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365] 이탁오 ‘분서’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년 11월 18일


이탁오를 처음 읽은 것은 39살이었을 게다. ‘분서’(한길사)를 구입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이었지만, 다른 책들에 빠져 있느라, 눈길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39살, 나는 마흔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었다. 젊은 시절 무절제하게 사용했던 신체는 곳곳에서 고장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몸을 추스르며 한동안 숨고르기를 할 때 손에 잡았던 것이 바로 ‘분서’였다. 동심설(童心說)을 위시한 몇몇 글을 조심스럽게 읽어나갔다. 명대 사상사에 대한 선이해가 없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동심설’을 위시한 몇몇 글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정신 전체에 퍼져나갔다. 요약하자면, 개인이 믿고 있는 진리는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탁오는 그 당시의 진리였던 주자학에 대해 이 말을 서슴지 않고 퍼부었다.

프란츠 파농은 자신이 제국주의 교육에 의해 식민지인으로 만들어진 인간임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한데 나는 이탁오를 통해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한 국가와 사회 속에서 권력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개인의 대뇌를 프로그래밍하는 일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권력적 관계가 성립하는 그 순간 진리란 이름으로, 교육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주체는 제작될 뿐인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국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남김없이 오염되어 있다.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분서’를 쓸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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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년 전부터 이탁오 사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분서>는 읽고 싶은데, 끝까지 읽어낼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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