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탈목적’ 넘어설 날은

최재봉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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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풍경 /

2007년 한국 소설의 화두를 ‘역사’와 ‘장편’이라 한다면, 그 둘을 단순 결합한 역사장편소설은 작가들의 손쉬운 출구였다. 작가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역사장편소설들을 쏟아냈다. 지나간 과거가 한국 소설의 미래를 책임지고자 나서는 듯한 형국이었다. 계간 <문학동네>가 한 해를 마감하는 겨울호 특집을 ‘역사의 귀환’으로 삼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이 특집에 글을 보탠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근대적 역사관으로부터 탈근대적 역사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문학에서 나타난 것이 “역사소설의 ‘소설역사’로의 변형”이라고 본다. “역사소설이 ‘역사 속의 인간’의 전형을 추구했다면, ‘소설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구현하고자 한다.” 역사 또는 거대담론 대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김 교수가 주장하는 ‘소설역사’의 핵심이다. 그는 특히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데, 그에 따르면 “김훈은 인간의 계속 이어지는 삶 그 자체를 역사의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근대역사소설과 다르게 목적 없는 목적론을 내재하는 탈근대 ‘소설역사’를 지향한다.”

<남한산성>을 포함한 김훈의 역사소설들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논의는 신형철씨의 글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에 담겨 있다. 그가 보기에 김훈 소설의 핵심은 말할 수 있는 것(객관적 사실)과 말할 수 없는 것(주관적 의미와 가치) 사이의 간극에 있다. 그런 김훈의 역사소설은 기왕의 역사소설들과는 다르다. “김훈의 역사소설은 역사소설이되 역사의 목적과 진보를 승인하는 ‘역사주의’와는 무관한 곳으로 간다.” 이런 김훈 역사소설의 특징을 가리켜 신씨는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자연사소설’에 가깝다고 본다. “(김훈은) 인간을 긍정하지 못하면서 인간을 말하고 역사를 믿지 못하면서 역사소설을 쓴다. 이 역설이 김훈 소설의 힘이다.” 역사학자와 평론가의 결론은 이 지점에서 일치한다.

소장 평론가 이경재씨는 ‘2000년대 역사소설이 넘어선 것과 넘어서지 못한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정래의 <오 하느님>과 조두진의 <도모유키>,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을 통해 고향과 민족이라는 가치가 최근의 역사소설들에서 유지되거나 폐기되는, 또는 폐기되는 듯하면서도 위장된 형태로 유지되는 양상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오 하느님>은 비록 무대가 한반도 바깥으로 확장되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내셔널 히스토리로서의 역사소설’에 해당한다. 이 소설에서 고향과 민족의 가치는 가히 신성불가침이라 할 법하다. ‘임진왜란’을 일본군 하급 무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도모유키>, 그리고 조선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를 주인공 삼은 <천년의 왕국>은 나란히 이방인의 시선을 동원하고 있어서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듯 보이지만, 오히려 타자의 눈으로 바라본 민족의 통일적인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 글쓴이의 판단이다.

김기봉 교수와 신형철씨의 글에서 보다시피 역사와 소설에서 목적과 의미를 배제하는 것은 최근 역사소설 논의에서 지배적인 경향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경재씨의 글의 결론은 목적과 의미로부터의 무한 탈주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위선과 폭력을 직시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에서 나아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에 대한 건설적 사유인지도 모른다.” 탈주와 해체로부터 참여와 건설로 우리 소설은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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