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입문 - 말 많은 세상에서 말하지 않는 즐거움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말 버리기 연습

 

 

 

   짧고, 쉽고, 분명하고, 유익하고. 한마디로 이 책은 오며 가며 펼쳐들 수 있는 책이었다. 


   류노스케 스님의 책은 <생각 버리기 연습>으로 만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말할 땐 은근히 기대만큼 별로였다는 뉘앙스의 평을 할 때가 많은데 내겐 의외로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을 버리라는 것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매 순간마다 하고 있는 것에 더 집중하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메시지를 거의 잡념을 버리고 오감이 느껴지는 바를 더 생생히 체감해보라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예를 들어 생각에 사로잡혀 밥을 먹으면서도 전혀 밥맛을 느끼지 못하는 생활을 청산 하라는) 그것이 더 인생을 완성하는 길이라는 충고가 나같이 생각만 끊이지 않는 사람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말이 쉽지 나조차도 알 수 없게 떠오른 생각을 무슨 수로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잊으려고 하면 더욱 생각나는 헤어진 사람처럼 생각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허나 힘겹게 버리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면 버려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설파하는 것은 제대로 솔깃한 주장이었다. (가만보면 사람을 잊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버려질 수 있는 과정을 말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생각 버리기 연습>의 연장선상에 있다. 생각 버리기가 아니라 말 버리기 연습쯤 될 듯하다. 누구나 생각을 버리고, 화내지 않고, 버리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처음부터 無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有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無를 지향할 수 있다 말한다. 하지만 운이 좋아 노력한 대로 無에 가까워졌다고 해도 여전히 有는 존재한다 말한다. 생각을 버린다고 말을 아낀다고 생각이 사라지고 말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실용서에 가깝다) 아무튼, 이 책은 <생각 버리기 연습>보다 유연하고 부담이 없다. 큰 기대 없이 카페에 앉아 두어 시간 들추어 볼 수 있는 미덕을 가졌다. (그러므로 제목만큼의 심오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자기농도의 희석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용어는 ‘자기 농도’이다. 와인으로 치자면 바디감이다. 당연히, 묵직한 풀 바디감을 선호해 온 나였다.


‘나 자신’에 연연하며 ‘자기농도’를 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각자 내뱉는 지루한 얘기처럼 인간관계도 별 볼일 없어진다.    -p15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게 진심으로 자신을 말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성이며 그러한 마음만이 상대에게 잘 전달 될 것이라 믿고는 한다. 거짓된 마음 없이 내 심경을 모두 전한다면 상대가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전하여지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농도를 ‘엷게’ 만들어야 ‘맑고 투명하게’ 살면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충고한다. 인생을 맛있는 과자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재료를 아주 조금만 넣어도 충분하다고 가르친다. 책의 제목이 되고 있는 침묵은 실상 나에 대한 침묵, 나를 말하는 것에 대한 침묵이다. 나 자신에 대해 조금만 덜 말하고 조금만 더 옅어지라는 것이다. 흠칫흠칫 자꾸 호흡이 멈추었던 것은 아마도 나라는 사람이 나 자신을 말하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내 생각을 말하고 전달하는 방법과도 연결되었다.


   남에게 생각을 말할 때, 특히나 글로 전달하려고 할 때 나는 어지간한 밀도이하의 글은 아예 쓰지 않으려 한다. 사유가 헐렁한 것은 무언가 덜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초창기 리뷰 쓸 땐 생각도 충분히 하고 그 생각을 모두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부부싸움을 할 때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내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설명하면 할수록 상대는 더욱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경험...나중에는 아예 같은 시작이 될까봐 설명을 거부하던 시간... 살면서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나는 침묵이라는 카드를 써먹으며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어찌 보면 말 안하고 견디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에겐 조용히 침묵하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이는 모두가 자기 잘난 병에 걸린 사람들의 욕망이요 분노요 어리석음이라, 저자는 타이른다. 자기 색깔이 너무 짙고 강하여 발생하는 피곤함이라는 것이다.


 

비난으로부터의 자유

 

 

   저자는 특히 트집이나 불평, 비판이 실은 자기 만족을 위한 일이므로 일절 삼가라 말한다.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트집을 잡는 것은 속으로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하며 상대를 위한답시고 솔직함을 드러내는 일도 자기 농도를 높이는 일에 불과하다고. 모두의 발전을 위해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도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건져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정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역시 자의식 과잉이라는 독소 때문이라고. 이어지는 습관적인 사과 또한 순간을 모면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위선일 뿐 자신은 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라 일갈한다. 논쟁으로 상대를 이기려 하는 것도 상대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천박한 욕망의 일환이라 꼬집는다. 그럴듯한 논리로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한마디로 그런 당신보다 내가 더 잘났다는 뜻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건전한 비판이란 없으며 비판은 애초부터 모두 불건전하다는 식이다.

 

비판이란 자신이 멋지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을 그럴 듯하게 아닌 척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이란 이름을 빌려, ‘나 자신’이 가진 아우라를 드러내려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또 자기 농도가 진해지는 것을 피 할 수 없다. -p76

 


 

   흔히들 우리는 남을 비판할 때 그 사람의 발전을 위해서라며 혹은 학문적으로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며 아니면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며 자신의 비판이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비판에 상처받고 흥분하는 일을 우스운 일로 여기려는 경향들도 있다. 서로서로 이렇게 비판하는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더욱 나는 비판받지 않기 위해 완벽한 글을 써보려고 사력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내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나는 비판의 내용보다 우선 내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음에 충격을 받고서 며칠을 멍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이 비난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은 누구나 당연한 일이라고. 즉 무엇을 하든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는다는 말이다. 부처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예전부터 말해온 것이고, 지금 새삼스레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침묵을 지켜도 비난을 하고, 말을 많이 해도 비난을 하며, 조금만 말해도 비난을 한다. 이 세상에서 비난 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p127

 

무릇 비난에 대해 일일이 화를 내거나 상처를 입는 것은, ‘내가 이만큼 잘하는데 비난 받을 리가 없지’라는 기대와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와 환상도 사실은 삶에 대해 유치하게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p128

 



   아... 도대체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이만큼 잘하는데 비난 받을 리가 없지’... 왜 이 대목이 목에 가시처럼 커억 걸리는 것일까. 나는 혹시 이렇게 까지 열심히 진심으로 썼는데 누군가 나를 비난하진 않겠지... 내 진심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겠지... 내심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살면서 비난의 면역력을 높이라고 말한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 자신을 보고 막 일어난 감정을 관찰하여 감정이 발화한 지점을 집중해 응시한 후 그것이 나를 관통해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침묵수행법은 일종의 명상법이기도 한데 자기 주관적으로 만들어낸 기분을 명상으로 요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다. 당장 따라 하기만 하면 집착이 줄어들고 자기 농도가 낮추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차분히 반복해서 읽다보니 가능도 하겠다 싶었다. 


    만약 지금 화가 났다면 화가 일어난 그 지점을 집중해서 응시해 보시라... 그리고 욕망의 더러움, 질투의 유치함, 분노의 어리석음... 욕망의 바보, 질투의 멍청이, 분노의 불구...이렇게 여러번 되뇌여 보시라. 어떤 나보다 형편없는 사람(예를 들면 실력도 꽝이고 인간성도 파이고 게다가 얼굴까지 나보다 아닌 하하하)이 어느 날 갑자기 나보다 잘되어 유명세를 타고선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나는 지금 그 사람이 몹시 부럽구나...나는 지금 그렇게 되지 못한 내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하는구나... 나는 지금 그 사람보다 내가 무엇이 못났는지를 분통터져 하는구나...하면서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투시해보시라. 다른 누가 지적해서가 아닌 내게 일어난 내 감정을 내 스스로가 관찰하며 진단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견뎌낸 다면 흥분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저자는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오는 이 과정이 집착을 버리는 명상의 시간이라 말한다. 이렇게 되면 쓸데없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초조한 마음으로 나를 말하는 것에 에너지를 덜 쏟게 되고 자연스레 자기 농도가 낮아져 상대가 편안하게 느낀다고 한다.

 

 

   달리 보면 침묵하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 나를 이기는 자세로 여겨진다. 욕망에 휘둘리는 자신을 구속해 자기농도를 흐리게 한 뒤에 이야기도 몸짓도 느리게 한다면 혀로부터 오는 재앙을 막을 수는 있다는 것. 화법으로는 애매하게 부정하는 화법 - 글쎄요,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 경우도 있었군요. 어떻게 된 거 였더라. 그래요? - 와 같은 아가씨 화법이 서로간의 상처를 줄일 수 있다는 부분에선 박근혜가 생각나기도 했다.

 

 

   물론, 침묵이 반드시 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린 대부분 침묵해야 할 때 나서고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우를 범해왔으니까.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땐 이 책이 모두 진리이고 정답이다. 그것은 리뷰를 작성하는 동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나름대로 자기 자신에게 유용한 지식들을 내재화하고 새기면 되는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다음 불교에서 말하는 십선계를 적어본다. (세속에서 선행을 쌓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열 가지)

 

 

불망어 (不忘語,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불기어 (不錡語, 현란한 말을 하지 않는다)

불악구 (不惡口, 험담을 하지 않는다)

불양설 (不兩舌, 이간질을 하지 않는다)

불살생 (不殺生,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다)

불투도 (不偸盜, 도둑질하지 않는다)

불사음 (不邪淫, 남녀의 도를 문란케 하지 않는다)

불탐욕 (不貪欲, 욕망을 억누른다)

부진에 (不瞋恚, 분노를 억누른다)

불사견 (不邪見, 그릇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

 

 

   이중에 직접적으로 말과 관련된 것이 네 가지나 된다. 다른 것도 욕망이나 분노를 이기지 못해 말할 수 있고 그릇된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사실상 7할이 말이요, 입이요, 혀이다. 입하나만 잘 다스려도 인생이 평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로선 현란한 말이 제일 걸린다. 사전을 찾아보면 ‘현란하다’는 것이 ‘시나 글 따위에 아름다운 수식이 많아서 문체가 화려하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수식이 많다고 모두 화려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수식을 하지 않는다면 화려해질 확률은 줄어든다. 이번 책을 통해 ‘침묵’과 ‘현란’사이를 조심히 왕복해본다. 오가는 여정이 그럴듯 해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지도만큼 쉬워 보이진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늘 그렇듯 다음은 실천인 것이다. 나를 좀 줄이고 수식을 덜어 보자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토록 짧은 리뷰에 성공을 했다... 웃기지만 조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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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2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시는 말씀들이 모두 저에게도 상당부분 해당되는 말이라,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뜨끔합니다. 새겨들어야 할 좋은 말이 많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스피 2012-01-2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선계라 좀 뜨끔한 말이네요.과연 저대로 살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보물선 2012-01-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트에 <굿바이 카뮈>가 있네?

선물받아 읽고 있는 책인데
도무지 책표지가 너무 맘에 안들어.
초등3학년용 책 같아.
나름 철학책인데 표지가 좀 우아~했으면 ㅋㅋ
간만에 달력종이 찾아서 책한번 싸봐... 우...ㅅ ㅅㅣ...

보물선 2012-01-27 15:30   좋아요 0 | URL
내가 오늘 미투에 이상문학상 표지 이야기 올렸는데!
맘이 통했어~

꽃도둑 2012-01-2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농도를 엷게 만들라고 하셨다고요?...그러다 물처럼 되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인간이 될런지요?...ㅎㅎ
공자께서 말씀하셨지요. "모두가 좋다고 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저는 공자님 말씀에 한표!ㅎㅎ
저자 이 분의 말씀은 다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 서면 자기농도를 엷게 만드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하루에 수십번도 짙어졌다 묽어졌다 하는데....(나만 그런가?)
이론과 실제의 괴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하는데..
그래서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책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네요..^^

반딧불이 2012-01-2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이 금이 되기는 커녕 싸움이 되는 일이 많은 저도 뜨끔하는 글이군요. '인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양념을 조금만 넣어야'한다는 말씀 올해보터 명심하고 살아야겠습니다.
 

 

 

 

 

 

 

#1.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가

 

 

 

   오년 전 부터인가 부모님 모두가 내 곁을 떠나고 난 후 내 명절의 풍경은 결코 평범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공백을 견디기 위해 나는 주로 떠나거나 숨거나 책을 쌓아왔다. 이번이 열한 번째의 명절인데 설이 2월로만 되었어도 오랜만에 바람을 쐬어 보려 했으나 날이 너무 추워 한 달 뒤로 미루었다. 마침 부모님의 기일이 명절을 기점으로 사이좋게 한 달 차 밖에 되지 않아 나는 그때그때 내 편의대로 명절과 적절히 믹스하여 떠날 구실을 만들어왔다. 처음 삼년까지는 산소 앞에 가면 눈물이 절로 떨어지곤 했는데 이젠 그 타이밍이 조금씩 늦추어 진다. 슬프다기 보다 담담해지는 심정이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나는 이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돌아와 혹시 서글퍼질지 모를 심정을 잘 추슬러 줄 것으로 믿게 된다.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건 산소를 도착하기 전까지, 그리고 산소를 다녀오고 나서인 것이다. 어찌 보면 산소여행은 영악하게도 미리 앞당겨 제공받는 한 해의 치유 프로젝트인 셈이다. 나는 이제 언제 가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공백의 그리움을 채곡 채곡 저장하며 그 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명절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된다는 말을 나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제 때 떠나지 못한 이번 설을 잘 견디게 해준 기특한 소설을 하나 이야기 하고 싶다. 박경리의 <녹지대>, 두 권 연속 녹지대로 빠져들어 보낸 연휴였다. 지난 2008년도로 기억한다. 한여름 터미널에서 누구와 헤어지고 허전한 마음에 서점에서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당신의 소원은 그냥 힘세고 덩치가 좋아 농사를 잘 짓는 시골 남정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라는 싯구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엄마를 떠나보낸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모든 죽음을 엄마의 죽음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일 때였다. 장례를 마치고 난 후 엄마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하도 집안 청소가 깔끔하게 되어 있어 나는 엄마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는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손 댄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확률이 많을 것이므로 가차 없이 버리며 살아라 평소에도 잔소리를 하셨다. 나 역시 워낙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는 편이라 꾸역꾸역 쌓아 놓고 살지를 못하는 편이긴 한데 그렇기 때문에 버리고 남은 것들은 정말로 중요하다 여긴 것이라는 생각에 어떤 것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버리지는 못한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시집을 보면서 거의 매일 울고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박경리 작가의 문학인장 때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박완서 작가도 작년 이맘때 우리 곁을 떠났다. 두 작가만 생각하면 무슨 엄마의 형제나 된 듯이 가슴 한 구석이 헛헛하고 뻥 뚫린 것만 같은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알라딘 서재 오른쪽 상단에 게시되는 북캘린더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흠칫할 때가 많다. 어떤 유명한 작가가 등단한 날 혹은 누가 태어난 날은 또 다른 대가의 작가가 명을 달리한 날이기도 하다. 신경숙과 하루키가 태어난 날은 같은 날이기도 했다. (박경리 등단=고은 출생, 박경리 사망=김훈 출생으로 같은 날이기도 하다) 같은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괜스레 숫자의 인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 우리는 이전 세대의 위대한 예술적 유산이 계속하여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2.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

 

 

 

   이 책을 어쩌다 집어 들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달력을 넘기며 부모님 기일과 명절을 생각하고 있다가 반사적으로 이 책에 끌렸다는 분석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설명할 수 없이 부모님을 자세하게 그려볼 수 있었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이 책은 내 부모님 세대의 젊은 날을 그린 소설이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내 부모님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당시 내 부모님도 이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가끔 부모님은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미래를 약속했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 정답은 아니더라도 무척 비슷한 장면들이 많았다고 믿는다. 부모님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보내었고 불같은 사랑을 하셨기에 많은 세월을 같이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와도 같은 나는 이 소설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박경리라는 작가도 분명 젊은 날이 있었구나를 실감했다. 삼십대 후반에 쓰여진 이 소설의 문체는 퍽이나 감각적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누구나 시인의 어법으로 대화한다 그들은, 시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그랬기 때문이라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었다.

 

 

 

비가 들면 걸어서라도 가야지. 오늘 녹지대에 가면 무슨 일이 꼭 일어 날 것만 같다. 내 예감은 참 맞아 떨어지거든 .   - p19, <녹지대 1권>

 

 

 

   이 소설은 60년대 중반 부산일보에 연재된 소설이지만 배경은 서울의 명동 뒷골목에 위치한 음악살롱을 그 중심으로 한다. 녹지대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으로 페이지를 넘겨본다. ‘녹지대’가 다방의 이름이었다는 것이 낯설긴 하지만 80년대엔 ‘안전지대’라는 일본그룹이 있었고 90년대만 하더라도 ‘녹색지대’라는 듀엣그룹도 있었으니 녹지대를 정치적, 이념적으로 상상한건 어쩌면 박경리와 그의 문학에 대한 나의 편견일수도 있었다. 어느 시대건 그 시절 젊은 세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60년대는 명동의 ‘녹지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젊은 문청들과 화가, 음악인, 지식인들이 모여 희망과 절망을 공유하는 장소. 문화예술의 근원지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실상 소설의 분위기는 개인의 연애사가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은 통속을 박경리 화법으로 말하는 연애소설이다)

 

 

 

   인물은 공평하게 남자 셋, 여자 셋이 등장하고 이들은 서로서로 우정과 사랑이라는 인연속에 촘촘하게 얽혀 들어 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하인애와 양공주를 엄마로 둔 친구 은자, 인애가 얹혀사는 숙부집의 딸 여대생 숙배가 이십대 초반의 여 주인공들이다.(이름이 영낙없이 부모님 세대스럽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억압된 상처를 지닌 조각가 민상건과 합리적인 신문기자 한철, 안개처럼 베일에 쌓인 김정현이 남자 주인공들이다. 여기에 대학교수 집안이면서 사교계에 명망높은 숙배의 부모님 하흥수와 최경순, 그들과 과거사로 얽힌 한박사가 있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소설의 갈등을 절정으로 몰고 가는 민상건의 아내이면서 김정현의 동거녀가 있다. 그밖에 짝사랑의 역할을 맡은 화가 정인호와 범생이 박광수, 안경잡이, 땅딸보등이 늘 녹지대 주변을 서성인다. 어렸을 적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70년대 영화나 80년대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이 테마극장이라며 드라마를 연기하던 ‘강변연가’정도가 내가 상상하는 어르신들의 연애장면이었다. 이 소설은 제대로 멜랑꼴리를 이끌어 가면서 흡사 프랑스 영화처럼 우울하고 회의적인 영상미를 연상케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프랜시스 레이 (Francis Lai)가 작곡한 같은 60년대 영화인 <남과 여>의 주제음악 정도를 떠올리면 쉬울 듯하다.

 

 

 

   차가 없는 주인공들은 이동할 때 전차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늘 거리를 걷는다. 서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거나 다방에서 조우한다. 약속이건 우연이건 그들은 자연스럽게 차나 한잔 하러 가자 말하고 차를 마신 다음엔 여기를 나가자 하면서 대폿집을 향한다. 대폿집 가는 길에 수예점, 양장점이 있다. 가끔 김장 실은 구루마, 구공탄 구루마, 껌장수, 군밤장수도 보인다. 녹지대에선 ‘미완성 교향곡’이나 ‘소녀의 기도’, ‘진주잡이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그들은 커피나 우유 혹은 코카콜라를 주문한다. 차를 주문받는 사람은 ‘레지’라 부르고 남자 일 경우 ‘보이’라 칭하며 급사나 식모가 주변인으로 즐비하다. 회사에서 미혼인 직원은 미스터 리이거나 미스 김으로 불리운다. 그들은 집에서 ‘깡통을 꺼내어 커피포트에 가루를 넣고 주전자의 물을 부은 뒤 전기 곤로에 스위치를 넣고 커피를 끓’여서 마신다.(끓인 물을 커피에 붓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끓이다니) 비오는 날이면 자줏빛 레인코트에 감색 양산, 분홍빛 비닐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영화구경을 할 땐 당시 대합실에서 남자가 꼭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한다.(대합실이라니, 서울역 이후 참 오랜만인 장소 아닌가) 데이트를 할 때엔 남산 라운지에서 분위기를 내며 커피를 마시고 남산 언덕길의 별빛이 아련해질 때 헤어진다. 집에 가면 있는 집일 경우 식모가 저녁을 챙겨주며 어머니는 곱게 양단치마 저고리를 입고서 맞아준다.

 

 

 

   “어떻습니까? 차 한잔 사드리고 싶은데요.”, 이렇게 말하는 모습은 내 아버지와도 겹쳐진다. 아마도 아버지같은 남자와 차를 마신 엄마같은 어르신은 미도파 앞에서 택시를 잡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쓰고 부치며 녹지대에서 중요한 편지를 전달 받는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녹지대에 들를 것을 알고 있으니까 편지를 두고 가는 것이다. 그 시절의 사랑은 기다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잊혀진 풍경이 되어버린 그 시절의 편지에는 반드시 눈물과 이별이 있다. 그들은 예술가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청춘의 불안을 나누고 사랑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내가 녹지대 1권에서 느낀 것은 그들은 자신의 윗세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라고 할까. 그들 여성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전쟁세대 이면서 불행의 사연을 피할수 없었던 세대이다. 인애의 어머니는 전쟁이 죽였고 은자의 어머닌 자살을 했고 숙배의 어머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전후 세대이면서 어머니의 다음 세대인 이들은 당장 행복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꿈’을 가져보길 소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서로 뭔지도 모르고 되지도 않는 말을 주워 삼키며 큰 소리로 한참 떠들어 대다가 갑자기 폭풍이 지나간 듯 조용해지며 흡사 바보가 된 듯 서로 멍하니 바라본다.   -p205, <녹지대 1권>

 

 

   ‘서로 뭔지도 모르고 되지도 않는 말’, 이 부분이 아련하게 슬픈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실은 잔인하고 비극의 연속인데 예술과 행복은 너무 멀어 보였다는 말로만 들린다. ‘바보가 된 듯 서로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 작가는 누구보다 시대상을 정확하게 투시하려 애를 쓰신 듯하다.

 

 

 

 

#3. 더 좋아질 수는 없는가

 

 

   2권에서는 하인애가 사랑하는 남자 김정현과 그의 영혼을 빼앗아 간 묘령의 여자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실 처음엔 1권만 적당히 읽어 볼 생각이었는데 내용상 후반부 몇 십 페이지를 남겨놓고서야 실타래 같은 비밀이 밝혀지는 구성을 하고 있어 2권을 들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1권이 인물 간 대화가 많고 핵심이 잘 잡혀지질 않아 가독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는데 반해 2권은 갑자기 빨라진 서사의 호흡 때문에 앉은 채로 책을 덮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작가는 1권에서의 산발적인 고민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과 괴리를 가지지 않은 채 실제화되어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하고 번뇌한다.

 

좀 더 나아질 수는 없는가. 좀 더 영혼을 흔들어 주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은 없는가. 도시는 괴물같이 커지기만 하고 사람의 무리는 보다 더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킬 지경인데. 구두점에는 오렌지 빛깔의 귀여운 세무 구두가 진열되어 있고 어느 누구보다 봄에 민감한 양장점의 주인은 봄옷을 만들어 진열장에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건만 진정 봄은 어디 메에 있는고. 소녀들의 얼굴은 어둡고, 대머리의 중년신사나 구두창이 밖으로만 닳은 청년들의 걸음걸이. 그리고 어울리지도 않게 호화롭기만 한 흰털 외투 입은 숙녀들, 모두 모두가 생활하는 모습은 아니다. 다만 생존하고 있는 모습들이 아닌가.   -p171, <녹지대 2권>

 

 

   이것은 인애가 종로에서 명동까지 걸어가는 풍경을 묘사한 장면인데 작가는 모두가 ‘생활’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생존’하고 있는 모습이라 결론짓는다. ‘좀 더 영혼을 흔들어 주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는 것인지 고민하는 방식은 47년 전의 서울이나 지금의 서울이나 결코 다를 수가 없다.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숨쉬는 ‘생존’이 아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생활’을 꿈꾸는 것은 왜 변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저 단순한 생활이 아니라 영혼을 누군가에게 빼앗길지언정 내 영혼을 흔들어 주고 같이 공감하며 나아갈 그 무엇을 염원하는 것은 왜 끈질기게도 계승되는 것일까.

 

 

   처음으로 문학의 발전이 국가 및 국민의 발전과 그 걸음을 같이 하는 것이었구나를 깨닫는다. 독서하면서 이런 거창한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로 스스로도 참 낯선 느낌이다. 나는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고민이 박경리 문학의 고민이었고 그것은 곧 우리 문학이 탐구하고 이어나가야 할 고민이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60년대 소설의 정수를 상징하는 김승옥의 작품들도 기억난다. 우울한 도시의 어법으로 감각적인 감수성의 극치를 보여준 그의 단편들에서 주인공은 자주 ‘어디로 갈까’를 되뇌인다.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두리번거리며 명동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에게 패배감을 느끼며 엉거주춤 뒤좇아가는 심정으로 거리를 방황한다.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1,000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 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 버렸단 말이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글쎄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

 -p57, <서울 1964년 서울> 中, 『무진 기행』, 민음사

 

 

   나는 박경리가 그리는 65년 명동의 녹지대에 모여든 청춘과 김승옥이 전해준 명동 거리의 청춘이 같은 것을 보고 들었을 것으로 어쩌면 그들 속에 내 부모님도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을 꿈꾸는 인애에게 조각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던 민상건은 ‘세상에 남의 일이라는 게 있을까’ 하면서 사람은 남의 운명을 돕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의 운명은 나의 것이긴 하지만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로써만 끝나는 것도 아님을 환기하는 대목이었다. 60년대를 ‘생활’하지 못하고 ‘생존’하며 살아온 우리 윗 세대 들의 아픔을 가만히 보듬어 본다. 여전히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들과 당신과 나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고 우리의 운명을 도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했을 것이다. 녹지대는 누구나 한번쯤 지나온 흑지대나 혹시 지금 지나고 있을지 모를 적지대 아니면 무엇인지 알수 없는 회색지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건한 위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운명은 서로 돕는 것이기 때문에.

 

 

   ‘백화점 화랑에서 녹지대의 동인 시화전’이 개최되던 날 그날 밤 그들은 ‘뒷골목의 인정, 실패한 사람들의 살갗이 닿는 듯한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금 살아 있는 것과 앞으로 살아갈 것, 그리고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을 것을 다정하게 노래했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언어, 다른 감수성, 다른 소설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기꺼이 권한다. 무언가 지금과는 확실히 다른 반가운 녹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그저 ‘생활’이 ‘생존’뿐이라 슬퍼하는 우리 모두의 무망한 밤에 조용하고도 옅은 초록이 되어 줄 것이다. 그건 아마  한밤중도 초록이 되는 신기한 시간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잘은 모르지만 박경리나 김승옥이나 혹은 우리 부모님이나 '한쪽 눈으로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있는 얼굴, 그 그리운 얼굴들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초록이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덧붙임)

 

마침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 '한국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 명동 반세기를 돌아보는 특별전 '명동 이야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60년대 명동거리를 사진과 이야기로 확인할수 있다고 한다. 녹지대 같은 다방과 그곳에서 예술과 문화를 논했던 젊은이들을 만날수 있다고 하니 날이 풀리면 한번 나들이나 가볼까...

기사 참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24/20120124012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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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2-01-24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마음 뭉클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마부> <오발탄> <미워도 다시 한 번> 등을 본 기억이 납니다.
<녹지대>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는 부산 영도에 살았드랬습니다.
전후 세대, 영도국민학교엔 1학년이 14반까지 있었고 저는 12반 112이번이었는데 제 뒤로도 열명 가량의 아이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학교에서 보면 오전 열 시, 오후 네 시 영도다리가 들려올라갔습니다.
미군막사로 쓰던 교실, 동네 공중화장실...
살아남느라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어른들의 싸움들...

모처럼 향수에 젖어봅니다.

한사람 2012-01-25 09:26   좋아요 0 | URL

일곱살까지 부산에 살았어요.
당시 부산에선 어른들이 늘 영도다리에서 줏어 왔다고 아이들을 놀렸어요.
당연히 거짓말이라 생각하다가도 한순간 정말?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갑자기 두렵다는 생각이 들어 엉엉 울게되곤 하는데, 저는 울지를 않았대요.
심각하게 나를 왜 주어왔냐... 내 모습이 어땠냐... 그런 식이었대요, 하하하

그 영도다리가 들려 올라갔다니 정말 옛날이군요 ㅋ
112명은 너무나 끔찍한데요? 서울와서 학교를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다녔네요.
그때 7,80명 했었죠. 한 반에..

저는 아버지와 단 한번도 영화를 같이 본적이 없어요 ㅠㅠ
말씀하신 영화등은 죄다 어린 시절 명절특집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
중전님 덧글로 아주 어렸을 적 아직도 기억하는 부산친구들 생각에 슬몃 미소지어 봅니다^^
(연휴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
 
댄싱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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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놀아본 언니에게

 

 

 

 

   아직도, 글로만 보면 내가 중년의 남성인줄로 아는 분들이 꽤 있다. 서재 타이틀이 일단 책방 아저씨이고 댓글도 최대한 점잖게 대응하고 리뷰에서도 제대로 정색을 하고 문체도 보수적이고... 암튼 내가 봐도 종합적 분위기는 무겁고 심각한 쪽이니까. 그런데 나는 얼굴보고 마주하면 이 분위기를 확 깨는 반전의 성향인지라 사실 일상과 글과는 영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지인이 온라인상의 나를 확인하는 것도 싫고(재수 없어 할 것이므로) 온라인에서 아는 사람을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도(실망할 것이므로) 불편하다. 특히나 온라인에서 글로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근엄하게 앉아 책만 보고 도 닦듯이 글만 쓰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글의 내용도 기쁘고 밝은 이야기 보다는 주로 슬픔과 상처, 고독과 절망이 주를 이루므로 그만한 사연을 가지고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은 채(?) 꿋꿋이 살아가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 실제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생기면 대부분 거절, 사양, 핑계, 포기로 일관한다. 여기서의 한사람과 눈앞에 있는 나를 일치시키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나도 편한 일이 아니다. 온라인과 일상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몇 안 되는데 이들도 원래부터 알았던 한쪽의 나머지 반쪽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나는 나를 먼저 알게 된 그 한쪽대로 나를 대하는 상대를 배반하기 싫어 최대한 나머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보고 싶어 하는 대로 보여 준다. 왜 이렇게 이중적인 생활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 서서히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새삼 당시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나는 좀 놀아본 언니(?)에 속한다. 우리 나이에 왕년에 한번쯤 놀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대학생이 되어 이년 정도는 신나게 돈을 쓰며 놀았고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엔 돈이 없어 방황하면서 놀았다. 죽도록 일도 했지만 궁금한 일은 대부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돌아다니면서 후회 없이 놀았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 영화는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놀았던 그 한 시절에 같이 놀았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다. 엄정화가 (연대 사회체육학과) 91 학번 쯤으로, 황정민은 (고대 법학과) 71년생으로 나오므로 추정컨대 그들은 내가 뻔질나게 놀러 다닌 곳에 분명 함께 다녀간 적이 있을 것이다. 엄정화의 별명은 ‘신촌 마돈나’이고 대사 중에는 ‘독수리 다방’도 스쳐 지나가고 국회의원 사모님은 그녀더러 그 유명한 ‘X세대’가 아니냐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엄정화가 나이트에서 무대 춤을 선보일 때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런던 보이스(London Boys)의 할렘 디자이어(harlem desire, 1987)이고 이 노래는 두 사람이 학교 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도망칠 때도 계속 멈추지 않는다. 꼭 써니에서 7공주가 피카디리극장인가 데모현장에서 전투경찰을 사이에 두고 불량서클과 육탄전을 벌일 때 흘러나오던 조이(Joy)의 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91학번 엄정화는 신촌가는 버스에서 마이마이를 듣고 있구나. 
  가죽팔찌, 찡팔찌, 야광팔찌... 특히 야광시계는 인정. 손목이 들어갈만한 왕귀걸이도 인정.
  그때 베네통 가디건과 아디다스 테니스 팔목보호대가 엄청 유행이었지, 하하하.

 

 

 

   사실 훗날 그 음악들이 이렇게 데모배경음악으로 훌륭하게 편집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아니면 우리 같이 나아가리라 그런 노래만 듣고 우린, 눈물만 삼키지 않았던가.

 

 

 

   그러나, (영화속)엄정화가 나이트에서 날릴 때 한창 유행하던 음악은 할렘 디자이어는 아니었다. 런던보이스는 내 고딩 시절이었고, 내가 이틀에 세 번꼴로 나이트를 다닐 때 (89년에서 92년 사이)허구한 날 흘러나오던 음악은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폴라 압둘(Paula Abdul)이 대세였다. 당시 Don’t Be Cruel과 Straight up은 강남역 월드 팝에서 분위기가 달아 오르기 전 시작을 알리던 오프닝 뮤직으로 많이 쓰였다. 우리는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만나 다섯시 반부터 나이트를 입장하곤 했다. 그때 압구정동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이 오륙천원 할 때인데 (나이트)기본이 만 오천원 이었다. 목화예식장 옆 ‘유니콘’이 거의 망해 갈 무렵 ‘월드 팝’은 당시 좀 노는 8학군 출신 대학생들의 거의 유일한 쉼터(?) 였었다. 싼 맛에 가끔 이대앞 ‘애프터’에서 과모임을 가지기도 했는데 물이 안 좋고 후져서 곧 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남역에서 역삼동 쪽으로 좀 내려오면 뉴월드라고 어중간 한 호텔 지하에 ‘당꼬’라는 나이트도 있었다. 거기 농구선수와 탤런트들이 왕왕 다녀가곤 했는데 이승철과 강문영, 허재도 본 기억이 있다. 반갑게도 엄정화는 정확하게 당시 유행하던 춤 두어 개를 추기도 했다. (그 부분에서 나는 딸아이에게 저거저거 그때 유행하던 춤이야, 이렇게 말하고 말았고 아이는 엄마 너무 크게 말한 거 알아? 흑, 이렇게 답했다...)아쉬웠던 건 중간에 브루스 타임이나 나이트 문 닫을 타임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인데 리얼리티는 살았겠지만 너무 진부해서 누락되었나 싶다. 언제 브루스를 신청 할 것인가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레오나드 코헨의 I'm your Man이나 끝나기가 아쉬워 여러 번 틀어대던 쿠와타 밴드의 Just man in love정도가 흘렀다면 그야 말로 시대의 완벽한 고증이자 깨알 같은 디테일 이었을 텐데 말이다.

 

 

 

 

#2. 지나온 언니에게

 

 

 

   아무튼 이 영화는 우리가 예상한 내용을 예상한 바대로, 가장 잘 어울리는 두 배우가 예상한 만큼 열연했다. 엄정화는 자기 옷을 입은 듯 배역과 동일인물 같았고 황정민은 소탈하고 진솔한 남편이었다. 사람들이 훌쩍 거리는 부분은 의외로 엄정화 씬이 아니고 황정민 씬이었는데 역시 연기파 배우답게 두어 번 찐한 감동을 선사하는 한방이 있었다. 시나리오 상으로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인물들이라 예외적인 인물이 없긴 하지만 그 전형성을 다행히 배우의 연기력과 유머, 감동으로 잘 메운 듯하다. 꿈은 이루어지고 사랑은 계속된다. 고로, 행복은 약속된다.

 

 

 

   한 가지 나만 그런 것인지 황정민을 보면서 생각나는 한사람이 있었는데... 투박한 부산 사투리와 돈 안 되는 인권 변호사...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소탈한 모습... 그리고 마지막 아내의 꿈도 자신의 꿈 이상으로 소중하게 인식하며 사람들에게 심경을 설파하는 장면들이 꼭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고 외쳤던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그가 계란세례를 받을 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내를 말할 때 정말로 울컥울컥 했다고 고백한다.

 

 

 

 

 

말은 안되지만 나는 이 장면 울컥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80년대 후반 올림픽과 성장을 같이한 X세대가 한 분 단에 두 명 간다는 대학에 들어간 90년대 초반, 오렌지족과 같은 야타 시절을 불같이 보낸 나 같은 아줌마들을 위한 드림 환타지 영화였다. 날카로운 비평과 분석 등은 영화전문가에게 맡긴다. 아줌마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내가 버린 남자, 혹은 어이없이 내가 놓친 기회, 더불어 내가 잊었던 꿈들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에 참 고마운 작품이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다시 46kg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마흔 넘어 슈퍼스타 K에 도전해 인상 깊은 도전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기억나는 출연자 쯤으로 생방송에 한번 초대된다면 대박 행운 정도가 될 것이다. 내 남편은 절대로 시장 후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갑자기 집값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주식이 대박 나거나 방학이 지났다고 아이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일이면 일 년에 두 번이라는 명절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인지 후라이팬 앞에서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맡아야 할 것이다. 식구들을 챙기고 며느리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많은 꼴을 눈감고 안 듣고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고마운 오늘이 아닌가. 분명한 건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가 아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여기까지 왔구나로 느껴지는 오늘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것인가. 나는 기억한다. 그때 강남역 거리마다 불법테이프를 팔고 있던 리어카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신승훈이었고 김현식이었고 김민우였고 이범학이었고 심신과 강수지였다. 우린 저마다 상대의 미소 속에 비친 내 사랑이 내 곁에서 오직 하나뿐이길 원했고 이별 아닌 이별을 했기에 흩어진 나날들을 보냈다. 돌아보니, 1991년도는 참 좋았다. 그때 아무리 아팠어도 분명 다가올 미래를 누구보다 기다렸고 사랑을 약속했다. 그 설레이던 시간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영원한 이야기로 남았다. 글쎄, 나는 그 시절을 다녀온 당신과 이렇게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 나이 먹는 다는 건 추억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 둘 누군가와 추억을 나눌 꺼리가 더 많아진다는 소식만 같다. 1991년도를 생생히 기억하는 당신, 한번쯤 놀아본 당신에게 이 영화를 건네 드린다. 그렇게 오늘도 해피 설날, 메리 행복, 댄싱퀸을 꿈꾸자고 말해 드리고 싶다.


 

 

   비록 1991년도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때 우리가 꾸었던 꿈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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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1-2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나 즐겁게 읽었는지요 :)

제가 대학을 다니던 93년에는 그러니까 락까페라는 것이 막 생기기 시작해서 나이트를 가기에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청춘들을 구제(?)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요. 늘 무채색의 옷만 입던 저는 언니의 스테파넬 원피스를 훔쳐입고 락카페를 갔었습니다요. 물론 들켰죠. 죽다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 보다 친구들과 검정 비닐 봉지를 가방에 넣고 이태원을 뒤졌습니다.
검정 비닐봉지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주인만 아는 그런 유럽 브랜드의 옷을 사서 흐뭇하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론 입을 수 있는 옷은 별로 없었습니다.
일명 리조트룩이라 불릴 수 있는 옷들이었으니까요. 아마 그거 입고 집 밖을 나섰으면 아버지에게 맞아서 죽었을 겁니다. 여튼 그렇게 한 2년을 검정 비닐봉지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늘 밥 딜런의 음악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검정 비닐봉지와 너무 안어울리는 모양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무슨 꿈을 꾸었을까요? 음....생각하니 그때 저는 세상을 구원하는 꿈도 꾸었던 것 같네요.
사회과학연구소,라는 말도 안되는 비밀조직을 만들어 엄청 빨간 책들을 공부하고 토론하고 혁명을 꿈꾸고...
그곳 친구들은 제가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이유를 몰랐었던 것 같아요.
철저한 이중생활이었죠^^
아득하네요~!

한사람 2012-01-22 11: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락카페 !!!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홍대앞에 생겼어요~
스테파넬 원피스도 생각나요. 약간 몸매되고 리조트룩이 어울릴만한 자신감, 리버럴이 있어야 입을수 있는, 히히(저는 딴에 럭셔리하게 오리지널리, 영우 이런 영국풍의 원피스를 입고 잘난척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ㅋㅋㅋ)

검정비닐봉지에 유럽 브랜드 혹시 막스 마라, 이런거 아닐까용??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불온서적을 읽는 굿바이님이 어떤 모습일지, 음...그 이중 생활
조금은 짐작이 가면서도, 하하.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아니고 버버리풍, 지중해풍.. 심하게 공감합니다^^
93년에 참 대전엑스포 이딴것도 했습니다 !
(그때 첫 직장에서요 ㅋ)


stella.K 2012-01-20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어쩌면 강남역에서 스쳐지나가듯 만나었는지도 모르겠군요.ㅋ
진짜 엄정화와 황정민의 출신 학교가 그런가요? 첨 알았네요.
아, 과거는 늘 아련해요. 그죠? 이범학. 그 이름 잊고 있었는데.
이 영화 꽤 웃기다던데. 쿡 tv로 넘어 오면 한번 봐야겠어요.
아님 그 안에 기분 꿀꿀해지면 한번 보던가.^^

한사람 2012-01-22 11:35   좋아요 0 | URL

진짜 엄정화는 대학 나왔나요? (음...심한발언?)
황정민은 예대로 알고 있는데..(저와 동갑이거든요 ㅠ)
하지만 둘다 나이상으로 제 세대라..반갑고 짜릿하죠
이범학은 아직도 가끔 나오더라구요, 저는 이정석을 좋아 했습니다, 하하

영화는 대체로 써니보다는 웃긴 장면이 많고
즐겁게 볼만합니다~
(혼자보다는 친구들과 더 좋을 듯 해요)

얼마전 인사하고 또 하기 뭐하지만, 그래도
새해 복마니마니~ 늘 건강하게~
웃는 한 해 되시길요^^

stella.K 2012-01-22 13:50   좋아요 0 | URL
어제 <위험한 상견례> 보다 잤는데
80년대 배경으로한 영화들이 제법 많이 만들어졌더군요.
영화는 재밌었는데 넘 졸려서 눈 떠보니 내용이 많이 지나있더군요.
그래서 아예 자버렸습니다.
봄이 온 맹키로 나른하고 졸립네요.ㅋㅋ

고맙습니다. 한사람님도 명절 잘 지내구요,
그래요. 올핸 많이 웃고 살자구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20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안 달 수가 없는 페이퍼네요...ㅎㅎ 유니콘과 브루스타임, 독수리 다방, 압구정동, 강남역 뉴욕제과, 최루탄, 마이마이, 길거리테이프...모든것이 91년 그때를 추억하게 하네요^^ 개념없이 겁없이 놀고 마시고 웃던 시절...그러면서 한 날은 전경에 쫓겨 신발도 버려두고 도망갔던 기억도 나구요...그땐 모든게 뿌연 것 같았는데 지금은 참 좋았던 시절이네요.. 이 영화 꼭 봐야겠네요~

한사람 2012-01-22 11:41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현맘님 유니콘 아시는군요? 히히
(그럼 이층 스피커 앞에서 춤추던 사람들도 아시겠네요 ㅋ)
길거리 구루마에서 진짜 심하게 '내사랑 내곁에' 만 흘렀어요. 92년도엔요...흑..
저는 학교 가다가 지하철역에서 맨날 검문 당했구요..
스크루바 먹다가 학교앞에 전경들이 들이 닥쳐서 빨간 하이힐 신고 엄청 도망가던 생각도 나네요 ㅠ
그걸 떨어뜨리지 않고 끝까지 먹겠다고 그 집념이 ㅋㅋ

최루탄은 정말 지독했어요. 특히 화장 좀 신경쓴 날 눈물에 마스카라 번지고 완전 너구리 되어서
(민주화를 위해 불사르는 단식 선배들 뒤로) 집에 간날이 몇날이었는지...

현맘님은 이 영화 보시고 어떻게 이야기 해주실지 궁금합니다!!

숲노래 2012-01-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1년에 저는,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대입시험이 바뀐다는 소식을 들으며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으로 밤 11시까지 학교에 갇히던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ㅋㅋ

할렘 어쩌구는 저로서는 중학생 때에 떠돌던 노래 같네요 @.@

한사람 2012-01-22 11:44   좋아요 0 | URL

앗, 된장님 후배님이셨군요..
요즘은 학력고사 이야기 하면 전설세대 취급 당해서요, 어디가서 잘 안하는데 히히
저도 학교에서 열시까지 야자하고 독서실 가서 한시까지 놀다가 두시까지 겨우 비비다가
봉고차에서 흐르는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를 들으며 집으로 가던 생각이 나네요.

그러게요, 할렘 어쩌구는 나이트에서 잘 안쳐주던 노래인데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1-2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 님 글은 딱 한 번만 훑어봐도 여자가 썼음을 알 수 있던데요.그러니 임꺽정 같은 남자일 거라고 짐작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안심하시길...

한사람 2012-01-22 11:45   좋아요 0 | URL

헉, 노이에자이트님의 예리하시고 통찰력 있는 시각엔
그러했군요 ㅠ
저는 사실 글에서 여성의 냄새가 나는 걸 안하고 싶었거든요..
리뷰말고 페이퍼를 쓰면서 부터 여성적인 내용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완전 공무원을 겨냥하는 글이었다구요 ㅋㅋ

마노아 2012-01-2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이 글 참 좋아요. 특히 마지막 문단이 찡하네요. 노래 제목을 엮은 것도 아주 반짝여요. 저도 이 영화보면서 노대통령이 어찌나 생각나던지요. 전 나이트를 못 가봐서 롤러장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그 시절에 클럽에서 엄청 틀어주었을 노래들을 이렇게 영화속에서 만난다면 청춘이 불같이 떠오르며 아주 화르르 타오를 것만 같아요. 한사람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한사람 2012-01-22 11:53   좋아요 0 | URL

으앗, 알아주시는군요.(고마워요 ^^)
제가 이 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문장이 바로, 그 노래를 엮은 것인데 ㅋㅋ
(한가지 김민우의 사랑일뿐이야를 빼먹었는데... 잘 안되가지고)
마노아님도 저와 생각이 같았군요.. 노대통령 맞죠?, 박원순 시장 아니구요, 그죠?
저는 롤러장은 못가봤어요(나름 범생이 였다는 ㅋ, 아니 머 마노아님도 그랬을거라고 믿어욧)

그나저나 프로필 사진이 아주 고혹적입니다^^
마노아님도 올해는 화이팅만입니다~~~



가연 2012-01-2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사실 저는 음.. 남성분인가? 아저씨??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글에서 몇 번 성별이 언급되어서 아, 그렇군요, 라고 고개를 끄덕거린 케이스라...ㅎㅎㅎ 어째 위에 덧글이랑 좀 상반되는 이야기같네요ㅠ 하지만 예전에 글만 보고 판단했다가 놀란 적이 있어서ㅎㅎㅎ 온라인에서 아는 분은 안만나는게 정석인것같아요..ㅎㅎ 이건 제생각이지만요. 물론 저도 이전부터 만나뵙던분들은 있지만..ㅎㅎ 그분들외에는 나이가 드니깐 더 못만나겠더라구요.

사실 제가 이런 댄싱퀸같은 복고적 영화?? 같은 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글을 읽고 와, 한 번 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91년을 놀던 날로 기억하기에는 좀 많이 어린 것 같네요, 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사람 2012-01-22 11:5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가연님이 여자분인줄 알았어요 ㅋㅋ 서로 반대군요, 하하하

저도 가연님 나이(?)에는 복고풍 영화같은걸 안좋아했습니다. 그땐 컬트나 프랑스 영화를 선호했어요 ㅋ
한국영화도 잘난척 한다고 무시하고, 그랬죠.

영화관에 보니 방학이라 학생들과 제 또래 아줌마들이 많더라구요.
음..가연님은 누구와 보게될지, 괜히 궁금하네요.

연휴가 많이 남았는데, 계속 편안함 맘으로..
(참 녹지대 다 읽었어요, 가만 있기 힘들어 연휴 짬짬이 리뷰나 써볼까해요!!! 느무 좋아서...)

마녀고양이 2012-01-2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글이 편안해졌네요... 참 기분좋게 읽었습니다.
저는 늘어져서, 페이퍼 쓸 에너지가 몽땅 휘발성같이 날아갔네요.

1991년, 참 많은 시간이 지났군요. 방황을 위해 방황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요즘 신촌, 홍대, 모두.. 남의 나라 같습니다. 아하하.

한사람 2012-01-25 17:02   좋아요 0 | URL

연휴 잘 보내었나요?
이번엔 짧았지만 제대로 추웠죠 !!
저는 추운건 딱 질색이라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91년이 참..아득하네요.그런데 저는 기억만은 생생해요 ㅠㅠ
(신촌, 홍대, 강남 모두.. 외국 같다는 말 격하게 공감하구 말구요 ㅋ)


보물선 2012-01-2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당신의 기억력은 정말 대단해.
이 깨알같은 디테일이라니^^

91학번. 내게는 새내기라는 풋풋한 단어와 김귀정(알아?)의 죽음이라는 아주 상반된 이미지의 조합이야.
아직도 기억하는 9106529. 참 아련하다~

난 어제 금쪽같은 휴가날, <부러진 화살>을 봤어. 요건 낭중에 나도 우리 꼬마랑^^

한사람 2012-01-27 09:08   좋아요 0 | URL

김귀정...강경대...
(그들이 살았으면 다 내 나이겠구먼)
나이트 이야기 하다가 민주열사로 바뀌니까 흠칫하다 흠칫해 ㅠ

나도 학번을 여기저기 비번으로 많이 활용하거든~

아이랑 보기가 그래서 <부러진 화살>을 못봤어, 써니보다 재밌다고 하더라, 하하
부러진..은 혼자 봐야 할듯^^


보물선 2012-01-27 15:36   좋아요 0 | URL
나는 학생운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았는데도
내가 성균관대 나왔거든.
그래서 김귀정의 죽음을 너무나 가까이서 겪어서 확 떠오르는 거야.
나같은 1학년도 사수대 도시락 싸들고 백병원도 가고
장례식날 엉엉 울기도 하고 그랬어.

부러진 화살에 아이가 못 볼 장면은 딱 하나야.
하긴 모든 장면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니깐 아이에게 볼만한 건 아니겠네~ㅋ

2012-01-30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0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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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훈과 나 사이

 

 

 

 

   나는 솔직히 이 소설이 전에 없이 지겹고 무겁고 갑갑했다.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대가의 문장과 작품이야 언제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천하의 김건모도 꼴찌를 할 때가 있고 인순이도 탈락은 하는 것처럼 예술이라는 것이 매번 똑같은 밀도로 감동과 위대함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한마디로 전작인 <내 젊은 날의 숲>만은 못했다고 느낀다. (물론 전작 역시 그 전작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완벽함 가운데 트집을 잡고 실수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리뷰 같은 경우 더더욱 유려한 논리로 신랄하게 작품을 비판하면 좋다고 칭찬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세배 이상 똑똑한 사람이라 여긴다는 통계결과치도 있다. 나는 의무가 아닌 경우 책이 지겨웠다면 사실 리뷰를 안 쓴다. (안쓰고 만다) 될 수 있으면 이 책이 별로라는 글도 선호하진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내 지겨움의 깊이와 무게를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겨울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더 솔직히 다음의 계산도 해 볼 만큼 나는 그가 지겨웠다고 말하는 게 죄송스러울 지경이다.(그렇다고 거짓말 할수는 없지 않은가) 

 

 

   1. 나는 내 돈을 주고 예판을 구입했다 - 공짜로 생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독서의지 반영.

   2. 리뷰작성의 의무가 없다 - 시간에 맞춰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글을 방지할 수 있음.

   3. 지금 이 책에 관한 어떠한 리뷰대회도 없다(알라딘에서는) - 문장력을 자랑하거나 과시하기 위한 글 즉, 대회 참가를 위한
      작위적 구성이 필요치 않음.

   4. 나 또한 이 글로 어떠한 평가도 기대하지 않는 상황이다 - 평가항목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됨.

   5.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리뷰를 정성스레 써 놓았다 - (초기가 아니므로) 내 비판이 구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
     (읽어볼 만한 사람은 거의 읽어보았다고 판단)

 

 

 

   즉, 이 책의 장단점들은 이미 많이 노출된 상태이기에 나는 부담 없이 자유롭고 싶다. 모처럼 맞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비판을 위한 구실만은 아니다. 정말로 내 지겨움의 근원을 찬찬히 따져 물어 정리해 보고 싶은 연유이다. 김훈의 반복적인 세계관도 좋고 끈질기게 설파하는 동어반복의 논리도 좋고 완벽한 문장에 갇혀버린 한계치의 절정도 좋다. 나는 이 리뷰에서 반드시, 김훈이 지겨운 이유를 말할 것이다.

 

 

 

   먼저, 다음은 내가 생각한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길 위에는 늘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있고 먼 길을 달려 갈 때 몸과 길이 합쳐져서 앞으로 나아가듯 흐르는 강물은 언제나 흘러서 합쳐지고 물과 하늘은 시야의 끝에서 닿게 되며 저 바다에서는 말이 생겨나지 않기에 언어가 세상을 지배하지 아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언은 누가 지어내는 것이 아니고 바람이 불듯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며 삶이 무상한 만큼 똑같이 죽음도 무상하지만 사는 동안 붙어서 번식하는 일은 ‘늘 그러한 일’이어서 그 누구든 피할 수가 없다.

 

 

 

   이제 김훈의 어법으로 말해보면, 김훈과 나 사이에 흘러가는 저 언어들은 내가 한번 읽고 이해했다고 내가 주워 담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김훈의 언어를 찾아서 내 삶속으로 주워 담기에 나는 그의 생각을 온전하게 알 수 없었다. 김훈의 글과 내 마음이 같아서 그의 글이 내 맘으로 흘러와 그 마음으로 세상을 알아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더 이상 세상은 새롭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둠속에서, 나의 생각은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와 합쳐지지 않았기에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했다. (정말 멋진 말이지만 한마디로 나와는 맞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지)

 

 

 

 

 

2. 김훈과 풍경 사이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가고 가고 또 가는’ 한 마리 생명체의 고요한 날개 짓은 아니었다. 새와 배와 물고기와 말의 형상이 하나의 생명체로 모아진 ‘가고가리’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만 가야하는 지독한 운명 같은 것, 고달프고 서글프지만 끝까지 살아가야하는 지겨움의 기록에 가까웠다. 누구나 한번 주어진 삶을 단념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살기 위해 그토록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아간다 해도 사는 것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터인데 왜 그들은 모두 살기 위해, 아니 죽기 위해 삶의 의미에 매달리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작가는 이 이야기를 꼭 써야 했을지는 몰라도 쓰고 싶어 쓰고만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틀림없이 작가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하려는 방법 따윈 자신의 일이 아니라 믿었을 것이다. 재미를 말하고자 함도 그것을 느끼게 함도 아닌 이것은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야 하는 범박한 우리네 인간사 운명과도 같은데 그 이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것만이 작가의 깨달음이 아닐까 싶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밥벌이의 지겨움> 같은 산문에서 먹고 살아가는 것의 지겨움을 준엄하게 설파한 적이 있으며 <내 젊은 날의 숲>같은 소설에서 저절로 피어나 제 색을 이루며 완성되는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여러 번 아니 늘, 있었다. 그는 언제나 바라보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고 그 말하여진다고 다 알 수 없는 ‘본래 그러한 것’들을 전달하려 핍진하게 애를 쓰는 고집쟁이 글쟁이였다. <내 젊은 날의 숲>이 사람과 사람, 사람의 몸과 꽃과 나무와 숲, 자연이 서로 엉기어드는 풍경을 그려 보였다면 이 소설은 꽃이 물고기로 나무와 숲이 섬과 바다로 치환된 것일 뿐 ‘흑산’이라는 절망의 시공간 그 안쪽 풍경을 끈질기게 뒤집어 보고픈 지루한 여정의 반복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조선조 천주교 박해를 다루는 역사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자기 내면의 고독한 성찰이 주를 이루는 산문이 더 어울려 보인다. 김훈은 어떠한 시대, 어느 사건, 어떤 인물을 소재로 삼아도 결국 그 전체 풍경의 내피를 투사하여 말로 이해시킬 수 없지만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 한계를 내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훈에겐 자기 한계의 최대치를 최선을 다해 최고로 표현하는 것만이 그가 소설이라는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함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그는 언젠가 초로의 봄날에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 물가를 달리다가 새싹이 돋아나는 산들이 물에 비치자 이렇게 말했다.

 

‘아, 이 견디기 어려운 세상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구나! 이 별 볼일 없는 생애는 어찌 그리도 고단했던가. 땅위의 길과 하늘의 길이 결국은 닿아 있었구나.’      - <밥벌이의 지겨움>, 156p

 

 

   자전거가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얼마나 고독하고 고단한 길인가. 그는 계속하여 다음의 풍경을 기다릴 뿐이다. 우리는 어떤 그림이든 그 풍경을 먼저 본 그의 기쁨과 슬픔을 나중에 느낄 수밖에 없다. 그가 먼저 깨달은 풍경이 비록 내 걸어감에 일치하지 않더라도 대책없이 걸어갈 수 밖에 없다. 나는 오늘 그 혼자 걸어감이 지겨웠노라 고백하는 것이다.


 

 

 

3. 김훈과 흑산 사이

 

 

 

 

   그가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또 다른 세상’은 어디인 것인가. 매번 참으로 멀고 깊어 가닿을 수 없어 보이지만 그는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가보지 않았거나 가닿을 수 있는 길도 있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흑산’은 도대체 어디이고 언제인 것인가. ‘흑산’은 시간인가 공간인가 둘 다인가. ‘흑산’은 흑산도가 아니니 섬이 아니고 산인 것인가. ‘흑산’은 검은 바다를 의미한다는데 그렇다면 산이 아닌 바다인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이 소설이 말하는 ‘흑산’은 산도 섬도 바다도 아닌 육지와 섬 사이 끝없는 바다 밑에 숨겨진 캄캄한 길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고 가 볼 수도 없었지만 영영 모르고 지나갈 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길은 아마 이 마을과 저 마을 사이의 길일 수도 있고 여기 사람과 저기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인연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김훈과 작품사이의 길일수도 혹은 작품과 독자사이의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약전이 흑산에 끌려와서 흑산에 머물고 흑산에 주저앉듯이, 갈 곳이 없고 갈 곳이 아니더라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은 흔히 있을 것이었다. -p280

 

 

   흑산은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갈 곳이 아니더라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 길은 희망이나 전망이 없이도 살아야 하는 우리네 삶의 길이요, 그래서 믿기 힘든 현실의 길이다. 김훈에게 있어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을 뜻한다. 이는 곧 예술이 더럽고 폭력적이어도 하면서 견디고 견디면서 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김훈에게 예술은, 김훈이 할 수 있는 예술은 누가 뭐래도 말이라는 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말은 절대로 칼이 될 수가 없고 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칼로서 기능해야 할 때만 제 역할을 하면 된다. 김훈은 ‘말이 칼이 되기 위해서는 말을 버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시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훈에게 말은 더없이 하찮고 언어는 점점 쓸 수 있는 것이 줄어들어 속수무책지만 말을 통하지 않고서는 칼이 될 수 없기에 그 비극을 견디고 계속 쓰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흑산은 김훈이 걸어온 길이면서 앞으로 지겹도록 가고 또 가야 할 길인 것이다. 그러니 그 길을 가보았다고 갈 수 있으니 가야한다고 말하는 일이 어찌 고통스럽지 아니할 것이며 어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사람이란 무릇, 힘겨우면 더 빨리 지겨울수 있는 통속적 존재가 아니던가.

 

 

 

 

4. 김훈과 죄인 사이

 

 

 

 

   그래서인지 정약전은 시대와 사명과 업보를 바꾼 김훈의 대리인에 불과했다고, 감히 판단한다. 사학죄인 사형제 중 가장 현실적인 사람은 정약전이었다. 나는 정약전의 사고와 상념들 속에서 현실이라는 절망과 비극에 타협하며 세상을 긍정하는 이 시대의 보편적 작가상을 엿보았다. 정약전은 가장 맏형인 정약현과 함께 동생 정약종과 정약용에게 천주교를 설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학의 죄를 끌어안고 먼저 참수 당함으로써 정약전과 정약용을 구해준 것은 동생 정약종이었다. 정약종의 죽음에 기대어 목숨을 건진 건 정약전과 정약용이 마찬가지였지만 황사영을 고발함으로써 완전배교한 정약용에 비해 정약전은 그 행보를 분명히 하지 않은 어중간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종교를 택한 것도 형제를 택한 것도 그렇다고 자신만 택한 것도 아닌 지극히 수동적인 처세였다. 자신만 살려고 발버둥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당히 순교를 택한 것도 아닌 정약전은 훗날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그는 스스로 배교가 아니라 기교棄敎를 택한 현실에 긍정하며 자신을 흑산과 일체시키는 합리화의 길을 걸어간다. 이 모습은 바로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었던 (말할 수 없지만 쓸 수밖에 없는)작가의 비극적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작가들은 살거나 죽거나 외에 쓰거나가 하나 더 있다고 여긴다. 살수도 죽을 수도 없기 때문에 쓴다고 믿는다.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에서 처음 바다를 바라볼 때 ‘인간이나 세상의 환란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어 보인’ 바다라 생각했지만 서서히 ‘이 막막한 바다일지언정 여기서 끝나고 또 여기서 시작’이라 믿기 시작한다. 마침내 순매와 신접살림을 차리고 흑산에서 ‘집을 지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곧 떠날 것이라 믿었던 마을에 서당을 짓고 사람들에게 하늘의 법치과 인간의 본성을 글로써 가르친다. 형틀에 묶여 매를 맞으면서 ‘모든 말의 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다시 살아보니 캄캄한 바닷길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만은 결코 캄캄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작가의 말과 글에 대한 의지는 정약전뿐만이 아니고 열여섯 나이에 급제한 조카사위 황사영에게서도 종종 발견된다. 황사영은 단지 김훈의 대리인으로서의 정약전의 한세대 어린 인물을 상징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그다지 참혹하거나 슬프지 않았고 외려 한 세대가 끝이 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황사영이 죽었다고 말과 글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 그것은 곧 작가의 강력한 고집이자 마지막 자존심은 아니었을까.

 

 

 

   그들 주인공은 하나같이 단순하고 명료한 언어를 선호하며 모두 드러나 있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발견함에 기뻐한다. 세상의 원리는 ‘인간의 언어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언어에 의한 증명이 필요 없이 사람의 생각으로 본래 스스로 그러함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는다. 정약전은 형제들과 ‘우주의 근본과 몸과 마음이 살고 또 죽는 이치를 말하며 놀라워 했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말과 글로 엮인 생각의 구조, 말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개념들에 집착하고 그 이룰 수 없는 번민들이 언젠가는 저 흐르는 강물과 합쳐져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길 기대했다. 그것은 말과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죄인의 본심은 아니었을까. 말과 글을 버리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자는 다시 말과 글로써 그 세상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언어로 증명할 수 없지만 스스로 그러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본래 스스로 그러함을 설명할 수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갈 수 있고 저절로 알 수 있다는 삶의 이치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혹 죄인을 심판하기 보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야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닐까...

 

 

 

 

5. 김훈과 희망 사이

 

 

 

   정약전은 섬에 처음 들어왔을 때, 흑산의 ‘검을 흑黑 자가 단 한 개의 무서운 글자로 이 세상을 격절시키고 있었’다며 두려움을 토로했다. 이 무서움은 비단 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당대 전체에 대한 무서움과 같았다고 고백한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약전은 그 무서움의 안쪽을 들여다 보았고 희미하게나마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흔적’을 발견한다. 정약전이 발견한 흔적은 ‘고향 마재 마을 개울의 게와 흑산 개울의 민물 게’의 모양새가 같다는 기억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증명하고 실현하기 위해 기억을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다시 글이다.

 

 

 

흑산에 대한 무서움 속에는 흑산 바다 물고기의 생김새와 사는 꼴을 글로 써야 한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고기의 사는 꼴을 글로 써서 흑산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을 테지만, 물고기를 글로 써서 두려움이나 기다림이나 그리움이 전혀 생겨나지 않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세상을 티끌만치나마 인간 쪽으로 끌어당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고기의 사는 꼴을 적은 글은, 사장詞章이 아니라 다만 물고기이기를, 그리고 물고기들의 언어에 조금씩 다가가는 인간의 언어이기를 정약전은 바랐다.  -p337

 

 

 

   흑산이라는 캄캄한 바닷길은 바닷 속에 사는 물고기들의 언어에 다다르길 노력하자 흐리고 깊지만 이곳을 의미하는 ‘자산’으로 변모한다. 똑같이 검은 바다였지만 언어로서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흑산이 자산이 된 이유는 검은 바다의 색깔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검은 바닷 속에서 발견한 흐릿한 무엇 때문이다. 저 바다 너머 저 산 너머가 아닌 바로 이곳에서 감지되는 희망의 빛인 것이다. 희망은 언제나 저곳이 아닌 이곳이기에 그들이 아닌 우리들이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흑산은 당신과 내가 지금 여기 사는 우리들의 섬인 것이다. 그것은 정약전이 흑산에서 지을 수 있었다는 ‘집’이기도 하며 흑산에서 우리가 발견한 김훈이 걸어간 길 위의 ‘집’이기도 할 것이다.

 

 

 

   정약전은 흑산이 아닌 자산 바다의 ‘물고기들의 종류와 생김새와 사는 꼴’을 글로 적었고 물고기가 글을 끌고 나가니 글이 물고기와 나란히 가는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물고기들이 푸른 등위에 제 몸으로 파도를 헤쳐 나간 무늬를 새기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글을 쓰게 한 것은 물고기이고 사람을 이끄는 것은 글이었다. 사람인 우리는 흑산이라는 길에서 ‘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친다. 김훈이 말하는 희망은 실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글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결국 글로써 희망을 안을 수 밖에 없었지 않을까.


 

 

 

6. 김훈과 문장사이

 

 

 

 

   허나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요망한 언동으로 국본을 부수는 삿된 미신의 무리’로 등장한 천주교 신도들에 있었다. 그들은 어쩐 일인지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고 개별적인 캐릭터로 기억되지 않았다. 작가는 정약전과 황사영 사이에 갖가지 기막힌 사연을 가진 노비와 천민의 이야기를 심어 놓았지만 그들 모두는 김훈식 문장의 지배구조 하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말(馬)의 형상을 가진 마부 마노리와 정약현의 노비에서 면천된 김개동, 황사영에게 딸려갔다가 면천된 육손이, 대궐 내시한테 천주교를 배운 길갈녀, 천주교인들의 거점지를 조성한 강사녀, 포도청의 염탐꾼 노릇을 한 박차돌, 남대문 옹기장수 최노인, 오동희, 아리...등등 인상 깊은 조연이 하나 없었던 것은 곧 서사의 빈약한 점으로 연결지어 졌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와 배, 섬과 바람과 물고기가 삶의 바탕을 이루는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순매 정도만 뇌리에 남았고 그들은 그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천주교 교리 속에 등장하는 이웃의 무리로만 기억될 듯하다. 순환적 문체로 서사를 통제하는 소설이 가지는 치명적 단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김훈은 자신도 자기 문장의 단점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문장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기 때문에 오류를 알고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작년 연말에 막을 내린 드라마 <천일의 약속>의 김수현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천일의 약속을 보고 싶어도 말이 너무 거슬려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는 어느 시청자의 목소리에 김수현은 ‘천일의 약속’을 ‘외면’하라고 응수하며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테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겁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내 대사가 바로 김수현이니까요” 라고 답했다. 신기하게도 김수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김수현 한 사람이 속사포 같은 대사를 던지는 느낌이 드는데 김훈도 마찬가지다. 정약전이나 김개동이나 말하는 어투는 불행히도 같게 느껴진다. 흔히들 그의 문체를 ‘칼로 조각한 것 같다’는 표현을 하지만 이번엔 쳇바퀴 돌 듯 그 칼로 조각한 모양이 거기서 거기였다. 아무리 완벽하고 아름다워도 같은 모양의 그림은, 이렇게 지겨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 김훈의 어법은 유배죄인의 언어로서 관조와 고통의 문체를 완성했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완성도와는 거리가 멀었고 자기 고민을 치열하게 펼치고 해결하는 시간으로서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다만 바다와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자의 시선과 상념 대 그 바다가 일으키는 파도(매)를 온몸으로 때려 맞는 육신의 아픔을 대치시킨 화법은 정신과 육체를 대변하는 말과 글의 진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끈질긴 공력의 성과가 간과되어선 안 될 것이다.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곳이 없었는데, 돌아가려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서 복받쳤다. -130p

 

 

 

 

   김훈 어법의 한 유형인 문장을 또박또박 받아 적는다. 현재 유배생활 비슷하게 은둔을 자처하는 죄인 같은 나로선 이 말이 가장 복받치게 들려온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간다하여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그 마음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흑산이 가르쳐준 삶의 지독한 진리는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곳 흑산에서도 능히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정약전은 아마 나처럼 웃으면서 울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훈을 견디는 것은 유배지 흑산의 삶을 견디는 것이고 그것은 삶이라는 동일한 지겨움을 견디는 일이다. 지겨움에 면천되는 일은, 글쎄 살아있는 한 가능할 것 같진 않다. 김훈과 나 사이 이 캄캄한 흑산에 의하면.

 

 

 

 

 

 

 

 

 

덧붙임)

 

정말 짧게 쓰고 싶었고 어느 정도 짧게 썼는 줄 알았는데,
다 쓰고 나서 옮겨보니 또 길다...

다섯장 안으로 쓰는 걸 목표로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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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1-1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별점 세 개! 왠지 반가운...(응?)
저는 재회의 작품인데도, 글에 공감이 가네요.

gimssim 2012-01-18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흑산>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전에 나온 책도 읽지 않았네요.
부지런히 찾아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마음이 좀 멀어진 이유가 님의 글을 읽다보니 잡히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던 5매짜리 칼럼은 '칼'이었었는데...
아무래도 전 좀 더 묵혀두어야할까 봅니다.

gimssim 2012-01-19 21:53   좋아요 1 | URL
아니요, 제목이 '칼'이 아니고 시시칼럼이라 군더더기 없이 시작하고 내용이 대단히 압축적이었다는 뜻입니다.

cyrus 2012-01-18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학생 때 <칼의 노래>를 통해 김훈의 글을 처음 만났는데요, 그 때는 정신적으로 어려서 그랬는지
읽어나가는데 애먹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이 책이 노 대통령 필독서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기대와는 달랐어요. 그리고 김훈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모르고 있었는 것도
독서하는 데 어려움을 줬고요. 그러다가 <자전거 여행>을 읽었는데 에세이는 잘 읽혀지더군요.
여행 에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풍경을 묘사한 문장들이 좋았어요. 군 입대 하기 전에
김훈의 <개>를 구입해서 한 번도 읽지 않은게 후회되네요.
휴가로 부대로 복귀하게 되면 꼭 책 한 권씩 가져오도록 규정이 있었는데 그 때는 책 한 권 사기가
돈이 아까워서 일부러 그 책 한 권을 부대에 기부하고 말았어요. ^^;;
한 번이라도 읽었으면 괜찮았는데 막상 사 놓고 안 읽은 책을 내놓은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2012-01-18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1-19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래한글 원고지쓰기로 해 보셔요 ^^;;;
그러면 그야말로 짧게 쓸 수 있으리라 믿어요~

stella.K 2012-01-19 12:02   좋아요 1 | URL
헉, 그런 기능이 어디 있나요?
난 못 찾겠던데...ㅠ

saint236 2012-01-19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책이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항상 고민만하다가 그냥 오곤 하지요.

stella.K 2012-01-19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젊은 날의 숲은 저도 좀 실망했어요.
이작품 처음 나왔을 때 별로란 말있던데
어느새 별 네개 이상씩 단 리뷰들이 쏟아져서
역시 작가의 명성을 무시 못하겠나 보다 싶기도 하더라구요.
그것과 상관없이 그래도 숲 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데...
저는 김훈이 순교를 어떻게 다뤄놨을지가 궁금해요.
이게 맨 정신 가지고 못할 짓인데 말입니다.
순교도 그렇고, 희생도 그렇고.
갈수록 개인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 저는 이게 참 낮설면서도 신기할 지경입니다.ㅋ
 

 

 

 

 

 

 

#1. 추울 때 가지 마시라

 

 

 

 

   겨울에 헤어진 사람이 많다. 우연의 일치인지 만남과 이별의 성적표를 작성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그러므로 겨울엔 보고 싶은 사람도 많다. 어쩌면 겨울에 이별을 많이 한 사람은 일 년 내내 겨울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정말로, 추위를 싫어하고 그래서 겨울엔 아무런 시작도 안하고 그저 꼼짝도 안하는 내게 있어 겨울을 난다는 건 죽어도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들을 꼭꼭 눌러 봉한 채 입술 꽉 깨물어 견디고 있으라는 말과 같다. 마늘과 쑥을 먹으며 백일을 견디면 사람이 된다는 곰처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움을 보고픔을 아낌없이 집어 넣는다. 



   혹시 나는 그동안 그 질긴 겨울을 더 질기게 나고서라도 새로운 봄을 맞고 싶어 이별을 자행해 온 것은 아닐까. 봄이 들이 닥치기 전에 서둘러 헤어지곤 했던 나는 영악한 현실주의자 였던 것은 아닐까... 신문에서 아는 사람의 부인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아는 사람은 그리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부고 란엔 분명 같은 직장에 다니던 그 아무개 씨의 부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개 씨가 나보다 몇 살은 더 많을 테니 어쩜 부인은 나만큼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 아무개 씨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다리가 풀려버릴 만큼 왈칵, 슬퍼지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죽었을까, 암 같은 부인병일까, 재수 없는 교통사고일까, 왜... 그 분은 꼭 이 찬 겨울 더 얼음 같은 땅속으로 들어갔을까... 아이들을 남기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신문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신문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개씨 이름이 곧 찢어질듯 했다. 

 

 

   아버지가 이맘 때 돌아가셨다. 설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가신 그날 얼마나 추웠냐면... 가만히 서 있는데 이빨이 덜덜덜 떨리고 청색병 걸린 환자마냥 입술이 파래지고 그 푸른 입술은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참 매정하기 짝이 없는 날씨였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지 눈이 시려워 눈물이 흐르는 건지 내 부모를 묻는 날에도 나는 왜 하필 이렇게 추운 날 돌아가셨냐고 관을 붙잡고 투정을 부릴 정도였다. 드라마에 보면 꼭 무슨 일 있을 때 주인공이 부모님 산소 앞에서 소주 한 병 놓고 처량하게 우는 장면도 많은데 나는 내 몸 하나 죽지 않을 만큼만 추워서 그 얼음짝 같은 산소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매번 꽃피는 봄으로 제삿날을 변경하고 싶어 죽겠는 자식인 것이다. 아무개 씨도... 나처럼, 아내를 묻으면서 뼛속까지 관통하는 이 겨울 찬바람을 잊지 못하겠구나... 아무개 씨와 그 자식들의 추위가 서러워 계속 울었다. 그 울음 앞에서도 아무 대답 없이 누워 있을 아내가 가여워 울었다. 지금은 변변치가 못해 당연히 찾아가 볼 수 없는 내 처지도 서글퍼 울었다. 십 오년 전 그 눈 오던 겨울 타이어가 펑크 난 내 차를 보고 기꺼이 자동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 타이어를 교체해주던 그 모습이 생각나 미안해서... 울었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2. 남들도 우리와 같을까요

 

 

 

 

   아내의 죽음을 노래한 시인으로는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이 퍼뜩 떠오른다. 무덤가를 오래 배회하는 듯한 가난한 시인의 이미지는 ‘당신의 무덤 위에 눈물 한 올 던지고 오면 당신은 빗줄기 되어 속살에 젖어’ 온다고 하는 사무친 고백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글에서도 어느 라디오 사연에서 듣게 된 ‘아내의 편지’를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시대 대표 시인 24인이 첫사랑 혹은 추억속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할 때 도종환은 죽은 아내를 고개 숙여 그리워 했다.

 

 

 

 


   원이 아버지께 사뢰어 올립니다.

   당신이 늘 나에게 말씀하시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십니까? 나하고 자식은 누가 거두어 어떻게 살라하고 다 던지고 당신만 먼저 가십니까? 당신이 나를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당신을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습니까?

   매양 당신에게 내가 말씀드리기를 한데 누워서 ‘이 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와 같을까요?’ 하며 당신에게 말씀드리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하니 나를 데리고 가소.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 내 마음을 어디에나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까요? 이 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말씀하소. 내가 꿈에 이 보신 말씀 자세히 듣고저 하여 이리 써서 넣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씀하소.

   당신, 내가 밴 자식 나거든 보고 말씀하실 일을 두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하십니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리 가 계실뿐이거니와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그지그지 가이없어 다 못써서 대강만 적습니다.

   이 나의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보이시고 자세히 말씀하소.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보리라 믿고 있습니다. 몰래 보이소서. 하도 그지그지 없어 이만 적습니다.


 

 

-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이 애절한 편지를 읽고서 도종환 시인은 아마도 조용히 울지 않았을까. 이 편지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 개발지구내 한 무덤에서 발굴된 ‘이응태공 부인의 언간’ 이라 불리는 편지이다. 아내의 뱃속에 유복자를 남긴 채 서른 한 살 나이에 병들어 죽은 남편에게 아내는 제발 꿈속에 와서 나를 똑똑히 보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남편의 관속 수의에 집어 넣고 집에 돌아와 아내는 얼마나 울었을까... 4백 년 전 어느 아내가 흘린 눈물의 양과 의미를 시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시인은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사랑할 수 없었던 영혼들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은하수 어디쯤에서 만나고 있으면 좋겠’다는 칠석날 밤에 이렇게 적었다.

 

 

 

   이 편지를 미처 못 읽고, 그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던 부부의 영혼이 그 사이에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 아프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 사랑하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다시 부부가 되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뒤에 남아 아내에게 눈물로 편지를 쓰고 그렇게 업연을 갚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이 그 아내를 위해 울어 주었기를 바랍니다. 아니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여 머리가 세도록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세월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 107, 아내의 편지 中, 도종환 / 『떨림』, 2007

 

 

 

 

  신경림 시인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에서 도종환을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이라 말한다. 슬픔, 사랑, 눈물의 부드러움이 곧 연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접시꽃 당신』만 생각하면 과격한 교원노조 활동과 문예활동에의 헌신하는 결단력 같은 모습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 부드러움은 타자에 기대는 바가 아닌 직선으로 나아가는 곧고 강함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시인의 삶의 모습은 연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드럽지만 곧은 것이 아니다. 그 곧음을 안고 있기 때문에 부드러운 것이다. 이 같은 메시지를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담고 있는 시가 <부드러운 직선>이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 <부드러운 직선> 부분

 

- 111p,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도종환 中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나는 시집보다 시를 해설하고 평을 덧붙여 주는 시읽기 산책(?) 에 속하는 책이 더 좋다. 『떨림, 2007』같이 시인들이 쓴 에세이는 부력이 많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또 달달한 설레임이 필요할 때 본능적으로 집어 들게 되는 매력이 있다. 조금 더 수준이 높은 시론집도 소설가의 산문과는 또 다른 전문성이 느껴져서 언제나 시보다 나를 유혹하는 책들이다. 도서관에서 이수영 시론집 『횡단, 2011』을 빌려왔는데... 이 책은 덮고서 리뷰를 써볼까 싶기도 하다.

 

 

 

#3.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하게

 

 

    마지막, 시 읽기에 썩 마땅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 책을 소개, 추천한다. 시 읽기 좋은 날이 따로 있을까마는 그래도 이 책을 집어 드는 날이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책을 덮고서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았을 눈물 몇 방울을 닦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시 읽기 좋은 날은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 날일지 모른다. 시가 필요한 날은 사실 시 읽기 좋은 날은 아니었을 것이나 시가 더 좋아질 수 있는 날인 것은 확실하다. 우연히 끌려서(어쩌면 충동구매에 가깝게)집어 든 책인데 이참의 우울함을 많이 치유해 준 듯해 고마운 마음이다.

 

 

 

   여고에서 국어 선생님을 지낸 동생 같은 분이 쓴 책. 의외로 넘기는 맛이 풍부하다. 정석대로 차려진 한정식 밥상. 그러나 지루하지 않아 기분이 좋아지는 점심 한 나절.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공동 집필한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은 교과서적인 단아함이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편집도 시원하고 중간에 매치된 사진들도 꼭 여학교 때 주고받던 편지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이다. 선정된 50편의 시도 교과서와 참고서에 주로 언급되었던, 그러니까 서정윤과 도종환이 베스트셀러 1,2위를 휩쓸던 그 시절 연습장 표지에 주로 등장하던 분위기의 시들이다. (그게 참 반가웠다. 나는 1987년 이후 시집을 거의 모른다...) 곁들여지는 저자의 이야기와 성찰 및 깨달음이 어렵지 않고 지나치게 달달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핵심을 전달하며 올곧게 끝까지 애를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 일 년에 책을 열권이하로 읽는 분들에게도 선물로써 유용할 듯하다. 가장 많이 생각난 건 故 장영희 교수의 수필정도를 취미삼아 읽으시던 내 어머니였다. 이런 책 참 좋아라 하실텐데....흑흑흑.... 글자도 크고 여백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보편성과 대중성에서 기획력이 돋보인다.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무리 없이 읽어내는 독자라면 조금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어렵다고 모두 기억나고 쉽다고 모두 잊혀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는 분들은 알고 계실 터이다.

 

 

 

   저자는 詩가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 말’이라 말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들의 경전에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세 가지 관문을 통과 했는가’를 미리 점검해보라는 가르침을 빌어 첫째, 그 말이 진실한가. 둘째, 그 말이 필요한가. 셋째, 그 말이 친절한가를 따져본다고 한다. 시는 그 자체로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 말이기에 공해처럼 해로운 말들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는 더없이 친절하다.(내 글은 과연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가를 한참 생각하다가 답을 못 내렸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에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가 소개되어 있다. 미치겠다. 책과 사연과 우연이 꼭 겹쳐지는 이 지겨운 나날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어쩔 수 없는 벽’... 이 구절을 읽다가 목이 컥 하고 걸려왔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를 끝내고 나니 나 혼자서 나 혼자만이 저 막막한 벽 앞에 서있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한숨이 비어졌다. 시인은 절망을 넘는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혼자서가 아니라 ‘꼭 여럿이 손을 잡고’ 넘어가야 한다고 희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시 한수 읽었다고, 소설 한 편 읽었다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웃고 저렇게 울었다고 말하는 것에 나는 늘 갈망하고 희망하고 순간의 절망을 이겨보려 담쟁이처럼 질기게도 벽을 타고 있었을까. 누군가는 나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그 벽을 타다가 반가운 마음에 같이 엉겨 붙어 힘을 보태어 주었을까. 안 보이는 연대와 숨겨진 우정은 얼마나 소중한가... 추위도, 슬픔도, 그리움도, 겨울 모든 시름도 그렇게 함께 올라타고 넘어가는 것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절망이라는 무시무시한 벽을 힘 모아 오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언제나 마지막에 습관처럼 하는 말, 당신도 나와 같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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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1-1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떨림의 두번째 이야기 [설렘]을 읽었었더랬어요. 작가들이 들려줘서 그런지, 원래 재미없어하는 남의 사랑 이야기에도 눈물이 삐질삐질. 시와 사랑에 빠지신 한사람님, 편안한 밤 되세요. 주말이 오고 있어요. 우후^^

한사람 2012-01-15 11:53   좋아요 0 | URL

하하, 재미없어 하는 남의 사랑이야기 ㅋㅋㅋ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ㅋ 시인이 쓰는 사랑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소설가가 쓰는 (소설아닌 자기)사랑이야기도 그저 그렇구요.
작가들은 자기 사랑이야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같아요.
그냥 작품으로만 말하는게 가장 멋지고,
실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나 이런거 볼때가 가장 미칠 것 같이 소름이 돋긴 합니다..

그런데 도종환의 이야기는 대단한 절제와 함께 이미 자신을 배경으로 놓고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만 하는데도..눈물이 나더라구요...
저는 그런 남의 눈물과는 참 많이도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는 ㅠ


숲노래 2012-01-14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로
좋은 하루
언제나 밝히소서..

한사람 2012-01-15 11:54   좋아요 0 | URL

고마운 덧글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너무 늦었군요 ㅋㅋ)

gimssim 2012-01-1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종환을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요즘 그분을 보고 있어요.
이 시대, 시인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고, 기대수준도 높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너무 외진 곳으로만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한사람 2012-01-15 12:11   좋아요 0 | URL

어쩌다 그렇게 되었네요. 여러 권 같이 넘기다 보면 꼭 한가지 사연이 발견되더라구요.
시인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기사를 여럿 보았습니다.
본인 스스로 아이들 가르칠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셨으니
교사된 마음 잊지 않으려 평생 거울비추며 살아가시겠죠, 믿습니다^^


꽃도둑 2012-01-1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추울 때 보내고 싶지도,,,가고 싶지도 않네요.
유독 추위를 싫어하는 탓도 있겠죠?,,,,글을 읽고나니 마음이 스산해집니다..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더욱 더하네요.

한사람 2012-01-18 19:40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 거긴 비가 오나요???
여긴 아직이요~

새해가 되자마자 또 설이네요, 괜스레 마음만 바쁜 나날들 입니다^^
(추운건 정말 싫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