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한 주류 대중음악 ... 무슨 일이 일어났나
[칼럼] 소녀시대, 원더걸스, 서태지를 둘러싼 이야기들

나도원 대중음악전문기자
출처 : <컬쳐뉴스> 2007-11-21


원더걸스와 함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
▲ 원더걸스와 함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
아직 가을인데 저만치서 눈덩이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 말이 말을 만들어내는 눈덩이효과의 혐의가 짙긴 하지만,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서태지는 모처럼 주류 대중음악계에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신문과 잡지들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성공요인을 분석하는 원고를 줄줄이 싣고, 개중에는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가며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노래의 히트가 히트수로 판가름 나는 상황에서 보면 가시적인 실적도 존재한다. 아이돌시스템을 활용해온 SM 엔터테인먼트와 JYP 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전술의 차이가 각각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로 나타났다거나 롤리타콤플렉스와 연관성이 있다는 등의 분석들도 나왔다. 전자에는 자본논리만 남고 후자에는 10대 남녀 팬들의 심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석이 없지는 않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대중의 이목을 낚아채는 강점을 지니고 있음은 인정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아이돌시스템에서는 ‘노래’를 위하여 가수가 존재하는 대신 ‘가수’를 위하여 노래가 존재한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이른바 히트곡 메이커라는 작곡가 켄지가 어디에선가 들어봤음직한 멜로디의 곡을 주문생산 한 경우고, 원더걸스의 <Tell Me>는 팝 가수 스테이시 큐(Stacy Q)의 <Two of Hearts>를 샘플링한 노래이다. 샘플링은 기존의 곡을 새로운 창작에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기법을 일컫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다르게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익숙한 선율을 가져와 끼워 넣는 수준을 넘어 아예 곡 전체를 짜깁기함으로써 상업성을 담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법적인 하자는 없을지언정 창작이라는 측면에선 맥 빠지는 수법인데, 바로 <Tell Me>가 그렇다. 그러니 음악적으로 말한다면 썰렁한 농담이 되고 만다. 국방부로부터 감사패를 받는다면 모를까.

성공을 이루게 한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몰락의 길로 향하는 네메시스와 그 부활은 대중음악에도 적용되어 왔다. 간혹 신중현이 반어적인 체제비판이라 ‘주장’했던 <아름다운강산>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게임을 치르던 시기에 이선희에 의해 체제찬양가로 불려졌던 것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복고취향에 성(Sex)을 가미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이러한 흐름과 무관치 않다. 그들은 각각 주류 대중음악을 몰락시킨 주범으로 지탄받아온 SM 엔터테인먼트(대표 이수만)와 20세기 대중문화의 키워드를 성(Sex)으로 규정한 박진영이 운영하는 JYP 엔터테인먼트의 신상품들이다. 특히 JYP 엔터테인먼트는 ‘비와 한류’ 그리고 ‘박진영과 미국진출’ 등에서 보듯 언론플레이에도 능하다. 그래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주목은 한계에 직면한 아이돌양성시스템을 넘어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목소리가 공감대를 넓혀가는 시점에서 자칫 성급하고 잘못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서태지에 의해 대중음악계의 수위가 동반상승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그의 등장 이후 대중음악계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그렇다면 음악적 개성과 충실한 팬덤을 지닌, 그래서 뮤지션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경우는 어떨까. 애니밴드는 실력파(?) 가수들이 웰-메이드 음악을 서비스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니콜이 이른바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로 내세운 애니밴드는 보아, 타블로, 시아준수, 진보라로 구성되었다. 영화에 가까운 뮤직비디오가 케이블을 장악하고 있는데, 생기를 잃은 도시에 게릴라들이 등장하여 음악으로 활기를 되살린다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휴대전화를 수시로 등장시키고 애니콜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가사로 채워진 장편 CF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내용과는 반대로 가수들이 자본에 철저히 예속당한 음울한 케이스이고, 전적으로 자본이 요구한 틀에 끼워 맞춰진 CM송에 불과하다. 문화에마저 개발주의을 가져다 붙이는 천박한 세태에서 “자본의,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작업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솔직하고 정감어린 스쿠류바송이나 아카시아껌의 CM송이 음악에 가깝다.

이 시점에 서태지가 이슈로 떠올랐다. 15,000장 한정으로 출시되는 서태지의 15주년기념음반은 발매일인 11월 30일까지 한참이 남았음에도 전량 매진되었다. 컴백에 앞서 영향력을 점검하는 프리마케팅 차원의 이벤트가 괜찮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그래선지 서태지가 대중음악계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여 지금까지 서태지에 의해 대중음악계의 수위가 동반상승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그의 등장 이후 대중음악계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특정세대를 대상으로 활동하면서 치고 빠지는 움직임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해외 트렌드를 수입·재현하면서 앨범마다 장르를 달리하는 전술은 아이돌 양성업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서태지는 스스로를 섬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사실 15주년기념음반을 사고판 건 서태지와 그 팬들만이 아니다. 한정판매 예약마감 직후 그 몇 배에 달하는 가격이 붙어 물품거래 사이트에 올려지고 있으니까.

이슈의 존재는 긍정적이다. 아이돌 스타의 가치는 존재하며, 상업주의와 대중음악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러나 경계해야할 표본들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막연한 기대심리의 조장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또는 서태지에 대한 기사들에 습관처럼 끼어드는 “침체된 대중음악시장에…”로 시작하는 문장은 그간 질적인 성장과 의미 있는 움직임을 이어온 전체 대중음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재생산할 소지가 있다. 이 와중에 전문가라는 이들은 음악비평이라기보다 상품감정을 위해 불려 다니느라 바쁘다. ‘대중음악’은 모호하게 범주화된 ‘소비군중을 위해 생산된 음악’이라기보다는 ‘동시대를 사는 인민이 생산한 음악’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성찰이 간과된 논의는 농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해도 눈덩이는 결국엔 녹아내린다. 흔적도 없이.



* 나도원 _  대중음악평론가.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비평계에 입문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의회 회원이며, <가슴> 편집인, 2005 · 2006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매체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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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는 박진영과 관련이 있는 '가수'라고 알고 있었지만, <소녀시대>는 얼마전까지도 이승철의 노래를 누군가 새로 리바이벌 해서 히트치는 줄 알았다. <마야>의 "소녀시대" 같이.....

서태지를 보니 천리안 시절이 생각난다. 서태지를 두고 새로운 '혁명의 아이콘'이라고 외치던 논객들이 있었다. 누군가 서태지를 약간이라도 비판할라 치면 락을 모른다느니, 음악을 모른다느니 하며 게거품을 물던 친구들... 그 친구들 요즘 뭐하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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