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사람들을 書庫에 가뒀다-
‘담(Damme)’을 소개하는 책자 속, 그윽한 수초(水草) 사이로 흔들리는 보트와 풍차 사진이 그림 같다. 허공에 사뿐이 뜬 구름, 빵과 술이 담긴 바구니며 풀밭 위에서 식사를 즐기는 한 쌍의 연인도 보인다. 모든 사진 속에서 빗줄기는 단 한 줄도 비치지 않는다. 사진이 재현하는 허구적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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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지나가는 담의 행인들. |
과연 비바람을 맞지 않고 플랑드르 땅을 밟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찍을 틈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안달이 날만큼 비는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그 빗줄기가 이곳으로 오던 길에 브뤼셀 남부역 화장실에서 목격한 몹쓸 장면에 대한 충격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했다. 그곳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고릴라 같은 경찰 둘이서 초라한 동남아 사내를 악을 쓰며 난폭한 몸짓으로 몰아세우고 두들기는 광경과 마주쳤다. 벨기에제(製) 가방에 달랑거리며 붙은 귀여운 고릴라의 다른 모습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고질인지라,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디 이런 일을 한두번 목격했던가. 그러나 이날따라 빗줄기가 한결 추저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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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장의 모습. 낮은 홍예로 궁륭을 얹은 15세기 건물이다. |
최근 유럽에서 기차역들이 깨끗해졌다고 좋아라하는 여론이 있다. 인권보다 ‘위생’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간 무고한 유색인이 얼마나 수모를 당했을까. 그런 식으로 깔끔을 떠는 사람들은 청소를 너무 좋아한다. 그러니까 인종 청소도 서슴지 않는다. 콩고를 식민지로 통치했으면서도 멸종위기에 처한 유인원을 애틋하게 그린 이미지로 그 기억을 희석시킨 사람들이다. 쇠락하던 소도시를 살리려는 그들의 노력도 애틋했을까?
담은 인구 1000명가량의 포구였다. 너무나 유명한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브뤼주에 바로 붙어 있다. 브뤼주 시내에서 운하를 따라 버스를 타고 곧게 뻗은 가로수길을 잠시만 달리면 금세 닿는다. 가장 인기를 끄는 신혼여행지로서 연중 시즌이 따로 없는 브뤼주의 깜찍한 위성도시인 셈이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브뤼주를 거쳐 마을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1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가 몰락했던 브뤼주는 지난 세기에 관광산업으로 체면을 되찾았다. 초콜릿 산업과 세 군데 미술관만으로도 브뤼주는 풍요롭다. 브뤼주라는 거목 밑에서 작은 버섯 같은 신세가 된 이 마을은 자력갱생을 모색하던 끝에 책을 붙잡았다.
마을에 책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가 1997년이니 벌써 10년을 넘겼다. 여기에는 불어권 발롱 지방과 네덜란드의 책마을이 큰 자극이 됐다. 담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처음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책마을이다. 서점은 10집이다. 5월에서 9월까지는 상시로, 겨울철에는 주말에만 문을 연다. 그리고 매달 2번째 일요일 광장에서 난장을 벌인다. 연간 다섯 차례 도서경매를 개최한다는 점이 다른 책마을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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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의 사진가가 촬영한 피폭된 서재의 모습. |
이날 마침 경매가 있었다. 경매는 약간 낮은 홍예가 바구니 손잡이 형태로 아늑하게 실내를 덮은 관청 부속건물에서 열렸다. 흠뻑 젖어 동정의 시선을 받을 만큼 꾀죄죄한 꼬락서니를 무릅쓰고 필자 또한 그 경매를 지켜보았다. 여기에서는 개인소장품보다 행정당국에서 문서고(文書庫)에 더는 수용하기 어려워 처분할 물건을 내놓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얀 네이링크는 공무원으로서 서점친목회의 협조를 얻어 이 일을 주관하고 있다. 네이링크는 이런 행사를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좀더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단골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경매를 찾는 사람이라면 물론 아마추어 애서가와 학자들이 주류이고, 뜨내기는 드물다. 거래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책자는 성격이 비슷한 여러 권 단위로 묶여 있다. 경매는 차분한 분위기가 지나쳐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경매이니 만큼 고지도(古地圖)에 대한 경합은 만만치 않았다. 동해나 독도의 표기 같은 것에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세계지도는 희귀했다. 그러나 지도상에서 네덜란드 사람이 일찍이 “그 어디 메인가”라는 뜻에서 ‘켈파르트’라고 표기한 제주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옛 건물 사진의 복제 인쇄물에 대한 인기는 대단하다. 종루(鐘樓)와 정문현관이 하나로 합쳐지고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건물구조를 장식요소로 변형시킨 독특한 이 고장 건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런 종루는 지난 2차대전 중에 미군의 맹폭으로 대량 유실되면서 급격히 희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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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인문학자 마를란트의 동상 앞에서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
금실로 테두리를 장식한 사진 앨범이 몇점 눈에 들었다. 작은 종이상자에 든 사진 한 뭉텅이를 골랐다. 기묘한 아마추어 사진가의 사진이다. 지난 전쟁 때 허물어진 자기 집을 샅샅이 촬영한 것이었다. 아마 책꽂이 사진치고 이렇게 황량한 것은 다시 없으리라. 박살이 나고 허공에 걸린 액자와 엉망으로 된 살림살이를 모두 사진에 담았다. 부서진 피아노에서는 전위작가가 건반을 미친 듯이 두드려대는 굉음이 울릴 듯했다. 그 방 한구석에 책장이 사탑처럼 기우뚱하게 서 있는 사진도 있다. 바닥에는 책이 나뒹군다. 전선의 참호와 기념비적 건물의 잔해를 촬영한 것은 더러 있어도 자기 집 안의 책장이라…. 집주인은 필경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서재 속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카메라를 겨누었을 듯하다. 눈으로 부른 애도곡이다.
마을에는 책방마다 관련 서적이 무수한 전설적 영웅의 박물관이 있다. 15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민담이었다가 소설가 샤를 드 코스테르가 개작한 의적(義賊) ‘틸 윌렌슈피겔’은 이 마을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민중영웅의 일대기는 네덜란드,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다양한 이본이 나왔다. 에스파냐 황제 펠리페2세의 통치 하에 나라를 잃는 수모를 겪은 네덜란드 민중의 신산한 심정의 발로였다. 틸은 부모를 종교재판의 고문과 화형으로 잃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플랑드르 해방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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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장의 책들 뒤로 플랑드르 고유의 종루가 정면을 대신하는 전통건축의 사진이 보인다. |
박물관을 나서자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를 가르며 우수수 자전거떼가 몰려왔다. 주말을 즐기러온 동호회원들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사람들은 마을 복판에 서 있는 야곱 반 마를란트(1235~93)의 동상을 둘러싸고 주위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인솔자의 즉석 특강을 경청했다. 마를란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원전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이 마을 출신 인문학자이자 시인이다. 말하자면 저지(低地)의 가난하고 어둡던 땅에 불을 비춘 계몽가였다. 그는 이곳 성당에 묻혔다.
이 소도시형 책마을에서 다닥다닥 붙은 15세기 이후의 건물은 마을의 귀중한 자산이다. 건물들은 벽돌 한 장 빠트리지 않고 두껍게 여러 겹으로 페인트칠을 했다. 페인트색은 밝은 원색과 강렬한 흑백의 대조로 이어진다. 모두 방수성(防水性)이다. 한낮에도 꼭꼭 문을 걸어 잠그는 버릇도 습기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둑어둑한 책방의 실내는 서가를 숨바꼭질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디오게네스’ 서점에서 쥘 데스트레, 프란츠 헬렌스, 장 드 보쉐르 등의 단행본 문집은 애장가의 군침을 삼키게 한다. 이들은 미술에서 문학을 끌어낸 주역이다. 그러나 이들의 글은 아쉽게도 미술사와 문학, 비평과 전기 어느 장르로도 분류하기 애매한 성격 때문에 그 빼어난 문체에 걸맞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이중에서 쥘 데스트레(1863~1936)의 선집은 최근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고장 사람에게는 산업지대의 고통과 노동운동, 화가 반 고흐도 혹독하게 겪었던 몽스·보리나주 등 탄광에서 자행된 아동과 여성에 대한 살인적인 착취 등의 기억이 여전히 깊이 각인돼 있다. 예술가들 또한 가톨릭 극우파와 어용예술가의 국제주의 경향에 반기를 든 위대한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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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앞에서 조촐하게 진열된 책을 찾는 여인. |
쥘 데스트레는 광산촌과 중공업단지에서 19세기 벨기에 노동자의 현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직시했다. 그는 발롱 지방의 독립성을 주창하고 사회당 창립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세상살이를 주목한 사실주의 미술을 장려했다. 가톨릭 보수세력 일색인 플랑드르를 편애하던 왕당파의 예술관과 다르다. 그의 이념은 종종 지역주의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부당한 주장이다. 특히 고약한 정치적 담합으로 탄생된 ‘벨기에’라는 국가의 허구성을 비판한 점이야말로 그의 사상의 백미이다.
데스트레는 미술사에서 가장 해묵고 거창한 논쟁거리인 민족문제도 제기했다. 초기 르네상스 걸작으로 아동화처럼 어색해 보일 수 있는, 뒤틀린 실내의 뒤틀린 탁자 곁에서 성경을 읽는 ‘동정녀상’을 그린 15세기 화가 로히에르 반 데어 베이덴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다. 미술사가들은 반 데어 베이덴이 네덜란드어권의 플랑드르 사람인지, 프랑스어권의 발롱 사람인지를 두고 한 세기 이상 논란을 거듭했다. 이 거장을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결정적 영향력을 포함해서 미술사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호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방마다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린 반 데어 베이덴를 둘러싼 화첩과 장서들을 들춰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반 데어 베이덴은 아들을 잃고 슬픔에 젖은 동정녀의 눈물을 극진하게 그렸다. ‘어머니인 동시에 영원한 처녀’라는 자애와 순결의 절대적인 존재로서 동정녀의 눈물은 이 세상 어느 보석보다 값진 것으로서 신앙심 깊은 옛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책꽂이에 가득한 이 화가의 화집 사이에서도 동정녀의 눈물 방울은 줄줄이 굴러 떨어진다.
한편 누구나 잘 알다시피 벨기에는 세계 최대의 만화 생산·소비국이다. 담에서는 책방마다 수북한 만화책을 찾기에 그만이다. 일본 만화는 풍부한데 아직 우리 만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만화책도 최근에는 다시 작아지고 있다. 그래도 8절 국배판이 장편만화책의 고정적인 판형처럼 굳어졌다. 만화의 고전이 된 카스테르만 출판사의 작품들, 역대 앙굴렘 만화제의 수상작들도 보인다. 장편만화로 인쇄하기 위해 그린 원화(原畵)의 가격도 고시니, 쉬텐스 같은 거장의 경우 수천만원을 호가한 지 오래다.
장편만화가 프랑수아 쉬텐스 같은 거장의 음습한 플랑드르 도시를 다룬 멜로드라마는 코끝만 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가 그린 ‘시들지 않는 꽃집’의 주인공도 매력적이다. 무기력한 중년의 꽃집 주인 콩스탕 아벨스는 수돗물이 끊어진 어느 날 비바람을 무릅쓰고 수도국을 찾아간다. 그는 수도국 직원 티나의 안내로 꽃을 살리는 비법을 찾아 서고(書庫) 속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거대한 책더미를 뒤지다가 그 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속에 파묻힌 채 뜻밖의 사랑을 나눈다…. 이렇게 책도 사람도 어떤 사건조차도 축축하게 젖는다. 이래저래 플랑드르 사람들은 빗줄기 속에 희로애락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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