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타협 논쟁] ‘삼성공화국’에서 사회협약이라니…
불가능한 타협보다 경제민주주의와 재벌 개혁을

▣ 조진한 진보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출처 : <한겨레21> 제687호 2007년 11월 29일


장하준 교수를 중심으로 일부 경제학자들이 신자유주의를 대신할 현실적 대안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과 자본이 정부의 중재 아래 타협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고리는 재벌과 노조다. 재벌은 소유권을 보장 받고 높은 세금과 고용 보장을 감당한다. 대신 노조는 과도한 인금 인상 요구를 자제한다. 국가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를 독려한다. 그러나 삼성 비자금 파문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지금, 이 길을 가기 위해선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재벌은 대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재벌이 경제정책을 주무르는 나라에서 대타협은 가능한가. <한겨레21>은 불가능한 타협 대신 재벌 개혁에 나서자는 주장과 대타협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상반된 주장을 싣는다. 한국 사회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논의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편집자


한국의 개혁적 인사 중 일부가 재벌과의 사회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있다. 그중 다수가 스웨덴을 좋아한다. 이분들의 머릿속은 매우 깔끔하다. ‘깨끗한 재벌 가문이 차등의결권을 기반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해, 선단식 경영으로 국부를 창출하고 많은 세금을 낸다. 이 재원으로 복지국가를 형성한다.’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 스웨덴 사회 대타협의 기저에는 강력한 노동정치의 힘과 투명경영을 할 수 있는 자본가가 있었다. 실업수당 축소에 반대하는 스웨덴 노동자들의 시위. (사진/ 한겨레 곽정수 기자)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세상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 우선 재벌의 승계 과정이 깨끗하지가 않다. 온 나라를 뒤흔든 삼성 비자금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스웨덴 재벌 발렌베리 가문이 후손에게 전환사채(CB)를 통해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지배권을 넘겨주고, 이를 입막음하기 위해 검사와 정치인에게 검은돈을 뿌렸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형태의 봉건적 재벌이 지배권을 보장받고 그 대가로 차별 없는 경제와 복지사회로의 진전을 위해 협조한다는 것은 상상 속의 동화일 뿐이다.

스웨덴식 타협은 노동의 힘 때문

사실 스웨덴식 사회 대타협은, 노동계급이 재벌의 기업 소유를 부정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하겠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철회하면서 생겨난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정권을 장악한 스웨덴 사민당과 노조는 ‘마음만 먹으면’ 발렌베리의 계열사들을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직접 소유하는 것보다 재벌에게 그 기업들을 맡겨놓고(일종의 위탁), 대신 높은 소득세를 거둬들여 복지사회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듯 사회 대타협의 기저에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강력한 노동정치의 힘과, 투명경영을 할 수 있는 근대적 형태의 자본가가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삼성은 대를 이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한다. 또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이 두려워 스스로 조직을 만들려 할 때, 노동자의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미행하고 회유하고 탄압했다. 나아가 삼성은 공화국의 주인 행세를 하려 했다. 역대 대통령 후보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재벌체제의 영속화를 기도했다. 민주정부 들어서도 고위 관료 인선에 개입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싼 비용’으로 관철하려 했다. 이것을 ‘보험’이라고 부르든 ‘떡값’이라고 부르든 그 효과는 동일하다.

모든 불행의 씨앗은 봉건적 상속이다. 모든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가 ‘X파일’(이학수 녹취) 사건이며 ‘떡검’(떡값검사) 스캔들이다. 우리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대 주주든 대주주든 능력이 있으면 경영을 하라. 단, 소유한 만큼만 지배하라는 것이다. 총수들은 1%에도 못 미치는 지분을 갖고 수십 개의 계열사를 지배한다. 가공자본의 확장을 통한 선단식 경영은 마치 수많은 구축함을 지휘하는 항공모함과 같다. 그러나 이 모함은 철판이 취약해 총알 한 방으로도 가라앉을 정도다. 김용철의 폭로가 그러하고, 이용철의 고백이 그러하다.

논리적으로 풀어보자. 사회 대타협은 사회협약(social compact)을 말한다. 즉, 계약이다. 부동산 계약에서도 계약서가 중요하다. 법적 유지 때문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그 집을 살 능력이 있는지 여부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부르는 가격 흥정이 얼추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것을 사회협약으로 옮겨 놓아보자.

사회거래에서 힘은 시장에서 자산과 같다. 즉, 재벌(자본)의 힘과 노동의 힘이 얼추 맞아떨어져야 거래가 형성되고 계약서가 교환된다. 여기서 거간(정부나 정당)의 역할은 2차적이다. 이것이 우리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 대타협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무시한다. 빨리 거래를 하라고 부추긴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투자, 고용, 노사관계,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순진하게만 느껴지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재벌이 왜 사회협약에 나서겠나?’ 현재에도 4% 지분(총수 지분은 1% 미만)으로 10배에 가까운 투표권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그룹 경영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재벌이 약한 노조를 대상으로 왜 타협을 하려 하겠는가? 또 삼성화된 정치권력이 존재하는데 굳이 왜 사회협약에 서명을 하려 하겠는가? 오히려 설익은 거래는 재벌에 영속적인 기업지배권(차등의결권, 황금주 등)만 부여하고, 노동과 국민에게는 고용창출이라는 추상적인 선언만 돌아갈 공산이 크다(이런 측면에서 삼성과 전경련의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론은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대국민적 협박과 다름없다).

이건희 회장이 스웨덴에 간 적이 있었다. 발렌베리로부터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돌아왔고 스웨덴 학습계획은 파기됐다. 왜? 알고 보니 스웨덴의 재벌은 너무 많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소유보다 2배 정도 지배권을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이 매력적이었겠지만 그것은 일방적으로 받은 특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민당과 주고받은 거래의 결과였고 엄청난 소득세와 노동과의 공동경영, 그리고 일자리 안정이 그 비용이었다.

거래에는 신뢰가 있어야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적·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발렌베리 재단은 지주회사 인베스터의 지분 21.4%(의결권 46.1%)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다. 소유기업의 이윤은 배당을 통해 인베스터로 모이고 이는 다시 재단으로 집결된다. 재단은 수익금의 대부분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스웨덴 사회 전체로 환원된다. 이를 어찌 삼성과 비교할 수 있을까? 거래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사회 대타협의 배경에도 게임을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

물론 사회 대타협을 강조하는 장하준 교수 같은 분도 현 삼성체제에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그분들이 할 일은 대타협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을 위해 삼성공화국의 어두운 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복지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국에서 사회협약을 위한 대타협의 조건은 형성되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해서 건너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삼성 비자금 사건이 투명하게 밝혀지도록 올바른 특검을 세우고, 죄진 자는 감옥에 보내 부정 행위에 대한 사회적 벌칙이 있음을 만인에게 보여줌으로써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후 정신 차린 재벌 총수가 노동을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산별(전국) 노조가 전경련과 동등한 힘을 갖게 되면 서로가 사회협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가능하지 않은 타협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첫걸음으로 재벌을 철저히 개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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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 논쟁] ‘사악한 재벌’이라 타협이 필요하다
저투자의 주범인 금융화, 대타협으로 막자

▣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 <한겨레21> 제687호 2007년 11월 29일


드디어 ‘괴물’ 삼성의 실체가 드러났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비자금 로비 및 변칙 상속의 실태는 극소수 특권 집단이 민주주의 제도를 어느 정도까지 훼손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제국 해체를 위한 특검제”나 “삼성가의 족벌경영 체제… 종식” 등의 주장(철학앙가주망네트워크)이 나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런데 ‘저런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이하 타협)을 주장해왔다니! 일단 면구하다.


△ 금융화 과정의 핵심은 기업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는 것인데, 이는 김대중의 개혁으로 가속화됐다. 1997년 11월19일 외환위기 타개책을 발표하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왼쪽/ 사진 연합)

기업은 사고파는 상품?

그러나 필자는 사회적 대타협론은 여전히 학문적 담론으로 그리고 정치적 기획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첫 번째, 사회적 대타협론의 대상은 애당초 ‘착한 재벌’이 아니라 현실 속의 ‘저 사악한 재벌’이었다. 김수행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재벌은) 외국 자본과 경쟁해서 한국 경제와 민중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며 장하준 교수를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애당초 재벌을 그런 ‘선한’ 존재로 가정한 적이 없다. 재벌 가문 그 자체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부와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하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다만 이런 ‘이기적 동기’가 때와 사회적 역관계에 따라 선(조선, 자동차, 반도체 육성)이나 악(정경유착, 비자금 로비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재벌이 선한 존재라면 타협을 주장할 필요도 없었다. 알아서 국민경제에 이로운 경영을 할 터이니까.

두 번째, 인천대 이찬근 교수가 사회적 대타협론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2002~2003년 즈음은, 경영권에 대한 재벌 가문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타협론자들은 민주적이며 강력한 정부의 집권, 노동운동의 단결, 시민단체의 호응 등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경영권 문제를 매개로 재벌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타협론은 재벌에 대한 온정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면서 공세적인 슬로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후 LG, SK 등 재벌 가문들은 각종 금융적 기법을 활용해 그룹 체계를 바꾸면서 산하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대폭 상승시켰다. ‘사회’와의 대타협이 지체되는 동안 재벌들은 ‘금융화’와 타협해버렸다.

세 번째, 앞으로 더욱 거세게 진행될 ‘금융화’ 경향 때문에라도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슬로건은 유효해야 한다. 그렇다면 금융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전의 한국인에게 금융은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영역, 혹은 실물 부문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10년은 금융 부문이 실물경제를 재조직하는 주인으로 등장한 ‘압축적 금융화’의 시기였다. 즉, 국내외 투자자들이 금융적 수익을 (얼마나) 취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자본 이동의 양과 방향이 좌우되는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를 금융화라고 부를 수 있다.

비현실성, 숙명적 조건인가

금융화 과정의 핵심은 기업(은행)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는 김대중 개혁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와 부채 비율 200% 규제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으로 명명한 바 있다.) IMF 사태 이전처럼 기업(은행)이 복잡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사실상 국유 상태라면, 금융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 이런 기업의 주식을 사서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기업(은행)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꿔버리면 훨씬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주주들은 경영자를 압박해 주가 상승을 기업 경영의 제1목표로 등극시켰고, 때에 따라서는 경영권을 인수해서 구조조정을 한 뒤 매각하는 짜릿한 장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시장의 규율’엔 시설과 인력에 대한 장기 투자를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등뼈라 할 수 있는 재벌이 과거의 모험적 투자자에서 보수적 투자자로 변하면서 저투자-저성장-고실업 기조가 나타난다. “대기업은 투자를 엄청나게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초토화”됐기 때문에 투자증가율이 낮다는 설명도 있다(<한국경제 새판짜기>). 그러나 설비투자가 정보기술(IT) 산업 부문에 몰리고 5대 주력산업은 저조하며, “전체 연구개발비 중 IT 산업 및 자동차 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62.6%”(2005년 기준, 산업은행 자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기업 부문 내에서도 투자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IT(와 자동차) 이외의 기존 산업 혁신이나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국민경제 차원의 투자가 매우 저조하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을 최대한 억제하거나 국민경제에 조금이라도 더 이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방법 중 하나로 제기된 것이 바로 ‘재벌과의 타협’이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재벌에 안정적 지배구조를 허용해, 기존 산업의 혁신과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는 한편, 경영과 관련된 권리·책임 관계 역시 확실히 하는 지배구조를 강제하는 것이었다. 노동 부문에서는 노동조합 설립 등 당연한 시민적 권리와 함께 정규직 고용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를 구상할 수도 있다. 이후 끊임없이 이어질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고 이에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이를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복지제도이다). 중소기업 부문에 대해서는 원·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과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특허법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그 ‘비현실성’을 따지는 비판들이 있다. (1) 재벌들이 타협을 받아들일 만한 정치적 상황이 부재하고, (2) 고율의 세금이나 경영 투명성을 수용할 리 없으며, (3)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지 않고, (4) ‘비합리적이고 무능한 관료조직’으로 인해 경제 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재비판하자면, 우선 (1)은 사실이 아니다. 경영권 문제야말로 재벌의 최대 ‘약한 고리’이다. LG와 SK가 어떤 방식으로 총수 가문의 지분율을 높였는지, 또 삼성이 경영권 상속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무리수를 두고 있는지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2) 또한 마찬가지이다. 재벌이 고율의 세금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영권으로 강제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3)과 (4)는 사회운동이 능동적으로 개입해야 할 과제를 일종의 ‘숙명적 조건’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태도로는 어떤 정치·경제적 개혁도 제기할 수 없다.

예컨대 <한국경제 새판짜기>에서 김상조 교수는 지식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동력으로 “위로는 개혁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 “밑으로는 성숙하고 능동적인 주권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조건이 충족돼 있는가. 또한 저자들은 복지재정을 위한 예산의 효율화를 주장하는데, ‘비합리적이고 무능한 관료조직’(저자들의 주장)이라는 조건에서 이런 과제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자신과 타인 간에 비판의 기준을 달리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재벌이 오히려 금융화 주도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재벌과의 대타협’이 가능할 것인지 필자는 정말 의심스럽다. 재벌 가문들은 그동안 각종 금융적 기법을 통해 계열사 지배권을 오히려 강화하고 이제 은행까지 삼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가문이 이후의 금융화를 주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론은 원래 국가의 역할, 기업 지배구조, 노동시장, 복지제도 등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었고, 최근엔 이에 복지국가나 사회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을 접맥시키려는 연구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재벌을 포함한 한국의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에 사회적 대타협론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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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협'을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 조상들은 다음과 같은 '훌륭한' 속담을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떡줄 놈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타협 운운하기 전에 타협 시킬 힘이 있는 국가나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힘이 없는데 어느 '골빈' 자본이 고개 숙이고 타협하나? 순진한 건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타협'을 원한다면, 스웨덴식 모델을 원한다면, 스웨덴 같은 좌파 사민주의 정부나 만들어놓고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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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
>>학술대회_ ‘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민족과 영토성 다시 읽기’ 참관기

김백영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사회학
출처 : <교수신문> 2007년 11월 19일


 

‘민족’이 생산적인 학술적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비록 세계화와 초국가, 다문화와 탈민족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민족사의 진실규명 작업이 현재진행형에 있고, 불과 몇 년 전 월드컵 집단광풍이 다시 파시즘에 대한 공포의 기억을 상기시킨 현 시점에서 한국 학계는 과연 어느 정도나 ‘민족’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상대화해 현실을 포착할 수 있을까.

지난 2~3일 양일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개최한 학술대회는 우리 학계의 민족과 민족주의 연구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회는 크게 네 개의 분과로 나뉘어 모두 16명의 발표자와 8명의 토론자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첫째날 1분과는 ‘민족, 그 상상의 공동체: 민족의 사회-공간적 구성’이라는 주제 하에 식민지 시기의 집합경험과 탈식민 이후의 공간적 상징표상의 전개 양상을 분석하는 네 편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일제 단맥설’의 집단적 피해망상을 넘어선 일제의 식민지도시 상징공간 변용전략의 실체 분석(김백영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위원), 신문화지리학에 입각한 상징경관을 통한 민족정체성 구성의 사례연구(진종헌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탈식민지기 남한 지리교육과 국토표상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형식과 식민주의적 내용의 충돌과 내파(임종명 전남대 교수), 남한의 전통건축과 북한의 민족건축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독해(안창모 경기대 교수)등 이들 연구는 대체로 그간 우리 학계에서 암묵적 침묵 속에 회피돼온 ‘위험한’ 문제제기이자, 공간표상을 통한 대중의식의 생산이라는 매우 참신하고 흥미진진한 연구영역을 제시했다. 이들에 의해 앞으로 이뤄질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외래 학문에 의한 지적 식민화로부터 연원하는 우리 학계의 어두운 자화상에 대한 자기성찰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짊어진 젊은 연구자들의 소명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기성학계 권위에 도전한 젊은 학자들

‘억압된 것의 귀환’에서 느낀 신선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초국가적 관계망의 형성과 민족의 영역적 재구성’이라는 주제로 21세기 초국가와 다문화 시대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다섯 편의 글이 발표됐다. 한류가 동남아 한인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례연구(심두보 성신여대 교수),  2002년 이후 한일 문화교류에서 나타나는 일본 문화상품에 대한 호감과 민족주의적 거부감이라는 양면적 태도(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관주도 다문화주의의 한계와 비보수적인 다문화주의의 가능성(오경석 민주사회정책연구소 연구원), 세계화 시대 초국적 주체의 등장으로 인한 국가와 민족의 불안정화 경향(박경환 전남대 교수), 한국 농민운동을 통해 본 초국가주의 사회운동의 가능성과 한계(김숙진 건국대 교수). 짧은 시간에 진행된 다채로운 발표는 시시각각으로 급변하고 있는 ‘민족 해체’의 징후적 양상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았다.

기성학계의 권위에 도전하는 1분과의 역사적·고증적 접근이 사뭇 긴장되고 조심스러웠다면, 2분과의 논의들은 거시적 지평에서 확보된 조망의 우위를 바탕으로 ‘민족 해체’ 현상의 다양한 편린들에 대한 새롭고 과감한 이론적 해석과 설명의 시도가 돋보였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사라질 운명에 처한 ‘오래된 나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듯이, 초국가와 다문화를 미래를 선점한 ‘새로운 좋은 것’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선진적인 개념과 이론의 도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여전히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중력의 힘에 대한 직시일 것이다. 이론적 실천은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이뤄질 수 없다. 우리에게 민족주의 비판이란, ‘동아시아’라는 지정학적 공간의 역사적 무게에 대한 균형잡힌 성찰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영구미제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회 이튿날은 ‘민족경제론의 재검토’라는 주제 하에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필두로 사회성격 논쟁, 사회구성체 논쟁, 식민지근대화 논쟁으로 이어져 내려온 진보 경제학계의 오랜 논쟁의 계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옛 친구를 만난 듯, 발표와 토론 내내 익숙한 정서와 어색한 호감을 느낀 것은 필자만의 감회는 아닐 것이다.

공동체론으로서 민족경제론의 현재적 의의(이덕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 현시점에서의 민족경제론의 내재적 비판과 개조의 가능성과 필요성(정건화 한신대 교수), ‘사회성격논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한 민족경제론의 쇄신 모색(안현효 대구대 교수), 민족경제론의 식민지기 역사인식 재조명(조석곤 상지대 교수). 과거 민족경제론의 오류와 한계는 인정하지만 ‘양동이의 물을 버리려고 아이까지 내버릴 수는 없다’는 주장과 탈근대적 세계화와 글로벌 반체제운동의 시대에 시대착오적 민족경제론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팽팽했다. 비전공자의 시각에서 볼 때,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양측의 논리적 일관성과 숙성된 고민의 진정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보다 중량감 있는 종합토론의 성격을 겸했던 마지막 4분과는, 앞서 드러난 1분과와 2분과간의 모순과 긴장, 3분과 내부의 대립과 논쟁을 또다른 전선에서 재현해내듯,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한국 민족주의의 현주소에 대한 비판론과 옹호론이 명백한 현실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개념을 통해 동아시아 각 민족간의 ‘적대적 공범관계’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주장(임지현 한양대 교수)이 포문을 열자, 곧바로 대자본의 폭력적 세계화에 맞선 공동체적 방어기제로서 민족과 민족주의의 존재는 여전히 유효하고 정당한 것이라는 주장(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이 이에 맞섰다. 여기에 근대-탈근대, 국가-초국가의 거시적 변화와 ‘무관하게’ 줄곧 국민국가의 공동체적 시선으로부터 누락돼온 여성과 이주자 등 소수자 주체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문제제기(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도 더해졌다. 민족통일의 과제가 미완이고, 신자유주의가 국민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민족’은 여전히 사회통합의 구심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동시에, 급증하고 있는 이민노동이나 국제결혼과 같은 새로운 사회현상들은 기존 ‘민족’의 해체와 새로운 공동체 재구성의 급박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급진적 학문의 자기성찰과 의의

결국 세계화와 초국가라는 시대적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는 민족 그 자체의 ‘해체’나 국가 그 자체의 ‘소멸’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현실의 문제는 ‘어떤 민족’과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민족과 국가 그 자체에 대한 급진적인 학문적 성찰의 의의를 무화시키지는 못한다. 우리 학계가 ‘세계화’라는 새로운 시간성에 맞춰 ‘민족’과 ‘영토성’이라는 주체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공간압축의 시대, 지표면을 가로지르는 초국적 주체들의 선구적 탈영토화 운동에 대한 사회적 주목만큼이나, 이름없는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주고 있는 수많은 이질적인 공동체 공간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막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세계화 시대 민족과 영토의 필연적 비동시대성’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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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변증법처럼
영화·연애·정치 코드로 살펴보는, 윤성호의 야심만만 데뷔작 <은하해방전선>

▣ 황진미 영화평론가
출처 : <한겨레21> 제687호 2007년 11월 29일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은 영화 만들기에 관한 메타 영화로, 제목 ‘은하해방전선’(과학소설 <은하영웅전설>의 패러디)은 영화 속 배우가 출연했던 어린이 특수촬영물의 제목이자, 영화 속 감독이 최종적으로 만드는 영화 제목이다. 한편 ‘은하’는 주인공과 헤어진 여자친구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인감독의 좌충우돌 입봉(데뷔)기이자, 이기적인 남자의 연애 반성담이고, 좌파 청년의 정치 풍자 코미디이다. <은하해방전선>을 영화, 연애, 정치, 세 가지 코드로 나누어 살펴보자.




연애와 영화, 좋을수록 말이 없다

1. 영화와 자기반영성: 주인공은 감독 지망생으로 ‘센 플롯으로 스타를 꼬여서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고민에 빠져 있다. 시놉시스를 들은 스태프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배우와 (영화사) 대표의 동상이몽이 더해지고, 스타 영입 계획은 무산되면서 영화는 점점 ‘산으로 올라간다’. 이는 이 영화의 감독 윤성호의 체험담이다. 1년간 매달린 장편 상업영화가 투자 문제로 ‘엎어지고’, 제작비 1억원으로 준비하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 <은하해방전선>을 8월에 찍어 10월에 열리는 부산영화제에 출품하는 그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영화는 2007년 부산영화제를 배경으로 영화판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 풍경이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2007년 부산영화제의 풍경과 ‘실시간 생중계’로 겹쳐진다. 영화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1년 뒤 영화 촬영 장면에서 주인공이 찍는 영화 속 영화 역시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로 묘사된다. ‘혁권 더 그레이트’(어린이 특촬물 캐릭터)를 찍는 몽골 감독을 찍는 주인공을 찍는 윤성호 감독이라니. 이 지독한 자기반영성의 연쇄를 통해 감독이 전하는 말은 “이것은 바로 나를 담은 영화이자 나를 닮은 영화입니다”이다. 감독의 자의식이 묻어나는 자기반영적 영화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나르시시즘과 반성이다. 영화는 반성의 길을 간다. 넘쳐나는 말들 속에서도 거북함이 아닌 짠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영화가 취하는 반성의 태도 때문이다.

2. 연애와 언어: 실연으로 실어증에 빠진 남자가 옛 애인과 꼭 닮은 여자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던 주인공은 은하와 헤어지고 진짜 실어증에 걸린다. 말 잘하는 그가 만난 세 명의 여자는 모두 말보다 느낌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스킨십과 도시락으로 감정을 전하던 은하, 공허한 말들을 환멸하던 녹음 기사, 입 모양으로 마음을 보는 은성. 그는 ‘연애와 영화의 공통점은 좋을수록 말이 필요 없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 언어를 되찾는다. 영화는 ‘그것’이니 ‘소통’이니 하는 속 빈 기표만 난무하는 대화를 통해 말의 패착을 묘사한다. 달변의 감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말의 한계를 넘어선 직접 소통이다. 영화의 마지막, 남자 로보트가 진심을 캐묻는 여자 로보트에게 ‘전선’ 케이블을 연결하자 그녀는 곧 사랑을 확신한다. 주인공 역시 은성과 몸의 언어인 수화를 통해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 복화술은 영화에 대한 은유이다. 배우의 복화술로 말을 하거나, 메가폰을 통해서만 말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말을 하는 감독을 은유한다. 복화술은 배우와 녹음 기사의 욕망으로 의미가 굴절되지만, 복화술로 노래를 하니 즐거운 퍼포먼스가 된다. 섹스 후 불러주던 은하의 고즈넉한 노래와 지하철에서 합주되던 〈Bella Ciao〉(이탈리아 빨치산 노래)는 주인공과 선임병이 던지는 섹스와 정치와 민중과 영화에 관한 무의미한 말들을 압도한다. 말의 한계를 넘어서는 음악의 수행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사랑도 자꾸 발명할게, 발명왕 에디슨이 될게”

3. 정치와 풍자: 주인공의 채팅 아이디(ID)는 ‘2000년도에 25살이었던 영재’이다. 68혁명 이후 좌파들의 삶을 그린 영화 <2000년도에 25살이 되는 조나>(1976)의 패러디이자, 실제로 2000년에 25살이었던 윤성호 감독의 자의식을 담은 아이디이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민주화 이후, 무임 승차한 좌파”라 칭한다. 영화는 386세대와 차별되는 감독의 정치성을 무시로 드러낸다. 독재정권은 가두투쟁이 아니라 “원고 자체에 모순이 있는” 학예회 웅변으로 기억되고, 그가 싸워야 할 적(敵)은 체 게바라와 김정일과 박정희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선망하는 지독한 무정치성이다. 영화의 풍자 정신은 ‘남파 간첩이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김정일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것이란 걸 깨닫고, 동성애를 질병 취급하는 북한행을 포기하고 전향한 뒤, 경상도 귀신이 쓰여 경상도 사투리로 땅값이 오를 곳을 예언하는 재테크 무당이 된다’는 재미동포의 시놉시스 속에 집약돼 있다. 1인 독재체제의 북한과 부동산 공화국 남한을 동시에 풍자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조선일보>와 이명박과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관한 풍자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이런 유머들이 일관되고 뚝심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의 철학적 기반부터 좌파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변화와 실천을 긍정하는 변증법을 철학적 기반으로 삼는다. 시나리오 속 일본 여자는 “넌 쉽게 변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헤어지겠다 말하고,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은하의 말에 “영재6호가 되어 은하2호를 만나고 싶다”라고 답한다. 또 “(네가) 연애도 발명한 것이라며?”라고 말하는 은하에게 주인공은 “이제 자꾸 발명할게, 발명왕 에디슨이 될게”라고 답한다. 이는 사랑을 변치 않는 형이상학적 가치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변화하는 실천적 가치로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은하해방전선>은 극한의 자기반영성을 통해 젊은 좌파 감독의 영화와 연애와 정치에 관한 자의식을 발랄하게 드러낸 영화이다. 386세대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정치적·미학적 감수성을 지닌 신예감독의 입봉을 목도하니, 반갑고 흥분된다.(…막 이래^^)(11월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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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되 아름다운 루시드 폴의 '귀환'

과학도 조윤석의 <국경의 밤>에는 얼마 전 그가 스위스 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는 가십을 가벼이 압도하는 깊이와 서정이 심해의 물처럼 흐른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 출처 : <시사 IN> 제 660호 2007년 11월 26일


 
   
2006년 9월23일 새벽, 부산 앞바다에서 익사 사고가 일어났다. 고인의 이름은 김정찬. 향년 33세. 강원도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에게는 17년 지기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음악을 했다. 이름은 조윤석. ‘루시드 폴’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사고 후 약 20일이 지나 루시드 폴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노래 가사를 하나 올렸다.

‘노래할게’라는 제목으로 몇 시간 만에 만든 곡이었다. 스위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과학도이기도 한 조윤석은 유학 생활이 끝나기 전에는 앨범을 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노래할 결심을 하게 한 건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었다. 그는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망치로 한 대 맞은 듯이 정신 차리고, 노래 많이 쓰렵니다. (중략) 정찬이가 노래를 하고 싶다면, 내 목으로 같이 노래하고 기타 치고 그러렵니다. 옛날에 고등학교 때 우리가 그랬듯이요.” ‘곡: 윤석+정찬, 사: 윤석’이라는 크레딧이 이 노래에 달렸다. 루시드 폴의 세 번째 앨범 <국경의 밤>은 그렇게 출발했다.

<국경의 밤>이라는 제목은 고국과 외국의 사이, 음악인과 과학자 사이, 언더와 오버 사이에 있는 경계인 같다는 생각에서 지었다고 한다. 루시드 폴의 인생이 늘 국경에 있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인디 신 초창기 홍대 앞에서 레이니 선, 앤, 피아 등 부산 출신 밴드가 끈끈한 정으로 뭉쳐 활동할 때, 부산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가 처음 공연을 시작한 곳은 홍대 앞이 아닌 서울대 앞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3년에는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았지만 주류 음악계에 그가 설 곳은 없었다. 심지어 대학가요제에서는 예선 탈락의 고배도 들었다.

루시드 폴의 인생은 늘 국경에 있었다

조윤석의 1998년 데뷔작인 밴드 미선이의 앨범은 주류도 아니고 비주류도 아닌 음악을 담고 있었다. 주류는 아이돌 그룹의 천하였다. 인디에서는 펑크와 하드코어가 대세였다. 델리 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과는 또 다른 미선이의 음악은 모던록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러나 그해 음악 잡지 <서브>에서 실시한 독자 투표에서 이 앨범은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불러일으켰다. 그건 그가 서 있던 국경이 단절과 소외가 아닌, 이음과 계승에 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포크의 감성과 진솔한 가사를 미선이가, 조윤석이 드러낸 것이다.

방위산업체에 복무하던 시절 내놓은 루시드 폴의 1집은 그런 감성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었다. 시인과 촌장, 박학기, 유재하 등에서 출발해 윤상과 토이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잇는 루시드 폴의 데뷔 앨범은 한국 인디 신이 내놓은 첫 번째 포크 앨범이기도 했다. 2001년 발매된 이 앨범은 미선이 못지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 출연 한 번 하지 않았지만, 공연조차 그리 많이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팔려나갔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루시드 폴은 노래했다. 조용히 감성적 음악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슬며시 큰 자리를 잡았다. 이듬해에는 영화 <버스 정류장>의 음악을 맡아 그의 이름을 더욱 많은 대중에게 알렸다. 어쩌면 작은 스타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조짐이 충분히 있었다.

   
  루시드 폴의 메시지는 어떤 선동 구호나 도구화된 음악도 전할 수 없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조윤석이 전한 다음 뉴스는 새 앨범이 아닌 유학이었다. 소속사로부터 받은 상처가 직접 원인이었다.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또다른 도피였다. 방구석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던 1975년생 물고기자리의 경계인은 그렇게 스웨덴으로, 스위스로 헤엄쳐 갔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있는 음악 친구들과 계속 교류했고 유희열이 속해 있는 토이 뮤직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2005년 루시드 폴의 두 번째 앨범 <오, 사랑>을 내놨다. ‘물이 되는 꿈’ ‘들꽃을 보라’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등 여전히 주옥같은 트랙을 담고 있는 앨범이었지만 약간의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평생 사랑을 숨길 것 같았던 그가 사랑을 정면에 내걸었다. 1집에서 빛나던 아마추어리즘은 함춘호, 김광민, 유희열 등이 세션으로 참여하며 고급화됐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변했다”라며 지난 시간, 자신이 머물러 있지 않았음을 밝혔지만 변해온 길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 사랑>은 그래서 아쉬웠다.

다분히 개인사에서 출발한, 자칫 먼 훗날 다른 모습으로 만날 뻔했던 <국경의 밤>은 그러나 그 아쉬움을 모두 달래주고도 남는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찾아온 이 앨범에서 뮤지션과 과학자, 고국과 외국, 언더와 오버의 국경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가 살고 있는 곳, 그가 그리워하는 곳, 그가 바라보는 곳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을 뿐이다.

12월22~25일 공연 위해 귀국할 듯


그는 올해 초, 이 앨범의 레코딩 세션을 하며 연주자들에게 반복을 시키지 않았다. 두세 번 연주하고 느낌이 오면 다소 모자라도 그대로 갔다.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도한 연습으로 순수함이 사라지기 전의 느낌을 담아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미선이와 <버스 정류장>, 그리고 루시드 폴의 1집과 2집이 모두 느껴지는 루시드 폴, 혹은 조윤석의 현재완료형 음악이 <국경의 밤>을 관통한다. 얼마 전 그가 스위스 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는 가십을 가벼이 압도하는 깊이와 서정이 심해의 물처럼 흐른다. 그는 고국의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며, 치열한 삶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세상을 이야기한다.

미선이의 앨범에서 이미 보수 신문에 대한 짜증을 ‘치질’이라는 곡을 통해 노래했던 그였다. 그의 눈은 더욱 넓어졌다. 사유는 깊어졌다. 루시드 폴은 ‘사람이었네’에서 자본과 세계화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제3세계에 대한 착취를, ‘kid’에서 차별과 폭력을 노래한다. 뜨거운 소재다. 하지만 그는 더없이 담담하다. 격하되 차갑고 치열하되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어떤 선동의 구호나 도구화된 음악도 전할 수 없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카에타노 벨로소, 메르세데스 소사 등 그가 심취했던 제3세계 저항 뮤지션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메시지가 얼마나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지, 우리는 김민기나 한대수의 옛 음반이 아닌 지금 여기의 음반에서 비로소 알게 된다.

들을 음악이 없다고 그토록 목놓아 외치던 대중이 이런 음악을 외면하면,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국경의 밤>은 발매 닷새가 채 되기도 전에 초판이 모두 팔렸다. 아직 스위스에 있는 루시드 폴은 오는 12월22일부터 25일까지의 공연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다. <국경의 밤>을 들으면 혼자서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 공연을 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 꽁꽁 숨겨뒀던 마음의 이야기를, 루시드 폴이 끄집어낸다.


낮은 음성, 깊은 울림
루시드 폴 새 음반 ‘국경의 밤’

▣ 이재성 기자
▣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1월 29일


» 루시드 폴
 
 
루시드 폴(본명 조윤석·32)은 그룹 동물원과 공일오비의 계보를 잇는 인텔리형 가수다. 동물원과 공일오비가 그랬듯, 20대~30대 전문직 여성과 대학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발표한 3집 음반 <국경의 밤>은 낯선 영토에서 보낸 슬픈 엽서 같다. 노랫말은 예명(맑은 가을)을 닮아 가을처럼 투명하고, 멜로디는 나른하고 외롭다.

타이틀곡 ‘사람이었네’는 그의 지식인적 특성을 오롯이 담고 있다. “어느 문닫은 상점/길게 늘어진 카페트/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난 중동의 소녀/방안에 갇힌 14살/하루 1달라를 버는…” 노래는 페르시아 양탄자와 아프리카산 커피를 생산하는 어린 노동자들의 고단한 현실을 낮게 읊조린다.

무거워보이는 주제를 노랫말로 옮긴 감수성도 좋지만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용기는 더욱 놀랍다. “이란 출신 친구와 함께 양탄자 가게를 지나가고 있었어요. 양탄자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는데, 그걸 만드는 여자 아이들은 하루 1달러밖에 벌지 못한다고 친구가 말하더군요.” 국제전화 선을 타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을 법한, 모범생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위스 유학중인 ‘과학자 가수’
고향 생각·노동자들 현실 노래
다음달 22일부터 귀국 콘서트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의 전공은 재생의학(조직공학)이다. 로잔공대 생명공학연구소의 연구원을 겸하며, 세포나 조직의 재생을 돕는 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교수와 함께 대기업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쓰고 있는 논문이 곧 박사 논문이 된다. 네슬레, 노바티스, 로슈 등 초국적 자본의 본거지에서,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국경의 밤’) 그의 여린 가슴을 치는 것은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이다.

그는 “스위스의 제약회사들이 약을 개발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3세계 사람들이 헐값에 임상실험에 동원된다”며 “내가 신약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내년 여름이면 박사과정이 끝날 듯하지만, 계속 이 길로 가야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쌀쌀한 서양인들 틈에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진 그는 “요란스런 한밤의 불빛은 없지만/어디에서나 보이는 크고 소담스런 사람들”(‘라오스에서 온 편지’)을 그리워하며, “걱정마, 넌 우리보다 더 따뜻하단다/자랑스런 네 검은 피부 가리지마라”며 흑인 소년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고향 생각을 부추기지만, “올해 달력 위 붉은 글씨/추석이 와도 약해지지 않으려”(‘마음은 노을이 되어’) 마음을 다잡는다.

루시드 폴은 최근 ‘과학자 가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료들과 함께 작성해 그가 발표를 맡은 논문이 스위스 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 발표상을 받은 것이다. 낮에는 연구에 매달리고 밤에는 음악을 하는 이중 생활을 용케도 이어가고 있다. “딴 짓을 안 하기 때문”이라며 그는 겸손해 했다.

대학생 때 인디밴드 ‘미선이’를 만들어 활동하느라 학부 성적이 나빴다. “제가 유학 가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걸 대학 동창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며 그는 웃었다.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3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벌써 매진 상태여서, 26일 앵콜 공연을 하기로 했다. 30일에는 그의 고향인 부산 을숙도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루시드 폴은 공연 시작 일주일 전인 15일 귀국한다. 1544-1555.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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