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에 대항하는 대중,‘제국’을 넘어서는 대중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⑦ 안토니오 네그리 - 윤수종 교수 (전북대 사회학과)

대학신문 2007년 11월 03일 (토)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는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autonomia)1)운동 및 이론의 흐름 속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이탈리아의 특수성 속에서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다음 세기를 향한 진전방향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푸코 등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타리와는 공저를 내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프랑스로 망명해 가타리를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파리 8대학 정치학 교수로 활동했고, 『전미래(Futur Anterieur)』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확산시켰다. 1997년 중반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투옥됐다. 최근에는 자유의 몸이 되어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글도 쓰고 있다. 2000년과 2004년에는 각각 마이클 하트와 『제국(Empire)』과 『대중(Multitude)』2)이란 책을 써서 사회과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제국』은 미시논리에 함몰되고 파편화돼 있는 사유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사유의 거시적 종합화를 시도한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로부터 『구성권력』으로 이어지는 네그리의 사유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 세계가 휩쓸려 가고 있는 대변동(세계화)에 대해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들뢰즈, 가타리와 푸코에 근거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현대사의 주요한 이행을 해방의 도래로서, 그리고 혼성적이고 노마드적인 정치의 기회로 파악한다. 20세기의 이른바 고전적인 제국주의들과 구별해 이 새로운 초민족적ㆍ세계적ㆍ총체적 배치를 ‘제국’이라고 부른다.

제국은 미국적인 것이 아니고 유럽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며 전지구적인 것이다. 네그리는 국민국가에 기반한 근대적 주권이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인 주권으로 변형돼 간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이행에서 탈근대화의 생산적인 내용으로서의 생산의 정보화에 주목한다. 더욱이 네그리는 생산을 객관적인 경제적 영역의 생산으로 좁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생산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이러한 네그리의 사고의 밑바탕에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이 대중의 저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푸코, 들뢰즈, 가타리의 생각을 받아들여 생체 정치적인 생산으로의 이행을, 차이를 용인하면서 통합을 해나가려는 제국적인 권력의 새로운 (네트워크) 양상을, 그리고 기존의 훈육사회에서 통제(관리)사회로의 이행을 강조한다.

▲ 안토니오 네그리


『제국』이 지배에 대해 분석했다면 『대중』은 그 부제 ‘제국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 중에도 대중이 등장했고 그에 따라 사회운동 방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그의 대중 개념은 군중, 인민, 일반적인 ‘대중’, 국민 개념과 대비되며, 상이한 문화, 인종, 인종성, 젠더, 성적 지향, 노동형태, 생활방식, 세계관, 욕망 등등 수많은 내적 차이들로 이뤄져 있어 통일적인 혹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개념이 배제적인 개념인 데 반해 그의 대중 개념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즉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특히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주민층인 빈민을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대중은 서구에서는 68혁명 이후에,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ㆍ농민 대투쟁 이후 다양한 욕망을 담지한 채 나타났다. 노동자계급의 내적인 분화와 다양화 속에서 대중의 노동형상은 다양화되고 더욱 더 비물질적 노동의 특성을 띠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대중의 등장과 함께 사회운동의 투쟁방식과 방향이 변하고 있다고 네그리는 설명한다. 1960년대에 나타난 게릴라 투쟁모델은 집중적 투쟁모델의 단말마를 보여주며 네트워크 투쟁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에서 나타난 네트워크 투쟁은 그 이후 사회운동의 방식으로 널리 확산되며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절정에 달한다.

또한 네트워크 투쟁으로의 변화과정 속에서 대중의 욕망투쟁과 주체성 생산투쟁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이해투쟁과 대비되는 욕망투쟁의 전개 속에서 대중은 자본이 부과한 자본주의적 주체성 생산에 대항해 각종 시설들 속에서 다양한 일상적 파업을 통해 자본의 훈육을 거부하면서 색다른 주체성 생산(특이화)을 시도한다고 한다.

네그리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쟁점과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기존의 좌파 운동에 대해 비판점을 형성하고 있다. 네그리의 이러한 입장은 당 형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네트워크 형식의 운동을 강조하고 대안세계화운동, 다양한 소수자운동, 대안운동을 비롯한 자율운동의 활성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편집자 주
1) 자율주의. 이탈리아 비의회 좌파운동의 커다란 흐름이자 동시에 기존 좌파(공산당)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노동자운동에서 나타난 ‘노동거부’를 통해 공산주의적 전통을 부정하고 현실사회주의 사회와 대립한다.
2) 흔히 ‘다중’으로 옮기나 필자는 ‘대중’으로 옮겼으므로 이를 따른다.


 필자 윤수종 교수
전남대ㆍ사회학과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농업생산에서의 노동조직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 사상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자유의 공간을 찾아서』, 역서로 『제국』 등이 있다.






내오랜꿈 ----------------------------------------------------------------------

<소수성의 정치>를 언급하는 어떤 글에서 상당히 '용감한' 언급을 봤다. 근본적으로 '소수자의 정치'란 건 존재하지도 않는 용어일 것이다. 하물며 소수성의 정치에서 '전위'를 찾아내는 '선견지명'에는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이나 소수자 운동은 그 어떤 전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전위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소수자 운동에 대한 몰이해를 웅변하고 있을 뿐이다. '무식이 용감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나 찾아질 수 있는 개념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토니오 네그리나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대해서 차분하게 공부해 볼 것을 권한다. 어지간한 책은 윤수종 선생의 번역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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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떨어졌다."
“......?”
“......?”
“머리라도 잘라서 팔아 오지 그러냐?”


이 무슨 70년대 연속극도 아니고...

지난 일요일, 저녁을 먹는 식탁에서 아내가 갑자기 툭 던져 온 말이 ‘쌀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이 무슨 보릿고개 넘던 시절 대화도 아니고, 그래도 명색 수도권 변두리 도시지만 30평대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가정에서 나올 법한 소린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다가 답해준 말이 ‘머리카락이라도 좀 잘라서 팔아 오라’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그러고선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물론 요즘도 이 사회에선 기본 먹거리인 쌀의 부재를 염려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것 하나 해결 못 하면서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달성했다(환율 하락 덕분에 2007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불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자화자찬할 이 우라질 정부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기 임기 내에 4만 불 달성한다고 설쳐대는 차기정부 구성 1순위 후보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내 유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쌀’이란 존재는 지금처럼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부족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올 해는 풍년이 들어 쌀 몇 천만 석을 수확할 것이란 뉴스가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우리 집 역시 그 쌀의 존재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했다. 3,000여 평의 논을 경작하고 있어 우리 식구 먹을 식량이 전혀 부족할 리 없는 우리 집에서도 쌀은 늘 부족했다. 내 기억에 우리 집에서 쌀밥을 먹는 날은 설, 추석 그리고 가족 누군가의 생일날이었다. 3,000여 평의 논에서 수확한 쌀은 보리쌀로 대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양만 남긴 채 현금화되어 집안살림살이에 보태졌던 것이다. 아마도 그 덕에 내가 대학까지 공부할 수 있었으리라.

이런 유년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나조차도 지금은 ‘쌀의 부재’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지금 나에게 쌀이란 언제든 필요하면 마트에 들러 4kg, 5kg, 10kg짜리로 세분화되어 ‘**햇쌀’, ‘**청정쌀’, ‘**농협쌀’로 브랜드화 된 포장뭉치를 카트에 싣기만 하면 되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려면 ‘돈이 떨어졌다’고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오늘 점심 때 장보러 가자고 하니까 아내는 한 번 더 해 먹을 쌀은 남았다면서 내일 가자고 한다. 그럴 거면 뭐 하러 ‘쌀 떨어졌다’고 유난을 떨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한 아내는 쌀 걱정 해본 적 없는, 나보다는 ‘부르조아 집안’ 출신이다...-.-..


희망의 노래 - 류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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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세요. 안 되면 시골로"
   
[경제정책 검증(2)]'이명박의 신세계', 열리면 대재앙


정태인/민주노동당 한미FTA 저지 사업본부장
출처:<프레시안> 2007-11-02 (본문의 사진은 <레디앙(www.redian.org)>에서 가져옴)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 저지 사업본부장(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경제정책 검증 시리즈'의 2탄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그는 "한미 FTA와 이명박 대통령의 결합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이 후보가 집권하면 "삼성-재경부-조중동의 삼각 지배동맹의 멋진 신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 본부장이 말하는 '멋진 신세계'는 "97년을 능가하는 위기"다.
  
  그는 이 후보의 핵심 공약인 '대한민국 7ㆍ4ㆍ7(7% 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 감세와 규제완화, '한반도 대운하' 등을 조목조목 비판한 뒤 "이 후보의 정책은 현실성이 높아질수록 우리를 대재앙의 구렁텅이로 더 깊숙이 밀어넣게 된다"고 단정했다.
  
  정 본부장은 "상위 10%에 들 자신이 없다면 이민을 가거나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시골에 가서 한 10년 굶어 죽지는 않는 삶을 선택하라"며 "대재앙으로 날아가는 이명박의 7ㆍ4ㆍ7을 꼭 타야만 하느냐"고 반문했다. <편집자>


가족에 대한 예의

10년 전 나는 영국에 있었다. 친한 교수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1년간 영국에 가 있어야 하는데 돈을 전부 파운드로 바꿔 가는 게 좋은지, 다달이 한국에서 부치게 하는지 나은지 물었다. 통계를 살펴 보니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여유가 있다면 전부 바꿔 오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를 맞았으니 모처럼 올바른 조언을 한 셈이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는 얘기를 하지 않아 우리는 한국에서 오는 돈이 반토막 나는, 외환 위기의 고통을 고스란히 다 당했고 나는 영국의 한인 애들 수학을 가르쳐야 했다(사실 이혼당할까봐 얘기를 하지 않아 그렇지 이런 경우는 숱하게 많다).

이후로 환란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리라 예측되는 경우에는 집에도 얘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현재의 여론조사대로 선거 결과가 나온다면 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살 길은 이민이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시골로 가야 한다. “일단 주식을 구입하고 1년 뒤에 부동산으로 바꾸고(돈이 많다면 둘 다), 2년 뒤에는 다 팔고 시골로 가자”고 했더니 마누라 왈 “돈이 어디 있어. 정말 시골로 가야 돼?”

747은 어떻게 탄생했나

문국현 후보의 경제정책 검토는 쉬운 편이었다. 후보 본인의 신념을 설파했기 때문에 그 말이 실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살펴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책수단이 전혀 없이 떡하니 결과만 외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다 해결된다. 이명박이니까 할 수 있다.” 이걸 어떻게 검증하는가.

   
  ▲ 자신의 경제 캐치프레이즈인 '747' 후원 총회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후보. 부자들만 탈 수 있는 그 비행기의 종착지는 '서민대재앙'이다.(사진=뉴시스)
 
747은 어떻게 나왔는가? 세상에 이런 방식도 있었다. 독일의 사례를 보니 통일 비용이 10년 동안 서독 GDP 만큼 나오더라, 그러니 10년 내에 GDP는 두배가 되어야 한다. 간단하다. x의 10제곱은 2. x는 약 1.07, 즉 7% 성장이 나온다.

10년 후 두 배가 된 GDP를 인구 5,000만으로 나누면 1인당 GDP 4만 달러, 이제 4가 나왔다. 현재 나라 순위를 보니 7번째(이탈리아) 쯤 해당되니 안성맞춤, 마지막 7이 나왔다. 물론 심상정 의원이 상큼하게 꼬집었듯 현재 7위 부근의 모든 나라가 제자리 걸음을 해야 가능한 순위다.

어디 두 배만 들겠는가. 1990년 통독 당시 동독의 GDP는 서독의 1/3이었지만 현재 남북한의 격차는 10배 이상이다. 이명박식 주먹구구로 조금 더 현실적인 계산을 한다면 우리 GDP는 10년간 6배 이상 증가해야 한다. x의 10제곱은 6. x는 약 1.2이다. 왜 매년 20% 성장을 해서 1인당 GDP 12만 달러, 세계 1위라고 하지 않을까?

목표는 이렇게 역산으로 만들어졌는데 방법은 무엇인가? 놀라지 마시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인은 성공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하려 유태인을 학살하고 세계전쟁을 일으킨 나찌의 발상이 바로 그랬다. 설마하는 의심이 난다면 이명박 후보의 홈페이지에 직접 가 보시라(홈페이지 정책광장의 “대한민국 747”).

DNA를 빼면 ‘5개의 고효율 연료’가 남는다. 첫 번째 연료는 국가시스템의 재설계이다. 여기서 무려 40~50조원의 경제사회적 효과가 발생한다. 불행하게도 어떤 국가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인지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연료는 법/질서 확립과 이념/지역/계층간 갈등 해소이다. 법/질서를 확립하면 갈등이 해소된다는 말인데 이 역시 요령부득이다. 이 주장은 그의 노조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주 적나라하다.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노조를 만들겠다니, 교육이 제대로 되겠냐...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노조와 전교조를 극복해야 한다” “(지하철)기관사가 쉬운 자리라는 게 드러날까봐 파업도 못할 것이다”

즉 사회적 갈등을 공권력으로 억누르겠다는 말이겠다. 여기에서도 20~30조원의 경제사회적 효과가 발생한다. 그는 현대건설 시절, 박정희 시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갈등 해소하면 스웨덴이나 네델란드 식의 사회적 대타협을 떠올리지만 그는 박정희식 독재에 의한 억압을 상상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연료는 국토의 인프라 확충, 물류시스템 개선을 통한 국토 활용성의 제고이다. 이 주장에는 예의 ‘경제사회적 효과’가 제시돼 있지 않지만 그 핵심 정책은 한반도 대운하라는 걸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 쪽은 운하건설로 연간 20~30조원의 물류비가 절감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네 번째 연료는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연간 “20조원 이상의 추가 동력” 확보가 가능하단다. 선진국 수준의 규제완화정책을 시행하여 “전 국토를 준경제특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연료는 “미국, 아시안, 중국, 일본 등과 FTA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다(아세안과는 이미 제조업 분야 FTA를 맺었는데, 이 문건의 아시안은 도대체 어떤 지역을 뜻하는 것일까?).

숫자가 제시된 걸 전부 합치면(명확하진 않지만 앞뒤로 보아 매년) 약 100조원의 ‘사회경제적 효과’ 및 ‘비용 절감’, 그리고 20조원의 ‘추가동력’(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이 된다. 매년 100조원이면 현재 GDP의 약 1/8, 즉 12.5%에 해당된다.

이렇게 되면 실제 GDP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까?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후보 지지를 선언한 그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대답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근거가 전혀 없는 숫자들이 다 조합되어 추가 성장 3%p가 달성된다는 것인데(아무리 봐도 훨씬 더 성장할 것 같지만) 근거가 없으니 비판할 도리도 없다. 이런 정책을 가진 후보가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한국의 미래가 안타까울 뿐이다.

유일한 정책,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그래도 찾고 찾으면 3% 추가 성장의 근거는 감세와 규제완화이다. 우선 법인세를 5%p인하해서 현재 1% 정도인 투자증가율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1%에 근접한 수치는 한국은행 국내총생산 지표의 총고정자본형성 항목이다(2000년 가격 기준, 2006년 증가율 0.9%). 액수로는 2000년 가격기준으로 약 345조원에 해당한다. 즉 30조원 이상(5년간 150조원) 투자가 늘어나야 이후보의 공약은 달성되는 것이다.

한국의 법인세는 연간 약 30조원을 조금 넘는다. 현재의 세율 25% 수준에서 5%p를 인하해 봐야 6조원(이후보 측은 7조원이라고 발표) 정도 감세된다. 현재 1,000대 기업의 사내유보가 364조원이다. 돈이 없어서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 6조원을 보태 줘서 370조원이 된다고 해서 투자가 갑자기 10% 증가할 리가 없다. 소득이 증가하지 않으면 당연히 세수가 줄어든다.

다음은 규제완화다. 우리나라 재벌의 소원은 뭘까? 첫째가 수도권 규제완화, 둘째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셋째가 금융/산업 분리의 폐지이다. 이명박 후보의 규제완화 공약 1, 2, 3번와 똑같고 동시에, 한반도 대운하를 보태면 시민단체가 손꼽은 4대 나쁜 공약과 정확히 일치한다.

기업 투자에 어떤 변화가 올까? 우선 수도권 부동산을 구입할 것이다. 이미 현 정부에서 앙상해졌지만 그나마 출총제가 폐지되면 지네발 식으로 온갖 사업에 모두 진출할 것이다. 금산분리 폐지로 삼성은 소원대로 은행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출총제가 규제하는 것은 설비투자가 아니라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이다. 은행에서 돈을 마음대로 갖다가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부동산을 구입한다고 고용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명박 후보 역시 전가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한반도 대운하이다. 작년의 총고정자본 형성 증가율이 1%에 못 미치는 것은 설비투자(0.8% 증가) 때문이 아니고 건설투자가 -0.1%, 즉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법이 있다.

현대건설 출신의 CEO답게 한반도 대운하를 들고 나올만 하다. 이미 많은 비판이 이뤄진 것처럼 이 정책은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더구나 환경 측면에서 사업 타당성이 전혀 없다. 이렇게 세 측면에서 모두 타당성이 없는 정책은 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최악의 정책으로 기록된 새만금사업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 후보 쪽 주장으로는 15조원, 비판자들의 견해로는 50조원 정도가 투입될테니 목표로 한 투자 증가(30조원)의 1/10 내지 1/3은 단번에 해결된다. 노회찬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이 대재앙을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서 또 사업을 벌인다면 우리의 투자문제는 절반 이상 해결될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자연파괴는 GDP를 상승시키고 이를 회복하려면 GDP는 또 다시 증가한다”는 국민소득지표의 허점을 명확히 보여 주는 사례로 전 세계의 경제학교과서에 기록될 것이다. 여기에 “전 국토의 준경제특구화”를 보태면 목표는 초과달성될지도 모른다. 현재 가히 부동산투기 자유구역이라 할 만한 인천 경제자유구역을 전국에 복제하겠다는 얘기니 말이다.
수도권의 건설 붐과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는 대역사, 이것이야말로 7% 성장의 핵심인 것이다. 무릇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높아야 하지만 이후보의 정책은 반대로 현실성이 높아질수록 우리를 대재앙의 구렁텅이로 더 깊숙이 밀어넣게 된다.

피폐해지는 국민의 삶

부동산개발이 땅값, 집값을 폭등시킬 것은 자명하다. 이 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확대를 기조로 삼는다. 오른쪽으로 도망가는 수요곡선을 잡지 못하는 한 공급확대가 오히려 부동산 값을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건교부가 신도시 계획, 용적률 제고 등 공급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집값이 폭등한 것을 벌써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론에 밀려 종부세를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3불 정책이 질좋은 교육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저 폐지하면 교육의 양극화는 극심해질 것이다. 우골탑으로 불리던 대학 등록금은 아마도 아파트탑이 되고 말 것이다. 이후보도 ‘21세기 성장엔진은 사람과 기술’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학은 소수 부자들의 전유물이 된다.

대학 뿐 아니다. 현재의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조건만 완화한 자율형 사립고를 100개나 세운단다. 연간 납입금이 민사고 1,538만원, 상산고 938만원 등인데 이와 유사한 학교 100개가 세워지면 돈 때문에 이들 학교에 갈 수 없는 학생은 어찌 하라는 것인가. 자율형 사립고를 가기 위한 사교육 열풍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GDP의 3%에 이르는 사교육비가 얼마나 부풀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세계의 어떤 경제학자라도 한국 경제성장의 비결 중 하나로 높은 교육열을 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교육 양극화가 진행되면 이제 대다수의 국민은 교육을 포기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자산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교육이 신분 상승의 통로가 아니라 신분상승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

결국 이 후보의 집권은 장기적으로 잠재성장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출 것이 틀림없다. 한미 FTA가 시행되고 미국의 교육기관이라도(이 후보 주장대로라면 다른 나라의 교육기관도) 혹시 한국에 진출하면 이후보의 각종 서비스 산업 정책은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도 없다. 경제자유구역에는 래칫(역진 방지) 조항이 적용되고 우리 법을 바꾸면 저 악명높은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보는 의료산업의 전략화라는 이름 아래 영리법인 허용, 민간 의료보험 확대를 약속했다. 이게 의료 민영화가 아니고 그 무엇인가? 현재 의료산업 육성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는 날개를 달게 된다. 여기에 한미 FTA까지 겹치면 건강보험도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민간 의료보험을 확대한다는 것은 건강보험의 자리가 그만큼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려 5,000만명이 아무런 보험 없이 살아가는 미국의 상황이 이 땅에서 재현된다. 최상층을 위한 고급 의료 서비스가 증가하겠지만 그만큼 보편적인 서비스는 사라진다.

위에서 예로 든 주거, 교육, 의료는 대표적인 가치재(merit goods)산업이다. 이들 분야에 고유한 공공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국가 등이 공적인 공급을 해 왔으나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는 아니기 때문에 사적 공급도 가능하다. 무제한의 사적 공급이 허용되면 이윤이 나는 고급 서비스 시장은 커진다. 문제는 이 서비스를 누리는 사람들이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비용의 지출에 반대하게 된다는 데 있다.

사교육비를 무제한 지출하는 사람들은 교육세 증세에 반대하고 비싼 민간의료보험을 산 사람은 건강보험에서 빼 줄 것을 요구한다. 주거 역시 마찬가지이다. 집값의 상승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후보 스스로가 대표적이다)이 부동산 규제를 반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 박정희 신드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이명박 후보.
 
닥쳐올 경제위기

그래도 높은 경제성장을 하게 되면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이른바 적하(滴下)효과(trickle down effect)다. 이 후보의 정책기조가 바로 그렇다. 성장을 통해 분배와 복지문제도 자연히 해결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후보의 정책은 현재의 ‘고용없는 성장’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 틀림없다.

물론 부동산 개발이 단기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률을 높이는 건 사실이다. 각종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는 주가와 부동산 값을 급등시킬 것이다. 자산 효과(wealth effect)에 의해 소비도 증가할 것이고 집권 1~2년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율을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감세와 함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이 둘은 자연스럽게 복지를 축소시키고 소득재분배는 완전히 물 건너 간다(현재는 민주노동당의 주장대로 소득재분배를 넘어 자산재분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미 FTA와 어우러진 시장만능의 세계는 양극화를 극단으로 진행시킬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금융화한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파산 상태다. 다행히 연착륙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앞으로 몇 년간 미국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다. 2008년 올림픽 이후 중국이 경제위기, 적어도 침체를 겪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수년이 거시 경제정책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참여정부에 시작된 ‘묻지마 FTA’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두 발효가 되고 더 많은 FTA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국내에는 자산 버블이 극단으로 진행된 상태인데다 무분별한 개방으로 충격 흡수 장치는 모두 제거됐다. 그 결과는? 불행하게도 97년을 능가하는 위기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50% 이상이 지지한다?

문제는 이런 경제정책을 50% 이상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프롬이 얘기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이 후보가 톡톡히 덕을 보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열광했던 독일 국민들의 심성과 닮아 있다. 아니 더 나쁘다.

테민의 말대로 나치의 경제정책은 사실 케인즈 이전의 케인즈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시장만능론의 시장독재를 실현하니 한국경제는 자산주도형 경제로 급속하게 변화할 것이다. 빨리 컸으니 빨리 늙어야 한다는 것일까? ‘한강의 기적’은 ‘한강의 조로(早老)’로 바뀌고 만다.

한미 FTA와 이명박 대통령의 결합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미 FTA를 추진한 이 정권은 그나마 사회투자국가를 내세워 약간의 양심을 간직했다. 이제 삼성-재경부-조중동의 삼각지배동맹의 ‘멋진 신세계’가 열린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까지 상위 10%에 들 자신이 없다면 이민을 가시라.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시골에 가서 한 10년 몸은 고달프겠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한미 FTA와 더불어 또 하나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대재앙으로 날아가는 이명박의 747을 꼭 타야만 할까?


내오랜꿈 -----------------------------------------------------------------

며칠 전에 스크랩해 둔 이 글을 편집하면서 읽어보다 '쿡쿡' 웃었다. 그런 나를 본 아내가 왜 웃느냐고 묻는다. 그냥 말없이 웃으며 쳐다만 보고 말았지만, 내가 웃은 이유는 정태인 씨의 마지막 문단 때문이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까지 상위 10%에 들 자신이 없다면 이민을 가시라.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시골에 가서 한 10년 몸은 고달프겠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절대 웃으면 안 되는 구절이다. 차라리 비통하고 슬픈 심정을 토로해야 하는 대목이리라. 정말 이놈의 사회는 점점 상위 10%의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상위 10%가 부를 거머쥐고, 상위 10%가 여론을 움직이는 사회. 상위 10%의 이익이 어느새 '국익, 애국'이라는 말로 둔갑하면 '어리석은' 백성들은 목 놓아 울부짖으며 그 '상위 10%의 사회'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내가 웃은 이유는 이민가거나 시골로 가라는 정태인씨의 '패러독스'(?) 때문이다.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특정한 직업없이 생활하는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앞으로 뭐 할 거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와 아내는 그들에게 '시골로 들어갈 예정이다'라고 대답해오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진짜냐?', '너 하고 안 어울린다'에서부터 '자기들 땅도 좀 알아봐 달라'는 말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런 와중에 내가 인정하는 경제학자 정태인 씨의 이명박 집권시 '행동지침'이 내가 추구하는 삶과 일치하기에 어이없어서 웃어본 것이다. 재경부 관료들, 이른바 '모피아'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들 모피아들과 싸워본 몇 안 되는 진보적 경제학자가 바로 정태인씨다. 지난 번 어떤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정책라인에서 이정우 선생과 정태인 씨가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참여정부의 꼬라지가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선거판은 점점 더 '개판'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런 '개판'에 전을 펴신 우리의 진보정당 후보는 뭘 하고 계시나? 아, '코리아 연방공화국' 창설을 꿈꾸신단다. 아주, '삽질'을 하고 계신다. '삽질'하다 질리셨는지 이번엔 '만인보'를 한단다. 이제 와서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면 백만이 모이나? '삽질'도 좀 정도껏 하셔야지. 쯧쯧.....

이래서, 대한민국도 점점 더 '개판'이 되어가는 것 같다...

2007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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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한국의 70년대 닮은 캄보디아 독재 체제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유재현 | 그린비

“아시아와 제3세계문제를 천착하고 있는 소설가 유재현씨가 이번엔 캄보디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캄보디아 프놈펜에 머물면서 훈센 독재체제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는 캄보디아 현실에서 박정희 시대를 살아갔던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발견해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쿠데타와 독재자의 장기집권, 개발독재, 부정부패, 그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훈센과 박정희를 비교하기도 하고, 논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소녀에게서 1970년대 서울 변두리 골목길에 떨어진 멸치대가리를 주워 먹던 아이의 시선을 떠올리며 저자는 현실에 대해 강하게 분노한다.

“1962년생 쿠데타둥이인 나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았고, 내가 박정희 시대를 보냈던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연민과 고통, 분노와 증오가 가슴 한가운데로 무시로 틀어박히는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 참담함이란….”

저자의 분노는 한국 현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한국은 독재국가인 캄보디아를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지원하고 있다. 또 여전히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박정희의 제자라 할 수 있는 이명박이 유력한 대선후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캄보디아나 한국이나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책은 앞부분에서 캄보디아와 한국을 비교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그 이후부터는 캄보디아에 살며 직접 찍은 사진과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을 통해 캄보디아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거기서 연상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열정적으로 분노하며 드러낸 저자의 신랄한 비판과 주장은 캄보디아를 비롯해 아시아 문제에 무지한 우리의 머리를 마치 망치로 두들겨주는 듯하다. 1만2900원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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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현 씨의 책이니까 뭐 기본은 할 거란 믿음이 있는 책. 앙코르왓 여행을 계획 중인데, 그 전에 꼭 읽고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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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10)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州)의 뷘스도르프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벙커속에 묻어준 ‘전쟁 기억들’

 
뷘스도르프는 행정구역상 조센 시 소속이다. 역의 이름은 발츠슈타트 뷘스도르프. 이 간이역에서 젊은 연인이 베를린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숲속 마을로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낙엽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적시는 굵은 빗줄기가 그 소리를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서곡보다 더 장중하게 울려퍼지던 빗소리 사이로 인기척도 없는 건물들은 을씨년스럽게 수 십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한 채 건너 비어 있는 꼴이다. 그 길가 땅속에서 불쑥 백색의 병사가 튀어나온다. 참호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석상이다.

1930년대 말에 방공호로 구축된 삼각뿔 구조물. 이런 것들이 붕커 공원 내에 여기저기 솟아 있다.
벙커형 건물은 수십 동에 달한다. 30ha의 방대한 단지 밑으로 지하터널도 2㎞나 뻗어 있다. 낭만적인 정취는커녕 끔찍한 수수께끼가 숨겨진 미로 속으로 빨려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명쾌한 배열 탓에, 동어반복적인 구조가 자아내는 기이한 헷갈림이다. 건물의 베란다에서 이따금 깜찍한 인형들이 비를 맞고 있다. 목각 올빼미들이다. 온종일 비를 맞으며 눈을 부릅뜨고서 무엇을 지켜보았을까? 옆구리에 책을 끼고 손전등을 휘두르는 올빼미는 북을 치며 행진하는 호전적인 독일병정 인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집들은 벽의 두께가 60㎝에서 1m에 이른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에 조성된, 주거단지로 위장한 요새다. 또 그 단지 소나무들 틈 사이로 3층 높이를 훌쩍 넘는 뿔 모양의 구조물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이것도 방공호의 일종이다. 또 다른 건물로 접근할수록 입은 더 타들어왔다. ‘체펠린’ ‘마이센바흐’ 등 첨단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을 개발했던 인물과 기업의 이름을 딴 통신소 건물과 원폭공습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다. 마이센바흐는 전시에 탱크를 만들었지만 체펠린은 나치에 협력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도 잘 나가는 마이센바흐의 로고 타입은 바로 이 괴기스러운 삼각형 참호의 변형이다. 일부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들은 무서운 상상력으로 비약된 공포와 적개심의 화신으로 보인다. 이 숲속의 벙커는 45년 독일국방군이 패망하던 4월의 그날까지 사령부지휘소가 들어앉아 있던 곳이다. 그 뒤 이곳에 진주한 소비에트 군대가 94년에 완전 철군할 때까지 자신의 기지로 사용했다. 그러니 군사전략가나 국방전문가라면 이곳을 한 번쯤 찾지 않았을까? 책마을은 이렇게 붕커(영어로 벙커)와 군사박물관과 함께 ‘과거 속으로 산책’을 즐기는 공원으로 홍보되고 있다.

우선 빗줄기를 피해 카페로 들어서자 작은 액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의 병영생활이 담긴 사진들이다. 복무를 마치고 귀향하는 병사의 기념사진도 끼어 있다. 서울 삼각지에서 볼 수 있는 미군병사의 기념사진과 흡사하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따라주는 아가씨는 야윈 뺨에 야무진 인상이 영락없이 파스빈터 감독이 ‘라인강의 추잡한 기적’을 파헤쳤던 영화 ‘독일여자, 롤라’에서 경제성장기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여주인공을 빼닮았다. 파스빈터가 동독의 영웅 칭호를 받았던 화가 오토 딕스가 그려낸 여인상에서 빌려왔던 이미지다. 윤곽선은 곱고 가냘프지만 불안한 눈매 뒤로 그보다 더욱 깊고 강인한 의지와 애욕이 엿보이는 인상이다.

포복하는 병사의 석고상이 설치미술 형식으로 마을 땅바닥에 놓여 있다.
대낮에 밝혀진 붉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보니 자연스레 18세기 계몽기의 독일이 떠올랐다. 출판시장과 전업작가와 유한부인들이 주도하는 독자층이 등장하던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시 독서광이 출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유행 덕분에 제일 많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커피장사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원작자, 마르틴 빌란트나 레싱 같은 문인도 저작권을 얻기 위해 애썼다. 번역을 하고 잡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업작가의 입지를 다지려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첫 번째 세대였다.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해 물질적 예속을 감수해야 했던 쓰라린 모순의 출발기였다. 같은 시대에 “명예로운 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해도 대문호 괴테는 인세 수입에서 제일 재미를 보았다. 기도와 웅변을 닮은 해묵은 독서방식이 막을 내렸고 독서는 비로소 즐기기 위한 취미활동에 편입되었다. 독서하는 주체로서 개인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개인의 자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그림 속에서 ‘개인’이 주권을 찾았던 네덜란드 사실주의 미술의 시대에 비해 훨씬 뒤늦은 일이었다.

‘고서적’상은 전쟁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병사들이 내무반으로 쓰던 벽장은 서가로 바뀌었다. 36만권을 헤아린다는 서가 틈에서 듬직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라이너 밍크 박사로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베를린에도 서점을 갖고 있다. 그는 진지하게 마을의 현황을 들려주고 서점을 소개했다. 전쟁 관련 서적은 나라·시대·장르별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방대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쉴 새 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살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전쟁사진집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면, 라이프치히 도서축제의 목록을 비롯한 도록·자료집·팜플렛과 리플렛, 조잡하지만 촌부의 손때가 묻은 ‘딱지본’이라고 할 소책자, 잡지 등이 풍성하다. ‘컬렉션’을 위한 앨범들은 매력적이다. 우표첩이나 그림엽서는 축에 들지도 못한다. 주화를 금박으로 재현한 기발한 취미의 구식 짝퉁 화폐들, 여러 독일 제국의 문장(紋章)과 고대의 장식유물을 복제한 동판화첩을 들춰보면 독일 철학자의 표현대로, ‘피와 땅’이 다를 때 취미와 관념은 얼마나 끔찍하게 달라지는지….

‘붕커샵’의 실내 전경. 군복과 군장이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
밍크 박사는 내년의 책마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로 바쁘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애호가를 위한 중고 군용차량 견본시장도 준비해야 한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몰리는 대성황이었다. 프로모션을 위한 행사 가운데 ‘군대 이야기의 밤’은 학계와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군대와 전쟁 체험에 대한 회상과 고백과 증언으로 이어지는 이 행사는 구술사(口述史)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밝히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작가 한스 울리히 브란트는 전쟁 중에 이 마을사람들이 도모했던 반나치 저항운동에 대한 기록문학 작품을 발표해서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동호회의 활발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후로는 이렇다할 공적자금의 지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사민당의 하원의장 마티아스 플라체크가 방문하면서 새로운 지원책을 시사한 점도 향후 책마을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붕커와 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배가할 예정이다.

마을의 마스코트인 올빼미 캐릭터.
이런 전망 속에서 러시아와의 친교는 각별하다. 모스크바 군사박물관과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이 붕커 박물관 겸 공원은 독일군의 자취보다 소비에트와 그 뒤를 이은 러시아군의 영예에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고장이 일찍이 슬라브 민족이 정착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은연중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지도와 도록과 나란히 첩첩이 쌓인 사진집들을 들춰나가자 우리 6·25전쟁에서 알몸으로 지프를 올라타고서 성조기에 철모를 걸고 승리를 구가하는 미군병사의 사진이 튀어나온다. 엄동설한의 어둠 속에 밤길을 재촉하는 난민,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슬픈 행렬도 이어진다. 차마 들여다보기 민망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잔혹행위에 치를 떨다가 동성애자나 기형인간을 조롱하고 학대하며 기념촬영까지 감행했던 나치의 미소와 마주치자 벙커의 천장에 부딪쳐 울리는 그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폴란드 로츠 게토에서 몰래 카메라를 갖고 만행을 촬영했던 멘델 그로스만의 사진과도 재회했다. 초간본과 다른 저자들의 텍스트를 덧붙인 신판이 나오고 있다. 그 사진 가운데 어린 아이를 죽음의 가스실로 떠나보내며 철조망 사이로 입을 디밀어 부비며 나누는 최후의 작별 ‘키스 신’ 앞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더는 시도 쓸 수 없고 노래도 부를 수 없다”고 절규했던 철학자의 외침을 듣는 듯 얼어붙고 만다. 이토록 간절하다 못해 숭고한 입맞춤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폴란드 로츠 유대인 집단거주지에서 멘델 그로스만이 목숨을 걸고 몰래 촬영했던 사진이다. 여자들이 분뇨를 나르는 장면과 자식을 최후의 수용소로 보내면서 작별하는 장면이다. 그로스만은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런 사진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면서도, 이탈리아 사람으로 독일에 살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요체를 훌륭하게 전했던 철학자 에르네스토 그라시가 기획한 문고판 ‘로볼츠’ 총서를 뒤적이는 것으로 긴장을 풀어보았다. 그는 이 총서를 통해 이탈리아 화가 아르킴볼도를 발굴하고 소개했다. 지금 파리에서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아르킴볼도의 익살맞고 공상적인 ‘사서(司書)’의 이미지는 30년대에 유럽 전역에 ‘바로크’ 개념을 내세워 또다른 민족 신화의 바람몰이에 나섰던 독일 미술사학계의 과욕을 비웃는 듯하다.

창밖에서 비는 그칠 줄 모르며 음습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그러던 중 세찬 빗줄기가 뿜어대던 물안개가 방금 전 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 관광객에게 묻어 실내까지 몰려 들어왔다. 혹시 중세를 짙게 덮었던 그 물안개였을까? 민족주의라는 보검(寶劍)의 광채를 찾아내고 싶어하던 독일식 신비주의를 자극했던 바로 그 푸르스름한 물안개가 여기까지 밀려든 것일까…. 라인 강 서쪽과 알프스 이남 사람들은 이런 의욕에서 야만성만 보려 했고, 또 독일인은 얼마나 이 야만성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의 열정을 읽어내겠다며 강변을 거닐었을까….

‘고서적’에 이웃한 얀스 슈말렌베르거가 운영하는 ‘붕커숍’에는 서적 외에도 러시아 군복과 군장, 군모, 표장과 수기본 등이 가득했다. 러시아군 병사가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 받았던 엽서에는 이슬람 사원의 그림우표가 우아하게 붙어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전시기획자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진 등 도상자료를 수배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우 잦다. 전투 현장의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부분을 해결한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베를린 시가전과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나 잠수함 ‘U보트’ 전투를 다룬 영화들도 이곳에서 발굴한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이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책의 마구간’은 밀려드는 책을 방치하다시피 쌓아두었다. 러시아 군이 마구간으로 쓰던 곳이다. 손가락 모양이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단 돈 1유로에 어떤 책이든 집어들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지역 ‘아카이브’처럼 기증품을 보관해두기도 하지만 낭송회나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얼마 전처럼 팔순을 기념해서 갖고 있던 장서 전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어 마구간은 그 잘 생긴 군마(軍馬)를 떠나보낸 자리를 책장 넘기는 소리로 채워가고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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