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줘서 고마워요 - 사랑PD가 만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은 사람들
유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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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줘서 고마워요.

무엇 때문에 살아줘서 고맙다고 할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무척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필자의 이력이 만만찮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으로 나름 노동자를 위해 순수한 열정을 불살랐고 현실과 구호의 괴리를 깨닫고 PD가 되었다. PD가 된 이후로는 사람들의 가슴에 온기를 불어 넣고자 남들은 관심도 없는 빈민가로, 병실로, 전쟁터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 결과 국제에미상, 반프월드TV페스티벌에서의 수상 등을 일궈냈다. 책 속의 내용들은 그가 맡은 휴먼다큐 사랑, 김혜수의 W, PD수첩, 휴먼다큐 그날 등을 찍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다. 물 흐르듯 읽히는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눈물 콧물 훔치면서도 주말오후에 다 읽어 버렸다.

만약에 내게 자유와 평화가 제한된다면? 차별과 증오로 내 삶이 가득 채워져 있다면? 고통과 질병으로 내 터전이 가득하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도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의 행복과 여유, 건강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닌가? 당장 살아가는 하루하루로 인해 내일을 기약 할 수 없으니 전쟁을 치르듯 삭막한 심정으로 살아야 할게다.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기에 휴먼 다큐 그날, 휴먼 다큐 사랑, 김혜수의 W, PD수첩 등을 인터넷 신문으로 아는 정도였다. 키 작은 엄지공주, 풀빵엄마의 죽음 정도만 기억될 뿐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우연히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보고는 저자가 PD이고, 출판사가 문학동네이고( 얼마 전 독자모니터를 통해 귀한 책을 선물로 받은 행복한 기억이 있어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인지상정 아닐까.) 책을 좋아하니까 사서 읽어 본 것일 뿐이다.

책 내용은 평범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평범했다면 공감 정도이지 그리 큰 감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족해서 불평해야 할 사람들이, 불공평해서 불편하다고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감사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뜨끔했다. 둔탁한 몽둥이가 온 몸을 치고 지나간 듯 머리는 멍멍했고 몸은 뻣뻣했다. 이웃을 세밀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 그들의 순도 100% 이야기에 감동 먹었다.

'안녕 아빠' 의 준호씨 가족을 얘기할 때부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 사랑……. " 아내에게 보내는 문자 앞에서 가족들을 위해 살고자 애썼을 그의 마음을 생각하니 죄 없는 사람을 왜 잃어야만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왜 떨어뜨려 놔야 하는지 서글펐다. 고통스런 아픔 앞에서, 지독한 가난 앞에서 가족이란 두 글자만으로도 똘똘 뭉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에 뭉클한 감동이 몰려왔다. 때론 가족의 힘만으로는 한계에 부닥칠 만한데도 기죽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랑의 꽃을 피우고 꿈의 열매를 맺기도 하나보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성적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맞는 말이다. (p.145)

레바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던 곳, 지금은 삶과 죽음의 대비가 너무나 선명한 곳. 그곳에서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을 펼치는 후웨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100% 순수와 열정으로 헌신하는 그녀를 보며 전쟁이 더 이상 없기를 기도한다. 혼자의 힘보단 여럿 합친 힘을 보탰으면 한다. 60여 년 전 우리도 6.25 전쟁을 겪었다. 그 전쟁으로 죄 없는 목숨을 잃어야 했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이별해야했다. 우리가족도 전쟁으로 이모와 이별을 해야 했다. 미국으로 갔다는데 잘 계시는 건지 살아 있는지 이모를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펑 뚫린 듯 찬바람이 몰아친다. 더 이상 전쟁은 없었으면 한다. 수 백 년 전 아프리카 원주민 이로코이 부족은 '지금 행동에 옮기기 전에 일곱 번째 세대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했다.(p.192) 코 앞의 이익, 당대의 이익보다 후손들에 끼칠 영향까지 생각하라는 뜻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명심해야 할 말이다. 후손들에게 전쟁과 고통, 오염, 갈등, 절망 등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는가.

신체적으로는 약하디 약한 엄지공주의 의지도 감동적이고 풀빵 엄마의 의지와 초인적인 사랑도 감동적이지만 할머니 삼총사의 초등학교 입학은 내 엄마가 생각이 나서 가슴 절이면서도 흐뭇하게 읽었다. 일찍 할머니를 여윈 엄마는 전쟁 통에 집안 살림을 해야 돼서 초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엄마는 배우고 싶은 열망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집안 살림을 꾸리셨다. 어린 시절 우리는 무척이나 가난했지만 철없는 우리 5 남매는 배우고 싶다며 중학교 보내달라(그 시절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보내달라고 떼쓰곤 했었다. 그 시절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엄마의 인생도 많이 달라졌겠지. 총명하고 책임감 강했던 우리 엄마는 지금도 글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을 힘들어 하신다.

"꿈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고, 꿈을 이루는데 늦은 출발이란 없다고, 꿈을 품는 것만으로도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다워 진다는 것을 할머니 삼총사의 그날과 함께 배울 수 있었다. "(p.205) 할머니들의 늦은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귀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감사와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에 놀라웠다. 긍정의 기운은 에너지를 솟아나게 한다는 걸 절감했다. 절망 속에서 사랑의 꽃을, 희망의 꽃을 피우는 힘 솟는 삶을 꾸려가는 용기있는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 또한 감사의 물결에 휩쓸리게 해줘서 고마웠다. 존경을 표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도 가진 것에 대한 감사와 꿈, 희망으로 살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 잃어버리기 전에 없어지기 전에 가진 것이 작더라도 나누고 행복해 하고 감사하는 모습. 지독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꿋꿋한 의지로, 거목 같은 믿음으로 인간승리를 보여줬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흐르는 눈물을 감당 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그들로부터 희망과 긍정의 기운을 선물로 듬뿍 받았다.

이런 아름다운 실화들을 캐내줘서 고마워요. 작가님.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해서 고마워요. 가족이란 두 글자, 사랑이라는 두 글자, 믿음이라는 두 글자의 힘을 일깨워줘서 고마워요. 그들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살아줘서 고마운 것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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