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얼어 눈꽃으로 피어난 소백산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블로그의 간판사진으로 내걸어 놓은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그 「고사관수도」를 한 번 보시라. 살아오면서 저토록 무심히 한 곳을 응시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일상의 분주함을 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하는 삶, 이것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유유자적 할 수 있는 자연이란 어쩌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본 자연은 늘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만 인간에게 먹을 거리를 주고, 인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는 것 같다. 내가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들의 주요 여행목적이기도 했던 사과따기 체험을 하러 들른 사과밭을 돌아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람들은 가끔 너무 쉽게 전원생활을 이야기하고 시골생활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갖고 있는 자들의 허영심의 또다른 표현은 아닐까.

월요일 아침, 굽이굽이 휘어진 가파른 길을 올라 다다른 죽령. 텅빈 휴게소 주차장이 오늘이 휴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휴게소 식당문을 밀고 들어가니 주인 내외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일명 '빼치카'로 불리는, 커다란 드럼통을 세워 놓은 듯한 군대식 난로가 놓여 있다. 아직 한겨울은 아닌지라 타고 있는 장작불의 화력은 최대한 낮춰 놓은 것 같다.

▲ 소백산 등반 안내지도 중 '죽령-연화봉-희방사' 코스
서둘러 해장국과 산채비빔밥으로 배를 채운 뒤 물과 간식을 챙겨 오르기 시작한 산행길. 입구의 '죽령 탐방 지원센터' 직원이 주는 안내도를 받아들고 눈 앞에 펼쳐진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왜 이 멋대가리 없어 보이는 죽령 코스를 택했을까. 이 코스는 흔히 소백산 종주 코스의 시발점이나 종착점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종주가 목적이 아닌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풍기 쪽에서는 희방사 코스를, 단양 쪽에서는 천동 코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코스를 택했을까?

지난 여름에 읽은 책 가운데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책 전체의 서술을 겨울 소백산 산행에 비유해서 써나간다. 묘하게도 내가 책을 읽은 시점이 푹푹 찌는 한여름이었는데, 소백산 겨울 바람의 매서움을 유난히 강조하는 터라 인상 깊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소백산을 간단히 인용해 보자.

"보통 소백산하면 사람들은 능선에 아름답게 핀 화려한 철쭉꽃, 그리고 그 꽃을 부드럽게 애무하는 봄바람을 연상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매력적인 소백산의 정경은 겨울이 되어야만 만날 수 있다.

내게 있어 소백산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바람으로 기억되는 산이다. ( … ) 단양과 영주를 동서로 가르는 능선 위에서 맞는 바람. ( … ) 소백산은 지형학적으로 볼 때 단양으로 이어지는 북쪽의 경사로는 완만하다. 이와 달리 남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풍기와 영주로 이어진다. 한편 동서 방향으로는 길게 능선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의 소백산은 유난히 거칠고도 날카롭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단양 쪽의 완만한 경사를 타고, 마치 깔때기에 물이 모이듯 함께 모여 예상치 못한 거대한 바람으로 불어닥치기 때문이다.

( … ) 나는 죽령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 방향으로 연화봉에 올라, 능선을 타고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1440m)에 다다르는 길을 특히 좋아한다. 이 코스에서 나는 휘몰아치는 겨울바람과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신주,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한겨울도 아닌데 그렇게 매서운 소백산의 칼바람을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저 이 책을 읽은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데다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휴게소 식당이 있으니까 선택된 코스이리라. 하지만 아내한테는 아무런 말도 않고 다른 탐방센터와 달리 주차비를 안 받는 곳이라만 했다.


▲ 제2연화봉까지 이어진 시멘트길 / 철지난 억새

이 죽령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제2연화봉에 있는 KT중계탑까지 시멘트 포장길이다. 철지난 억새들만 바람에 흩날릴 뿐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산행하는 맛이 안 나는 것 같다고 아내와 주고받으며 오르기를 50여 분. 처음으로 전망이 조금 트여 풍기쪽이 내려다보이는 쉼터가 나타난다. 어제 먹은 막걸리와 소주가 좀 과했는지 시작이 힘들다.

무릇 과해서 좋은 것이란 없는 법. 오늘 이 산행에서 어제의 과함을 비워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산행의 묘미를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데서 찾는 것 같다. 그러나 산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우리의 마음을 철저하게 비우도록 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비록 알면서도 이 비움을 자주 실행하지 못해 문제긴 하지만.


▲ 비워냄으로써 홀가분한 마른 가지에 피어난 서리 눈꽃/죽령 너머 영남(嶺南)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기념촬영 한 컷

귤과 함께 커피 한 잔을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전날의 숙취가 풀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어제 내가 걸었던 길이 기억 속의 익숙한 풍경을 찾아가는 것이었다면, 오늘의 이 길은 전혀 낯설고 새로운 길이다. 해발 1,000M 고지를 넘어서니 밤새 능선 위에 내린 서리가 얼어붙어 눈꽃처럼 피어나 환상적인 실루엣을 연출한다. 역시나 낯설고 새로운 길은 직접 걸어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준다.


▲ 해발이 높아질수록 서리가 얼어 피어난 눈꽃의 장관이 점점 더 짙어진다.


▲ 소백산에서는 보기 드문 어린 소나무에 피어난 눈꽃. 좌:일반 촬영 / 우:접사 촬영


▲ 겹겹으로 아득한 산주름이 그대로 풍경이 되는 단양과 제천 방면 정경. 이렇게 그림 같은 산봉우리들이 또 있을까.


▲ 두번째 휴식 지점인 제2연화봉(1,357m)에서 바라본 천문대, 그 뒤의 꼭지점이 바로 연화봉인데, '서리꽃'이 동쪽 경사면과 서쪽 경사면을 확연히 구분되게 갈라놓는 장관을 연출한다.


▲ 제2연화봉과 천문대 사잇길 / 이정표처럼 우뚝 솟은 천문대. 천문대 너머가 연화봉 정상


▲ 휴대폰으로 찍은 눈꽃 사진을 어제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날리느라 잠시 지체한 사이 먼저 연화봉에 도착한 아내가 마음대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왼편 멀리 보이는 것이 KT 제2연화봉 송신탑, 오른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소백산 천문대.


▲ 영주 방면. 확실히 단양 제천 방향의 능선과는 달리 가파르게 하강한다.


▲ 산객들이 대여한 시집과 엽서,편지를 수거하는 유명한 소백산 우편함 / 3시간의 등반후 먹는 사과와 오이맛은 어떨까?

연화봉 정상에 앉아 바라보는 소백산은 망망대해 그 자체다. 단양 방면으로 보이는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이어져 끝이 안 보인다. 반면에 영주 방변으로는 급격하게 하강곡선을 그리며 주저앉는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단양 쪽의 완만한 경사를 타고, 마치 깔때기에 물이 모이듯 함께 모여 예상치 못한 거대한 바람으로 불어닥"친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올 겨울이나 내년 5월에 다시 한 번 오자는 말을 주고 받으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처음 올라올 때는 다시 죽령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지만 밋밋한 그 길을 다시 가기에는 영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아 희방사 코스로 하산길을 정했다.


▲ 하산길의 '희방사 코스'는 급경사라서 돌계단 한가운데 설치한 긴 철파이프를 잡고 내려오는 길이다. 희방사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한숨소리로 변하고 있다.


▲ 맑고 쩌렁쩌렁한 희방사 풍경소리.


▲ 가뭄으로 수량은 적지만 멋진 희방폭포.

문제는 희방사에서 죽령 휴게소 주차장에 세워둔 차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것. 걸어가거나 차를 타거나 일단 내려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니 미모로 히치하이킹 하기에는 좀 딸리지?', 라며 한 마디 하니까, '걱정을 붙들어 매라'는 실없는 말들이 오고 간다. 직벽에 가까운 길을 내려와 들른 희방사. 산사는 고요하고 풍경소리만 요란하다.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탐방센터'에 도착, 직원에게 죽령까지 거리가 얼마냐고 물으니 5Km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죽령이 영주와 단양의 경계이기 때문에 완행버스가 다니지 않는단다. 게다가 역시나 히치하이킹 하기에는 딸리는 미모를 간직한 여자와 같이 있으니 걸어갈 수밖에. 터벅터벅 굽이굽이 휘어진 산모롱이를 돌아가며 죽령으로 오르는 길. 오늘이 아니면 언제 걸어서 올라가보랴 싶어 없는 힘을 짜내어 오르는데, 올라가는 사람은 없어도 내려오는 사람은 더러 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걸으니 죽령 주막이다. 주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동동주가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 5시간의 산행 뒤에 터벅터벅 걷는 죽령길. 왜 아니 힘들겠는가.


▲ 죽령주막에서의 뿌듯한 뒷풀이, 주막 내부 사진은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져 휴대폰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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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미모가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 험악한 형이 옆에 있으니 아무도 안태워주는거지... 하여튼 남탓으로 돌리기는.... 흥!!!
근데 저 연화봉 보니까 진짜 소백산 다시 가고싶다. 내가 저 능선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죠? ㅎㅎ 우리는 오늘 간월재 가서 얼어죽는줄 알았음다. ㅎㅎ

내오랜꿈 2007-11-19 00:51   좋아요 0 | URL
내가 분위기 험악해서 히치하이크 못 하는 거라면, 니는 뛰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평생 못하겠다....

그나저나 다음에 만나면 그 '국망봉' 이야기나 들어보자.

바람돌이 2007-11-19 10:21   좋아요 0 | URL
옛적에 버스타고 여행다닐때 저는 히치하이크 무진장 잘했거든요. 당연히 나의 미모덕분이지만..... ㅎㅎ

국망봉 얘기? - 다음에 심심하면 페이퍼로나 올릴까? 여행다니면서 재밌었던 일들이 꽤 많았었는데 이게 나이들면서 잊혀져가는게 요즘 조금 섭섭해진다우? 그래서 진짜 다 잊어버리기 전에 페이퍼로라도 정리해둘까 하는 생각도 듭디다. ㅎㅎ
 

<프레시안> 제3의 주인을 모십니다

[발행인의 편지] 새로운 언론실험에 나서며
박인규/<프레시안> 발행인

출처 : <프레시안> 2007-11-12


  '프레시안에서 FTA광고 그만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프레시안에서 FTA광고 그만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부터 <프레시안>에는 위와 같은 내용의 의견광고가 실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초 이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한미FTA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던 <프레시안>에, 한미FTA를 옹호하는 정부의 홍보광고가 실린 데 대한 <프레시안> 독자들의 대응이었습니다. 몇몇 열혈 독자 분들이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모아 유료 의견광고를 내주신 것입니다. 저희로서는 한편 고맙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뭐야, 겉 다르고 속 다른 거 아냐. 기사로는 그토록 열심히 한미FTA를 비판하면서 한미FTA를 옹호하는 광고를 싣다니" 하는 따가운 질책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오죽 사정이 어려웠으면 그런 광고를 냈겠냐. 우리가 도와주자'라는 격려의 뜻도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독자들의 질책과 격려가 담긴 이 광고는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 몇 달간, 아니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줄곧 고민만 해오다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일을 이제는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프레시안>을 사랑하면서 아끼는 독자 여러분들을 <프레시안>의 제3의 주인으로 모시자는 것입니다.
  
  기사와 광고는 별개인가
  
  우선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데 대해 약간의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가을, 갑자기 정부광고가 끊겼습니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 본 결과, 연초부터 전개된 <프레시안>의 강력한 반FTA 논조에 대한 대응조치임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취할 방법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 봄, 한미FTA 협상의 타결을 앞두고 정부측으로부터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일반 광고비에 10배 가까운 액수를 제시하면서 한미FTA 찬성광고를 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 광고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그 파격적인 액수에서 '매수 당한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나아가 그동안 <프레시안> 기사를 통해 한미FTA의 진실을 접해 왔던 독자들의 따가운 질책이, 솔직히 말해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받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프레시안>은 정부의 한미FTA 홍보광고를 다시 실었습니다. 나름의 논리와 사정은 있었습니다. 우선 이번 광고비는 지난 봄처럼 '거액'이 아니라 '통상적인' 액수였습니다. '매수 당한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회사 사정도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언론계의 상식을 내세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저희는 <프레시안>의 보도 논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광고의 게재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 한 셈이 됐고, 이에 대해 <프레시안>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프레시안에서 FTA광고 그만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라는 의견광고를 내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된 이상, 저희로서는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언론계의 오랜 상식에 대해 다시 한 번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아가 <프레시안>의 존재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기사와 광고는 별개인가? 지난 6년여간 <프레시안>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프레시안>에 한미FTA를 찬성하는 정부 광고가 실렸다가 중단되고, 다시 거액의 광고제의가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일 <프레시안>이 처음부터 한미FTA를 찬성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언론사의 보도 논조가 광고게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 아닐까요?
  
  2005년 말 황우석 박사 사건 때는 <프레시안>의 관련 보도 때문에 광고가 중단될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한 광고주로부터 '프레시안의 비판적 보도 논조에 대한 누리꾼들의 거센 반발 때문에 부득이 광고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광고 중단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언론 본연의 임무인 진실 추구가 광고를 매개로 한 압력에 의해 방해받을 수도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독자들도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는 언론계의 상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서 FTA광고 그만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라는 독자들의 의견광고에서 드러나듯, 독자들은 언론의 보도논조와 상반되는 광고의 게재를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프레시안>의 젊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의 FTA찬성광고가 게재되던 지난 해 여름, 한 막내 기자가 "어떻게 한미FTA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찬성광고를 실을 수 있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급기야 눈물을 보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광고주와 독자와 기자들까지 '기사와 광고는 별개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데도 우리 언론계가 '기사와 광고는 별개'라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언론사의 생존을 거의 전적으로 광고비에 의탁해야 하는 우리 언론시장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언론시장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광고주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나라입니다. 신문사의 생존이 독자들이 내는 구독료와 대기업 등 광고주가 내는 광고료에 의해 지탱된다고 했을 때, 광고료 수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의미입니다.
  
  2000년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무료신문과 인터넷신문은(이 둘은 기본적으로 구독료를 받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고, 구독료를 받는다는 일반 종이신문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광고료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발표된 신문발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구독료 수입이 전체 수입의 0.8%에 불과한 신문도 있더군요.
  
  이러한 상황은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구독료 수입 대 광고료 수입이 대략 6 대 4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내는 구독료수입이 대기업 등이 내는 광고료 수입보다 많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많으냐에 따라 충성의 대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절대적으로 광고비에 언론사의 생존을 의존해야 하는 우리 언론시장을 보면서 저는 경향신문 기자 시절, 선배들에게 들었던 일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유신독재가 그 종말을 향해 치닫던 1979년 여름, 경향신문의 젊은 기자들이 자사의 친정부적 왜곡보도에 항의해 사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사장께서 사장실 한 쪽 벽에 걸려 있던 액자를 가리키며 기자들을 '꾸짖었다'고 하는군요. 그 액자에는 '음수사원(飮水思源)', 네 글자가 씌어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 즉 '너희들 월급을 누가 주는지 명심하라'는 얘기였습니다.
  
  현재의 경향신문은 100% 사원지주회사로 어떤 언론사보다도 독립적인 소유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청와대가 회사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일종의 관영매체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경향신문 사장이 기자들에게 한 얘기는 '너희들 월급은 청와대에서 주는 것이니 감히 주인을 거스를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뜻이었던 셈입니다.
  
  대기업 등 광고주가 언론을 먹여 살리는 요즘, '음수사원'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대기업의 이익과 국민 일반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언론이 국민의 편에 설 수 있을까요? 요즘 언론에서 삼성재벌이 비판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광고가 언론의 절대적 생존기반이 되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뉴스가 오락화된다는 것입니다. 광고주가 광고를 내는 이유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생존을 위해 독자보다는 광고주를 의식해야 하는 언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가 많아야 광고유치에 유리할 테니까요. 갈수록 연예오락기사들이 늘어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언론에 '신정아' 기사는 차고 넘치는데 '삼성비자금'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독자가 뉴스를 사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가 뉴스를 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언론이 광고주의 이익과 대중들의 기호에만 영합하다 보면 언론 본연의 임무인 진실 추구를 회피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황우석 교수 연구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앞장섰던 MBC <PD수첩>이 대중들의 비난과 광고 감소를 겪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프레시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당시 한 독자의 댓글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잔인한 현실보다는 몽롱한 환상을 원한다." 대중들의 몽롱한 환상을 깬 데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거짓과 환상에 바탕을 둔 것일망정 대중들의 희망을 깨뜨린 '죄'에 대한 '징벌'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진실은, 시대의 진실은 결코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추악한 모습으로 드러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당장 희망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절망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더 많습니다.
  
  뉴스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이 오락화 돼 가는 요즘 세태에서 비타협적인 진실의 추구는 당장은 대중들의 사랑이 아니라 비난을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진실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언론에게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독자와 필자와 편집자의 행복한 결합
  
  지난 1993년, 일본의 비판적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슈칸 깅요비(週刊 金曜日)>란 시사 주간지를 창간했습니다. 정부와 대기업 등의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와 탐사보도를 주요 임무로 하는 이 주간지는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이 주간지의 가장 큰 특징은 일체의 광고를 받지 않고 오로지 독자들이 내는 500엔의 구독료만으로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광고를 받을 경우 광고를 빌미로 한 광고주의 압력과 회유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슈칸 깅요비>의 언론인들은 창간 취지문을 통해 "어떠한 기구, 어떠한 기성조직으로부터도 독립해, 독자와 필자와 편집자 간의 협력의 길을 열어, 공동참가.공동편집에 의해 시민주권을 실현"함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 1935년, 당시 유럽대륙을 풍미하던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창간된 '금요일'이란 잡지에서 제호를 따왔다고 말합니다. 로망 롤랑, 앙드레 지드, 줄리앙 방다, 퀴리 부부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한 이 '금요일'이란 잡지의 편집방침이 바로 '자유로운 작가.평론가와, 자유로운 시민들로 이루어진 독자대중들간의 직접교류'였다고 합니다.
  
  이제 <프레시안>도 독자와 필자와 편집자의 공동협력에 의한 독립언론의 길을 추구할 때가 됐다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이번 <프레시안> 독자들의 유료 의견광고가 그 계기가 됐습니다.
  
  이제까지 <프레시안>에는 두 그룹의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현재 <프레시안>이 탄생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기여해주신 주주들과 <프레시안>에 몸담고 일하고 있는 20명 남짓의 기자 및 운영요원들입니다. 하지만 15명 안팎의 <프레시안> 기자들이 한국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시대적 상황들의 진실을 파헤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고, 저희가 의도했던 바도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네트워크형 공동체라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에 착안해, 우리 시대 최고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시대의 공론장을 꿈꿔 왔습니다. 시대를 고민하는 이들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프레시안>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만나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고 우리의 나아갈 길에 대해 생산적인 토론을 벌이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실제로 수 백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그동안 <프레시안>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대부분은 아무런 보수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제2의 주인입니다. 지난 6년여간 <프레시안>의 보도가 이 사회에 보탬이 됐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 분들의 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몸담고 있는 저희들은 <프레시안>이라는 괜찮은 공론장을 만들어내고 관리해가는 편집자, 도우미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희는 <프레시안>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여러 독자 분들을 <프레시안>의 제3의 주인으로, <프레시안> 지킴이로 모시고자 합니다. 아니, 신문의 궁극적 존재 이유가 독자라는 점에서 여러분들이야말로 제1의 주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제3의 주인, <프레시앙>을 모십니다
  
  사실 <프레시안>은 창간 초기부터 이러한 모델을 꿈꿔 왔습니다. 그동안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것은 '뉴스 콘텐츠는 공짜'는 국내 언론시장의 상식을 거스르기가 두려웠고, 관심 있는 독자들의 평가와 협력을 요구할 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지난 6년여간의 보도.논평활동을 바탕으로 감히 독자 여러분의 평가와 협력을 요청합니다. 과연 지난 6년간 <프레시안>의 언론 활동이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 협력과 비판을 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황우석 교수 파동과 한미FTA 논란을 비롯해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문제 등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최종적인 평가는 독자들의 몫일 것입니다.
  
  <프레시안> 독자회원들의 참여로 <프레시안>에서 곧바로 모든 광고가 없어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생존을 위해 <프레시안>의 소신과 어긋나는 광고를 싣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독자 여러분이 <프레시안> 기자들의 월급 정도는 만들어 주신다면 정부나 대기업 등 사회적 강자의 압력이나 대중들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진실 추구를 통해 독자들에 충성하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 또한 독자위원회 구성, <프레시안> 필자 및 기자와의 만남 등을 통해 독자들의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질책과 격려 속에 <프레시안>은 시대의 편견과 변덕에 흔들림 없이 꿋꿋이 진실을 추구해 나가며 참신한 공론장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독자회원 캠페인은 <프레시안>이 지난 6년여간 펼쳐온 언론활동에 대한 독자들의 준엄한 평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봄, 정부의 한미FTA 광고를 받지 않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저는 기자들에게 "너희들을 굶길 수는 있어도 울릴 수는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자존심과 원칙을 버릴 수는 없었다는 의미였습니다만, 생존 역시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품위 있는 생존이어야 하겠지요.
  
  <프레시안> 제3의 주인, <프레시앙>이 되어 이 시대 작지만 소신 있는 언론매체를 함께 키워나가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 '프레시앙' 되기


■ ['프레시앙'이 되며] 보기
  
  돈이 없으면 독립도 없다-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
  
  <프레시안>을 울리지는 말아야지!-조원종 씨
  
  '진짜' 보수주의자도 <프레시안>으로 모여라-이형기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 공짜는 없다" -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내오랜꿈 ------------------------------------------------------------------------

지난 번 <시사 IN> 사태 때 많은 사람들이 후원하는 걸 지켜봤었다. 물론 나도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아내가 하는 걸 알고는 그냥 넘어갔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자본에 반대하는 성향을 지닌 언론이 살아남기란 정말 어렵다. 어려운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는 것, 어쩌면 '대안언론'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시사 IN>이 가진 장점보다는 <프레시안>이 가진 장점이 우리 사회의 변화에 더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시사 IN>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언론권력'을 형성할 여지가 다분하지만, <프레시안>은 쉽게 '언론권력'화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당비 내던 돈으로 <프레시안> 후원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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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동의! 자본의 광고에서 어느정도라도 벗어나보겠다는 노력은 우리사회에서 정말 힘들겠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도 많이는 못해도 같이하죠뭐... ^^

내오랜꿈 2007-11-19 00:41   좋아요 0 | URL
근데, 솔직한 내 생각인데, <시사 IN>과 달리 <프레시안>은 이런 방법으로 회생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시사 IN>은 인텔리들 인맥 팔아서라도 정기구독이라는 명분으로 목돈 끌어모을 수 있는데, <프레시안>은 그게 안 되거든...

진보적 인텔리들도, 인터넷은 공짜라는 인식이 많거든... 나부터도 그런데 뭘..-.-..

안 될 거 같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그래도 해야 될 거 같아서 하는 거다.

아사히 2007-11-2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동참!!
할 수 있는 제일 쉬운 일은 이런 일인 것 같아요.

내오랜꿈 2007-11-21 19:38   좋아요 0 | URL
^^
근데, 본인의 방은 왜 꼭꼭 숨겨 놓으실까?
 

디자인이 예술이 아닌 이유
[지상현의 Homo designans·8] 디자인과 민족적 감성

지상현/한성대 교수
출처 : <프레시안>(www.pressian.com)2007-08-09



필자에게 있어서 월드컵 같은 국제 운동경기의 숨은 재미 중 하나는 각국의 유니폼 디자인과 색상을 비교하는 것이다. 유니폼에는 각국의 민족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유니폼 분석을 통해 디자인 개발에 필요한 각 국에 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고 그들만의 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필자에게는 국제 축구대회가 디자인과 문화를 공부하는 학습의 장인 셈이다.
  
▲ 뉴질랜드에서 개발한 니드스콥이라는 감성분류체계 위에 가상의 유니폼들을 배치해 보았다.

  위 그림은 필자가 즐겨 사용하는 감성분류체계(이미지 스케일) 위에 가상의 축구 유니폼 색상들을 배치한 것이다. 이 체계는 6가지 성격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으로 갈수록 동적이고 적극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하단으로 가면 정적이고 수동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좌측은 부드럽고 명랑한 성향을 뜻하고 우측으로 가면 가는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고 지배적인 성향을 뜻한다. 이 6가지 감성적 성향은 몇 단계의 논리적 변환을 거치면 6개의 심리적 욕구 혹은 6가지 성격 유형이 되기도 한다. 타원 안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은 6가지 감성적 성향의 두드러진 특징들이다.
  
  축구 유니폼과 민족적 감성
  
  재미있는 것은 이 체계에 배치된 유니폼 색상들이 현재 각국의 유니폼 색상과 매우 유사하며 더욱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성과도 잘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상단 중앙좌측의 유니폼 배색들은 열정적이며 낙천적인 남미와, 상단 우측은 뜨겁고 적극적인 유럽의 라틴 문화권 국가들의 유니폼 색깔과 흡사하다. 절제가 강하고 조직적인 일본의 유니폼과 유사한 배색을 우측 하단에서 발견할 수 있고 이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억센 게르만, 앵글로 색슨 민족의 것은 그보다 조금 위쪽에서 볼 수 있다. 범위를 한 국가로 좁혀 보면 그 안에 이와 유사한 경향이 다시 반복된다. 예컨대 잉글랜드 국가대표 유니폼은 흰색이 주가 되지만 얼마 전에 내한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의 색은 밝은 적색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체스터팀의 상대적 성격이 그렇다는 것일 게다.
  
  열정적인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유사한 배색 유니폼이 우측 하단에 있는 것이 특이하지만, 두 국가가 패션과 미술이 발달한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청색이 주가 되는 프랑스 유니폼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에서 유래했지만 유독 청색이 주가 된 까닭을 파리의 우중충한 날씨 혹은 그들의 패션감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리 군단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유니폼은 강성했던 사보이 왕가 시절의 청색을 사용하는 것이다.
  
  한 국가나 집단의 선호 배색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에는 지배적 감성 말고도 풍토색(혹은 지역색), 종교나 지배 이데올로기, 경제적 수준, 역사적 경험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예컨대 일조량이 많은 지중해 연안이나 남미와 같은 곳에서는 소위 赤視化(red sighted)가 일어나 눈동자의 색이 짙어지고 화려한 원색을 좋아하게 된다. 토양 등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색도 영향을 주는데 사막이 많은 중동지역 사람들은 카키색 환경에 싫증을 느낀다. 이런 것들이 풍토색을 결정하게 된다. 터키나 이라크 같은 이슬람권 국가의 유니폼에 흰색이 많은 것은 종교적 이유가 클 것이다. 성리학이나 선(禪) 불교의 영향이 컸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에서 흰색을 즐겨 사용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경제적 수준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소득이 높아지면 선호하는 색의 채도가 낮아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원색이 많아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역사적 경험도 중요한데 나치를 경험한 프랑스에서는 나치의 군복색을 연상시키는 짙은 청회색을 싫어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필자가 20대 때 프랑스로 수출할 제품의 색을 짙은 청회색으로 골랐다가 바이어의 퇴짜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앞서 이탈리아의 유니폼도 역사적 배경이 작용한 사례다.
  
  각국의 감성적 성향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이런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각국의 선호 배색 혹은 디자인이 나타나지만 기본이 되는 것은 각국의 감성적 성향이다. 감성적 성향을 중심으로 풍토, 종교 등의 요인들이 덧붙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국가의 감성적 성향은 겉으로 드러나는 색채나 형태의 배후에서 작용한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어떤 색이나 형태를 좋아한다는 식의 겉 인상만으로 감성적 성향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파란 색을 좋아한다고 하자. 옷을 고를 때에는 그 말이 들어맞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나 가구를 고를 때에도 그럴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파란색이 아니라 파란색이 주는 감성이다. 그래서 파란색이 드물고 질감이 중요한 자동차나 가구를 고르는 맥락에서는 동일한 감성을 주는 다른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색채가 아닌 배후에 있는 감성을 파악해야 제대로 그 문화를 이해할 수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특징의 배후에 있는 감성적 성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래의 그림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두 여인의 얼굴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림대 조용진 교수가 통계적 절차를 거쳐 제작한 한국과 일본의 표준미인얼굴이다. 우리에 비해 일본 미인은 눈꼬리가 내려갔고 턱이 좁으며 입술색을 엷게 칠했다.
  
▲ 좌측이 한국의 합성된 표준 미인얼굴이고 우측이 일본의 표준 미인얼굴이다.

  그 다음은 한국과 일본의 사찰에 있는 사천왕상의 모습이다. 한국의 사천왕상은 화려한 배색이 돋보이지만 조각의 깊이나 정교함은 약하다. 반면 일본의 것은 색이 없거나 있어도 우리에 비해 매우 적고 그 대신 조각의 깊이가 깊고 정교하다.
  
▲ (좌,중)일본의 사천왕상,(우)한국의 사천왕상

  2006년도에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제법 팔렸던 휴대폰 디자인들이다. 한국의 휴대폰이 검정색이나 무거운 금속성 질감이 주조였다면 일본은 파스텔 톤이나 밝은 금속성이 대세였다.
  
▲ 2006년 한국에서 팔렸던 휴대폰 디자인들

  
▲ 2006년 일본에서 팔렸던 휴대폰 디자인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 사천왕상, 휴대폰 디자인의 한일 간 차이는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의 배후를 꿰뚫는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맥락은 없으며 있어도 매우 가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쉽게 변하지 않는 고유의 감성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맥락을 파악해야 각국의 사정에 맞는 디자인을 능동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해당 국가의 몇 가지 디자인 특징을 수동적으로 쫒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은 활동가ㆍ카리스마형, 일본은 참모형ㆍ소녀적 취향
  
  약간의 통계적 절차를 거치면 앞서 축구 유니폼에 사용했던 감성분류 체계에 이들을 배치할 수 있다. 한국의 표준 미인얼굴은 우측 상단에 위치한다. 사천왕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위치다. 휴대폰은 비슷한 위치에서 우측 중단까지 퍼져 있다. 반면 일본의 미인은 좌측 하단, 사천왕상은 우측 하단, 휴대폰은 하단 좌우에 퍼져 있다. 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 같던 얼굴, 휴대폰, 사천왕상의 특징들이 동일한 감성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 활동가형과 카리스마형 감성을, 일본은 참모형과 소녀적 취향이 섞인 감성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주정적인 문화와 주지적인 문화의 대비를 볼 수도 있다. 이런 데이터를 보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배우들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인기가 큰 연예인 일수록 체계의 하단(일본 미인의 얼굴위치) 가까이에 위치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에 대한 데이터가 있지만 이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 한국의 얼굴, 사천왕상, 휴대폰은 주로 체계의 우상단에 위치하고 일본은 하단의 좌우에 걸쳐 있다.

  서구의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각국의 감성적 성향을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해 각국에 특화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가 사용한 감성분류체계는 1995년 뉴질랜드 기업이 개발한 것을 국내 사정에 맞게 필자가 조금 수정한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수 십 년 전부터 이런 체계를 개발해 사용해 왔다.
  
  국내에서도 몇 가지 개발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쉽게 보급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패션디자인계에서 사용하는 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 결재를 위해 형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서구의 기업들이 이런 도구를 이용해 해당 국가에 특화된 디자인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볼 수 있는 사례가 미국 마텔사(社)의 바비인형이다.
  
▲ 올 6월 미국 올랜도의 월마트에서 팔리던 제품이다

▲ 7월 동경의 VIC 카메라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바비인형이다.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머리를 뒤로 넘겨 활동적이고 화려한 인상인 미국의 바비 인형에 비해 일본의 바비 인형은 눈 꼬리가 내려가고 머리가 앞이마를 덮는 등 순하고 얌전한 인상이다. 반면 한국에서 팔리는 바비 인형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인형과 크게 다르지 않게 화려하다. 이는 한국에 특화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시장의 크기가 작아 미국에서 판매되는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와 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바비인형. 화려한 스타일의 바비인형이 잘 팔린다고 하는데 이 디자인들이 한국에 특화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디자인은 감각이다?
  
  선진 기업들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디자인 관리방법들을 보다가 우리 디자인계를 돌아보면 걱정이 앞선다. 아직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이 예술이라고 믿고 있다. "디자인은 감각이다"라는 식의 모호한 경구가 잘 먹혀들어간다. 비교적 예술주의적 관점이 강했던 유럽에서도 편집디자인과 같은 일부 전통적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제외하고는 과학적 접근으로 돌아선 지가 오래됐건만,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10년 전쯤 컬러 이미지스케일로 유명한 일본의 시게노부 고바야시 선생이 국내 모 대기업에 자신이 개발한 이미지 스케일(감성분류체계)의 사용법을 몇 개월에 걸쳐 교육시키고 간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일반적으로 써오던 방법들이었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에게는 생소했는지 그 이후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디자이너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런 도구를 사용해 체계적으로 디자인하자면 그만큼의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예컨대 사전 조사를 할 만큼의 충분한 여유 시간을 디자이너에게 줘야 하고 감성관련 데이터가 축적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부서를 세련되게 이용한다는 것에는 바로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디자인업무가 시스템화 되고 디자인 결과물이 안정적으로 나온다. 다시 말해 결과물이 나오는 시간과 질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디자인의 성과측정도 용이해진다.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주는 감성적 효과의 목표치와 결과치를 명확히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디자이너의 발상과정은 수평적 발상과정과 수직적 발상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이것저것 다양하게 모색을 해보는 수평적 발상과정을 통해 적절하다 싶은 발상을 찾으면 이 발상을 수직적으로 깊게 파고들어 정교화한다. 이 때 수평적 발상과정을 단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앞에서 소개한 감성관리 도구다.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이 도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자인의 발전에 긴요한 감성관리 도구(이미지 스케일, 감성분류체계 등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다)들은 인간의 행동과 감성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의 토대 위에서 개발된다. 그 이론들은 언어학에서 나온 것에서부터 융의 성격이론, 진화론, 감성에 관한 신경생리학적 이론까지 매우 다양하다. 과학이 문화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 접점에 디자인이 있다. 디자인이 예술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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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누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손제민기자
출처:<경향신문> 2007년 11월 16일

▲ 노동을 거부하라 … 크리시스 | 김남시 옮김 | 이후 | 1만5000원


우리 주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의 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야 한다’는 사람과 ‘휴일에도 나와서 일해주면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후자에 속하는 편인 필자로서는 읽는 내내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책이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성실해야 한다” “노동은 내 존재의의” 등의 신념을 철저히 내면화하며 살아온 ‘범생이’에게 ‘노동지상주의’를 근본부터 꼬집는 이 책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는 구호는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만 해도 자본가를 향한 공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20년 사이 이 구호는 ‘유연한’ 고용·해고 덕에 낙오된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이데올로기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라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해온 독일의 좌파 지식인 그룹 ‘크리시스(Krisis)’는 이러한 변화는 ‘노동지상주의’ 자체가 가진 한계에서 나온 당연한 귀결로 본다. 이들은 ‘일자리 창출’과 ‘완전고용’을 이루겠다는 좌파와 우파 모두의 다짐은 부정돼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누가,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완전 고용돼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더욱 근본적인 입장이다.

우리는 ‘여유로움’이 ‘자유시간’으로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여유로움은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활동 과정에서 분리된 여분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전히 자립적인 삶의 목적이었지만 자유시간은 더 많은 노동을 뽑아내기 위한 준비시간일 뿐이다. 비극은 ‘추상적 노동’이라는 것이 생겨난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에서 시작한다. 가치 증식이라는 목적만을 향해 움직이는 상품생산 경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은 구체적인 활동과 시간의 리듬에서 분리돼 나와 양과 질로 ‘추상화’됐다.

저자들은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노동-마르크스주의자들이 당혹스러워하며 페이지를 넘겨 버렸던 그 ‘어두운’ 마르크스를 외면하지 않고 말이다. “‘노동’은 그 본질상 자유롭지 못하고, 비인간적이며, 비사회적이고, 사적 소유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사적 소유에 의해 창조된 활동이다. 사적 소유의 지양은 ‘노동’의 지양으로 이해될 때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1845). 단지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을 경영, 시장, 교환과 돈에서 해방시키자는 뜻이다. 공허해 보이기도 하고, 현실성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근본적 문제제기는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본래 놀이인(호모루덴스)으로 태어났다’는 호이징하의 말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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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깡패'보다 '민주노조'를 더 미워하는 한국
[일과 희망·26] 과연 '더 나쁜 놈'일까?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출처 : <프레시안> 2007-11-17


  한 일간지의 지난 10월 31일자 기사를 옮기면 이렇다.
  
  "한국방송의 1직급 이상 간부급을 대상으로 하는 제2 노동조합이 30일 출범했다. 한국방송 공정방송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시청자광장에서 출범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윤명식 위원장은 출범사에서 '한국방송의 최우선 과제는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이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무능한 경영진에게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강동순 방송위원 녹취록 파문'의 당사자로 지난 5월 '6개월 정직'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따라서 제2 노조는 정연주 사장을 반대하는 일부 고참사원들과 정서를 같이하고, 정치적으로는 친한나라당 성향을 띨 것으로 보인다. 1직급 이상은 모두 300여 명인데 현재 노조 가입자 수는 50~60명으로 알려졌다.
  
  이날 출범식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이석연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배정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방송 박승규 노조위원장은 제2 노조에 대해 '편한 입장은 아니지만 교섭대상도 다르고 서로 부딪칠 일이 없을 것으로 본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10월 27일 분신한 전국건설노조 인천지부 전기분과 정해진 조합원 사건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숙련 노동자로부터 성장한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인류 역사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고 정해진 씨의 동료들이 정 씨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프레시안

  "인천 전기분과(민주노총)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지 만 4개월째이던 지난 19일, 한국노총 조끼를 입은 30여 명의 신원 미상자들이 농성장에 들이닥쳐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민중의소리> 취재 결과 이들은, 소수의 사측 관리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부천 소재의 경비업체인 'ㅊ'시큐리티 대원들이었음이 확인됐다. 이 경호대원들이 한국노총에 가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해진 씨가 일했던 영진전업을 비롯한 업체에는 실제로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가 설립되어 있다. 인천 전기 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만들어진 '한국노총 경인전기원노조'는 사용자의 이익 대표자가 포함된 전형적인 어용노조다. 유해성 사장의 사촌 황모 씨와 친형인 해철(영진전업 전무이기도 함)씨가 각각 노조 위원장과 사무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협박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 노조로써 관제집회도 벌여왔으며, 무력동원도 잦아져 분신 당일인 27일 아침에도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과 관련이 없었던 최초의 노동조합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동조합의 태생적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총의 영문 표기는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이고, 한국노총의 영문 표기는 Federation of Korean Trade Unions이다. 곧 '노동조합'을 뜻하는 영어 표현이 'trade union'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trade union.
  
  아쉽게도 이 단어들 속에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과 관련된 의미가 없다.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숙련 노동자로부터 성장한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인류 역사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앞에 인용한 기사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노동조합의 영어 표현이 그렇게 자리 잡게 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17-18세기 매뉴팩처 시대의 수공업 노동자는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당시 도시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던 날품팔이 대중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었다. 숙련된 기술을 독점할수록 자신들의 특권이 강화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술을 전수하는 데에 매우 인색한 장인-도제 제도들을 만들기도 했다. 식민지 경제가 상품의 수요를 전 세계적으로 창출했지만 상품을 생산하는 숙련 노동자들은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그들의 특권은 갈수록 강화되었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4일 정도만 일했고 점심시간은 두어 시간씩 소비하기도 했다. 대 자본과의 관계에 있어 파업의 효과가 지속적으로 발휘되고 있었으니 새삼스럽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행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와 같은 숙련 노동자들의 특권은 기계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기계가 숙련된 노동자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기계 파괴 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특권층 노동자들의 저항이었다. 그 당시 망치를 들고 기계를 때려 부순 노동자들은 우리가 막연히 짐작했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헐벗고 굶주려 온 노동자 대중"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권을 상실해가는 숙련 노동자들이 조직하기 시작한 것이 인류 역사 최초의 노동조합이었다. 달갑지 않지만, 노동조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잊지 말자, 최초의 노동조합은 진보적이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러 임금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50년의 세월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노동자를 기계처럼 일하도록 만드는 테일러-포드 시스템(Tayler-Ford System)이 전 세계의 공장을 관철하면서 노동조합은 체제를 변화시키는 진보적 성격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최초의 노동조합은 지금처럼 진보적 성격의 조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수구보수 세력에 호응하는 보수적 노동조합은 언제나 출현할 가능성이 있고, 그 대표적 예가 소위 '어용노조'들이다.
  
  사용자의 친인척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을 침탈하는 일이 벌어지거나, 대기업에 고위 관리직 중심의 노조가 결성되자 출범식에 보수 정당과 우익 시민단체 간부들이 참석해 축하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이 자칫 보수화할 수 있는 태생적 위험성과 무관하지 않다.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율 저하로 연간 수조원의 수익을 남기는 대기업도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인력 구조조정과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보수적 성격의 어용노조는 결국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그 자리를 진보적 성격의 민주노조가 대신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노동조합은 권력과 자본의 대척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어용노조·용역 깡패보다 민주노조가 거부당하는 시대
  
  문제는 민주노조들에 대한 우리 사회 대중의 정서가 어용노조들에 대한 정서보다 훨씬 더 비우호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짓밟는 어용노조에 대한 거부감보다 민주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더 커지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짓밟았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언론이 같은 재벌 계열회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투쟁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을 교양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그러한 언론 보도에 별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세계사적 시각으로는 이미 '상식'에 속하는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아직 이해가 낮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감까지 갖고 있다. 민주노조에 대해 "투쟁으로 회사를 말아먹는다"라거나 "공연히 정치 파업을 일삼는 체제 전복 세력"이라는 비난이 아직도 '먹어주는' 세상이다.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용역 깡패'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대중의 정서도 마찬가지다. '반 조폭 정서'보다 '반 노동조합 정서'가 훨씬 더 큰 사회에서 '나쁜 놈'인 깡패들이 '더 나쁜 놈'인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두드려 팬 것이 무슨 큰 죄가 될 수 있으랴.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 하냐"고 꾸짖는 유럽의 어머니
  
▲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파리 여자, 뉴욕 남자>에서는 "출근길에 데모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길 막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냐?"라고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프레시안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파업을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대부분의 언론은 그 파업이 초래한 경제적 손실과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을 것이고, 대중의 정서는 "투쟁을 일삼는 과격한 노조"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현상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 비극에 가깝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파리 여자, 뉴욕 남자>에서는 "출근길에 데모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길 막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냐?"라고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시골 광산촌에서 파업하다가 런던의 왕립발레학교까지 어렵사리 찾아와 면접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부 부자(父子)에게 교장 선생님이 "파업에서 꼭 승리하세요"라고 격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교장 선생님들 중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 년 전에 자리 잡은 보편적 정서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특별한 소수 운동권의 정서로 취급 된다.
  
  영화 <파리 여자, 뉴욕 남자>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냐?"라고 꾸짖은 뒤에 곧바로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라고 덧붙인다. 유럽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시선은 자신들보다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식 시장경제주의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진보적이다. 미국 교사노조가 연봉 인상을 요구하면서 연례적으로 벌이는 파업에 대해 미국의 학부모들은 우리나라처럼 "교사들의 이기적 요구가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들고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그 사회에도 당연히 있겠지만 우리처럼 대중의 지배적 정서는 아니다.
  
  "언론보도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합리적이더라"는 외국인 CEO
  
  어떤 이들은 "다른 선진국들의 노동조합은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처럼 전투적이고 과격하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 등을 통해 갖고 있던 선입견보다 실제로 겪어본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매우 합리적이었다"거나 또는 "과격한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 경영진에게 있다"고 말하는 국내 기업의 외국인 CEO들이 많은 실정이다. 지금도 프랑스의 철도와 지하철을 포함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어느 노동조합보다 훨씬 강도 높은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가 역사 속에 제대로 자리 잡아 본 경험이 없는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오래 전에 겪어야 했던 고민이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무의미하다"는 각성이나 운동권에 대한 비난이 교양인의 단골 메뉴처럼 인식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올바로 발전하는 방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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