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7
제프리 초서 지음, 김영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초서/문예출판사]영국 문학의 아버지 초서의 불후의 명작~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만났던 영국이 자랑하는 시인을 책으로 만나다니, 영광이다. 켄터베리 이야기로 알려진 영국의 중세 시인 제프리 초서를 이렇게 만나다니, 감개무량하다. 제프리 초서라면 영국 문학의 아버지이자 중세 영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 아닌가. 라틴어로 쓰인 문학이 인정을 받던 시절에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영시를 처음으로 쓴 작가 아닌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코너에 첫 번째로 안장된 시인이었다니, 그가 영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훗날 셰익스피어의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을 초서의 작품 중에서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는 가장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는 문학의 소재로 자주 다뤄지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러브스토리다. 8,200여 행의 장편 로맨스시다. 트로이 왕자 트로일러스와 트로이를 버리고 그리스로 도망간 예언자 칼카스의 딸 크리세이드와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장편 대서사시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출간되었다고 하니, 더욱 소중하게 읽은 책이다.

 

트로이의 국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트로일러스는 오만방자한 왕자다. 그는 모든 연애하는 자들을 비웃는 것으로 유명한 왕자다. 하지만 최고의 경배 의식인 팔라디온 축제에 갔다가 사람들 사이에 숨은 미모의 크리세이드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 방금 전까지도 사랑에 빠진 이들을 조롱했던 트로일러스가 한순간에 상복을 입은 크리세이드의 미모에 빠지다니. 트로일러스는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사랑의 포로가 된 채 짝사랑의 열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른다.

 

보라, 자신을 그처럼 현명하다고 호언장담하며

사랑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경멸하던 그가

사랑의 신이 그녀의 알 듯 말 듯 한 눈빛 속에

머물고 있었음을 전혀 알지는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타들어가

죽을 것만 같다고 하니, 이처럼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사랑의 신은 찬미 받으소서! (24)

 

하지만 크리세이드는 숨죽이며 살아가는 처지다. 자신의 아버지인 예언자 칼카스는 그리스군대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임을 점괘를 통해 알게 되자 트로이를 버리고 몰래 그리스로 달아난 역적이었기 때문이다. 트로이에서는 칼카스를 응징하겠노라고 벼르고 있기에 그녀의 처지는 난감할 수밖에. 혈혈단신의 과부인 그녀는 트로이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일까. 그녀는 또 다른 왕자 엑토르의 배려로 신변 보호를 받으며 품위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결코 쓴맛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단맛을 알 수 있겠습니까?

슬픔이나 고통에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마음의 행복이 뭔지 모를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흰색은 검정색에 의해 명예는 수치에 의해

서로 대비되면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지요.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와 같이 보는 것입니다. (41)

 

어쨌든 트로일러스는 크리세이드의 환심을 사려고 전쟁에 나가 혁혁한 공을 세운다. 트로이의 왕자답게 평정심을 유지하려하지만 친구 판다로스에게 짝사랑을 들키게 된다. 결국 크리세이드의 삼촌이자 자신의 친구인 판다로스의 도움을 받아 크리세이드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게 된다. 쉬운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트로일러스는 판다로스의 기지로 어렵게 크리세이드의 사랑을 얻게 되지만 포로 교환 협정에 따라 그리스로 가게 되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지는 걸까. 애초에 영리하고 현명했던 크리세이드였기 때문일까. 트로이를 떠나 그리스로 간 크리세이드는 트로이로 돌아온다는 트로일러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데......

 

 

 

 

사랑에 어리숙하고 용기가 부족한 남자 트로일러스 왕자와 영리하고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과부 크리세이드와의 비극적 사랑은 처음부터 그려진 결과였다.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을 통한 슬픔과 기쁨, 다시 슬픔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이야기가 어쩌면 흔한 러브 스토리일 것이다. 하지만 초서가 영시로 살려 낸 명대사를 보면서 마치 연극을 감상한 느낌이다. 반전을 오가는 사랑의 줄타기 속에서 아름다운 시어들이 빛나고, 배신 속에서도 훌륭한 은유가 차고 넘치기에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명대사 속에 숨은 삶의 통찰은 작품의 매력을 한층 더하고 있다. 영국인들이 영시로 읽었을 때의 감동은 몇 배가 되지 않을까. 영국 문학의 아버지 초서의 불후의 명작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불행한 사람에게는 자기보다 더 고통 받는 이가 옆에 있을 때 위로가 된다.

사람은 종종 자신이 두들겨 맞는 매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 번다. (본문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