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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멈출 수 없다면 투쟁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투쟁의 대상을 모를 땐 삶의 다짐 자체가, 삶의 지속 그 자체가 투쟁일 수도 있는 것. 투쟁은 길을 묻지 승리의 가능성을 묻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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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문학, "삶은 놀이다" - 훌리오 꼬르따사르,『팔방놀이 (Ray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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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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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오랜꿈
(
) l 2007-12-28 20:01
https://blog.aladin.co.kr/729846193/1793299
남미 문학, "삶은 놀이다"
『팔방놀이 (Rayuela)』, 게으름과 엉뚱함의 찬미
안태환 / 부산외대 이베로아메리카 연구소 연구원
출처 : <레디앙> 2007-12-28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남미의 대표적 현대소설로 콜롬비아 작가인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이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남미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사람이 아르헨티나의 훌리오 꼬르따사르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팔방놀이 (Rayuela)』가 있다. 팔방놀이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골목길에서 놀던 사방치기를 의미한다.
1963년에 쓰여진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에게 기존의 관습적, 수동적 태도를 버릴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철저한 비주류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숫자가 적힌 장(chapter)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페이지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이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존 관습대로라면 물론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인 56장에서 끝날 것이다.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는 73-2-1-116-3-84장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장을 달리하는 순서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논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장난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으로 독자 마음대로 읽으라고도 한다. 실제로 각 장마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앞의 에피소드와 다른 것이 전개되어서 독립적으로 읽는 데 아무 부담이 없다.
주인공인 올리베이라가 하는 일도 정상이 아니다. 그는 빈둥거리면서 끈과 색실을 가지고 놀면서 불에 태운다거나 또는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놓는 일을 하는 등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만족해 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트레블러는 불면증 환자다. 밤에 일어나 책을 보거나 서성댄다. 우리는 낮에 일을 한다. 그러나 이들 등장인물들은 낮에 잠을 잔다. 그리고 달을 해로 착각하기도 하고 늘 마테차를 마신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극우 파시즘 사회에서는 쓰레기로 취급되어 극도로 탄압받거나 경멸받을 것이다.
책 읽는 순서는 마음대로!
더 특이한 것은 이 소설에는 수많은 비주류적 지식인들이 언급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텍스트와 서로 연관을 맺으면서 독자에게 같이 여행할 것을 권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소피스트를 비롯하여 비 주류적 재즈 음악가와 평론가,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까,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대표적인 시들이 아무 언급이 없이 직접 인용되고 있다.
기존의 문학이 가지는 권위 있는 틀과 규범을 벗어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담론 형식이 획일적인 틀을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깊숙이 빠져 있는 사회의 특징은 '소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비만능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사게 만든다는 점에서 획일화의 효과를 지닌다. 다시 말해 다양성을 거부하고 체제에 순응하면서 안심하도록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는 예를 들어, 어느 유명한 가수가 값비싼 디너 콘서트 대신 대중을 위해 무료 콘서트를 기획한다고 해도 시장( 마켓 )과 언론이 이를 반기지 않는다.
이런 사회의 최고 덕목은 개인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엄숙한 근면과 성공에 있다. 일탈과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덕목이 특히 강조되는 영역은 기업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런 덕목의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하는 방랑자들이 나온다. 무엇인가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고 생각만 하는 것을 아주 중요시한다.
주인공인 올리베이라의 생각을 한번 엿들어 보자.
“바지 호주머니에서 보푸라기, 시계, 신문 쪼가리, 가장자리가 해진 아스피린 등 무엇이든지 나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다가 끄트머리에 죽은 쥐가 나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작품의 문학사적 흐름을 집어낸다면 1910~20년대 유럽에서 앙드레 브레통이 주도한 초현실주의와 맥락이 통한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기존의 가치관과 질서를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미학운동이었다. 중남미에서도 모더니즘 시 운동과 현대 소설은 초현실주의적 형식 파괴의 흐름을 보여주며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중남미 예술에서 전통적 가치관의 거부는 ‘유럽적’ 인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원주민’ 문화가 강하게 뒤섞인 그들 스스로의 문화를 긍정하는 힘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중남미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은 중남미 현대소설의 작가들로 하여금 1960년대에 폭발적으로 ‘붐 소설’을 만들어 내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붐이란 중남미 현대 소설이 유럽에서 지식인들과 독자들에게 엄청난 붐을 불러온 것을 가리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삶은 놀이다’라며 합리적 계산과 기존 질서에의 순응을 거부하는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새삼 놀이의 가치관이 주목되는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서로 함께하는 연대의 정신과 진정성에 연결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의 디딤돌을 의미한다. 우리가 팔방놀이를 할 때 돌을 발로 치면서 한 칸에서 다른 칸으로 도약을 한다. 놀이 속에서 무언가를 꿈꾸게 된다.
위 소설의 주인공인 올리베이라는 빵을 칼로 자르면서 빵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일상생활의 삶 안에서 너무나 당연시 하는 일에 대해 민감하게 회의하는 데서부터 소비주의적 문화를 거부함을 알 수 있다.
‘소비주의’ 문화가 끼치는 해악 중의 하나는 일상생활의 섬세한 삶의 기쁨과 슬픔을 개개인이 조용히 느끼는 것을 방해하는 데 있다고 본다. 우리 모두를 뭔가 붕 떠있게 만든다.
그리고 소비주의 문화는 대중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소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어떤 가치 있는 것, 소중한 것을 목청 높여 엄숙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위의 소설 『팔방놀이 (Rayuela)』의 장점이다.
에두아르도 라모스-이스끼에르도가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은 그냥 자연스럽게 마치 어린아이들의 장난처럼 “하늘 또는 중심으로의 영성적 길, 다리, 여행”이 되고 있다.
중남미 좌파의 에너지는 영성
필자는 최근 중남미에서의 좌파 부상이 보여주는 에너지의 밑바닥에는 이런 쉽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성적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 사회의 좌파들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비전 제시의 절박함을 누구나 강조하고 있지만, 단순한 정책들의 나열에 그쳐서는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의 상황에서 실현 불가능한 수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본다.
독자들 중에서 혹자는 이런 이야기가 별로 탐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처절한 무한경쟁의 정글의 세계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어린아이 장난이니 영성이니 하늘이니 하는 이야기는 공허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글의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강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해도 약자로서는 공허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는 주어진 판 자체를 비웃고 전혀 다른 유토피아적 세계를 꿈꾸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인 가치관 또는 철학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콜롬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훌리오 꼬르타사르가 이야기한 ‘남성적 독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역사와 사회의 주어진 흐름 앞에 순응하지 말 것을 강조한 데서 주로 그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훌리오 꼬르타사르는 이런 ‘남성적 독자’의 반대지점에 ‘수동적이고 편안해 하고 관습에 물들은 독자’를 ‘여성적 독자’라고 불렀다. 여성적 독자는 “그래 이 소설의 끝에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나”만 관심 있어 한다. 마치 일반 소비 대중이 어느 물건의 가격이 결국 얼마냐 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이 소설이 만들어졌던 60년대는 세계적으로 대중이 기존 문화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 중남미 붐 소설, 히피들, 존 에프 케네디, 밥 딜런, 혁명에 대한 환상’ 등등. 그러나 80년대를 시작으로 이런 저항과 반란의 문화는 서서히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라져 갔다.
한가지 예를 들고 싶은 게 있다. 소비주의 문화가 왕성한 어느 나라의 민속공예품을 보면 정교한 반면 왠지 기계로 찍어댄 듯한 느낌으로 토속적인 느낌이 거의 없다. 반면에 가난한 남미의 공예품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손으로 일일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었다는 느낌에 친근감이 든다. 그리고 어떤 공예품은 소위 투입된 노동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이 값이 싼 경우도 많다.
필자는 가끔, 70년대에 많이 나왔던 유럽의 실존주의적 흐름의 영화가 생각난다. 어느 대기업체의 간부로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겉으로 보아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별 이유도 없이 가출을 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방랑의 길을 택한다. 그러면서 고통도 당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던 이미지가 그립다.
무엇보다 획일적 삶의 방식을 깨트릴 수 있는 철학과 감수성과 전략이 중요하다. 우리보다 훨씬 진보적 사회 즉 인간적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한 유럽과, 유럽보다는 훨씬 가난하지만 또한 인간적 사회를 만들려는 비전과 정책을 실천하고 있는 남미를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지식인과 대중이 속물됨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한 기업가와 스타 연예인’을 부러워하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성공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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