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가

 

 

 

   오년 전 부터인가 부모님 모두가 내 곁을 떠나고 난 후 내 명절의 풍경은 결코 평범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공백을 견디기 위해 나는 주로 떠나거나 숨거나 책을 쌓아왔다. 이번이 열한 번째의 명절인데 설이 2월로만 되었어도 오랜만에 바람을 쐬어 보려 했으나 날이 너무 추워 한 달 뒤로 미루었다. 마침 부모님의 기일이 명절을 기점으로 사이좋게 한 달 차 밖에 되지 않아 나는 그때그때 내 편의대로 명절과 적절히 믹스하여 떠날 구실을 만들어왔다. 처음 삼년까지는 산소 앞에 가면 눈물이 절로 떨어지곤 했는데 이젠 그 타이밍이 조금씩 늦추어 진다. 슬프다기 보다 담담해지는 심정이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나는 이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돌아와 혹시 서글퍼질지 모를 심정을 잘 추슬러 줄 것으로 믿게 된다.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건 산소를 도착하기 전까지, 그리고 산소를 다녀오고 나서인 것이다. 어찌 보면 산소여행은 영악하게도 미리 앞당겨 제공받는 한 해의 치유 프로젝트인 셈이다. 나는 이제 언제 가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공백의 그리움을 채곡 채곡 저장하며 그 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명절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된다는 말을 나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제 때 떠나지 못한 이번 설을 잘 견디게 해준 기특한 소설을 하나 이야기 하고 싶다. 박경리의 <녹지대>, 두 권 연속 녹지대로 빠져들어 보낸 연휴였다. 지난 2008년도로 기억한다. 한여름 터미널에서 누구와 헤어지고 허전한 마음에 서점에서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당신의 소원은 그냥 힘세고 덩치가 좋아 농사를 잘 짓는 시골 남정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라는 싯구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엄마를 떠나보낸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모든 죽음을 엄마의 죽음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일 때였다. 장례를 마치고 난 후 엄마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하도 집안 청소가 깔끔하게 되어 있어 나는 엄마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는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손 댄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확률이 많을 것이므로 가차 없이 버리며 살아라 평소에도 잔소리를 하셨다. 나 역시 워낙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는 편이라 꾸역꾸역 쌓아 놓고 살지를 못하는 편이긴 한데 그렇기 때문에 버리고 남은 것들은 정말로 중요하다 여긴 것이라는 생각에 어떤 것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버리지는 못한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시집을 보면서 거의 매일 울고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박경리 작가의 문학인장 때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박완서 작가도 작년 이맘때 우리 곁을 떠났다. 두 작가만 생각하면 무슨 엄마의 형제나 된 듯이 가슴 한 구석이 헛헛하고 뻥 뚫린 것만 같은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알라딘 서재 오른쪽 상단에 게시되는 북캘린더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흠칫할 때가 많다. 어떤 유명한 작가가 등단한 날 혹은 누가 태어난 날은 또 다른 대가의 작가가 명을 달리한 날이기도 하다. 신경숙과 하루키가 태어난 날은 같은 날이기도 했다. (박경리 등단=고은 출생, 박경리 사망=김훈 출생으로 같은 날이기도 하다) 같은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괜스레 숫자의 인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 우리는 이전 세대의 위대한 예술적 유산이 계속하여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2.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

 

 

 

   이 책을 어쩌다 집어 들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달력을 넘기며 부모님 기일과 명절을 생각하고 있다가 반사적으로 이 책에 끌렸다는 분석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설명할 수 없이 부모님을 자세하게 그려볼 수 있었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이 책은 내 부모님 세대의 젊은 날을 그린 소설이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내 부모님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당시 내 부모님도 이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가끔 부모님은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미래를 약속했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 정답은 아니더라도 무척 비슷한 장면들이 많았다고 믿는다. 부모님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보내었고 불같은 사랑을 하셨기에 많은 세월을 같이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와도 같은 나는 이 소설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박경리라는 작가도 분명 젊은 날이 있었구나를 실감했다. 삼십대 후반에 쓰여진 이 소설의 문체는 퍽이나 감각적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누구나 시인의 어법으로 대화한다 그들은, 시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그랬기 때문이라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었다.

 

 

 

비가 들면 걸어서라도 가야지. 오늘 녹지대에 가면 무슨 일이 꼭 일어 날 것만 같다. 내 예감은 참 맞아 떨어지거든 .   - p19, <녹지대 1권>

 

 

 

   이 소설은 60년대 중반 부산일보에 연재된 소설이지만 배경은 서울의 명동 뒷골목에 위치한 음악살롱을 그 중심으로 한다. 녹지대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으로 페이지를 넘겨본다. ‘녹지대’가 다방의 이름이었다는 것이 낯설긴 하지만 80년대엔 ‘안전지대’라는 일본그룹이 있었고 90년대만 하더라도 ‘녹색지대’라는 듀엣그룹도 있었으니 녹지대를 정치적, 이념적으로 상상한건 어쩌면 박경리와 그의 문학에 대한 나의 편견일수도 있었다. 어느 시대건 그 시절 젊은 세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60년대는 명동의 ‘녹지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젊은 문청들과 화가, 음악인, 지식인들이 모여 희망과 절망을 공유하는 장소. 문화예술의 근원지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실상 소설의 분위기는 개인의 연애사가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은 통속을 박경리 화법으로 말하는 연애소설이다)

 

 

 

   인물은 공평하게 남자 셋, 여자 셋이 등장하고 이들은 서로서로 우정과 사랑이라는 인연속에 촘촘하게 얽혀 들어 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하인애와 양공주를 엄마로 둔 친구 은자, 인애가 얹혀사는 숙부집의 딸 여대생 숙배가 이십대 초반의 여 주인공들이다.(이름이 영낙없이 부모님 세대스럽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억압된 상처를 지닌 조각가 민상건과 합리적인 신문기자 한철, 안개처럼 베일에 쌓인 김정현이 남자 주인공들이다. 여기에 대학교수 집안이면서 사교계에 명망높은 숙배의 부모님 하흥수와 최경순, 그들과 과거사로 얽힌 한박사가 있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소설의 갈등을 절정으로 몰고 가는 민상건의 아내이면서 김정현의 동거녀가 있다. 그밖에 짝사랑의 역할을 맡은 화가 정인호와 범생이 박광수, 안경잡이, 땅딸보등이 늘 녹지대 주변을 서성인다. 어렸을 적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70년대 영화나 80년대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이 테마극장이라며 드라마를 연기하던 ‘강변연가’정도가 내가 상상하는 어르신들의 연애장면이었다. 이 소설은 제대로 멜랑꼴리를 이끌어 가면서 흡사 프랑스 영화처럼 우울하고 회의적인 영상미를 연상케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프랜시스 레이 (Francis Lai)가 작곡한 같은 60년대 영화인 <남과 여>의 주제음악 정도를 떠올리면 쉬울 듯하다.

 

 

 

   차가 없는 주인공들은 이동할 때 전차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늘 거리를 걷는다. 서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거나 다방에서 조우한다. 약속이건 우연이건 그들은 자연스럽게 차나 한잔 하러 가자 말하고 차를 마신 다음엔 여기를 나가자 하면서 대폿집을 향한다. 대폿집 가는 길에 수예점, 양장점이 있다. 가끔 김장 실은 구루마, 구공탄 구루마, 껌장수, 군밤장수도 보인다. 녹지대에선 ‘미완성 교향곡’이나 ‘소녀의 기도’, ‘진주잡이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그들은 커피나 우유 혹은 코카콜라를 주문한다. 차를 주문받는 사람은 ‘레지’라 부르고 남자 일 경우 ‘보이’라 칭하며 급사나 식모가 주변인으로 즐비하다. 회사에서 미혼인 직원은 미스터 리이거나 미스 김으로 불리운다. 그들은 집에서 ‘깡통을 꺼내어 커피포트에 가루를 넣고 주전자의 물을 부은 뒤 전기 곤로에 스위치를 넣고 커피를 끓’여서 마신다.(끓인 물을 커피에 붓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끓이다니) 비오는 날이면 자줏빛 레인코트에 감색 양산, 분홍빛 비닐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영화구경을 할 땐 당시 대합실에서 남자가 꼭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한다.(대합실이라니, 서울역 이후 참 오랜만인 장소 아닌가) 데이트를 할 때엔 남산 라운지에서 분위기를 내며 커피를 마시고 남산 언덕길의 별빛이 아련해질 때 헤어진다. 집에 가면 있는 집일 경우 식모가 저녁을 챙겨주며 어머니는 곱게 양단치마 저고리를 입고서 맞아준다.

 

 

 

   “어떻습니까? 차 한잔 사드리고 싶은데요.”, 이렇게 말하는 모습은 내 아버지와도 겹쳐진다. 아마도 아버지같은 남자와 차를 마신 엄마같은 어르신은 미도파 앞에서 택시를 잡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쓰고 부치며 녹지대에서 중요한 편지를 전달 받는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녹지대에 들를 것을 알고 있으니까 편지를 두고 가는 것이다. 그 시절의 사랑은 기다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잊혀진 풍경이 되어버린 그 시절의 편지에는 반드시 눈물과 이별이 있다. 그들은 예술가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청춘의 불안을 나누고 사랑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내가 녹지대 1권에서 느낀 것은 그들은 자신의 윗세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라고 할까. 그들 여성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전쟁세대 이면서 불행의 사연을 피할수 없었던 세대이다. 인애의 어머니는 전쟁이 죽였고 은자의 어머닌 자살을 했고 숙배의 어머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전후 세대이면서 어머니의 다음 세대인 이들은 당장 행복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꿈’을 가져보길 소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서로 뭔지도 모르고 되지도 않는 말을 주워 삼키며 큰 소리로 한참 떠들어 대다가 갑자기 폭풍이 지나간 듯 조용해지며 흡사 바보가 된 듯 서로 멍하니 바라본다.   -p205, <녹지대 1권>

 

 

   ‘서로 뭔지도 모르고 되지도 않는 말’, 이 부분이 아련하게 슬픈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실은 잔인하고 비극의 연속인데 예술과 행복은 너무 멀어 보였다는 말로만 들린다. ‘바보가 된 듯 서로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 작가는 누구보다 시대상을 정확하게 투시하려 애를 쓰신 듯하다.

 

 

 

 

#3. 더 좋아질 수는 없는가

 

 

   2권에서는 하인애가 사랑하는 남자 김정현과 그의 영혼을 빼앗아 간 묘령의 여자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실 처음엔 1권만 적당히 읽어 볼 생각이었는데 내용상 후반부 몇 십 페이지를 남겨놓고서야 실타래 같은 비밀이 밝혀지는 구성을 하고 있어 2권을 들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1권이 인물 간 대화가 많고 핵심이 잘 잡혀지질 않아 가독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는데 반해 2권은 갑자기 빨라진 서사의 호흡 때문에 앉은 채로 책을 덮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작가는 1권에서의 산발적인 고민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과 괴리를 가지지 않은 채 실제화되어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하고 번뇌한다.

 

좀 더 나아질 수는 없는가. 좀 더 영혼을 흔들어 주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은 없는가. 도시는 괴물같이 커지기만 하고 사람의 무리는 보다 더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킬 지경인데. 구두점에는 오렌지 빛깔의 귀여운 세무 구두가 진열되어 있고 어느 누구보다 봄에 민감한 양장점의 주인은 봄옷을 만들어 진열장에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건만 진정 봄은 어디 메에 있는고. 소녀들의 얼굴은 어둡고, 대머리의 중년신사나 구두창이 밖으로만 닳은 청년들의 걸음걸이. 그리고 어울리지도 않게 호화롭기만 한 흰털 외투 입은 숙녀들, 모두 모두가 생활하는 모습은 아니다. 다만 생존하고 있는 모습들이 아닌가.   -p171, <녹지대 2권>

 

 

   이것은 인애가 종로에서 명동까지 걸어가는 풍경을 묘사한 장면인데 작가는 모두가 ‘생활’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생존’하고 있는 모습이라 결론짓는다. ‘좀 더 영혼을 흔들어 주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는 것인지 고민하는 방식은 47년 전의 서울이나 지금의 서울이나 결코 다를 수가 없다.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숨쉬는 ‘생존’이 아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생활’을 꿈꾸는 것은 왜 변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저 단순한 생활이 아니라 영혼을 누군가에게 빼앗길지언정 내 영혼을 흔들어 주고 같이 공감하며 나아갈 그 무엇을 염원하는 것은 왜 끈질기게도 계승되는 것일까.

 

 

   처음으로 문학의 발전이 국가 및 국민의 발전과 그 걸음을 같이 하는 것이었구나를 깨닫는다. 독서하면서 이런 거창한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로 스스로도 참 낯선 느낌이다. 나는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고민이 박경리 문학의 고민이었고 그것은 곧 우리 문학이 탐구하고 이어나가야 할 고민이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60년대 소설의 정수를 상징하는 김승옥의 작품들도 기억난다. 우울한 도시의 어법으로 감각적인 감수성의 극치를 보여준 그의 단편들에서 주인공은 자주 ‘어디로 갈까’를 되뇌인다.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두리번거리며 명동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에게 패배감을 느끼며 엉거주춤 뒤좇아가는 심정으로 거리를 방황한다.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1,000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 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 버렸단 말이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글쎄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

 -p57, <서울 1964년 서울> 中, 『무진 기행』, 민음사

 

 

   나는 박경리가 그리는 65년 명동의 녹지대에 모여든 청춘과 김승옥이 전해준 명동 거리의 청춘이 같은 것을 보고 들었을 것으로 어쩌면 그들 속에 내 부모님도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을 꿈꾸는 인애에게 조각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던 민상건은 ‘세상에 남의 일이라는 게 있을까’ 하면서 사람은 남의 운명을 돕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의 운명은 나의 것이긴 하지만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로써만 끝나는 것도 아님을 환기하는 대목이었다. 60년대를 ‘생활’하지 못하고 ‘생존’하며 살아온 우리 윗 세대 들의 아픔을 가만히 보듬어 본다. 여전히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들과 당신과 나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고 우리의 운명을 도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했을 것이다. 녹지대는 누구나 한번쯤 지나온 흑지대나 혹시 지금 지나고 있을지 모를 적지대 아니면 무엇인지 알수 없는 회색지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건한 위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운명은 서로 돕는 것이기 때문에.

 

 

   ‘백화점 화랑에서 녹지대의 동인 시화전’이 개최되던 날 그날 밤 그들은 ‘뒷골목의 인정, 실패한 사람들의 살갗이 닿는 듯한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금 살아 있는 것과 앞으로 살아갈 것, 그리고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을 것을 다정하게 노래했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언어, 다른 감수성, 다른 소설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기꺼이 권한다. 무언가 지금과는 확실히 다른 반가운 녹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그저 ‘생활’이 ‘생존’뿐이라 슬퍼하는 우리 모두의 무망한 밤에 조용하고도 옅은 초록이 되어 줄 것이다. 그건 아마  한밤중도 초록이 되는 신기한 시간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잘은 모르지만 박경리나 김승옥이나 혹은 우리 부모님이나 '한쪽 눈으로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있는 얼굴, 그 그리운 얼굴들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초록이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덧붙임)

 

마침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 '한국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 명동 반세기를 돌아보는 특별전 '명동 이야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60년대 명동거리를 사진과 이야기로 확인할수 있다고 한다. 녹지대 같은 다방과 그곳에서 예술과 문화를 논했던 젊은이들을 만날수 있다고 하니 날이 풀리면 한번 나들이나 가볼까...

기사 참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24/20120124012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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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2-01-24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마음 뭉클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마부> <오발탄> <미워도 다시 한 번> 등을 본 기억이 납니다.
<녹지대>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는 부산 영도에 살았드랬습니다.
전후 세대, 영도국민학교엔 1학년이 14반까지 있었고 저는 12반 112이번이었는데 제 뒤로도 열명 가량의 아이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학교에서 보면 오전 열 시, 오후 네 시 영도다리가 들려올라갔습니다.
미군막사로 쓰던 교실, 동네 공중화장실...
살아남느라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어른들의 싸움들...

모처럼 향수에 젖어봅니다.

한사람 2012-01-25 09:26   좋아요 0 | URL

일곱살까지 부산에 살았어요.
당시 부산에선 어른들이 늘 영도다리에서 줏어 왔다고 아이들을 놀렸어요.
당연히 거짓말이라 생각하다가도 한순간 정말?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갑자기 두렵다는 생각이 들어 엉엉 울게되곤 하는데, 저는 울지를 않았대요.
심각하게 나를 왜 주어왔냐... 내 모습이 어땠냐... 그런 식이었대요, 하하하

그 영도다리가 들려 올라갔다니 정말 옛날이군요 ㅋ
112명은 너무나 끔찍한데요? 서울와서 학교를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다녔네요.
그때 7,80명 했었죠. 한 반에..

저는 아버지와 단 한번도 영화를 같이 본적이 없어요 ㅠㅠ
말씀하신 영화등은 죄다 어린 시절 명절특집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
중전님 덧글로 아주 어렸을 적 아직도 기억하는 부산친구들 생각에 슬몃 미소지어 봅니다^^
(연휴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