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동지’ 신뢰…주요 인프라 ‘중국제’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⑦중국, 적인가 동지인가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9 27
권혁철 기자 / 서수민 기자


» 수단의 수도 하르툼의 한 건설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중국 노동자와 현지인들이 취재 협조를 구하자 웃음을 지었다. 하르툼/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아프리카의 관문 구실을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오아르(OR) 탐보공항. 보안검색 요원이나 항공사 승무원들은 눈길이 마주치는 동양인들에게 “니하오”(안녕) “쎄쎄”(감사) 등의 중국말 인사를 건네기 일쑤다. 느닷없는 중국인 취급에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이 얼마나 활발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겨레> 취재진이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가면 난생 처음 동양인을 보는 어린이들이 몰려들어 “시나”(중국인)라고 외치곤 했다. 60·70년대 일본이 부상할 때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동양인을 보면 으레 일본 사람인지를 묻던 것처럼, 요즘 아프리카에서는 ‘동양인=중국인’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70년대부터 무상원조 공세…전지역서 ‘차이나 바람’
자원 놓고 미와 패권다툼…현지 노동력 안써 불만도


» 아프리카 원유 하루 생산량 / 중국-아프리카 국가별 무역 규모
아프리카 나라들의 주요 산업 기반은 대부분 ‘중국제’다. 대표적 사례가 수단이다. 수단은 산유국이면서도 정유시설이 변변찮아 오랫동안 정유된 석유를 수입해왔다. 수단을 본격적인 석유 수출국으로 부상하게 만든 1등 공신이 하르툼 정유공장이다. 이 정유공장은 해마다 10% 대에 이르는 고도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남아공과 이집트 사이에 있는 유일한 정유공장인 이 공장은 중국국영석유회사(CNPC)와 수단 광업에너지부가 합작해 2000년에 완공했다. 정유 규모가 연간 250만톤이며, 항공기용 제트 에이(A)유, 중유, 엘피지도 생산한다. 이 공장 가동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중국이 제공한 것이며, 기술자들도 대부분 중국인이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은 온 시내가 중국판이다. 하르툼에서 만난 한 수단인은 “서구와 달리 중국은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비즈니스를 안다”고 말했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1950∼60년대부터 시작됐다. 제3세계 외교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전통적 우방으로 70년대부터 꾸준히 무상 원조 공세를 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중국이 건설한 관공서 건물, 체육관, 병원, 도로, 주택, 학교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쌓은 신뢰가 중국의 본격적 해외 진출에 윤활유로 작용한다. 아프리카 진출에서 중국은 서방 국가들보다 휠씬 유리하다. 아프리카인들은 과거 식민지배의 기억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50·60년대 비동맹 운동을 함께 했고, 독립 투쟁을 도와준 우호국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무비아이 응카샤마 콩고 대통령 에너지·광업 담당수석비서관은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속여왔다”고 말했다.

중국이 금융·기획·설계·감리 등을 한번에 해결해주는‘턴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국을 선호하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인권 개선, 민주주의와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중국은 내정불간섭의 원칙에서 독재, 인권 탄압, 부패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란 전략을 펴고 있다. 중국은 내전이나 인권 탄압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들에도 무기를 팔고 경제 지원책을 펴고 있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맞서기 위해 ‘동쪽을 보자’(Look East)는 구호를 내세우며 친중국 정책을 들고 나왔다.

중국이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값싼 중국산 제품을 들여와 아프리카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자원을 약탈하는 제국주의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콩고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은쿠무 프레이 룽굴라 박사(인류학)는 “중국인들이 도·소매상 등 소규모 유통을 장악해 돈벌이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현지 노동력을 전혀 쓰지 않는 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중국은 공사 계약을 하면 현장의 허드렛일 인부들까지 중국인을 데려와 합숙하며 일을 한다.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중국 노동자가 7만∼8만명 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북쪽으로 300㎞ 떨어진 참비시는 중국이 8억달러를 투자해 경제무역 특구로 키우는 곳이다. 지난 2월 잠비아를 방문한 중국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이곳을 방문하려다 불상사를 걱정해 포기했다. 참비시가 아프리카에서 반중국 감정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 콩고 킨샤사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콩고 사람들이 중국행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킨샤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2년 참비시의 구리 광산을 인수한 중국 경영진은 노조탄압을 일삼고 작업장 안전은 팽개쳤다. 지난해 7월 잠비아 광부들이 임금 체불 항의 시위를 하자, 중국인 감독관이 총을 쏴서 46명이 숨졌다. 격분한 잠비아인들이 곳곳에서 중국인 상점들이 습격하는 등 반중 감정이 거세졌다. 지난해 가을 대통령 선거 때 야당 후보인 마이클 사타가 당선에 실패했지만, “중국인들을 몰아내자”며 반중감정에 호소하는 선거운동으로 28%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올 상반기에 나이지리아 유전지대에서 무장세력이 중국인 25명을 납치했고 9명을 죽였다. 유전 습격 현장을 본 사람들은 무장세력이 중국인들한테 집중 사격을 했다고 증언했다. 중국이 지역 특성이 강한 아프리카 실정를 고려하지 않고 중앙 정권과 유착해 석유 이권을 챙기다 현지인들의 반발을 사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 원유 공급의 30%를 아프리카에서 조달하고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전략 초점은 석유와 광물 등 자원 확보다. 특히 아프리카 석유 자원를 놓고 미국과 벌이는 주도권 다툼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전철을 밟는 ‘아프리카 패권 경쟁’이란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킨샤사·하르툼/권혁철 서수민 기자 nura@hani.co.kr

 

베이징 컨센서스는 정밀한 이념이라기보다는 미국 주도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도전하는 개념이다.

1990년대 미국은 남미 국가의 경제위기 해법으로 세제개혁, 무역·투자 자유화, 탈규제화 등 10가지 정책을 내놨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명명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의 대명사가 돼, 세계화 바람을 타고 힘을 얻었다. 90년대 후반 한국 경제 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요구도 워싱턴 컨센서스의 하나다.

2004년 골드만 삭스의 고문이며 중국 칭화대 라모 교수가 처음 제기한 베이징 컨센서스는 정치적 자유화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최대한 도입하는 중국식 발전국가 모델을 뜻한다. 중국 경제 발전 경험을 정리한 베이징 컨센서스는 구체성이나 실천성 면에서 워싱턴 컨센서스에 비해 뒤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달리 베이징 컨센서스는 내정 불간섭의 원칙 아래 권위주의체제를 인정하면서 발전전략을 제시한다. 서방이나 국제기구의 개혁 요구에 거부감이 있는 수단, 짐바브웨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게는 호소력이 있다.



“중국경계론 펴기 앞서 기여도 살펴야”
우쩌우시앤 주콩고 중국대사 인터뷰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9 27
권혁철 기자 / 김태형 기자

» 우쩌우시앤 주콩고 중국대사
 
7월 말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의 중국대사관 앞. 콩고인들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담장을 따라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중국 비자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이 비자 인터뷰를 기다리며 서울의 미 대사관 주변에 늘어선 풍경을 상기시켰다.

“중국 비자를 받으려는 콩고 사람들이 많더라”는 인삿말에 우쩌우시앤(吳澤獻) 콩고 주재 중국 대사는 “중국에서 사업 기회를 잡으려는 콩고인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그는 콩고와 중국 관계가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의 공세적 아프리카 진출에 대해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식민지 침탈’ ‘아프리카 패권 추구’ 등의 비판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우 대사는 “예전부터 우리는 아프리카의 친구였다”며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중국은 50년대 아프리카에선 처음으로 이집트와 외교 관계를 맺은 뒤 줄곧 아프리카 나라들의 독립투쟁을 지지하고 경제원조를 하는 등 친선 관계를 맺어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지금 아프리카가 영어권과 불어권으로 양분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에서 정말 오래된 외국인은 유럽인”이라며, 아프리카 식민 지배와 패권 추구의 장본인이었던 서방국가들이 ‘원죄 없는’ 중국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항변했다.

우 대사는 “서방 언론은 ‘중국경계론’을 펴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무엇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70년대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잇는 1800㎞ 길이 타자라 철도 건설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타자라 철도는 아프리카 철도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이 만든 철도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과 정반대로 중국은 식민주의의 종식과 아프리카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동지’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인·인도인·일본인 등 많은 아시아인들이 아프리카에 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의 개발과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점”이라며, 콩고의 국회의사당,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킨샤사의 아프리카 최대 규모 종합운동장, 킨샤사의 현대식 병원과 도로 등이 모두 중국 노동자들의 땀방울로 지어졌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대장금>의 팬이라고 밝힌 우 대사는 “중국은 아프리카의 오랜 동지였고 지금은 좋은 이웃”이라는 ‘모법답안’을 여러차례 되풀이했다.

킨샤사/글 권혁철,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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