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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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도서관에서 4번째 대출만에. 한 인간에게 신념이란 무엇인지, 신앙이란 무엇인지. 코로나를 겪은 우리에게 더욱 절절한 소설이다. 필립 로스도 계속 읽어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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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메 소세키 <마음>

"영업부에서는 할 일이 정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는 혼자서점을 돌면 됐거든요. 도달해야 할 목표가 명확해서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속 편하다고 하면 편한 쪽이었어요. 그런데 사전을 만드는 건 그렇지가 않아요. 전원이 같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작업을 분담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어디가 문제인거냐?"
"나는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남한테 설명하는 걸 잘 못해요. 단적으로 말해 사전편집부안에서 겉돌고 있어요."
다케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미짱. 지금까지 네가 겉돌지 않은 적이 있었냐? 만날 책만읽고, 여기 친구나 애인 한 번 데려온 적 없잖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와서 뭐 하러 겉도는 걸 고민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왜지? - P45

"우리는 사전에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시간도, 돈도, 생활을하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전에쏟아야만 합니다. 가족 여행, 유원지. 말은 알고 있지만, 나는실제를 모릅니다. 마지메 씨, 그런 삶의 방식을 이해해 줄 상대인지 아닌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랍니다."
마쓰모토 선생의 입에서 연애의 중요성, 그 찬란함에 대한얘기가 나오는 줄 알고 경청했던 일동은 맥이 풀렸다. 동시에 ‘과연 마쓰모토 선생님! 사전 만들기에 방해가 될지 안 될지를기준으로 연애를 얘기하시다니‘ 하는 놀라움에 선생에 대한 경애와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 P61

"싫습니다. 그런 낡아빠진 하숙집."
"유감이네요. 소세키의 《마음》을 현대에 되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라면………."
니시오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세 그대로 걸었다.
"아아, 국어책에 실렸었죠. 유서가 별나게 길어서 진짜 웃겼어요."
"<마음>에 대한 감상이 고작 그거냐!"
니시오카의 발언이 또 아라키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너 정말로 왜 출판사에 다니는 거냐?"
"왜라니요, 붙었으니 다녀야지 어쩔 수 없잖아요."
니시오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 P70

하나의 말을 정의하고 설명하려면 반드시 다른 말을 써야 한다. 말이라는 것을 이미지화 할 때마다 마지메의 뇌리에는 목제 도쿄타워 같은 것이 떠오른다. 서로 보충하고 서로 지탱하며 절묘한 균형으로 선 흔들리기 쉬운 탑. 이미 존재하는 사전 - P80

을 아무리 비교해도, 아무리 많은 자료를 조사해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말은 마지메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위태롭게 무너져 실체를 무산시킨다.
마지메는 주말에도 소운장에 틀어박혀 말에 관해 생각했다. 서고로 쓰는 1층 구석방에서 바닥이 비좁게 책을 펼쳐 놓고 지혜를 짜냈다. - P81

관람차를 음식 섭취와 배설에 비유하다니 특이한 사람이다. 가구야가 말하는 허무함과 쓸쓸함은 사전 만들기와도 상통할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말을 모으고 뜻풀이를 하고 정의를 내려도 사전에 진정한 의미의 완성은 없다. 한 권의 사전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은 다시 꿈틀거리며 빠져나가서 형태를 바꿔 버린다. 사전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가볍게 비웃으며, 한 번 더 잡아 보시지 하고 도발하듯이.
마지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운동하는 언어가지니고 있는 방대한 열량이 한순간에 보여 주는 사물의 모습을보다 정확하게 건져 내 문자로 옮기는 일이다.
아무리 먹어도 살아 있으면 반드시 공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잡고, 또 잡아도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 간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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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전에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내 약혼녀가 되어줄래?"
"물론이지! 어머, 버키, 나 정말 행복해!"
"나도 마찬가지야." 그가 말했다. "무지무지 행복해." 잠시, 이런 행복감 때문에, 그는 자신이 놀이터 아이들을 배신한 것을 거의 잊을 수 있었다. 위퀘이크의 무고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괴롭힌 것 때문에 하느님에게 분노한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는마샤와 약혼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있는 곳을 외면하고 정상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과 만족을 끌어안으러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자 그의 이상들이 그와 맞서고 있었다ㅡ할아버지가 그에게 길러준 정직함과힘이라는 이상, 그가 제이크 그리고 데이브와 공유했던 용기와희생이라는 이상, 어린 시절 그 스스로 길렀던 사기꾼 아버지의기만적 성향을 넘어선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즉시 다시방향을 틀어 여름 동안 그가 하겠다고 계약했던 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는 사나이의 이상.
어떻게 방금과 같은 짓을 할 수 있었을까? - P138

그느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것이 너무 많았다. - P157

그러나 그에게는 싸워야 할 전쟁, 놀이터라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주어졌고, 그는 그 전쟁에서 부대를 버리고 마샤에게로, 인디언 힐의 안전으로 탈영했다. 유럽이나 태평양에서 싸우지 못한다 해도 뉴어크에 남아 위험에 처한 아이들과 더불어그들의 폴리오 공포와 싸울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이없는 이 피난처에 와 있었다. 뉴어크를 떠나 좁은 비포장도로의머나먼 끝에 있어 세상으로부터 감춰져 있고, 숲으로 위장되어공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외딴 산꼭대기의 여름 캠프로 왔다ㅡ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아이들과 논다. 그것도 행복하게! 하지만 행복을 느낄수록 수치심도 강해졌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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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캔터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여러분 모두 진정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공황을 퍼뜨리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생활의 모든 걸 가능한한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여러분 모두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 P42

합리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 P43

그애들은 우리 아이들하고 아무런 접촉이 없었어요. 이탈리아 아이들 때문이 아닙니다. 보세요, 걱정에 사로잡혀서도 안 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두려움이라는 병원균을 감염시키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이걸 극복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우리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있는 모든 일을 하면, 함께 이걸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말했다. "아, 고마워요, 젊은이, 아주 훌륭한 젊은이야." "가볼데가 있어서요. 실례해야겠습니다." 그는 그들 모두를 향해 말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들의 불안한 눈, 그가 스물세 살의 놀이터 감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강한 어떤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그에게 애원하고 있는 눈들을 들여다보았다. - P43

할아버지가 옆에 있어 이야기를 좀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그는 코퍼먼 부인이 히스테리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픔에 압도되어 그에게 미친듯이 욕을 퍼붓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옆에서 그는 그 여자가 말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다독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가 야비한 비난이나 절제되지 않은 증 - P86

오와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놀이터에서 위협적인 이탈리아 아이들 열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기운빠지는 일이었다. - P87

그는 파이프 설대로 의미심장하게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수 있다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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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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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정말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다니!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내딛는 한걸음. 그의 발걸음에 진정한 신의 가호가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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