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생태] ① 248km 전 구간 최초 보고서

녹색연합 공동기획-DMZ 2007

▣ 출처:<한겨레21> 재678호 2007/09/20
▣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곳에는 철조망이 있었다. 그 너머 벌판에는 그리 크지 않은 잡목들이 우거진 너른 들이 있었고, 들판 한가운데서 엉키고 흩어져 흐르는 내가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옛 도시의 폐허 너머에서 거친 산맥이 시작돼 북녘 땅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 (사진/ 서재철)


사람이 닿지 않는 산과 계곡을 흐르는 개울은 차고 달았다. 그곳에는 산양과 멧돼지와 노루와 삵이 산다. 군 초소와 그 초소를 잇는 철조망은 강과 산맥의 흐름을 가로막지 못했다. 철조망 너머 보이는 북의 군인들은 모자도 없이 서성이고 있었고, 남의 군인들은 때때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카메라를 막았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한 풍경은 무료해 보였다. 철조망 건너 갈 수 없는 그 땅의 이름은 비무장지대(DMZ)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를 할퀴고 간 전쟁과 뒤이은 냉전의 유산이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을 맺은 미국과 북한은 임진강변에 세워진 표지물 0001호와 동해안의 1292호를 잇는 길이 248km의 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했다. 그 선으로부터 남(좀더 정확히 말해 미국이)과 북이 각각 2km씩 후퇴해 너비 4km, 길이 248km의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임진강이 한강으로 소실해 사라지는 서해 언저리에서 시작돼 동으로 248km를 달려 강원도 고성에서 끝난다.

비무장지대에서 남쪽으로 5~15km 이르는 지점에는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이 설정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민통선 너머에는 마을이 있고, 사람이 살고,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낳는다.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는 것은 유엔사다. 한국 정부의 행정력 밖에 있기 때문에 조사단이 출입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비무장지대 보고서는 비무장지대 내부 답사가 아닌 민통선 답사다.



지난해와 올해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두해에 걸쳐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따라 248㎞ 전 구간을 빠짐 없이 답사했다. 철책선 전 구간을 따라 이뤄진 답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걸으며 바라보는 대상은 손에 잡히진 않지만, 지금까지 그렇게라도 바라보고 진단한 적은 없었다.

비무장지대는 무장하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평화는 더 절실하고, 자연은 더 눈물겹다. “비무장지대/ 너희는 백두산까지 밀어붙여라/ 우리는 한라산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비무장지대 만세 만세 만세”(늦봄 문익환 ‘비무장지대’)

DMZ 248km 보고서

▶[제1부-생태] 지상에서 가장 이상한 숲이 있습니다
▶[제1부-생태] 이 역동적인 온대림을 보았는가
▶[제1부-생태] DMZ 생태지도- 서부 습지지역
▶[제1부-생태] DMZ 생태지도- 중부 내륙지역
▶[제1부-생태] DMZ 생태지도- 중·동부 산악지역
▶[제1부-생태] DMZ 생태지도- 동해안권
▶[제2부-사람] 자력갱생, 그 잔인한 40년
▶[제2부-사람] 이 험한 곳까지 오셨네, 땅 투기
▶[제2부-사람] ‘평화관광’ 같이 가실래요?
▶[제3부-미래] 시린 역사마저 보존하라
▶[제3부-미래] NLL을 넘어 평화수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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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미래] ② NLL을 넘어 평화수역으로

남북을 가르고 남한 내부를 가르는 해상의 DMZ,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 출처:<한겨레21> 제678호 2007/09/20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몇 년 전 백령도에 간 적이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 이상을 달렸다. 참으로 멀었다. 백령도의 언덕에 올라 북쪽 바다를 보니, 너무 가까웠다.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코앞에 보인다. 몽금포타령의 첫머리에 나오는 장산곶도 아주 가깝다. 먼 바닷길이 아니라, 육지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에서 해주로 그리고 장산곶까지 황해도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를 유람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약속한 6·15 공동선언에 합의하기 꼭 1년 전인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교전 사태 때 우리 해군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을 북방한계선(NLL) 이북으로 밀어내기 위해 차단기동을 하고 있다. 서해의 평화는 NLL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정착될 수 있다.(사진/ 국방부)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 의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반도에서 평화가 당장 필요한 곳은 서해다. 1999년과 2002년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남북한은 그동안 해상경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해상경계선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역사적 사실과 냉전시대의 ‘만들어진 기억’ 사이에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념의 믿음으로 기억을 만들어보려 하는 사람들은 북방한계선(NLL)을 말한다. NLL은 남과 북을 가르고, 이제는 남쪽 내부의 이념적 경계선이 됐다.

문제는 NLL이 아니다. 서해 평화 정착이다. NLL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찬반을 떠나, NLL은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분쟁의 씨앗은 정전협정에 있다. 정전협정은 육상경계선, 즉 군사분계선을 명확히 했지만, 해상경계선 문제는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NLL과 관련해 실효적 지배를 강조하는 논거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남북한이 NLL을 합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엔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이문항(미국명 제임스 리)씨가 분명히 밝혔지만, 1953년 7월 군사정전위원회 1차 본회의부터 마지막 회의였던 1991년 2월 459차 본회의까지 유엔사가 ‘북방한계선’을 거론한 적은 없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북한의 서해 해상침투 사건, 납치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해상에서의 도발이 있었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열렸던 모든 회의, 전화, 서신, 그 어디에서도 ‘NLL 침범’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NLL은 합의된 개념이 아니다. 정전협정 15항에 근거해 우리 쪽 인접 해면의 침입을 협정 위반이라고 따진 것이다.

그렇다고 서해경계선 문제를 지금 논의할 수 있을까? 서로가 상이한 경계선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계선을 재확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2006년에 4차 장성급 회담, 그리고 올해에 5차와 6차 장성급 회담을 했지만, 남북한의 견해 차이는 분명하다. 해법의 근거는 결국 1992년에 합의한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 3장 제10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남과 북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협의가 가능한 환경은 포괄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노력이 병행될 때 만들어질 수 있다. 남북 군사당국 간 신뢰를 쌓고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성과를 보일 때, 해상경계선 문제도 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경계선을 확정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이 지역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선 서해 평화 정착은 군사적 충돌 방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 2004년 6월 2차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한은 합의했다. 함정들이 서로 대치하지 않도록 하고, 상대 함정에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으며, 오해를 줄이기 위해 통신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임시방편이지만 군사적 신뢰구축의 첫걸음이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서해경계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이전에는 긴장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현재의 합의를 좀더 구체화하고, 완충수역에서의 물리적 접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주직항로, 왜 안 되나

더 중요한 것은 서해에서 호혜적 이익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공동 어로와 직항로 문제는 현재 상태에서도 풀어갈 수 있다. 서해에서 공동 어로는, 1999년과 2002년의 군사적 충돌이 결국 꽃게잡이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 현재 남북한은 공동 어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기준수역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남쪽은 NLL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고, 북쪽은 NLL 남쪽 지역을 공동어로 구역으로 주장하고 있다. 역시 NLL 문제다. 필자는 지금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가겠다고 우겨서 결국 둘 다 못 가는 형국이다.

북한도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NLL 이남으로 오기를 꺼리고, 남쪽 역시 NLL 밑에 어로한계선을 지정해 우리 어선이 월선하지 않도록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 매년 꽃게철이 되면 남북한은 신경전을 벌이고, 그사이로 중국의 저인망 어선들이 새까맣게 출동해 꽃게를 잡아간다. 이제는 남북한 해군이 힘을 합쳐, 중국 어선들이 오는 것을 막고, 공동 어로를 합의해야 한다. 서해5도 전 해역에 기준수역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시범적인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해 운영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영토, 영토 하는데, 만약 어로한계선 이북수역에 들어가 어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영토가 늘어나는 것이지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공동 어로의 기준수역을 정할 때 신축성이 필요하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우리가 양보하면 마치 북한의 잠수정이 인천 앞바다까지 올 것처럼 얘기하는데, 분명한 것은 공동 어로가 가능한 평화수역에는 당연히 군사적 목적의 함정은 드나들 수 없다.

직항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성강이나 해주 인근 해역에서 모래를 싣고 오는 남쪽 배들은 직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박들이 해주항으로 들어오려면 백령도를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차선모 남북해운협력 북쪽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물류비를 낮춰야 하고, 그러려면 항로를 단축해 운행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선모 대표는 오히려 반문했다. 직항로 문제는 사실 북쪽이 남쪽에 요구하고 싶은 사항이라면서, 해주 직항로 문제를 거론했다. 민간선박에 한정해서 직항로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군함의 통행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협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서해평화경제지대의 창설을 제안하고자 한다. 수산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평화수역, 한강 하구의 공동 개발, 해양평화공원, 그리고 해주항의 개방과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수역은 시범구역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한강 하구 공동 개발은 이미 남북한이 합의했고, 정전협정에서도 민간선박의 운항을 허용했기 때문에,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홍해처럼 해양평화공원을


△ 서해의 평화는 어민들에겐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연평 앞바다에서 한 어민이 잡아 올린 꽃게를 분류하기 위해 뱃전에 쏟아내고 있다.

일제 시기까지 한강은 바다로 통하는 강이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한강은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끊어졌다. 남북한은 이미 2006년 6월 12차 경제협력 추진위에서 한강 하구의 골재 채취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강 하구 개발은 친환경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남북합의문에 공동 개발이라는 포괄적 용어가 있음에도, 골재 채취라는 표현을 쓴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한강 하구는 희귀생물, 습지 등 생태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환경단체들도 이 지역의 생태보전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이제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도 환경과 개발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막대한 양의 토사가 하구로 유입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한강에서 서해까지 배가 다니려면 준설작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이전에 종합 환경조사를 충분히 거치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다. 분단이 준 유일한 선물은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서 환경을 보호한 것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한강 하구 공동 개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해양평화공원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해안 접경수역은 연안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물범과 저어새 등 각종 보호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홍해 해양평화공원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홍해 해양평화공원은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맺은 평화협정의 산물이다. 당시 평화협정에서는 양국의 인접 해면인 아카바만의 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항행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며, 관광 증진을 위한 공동 협력과 해양 생태환경의 보전을 합의했다. 특히 아카바만 산호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해양평화공원을 만든 것이 주목된다. 세계적인 분쟁지역에는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 협력을 추구하며, 함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평화공원이 많다. 한반도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다. 분쟁의 바다 서해에 해양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며, 국제적인 평화관광 지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해군기지가 있는 해주를 평화협력 단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해주만의 생태적 가치를 고려할 때, 해주항만을 환경친화적 공간으로 만들고, 위탁가공 위주의 해상 공단을 조성한다면, 그것이 중국의 연안 지역과 남쪽의 서해 산업단지를 묶는 새로운 황해경제권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개성에서 옹진반도, 해주로 이어지는 육로를 개방해, 이곳을 관광지대로 확장하고 배후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면, 그것은 서해 평화 정착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냉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해를 평화와 공동 번영의 프레임으로 볼 때가 왔다.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서해가 평화의 바다, 공동 번영의 바다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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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미래] ① 시린 역사마저 보존하라

비무장지대는 무장 해제 될 것인가

DMZ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조사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경의선 열차가 개성 시내를 지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DMZ와 민통선 관련 조사도 지지부신한 상태…공유화와 지속적 관리를 위한 제도 마련을

▣ 출처:<한겨레21> 제678호 2007/09/20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오염 없는 피부, 이슬 같아요.”

지난 1991년 10월1일 방송을 타기 시작해 인기를 모은 화장품 업체 아모레의 ‘미로(美露) 화장품’의 광고문구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게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오현경씨의 청초한 모습에,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촬영’했다는 자막과 함께 등장한 것은 이슬을 머금은 채 화사하게 반짝이는 보랏빛 금강초롱이었다. “오염 없는 순수세계에서만 피어난다”는 내레이션은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원시림’, 비무장지대에 대한 세간의 통념과 환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비무장지대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 손이 안 탄곳? 원시림?

“비무장지대를 흔히 사람들의 손이 안 탄 곳, 천혜의 원시림으로 보전된 곳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인간의 손길을 많이 탄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의 말이다. “밤이면 남과 북의 군인들이 매복·수색 작전을 벌인다. 풀이나 나무가 자라 상대편 초소가 보이지 않으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시계청소’란 이름으로 산불을 놓는다. 군인들이 먹고 남은 ‘짬밥’을 먹은 야생 멧돼지는 비만에 걸릴 정도다. 원시림 얘기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산림은 20년생 미만의 어린 소나무와 활엽수가 대부분이다. 숲에 있는 나무의 양을 나타내는 임목축적만 봐도 비무장지대는 1ha당 약 27㎥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평균은 1ha당 70~80㎥에 이른다. 산림환경만 놓고 보면 보존이 아니라 오히려 복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럼 ‘비무장지대의 생태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생태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산불’과 ‘지뢰’라는 두 요인이 비무장지대의 역설적 현실을 가장 극명히 설명해준다. 신 부장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산불을 자주 내다 보니 산림 대신 초지가 많이 발달했다. 멀리서 보면 융단처럼 펼쳐져 있지만, 가까이 가보면 사람 키보다 높은 풀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서식지의 이질성이 클수록 생물 다양성에 좋은 법이다. 이런 식생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비무장지대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가치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게다.”


△ 지뢰의 치명적인 살상력은 역설적이게도 반세기 비무장지대 생태를 보존한 지킴이 구실을 했다. 섣부른 지뢰 제거 작업은 자칫 막대한 생태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생태적으로 비무장지대는 남방계 생물과 북방계 생물이 교류하는 자리에 있다. 지상은 물론 물속까지 철조망을 촘촘하게 쳐놓고 내리 반세기 이상을 살아왔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가로질러 철조망을 쳐놓고, 동과 서를 이어가며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섰다. 게다가 주기적인 군사활동은 생태에 적절한 수준의 교란을 일으켜 비무장지대 전역에 자연상태에선 볼 수 없는 ‘방해식생’을 만들어냈다. 지구상에서 가장 요새화한 한반도의 중허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생태 실험을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셈이다. 비무장지대 보전 대책은 이런 특징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일부 생태전문가들이 “통일이 된 뒤 비무장지대를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철조망을 둘러친 상태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자칫 비무장지대 특유의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손길이 완전 차단될 경우, 비무장지대의 생태계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자연천이를 이뤄갈 것이란 얘기다. 비무장지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생물 다양성과 특이성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비무장지대를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생태계 전반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바뀌어갈 것인지까지를 염두에 두고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인 게다.

비무장지대 도처에 깔려 있어 그 수를 헤아릴 길조차 없는 ‘지뢰’는 또 다른 역설의 주인공이다. 지뢰의 치명적인 살상력은 오히려 생태계를 지켜온 원동력이 됐다. 휴전선에 평화가 찾아온 뒤에도, 지뢰는 계속해서 인간의 발길을 막아가며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지켜줄 것이다. 섣불리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일 경우, 자칫 막대한 생태적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한 생태전문가는 “비무장지대에 매설된 지뢰까지도 비무장지대의 역사성을 일깨워주는 역사적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뢰를 없애면 어떻게 될까

비무장지대가 ‘뼈대’라면 북방한계선 이남과 북한 땅 남방한계 쪽 이북 지역에 자리한 민통선 지역은 ‘살점’에 해당한다. 뼈와 살이 모여 몸을 이루듯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은 한 몸일 수밖에 없는 게다. 김귀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환경생태계획)가 “비무장지대만 놓고 보전대책을 생각하는 것은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보지 못한 때문”이라며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비무장지대 남북 4km만 잘라낼 게 아니라,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을 포함해 야생 동식물 서식지를 하나의 생태 단위로 묶어 보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철원군으로, 연천군으로 갈라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야생 동식물의 삶에 인간이 만들어낸 행정구역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어리석다. 생태계의 연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준환 부장은 “우리나라는 생물 지역이 거의 대대로 이어져온 인문학적인 구역과 비슷하다”며 “영남과 호남이 백두대간으로 구분되듯이,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옛 구획을 회복한다면 인간의 삶과 자연을 동시에 보전해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비무장지대 생태보전 과정은 한반도 역사의 기억을 더듬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반도 전역을 휘감은 변화의 역동은 비무장지대(DMZ)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반세기 이어져온 정전체제는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면서 평화체제를 향해 성큼성큼 발길을 옮기고 있다. 물론 정전체제의 종식이 곧 평화체제의 도래를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전체제에 균열이 가해질수록 비무장지대를 규율해온 군사정전위원회 질서도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 평화는 예비하지 않은 때 ‘도적같이’ 찾아온다는 교훈은 이미 독일의 경험이 보여준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까?

환경부는 지난 2005년 8월 비무장지대(907㎢)는 물론 민통선 이북지역(1370㎢)과 접경지역(6216㎢)을 포괄하는 ‘비무장지대 일원 생태계 보전대책’을 내놨다. 뼈대는 이렇다. 우선 통일 이전엔 비무장지대 남쪽 지역 생태계에 대한 주기적 조사를 하고, 표본을 모아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한다. 이어 통일이 될 경우 자연환경보전법 제2조에 근거해 비무장지대 일대를 2년간 ‘자연유보 지역’으로 지정하고, 이후 전 지역을 생태·경관보전 지역으로 지정하겠다는 게다. 하지만 계획은 초기 단계부터 어그러졌다. 김태식 환경부 자원정책과 사무관의 말이다.


△ 전문가들은 비무장지대뿐 아니라 민통선 지역까지 하나의 생태 단위로 묶어 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왼쪽부터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이사, 김귀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 토지소유권 문제 불거지면 흔들려

“비무장지대 내부 조사는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국방부와 유엔사가 협의를 거쳐 조사계획도 세우고 조사팀까지 구성했다. 하지만 유엔사 쪽에서 안전을 이유로 승인을 내주지 않아 지금껏 기다리고만 있다.” 김 사무관은 “장기적으로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시키는 게 정부의 목표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라도 비무장지대 생태 조사가 필수적”이라며 “우리 쪽 노력만으로는 비무장지대 내부 조사가 어렵다고 판단해 다가오는 남북 정상회담 의제로 제안 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민통선 지역은 어떨까? 김 사무관은 “지난해 파주·연천 지역을 시작으로 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는 민통선 지역에 대한 생태 조사를 5년 계획으로 벌이고 있다”며 “지난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강하구 습지보호지구도 지정했으며, 올해 들어선 강화·김포 지역에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엔 환경·시민단체와 학계, 국회와 국방부·행자부·문화재청 등 관련 부처, 그리고 경기도·강원도 등 지자체가 모여 비무장지대 일원의 생태 보전을 위한 민관공동협의회를 구성했다. 평화·생태공원과 관광사업 추진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민통선과 접경지역 보전·개발 계획이 ‘보전’보다는 ‘개발’에 가깝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비무장지대 보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 보니, 지자체의 ‘의욕’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무장지대는 그렇다 쳐도 정부의 통제권이 미치는 지역인 민통선 지역도 토지소유권과 이용 현황조차 완벽히 파악이 안 된 상황이다. 보전대책은 비무장지대 내부 토지 현황 파악과 남방한계선 경계 측정 등 토지정보와 지적복구를 행자부 주관업무로 구분해뒀다. 하지만 대책이 나온 지 2년여가 지났음에도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지적측량은 예산도 없고, 남방한계선의 정확한 위치 정보조차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게 행자부 쪽의 설명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비무장지대 내부의 토지 현황 파악은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민통선 지역은 아예 보전대책상 토지 현황 파악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비무장지대 일원의 토지소유권 문제가 불거질 경우, 그 보전대책은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토지소유권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국민신탁 모델이 유력하게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이사는 “비무장지대 일대는 소유권이 50년 이상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소유권이 불분명한 토지가 많다”며 “국유지로 등재된 지역은 그대로 남기고 사유지는 국민신탁을 통해 공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민신탁은 그야말로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한 자산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전 대표이사는 국민신탁화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린벨트라든가 국립공원 같은 경우를 보자. 국공유지 안에 사유지가 군데군데 놓여 있는데, 재산권을 침해당한 사유지 소유주의 민원으로 개발 압력이 극심한 상황”이라며 “민통선 지역까지 포함해 비무장지대 일원을 국유지와 국민신탁지로 나눠 공유화하는 작업은 생태계 보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와 소통의 역설

장기적인 목표만 느슨하게 세워둔 상태다. 그마저 진척이 더디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에 비무장지대만을 전담하는 공무원이 1명도 없는 게 현실이다. 김귀곤 교수는 “지금까지는 시민·환경단체나 학자·전문가 집단의 주장으로 습지 등 일부 지역이 보전지역으로 지정됐지만, 비무장지대를 특정한 입법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비무장지대의 지속 가능한 관리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적 과오는 시간과 자연이 치유해줬다. 전쟁의 아픔이 만들어낸 비무장지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생태의 보고로 다가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곳의 역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반세기 반목과 갈등의 파괴적 역사도 거부해선 안 된다. 서로의 체제를 비웃던 격렬한 구호는 모두 사라졌지만, 어쩌면 그 섣부른 외침조차 오롯이 보존해야 할 유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철조망과 군인에 둘러싸여 반백년 거대한 생태 실험장 구실을 했던 비무장지대에선 어차피 모든 게 역설로 통하기 때문이다. 분열과 반목의 역설이 평화와 소통의 역설로 거듭나기 위해선 지금 준비가 필요하다.


〈DMZ 248km 보고서〉제3부-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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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생태] ⑦ DMZ 생태지도- 동해안권

▣ 출처:<한겨레21> 제678호 2007/09/20
▣ 답사 녹색연합·디자인 장광석 디자인팀장

동해안권

비무장지대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고성군 수동면

민통선 지역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인제군 서화면~고성군 간성읍~거진읍~현내면


동부전선의 정점인 지역이다. 향로봉~고성재~삼재령~무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심축이 비무장지대를 관통한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은 북한강 유역이고, 동쪽은 동해안 유역이다. 인북천과 남강을 나누어주는 고개가 백두대간이며, 남강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물줄기를 잇는다. 울창한 산림이 펼쳐져 있다. 반달곰, 산양, 수달 등 멸종위기종의 주요 서식지다. 비무장지대 북쪽의 모든 산줄기와 물줄기는 금강산으로 모여든다. 향로봉~고진동 계곡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다. 비무장지대 동쪽 맨 끝에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남과 북을 연결했다. 민통선 지역 중 양구 해안에는 마을과 농지가 대규모로 자리잡고 있으며, 인제 서화와 고성 현내에도 농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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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백두산에서 시작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 한반도 생태계의 종축으로, 비무장지대 동부 산림지역의 향로봉~고성재~삼재령~무령으로 뻗어 북상한다.


△ 남강 북녘 땅 강원도 고성군 차일봉에서 발원해 고성군 고봉리·구읍리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강.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를 따라 군사분계선이 이어진다.


△ 향로봉~고진동 계곡 민통선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생태보고로 천연기념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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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생태] ⑥ DMZ 생태지도- 중·동부 산악지역

▣ 출처<한겨레21> 제678호 2007/09/20
▣ 답사 녹색연합·디자인 장광석 디자인팀장

중·동부 산악지역

비무장지대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원동면~임남면~양구군 방산면~동면

민통선 지역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원동면~임남면~화천군 상서면~화천읍~화천군 방산면~양구군 동면

첩첩산중이다. 사방이 산지로 펼쳐졌다. 산도 험하고 골도 깊다. 금성천·북한강·수입천 등의 하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적근산~삼천봉은 한북정맥의 산줄기로 임진강 유역과 북한강 유역을 나누는 기준점이다. 참나뭇과의 활엽수림과 금강소나무 군락이 어우러진 숲이 형성돼 있다. 반달곰·산양·사향노루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지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민통선 지역 중 주민들의 접근과 활동이 제일 적은 곳이다. 민통선 안에는 마을은 물론이고 민가도 농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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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 도로원표 전쟁이 나기 전 국도 43호의 이정표. 북한 통치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 때문인지 원산까지는 153.5km, 화천까지는 43.9km라는 표시가 분명하지만 서울까지 거리는 빈칸으로 남아 있다.


△ 한북정맥 임진강과 북한강을 가르는 분수령이자, 중동부 비무장지대의 중심축.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동쪽은 회양·화천·가평·남양주 등의 한강 유역이 되며, 서쪽은 평강·철원·포천·양주 등의 임진강 유역이 된다.


△ 왜솜다리 비무장지대의 울창한 산림에서 만나게 되는 북방계 식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은 산에서 자라는데, 꽃은 7~10월에 회백색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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