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꾸하는 펑크의 방식
[음반리뷰] 럭스 《The Ruckus Army》와 썩스터프 《Rough Times Ahead》


나도원 / 대중음악전문기자
출처 : <컬쳐뉴스> 2007 10 26


1968년 유럽의 대학생들은 ‘금지를 금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기성권위를 부정했다. 당시 19살의 이탈리아 대학생 카를로 페트리니도 신좌파의 세례를 받은 ‘68운동’의 일원이었다. 20대를 혁명가로, 30대를 음식평론가로 보낸 페트리니는 86년 패스트푸드의 세계화에 맞서 ‘음식 혁명가’로 재변신한다. 환경·전통의 보존과 느림의 미식을 강조하는 그는 ‘슬로푸드’ 운동으로 속도 맹종의 권위에 도전했다. 토속 농법과 종자를 찾아내 지키고, 제철 제땅에서 이슬맞고 자란 것들로만 맛있게 만들어 먹자는 것이다.

펑크가 가진 세계관의 스펙트럼은 '좌우' 180도에 가까울 정도로 각이 크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은 럭스와 스컹크 동료들
▲ 펑크가 가진 세계관의 스펙트럼은 '좌우' 180도에 가까울 정도로 각이 크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은 럭스와 스컹크 동료들

[포용과 묵인의 차이는 인식과 반성의 선행 여부에 있다. 거쳐야할 단계를 건너뛴 것은 포용일 수 없음에도 확성기는 종종 두루뭉술하게 이런 구호를 내뱉는다. 비단 정치구호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펑크는 한국에 인디 씬이 형성될 즈음 펑크가 붐을 이루면서 가장 먼저 매체의 주목을 받았고, 마치 인디를 대표하는 것처럼 되어버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매체들이 인디·클럽 문화를 ‘젊은이들의 반항적인 분출구’ 따위로 단순화하는 데에 이용되었으며, 보수적인 음악인들은 펑크를 음악적으로는 말할 게 없는 장르로 오해했다. 그리고 팝음악을 제국주의의 무기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들은 펑크가 세계 노동자 계급의 공용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다. 물론 펑크가 가진 세계관의 스펙트럼은 ‘좌우’ 180도에 가까울 정도로 각이 크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의 태도와 음악적 행보는 오해를 가중시켰다. 크라잉넛은 논외로 하더라도 《청년폭도맹진가》(2000)로 기성체제에 통렬한 한방을 휘두른 노브레인의 변화에는 투항이라는 비판이 가해질만했다. 하지만 선의를 가장한 선정주의와 상업주의가 상식화된 세상, 즉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전쟁과 폭력이 스펙터클로 서비스되는 문화 속에서, 녹아버린 펑크의 조각들은 충분한 표본이 되지 못한다. 거품 아래에 가려져 있던 모습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거품이 꺼져가는 동안 스컹크레이블, GMC, 타운홀레코드, 유니온웨이를 비롯하여 각 지역의 공동체들은 연대와 경쟁을 통하여 서로를 잊지 않고 서로를 잇고 있었다. 럭스(Rux)도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무수한 펑크밴드들 중 하나였지만, 그 진가는 붐이 잦아들고 매체의 주목도 약해진 이후에야 드러났다. 썩스터프(Suck Stuff) 역시 그랬다.

럭스의 걸작인 《우린 어디로 가는가》(2004)를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힘들어도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가 문제인 걸 어떻게 또 견디라고” <부둣가>에서 토로했고, “지금껏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었건만 … 이제 와서 돌아봤더니 나는 아무 데도 쓸모없는 병신이라니”라며 <세상의 중심>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언제나 이 자리에서>에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나 잘 알기에 오늘도 또다시 일어선다”라고 다짐했다. 진정한 ‘대변’이었다. 신실함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왜 진정성을 이야기하는지, 태도만 있고 음악은 없는 펑크 또한 왜 공허한지를 보여주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 럭스《The Ruckus Army》(2007)
그런데 기대하지도 못한 비평적 찬사와 주목에 럭스는 적잖이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의도적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한다. 그런 의도가 있었던 EP 《Another Conception》(2004)마저 젊은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말았으니까. 이처럼 좋든 싫든 현재의 한국 펑크를 대표하는 밴드로 지목받고 있을 때 럭스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는데, 주지하다시피 화살은 그들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라이브 클럽과 댄스 클럽을 구별하지 못한 무책임한 보도와 비난이 뒤따랐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클럽 일제 단속을 언급했다가 라이브 클럽으로부터 직접 와서 한번 보라는 초대를 받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이슈가 아니라 음악과 행동으로 인정받았던 럭스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 앨범에 대한 기대에 “부담스럽다”고 럭스의 리더 원종희는 말해왔다. 모르긴 해도 두 번째 정규앨범 《The Ruckus Army》(2007)에는 부담이 어떤 식으로든, 최소한 의식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식으로라도 작용했을 것이다. 동료를 응원하는 <Our Life, Our Stage>이나 긴 기타 연주가 삽입된 <세상의 중심에서>는 럭스답게 음악과 메시지를 놓치지 않은 곡들이다. 미디어와 비평가들을 포함한 외부의 시선에 직접 대꾸하는 듯한 <21 & 56 & 45>도 있다. 그런데 한편에는 그들의 것이 맞는가 싶은 곡들이 적지 않다. 확신 대신 인간적 공허함을 숨기지 않고 때론 자조적 긍정으로까지 보이는 모습은 왠지 좀 여위어 보인다. 그렇다면 고집스러운 두 번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럭스가 어떤 단계 속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음반을 내줄 회사가 없어 스스로 ‘스컹크레이블’을 만들고, 공연할 무대를 찾기 힘들어 라이브 클럽 ‘스컹크헬’을 스스로 세웠다. 이상은 현실과 불일치하기에 이상이다. 이 둘의 일치를 위해 스스로 토대를 만들어온 것이다. 또한 스컹크에는 럭스를 중심으로 신실한 태도와 음악적 성과를 함께 중시하는 펑크 음악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러한 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여전히 <Fight for Your Identity>에서 “국가를 위한 승리의 희생, 또 국가경제를 위한 교육인적자원,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빼앗기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를 말한다. 스스로 자신을 다그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너그럽거나 게을러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 썩스터프 《Rough Times Ahead》(2007)
“우린 저지당했어. 우린 반역자야”라고 노래하는 썩스터프의 《Rough Times Ahead》(2007)에는 그 아쉬움을 채우는 울림이 있다. 《City Rebels》(2006) 이후 두 번째 정규앨범인 《Rough Times Ahead》는 근래에 발표된 펑크 계열 앨범들 가운데에서 기타 리프와 멜로디, 그리고 코드의 연결이 단연 돋보인다. 럭스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미국인 청년 폴 브리키가 구성원으로 참여한 썩스터프의 연주는 이른바 감성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면이 있다. <Rough Time Ahead>와 <Where I Belong>의 컨트리 펑크는 무척 흥미롭고, 13스텝스와 49몰핀스의 탁월한 드럼연주자였던 류명훈이 가세한 조합은 <This Wasteland>처럼 근사한 펑크연주로 이어진다.

또한 <우리 그 밑에 있다면>에서처럼 위악적이지만 분명한 어조를 지닌 유철환의 노래와 ‘비문’에 가까움에도 힘이 강한 가사의 결합은 썩스터프의 미덕이다. 단순하지만 감동적인 멜로디와 코러스가 인상적인 <선택받은 자여>는 기억할만한 펑크 곡이다. 이 결과물은 재료를 노출시킨 건축물과 같고, 핏줄을 드러낸 팔과 같다. ‘생각하는 펑크’를 강조하는 유철환은 원종희와 함께 ‘스컹크 헬’을 운영해왔으며, 그간 적극적인 움직임을 모색해왔다. 벽은 보호를 위해 존재하기도 하고 감금의 용도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그림이 걸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벽이 치열한 음악을 태어나도록 한 것이다.

윤리를 스스로 세워야하는 원점의 시대이다. 그러다보니 경우에 따라선 방향이 모호해질 수 있고, 더구나 모호함은 포괄적인 것과 쉽게 혼동된다는 위험이 항시 존재한다. 이 문제는 현재 한국 펑크음악인들의 과제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외부의 관점도 달라질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세상은 그들을 제대로 보려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세상을 스스로 보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는 사실 말이다.



*나도원 _ 대중음악평론가.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비평계로 입문했다.
지금은 <가슴> 편집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의회 회원이며, 2005 · 2006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매체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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