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힘센 배 ‘근대의 바다’에 뜨다
문명과 바다 6. 해상운송의 발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11-02


» 이집트의 낙타 대상(위)과 곡물을 운송하는 인도의 소(아래).
 
세계가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우선 운송 수단이 발달해야 한다. 세계 시장의 형성이든 종교 전도와 문화 교류든 하여튼 서로 떨어져 있는 문명권 간의 소통은 사람과 물자가 안전하고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근대에 그와 같은 교류가 본격화된 것은 육로보다는 해로를 통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근대 세계는 바다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해상 운송의 발달이 어떤 의미를 띠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육상 운송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1톤을 옮기는 데 20마리가 필요한 낙타와 ‘풀 뜯어먹는 속도’로 이동하는 소는 배 한 척의 수송력에도 못 미친다. 배가 육상운송의 한계에 돌파구가 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대부분의 문명권들은 각자의 해양 ‘영역’안에서만 주로 활동했고, 원양항해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며 새 시대를 연 것은 결국 유럽인들이었다

세계가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우선 운송 수단이 발달해야 한다. 세계 시장의 형성이든 종교 전도와 문화 교류든 하여튼 서로 떨어져 있는 문명권 간의 소통은 사람과 물자가 안전하고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근대에 그와 같은 교류가 본격화된 것은 육로보다는 해로를 통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근대 세계는 바다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해상 운송의 발달이 어떤 의미를 띠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육상 운송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원거리 수송 수단의 하나는 낙타 대상이었다. 낙타에는 두 종류가 있다. 단봉낙타(dromedary, Arabian camel)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더운 사막 지역에서 쓰이고, 쌍봉낙타(camel, 정확하게는 Bactrian Camel이라 한다)는 아시아의 스텝지역과 추운 지역에서 쓰였다. 아나톨리아와 이란을 경계로 해서 갈리는 세계적인 ‘낙타의 분업’은 대략 8세기 경에 고정되었다. 어느 여행자가 말했듯이 “두 종류의 낙타가 있어서 하나는 더운 지역을 위해서 있고 다른 하나는 추운 지역을 위해서 있다는 것은 신의 섭리와도 같다.” 쌍봉낙타는 200kg의 짐을 지고 하루 50km까지 이동할 수 있는 반면, 단봉낙타는 시원한 야간에 이동할 경우 최고 100kg의 짐을 지고 하루 60km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최적의 조건일 때 이야기이고 통상적인 경우에는 이보다 효율성이 떨어져서 단봉낙타의 경우 대개 50kg의 짐을 지고 하루 10시간을 걸어서 35~40km를 이동한다. 그래서 1톤의 화물을 가지고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경우 20마리의 단봉낙타를 이용하여 8~10주간의 여행을 해야 했다. 낙타 대상은 사막을 횡단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으나, 수십 마리의 낙타를 거느린 대상이라 해도 실은 배 한 척의 수송력도 안 되는 것이다.

무굴제국 시대 인도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이곳에서는 목축과 수송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는 반자라(Banjara) 카스트가 곡물 수송을 맡고 있었다. 한 집단이 대략 만 마리 정도의 소를 끌고 다녔는데, 인도 전체로 보면 이 카스트가 거느린 소가 약 9백만 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소들은 스스로 풀을 뜯어먹으며 움직이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안 들지만, 능히 상상할 수 있듯이 말할 수 없이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이 방식을 통해 어쨌든 제국의 수도로 곡물을 운송하는 역할을 완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소 풀 뜯어먹는’ 속도로 근대 세계 경제를 이루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 어떤 돌파구가 필요하였다. 그것을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해상 수송이었다. 소떼나 ‘사막의 배’(중동 지역의 시(詩)에서 낙타를 가리키는 말)가 아니라 바다의 배가 근대 세계의 형성을 추동한 것이다.

» 유럽의 선박 제조 모습. 오늘날에 비하면 배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

사실 해양문명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서양, 지중해, 홍해와 페르시아만, 인도양,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그리고 동아시아의 바다를 통해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 영토 전체의 바닷길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중간에 수에즈 지협이 바닷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이곳에 운하가 개통되기 이전에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여러 방안이 강구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나일강 지류와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파기도 했고, 그 이후 이 수로가 막히자 배를 여러 조각으로 분해해서 낙타를 이용해 이 지역을 넘어가서 다시 조립하여 바다에 띄우는 극단적인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 해양 문명권 간에 경계 지역에서 서로 ‘접촉’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양 문명권이 총체적으로 교류하지는 않았다. 내륙의 문명권들이 자기 영역을 고수하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양 세계에서도 문명의 경계는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었다. 일찍이 페니키아 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회항하고 바이킹들이 한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처럼 자신의 해상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일이었을 뿐 후대에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결국 유럽인들이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해양 세계 너머로 항해하는 일이 그처럼 어려운 일이었을까?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점을 말해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바스코 다 가마와 함께 항해했던 포르투갈의 수로안내인인 페로 달렘케르(Pero d'Alemquer)가 귀국하여 국왕 주앙 2세를 만난 자리에서 자기는 어떤 작은 배로도 기니아 해안까지 갔다 올 수 있다고 자랑하자 국왕은 그에게 입을 다물라며 꾸짖었다. 그 후 국왕은 그를 따로 불러서 외국인들이 포르투갈의 경험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노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원양항해가 생각보다 쉽다는 사실 자체가 적국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국가 비밀이었던 것이다! 에스파냐 인들은 1610년에 일본에서 멕시코의 아카풀코까지 일본 범선을 타고 태평양을 항해한 적도 있었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1851년 오사카에서 교토로 향하던 범선이 돛대와 키를 잃은 채 17개월 동안 표류한 사건이 있다. 이때 17명의 선원 중 세 사람이 생존해서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 연해에서 미국 선원들에게 구조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구조의 배로도 태평양을 건널 수 있으며 따라서 기술적 요인이 원양항해의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 한 가지 특기할 사실은 이른바 ‘대항해 시대’에 다른 대륙을 탐험한 선박들은 그 시대의 기준으로도 작은 배였다는 점이다. 원래 해외 탐험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사업이어서 처음부터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자본 부족으로 작은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지만, 낯선 해안에 상륙해야 하는 배들은 너무 크면 해안에 좌초할 우려가 있어서 오히려 작은 배가 유리한 점도 작용하였다. 탐험에 사용된 배는 오늘날 한강 유람선만한 크기였다. 근대 초 유럽의 원양항해는 비유하자면 한강 유람선을 타고 인천을 떠나 인도양과 희망봉을 거쳐 유럽까지 항해하고 돌아오는 행위에 해당한다. 유럽의 해양 탐사를 설명하면서 ‘진취적인 용기’ 운운하는 것이 순전히 헛된 수사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작은 배를 타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바다로 나아가서 다른 대륙으로 항해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를 넘는 용기가 필요했다.

선박과 항해술의 발달이 근대 해양 세계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항해 기술이 발달한 결과 자연히 세계로 팽창해 나갔다는 식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기술 요소 외에도 유럽인들을 세계의 바다로 나아가게 만든 데에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그리고 심리적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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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침묵은 禁, 저항하고 비판하라

김학순 선임기자
출처:<경향신문> 2007년 11월 16일

▲ 지식인 … 스티브 풀러 | 임재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만6000원


무릇 지식인은 소크라테스보다 소피스트들을 본받는 게 낫다고 설파한다면 수긍하겠는가? 석가모니, 공자, 예수와 더불어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 소크라테스보다 ‘궤변론자들’을 따르라니 말이나 될 법한가.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석학 스티브 풀러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오늘날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인의 원형’이라고 우긴다. 소피스트들은 ‘경박한 박식가’ ‘거만한 허풍선이’라는 낙인과는 달리 대중이 험난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데 요긴한 지식과 방법론을 양심과 능력에 따라 전수했다는 게 그 이유다.

풀러는 소크라테스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소피스트들을 소크라테스와 비슷하게 대접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이처럼 이채로운 논리를 펴는 것은 지식인의 기본 자질이 모든 독단론을 거부하는 소피스트들의 자세에 있다는 점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풀러가 쓴 ‘지식인(원제 The Intellectual)’은 소피스트의 복권에서도 보듯이 색다른 지식인론임에 틀림없다. 지식인의 특성과 소양, 책임에 관해 창발적인 마음의 양식으로 상을 차렸다. 그 흔한 기존 지식인론에 대한 사상사적 검토나 비판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시대정신을 꿰뚫는 뛰어난 지적 감식안과 균형감각, 그리고 총체적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지식인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는가. 40여년전 사르트르(사진)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스티븐 풀러도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꾼다.
최근의 지식인론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이 없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조금 특이한 사상가이긴 하지만 선행연구 참조를 금과옥조로 삼는 학자에 속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영국 워윅대학 교수인 풀러는 ‘사회인식론’의 개척자다.

지식인론을 쓰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모델로 삼은 것부터 놀랍다. 그것도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들머리에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친다. 마키아벨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공공연하게 말한 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성공한 지식인’이라고 칭송한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에 관한 언급은 그걸로 끝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마키아벨리는 본 무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지식인이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인지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 게 의아하다.

명색이 지식인론이라면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규범적 처방전쯤은 내려줄 법하나 그런 것조차 없다. 다만 진정한 지식인이 되는 법을 다섯 가지로 간추린다. 첫째, 판단 능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법을 배워라. 둘째, 무슨 생각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라. 셋째, 어떤 관점에 대해서든 그것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거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마라. 넷째,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강화하기보다 그것을 균형있게 보충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라. 다섯째, 공공 사안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진리를 위해 끈기 있게 싸워야 하지만 일단 자신의 주장이 오류로 판명나면 정중하게 인정하라.

지은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더 이상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예단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부활을 꿈꾼다. 반전(反戰)에서부터 사생활 윤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논급하던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은 현대사회의 공론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풀러는 그같은 패배주의를 통박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대가들의 사상을 ‘정신의 원스톱 쇼핑몰’로 이용하면서 지적 생존을 연명하고 있고, 일부는 변화된 시대에 적응해 ‘지식 관리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혐오의 화살을 날린다. 그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외치는 계몽주의의 빛바랜 깃발 같은 것도 은근히 보고 싶어한다.

저자는 ‘지적 자율성’이라는 덕목을 무척이나 아낀다. 지식인이 생각하는 지식은 기본적으로 야생으로, 제멋대로 자라도록 되어 있어서다.

지식인은 ‘오직 진리’가 아닌 ‘총체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언제나 논적들과 백병전을 벌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독려한다. ‘지식인의 무기고에 비판보다 나은 것은 없다’며 ‘침묵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지적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더불어 지식인은 저항의식을 통해 진열대에 놓인 아무 상품이나 사들이기를 거부하는 소비자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지은이는 지식인과 학자를 애써 구별하면서 흥미롭게 비유한다. “대학은 포도원인 셈이고, 학자들은 와인 생산자, 지식인들은 와인 감식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와인 생산자의 존재 이유가 팔리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있다면 감식가의 존재 이유는 어떤 음식에는 어떤 와인을 마시는 게 좋을지를 알려주는 데 있습니다.” 책의 멋진 마무리 말도 지식인과 학자의 차이점을 파고든다.

“학자들은 과거를 다른 미래로 바꾸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은 영원히 희망을 놓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도전적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는 지식인의 상반된 역할도 제시한다. 하나는 특정한 관념의 배양을 금지하는 검열관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자극적인 관념 형식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이다. 지식인이 풀어야 할 가장 힘든 과제는 계급과 성, 인종의 구분을 초월해 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라고 갈파하기도 한다.

이 책은 번역자도 실토했듯이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문장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구성 역시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200쪽이 약간 넘을 정도로 얇은 편인데 내용물을 많이 담으려다 보니 압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2005년 영국의 자유주의적 좌파 성향의 잡지 ‘뉴 스테이츠먼’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할 만큼 값진 평가를 받는다.

차례

서문
1장 지식인에 대한 네 개의 테제
2장 지식인과 철학자의 대화
3장 지식인에 관해 자주 하는 질문들
추기 지식인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가?
옮긴이의 글 지식인을 위한 ‘기묘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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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깊이읽기] 英 좌파 지식인이 본 ‘문화’

정정호 | 중앙대교수·영문학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16일

▲기나긴 혁명 … 레이먼드 윌리엄스 | 문학동네


레이먼드 윌리엄스(1921~88)는 2차대전 이후 영국의 가장 위대한 좌파 지식인이다. 6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문화유물론과 문화연구에 이론적 토대를 놓은 윌리엄스는 웨일스와의 접경지역에서 철도 신호수의 아들로 태어나 1939년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평생교육원 성인교육 강사로 일하며 노동계급의 교육과 대중문화에 관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초기에 F R 리비스와 ‘스쿠르티니’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윌리엄스는 리비스의 문화에 대한 유기론적 개념, 꼼꼼히 읽기로서의 분석방법, 문화의 중요성은 수용하면서도 스승의 대중문명과 소수문화의 논의에서 보여준 문화적 엘리트주의는 거부하였다. 노동계급 태생이고 평생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지배계급의 정치, 경제, 문화적 힘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과 유물론을 배웠지만 토대와 상부구조의 경제결정론은 반대하였다. 언제나 변경인 의식을 지녔던 윌리엄스는 상반된 이 두 전통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영국적 좌파 문화이론을 구축해내었다.

초기 주저 중 하나인 ‘기나긴 혁명’(The Long Revolution, 1961)은 ‘문학과 사회 1780~1950’(1958)에서 제기한 문제를 계속 논의한 저서로 ‘기나긴 혁명’을 ‘민주주의 혁명’, 과학발전과 관련된 ‘산업 혁명’, 커뮤니케이션의 확장과 민주주의에 구현되어 있는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제3의 혁명인 ‘문화혁명’ 3가지로 나누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제1부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사유에서 ‘창조적 정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문화의 정의와 분석에 관한 이론적인 문제들을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검토한다. 제2부는 교육에서 언론에 이르는 주요한 문화적 제도의 발전을 분석하고 예술의 특정한 형식과 사회 전체의 발전 관계를 논구한다. 제3부는 결론부분으로 윌리엄스가 변화유형으로 인식하는 현대문화와 사회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여 특히 영국에서 일어난 기나긴 혁명의 과정들을 문화적으로 분석하면서 다음 단계인 1960년대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평자의 관심을 끄는 핵심 개념은 두 가지로 하나는 문화 분석을 위한 윌리엄스의 문화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윌리엄스의 독창적 개념인 ‘감정의 구조’(structure of feeling)다. 우선 윌리엄스의 문화 정의에는 3가지 범주가 있다. 첫째, ‘이상(理想)’의 정의로 “문화는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가치의 견지에서 인간의 완성상태 또는 완성의 과정”이다. 둘째는 ‘기록’의 정의로 “문화는 세밀한 방식으로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다양하게 기록하는 지적이고 상상력이 깃든 작품의 총체”(83쪽)이다. 셋째는 ‘사회적’ 정의로 “문화는 예술이나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제도나 일상적 행위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묘사”(84쪽)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윌리엄스는 세 영역이 모두 포괄될 때 문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이론이라고 단언한다.

다음으로 윌리엄스의 문화이론 중에서 가장 난해한 개념은 ‘감정의 구조’이다. 이 용어는 지극히 영국적인 경험론적 개념이면서도 유럽 대륙의 관념적인 구조론적 개념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윌리엄스는 제2부에서 교육, 독서대중, 대중언론, 표준영어, 영국작가, 극형식, 리얼리즘 등 다양한 영역 등에서 “일과 관계 속에서 체험되는 의미와 가치들”(437쪽)인 실제의 감정 구조를 밝혀내고 있다.

윌리엄스의 이론적 선도로 60년대에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시작된 영국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현재 세계 각처로 수출되어 새로운 학문담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대학 학부에까지 학과가 생기는 등 손쉽게 제도화되었으며 국내에서도 이미 대학원 과정에서 문화연구는 협동과정의 석·박사 학위과정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비판적·변혁적인 문화연구는 아쉽게도 변질되어 거대한 자본시장에 함몰당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문화를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경제 체제에 편승시키려는 경향이 짙어가는 상황이다. 뒤늦게나마 번역 출간된 ‘기나긴 혁명’은 포괄적인 이론적 논의와 구체적인 문화 분석, 그리고 비판적 기획이 균형 있게 결합된 탁월한 저작이다. 이 책을 통해 문화연구가 원래 지녔던 초심을 회복하는 기회가 마련되기 바란다. 본 역서에는 아쉽게도 원서 펠리칸 본에 붙어있는 색인이 빠져있다. 그러나 한국어 번역이 매우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번역은 사랑의 노동일진대 역자의 노고가 크게 돋보인다. 그러나 비판적 지식인이었던 윌리엄스의 영어가 가지고 있는 ‘낯섦’이 지나치게 순치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문
펠리컨 판의 서문
서론

제1부
1. 창조적 정신
2. 문화의 분석
3. 개인과 사회
4. 사회의 이미지

제2부
1. 교육과 영국사회
2. 독서 대중의 성장
3. 대중 언론의 성장
4. '표준 영어'의 성장
5. 영국 작가의 사회사
6. 극 형식의 사회사
7. 리얼리즘과 현대소설

제3부
1960년대의 영국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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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에 맞서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꾀하다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⑧ 비토리오 회슬레 - 나종석 강사 (연세대ㆍ철학과)

대학신문 2007년 11월 10일


▲ 삽화 : 서유경 사진부장
비토리오 회슬레(Vittorio Hosle)는 1960년에 태어난 젊은 철학자이지만,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는 플라톤 및 헤겔 철학의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대표적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헤겔의 체계』, 『도덕과 정치』,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그리고 『철학적 대화』 등을 비롯해 형이상학, 실천철학, 자연철학 그리고 철학사 등에 관련한 무수히 많은 저서와 논문들을 통해 현대 인류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의 근원을 성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성을 통해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회슬레는 이성의 억압성과 폭력성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흐름과는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한다. 그는 니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자들이나 이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 등과 같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들이 내세우는 이성에 대한 총체적 비판의 토대가 튼튼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는 몇 가지 예외적 흐름을 제외한다면 현대의 다양한 철학적 사조들은 ‘이성과 도덕적인 가치 및 의무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고 파괴하는 경향 확산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들이 지속되면 인간의 비판적 정신이 완전히 마비되고, 시대가 제기하는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파괴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따라서 그는 총체적 이성 비판에 대해 강력히 반론을 펼치면서, 이성과 객관적 진리의 추구라는 전통적 서구 철학의 담론을 이어받고 있다.

회슬레의 철학은 민주주의, 환경위기, 시장 경제, 종교 등 21세기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가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민주적 합의보다 객관적 진리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다양한 견해들을 억압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철학과 민주주의의 독자성을 오해하는 데서 생긴 것이다. 회슬레가 보기에 철학과 민주주의는 서로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비판적 사유를 포기하지 않는 철학은 민주주의적 결정의 정당성을 되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전한 민주주의와 더불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다수가 어떤 규칙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것을 정의롭다고 보는 여론 독재로 흐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들 사이의 토론을 통해 더욱 건전하고 옳은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는 민주주의를 철학적 사유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슬레는 21세기가 생태적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심층생태주의적인 사고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는 인간만이 내적 가치를 갖고 있고 다른 생명체는 인간의 목적 실현을 위한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이와는 달리 심층생태주의는 인간뿐 아니라 여러 생명체들 또한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이 관점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적절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모든 자연적 존재들이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면,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층생태주의는 자연과 생명의 위대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왜 지구에 인류가 존재해야 하며, 왜 우리는 미래 세대뿐 아니라 여타 생명체를 존중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회슬레는 세계화가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보편주의자인 그는 세계의 여러 지역들이 서로 만나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화가 초래하는 부와 빈곤의 양극화 및 환경파괴의 심화 현상을 크게 염려한다. 따라서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완결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국가의 개입을 금하는 것은 허구적이라는 점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가치관을 전제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시장경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회슬레는 이성의 과잉이 아니라 정의와 도덕의 보편적 원칙에 대한 사유를 추구하는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현대 사회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면서,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역설한다. 이성의 본질을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만 보고 이와 전면적 결별을 선언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급진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과 동일시하는 이성에 대한 편견의 표현이 아닌가? 또한 편협한 시야에서 이성에 접근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우리들에게서 건전한 비판적 사유의 싹 자체를 앗아가 우리를 현존 질서에 순응케 할 독버섯은 아닌가?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토론하고 논증하고 반박하는 이성적 사유와의 작별이 우리가 취해야 할 사유의 길인가? 회슬레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나종석 강사 (연세대ㆍ철학과)
독일 에센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차이와 연대』, 역서로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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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난 은행계좌 하나를 폐쇄했다.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면서 만든 통장이니까 10년이 훌쩍 지난 통장이다. 그 사이 내 삶의 터전은 수원으로 여수로 여러 번 옮겨졌지만, 조흥은행 동여의도 지점에서 만든 이 계좌는 은행이름이 달라지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관리지점만 달리 하였을 뿐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자동이체가 이 계좌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계좌를 없애버렸다. 왜일까?

민주노동당 때문이다.

몇 푼 안 되는 당비가 빠져나가는 '꼬라지'를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민주노동당에 전화해서 다른 계좌로 바꿔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싫었다. 당원 탈퇴한다고 전화해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싫었다. 차라리 좀 귀찮더라도 다른 몇 개의 자동이체 정보를 바꾸는 걸 택했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의 존재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의 모습은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2004년 탄핵파동 이후 노무현이 '삽질'할 때부터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각인시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사파를 중심으로 마치 노무현과 '삽질' 경쟁이나 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주사파니, 피디니 하는 케케묵은 단어가 왜 나오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민노당에는 당권을 장악하고 온갖 삽질을 해대고 있는 주사파의 후예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이 존재하는 한 민주노동당의 전망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탄생할 때부터 주사파 애들 하는 짓거리 가운데는 거의 시정잡배 수준보다 더한 것도 많았다. 지구당 창당할 때부터 몇십 명씩 주소지 옮겨 다니며 주사파 지구당 위원장 만들어낸 짓거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내가 속한 정당 내가 욕하는 것밖에 안 되니 '마, 고마' 하자.

그래도 바뀌겠지 하며 몇 년 동안 당비 꼬박고박 내고 일년에 한두 번씩 정치후원금도 냈었는데, 이제 그만하련다. 이번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을 보면서 저것들이 도대체 생각이 있는 인간들인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보 선출과정에서부터 주사파 애들 비위 맞추느라 그랬는지, 권씨 아저씨는 '혁명열사릉 참배'가 어떠니 하는 소리나 해대더니, 후보로 선출 된 뒤에 맨 먼저 한 일이 '코리아연방 공화국' 이라는 통일방안이 어쩌고 하면서 기자들 모아 놓고 성명서 낭독이나 하고 자빠졌었다.

정말 깬다, 깨!

도대체 저 인간들이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대선 국면에 저러고 싶을까? 결국 삽질하다 지지율이 이인제 한테도 뒤지는 것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만인보' 한다고 생난리를 떨더만. 기회 있을 때는 온갖 '삽질' 다 하다가 갑자기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면 백만 명이 모일 줄 알았나 보다. 순진도 하셔라. 지금과 같은 선거 국면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이라니? 권씨 아저씨가 입만 열면 외치는 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 아닌가?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니? 그 노동자와 서민이 들으면 완전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결심했다. 저 '지랄' 보고 있느니, 차라리 내가 탈당하자고.....


내가 지금 민주노동당의 선거책임자라면, 모든 것 팽개치고 다음과 같은 기자회견문 준비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대선 후보를 사퇴한다. 민주노동당은 삼성 비리를 밝히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이를 위해 모든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그리고 국민들과 연대 투쟁방법을 모색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기억한다. 유오성이 주유소에서 인질(?)로 잡은 다수의 애들이 한꺼번에 덤빌 의사를 표하니까 이렇게 말한다.

"난, 한놈만 팬다. 뒈질 때까지..."

지금 민주노동당에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한 놈만 팬다는, 죽을 때까지 팬다는 각오로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 지금 국회에서 삼성특검이니, 검찰에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느니 하지만 그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선거국면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황당한 비젼(?)을 들고 '삽질'하지 말고, 깨끗하게 후보 사퇴하고 삼성을 전면에 내세워 싸워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80% 이상이 공감하고 분노하는 이슈는 삼성 비리밖에 없다. 이 문제는 특정 정당, 특정 대선 후보 지지를 떠나서 유일하게 온 국민이 의견일치를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이 삼성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실추한 민노당의 이미지와 지지를 되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오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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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방, 나는 선거운동 못한다”

비정규직 비례 당규 개정, 논의 확산 막기 위한 꼬리 자르기?

조승수 / 진보정치연구소장
출처:<레디앙> 2007년 11월 16일


 
괴롭다. 엄중한 대선을 앞두고 당기관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사람으로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현실이 착잡하다. 그러나 이왕 지난 날을 반성하며 책임 있게 행동하고자 결심한 터라 할 말을 해야겠다.

비례대표 선출 방안에 관한 부분이다. 권영길 후보의 발언과 홍세화 선생, 그리고 필자가 최근 매체를 통해 당의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의 녹색정치실천단도 녹색후보를 전략명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최고위원도 갑작스런 토론회에 함께 하기도 하였다.

비례 혁신, 서둘러 봉합할 문제 아니다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몇 가지 안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현재의 다수 정파 수장의 독식구조로 되어 있는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중이다. 특히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인 부문 대표성을 살리면서 당의 정체성을 구현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상황이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당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구체적 방안에 관한 토론을 조직하고 그것을 지도부가 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지난 14일 최고위원회는 비례대표 앞 순위에 비정규직 1명을 배치하는 방침을 사실상 확정하고 당규개정안을 마련하여 중앙위원회에 상정하기로 결정하였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문제가 되고 떠드니까 떡 하나 입에 물려주는 건가? 아니면 논의가 확산되어 정파들의 의도와 자리가 줄어들까봐 계산기 두드려보고 서둘러 봉합한 것인가?

최고위원회와 지도부에게 요청한다. 비례대표 선출 방안은 단순한 제도개선이 아니다. 당의 혁신을 위한 중차대한 사안이다. 평당원들과 당 밖에서 어떤 주문이 있는지 귀를 열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 결정이 당 혁신을 거부하는 꼬리자르기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국가비전 코리아연방공화국? 황당하고 놀랍다

두 번째는 이른바 ‘코리아연방공화국’이다. 후보가 선출된 지 2주 만에야 표결까지 거쳐 결정했다는 메인슬로건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었다. 이를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메인슬로건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메인슬로건으로 채택되지 않자 다시 국가비전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들고 나왔다. 이를 지난 12일 선대위 전체회의에서 역시 표결을 거쳐 확정했다고 한다.

“통일은 밥도 주고 떡도 주는 것이며 통일국가가 되지 않고는 민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분단조국의 구조적 현실을 정면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코리아연방은 명확히 남쪽 민중에 의한 남쪽사회 개혁방안인 동시에 북쪽 정부에 의해 이런 방식으로 통일하자는 남쪽 민중의 과감한 통일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제안은 남과 북을 통틀어 일찍이 어디에도 없었고 올해 대선을 맞이하여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제기하는 역사적인 제안이다” - 이용대, 코리아연방해설, 진보정치343호

국가비전이란 우리가 건설할 국가의 상이자 국가개혁과 사회운영의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민주노동당의 집권의 상이며 민주노동당 정책의 골간이 된다. 필자는 코리아연반공화국을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 국가연합이든 완전한 통일국가 이전의 통일방안으로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1국가 2체제를 상당 기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일 방안이 아니라, 한국사회 개혁의 총체적 상과 국가비전을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사회개혁의 끝은 통일로 귀결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를 대선시기에 민주노동당 국가비전의 포장지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에 황당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대선 시기 대중은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보다 메인슬로건이나 정책의 핵심용어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메인슬로건과 조합하여 보면 민주노동당은 ‘세상을 바꾸어서 코리아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세력이 된다.

필자는 현 단계의 통일은 떡도 밥도 아니며 남북한 민중 누구도 원치 않는 재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중은 통일보다 자녀 교육비와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이 더욱 큰 관심사다.

그래서 통일해야 한다고? 민생의 고통이 분단이 해소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일지상주의에 매몰된 운동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한다면 나는 정말이지 선거운동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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