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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멈출 수 없다면 투쟁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투쟁의 대상을 모를 땐 삶의 다짐 자체가, 삶의 지속 그 자체가 투쟁일 수도 있는 것. 투쟁은 길을 묻지 승리의 가능성을 묻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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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 절망의 밑바닥을 차오른 영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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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케치
댓글(
2
)
내오랜꿈
(
) l 2007-10-30 00:51
https://blog.aladin.co.kr/729846193/1664163
절망의 밑바닥을 차오른 영혼의 노래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26
김일주 기자
» 〈밥 말리〉
〈밥 말리〉
스티븐 데이비스 지음·이경하 옮김/여름언덕·1만5000원
당김음이 담뿍 들어가 평화롭게 비틀거리는 듯한 리듬에 진중한 메시지를 실어내는 레게는 고통과 저항의 음악이다.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평전이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의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고통은 창조적이어야만 한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탄생시켜야만 한다.”
서아프리카에서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온 노예들은 투쟁 끝에 1838년 해방을 맞았다. 이들은 세인트앤에 ‘자유의 마을’을 세웠고, 이곳에서 밥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밥은 1945년 쉰 살에 가까운 영국계 육군 대위와 ‘아름답고 대담한’ 열여덟 흑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밥의 외할아버지는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을 다룰 줄 알았고, 외삼촌은 자메이카 토속 음악인 쿼드릴 밴드에서 바이올린과 기타, 밴조를 연주하는 전문가 수준의 음악가였으며, 외할머니의 노래는 들판을 가로질러 뙤약볕 노동에 지친 이들을 어루만졌다고 하니 자메이카 토속 음악에 흠뻑 젖은 유년기를 보낸 셈이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어머니를 따라 열두 살이 되던 해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서부의 빈민가 트렌치타운에 정착한 그는 그곳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날카로운 눈빛에 세상을 경멸하는 듯한 입술을 지닌 밝은 피부의 비쩍 마른 십대 소년”은 옆집 아이와 어울려 전기선에서 뽑아낸 구리선 기타줄에 통조림 깡통을 덧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연습에 열중했다. 열다섯 살, 다른 자메이카 소년들처럼 학교를 그만둔 밥은 생계를 위해 용접 공장 수습공으로 취직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노래 연습을 했다. 쇳조각이 왼쪽 눈에 튄 사고 뒤에는 공장도 그만두고 노래에 전념했다. 그렇게 노래에 열중하던 소년들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지은이는 “그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이 지난 세기의 가장 놀랍고 주목할 만한 문화 현상인 라스타파리(자메이카 토속신앙) 운동과 레게를 낳은 (밥 말리의) 반란의 영혼에 불을 지폈다”고 적었다.
레게 음악가 ‘밥 말리’ 인생 궤적 살펴
떠돌이 생활 등 거친 삶이 ‘저항’잉태
음악가 이상의 영향력…시대 상징으로
열여덟이 된 그는 어머니가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 간 사이 여기저기 얹혀 살다가 “거리의 떠돌이, 트렌치타운의 떠돌이, 킹스턴 서부 지역의 떠돌이”가 됐다. 남의 집 주방 귀퉁이에서 잠을 잤고, 다른 쪽 귀퉁이에서 잠을 자던 청년과 함께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꼬르륵 소리를 잠재우려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노래 <노 워먼 노 크라이>의 가사에는 ‘모닥불을 피워주는 조지’가 나오는데, 조지는 당시의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였다.
1962년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그 다음해 밥은 함께 노래하던 친구들과 3인조 보컬 그룹 ‘웨일링 웨일러스’를 결성했다. 그들은 “외국의 일자리에 부모님을 빼앗긴 자메이카의 젊은이들,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는” 그들에게 노래로 말을 건넸다. 영국에서는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그들의 새로운 세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 〈밥 말리〉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아들’ 크리스 블랙웰이 이끄는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맺으면서 밥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1978년에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자메이카 수상과 야당 당수를 무대로 불러내 화해를 주선하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1981년 36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해 전설로 남기까지, 그는 경쾌하고 단순한 리듬에 전세계 흑인들의 단결과 투쟁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밥 말리-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는 밥 말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방대한 인터뷰, 자메이카의 현대사와 당시 세계 청년문화 흐름까지 끌어들여 한 인물의 삶을 빈틈없이 구성한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아쉽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여름언덕 제공
내오랜꿈 ---------------------------------------------------------------
중년의 백인 아버지와 10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메이카 트렌치타운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밥 말리는 플래티넘을 기록한 뮤지션 그리고 레게의 최고스타가 되었다. 또한 그의 음악을 더욱 빛나게 했던 평화, 정의, 자유, 형제애를 부르짖은 저항정신으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다.
밥 말리는 Bunny Livingston, Peter McIntosh(후에 각각 Bunny Wailer, Peter Tosh로 알려짐)와 함께 16세에 가수로서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Drifters, Impressions, Sam Cooke, 컨트리싱어 Jim Reeves와 당시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62년에 그는 Wailing Rudeboys로 알려진 Teenagers와 함께 첫번째 음반인 "Judge Not"을 발표했다. 이후, 팀명으로 Wailers를 채택하고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평범하지 않은 곡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어 자메이카에 서서히 퍼지고 있던 'SKA'비트의 음악을 시도했고, 그래서 "rude boy music"으로 불리기도 했다.
1966년에 밥 말리는 Rita Anderson과 결혼하여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자메이카에서 Rastafarian신앙 (자메이카의 흑인들이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신앙화된 일종의 종교로써 현재 아프리카의 많은 이들이 믿고 있기도 하다.)의 급속한 성장이 그로 하여금 다시 자메이카로 돌아오게 하였다.
SKA, rude boy music과 더욱 발전한 형태인 "rock steady"로 그의 곡들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1973년 이전까지는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가 Island Record에서 그의 첫 음반을 만들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Stir It Up"과 Peter Tosh의 "Stop That Train"이 포함된 "Catch a Fire"를 발표하여 전세계인들에게 처음으로 레게를 소개하게 되었다. 이 음반을 통하여 rock팬들에게 춤을 출 수 있는 새로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열정을 자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음악적 메시지를 담았다.
자신의 Rastafarian신앙과 자메이카 공동체에 대한 중독에 자극받음으로써 밥 말리는 레게를 전파하는 대사가 되었고, 전세계인들은 그의 노래에서 그의 결심, 저항 그리고 정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신념을 담아 Wailers의 첫 미국투어에서 젊은 미국인들에게 그의 이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4년 Peter Tosh, Bunny Wailer와 결별하고 I-Threes(그의 아내 Rita가 포함된 여성보컬트리오)를 조직한 후, 발표되자마자 레게의 클래식이 되버린 "No Woman, No Cry"와 "Lively Up Youeself"가 수록된 아주 뛰어난 명반, "Natty Dread"를 발표했다. 1974년 당시 밥 말리 곡 중의 하나인 "I Shot the Sheriff"는 Eric Clapton이 리메이크했으며 그 곡은 팝 single 1위을 차지하기도 했다. 70년대 말, 밥 말리는 "Rastaman Vibrations"와 "Exodus"가 미국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을 때 또한 "Exodus", "Waiting in Vain", "Jamming" 그리고 "Is This Love"등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트랙을 갖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축구를 무척 즐겨 했는데 1977년 Marley and Wailers의 유럽투어 때 프랑스 기자들과 함께 축구시합을 했다. 경기중에 그는 발에 부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 있던 암세포를 발견했다. 암치료를 거부한 밥말리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투어 했다. 뉴욕에서의 공연을 기념하기 위하여 실황을 담은 "Babylon by Bus"를 발매했고, 뉴욕공연은 레게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라이브공연으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자메이카 Kingston에서 평화를 위한 콘서트와 Boston에서 흑인자유투사를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무리한 투어일정은 그의 건강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었다.
1979년 "Survival"을 통해서 이전과 달리 그의 정치적인 색채를 공격적으로 표현했다. 1980년 다시 투어에 나선 그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다가 쓰러졌다. 암은 그의 뇌와 폐 그리고 심장에까지 퍼져 있었고 8달 후 그는 사망했다.
Trenchtown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사나이는 그렇게 전세계의 음악 대사로서 인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갔다.
위의 글은 밥 말리의 팬홈피(http://www.bobmarley.zc.bz)에서 인용한 것이다.
레게(reggae)란 무엇인가? 흔히들 정의되는 것에 따르면 미국 흑인들의 노예노동으로부터 블루스(Blues)가 생겨났고, 카리브해 자메이카 흑인들의 한과 설움에서 레게(Reggae)가 생겨났다고 한다. 곧 레게는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자메이카에서 일기 시작한 음악 형태로, 원래는 1950년대말 자생적으로 발전한 멘토(mento), 스카(ska) 등의 자메이카 특유의 토속적인 리듬에 미국으로부터 전해진 흑인음악 리듬 앤 블루스가 혼합되어 록스테디(rock steady)로 변형되었고, 여기에 관악기 소리가 첨가되어 개발된 대중음악의 한 장르인 것이다.
그러나 이 레게음악은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카리브해의 흑인들, 이른바 '아프로 캐러비안'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백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수백년간 억압과 착취에 시달려온 한과 설움을 딛고 '백인들의 지배를 벗어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과 연결되어 있는 것. 이 절실한 꿈, 그러나 결코 이루지 못한 아프로캐러비안들의 염원을 밥 말리, 지미 클리프 등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가수들이 음악 속에 담아낸 것이 레게 음악의 정치적 지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레게의 탄생과 발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신현준, <WORLD MUSIC 속으로>, PP127~152를 참조).
따라서 어떻게 보면 레게의 특징은 음악성 보다 저항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귀로 듣기에는 경쾌한 춤곡이지만 그 속에는 출발부터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담고 있는 것. 이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밥 말리는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며 레게가 억눌리고 차별받는 카리브해 흑인들의 저항음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도 레게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한때 '국민가수'로 불렸던 김건모의 "핑계"가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에도 선풍적인 레게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한국의 레게는 출발부터 저항성이 거세 당한 껍데기뿐인 레게였다 할 수 있다. 룰라, 투투가 레게 뮤지션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와 바비 킴(Bobby Kim)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정통 레게를 소개하고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 (최근에 쿤타&뉴올리언스, 윈디시티, 스토니스컹크 등 실력있는 레게뮤지션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긴 하다)
어쨌든 레게는 밥 말리를 떠나서는 절대 논의될 수 없는 음악이다. 이 밥 말리에 관한 꽤 괜찮은 책이 번역되어 나온 모양이다. 읽고 싶지만 한겨레신문 소개 기사의 마지막 문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든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아쉽다."
아래에 링크시킨 곡은 "No Woman, No Cry". 밥 말리 최고의 노래이면서 레게의 정점이라고 하는 노래다. 이 "No Woman, No Cry"는 여러 버젼이 있는데, <LEGEND> album virsion과 "Live" album virsion이 대표적이다. <LEGEND> album virsion은 원래 1974년에 발표한 오리지널 밸범인 <NATTY Dread>에 수록된 곡으로 심플한 느낌이다. 반면 "Live" Album Virsion은 뭔가 비장한 분위기가 흐르는, 슬로우 리듬의 애절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모르고 들으면 전혀 다른 노래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No Woman,No Cry" - LIve Virsion
"No Woman,No Cry" - Album Vi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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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g
2007-11-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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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이라뇨 ㅠ 가장존경하는 스컬형님은 대거즈 시절부터 리얼레게뮤직을 표방한 음악을 계속하셨구요 쿤타형님도 2002년부터 집시의 템버린으로 활동하시면서 꾸준히 레게음악 하셨는걸요
최근이라뇨 ㅠ
가장존경하는 스컬형님은
대거즈 시절부터 리얼레게뮤직을 표방한 음악을 계속하셨구요
쿤타형님도 2002년부터 집시의 템버린으로 활동하시면서
꾸준히 레게음악 하셨는걸요
내오랜꿈
2007-11-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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