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인간의 부족함과 내면의 영웅적 면모를 이야기하는 한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범죄소설은 낙관적인 장르다. 겨우 몇 시간뿐이라고 해도, 우리는 오직 범죄소설 안에서만 폭력을 종료시키고 범죄자를 저지함으로써 세상을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라르스 셰플레르 - P10

마르틴 베크는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 책임자인 터라 미행이나 감시를 직접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일을 대신 해줄부하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대체로 무진장 지루할 뿐인 이런 일에 종종 자원했다. 책임자가 되면서 갈수록 비대해지는 관료주의의 성가신 요구에 응대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지만, 현장에 대한 감을 잃고 싶진 않았다. 아쉽게도 둘 중 하나를 한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좌우간그는 국가경찰청장과의 회의에 앉아서 하품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콜베리와 순찰차에 앉아서 하품하는 편이 더 좋았다. - P33

그 공항은 국가의 수치였고, 그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였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 이곳까지 실제 비행시간은 겨우 오십 분이었지만 비행기는 지금 스웨덴 최남단의 상공을 한 시간 반째 맴돌고 있었다.
"안개가 심합니다." 간결한 설명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비행장은 스웨덴에서 안개가 제일 많이 끼는 지역에 본래 거주하던 주민들을 쫓아내고 지어졌다. 그곳은 잘 알려진 철새 이주 경로의 한중간이었고, 도심으로부터도 멀어서 불편했다.
게다가 비행장은 법으로 보호되는 자연경관을 망쳤다. 광범위하고 회복 불가능한 파괴는 생태학적으로 극악한 행위였다. - P38

뇌이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식이 없는 건 좀 슬픈 것 같습니다." 다시 그가 말했다. "가끔씩. 하지만 보통은 정반대 기분이에요. 여기는 상황이 좀낫다고 해도, 여전히 이 사회에는 문제가 있거든요. 이런 데서 아이를 키우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부터가 의문이죠."
마르틴 베크는 묵묵히 있었다. 마르틴 베크가 양육에 기여한 바는 입 다물고 있으려고 노력한 것, 아이들이 대체로 알아서 자라도록 놔둔 것뿐이었다. 그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 P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전히 미쳐 있는>에 나오는 작가며 SF의 거장인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한 권은 읽어보리라 생각하였으나, SF 읽기는 또다시 실패했다. 나에게 SF를 이해할 두뇌와 사랑할 가슴을 내려주시길!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10-14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여미쳐에 나와요? 저도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햇살과함께 2023-10-15 07:32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나오는지는 모르겠고요. 르 귄은 나와요..

건수하 2023-10-14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 르귄에 이 책으로 진입을 하려고 하지만 저도 이 책이 힘들었어요 <빼앗긴 자들>이 입문에는 더 쉬웠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10-15 07:33   좋아요 0 | URL
남편이 사둔 책이라 이걸로 읽었는데.. 전 안되겠어요 ㅋㅋㅋ

유부만두 2023-10-15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어려운가보네요. 저도 겁나서 모셔 두고만 있어요.;;;

햇살과함께 2023-10-15 14:21   좋아요 0 | URL
르 귄 선생님이 무슨 잘못이겠어요. 저의 상상력 부족을 탓해야죠 흑흑…

은오 2023-10-16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님과 함께 저에게도 그 두뇌와 가슴을 ㅠㅠ

햇살과함께 2023-10-17 16:56   좋아요 0 | URL
안되요 은오님 SF까지 접수하면… 그 매력 어쩔… 저만 받을게요 ㅋㅋㅋㅋ
 

시야
휴즈는 망설이더니 돌연 강한 신뢰를 내보이며 말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 밖에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전 이제 제가 보아왔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방식으로 사물을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보는 것을 제 자신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 없이다가올 뿐입니다. 외형도 구분도, 심지어는 멀고 가까운 것도구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있습니다. 단지 그게 뭔지 말로 할 수 없을 뿐이지요. 어떤 ‘사물‘이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태가 없어요. 하지만 저는 형태 대신 변화를, 변형을 볼수 있습니다. 어쨌든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 P416

혁명 전날
그러나 타비리는 라이아에게 혁명을 남겨주었다.
운동에서 그러한 패배를 겪고 당신 반려자가 죽었는데도, 감옥에서 그렇게 계속해서 버티고 활동하고 쓸 수 있었다니 당신은 어쩌면 그리도 용감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말하곤 했다. 멍청이들. 거기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대담함, 용기. 무엇이 용기였단 말인가? 라이아는 용기가 무엇인지 이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말고 사람이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까지 인간이라는 존재가진정한 선택권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죽는다는 것은 단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 P480

라이아는 노이에게 동의했다. 라이아 자신도 그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아는 노이와 기쁨을 나눌 수 없었다. 평생을 가진 것이라곤 희망밖에 없기 때문에 희망에 기대살아온 자들은 승리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승리의 진정한 감각은 진정한 좌절 뒤에 오는 게 분명했다. 라이아는 오래전에 좌절을 잊어버렸다. 더 이상의 기쁨은 없었다. 이미 한 단계는 지나가버렸다. - P4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립."오즈딘이 말을 가로챘다. "바로 그거야! 그게 공포야. 우리가 움직인다거나 파괴를 할까 그런 게 아니야.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인 거지. 우리는 타인이야. 이곳에는 타인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 P354

하지만 그는 묻혀버린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확실히 깨닫고 있는 것이라고는 분노와 슬픔이 지워준 무거운 짐,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짐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런 생각이 마음을 짓눌러 이성을 잃게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 있자니 그런 부담이 덜어지는 듯했다. 밤에 활동해왔던 그는 어둠에 익숙했다. 이곳에서의 부담감은 바위와 흙에서 오는 것뿐이었다. 증오는 화강암보다 단단했으며 잔인함은 진흙보다 차가웠다. 흙의 검은 순결함이 그를 감쌌다. 그는 그 안에 누워 고통, 그리고 고통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끼며 몸을 떨다 잠이 들었다. - P3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상자
아이가 오솔길을 따라 절벽을 다 올라갔을 때, 오두막집은 주변을 깡충깡충 뛰놀며, 앞발을 변호사나 파리처럼 비벼대고 있었다. - P113

아홉 생명
"낡은 블록에서 떼어낸 조각들이란 말이로군." 마틴이 용감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여자를 만들 수 있었지…?"
그 질문에는 베트가 대답했다. "복제한 세포 절반을 여성으로 바꾸는 일은 쉽습니다. 세포 반에서 남성 유전자를 제거하면 기본 세포, 즉 여성으로 돌아갑니다. 오히려 거꾸로 하는 게 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인공적으로 Y염색체를 넣어주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클론은 남성으로부터 만듭니다. 클론은 양성이 있을 때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거든요." - P234

물건들
언덕회관으로 올라가던 또 다른 이웃은 황금빛 오후 햇살을 받아 부드럽고 발그레하게 빛나며 쌓여 있는 예쁘장하게 구워진 벽돌 더미, 덩어리, 무더기들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그곳에쌓여 있는 벽돌 무게만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해, 리프, 자네를 끌어당겨 가라앉힐 무게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우리와 함께 가자고, 종말의 세상 위쪽으로 말이야! - P276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10-14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발을 변호사나 파리처럼 비벼대고 있었다.ㅋㅋㅋ 토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햇살과함께 2023-10-14 09:50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좀전에 서곡님 페이퍼 보고 오랜만에 빌리 홀리데이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있었는데!!
댓글 남기려 했는데 저보다 먼저 남기시다니 ㅎㅎ
ㅋㅋㅋ 변호사 까는 이런 표현 좋습니다
이 책 진도가 너무 안나가네요.. 전 역시 SF 체질이 아닌가봐요.. 아직도 100페이지가 남았어요;;;;
서곡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서곡 2023-10-14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흐 저도 에스에프는 영화로나 보지 책은 잘 읽어서 르귄은 산문만 읽어봤네요 ㅎㅎ 응원합니다 즐독 열독 화이팅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