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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멈출 수 없다면 투쟁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투쟁의 대상을 모를 땐 삶의 다짐 자체가, 삶의 지속 그 자체가 투쟁일 수도 있는 것. 투쟁은 길을 묻지 승리의 가능성을 묻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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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의 지하실에서 듣는 빗소리 - 엘리엇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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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댓글(
0
)
내오랜꿈
(
) l 2007-11-29 11:24
https://blog.aladin.co.kr/729846193/1729382
허무의 지하실에서 듣는 빗소리
90년대 포크를 대표하는 엘리엇 스미스, 〈New Moon〉의 미발표곡으로 다시 만나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출처 : <한겨레 21> 제 662호 2007년 5월 31일
1990년대 대중음악을 열었던 화두가 시대정신이었다면 90년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말은 ‘취향’이었다.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음악이 그런지로 촉발된 얼터너티브 혁명이었고, 포크는 취향을 리스너들의 입에서 꺼내게 했다. 전통적인 포크가 아닌, 90년대의 감성을 담아낸 새로운 포크 말이다. 벨 앤드 세바스천과 엘리엇 스미스가 선봉에 있었다. 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순진하게 믿었던 90년대 초반의 소년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음에 좌절했다. 청년이 되어 방구석에 틀어박힌 그들의 귓가를 적셔주던 음악, 벨 앤드 세바스천과 엘리엇 스미스는 필청의 리스트와 마찬가지였다.
전사 커트 코베인, 패잔병 엘리엇 스미스
△ 엘리엇 스미스는 언제나 상처투성이었다. 마지막 안식처로 삼을 법한 가족마저도 그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달랐다. 벨 앤드 세바스천이 마음 한구석에 사랑과 낭만을 간직한 이들의 음악이었다면, 엘리엇 스미스는 사랑과 낭만에 마지막 좌절을 경험한 이들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1969년 스티븐 폴 스미스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2003년 10월 엘리엇 스미스란 이름으로 자신의 심장에 스테이크 나이프를 꽂았다. 그 순간까지 35년. 그의 인생은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해지는 걸 누구보다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때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불행하지 않음을 항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가장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던 노랫말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상처투성이였고 상처를 두려워했지만 결국 제 발로 상처 곁으로 걸어가는 게 음악 속에서 그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지친 영혼일지라도 안식처로 삼을 법한 가족마저도 그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증’ 쪽이 훨씬 많았지만.
엘리엇 스미스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고 마음속 세상에는 언제나 빗줄기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네가 원할 때 네가 원하는 걸 하라. 비록 그게 아무 의미도 없을지라도. 거대한 허무일지라도’라고 끝을 맺는 〈Ballad Of Big Nothing〉. 음악평론가 성문영이 ‘거대한 허무의 발라드’로 해석한 이 노래의 제목은 어쩌면 그의 모든 노래에 담긴 주제어일 것이다. 사방이 온통 막다른 골목인 궁지의 공간, 엘리엇 스미스는 그곳의 지하실에서 노래했고 이야기했다. 도피할 곳 없어 세상의 틈새에서 방랑하는 이들에게 그의 노래만큼 위로의 담요 구실을 해주는 도구는 없었다. 소통에 힘겨워하고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위안을 얻는, 세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억지로 웃음짓는 개인들에게 엘리엇 스미스라는 이름은 가장 강력한 프로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1994년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군단을 진두지휘하던 장수의 전사였다면, 2003년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은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나와 몸부림치던 낙오병의 고립된 사망과 같았다. 그와 심정적으로 연결된 개인들만이 조용히 추모할 뿐인 쓸쓸한 죽음.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일반화된 인터넷 때문에 더 이상 ‘모여서 음악을 듣는 행위’가 사라진 이곳에서 그의 죽음은 오프라인 음악 공동체의 부고장이기도 했다.
적나라함 때문에 싣기가 곤란했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허무의 방랑자가 숨겨뒀던 또 하나의 일기장이 공개됐다. 1995년부터 97년까지 엘리엇 스미스가 만들었던 노래들 중 미발표 곡을 모은 음반 〈New Moon〉이다. 미발표곡 모음집은 대부분 기대를 배신한다. 만들어놓기는 했으나 음반에 싣기에는 어딘지 함량 미달인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음반 발매 일정이 잡히면 그때부터 곡을 만들고 레코딩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엇 스미스는 일기 쓰듯, 평소에 곡을 만들고 녹음하곤 했다. 그렇게 쌓인 곡들 중에서 추려서 음반을 내곤 했다. 그에게 창작이란 곧 일상이었다. 그의 창작력이 급속도로 치닫던 시기는 1997년에 발표된 〈Either/Or〉 무렵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그가 남긴 여섯 장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New Moon〉은 전작 〈Elliott Smith〉부터 〈Either/Or〉 사이의 시간 동안 만들었던 노래들을 담고 있다. 최고조로 치닫던 창작의 잉여물들이다. 그러나 잉여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말이 좋아 음반에서 누락된 곡들이지, 여기 담긴 스물네 곡의 노래는 마땅히 발표됐어야 할 음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음반은 단순한 미발표곡 모음집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정규 음반으로 추앙받아도 결코 손색이 없다. 〈New Moon〉은 어느 음반보다 감성적이고 적나라하다. 그 적나라함 때문에 오히려 정규 음반에는 싣기가 곤란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될 정도다. 서서히 차오르는 센티멘털이 한순간에 폭발한 뒤 모래처럼 바스러진다. 자물쇠로 묶어둔 비밀의 일기장에조차 쓸 수 없었던, 온갖 감정의 본원과 심연을 엘리엇 스미스는 벌거벗긴다. 그리고 노래한다. 시라고 해도 괜찮을, 아니 시 그 자체인 언어로. 음표와 단어와 목소리는 서로를 힘겹게 부축한 채,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이곳으로 뚜벅뚜벅 다가온다. 애도의 감정이 들기 전에, 경이가 밀려온다. 놀라운 재능과 불편할 정도의 진솔함에 대한 경이가.
돌이켜보면 그런 경이가 취향의 시대를 열었다. 네트워크의 힘으로 낙오자들은 그들만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 ‘세대’로 90년대를 열었다면 엘리엇 스미스는 ‘취향’으로 그 시대를 마무리했다. 그들 모두 자살했다. 21세기는 20세기를 그렇게 숙청했다.
엘리엇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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