪽으로 들어가 역장에게 하소연했다. 다행히 친절한 역장이 일곱여덟 군데 일일이 전화한 끝에 희생적인 의용군을 찾아냈다. 결국 두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택시가 도착했다. 그렇게 택시로 반 시간쯤 옥수수밭과 밀밭의 풍경을 헤쳐 가며 도착한 곳이 마스 다주네 마을이다. 이곳 사람들은 마을을 독특한 ‘가스고뉴’ 사투리 억양으로 단순히 ‘마스다’라고 불렀다. 중세 연애시로 잘 알려진 음유시인의 본고장답게 귀를 간지럽히는 억양이다.

로마제국 시대인 기원전 50년경 푸블리우스 크라수스의 원정대가 발을 디딘 이 마을에는 네모난 자갈포도(鋪道)가 일부 옛날 그대로 남아 있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이런 역사적 사실은 1986년의 발굴을 통해서 더 확실해졌다. 그 2000년도 넘은 길바닥에 이른 아침부터 과일상자며 종이상자들이 하나 둘씩 놓이기 시작하면서 장이 선다. 개구쟁이들은 벌써부터 즐거운 괴성을 지르고 귀여운 표정으로 참견하는 척하다가 내뺀다. 또 다른 꼬마들은 자전거를 몰고 휑하니 골목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불쑥 나타나곤 했다. 도시 아이들에 비해 훨씬 천진했다.

광장을 둘러싼 집의 초록빛 베네치아 덧창도 차례로 활짝 열리고 처녀와 할머니가 물매에 기대놓은 화분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마을에 하나뿐인 카페 겸 식당 ‘샹플롱’의 주인 피에르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윙크와 미소로 정다움을 표하면서 오늘 하루 대목을 예감하는 듯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바로 옆에 화실을 갖고 있고, 식당 벽은 그의 작품이 주렁주렁 걸린 화랑이다. 가운데 벽은 아예 벽화로 처리했다.

수백년 묵은 목재가건물 아래 차려진 옥외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손님들.

생 뱅상 성당 앞의 광장 분수 주변으로 2층 높이가 넘는 시커먼 목재 건조물의 골조가 길바닥과 함께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1916년 1차대전 때 불타버린 성에서 뜯어낸 목재로 지은 가건물이다. 원래는 갖가지 지역 농산물을 거래했고, 주로 제분업자들이 집결하는 큰 장터였으나 전쟁 이후 쇠퇴하다가 1935년에는 완전히 폐장한 곳이다. 마을 인구는 1968년 혁명과 혼란기에 1000여명으로 대폭 줄어든 뒤 제자리 걸음이다. 이 목조건물이 갖는 상징성을 살리고 마을의 활기도 불어넣을 겸 아키텐 지방의 서적상과 아마추어가 함께 1년에 단 하루를 책마을로 선포하고 축제를 치르기로 했다. 이 1일 책마을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을 넘겼다. 서적상들은 주로 마을의 동쪽 보르도 지역과 서남쪽 툴루즈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책과 골동품을 들고 온다.

생 뱅상 성당 실내에 있는 책 읽는 천사상.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생 뱅상 성당은 마을의 아주 대단한 자랑거리이다. 기둥머리의 우화적인 조각상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성당 회랑에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이 걸려 있다. 이 화가가 한창 물오른 솜씨를 과시하기 시작하던 1631년에 그린 이 유화는 그의 초기 걸작으로 열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오직 이 그림만을 보려고 찾아오는 방문객도 연중 끊이지 않는다. 성당 실내 바닥과 벽을 잇는 주춧돌에 핀 곰팡이는 엷고 무른 잿빛 돌 틈에서 차라리 옥빛으로 반짝인다. 어렴풋이 창틈으로 새어드는 빛으로 은은하게 밝혀져 잠시 황홀한 감흥에 휩싸이곤 하는 한 쌍의 천사상은 책을 읽고 있었다. 날개를 맞댄 그 천사가 펼쳐든 책은 성경이겠지만, 아무튼 책마을을 찾아온 이방인이 무슨 일로 그렇게 멀리서 왔는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같다.

이 광장에서 가론느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1000년 이상 사용해온 샘터 겸 빨래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강과 이어진 운하가 내려다보인다. 샘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알랭 페레와 그의 동반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장날에 맞춰 멀리 코냑에서 요트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남부 대운하의 크고 작은 173개 소읍 가운데 하나다. 페레는 코냑을 저장하는 술통의 명장으로 1987년 프랑스 최고의 장인에게 수여하는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그는 열심히 외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쾌활하게 책읽기의 비결을 들려주었다. 한때 불면에 시달리던 중년의 고비에 그는 탐정소설을 읽으며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탐정소설을 정탐하는 게걸스러운 독자가 되었다.

생 뱅상 성당 회랑에서 렘브란트의 걸작을 감상하는 관객.
장터의 모퉁이를 차지한 자크 콜롱비니 부부는 아장 시에서 왔다. 새벽부터 한 시간 남짓 차를 몰았다. 노부부는 은퇴 후에 이 일을 시작했다가 완전히 빠져들었다. 자기 집 텃밭에 붙은 창고는 항상 책이 가득 넘치는 진짜 도서관이라며 놀러오라고 했다. 노부부는 칠십 줄에 접어들었지만 이 일을 아주 즐기고 있다. 1년 내내 그럭저럭 모아두었다가 이날 가지고 나와 파는데 벌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책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노인은 연금생활자로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이 일을 시작한 뒤로 오늘을 기다리면서 책을 모으다보니 어디를 가나 많은 책이 눈에 띄고, 독서의 즐거움으로 내외의 화제도 풍부해졌으며, 여성 전기물을 탐독하면서 역사에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되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영감님은 이런 할머니의 말을 가로채면서 내외의 거리는 책 때문에 더 멀어졌노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할머니는 알렉산드로스 6세의 딸로 수많은 작가의 상상을 자극했던 미모의 루크레차라든가, 17세기 스웨덴의 여걸로 예술가 후견을 위한 기행을 일삼았던 크리스틴 여왕, 뛰어난 초상화가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후견을 받았던 탓에 외면당했던 비제 르 브룅 부인 등 비운과 행운으로 파란만장했던 주인공들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노부부는 아마추어 애서가(愛書家)요, 수집가였다. 두 분은 고백록 특히 실패하거나 비난받은 사람의 통한의 고백록을 즐긴다고 했다.

영감님은 지난 세기 ‘저주받은 화가’라는 말을 유행시켰고 자신도 명예실추를 겪었던 짓궂은 평론가 귀스타브 코기오의 책과 1960년대 한창 잘 나가다가 뇌물 스캔들에 연루돼 자살기도 끝에 감옥에서 썩는 동안 건축계와 정·관계의 모든 비리를 털어놓었던 건축가 페르낭 푸이용의 회상록을 내밀었다. 공감할 만한 뜨끈뜨끈한 반성문이다. 우리 사회도 이런 책이 많이 나올 만한 환경 아닐까? 하지만 가톨릭처럼 고해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를 훌쩍 뛰어넘는 도가풍의 대범하고 초연한 분들의 기개가 높아서일까? 비슷한 혐의로 고역을 치르는 인사는 은하수처럼 하늘을 덮고 있지만 솔직한 반성문의 감동을 전해주는 용기있는 필자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다.

점심 때 모든 사람들이 노상에 상을 길게 맞물려 놓고 오리고기 조림으로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식당에서는 스페인 노동자들이 모처럼 모인 사람들 앞에서 벌겋게 달궈진 얼굴로 스탭을 뽐내며 어깨를 흔들었다. 음료수를 나르는 아가씨도 갈지자 걸음으로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흥을 돋웠다. 한쪽 창가에 기대앉은 영감은 ‘슈나우저’ 한 마리를 시종 삼아 곁을 지키게 하고 꽁초를 입에 문 채 멋진 독자의 이미지를 그려보였다.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계속 불어났다. 오전부터 내내 왔다 갔다 하면서 첩첩이 쌓인 전집류와 대형화판에 걸쳐놓은 지도를 뒤지는 신사들의 끈기도 대단했다. 커다란 개들을 끌고 좌판 사이를 누비는 부인들이 많았다. 한쪽 테이블에 생수통과 사탕을 마련해놓는 배려도 사람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아 두는 데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길바닥에 펼쳐진 책상자 속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 쥘리에트 모리오가 지은 명성황후의 일대기 ‘운현궁’이 성큼 눈에 들었다. 책을 펼쳐놓은 라베일 조르주는 보르도 부둣가에서 왔다. 조르주는 서적상으로 평생을 살아온 진정한 프로였다. 그에게는 물건을 앞에 두고 아웅다웅하는 태도가 몸에 밴 도시인의 초조함 같은 것이 없다. 싸게 구해들인 만큼 너무 싸다고 느껴서 감히 깎을 엄두를 원천봉쇄하는 값을 붙여놓았다. 그는 이사하는 집이나 고물상을 전전하고 책과 더불어 유랑하며 사는 재미에 다른 볼일이나 욕심 없이 살아왔다. 다른 지역에서 서는 정기·부정기 시장을 찾아 돌아다니므로 연중 겨울 한 철을 제외하고는 늘 유랑생활이었다. 안정된 소시민적 생활에 익숙한 우리의 짐작으로는 결코 평탄한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이거면 되었지”라고 말하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녔다.

그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림을 찾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의 물건 가운데 18세기 중반의 작은 유화가 있었다. 먼지와 때가 잔뜩 엉겨붙고 균열이 갔으며 소반 위에 과자와 앵두 몇 송이를 그린 것이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바니타스’(정물화의 한 장르), 문자 그대로 ‘덧없는 그림’이다. 복원 처리한다면 가치는 상당할 물건이다. 그때 필자를 제치고 서둘러 그림을 차지한 여인은 보르도의 화랑에서 온 큐레이터였다. 그녀는 나를 제쳐서 의기양양하다는 몸짓으로 서둘러 그림을 안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독서삼매에 빠진 노인을 지키는 애견은 마을의 분위기를 함축하는 듯하다.
행상은 사실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 공포와 탄압기를 뚫고 새로운 사상의 책자를 몰래 유통시킨 주인공이다. 그 많던 출판사와 출판인이 모두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책이 늘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이런 서적상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도서관에 미리 알고 가서 옛날 책을 신청해 보는 것과 모르고 있다가 눈앞에서 발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범이나 늑대가 지키는 길목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토끼처럼 그들은 통념과 어긋나고 심지어 불순한 ‘다른 생각’이 담긴 인쇄물을 세상에 퍼트렸다. 보따리장수나 엿장수처럼 좌판을 목에 걸고 호객을 하던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판자에 새겨진 단색화로만 보아왔다. 그런데 휘황한 원색과 보석을 박은 제단화의 뚜껑에도 천사는 늘 단색조로 그려지곤 하지 않았던가. 천사와 행상은 어차피 심부름꾼인데 하늘의 말씀을 전하든, 사람의 자유로운 사상을 전하든 흑백사진처럼 조촐한 색조로 재현되었다.

책과 더불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택한 그들은 분명 책의 수호신이다. 큰욕심 없이 그저 노잣돈이 된다면 어디고 기꺼이 달려가 귀한 소식을 전할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며 다가올 때 나는 쾨쾨한 냄새에도, 그 책장이 천사장의 날갯짓이려니 하면서 멍하니 주시했다. 마침내 날이 저물고, 그들이 삼삼오오 털털대는 차를 몰고 모두 떠나버릴 때까지 시커먼 대들보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도 남과 북이 매년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장터를 벌일 수 없을까 생각했다. 어느덧 낯선 방언이 되어버린 서로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에 저녁은 더 스산하게 다가왔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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