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인도, ‘富’ 와 ‘貧’ 의 무덤덤한 동거

뭄바이·방갈로르·델리 | 김주현 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16일


-상업·금융 중심도시 뭄바이 현장-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곳이 있다. 같은 장소지만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차원은 제각각이다.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상징하는 고층 건물이 우뚝 솟아있는 바로 옆에 찢어진 천막이 붙어 있다. 거리를 오가는 ‘거지’들은 화려한 레스토랑을 봐도 무덤덤하다. 부자들은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을 끼고 살지만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인도의 고성장을 주도하는 부유층은 주연 배우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빈곤층은 그저 스쳐가는 관객에 불과하다.

인도 뭄바이 시내 중심가 시장 입구의 낡은 건물에 화려한 광고판이 걸려 있다. 경제발전과 빈곤심화라는 인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뭄바이/김주현기자

지난달 31일 인도의 경제수도 뭄바이를 방문했다. 뭄바이는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250여년간 인도의 상업·금융 기능을 해왔던 경제수도다. 인도의 면화가 유럽으로 수출되는 통로로 인도 전체 물동량의 50%가 뭄바이를 거친다. 인도 100대 기업 중 41개, 10대 기업의 8개가 뭄바이에 몰려있다. 인도시장을 노리는 전 세계 기업과 금융자본도 뭄바이를 빼고선 상상하기 힘들다.

경제수도 뭄바이는 ‘자본의 집약’을 빼면 두 가지가 유명하다. 인도 최대의 빨래터 ‘도비가트’와 아시아 최대의 슬럼가인 ‘다라비’가 뭄바이에 있다. 경제발전과 빈부격차 심화라는 인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도시다.

다라비에서 만난 스크터탄 아부둘 세익(55)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하루 세 끼를 거르지 않고 먹는 것”이다. 그에게는 인도 경제가 발전하고 그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는 것은 남의 문제다.

다라비에서 쿨리(노동자)로 20년째 일한다는 한 남자는 “장래희망이나 꿈 같은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해봤자 될 것도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짐을 한번 날라줄 때마다 50루피(약 1165원)를 받는 데 일이 없어 심심찮게 굶기도 한다는 그는 “이렇게 사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했다. 나비 뭄바이에서 구루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것을 업으로 한다는 두갈은 “삶은 허상”이라며 “허상에 얽매이기보다 진아를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궁핍한 삶은 허상에 불과해 이를 벗어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인도 뭄바이 도심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대형 송유관 옆에 하층민들이 천막을 짓고 살고 있다. 뭄바이/김주현기자

인도 정부도 극빈층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고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도 델리에서 만난 재경부 수바 라오 차관은 “하루 2달러 이하를 버는 극빈층은 7억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지만 통계를 보면 많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저소득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근로 사업과 무직자에 대한 취업알선제도 등으로 극빈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셰일라 딕시트 델리주 수상은 “어린이 대부분을 학교에 보내 교육을 통해 빈곤문제를 당대에 끝낼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며 “특히 여성·여아·어린이를 위한 의료와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딕시트 수상은 “델리시의 경우 무료교육을 하지만, 매년 전국에서 50만명씩 몰려드는 사람들의 문제는 시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발을 뺐다.

이런 제도는 빈곤층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거리를 찾아 시골에서 뭄바이로 왔다는 우샤(10·여)는 “학교에 가서 배워야 잘 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거지도 직업”이라며 “공부하기 싫다”고 말했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이다.

인도 국영 TV인 두르달산의 동글 디렉터는 “경제와 빈곤 등의 문제를 다루지만 방송이 대안을 제시하고 직접 선도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도 지도층들은 빈부격차 문제가 개선되고 있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도경제인연합회(CII) 비크람 바드샤 사무총장은 “빈곤층의 문제는 어느 나라나 겪는 것”이라며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딕시트 주지사나 라오 차관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런 태도는 어찌보면 한국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비슷하다. 인도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기자가 한국언론재단과 인도 정부를 통해서 인도중앙은행(RBI) 총재와 몇달 전부터 면담 약속을 잡았는데 약속시간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가 면담 장소에 도착하니까 그제서야 세계은행 총재가 와서 면담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미리 시간을 조율할 수 있었지만 가만히 있다가 불가항력임을 강조했다. 그것이 인도라는 것이다.

인도 실리콘밸리라는 방갈로르도 비슷하다. 인도의 정보기술(IT) 본산이라지만 전력이 부족해 기업과 공장마다 자가발전기와 대형 축전기를 갖고 있다. 거리는 배수가 안돼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고, 인터넷은 자주 끊겨 기업마다 자체적인 위성 인터넷 수신기를 통해 사업을 하는 데도 “그래도 발전하는 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바드샤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인도에 오면 인도식 ‘스탠더드’를 따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 등 외국 기업이 동남아 등에 진출할 때처럼 하면 안된다”면서 인도식 관점을 강조했다. 인도는 인도 나름의 해법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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