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배제한 사회변혁 ‘순진한 발상’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1월 30일


» 민족주의는 누구에 의해 어떤 국면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애국주의’와 ‘저항운동’의 상이한 면모를 보인다. 지난해 누리꾼들이 개최한 황우석 박사 지지 집회(왼쪽)와 지난 3월 열린 한미에프티에이 반대시위.(왼쪽).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4. ‘민족’은 대중의 생존기반

지난 3주 동안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민족과 탈민족의 관점에 서서 논쟁을 펼쳤다. 안병욱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래 유지해온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와 임 교수는 탈민족 담론을 펼쳤다. 박 교수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가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이 두드러졌다면서 민족 관념의 실체를 부인했다. 그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서울과 뉴욕의 중심이 연합하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주의 네트워크를 표상한다면서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지배엘리트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김동춘 교수는 이 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면서도,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했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병리적인 것 혹은 ‘특수한 것’으로만 간주하는 시각은 사태의 한 쪽 측면만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안병욱 교수가 그동안 제기된 탈민족 시각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다시 정리해 보여준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민족의 개념에는 종족적 동질성과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곧 민족에는 초역사적·자연적 성격이 언제나 전제되는 경향이 있지만, 시민권의 보유자라는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위는 전쟁 등 봉건질서의 해체와 근대 헌법과 시민권 형성 국면에서 만들어졌고, 자국이 제국주의 침략국으로 나서면서 훨씬 강화되었지만, 근대화·산업화에 실패한 주변부에서는 민족국가 실현의 이상 속에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민족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응집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유사종교인데, 그것이 민족의 자연적 성격을 강조할 경우에는 우익보수주의 혹은 극우 파시즘의 양상을 지닐 수 있고, 주권·시민권 확보의 내용을 강조하면 제국주의·시장주의에 의해 붕괴된 ‘공동체’ 복원이라는 이상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과거 식민지·종속국의 민족주의는 정치공동체 혹은 ‘사회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어떤 경우든 민족주의는 국가 혹은 사회 내에서 계급적·사회적 차별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파시즘의 쓰라린 기억을 가진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주로 부정적 현상을 지칭한다. 이 경우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는 애국주의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데, 어떤 경우든지 내부의 정치적 억압, 계급 간의 대립을 축소하고 대중을 국가에 복종시키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사회 내의 소수자나 소외된 자들을 억압·기만하기 위한 체제유지적 이데올로기만은 아닌데, 근대 민족국가 수립운동은 헌법적 질서, 시민권 확보, 사회의 공공성 유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권의 상실, 민족국가의 부재는 약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 일제 식민지,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체제가 누구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는가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대중들의 실천으로서 민족주의는 그들의 생존조건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양상을 지니기도 한다.

‘민족주의’눈 두개의 얼굴 지녀
국가 주도하면 ‘애국주의’ 양상
대중 실천하면 ‘저항운동’ 면모


그래서 민족주의는 누구에 의해, 어떤 정치경제 국면에서,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나오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성격을 지닌다. 과거의 저항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인권·자유의 가치를 내장했지만,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는 전쟁·폭력·차별과 결합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자본가적 국가주도하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는데, 중화민족주의는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더불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화민족주의는 외적으로는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과 미얀마의 인권탄압을 묵인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소수자나 노동자 탄압, 언론 통제를 수반한다. 그래서 반제국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국가주도의 성장주의의 내용을 갖는 중화민족주의는 동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의 우경화보다 더 위험한 정치적 힘이다.

그 동안 반식민지·반외세·분단극복의 내용을 갖고서 저항 이데올로기로 기능해 왔던 한국의 민족주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점차 보수 이데올로기로 변하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분단 통일 민족주의의 측면보다는 일종의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 민족주의의 보수화·우경화는 앞에서 시민권·주권 확보의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민족의 자연적 성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익과 자본의 이해를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번의 황우석 사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따라잡아서 1등 하기, 경제지상주의, 국가주의 등 민족주의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황우석 신드롬은 민족주의의 맹목적 성격과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한국이 자본의 수출국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가 이제 퇴영적 측면만 갖는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과거 식민지 시절의 저항 민족주의가 제국주의/경제주의에 의해 자유와 시민권이 억압되는 현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국민국가 곧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담고 있었듯이, 오늘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신자유주의 광풍에 맞서서 대중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 국가 재형성 혹은 사회 재형성의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반도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진보적 요소를 약간이나마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터인데, 어쨌든 분단극복과 통일국가건설의 지향이 인권·평화·민주주의· 공공성 확보와 같은 가치의 인도를 받는 한 그것은 진보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의 최대의 수혜자는 남북한의 민중들일 것이다.

최근 ‘국가주의’ 우경화 뚜렷하나
민족은 관념 아닌 구체·사회적 힘
통일민족주의 수혜자는 남북한 민중


물론 현재의 지구화 국면에서 설사 남북화해와 분단체제의 제한적 극복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자본의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크고, 그 후 만들어질 사회가 지역·세대·계층으로 극도로 차별화된 사회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의 지구화가 곧 지구적 대안 설정, 지구적 운동의 연대를 보장한다는 전제하에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세계경제, 지구화된 질서 속에서도 쉽게 이전되거나 사라지지 않으면서 대중의 정신적·물질적 생존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이 오늘날 민족(국가)의 실제 내용이다. 문화와 언어, 자연자원, 기술과 교육 인프라, 사회복지 시스템, 중소기업을 포함한 영세기업, 노동자와 농민 및 그들의 재생산 기반, 역사적 기억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정책·제도·정치의 기반이 되는 무시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다. 따라서 민족, 민족주의를 병리적인 것 혹은 ‘특수한 것’으로만 간주하는 자유주의와 탈국가주의 좌파 시각은 사태의 한 쪽 측면만 강조한다. 물론 이제 자본의 수출국이 되고 다인종 국가로 변해가고 있는 한국에게 과거식의 단일민족의 신화나 자민족중심주의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은 미국발 대자본의 이해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는 점, 과거 제국주의 논리의 현대판인 자유무역, 시장만능주의가 그것을 즐긴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와 일본의 우익민족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적 생존과 문화적 자존을 도모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반미 통일 민족주의가 대안인가, 아니면 동아시아 시민사회 수립, 노동자의 연대가 대안인가? 이에 대한 답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 민중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방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남북한 간 전쟁과 갈등을 막는 것, 우리가 원하지 않게 전쟁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째요, 한반도를 아우르는 헌법적 정치단위가 수립되어 경제적 약자들을 법이나 제도로 보호해 주는 것이 둘째요, 성장주의 독재의 뒤안길에서 소외된 중국·동아시아 인민들의 처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공동의 이상을 향해 연대를 하는 것이 셋째다.



김동춘 교수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을 주제로 하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과거사 정리 및 한국사회의 기업사회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근대의 그늘>(2000년) <전쟁과 사회>(2000) <미국의 엔진>(2004) <1987년 이후 한국사회 성찰>(2006)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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