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춤에 반했지?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

김소민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02


»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
 

1960년대 배경 십대 ‘뚱보’ 소녀의 티브이쇼 입성기
‘비주류’들 유쾌한 자기긍정 춤판에 관객도 ‘덩실’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가공할 만한 자기 긍정의 힘을 보여준다. 영화 속 비주류 인물들의 정서는 대충 이렇다. “나 뚱뚱하고 키 작고…. 그게 어쨌다고. 그럼 그렇지 너도 나한테 반했구나.” 칭찬은 고래를 춤 추게 하고 ‘대책 없는’ 낙관은 10대 뚱녀 트레이시, 그런 유전자를 트레이시에게 전수한 장본인 엄마 에드나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긍정의 엑스터시 판에 뛰어들게 만든다.

보통 사람들이 매일 자학할 거리를 꾸러미로 안기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토록 올바른 힘을 갖는 건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기에 <헤어스프레이>는 판타지에 가까운 2시간의 짧은 해방구다. 아무렴 어떤가. 관객은 음악·춤과 어우러진 이 환타지에 참여하길 주저하지 않아 1988년 존 워터스 감독이 만든 원작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대박을 쳤고, 2002년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태어났다. <웨딩플래너>의 감독 아담 쉥크만이 만든 이번 영화도 올 여름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개봉해 1억2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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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방식 그대로 머리를 산처럼 세운 10대 트레이시(니키 블론스키)는 첫 장면부터 조증 상태처럼 보인다. 볼티모어 거리를 거닐며 “매일 아침은 기회로 반짝이고 매일 밤은 환타지로 가득 차 있다”고 노래한다. 그가 하루라도 놓치고는 못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코니 콜린스 쇼>다. 늘씬 미녀 미남들이 최신 춤을 추는 프로인데 트레이시는 모든 스탭을 섭렵한 지 오래다. 콜린스 쇼에서 댄서를 한명 더 뽑게 되니 트레이시의 눈에 불 켜졌다. 엄마 에드나(존 트라볼타)는 딸이 상처 받을까 말려보지만 그 말을 들을 트레이시가 아니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호락호락하겠나. 방송국 매니저인 벨마(미셸 파이퍼)는 금발에 미인대회 수상자인데 흑인이나 못생긴 여자는 질색이고, 자기를 꼭 닮은 딸 엠버를 스타로 만들 궁리밖에 안한다. 쇼 제작진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날, 트레이시를 벨마는 어이없게 쳐다보는데, 그 눈빛을 트레이시의 친구 페니는 이렇게 독특하게 해석한다. “너한테 완전히 빠졌구나.” 트레이시의 역동적인 춤솜씨에 다른 스태프들이 반하는 바람에 트레이시는 쇼에 입성한다. 그런데 이 쇼에서도 춤 잘 추는 흑인들이 되레 차별당하니, 정의의 트레이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영화 속에서 흑인, 뚱보 등 미국 사회 비주류는 모조리 반짝이는 별인 반면 주류는 창피한줄 알아야 하는 비웃음거리다. 빨래방을 운영하며 오줌 자국을 빼느라 진땀을 빼는 엄마 에드나(존 트라볼타)는 뚱뚱해서 20년 동안 외출을 삼갔다. 아버지 월터(크리스토퍼 월킨)는 에드나가 자기를 꼬시는 줄을 5년 뒤에야 알아챘을 정도로 눈치가 없다. 그는 “나는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는데 그 꿈이 작은 장난감 가게를 열고 똥 모양 초콜렛 등을 파는 것이다. 하지만 비쩍 마른 월터와 월터의 두배는 돼 보이는 에드나가 빨래 더미 앞에서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는 거의 위대할 정도로 아름답다. “당신은 냄새 나는 치즈, 나에겐 숙성된 맛으로만 느껴져. 당신의 머리는 계속 빠지고 나는 계속 뚱뚱해지겠지만 당신은 나에게 세월을 뛰어넘는 존재….” 이런 괴짜 비주류 정서에 “평등은 거저 주어지지 않으며 이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 같은 주제를 직설적으로 버무린다.

<헤어스프레이>에는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오로지 못된 소수의 탓으로 덤터기 씌워버리는 단순화의 함정도 있다. 흑인 차별을 주도했던 게 진정 벨마 등 일부 소수였을까? 대중은 이 혐의로부터 자유로울까? 그런 의문이 들어도 화끈한 드레스를 입은 엄마 존 트라볼타가 30년 전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보여줬던 만큼 유연한 웨이브는 아니더라도 <유 캔트 스탑 더 비트>에 맞춰 춤출 때 밀려오는 흥은 막을 도리가 없다. 6일 개봉.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케이디미디어 제공




화끈한 그녀가 ‘존 트라볼타’라고?

» 존 트라볼타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미셸 파이퍼, 크리스토퍼 월킨 그리고 1000대 1의 경쟁을 뚫었다는 트레이시역의 니키 블론스키 등 배우들의 딱 맞게 수위 조절한 코믹 연기가 압권이다. 그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것은 14킬로그램 짜리 살덩이 옷을 입고 엄마 에드나로 등장한, 올해로 53살의 존 트라볼타다.

엄마 에드나 역할은 전통적으로 기괴하고 목소리 걸걸한 남자 배우들이 맡았다. 트라볼타는 약간 더 사랑스럽고 다소곳한 에드나다. 원작 영화에서는 한번 보면 잊혀질 수 없이 괴상한 남자인 해리스 글렌 밀스테드(일명 디바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선 하비 피어스테인, 내년 2월17일까지 한국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엔 정준하가 이 역을 맡았다. 존 트라볼타는 리처드 기어가 맡았던 <시카고>의 빌리 플린역을 마다하고 에드나가 됐다.

원작을 만든 존 워터스 감독은 원래 따뜻한 가족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독이었다. 그는 디바인과 함께 개똥을 먹는 장면 등이 들어가는 지저분하고 광기어린 영화들을 양산했다. 트레이시역은 신인이나 알려지지 않는 배우에게 맞기는 게 전통이어서 원작에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리키 레이크, 뮤지컬에선 마리사 위노커가 맡았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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