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디 - 이상은 - 『봉자』 - 그리고 '여성'
"아티스트로서 인정 받고 싶어 '담다디'의 이미지와 애써 싸워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편안해하기를 바란다. 어깨에 힘을 빼고 찬찬히 사람들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이상은.
그녀의 이름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특이한 부류에 속한다. 90년대 이후 일반화된 '기획뮤지션'들의 원조격이라고해도 좋을 만큼 철저하게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기획된 1,2집의 나름대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다며 '국외자'의 길을 자처한 그녀.
어쩌면, 이미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80년대말 한국대중음악에 저항하는 그녀 나름의 방식이었을 게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영화 『봉자』를 보셨는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살아간다는 것. 이땅 대부분의 여성들이 나름대로 그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문제들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 가부장적 사회의 직접적 피해자인 여성 자신들의 삶이나 사고들은 놀랍도록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다. '현모양처'라는 '헛소리'를 신봉하는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정작 여성문제의 본질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오로지 남성과 여성의 '성차'라는 문제에만 매달려 피해의식에 젖어 있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 제기하는 여성문제의 진지한 접근, 예컨대 나름의 (여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공유할려는 이런저런 영화나 음악, 책들에 대해서 그리고 좀더 나아가 사회운동의 한축으로서의 여성운동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할 정도이기까지 하다.
솔직히 생각해보라. 90년대 이후 나름대로 활기를 뛰고 있는 제반 여성의 권리신장이나 성차별 폐지를 위한 운동, 불평등한 호주제 등의 폐지 운동, 직장내에서의 여성 차별 폐지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는 많은 여성단체 중에서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최소한 회비라도 내고 있는 단체가 몇 군데나 있는지...
앞에서 영화 『봉자』를 언급한 것은 이런 영화, 음악, 책 하나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공유해나가는 방식, 문제해결에 접근해가는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제가 어렵느니 장사가 안 된다느니 하며 아우성치는 이 순간에도 '가진자'에게 우리 사회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회다. 단지, '개나 소나' 차 끌고 다니기에 도로가 막혀 자신의 그랜저가, 비싼 외제차가 '국산 똥차'하고 같은 속도로 달려야하는 '지랄같은' 현실이 아주 불만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기름값을 리터당 2천원이나 오천원으로 올리면 좋을 건데 하는 바램아닌 바램이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아내라는,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은 이 땅의 여성들 누구에게나 너무나 힘든 일이 틀림 없지만 아내라는, 며느리라는 굴레를 전혀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는 환경에 길들여져 있는 여성들에겐 이런 말들이 배부른 아낙네들의 한갓진 소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이런 현실에서는 "여성의 하나된 힘으로~~"가 통하지 않는다. 이러할 때 문제의 접근방식은 단지 '딸들아, 일어나라!'는 구호가 아니라 '하나의 여성'을 가로막고 있는 게 과연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된다.
위에서 말한, 나름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들--그것이 영화이든 책이든 음악이든지 간에--에 대한 관심이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 된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은, 이땅에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살아가는 것에 너무나 곤혹스러운 많은 여성들은 『봉자』보다는 『단적비연수』를, 『델마와 루이스』보다는 『귀여운 여인』을, 『돌로레스 클레이본』보다는 『사랑과 영혼』을 더 많이 기억한다.
생각해보라! 위에서 언급한 후자의 영화들은 하나 같이 지고지순한 사랑 내지는 한 남자에의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전부다. 그리고 이것은 곧 이 엄격한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큰 힘이 되는 요소가 아닌가? 왜 여성은 항상 한 남자만을 쳐다보거나 한 남자의 사랑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왜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여성 스스로 눈물 흘리며 감동적이었다느니 하는 말들을 하며 극장 문을 나서야 하는가?
이땅의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지배구조는 단순히 여성의 대립항으로서의 남성, 혹은 그 반대의 '성차의 문제'만은 아니다. 기존의 지배구조를 교묘하게 재생산해내는 교육, 문화, 경제, 정치 등 제반 사회구조적 문제들의 총합인 것이다.
여성의 차별, 여성의 지위 문제만 나오면 남자가 어떻고 하는 소리들은 그야말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즉자적 대응의 전형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즉자적 대응으로는 천 년 만 년이 가도 이 '잘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는 꿈쩍도 않는다.
또 하나, 내가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고통받았기에 내딸만은 안 그래야 되겠다는 생각은 분명 엄마된 입장으로서는이해해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내딸 고생시키지 않을 좋은 남자 골라 보내야 겠다는, 맏며느리는 고생하기에 장남에게 시집 안 보내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한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는 셈이다.
생각해보라! 그럼 내 딸이 피해간 그 남자, 그 장남에게 시집가는 다른 여자들은? 내 딸만 안 그러면 된다는 말인가? 여성의 입장에서 부모된 입장에서 살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해는 해줄 수 있어도 (여성)문제해결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영화 『봉자』의 O.S.T. 음반(『SHE WANTED』)과 이상은 10집을 이야기 할려고 시작했던 건데 이야기가 옆으로 한참을 새버렸다. 『봉자』 O.S.T. 음반을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굳이 구입할 필요까지는 없는 음반이고, 오히려 구입할 필요가 있는 음반은 이번에 새로 발매된 이상은 10집이다.
“여럿이 모여 웃고 떠들어도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할 때는 숨겨놨던 고독과 상처를 만나기 마련이다. 이런 존재의 아픔이 당신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음악을 빌어 일대일의 대화처럼 나누고 싶다.”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의 그녀의 말처럼 수록된 11곡 전부가 삶의 이모저모를 고요히 응시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2002.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