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과의 만남]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글 김민아·이고은, 사진 우철훈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 12 04


-“보수로 치우치는 대선…눈을 떠도 앞이 캄캄”-

“내 입에서 어떤 수작이 나올 걸 기대하고 온 거요?” 첫 마디에 기가 죽었다. 백기완은 여전했다. 일흔다섯, 뱃속 깊은 곳에서 뿜어내는 음성은 쩌렁쩌렁했고, 이따금 부르쥐는 주먹은 강건했다. 대선 이야기를 하러 갔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통일과 해방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다 “꽈다당 하고 진짜 벼락이 치는 사랑, 역사를 빚어내는 사랑”을 꿈꿨다. 상식적인 질문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신문쟁이처럼 굴지 말고”라는 호통이 뒤따랐다. “매일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틴다는 그 앞에서 기자노릇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내 2시간이 흘렀다. 목이 타고 시장기가 돌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대학로의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을 만났다. ‘이상한’ 인터뷰였다.



-대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대선,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지긋지긋해요. 눈을 떠도 앞이 캄캄해. 눈을 감았을 때보다 더 캄캄해.”

-왜 그렇습니까.

“선거는 고르는 게 아니에요. 자기 생각과 뜻을 실현하고 관철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가 관철할 때, 마음속의 형체가 나와야 해. 그 형체가 새뚝이야. 새뚝이란 뭐냐. 아무리 침묵같이 삼키는 썩은 늪이라도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썩어 문드러진 침묵이 깨지는 거거든. 그 침묵이 타파되는 미적 전환의 계기를 새뚝이라 해요. 선거 때는 이게 나오고 실현돼야 해. 지금은 정상배가 날뛰는 선거지,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그런 사람이 없어. 우리 시민들에게 좌절·절망·허물을 강요하는 것은 정상배의 짓이라니까….”

-이번 대선에선 보수진영 후보 2명의 지지율이 60%에 이릅니다.

“선거판이 보수에 낱말 하나 더 붙이면 될 것 같아요. ‘보수 반동’이라고…. 이 사회 주된 흐름이 보수 반동이에요. 권력, 정치판 모두 이렇게 보수 반동적일 수가 없어. 언론은 다른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선거판이라고 덜하다고 볼 수 없지. 사회적 기본 흐름의 반영이 선거판이니까.”

-보수화의 원인이 뭔가요.

“우리 역사를 보면 1987년 여름이 결정적 분수령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한열 열사가 원통하게 죽었는데 장례식때 200만명이 넘게 길거리에 나왔어요. 그건 조문만 하자는 건 아니야. 요새 말로 민주화를 열망하고 통일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야. 양적·질적으로 민주화·통일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거머쥐었던 거지. 그때 마지막에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단일화했으면 군사독재는 결정적으로 청산하는 거잖아, 그런데 안했잖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어떻게 됐어. 근대 200년 동안 자생적 근대화 정신 죽이고, 자생적 삶의 터전을 망친 세력의 범죄를 합리화·합법화시켰어. 또다시 보수 반동이 기회를 얻었고, 그게 오늘날 한나라당이야. 심지어는 내가 앞장섰을 때 뒤따라오던 젊은이들도 거의 다 보수화됐어. 남의 선거운동만 했다고. 김대중·노무현…. 민주화운동 세력이 진보적 세력으로 성장을 못한 거지.”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노당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안할게. ‘진짜 진보’가 뭔지 물어보면 하고….”

-그럼 진짜 진보란 뭡니까.

“민노당에서 스승의 날에 나를 초청했어요. 나보고 한 말씀 하래. 진보가 뭐야? 하고 대표한테 물었더니 가만히 있어. 진보란 ‘불림’이야. 불림이 뭐냐, 춤꾼이 춤판에 뛰어들며 한 마디 외치는 소리가 불림이고,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이루자는 한 마디가 불림이야. 진보는 주어진 판을 깨는 거야. 제국주의,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판을 깨는 거야.”

-권영길 후보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를 하신다면요.

“글쎄…. 딱 한 마디만 하면, 이 자본주의 문명은 지구도 망치고 사람도 망치고 벗나래(세상)도 망칠 것이니 참된 하제(희망)를 빚자는 말, 그 한 마디.”

-직접 대선에 나가신 적이 있지요.

“전술이었다니까! 민노당을 보면 너무 전술에만 매달리고 전략이 모자란 것 같아. 전략은 불림을 외칠 수 있는 세력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불림을 외칠 세력이 아니고 아우성 있잖아, 아우성만 치는 체질의 젊은이들이 (민노당에) 모여 있잖아. 다는 아니겠지만.”

-반(反)한나라당 전선이나 범개혁진영 단일화 같은 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범여권이라는 세력을 개혁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진보세력이라고 머리말 붙이는 사람도 있어요.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범여는 가장 무서운 보수반동세력이야. 미국 독점자본의 앞잡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하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앞장섰잖아. 미국 신보수의 끄나풀이야, 어려운 낱말로 아류라고. 그 아류가, 한나라당과 아류 경쟁하는데, 하나로 만들어 어떻게 한나라당을 극복한다는 거야.”

-노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건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민족끼리라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만나야 해. 하지만 만나서 뭐하냐 이게 문제야. 노대통령이 만나서 할 게 있다 이거야. 핵은 북핵이 아니야. 미국이 핵을 독점하고 있잖아. 모든 핵을 없애는 한반도 선언을 하고 왔어야 한다고.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선언했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무엇이 통일인지, 두 높은 사람이 말이라도 해보고 오라 이거였어. ‘이것이 통일’이라고 매듭짓지 않아도 좋아. 우리 민족 내부엔 더 무서운 휴전선이 있잖아. 올바른 놈과 나쁜 놈, 있는 놈과 없는 놈…. 전두환이 백두산 천지에 별장 만들어도 통일이야? 부시가 우리 한반도 지배해도 통일이야? 추상적으로 통일 문제를 제기할 때는 지났어. 진짜 통일을 말해야지. 진짜 통일은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야.”

(한동안 우리 민중해방사상의 뿌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듣다보니 조금 반발심이 생겼다.)

-민중해방사상의 뿌리가 자생적으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프랑스 시민들, 히틀러가 쳐들어올 때 적극적으로 항쟁하자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나라도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굴복한 사람들이 총칼 들고 저항한 전투적, 혁명적 인간보다 적지 않았고. 사람은 끊임없이 역사와 함께 깨우치고 발전합니다. 발전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를 줘야 해요. 사람은 100% 자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는 믿어야 해. 우리 민중이 노망 들었다고 하면 안돼.”

-(신정아·변양균 스캔들 이야기가 나왔다.)

“(신·변씨) 이름은 대고 싶지 않아. 다만 사생활이고, 사랑 문제에는 간섭 말자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짓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말만 사랑이지, 탈든 사랑이다 이거야. 사랑은 첫사랑, 풋사랑, 갓사랑이 있는데, 갓사랑이 으뜸이야. 매일 아침 매일 저녁마다 새로워지는 사랑이지. 보면 볼수록 새로워지고 정이 들고 하는 게 갓사랑이야.”

-건강은 어떠신가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보이는데요.

“난 건강이 따로 없어. 매일매일 죽기 아니면 살기야. 전두환은 매일 등산, 골프 하겠지만 나는 부럽지 않아. 요즘은 내가 이야기하고 연극할 수 있는 ‘노나메기(같이 일하고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 문화원’을 하나 차리려고 해. 이 집을 팔고 대학로 저 구석에 가면 강당이 많거든. 신학철이라고 그림꾼이 있는데, 자기 그림 팔아서 땅을 사는 데 보태라고, 그림 30점을 갖고 왔어. 그림이 기가 막혀요. 그걸 상품화해서 돈을 벌지는 않으려고 해. 양심상 팔지는 않고 보여주고 싶어. 될까? 난 좌절 안해, 좌절하면 할 게 없잖아.”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자본주의 문명에 속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우상화해요. 돈 우상화, 행복 우상화, 안정 우상화.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이 세 가지에 속으면 모든 걸 잃어요. 미국의 큰 석유회사가 석유 1배럴 생산하는 데 1달러밖에 안 들어. 그런데 팔 때는 100달러라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뺏는 거야. 뺏겠다는 환상에 빠져서 망하는 거지. 인간의 가장 치사한 바람이 돈을 우상화하는 거야. 행복에는 무슨 함정이 있냐고? 나만이 행복하겠다는 것, 강남 가면 중학생 한 달 과욋값이 수백만, 수천만원이라는데, 이름있는 대학 가서 취직해서 자기만 잘 살겠다? 행복을 제도적·문화적으로 우상화하는 거야. 행복은 늪이 돼서 빠지면 못 나오는 게 되면 안돼.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살자는 노나메기 벗나래, 그게 ‘참 변혁’이야.”

▲백기완은 누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재야인사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소장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부모·작은형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젊은날 농민운동과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에 힘썼고 67년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가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가 된다. 73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앞장섰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서울지부 의장, 전노협 고문 등을 지냈다.

87년 대선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야당의 후보 단일화·연립정부 구성을 촉구하며 사퇴했다. 92년 대선에서는 다시 민중후보로 나서 24만표를 얻었다. 2002년 월드컵 직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히딩크 감독과 각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

건강이 별로 안 좋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이야기 하시는 것 보니까 아직 건재하시구만. 누구나가 그 시대적 역할이 있는 것. 백선생 역시 그 시대적 역할을 충분히 하셨으니, 이젠 좀 편안히 쉬셔도 될 것 같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민주의, 진보진영 구심점 될 수 있다
[투고-사민주의 논쟁] 사민넷, 사회투자국가 대응하는 비전 없어

이영수
출처 : <레디앙> 2007 11 30


대선 시기이지만 사회주의-사민주의 논쟁이 <레디앙>에서 벌어지고 있어서 한 번 끼어들고자 글을 보낸다. 사민주의 국가 중에서 대표적인 나라인 스웨덴 사민주의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고 사민주의가 한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규명함은 물론 진보진영이 이러한 사민주의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 사회주의 이상 없이는 사민주의는 불가능하다

스웨덴은 임노동자기금 프로그램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 운영체제로 나아가려고 했던 사민주의 국가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웨덴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혁파하고 사민주의가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까지 근접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사민주의의 역사를 보면 사실상 점진적인 개혁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계급타협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노력은 분명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1920년 소수내각으로 최초로 집권을 했고 1929년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면적인 사회화를 추진해야 된다는 내부 주장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자 스웨덴의 대표적인 사민주의자 칼레비(Karleby)가 소유권이라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며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러 가지의 권리의 총합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의 총합에 대해서 일정 정도 제한을 가하면서 사적소유권을 극복한다면 점점 사회화로 나갈 수 있음을 주장하여 스웨덴 사민당은 전면적인 사회화를 유보하게 되었다.

즉 즉각적인 생산수단의 사유화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조금씩 규제해 나가는 것 또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임을 주장한 것이다.

   
  ▲ 스웨덴 노총(LO) 건물 모습.
그래서 이러한 노선을 취하면서 스웨덴 사민당은 사민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스웨덴 사민당은 노동자들이 대기업들의 초과이윤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대기업들의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임노동자기금에 대해서 적극적인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결국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스웨덴 사민주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불가역적인 사회운영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로서는 유럽의 전통 사민주의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존하는 사민주의가 사회주의의 경로로서는 실패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의 경로가 아니다, 라고 단정 짓기 위함이 아니다.

유럽 사민주의가 지금까지는 사회주의의 경로로서는 실패하고 있지만, 애초부터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의 경로이며 사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되었다.

그러므로 유럽의 사민주의가 사회주의로의 경로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더욱더 좌로 움직이어야 하고 우리들의 사민주의 또한 사회주의와 유리되어서는 안되며 사민주의가 사회주의의 경로로서 더디더라도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웨덴의 사민주의를 언급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의 사회주의 이상 없이 사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2. 사민주의의 현상황 : 그래도 사민주의는 전진하려고 한다

사민주의를 평가하는 이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권력자원이론이고 나머지는 구조적 종속이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에는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사민당들이 집권을 하고 많은 개혁을 이루어내면서 권력자원이론이 정당화되는 듯했지만, 70년 대 대공황 이후 득세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사민주의가 쇠퇴하면서 구조적 종속이론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에스핑 엔더슨(Esping-Andersen)과 코르피(korpi) 등이 주장한 권력자원이론은 사민주의 정책으로 만들어진 완전고용과 무상의료, 교육 같은 복지체제가 소득재분배와 노동의 탈상품화를 이끌어서 노동계급들이 복지국가체제를 수호할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추동하는 권력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반대로 구조적 종속이론은 국가는 구조적으로 자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 또한 자본의 투자를 유발할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유지해야 하는 필요로 인해 자본으로부터 정책 및 전략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사민주의체제는 개량적 국면에서는 자본의 타협과 양보로 일정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경제 불황과 같은 위기적 국면에서는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자본과 노동의 타협이 깨어지고 자본이 노동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민주의는 급속도로 와해되었기 때문에 구조적 종속이론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은 기든스의 사회투자국가론을 받아들여 경제적 효율성을 우위에 두는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통적 사민주의 체제와 이별을 고했으며, 스웨덴을 비롯한 노르딕 국가 또한 사회투자국가적 요소를 복지 부문에 받아들여 기존의 체제에서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사민주의 국가들이 많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사민주의체제는 개별 나라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똑같이 무너지지는 않았으며, 최근에는 구조적 종속이론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예견한대로 사민주의체제가 단편적이고 특수한 상황으로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잘 견뎌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히 노르딕 모델 같은 경우에는 평등과 효율 면에서 모두 영미식 모델을 앞서면서 성장을 위해서 분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민주의가 권력자원 이론가들의 희망대로 자본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구조적 종속이론과 신자유주의가 예견한대로 체제가 해체되지도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사민주의를 통해서 권력자원을 구축해놓으면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민주의가 지금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비가역적인 제도를 완벽하게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을 많이 구축하면서 비가역성의 가능성을 여전히 담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민주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이 제시했듯이 사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비가역적이지는 못했지만 사민주의는 언제든지 다시 전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3. 한국에서 사민주의의 의미 : 보수독점체제를 무너뜨리고 진보진영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한겨레>의 몇 년 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지식인들은 대체적으로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꿈꾸고 있으며, 절반 정도의 국민들 또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으로 영미식 모델보다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지형은 보수독점체제가 더욱더 공고화하면서 일방적으로 영미식 모델로 수렴해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진보진영은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사민주의를 통하여 영미식 모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한국의 보수독점 체제를 진보 / 보수체제로 재편하고 다수의 국민들을 진보진영으로 결집시킬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의 반 수 이상이 사민주의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 사민주의는 한국적 권력자원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고 진보진영은 이러한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앞으로 지속가능하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적 지형을 혁파할 수밖에 없는데 사민주의가 현재의 보수독점체제를 혁파하고 진보/보수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노선이라는 측면에서 사민주의는 매우 의미가 큰 것이다.

4. 사민주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 / 보수체제로의 재편은 사민주의만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민주의를 토대로 하는 구체적인 국가비전과 이러한 국가비전에 걸맞는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선보이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당내 사민주의자들이 사민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당 내외를 아우르는 활동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당원들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이들을 추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 없이 당위론적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 아쉽다.

예를 들면 이미 중도개혁세력들은 사회투자국가를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국가비전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사민주의자들은 이러한 사회투자국가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 왜 그것이 홍시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처럼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인데 어떤 사민주의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없지만, 여전히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를 내세우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정당화한다면 그건 한 참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일 뿐이다.

이미 소련은 해체되었고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21세기이다. 더욱이 서구의 전통적 사민주의가 변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당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민주의인지 구체적인 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만 주장한다면 동어반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당내 사민주의자들은 중도개혁세력들의 사회투자국가에 대응할 수 있고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한국적 사민주의에 대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이미 당내에서 제기되었던 사회연대국가와 같은 국가비전을 지지하면서 사민주의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외화시켜 나가면서 당원들과 대중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 사민주의 논쟁이 생산적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한국적 사민주의의 비전과 그 하위 정책방향에 대한 논의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논쟁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당내 사민주의자들이 고민했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실체 없는 ‘유령 사회주의’를 넘어 · 이념 아니라 정파 리더십이 문제다
· 사회주의 이상 없이 사민주의 불가능 · ‘폭력혁명’ 반대하면 ‘의회주의’ 뿐
 
2007년 11월 30일 (금) 07:52:50 redian@redian.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화수첩] ‘오래된 미래’ 씁쓸한 개정판

손제민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 12 03


최근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공식 한국어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왔다. 책은 예의 재생용지가 아니라 빳빳한 종이와 두툼한 하드커버로 돼 있다. ‘공식 한국어판’을 낸 곳은 중앙일보 산하 출판사인 ‘중앙북스’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이 책은 10년 전 녹색평론사에서 소개됐다. 인도 북부의 ‘라다크’라는 때묻지 않은 작은 마을이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파괴됐는지 비판적으로 보여준 책이다. 그 사이 이 책은 20만~30만부 팔리면서 한국 생태운동의 고전이 됐고, 녹색평론사의 대표 도서로 자리잡았다. 어떻게 출판사가 바뀐 것일까.

연유는 이러하다.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씨(전 영남대 교수)는 1996년 저자의 허락 하에 이 책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피차 생태운동을 하는 사람들로서 법적인 계약서는 필요 없다고 여겼다. 여기엔 녹색평론사가 상업적 출판사가 아니라는 점과 호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생태학자인 김종철씨에 의해 번역·소개된다는 점을 반겼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서 ‘오래된 미래’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저작권 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녹색평론사는 그동안 인세에 준하는 돈을 부정기적으로 호지에게 보냈다. 하지만 책이 의외로 많이 나간 사실을 안 호지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벌여놓은 활동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성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환경재단 관계자 등에게 혹시 책을 새로 내려면 어떤 출판사가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 호지는 중앙북스를 알게 됐다.

호지는 이후 그의 ‘오랜 친구’ 김종철씨(호지는 그를 ‘솔메이트’라 부른다)에게 다른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 맺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통보한 것이어서 붙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종철씨에게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은 고심의 산물이다. 이 책의 원제는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다. 일본에서는 ‘라다크, 그리운 미래’로, 프랑스에서는 ‘개발이 빈곤을 낳을 때’로, 독일에서는 ‘라다크의 매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김씨가 붙인 ‘오래된 미래’는 이후 한국 생태운동의 상징어가 되었다. 한 출판사가 이 이름을 딸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이 책의 인기 뒤에는 제목 덕도 있었던 셈이다.

‘공식 한국어판’은 아무런 협의 없이 앞서 녹색평론사에서 펴낸 책의 제목을 그대로 취했다. 중앙북스의 관계자는 “‘Ancient Futures’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 외에 나올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호지 여사는 여전히 김종철 선생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그분이 하시는 활동에도 공감한다. 결별이 안타깝긴 하지만 호지 여사는 라다크에서 펼치고 있는 사업에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정식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양 분들은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공식 한국어판’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봤다. 당연하겠지만, 예전 것보다 번역도 더 깔끔한 것 같다. 하지만 수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오래된 미래’를 사랑했던 독자로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반(反)개발주의’의 가치가 대자본이 소유한 출판기업에까지 확산된 것을 두고, ‘이제 대안적 가치가 대자본 또는 주류사회에까지 당당히 진출했다’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손제민 기자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2001년도판인데, 240페이지 정도다(초판본은 200페이지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출간했다는 중앙북스판은 364페이지라고 나와 있다. 아마도 라다크에 관한 사진이나 자료들이 추가되었으리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7-12-04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씁쓸하군요. 제목이 주는 힘도 컸고, 재생지 특유의 친자연적인 느낌도 좋았었는데...

내오랜꿈 2007-12-04 09:49   좋아요 0 | URL
네에, 기분이 좀 '꿀꿀한' 소식입니다.

푸하 2007-12-09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사건)에 씁쓸해하실 분이 많을 것이란 기대에 희망을 걸고 인사드립니다.^^;

내오랜꿈 2007-12-10 12:27   좋아요 0 | URL
즐거운 한 주 맞이하세요.^^;
 

헝가리와 영국과 칠레를 이어주는 노래의 기억
빅토르 하라 - <선언>(1974)

장석원 기자
출처 : <레디앙> 2006 05 22


   
"nueva cancion chilena"
19??
.
1 Chile herido INTI-ILLIMANI    
2 Las últimas palabras APARCOA    
3 Manifesto VICTOR JARA    
4 Vientos del pueblo ISABEL PARRA    
5 Canción al partido APARCOA    
6 Compañero presidente QUILAPAYUN    
7 La segunda independencia INTI-ILLIMANI    
8 Ya no es tiempo de esperar ISABEL PARRA    
9 Aquí me quedo VICTOR JARA    
10 El rojo gota a gota irá creciendo QUILAPAYUN    
11 Cuando amanece el día ANGEL PARRA    
12 Alerta pueblos del mundo HECTOR PAVEZ    
13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QUILAPAYUN 
 
레코드 커버 앞면에 적혀있는 <칠레의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 chilena>라는 앨범 제목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커버의 뒷면은 그냥 하얀 백지다. 하다못해 수록곡의 목록조차 적혀있지 않다.

수록곡은 레코드를 꺼내 가운데에 붙어있는 라벨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라벨에 붙어있는 앨범 제목은 또 커버의 그것과 다르다. 라벨에는 <칠레 투사들Chile Combatiente>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이 제목을 단서로 수소문해 본 결과 1975년에 프랑스에서 발매된 레코드 <칠레 저항의 노래들Chansons De La Resistance Chilienne>과 내용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프랑스에서 발매됐던 음반을 누군가가 다시 찍어낸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 ‘누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하얀 백지인 앨범의 커버 뒷면 구석에 보면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Zrinyi Nyomda, Budapest"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마지막 단어는 쉽게 해독이 된다. ‘부다페스트’ 이 레코드가 헝가리와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앞의 두 단어는 또 한참동안 수소문한 끝에 헝가리 사회주의 정권시절부터 존재한 출판사의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때 아닌 탐정놀이 끝에 헝가리의 출판사가 프랑스에서 발매된 앨범을 자국에서 다시 찍어낸 레코드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다만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프랑스 원본이 1975년에 나왔으니 그 이후라는 것만 짐작이 된다. 발매한 목적도 알 길이 없다. 당시 헝가리의 국영레코드회사에서 제작하지 않고 왜 ‘출판사’가 이런 레코드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레코드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레코드가 품고 있는 노래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따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 노래를 통해 민중의 계몽과 연대, 사회변혁을 꿈꿨던 칠레의 ‘누에바 깐시온’운동은 해외에서도 유명했고, 또 1973년 칠레 쿠데타 이후 해외로 망명한 누에바 깐시온 가수들이 꾸준히 음악활동을 했기 때문에 제3세계 음악 답지 않게 잘 알려져 있다.

또 ‘문화운동’이 발달해 있던 칠레답게, 쿠데타 이후 칠레의 반독재운동과 망명객들을 지원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설립된 ‘칠레연대기구’들이 이 노래들을 음반으로 제작해 재정사업을 벌였던 것도 칠레의 노래와 가수들이 널리 알려지는데 한몫을 했다.

비록 프랑스에서 원본을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이 헝가리의 레코드는 칠레의 ‘누에바 깐씨온’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들만을 담고 있다. 쿠데타 이후 칠레 바깥에서 복각된 레코드들이 대부분 한 가수의 노래를 모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처럼 누에바 깐씨온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경우는 보기가 드물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빅토르 하라와 누에바 깐씨온의 대모 역할을 했던 비올레타 파라의 딸과 아들인 이사벨 파라와 앙헬 파라, 그리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민중가요 노래패인 인티 일리마니와 퀼라파윤의 노래들이 한 장의 레코드에 들어있다. 선곡은 누에바 깐씨온의 서정적인 면보다는 ‘투쟁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 실려 있는 대부분의 곡들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에 칠레 민중연합의 집회나 모임에서 자주 불려지던 노래들이다.

그중에서도 칠레 민중들이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담아 불렀던 “대통령 동지compañero presidente”, 민중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한 찬가인 “당을 위한 노래canción al partido”, 그리고 칠레 민중운동의 주제가였던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는 쿠데타로 인해 좌절된 희망과 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들이다. 다만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를 지지하는 좌파 정당 연합체인 “민중연합”의 상징곡으로 사용됐던 "승리venceremos"가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 * *

   
Victor Jara
"Manifesto"
1974년 발표
.
1. Te Recuerdo Amanda
2. Canto Libre
3. Aqui Me Quedo
4. Angelita Huenuman
5. Ni Chicha Ni Limona
6. La Plegaria A Un Labrador
7. Cuando Voy Al Trabajo
8. El Derecho De Vivir En Paz
9. Vientos Del Pueblo
10. Manifesto
11. La Partida
12. Chile Stadium
 
누에바 깐씨온을 대표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빅토르 하라였다. 그와 함께 노래 운동을 펼쳤던 동료들이 이유야 어찌됐건 살아남았던데 비해 그만이 쿠데타 세력이 민중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을 학살한 칠레 스타디엄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음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누에바 깐씨온이라는 하나의 문화운동이 예술과 정치와 민중이라는 요소들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고 또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꿰뚫고 있던 지도자였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쿠데타 정권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빅토르 하라 만큼은 살려둘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하라의 부인인 조안 하라는 영국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을 하라로 바꾸면서 이미 자신을 칠레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취급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조안 하라는 추방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출국이 허용됐다.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그는 남편의 녹음 원본 일부를 짐 속에 숨겨 반출했다.

빅토르 하라의 오리지널 녹음 테이프들은 당시 군사정권의 제거대상 1호였다. 빅토르 하라는 생전에 3곳의 레코드 회사에서 앨범을 제작했는데 그중 외국자본인 칠레EMI는 쿠데타 세력이 요구하기도 전에 빅토르 하라의 녹음을 파기해버리는 기민성을 보였다.

이대로 놔두어서는 남편의 분신과도 같은 노래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조안 하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녹음 테이프들을 반출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다큐멘터리 <칠레 전투>를 제작한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도 쿠데타 정권의 눈을 피해 칠레에서 촬영한 필름을 조금씩 해외로 반출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렇게 어렵게 반출된 녹음을 가지고 1974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음반이 <선언Manifesto>이다. 쿠데타로 칠레에서 빅토르 하라의 녹음들이 파기된 이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의 레코드가 꾸준히 제작됐지만 대부분 레코드 자체를 복각하거나 라이센스를 통해 제공된 녹음 복사본에 기초하고 있다. 빅토르 하라의 오리지널 녹음으로 제작된 앨범은 이 <선언> 뿐이었다.

물론 이 레코드의 가치는 오리지널 녹음으로 제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녹음을 반출한 조안 하라와 칠레의 민중 투쟁을 잊지 않고 현지의 반독재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영국의 진보세력들의 존재가 이 앨범을 소중하게 만든 것이다.

또 빅토르 하라가 쿠데타군이 수용소로 사용한 칠레 경기장에 갇혀 있는 동안 감시의 눈을 피해 쓴 마지막 유고시 “칠레 스테디엄”이 수록돼 세계에 알려진 것도 이 레코드를 통해서다. 물론 고인이 된 빅토르 하라의 육성이 아니라 부인인 조안 하라의 목소리로 녹음돼 있다.

앨범 커버 뒷면에는 영국의 좌파 시인이며 극작가인 애드리언 미첼이 빅토르 하라에게 바치는 송시가 적혀있다. 2년 뒤인 1976년에는 미국 민중가요의 전설인 우디 거스리의 아들인 알로 거스리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남미의 위대한 영혼의 죽음을 추모하기도 했다.

<선언>에는 앞서 이야기한 유고시 “칠레 스타디엄”을 제외하고 11곡의 노래가 들어있다. 이중 “선언Manifesto”,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인 “내가 머무는 이곳Aqui Me Quedo” 두곡은 헝가리 레코드에도 들어있다. “민중의 바람Vientos Del Pueblo”은 헝가리 레코드에서는 이사벨 파라의 녹음으로 들어있다.

이외에도 빅토르 하라를 대표하는 곡인 “아만다를 기억하며Te Recuerdo Amanda”가 역시 앨범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공장으로 향하는 두 젊은 노동자 마누엘과 아만다를 통해 칠레의 노동계급을 전체를 노래하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줬다. “평화롭게 살 권리El Derecho De Vivir En Paz”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시각을 칠레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로 돌렸던 노래다.

* * *

칠레가 민주화 되면서 외국을 떠돌던 망명 정치인들과 예술인들은 대부분 칠레로 돌아갔다. 조안 하라도 칠레도 돌아가 “빅토르 하라 재단”을 건립했다. 빅토르 하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칠레 스타디엄도 2003년 빅토르 하라 경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민주화의 성과였다.

조안 하라가 재단을 건립한 것은 죽은 남편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유산을 칠레의 민중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녹음을 복원하는 게 급선무였다. 재단의 노력으로 쿠데타 후 파기됐던 그의 녹음들은 대부분 복원돼 지난 2001년 8장의 CD로 재구성됐다. 다국적 거대기업인 원뮤직 인터내셔널이 제작과 배급을 맡았다는 것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 CD들을 통해 그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녹음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방송에 출연해 부른 녹음이나 쿠바에서의 공연 실황들이 새롭게 발굴되기도 했다.

이 복원작업에는 빅토르 하라가 칠레의 EMI를 통해 발표한 녹음은 포함돼지 않았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자 먼저 녹음을 파기했던 이 대자본은 재단이 복원한 CD들이 시장에 선보이자 즉각 EMI시절의 빅토르 하라의 녹음들을 <Victor Jara 1959-1969>라는 제목의 CD 두장짜리 앨범으로 복원해 내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Manifesto - VICTOR JAR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회주의 이상 없이 사민주의 불가능
[최병천에 답함] 엄밀하지 않고, 사려깊지 못한 질문들

김종철 / 전진 집행위원장
출처 : <레디앙> 2007 11 27


먼저 답변이 늦어진 점 죄송하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할 일이 많았고, 또한 이 논쟁이 대선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약간은 현실과 동떨어진 논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니 좀 늦어지게 되었다.

전문가들 참여 토론 수준 높여주기 바란다

한가지 전제를 하고 넘어가자면, 사회주의-사민주의 체제 논쟁과 같이 주요한 논쟁은 최병천 동지(이하 존칭 생략)나 필자와 같은 활동가들이 지나치게 폭넓게 가져가기에는 부담이 되는 논쟁이다. 필자는 이러한 토론에는 가급적 주요한 전문가들이나 이론가들이 참여하여 토론의 수준을 높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사실 필자와 같은 활동가는 지금까지의 연구와 탐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필자와 최병천은 2006년 지방선거에 함께 출마한 적도 있는 대중정치운동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적 과제까지 자신의 과제로 가져간다는 것은 한국 진보운동의 발전에서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덧붙여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진보적 이론가, 지식인들도 필요하다면 이 토론에 개입해주어 토론의 수준과 <레디앙> 독자들과 관심있는 사람들의 이해를 올려주었으면 한다.

사민주의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핵심은 사회주의

최병천이 지난 기고에서 필자에게 물었던 다섯 가지 문제에 대하여는 마지막에 답변을 하기로 하겠다. 글의 시작은 조금은 구체적인 논의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먼저 최병천과 독자들께 한가지 질문을 하고자 한다. 한 사회의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주요한 지표로서 지니계수가 있다. 이 지니계수는 0부터 1사이의 값을 가지는 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것이고,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민주의의 대표적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 핀란드, 독일의 지니계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정답은 '세금을 떼기 전에는 우리나라보다 높고, 세금을 뗀 후에는 우리나라보다 낮다'는 것이다.

필자가 몇몇 자료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비록 비교시점의 일정한 차이는 있지만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세금을 떼기 전에는 0.449이고, 세금을 떼고 나면 0.218이 된다. 핀란드의 경우는 0.379와 0.209이고, 독일의 경우는 0.395와 0.249이다.

한국의 경우는, 2000년 통계에 따르면 0.374와 0.358이 된다. 달리 말하면 사민주의 국가들이 세금을 떼기 전에는 한국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민주의 국가 세금 떼기 전엔 한국보다 더 불평등

   
  ▲정부의 실업급여 삭감에 항의하는 스웨덴 노총 조합원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 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높은 세금과 그것을 통해 달성되는 주요 사회서비스의 무상제공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 서비스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교육, 의료, 주택, 보육, 노후보장 등이 사회주의적 시스템으로 만들어져있다는 사실이다.(물론 독일의 의료는 조금 복잡한 체제이지만)

만약 한국에서 현재와 같은 교육, 의료, 보육 등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세금만 스웨덴처럼 많이 걷어서 지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뻔하다. 그렇게 증세된 재원이 고스란히 교육자본, 대형의료자본, 사적보육자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여 만약 오늘날의 스웨덴 사회가 세금제도는 유지한 채 교육, 의료 등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걷어내면 맞이하게 될 결과와 동일한 것이다.

즉, 사민주의 국가를 도드라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높은 세금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높은 세금이 민중의 권익을 신장시켜주는 제도, 즉 사회주의적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적 이상이 없으면 성립이 불가능한 체제다. 역사와 현실이 모두 그것을 입증한다.

그런 면에서 잠깐 한마디만 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공약 중에 대학평준화, 국공립화, 공공의료 확충 방안 등이 부각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제 사회주의적 개혁은 민중들의 삶에 이미 가장 절실한 요소가 되었다.

스웨덴 사민주의, 그 계급타협 모델의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안사회를 희구하고, 그 대안사회가 자본주의의 운영원리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나 경쟁원리, 시장만능주의와는 다른 사회운영원리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그런 것이 갖춰졌을 때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자본주의와는 또 다른 사회체제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체제가 꼭 가져야 할 요소가 있는 데 그것은 ‘불가역성’이라는 요소다. 마치 봉건시대에 왕조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함으로써 정치영역에서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이것이 ‘불가역성’을 가지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는 자본주의의 운영원리에 대해 ‘불가역적’인 사회운영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며, 이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경제 영역의 민주주의를 뜻한다. 이것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강령이다.

필자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바가 있는데, 그 ‘민주주의’는 단순히 급진적 사회주의를 순하게 보이기 위해 장식품으로 단 수식어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필자에게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실내용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각설하고, 이러한 ‘불가역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민주의 체제가 이룩한 성과와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민주적 사회주의

사민주의 모범국가인 스웨덴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신정완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스웨덴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지 않지만, ‘어떤 자본주의가 좋은가’하는 문제의식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사민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타협을 전제로 한다. 즉, 타협적인 자본주의 체제인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지난해 야당이 되긴 했지만, 1932년 집권한 이후로 약 10년 가량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권력을 놓쳐본 적이 없는 정당이다.

그런 사회라면 사민당이 추구한 사민주의적 개혁은 대부분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것인데, 그러한 사회에서조차도 자본가들의 권력은 온존하였고 오히려 강화되기조차 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1970년대 스웨덴 모델에 급격한 위기가 닥쳤을 때 스웨덴 노총(LO)이 주도하고 사민당이 형식적으로 추진한 사회주의적 프로젝트인 임노동자기금이 자본가와 보수세력의 반대로 실패하면서 스웨덴 사회는 급격한 우경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본가의 강력한 저항과 노동자 회유전략은 노동자들마저 분열시켜 스웨덴 노동운동의 오랜 전통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즉 연대임금제도를 해체시켰고, 스웨덴 노동운동의 고수익 노동자층이라 할 수 있는 금속노조(Metall)가 총연맹(LO)을 제치고, 금속부문 사용자대표(VF)와 별도 교섭을 가지게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로 치자면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분열이 가시화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각종 사회서비스의 민영화, 공적연금 운영에서의 시장원리 도입 등도 실행되었다.

사민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러한 스웨덴 모델의 부침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자본의 권력이 온전하게 보존됨으로써 결국 신자유주의에 끊임없이 경도되고 있는 사민주의 국가의 오늘을 말해 준다.

즉, 사민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일부 사회보장 영역에서의 사회주의적 개혁을 제외하고는 무엇인가 불가역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고, 이것의 결과가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경도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1970년대 그들이 시도하였던 사회주의 프로젝트인 임노동자기금이 성공하여, 오늘날 스웨덴 기업 대다수가 자본가의 수중에서 노동자에게로 넘어와 있다면 지금 이러한 부침을 겪고 있겠는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임노동자 기금이 노동자 자주관리와 유사한 형태인 만큼 유고의 자주관리 사회주의가 겪었던 것처럼 새로운 위기를 맞았을 수도 있다. 즉, 경제운영의 권한을 넘겨받은 대기업 노동자 집단과 지방자치코뮌이 전체 인민의 이해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를 앞세우는 이기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실업의 만연, 지역별 격차의 확대 등 악순환이 시작됐고 이것이 심화되어 결국 파탄을 맞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조차도 기업들의 이러한 이기적 행동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도입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자주관리 사회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해관계자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 대한 대안은 끊임없는 모색 속에 열려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방향으로 사회를 개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를 조금 고쳐서 쓰는 데 안주할 것인가 그 차이에 있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더 많은 토론을 기약하며

오늘은 지면의 한계상 사민주의 체제에 대한 간략한 평가로 마치고자 한다. 앞으로 여러 가지 토론이 있을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시장에 대한 평가, 자주관리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국유화에 대한 평가 등 말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필자와 최병천만의 토론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할수록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므로,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라며 최병천이 토론의 시작에 필자에게 물은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질문 자체가 엄밀해야 된다

첫째, PT독재를 인정하는가. 이 문제에 최병천이 자문자답하면서 ‘본인은 다당제를 인정한다’고 답변하였는데 필자는 ‘모든 인간은 정치사상과 결사의 자유가 있으므로 다당제를 인정한다’고 답변하겠다.

그런데 조금 사족을 달자면 오늘날 자본주의가 다당제라는 면에서는 부르조아 민주주의라 하겠으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전제로 하는 사회라는 점에서는 부르조아 독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PT독재와 PT민주주의 역시 대립될 하등의 이유가 없고, 최병천의 질문은 ‘다당제를 인정하는가’로 수정되어야 한다.

오늘날 그 질문에 일당독재를 해야 한다고 답할 사회주의자가 어디 있겠는가. 극소수를 제외하고 말이다. 사회주의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대중이 듣기에 아름답지 못한 ‘독재’란 용어를 쓸 필요는 없겠으나, 이론적 연구를 필요로 하는 질문이라면 질문 자체가 엄밀해야 한다.

둘째, 권력획득방식에서 폭력혁명론에 대한 질문은 좀 사려 깊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사회를 꿈꾸는 운동을 폭력적이라고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질문이다.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현존하는 모든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이..”라고 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사회주의 변혁이 그렇게 폭력적이었는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성공한 것은 비열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사회주의자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던 결과였고, 식민지 수탈자들에 대해 누구보다 결연히 그들이 맞서 싸운 결과가 아니었는가.

대안사회 운동 폭력적이라고 잠재 규정하는 질문

그들의 투쟁은 인민들의 염원 그 자체였다. 사회주의자는 늘 평화적으로 민중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걸 폭력적으로 탄압해온 것은 오히려 항상 자신들이 만든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요구해온 세력이다. 그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과거 칠레처럼 일시적인 정세에 의해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제국주의와 구 지배세력의 폭력적 사보타주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합법적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과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배세력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셋째부터 다섯째 질문은 비슷한 질문을 나눠서 한 것 같아서 한꺼번에 대답하겠다.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소유를 장려해야 한다는 답변이 적절하다. 이는 이미 민주노동당 강령에도 명시돼 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사적기업과 조금 큰 규모의 협동조합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이 개입된 사회적 기업, 국유기업 등 기업의 성격과 규모를 나눠서 다양한 소유를 인정하되 어떠한 경우라도 민주적 운영원리에 어긋나는 소수의 지배는 배척해야 한다.

또한, 시장은 현재로서는 인정하되 그 폭력적 성격과 불평등한 결과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 대체질서가 가능한 지를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 또한, 소련과 같은 중앙집중계획경제, 혹은 명령형관리경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계획이 필요 없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국가는 여전히 한 사회의 균형과 바람직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하며, 이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나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고, 지금까지의 나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해보고자 한다.

사민주의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들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타협의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이 없이는 애초부터 사민주의는 형성조차 불가능했다. 오늘날 사민주의가 맞고 있는 위기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를 포기하고, 계급타협에 안주하며, 불가역적 사회변화를 추진하지 못했던 역사의 필연적 결과이다.

그 온건하다던 독일 사민당이 최근 당 강령과 정책에서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한층 강조하며, 좌파 정당으로의 선회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한국의 사민주의자 동지들도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주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오늘 필자가 사민주의자 동지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결론이다.”

 
     관련기사
· 실체 없는 ‘유령 사회주의’를 넘어 · 이념 아니라 정파 리더십이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