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세상에서 평화를 꿈꾸다

군국주의적인 세계 현실에 마냥 압도되지 않았던 개화기 조선 유교적 지성들의 조용한 저항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개화기의 한국 지식인들이 처음 해외로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이 무엇이었을까? 일본이나 미국 등지의 웅장한 건물이나 ‘화륜선’(기선), 철도 등 기술 혁명의 성과물들이 압도감을 주었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본과 서구 열강들의 무비(武備·군사시설), 그리고 ‘개명한 신세계’에서 전쟁과 같은 무자비한 국가적 폭력의 엄청난 역할이었다.


△ 중국을 가르는 열강들의 모습을 풍자한 프랑스 그림. 근대 유럽 열강의 호전적 세상은 전통적 동아시아 출신들에게 끔찍한 야수의 세상으로 비쳐졌다.(격동의 구한말 역사현장)

“우리도 힘을 키우자”는 논리의 문제점

안정적인 조공 외교로 인해서 국가간 무장 갈등들이 비교적으로 드물었던 전통적 동아시아의 출신들에게, 무장 경쟁으로 쉴 새 없는 준(準)전시인 근대적 유럽 열강의 호전적 세상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야수의 세상이었다. 17세기 전반 이후로 큰 전쟁이 없었던 조선의 지식인에게는 전쟁이 바로 국가의 주업이 된 ‘문명의 신세계’가 하도 생소하기에, 전설적이다 싶은 먼 과거와의 비유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예컨대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온 젊은 온건 개화파 어윤중(魚允中·1848~96)이 고종에게 유럽식 세계질서에 대해 복명(復命·귀국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종: (요즘 시대는) 오로지 부강만을 도모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와 동일하더냐.

어윤중: 진실로 그러합니다. 춘추전국(春秋戰國)은 바로 소전국(小戰國)이며 오늘날은 바로 대전국(大戰國)이라 모든 나라가 다만 지력(智力)으로 경쟁할 뿐입니다. …현재 형세를 돌아볼 때 부강함이 아니면 국가를 지키지 못하므로 상하가 한뜻으로 노력할 것이 바로 이 한 가지 일일 뿐입니다.”(어윤중, <종정년표>(從政年表))

선혈이 낭자한 연속적인 싸움 속에서 호랑이와 같은 진나라가 점차 그 힘을 키워 주변의 약소 국가들을 잠식해버리는 전국시대는, 식민지를 부단히 넓혀가는 ‘열강’들의 작태를 지켜보던 조선 말기의 지식인들로서 가장 적합해 보이는 역사적 선례였던 셈이다. 그러면 ‘강약만이 중요해’ 침략자를 ‘인의로 책망할 수 없는’(박정양의 표현), 도덕이 없는 야수의 세상에서 약소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도리는 무엇일까?

전통의 완전한 고수를 주장하던 소수의 극단적인 위정척사파를 제외하고 대다수 논객들이 제시한 것은 여러 가지 내용의 ‘자강책’ ‘부국강병책’이었다. “무역을 확대하고 국부를 늘리고 군대를 강화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자”(유길준, <언사소>(言事疏))는 현실론은, 신학문을 어느 정도 인식했던 당시 지식인의 ‘주류’ 목소리였다.


△ 1900년대 초 현재의 세종로 큰 거리를 차례로 행진하는 러시아 군대와 프랑스 군대. 미국 해병대.(격동의 구한말 역사현장)


그러나 “우리도 힘을 키우자”라는, 1880년대 초부터 인기를 모은 논리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이미 불평등 조약의 올가미에 걸려 관세 장벽도 세우지 못하고, 왕조 말기의 극심한 부패와 민심 이반을 극복하지 못하던 조선이 과연 힘을 키울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실적 차원 못지않게 지식인들에게 중요하게 생각된 것은 이념이었다. 미국에 건너가 철저한 서구 중심주의적 ‘문명 의식’을 얻어 유교를 ‘썩은 동양 문명’으로 여기게 된 윤치호나 서재필 등 몇명의 친미파를 제외하고는, 개화파에게도 유교는 아직 궁극적인 진리로 인식됐다. 그런데 유교적인 원론 원칙의 입장에서 무기는 ‘흉물’이며 전쟁을 즐겨 벌이는 군주는 ‘주걸(紂桀)과 같은 폭군’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당위적 평화주의 신념은 시국이 시급한 만큼 일시적으로 ‘자강론’에 밀릴 수도 있었지만 유교라는 조선 사회의 가치관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이 도덕론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성순보>의 논설, 미래를 예견하다

‘근대 충격’이 빚은 현실론과 이상론의 충돌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유교적 신념이 강한 많은 온건 개화파나 개신 유림들은 당장은 부국강병, 차후에는 세계가 평화와 인의예지로 돌아와야 한다는 현실과 이상의 절충 논리를 폈다. 단순히 전쟁과 경쟁만을 주장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의 초기 사례를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으로 알려진 <한성순보>(1883~84년 발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시인이자 온건 개화파였던 강위(姜瑋·1820~84)와 나중에 큰 서예가가 된 오세창(吳世昌·1864~1953) 등의 여러 지식인이 만든 이 신문의 주된 관심사는 열강의 재정과 징병제, 산업 등 ‘부국강병의 비결’이었지만, 가끔씩 유교적 이상론의 입장에서 세계의 현실을 비판하고 전쟁 없는 세상을 모색하는 논설도 실렸다. 예컨대 제6호(1883년 12월20일)의 ‘소병론’(銷兵論·병기를 녹이자는 이야기)이라는 탁월한 논설의 서두를 보자.

“하늘과 땅 사이에 가장 무도하고 가장 비참하고 가장 해독스러운 것은 병란이고, 꼭 없애야 하면서도 늘 없애지 못하는 게 병란이다. …두 나라의 혈전에서 예봉들이 휘날려지고 총탄들이 날라나는데 한순간에 서로 죽이는 데에 있어서 어찌 전후의 순서가 있는가? 아버지가 아이를 잃고 아이가 고아가 되고 부인이 과부가 되고… 하늘의 도리를 벗어나고 인륜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닌가? 한 장군이 운이 좋아 전승을 얻어 개선한 뒤 기고만장하여 상을 얻었다 해도… 처참하게 죽은 사람의 주검들이 평야를 가득 채우고… 늙어서 혼자 남은 늙은이와 고아와 과부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애통하게 운다. 그런데 진나라나 한나라, 수나라나 당나라 등이 백전백승하여… 수백만의 군대로 천하를 호령해도… 결국 하루아침에 민심이 이반하여 무너지고 만다.”

전쟁 참화를 여실히 서술하는 이 논설은 이라크 파병을 하기로 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처지에 처했던 100여년 전 선각자들이 군국주의적인 세계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비판할 줄 알았다는 사실을 알면 선조에 대한 부끄러움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강성한 국가들이 앞을 다투어 더 큰 군함들을 만들고 한 열강이 육지를 잠식하면 또 다른 열강이 질세라 바다 섬을 잡아먹는” “위정자들이 인애(仁愛)의 마음을 뒤로 하고 오로지 전쟁과 살육만 일삼는” 병든 세상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이 논설의 익명의 필자는, 오주(五洲)의 크고 작은 모든 국가들이 세계적인 ‘의원’(議院·협의 입법기관)을 설립하여 국가간의 모든 문제들을 이 ‘의원’을 통해 국제법에 의거해 결정·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이 ‘의원’ 밑에 국제적인 ‘세계 공공의 군대’를 두어서 ‘천하의 난폭한 자’들을 토벌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하는 이 ‘세계평화안’은 놀랍도록 유엔과 유엔의 평화유지군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협력 기관들을 예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조건 항복’한 것은 아니었으니…

전쟁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길을 현실적으로 모색하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군사주의를 어떻게 지양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1880년대 이후에도 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현실인식의 골간이었다. 유명한 유림이자 계몽주의자 해학 이기(海鶴 李沂·1848~1909)처럼 묵자(墨子)의 박애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고, 최초의 도미 유학생으로도 알려진 유길준처럼 열강의 힘이 국제법을 유린하는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법과 도덕이 지배하는 국제 현실을 열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세계적 야수들이 어떤 국제기구나 국제법에 의해 순치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입장에서 끝없이 나이브(naive)하게 보이기도 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세계적 규모의 부정이 없다면 살육과 약탈이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걸 20세기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적 세계로부터 경쟁과 살육을 인정하라는 압력을 받았던 100년 전 지식인들이 현실론의 차원에서 제국주의적 ‘룰’과 타협하면서도 이상론의 차원에서 저항을 펼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제국주의 침략의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개신 유교적 지성은 결코 야수들에게 ‘무조건 항복’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대전 등의 제국주의 살육의 ‘진수’를 아직 보지 못했던 그들마저도 제국주의적 현실의 극복 방안을 모색했다는 걸 보면, 20세기의 모든 역사적 비극들을 익히 아는 우리들은 제국주의의 현대판인 신자유주의의 광포(狂暴)를 좌시(坐視)할 수 있는가.

[ 참고 사이트 ]
1) 오세창에 대한 인물 정보:

http://www.kcaf.or.kr/inmul/200108/right.htm
2) 신문박물관(구한말 일부 신문 논설의 한글 번역판을 읽을 수 있음):
http://www.presseum.org/
3) <한성순보>에 대한 간단한 정보:
http://mtcha.com.ne.kr/korea-term/sosun/term376-1-hansungsunbo.htm
4) 제국주의의 차별주의적 논리에 크게 영향받은 유길준의 글 ‘개화등급’: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u-pil/gae-hwa-deung-geub.htm
5) 어윤중에 대한 소개:
http://unsuk.kyunghee.ac.kr/old_history/history44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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