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이 남긴 폐허 도시
두 여인의 모진 인생 드라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1만3500원
여기 두 여자가 있다. 태어난 곳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중심 도시 카불 한구석에 지붕을 맞대고 살아온 두 여자가 있다.
# 마리암
부잣집 하녀인 어머니는 주인의 아이를 가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라미(후레자식)’란 이름으로 배척받는 사생아. 그것이 나였다. 어머니는 혼자 나를 낳아야 했다. 가족에 편입되지 못하고 평생 좌절감에 몸부림치던 어머니는 내가 열다섯 되던 해 자살했다. 혼자가 된 나는 아버지와 그의 세 부인들에게 의지해야 했지만 그들에게 나는 망신스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들의 종용에 못이긴 나는 서른 살 많은 홀아비의 후처가 됐다. 남편의 이름은 ‘라시드’. 아들을 몹시 바라던 남편은 내가 유산을 거듭하자 개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끝도 없이 계속됐고 도시는 폐허로 변해갔다. 어느 날 앞집에 로켓탄이 떨어졌다. 그 집에 살던 부부는 죽고 딸아이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나는 심하게 상처 입은 소녀를 집으로 들이고 치료해줬다. 못난 나와 달리 예쁜 소녀. 남편은 소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다. 죽어가는 것을 거뒀더니 소녀는 내 남편을 뺏고 이내 아이까지 임신했다. 소녀가 죽도록 미웠다.
# 라일라
내가 나고 자란 카불은 아름답고 자유로운 도시였다. 여자들은 공부하고, 직장을 가졌다. 부르카(몸 전체를 가리고 눈만 망사로 돼 있는 아프간 여성 전통의상)를 입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빠의 지론대로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우등생으로 인정받았다. 지하드(聖戰)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난 두 오빠 대신 나를 돌봐주던 사람은 옆집에 사는 ‘타리크’ 오빠였다. 우리는 함께 자라면서 연인이 됐다. 내가 열 네 살이 되던 92년 전쟁은 극심해졌고 단짝친구 기티가 거리에서 폭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해 여름 타리크 가족은 파키스탄으로 피난을 떠났다. 헤어지기 전날 타리크와 나는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서로를 안았다. 며칠 뒤 우리 집은 폭격을 당했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 다친 나를 돌봐준 것은 앞집 라시드 부부였다. 정신 차린 지 얼마 안 돼 타리크가 피난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망한 내게 라시드는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 되든, 거리로 나가든 선택을 하라고 말했다. 거리는 강간과 살육이 범람하는 지옥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나는 그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였다. 내 몸 깊은 곳에서 내가 지켜야 할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 생명의 태동이었다.
평행선을 그려온 두 여자의 삶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맞물리며 포개진다. 왕이 축출되고,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고, 반군의 게릴라전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바미안 석불이 파괴되는 모습과 뉴욕 중심부에 우뚝 선 두 개의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탈레반의 억압에도 카불에 남은 사람들은 영화 ‘타이타닉’을 몰래 보며 눈물을 흘린다. 생생한 역사의 흐름을 토대로 하기에 등장인물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쉬는 듯하다. 탄탄한 구성과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 진행으로 읽는 내내 코 끝을 알싸하게 만들던 책은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책 제목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17세기 페르시아의 유명한 시인 사이브 에 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어쩌면 시인은 아름다운 도시가 아닌 그곳에 사는 빛나는 사람들을 그리고자 했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는 수천, 수만 개의 태양들 말이다.
놀랍게도 이번 작품은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42)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는 소련의 침공을 피해 80년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간인이다. 4년 전 그는 첫 작품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에서 자신의 체험을 녹여 아프간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들의 사투를 그렸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전쟁의 포화 속에 남겨진 여성들의 ‘찬란한’ 비극을 안고 돌아온 것이다. 미국에서 출간 6주 만에 140만 부가 팔려나가고, 반년 가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위를 지킨 화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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