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국도는 달리고 싶다 평화의 강 되어
경기도미술관 기획전 ‘경기, 1번국도’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1 15


» 경기도미술관 기획전 ‘경기, 1번국도’
오래 전에 끊긴 길. 이녘 아스팔트길 끝에 한 사람. 저녘 황톳길에 또 한 사람. 하염없이 마주보고 앉았다.(이종빈) 사이의 강물은 작은 유리덮개 나침반들. 바늘이 일제히 남북을 가리키면서 P. E. A. C. E. 라고 쓴다.(김승영)

지난 10일 오후 ‘경기, 1번국도’전(내년 1월23일까지) 개막식. 사제간인 이종빈-김승영 작가는 자신들이 개별 출품한 작품이 한 합동작업처럼 한데 어우러진 걸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안산의 경기도미술관이 1번국도를 주제로 현장미술 작가 50여명을 호출한 기획전시실은 오랜만에 와싹와싹 흥이 넘쳤다.

■ 화살과 동심원=1번 국도는 목포와 신의주를 잇는 국도. 본디 파발마가 달리던 길을 일제가 ‘신작로’로 넓혀 1번이라 번호 붙인 것. 그 길은 한반도를 남북 종단하는 대동맥이었다. 신의주는 다시 중국의 단둥, 베이징, 시안을 거쳐 실크로드로 연결된다. 그 길을 따라 동~서, 해양~대륙 문명이 흐르며 교집합을 이룬 것이 조선문명이다. 경기도 1번국도는 평택~오산~수원~의왕~서울~고양~파주~문산. 평택~서울은 넓고 물류가 왕성하지만 서울~문산은 좁고 왕래가 적은데다 흐르느니 군용물이다. 그나마 그 흐름은 철책선 앞에서 뚝 끊긴다.

1번국도가 흐름을 멈춘 데 반해 숨쉬는 가상 동심원이 있다. 타원형 서울은 재물과 서비스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면서 거대한 호흡이 이뤄진다. 인천, 수원, 의정부, 파주, 춘천, 원주 등으로 이어진 길에 잇대어 작은 실핏줄 길의 끝. 마을들과 사람들이 영양을 공급 받는다. 관가-아파트-공장-농업지대 순으로 엔트로피 현상을 보이면서 동심원을 그린다. 경기도는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두번째 큰 원. 서울의 모든 투정을 받아내고 서울에서 버린 것을 떠안으면서 시선은 항상 서울쪽이다. 정리하자면 경기도는 가운데가 빈 도너츠에 화살이 꽂힌 모양새다.

분단 장벽에 끊겨버린 ‘1번국도’ 날줄 삼고
서울 떠안고 신음하는 지역정체성 씨줄 삼아
현장미술가 50여명이 포착한 ‘경기도의 오늘’


» 고승현의 ‘길’ 경기도미술관 제공
■ 서울 미술-경기도 미술=‘지금, 여기’의 현실에 더듬이를 대고 그 상처를 몸으로 앓는 이가 예술가라면 경기도는 예술인들의 보고일 터. 도시화의 후기에 이른 서울이 단지 짓고 부수는 무의미한 일에 몰두하는 반면 경기도는 생성과 소멸을 오가며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의 현장이다. 국도 1번을 따라 분단 문제가 응축돼 있고 동심원 갈피에는 현대화의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철책선, 군부대, 신도시, 이주노동자, 환경오염, 빈부격차 등등 곳곳이 시대의 상처다.

미술 동네 역시 이에 대응한다. 서울은 평면 회화가 중심에 놓이고 다른 장르가 외곽에 포진한 형국이며 소재 역시 비구상이 주류인 반면 경기도는 조각과 설치, 공공미술, 사진·비디오 등 즉응하는 장르가 주를 이룬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현장성이 강하다 보니 회화보다는 전달력이 강한 장르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 작품들의 이야기=경기 북부는 경원선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노재철) 그곳에는 새가 되고싶은 작가(이반)가 살고 ‘보트 피플’ 같은 실향민(윤석남)이 먼 데를 바라본다. 분단 뒤안에는 미군이 있어, 캠프 험프리에는 종일 비행기가 날고(고길천), 미군기지가 오면서 자기 땅에서 쫓겨난 대추리 사람들의 한은 하늘을 톺아오른다.(이윤엽, 이종구)

1번국도를 더듬으면(박광옥) 서걱이는 갈대숲의 노래도 있지만(김해심) 쓰레기 먹는 말(문병탁)을 풀어놓고 싶은 곳도 있다. 주변에는 모래성 같은 신도시들(강영민). 버려진 가구들(박이창식)은 개발에 밀려난 떠돌이(임승천)의 혼령일 터이다. 한국전 상처가 그대로인 채(임옥상) 지뢰와 철조망 투성이인 디엠지(이시우). 추석 보름달은 경계를 넘어도(박준식) 인간들은 망원경 구멍으로 엿볼 수밖에 없다.(노순택) 1번국도는 꿈꾼다. 언젠가 끊긴 것을 이어(고승현) 실크로드를 달리는 꿈을.(민정기)

» 경기도미술관 기획전 ‘경기, 1번국도’
■ 기획자 가로되=경기도의 상처와 염원이 모인 전시장은 고통스런 신음소리, 또는 한풀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시를 기획한 김종길 큐레이터는 “그런 느낌이 날 것이다. 주제 자체가 강렬하고 현장성이 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의 전시를 대안공간 아닌 제도권 미술관에서 포섭한 것을 의미있게 봐 달라고 주문했다. 또 흔적처럼 남은 1970~80년대의 민중미술과 요즘 현장에 진입해 활동하는 젊은 현장미술 사이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60대 선배작가와 20대 젊은작가의 훈훈한 만남이 있었다고 전했다.

12월 8일 오후2~4시 경기도미술관 강당에서 평화를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 강사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서경식 연구교수.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올해는 서해안에 새우가 풍년이란 소식이다. 그래서인지 어제 수원성을 돌아보는 길, 팔달문 가는 길에 있는 지동시장 난전에는 생새우가 넘쳐나는 것 같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소래포구에 새우 사러 갈 때 경기도미술관에 한번 들러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