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울 때 가지 마시라
겨울에 헤어진 사람이 많다. 우연의 일치인지 만남과 이별의 성적표를 작성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그러므로 겨울엔 보고 싶은 사람도 많다. 어쩌면 겨울에 이별을 많이 한 사람은 일 년 내내 겨울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정말로, 추위를 싫어하고 그래서 겨울엔 아무런 시작도 안하고 그저 꼼짝도 안하는 내게 있어 겨울을 난다는 건 죽어도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들을 꼭꼭 눌러 봉한 채 입술 꽉 깨물어 견디고 있으라는 말과 같다. 마늘과 쑥을 먹으며 백일을 견디면 사람이 된다는 곰처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움을 보고픔을 아낌없이 집어 넣는다.
혹시 나는 그동안 그 질긴 겨울을 더 질기게 나고서라도 새로운 봄을 맞고 싶어 이별을 자행해 온 것은 아닐까. 봄이 들이 닥치기 전에 서둘러 헤어지곤 했던 나는 영악한 현실주의자 였던 것은 아닐까... 신문에서 아는 사람의 부인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아는 사람은 그리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부고 란엔 분명 같은 직장에 다니던 그 아무개 씨의 부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개 씨가 나보다 몇 살은 더 많을 테니 어쩜 부인은 나만큼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 아무개 씨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다리가 풀려버릴 만큼 왈칵, 슬퍼지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무슨 일로 죽었을까, 암 같은 부인병일까, 재수 없는 교통사고일까, 왜... 그 분은 꼭 이 찬 겨울 더 얼음 같은 땅속으로 들어갔을까... 아이들을 남기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신문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신문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개씨 이름이 곧 찢어질듯 했다.
아버지가 이맘 때 돌아가셨다. 설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가신 그날 얼마나 추웠냐면... 가만히 서 있는데 이빨이 덜덜덜 떨리고 청색병 걸린 환자마냥 입술이 파래지고 그 푸른 입술은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참 매정하기 짝이 없는 날씨였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지 눈이 시려워 눈물이 흐르는 건지 내 부모를 묻는 날에도 나는 왜 하필 이렇게 추운 날 돌아가셨냐고 관을 붙잡고 투정을 부릴 정도였다. 드라마에 보면 꼭 무슨 일 있을 때 주인공이 부모님 산소 앞에서 소주 한 병 놓고 처량하게 우는 장면도 많은데 나는 내 몸 하나 죽지 않을 만큼만 추워서 그 얼음짝 같은 산소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매번 꽃피는 봄으로 제삿날을 변경하고 싶어 죽겠는 자식인 것이다. 아무개 씨도... 나처럼, 아내를 묻으면서 뼛속까지 관통하는 이 겨울 찬바람을 잊지 못하겠구나... 아무개 씨와 그 자식들의 추위가 서러워 계속 울었다. 그 울음 앞에서도 아무 대답 없이 누워 있을 아내가 가여워 울었다. 지금은 변변치가 못해 당연히 찾아가 볼 수 없는 내 처지도 서글퍼 울었다. 십 오년 전 그 눈 오던 겨울 타이어가 펑크 난 내 차를 보고 기꺼이 자동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 타이어를 교체해주던 그 모습이 생각나 미안해서... 울었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2. 남들도 우리와 같을까요
아내의 죽음을 노래한 시인으로는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이 퍼뜩 떠오른다. 무덤가를 오래 배회하는 듯한 가난한 시인의 이미지는 ‘당신의 무덤 위에 눈물 한 올 던지고 오면 당신은 빗줄기 되어 속살에 젖어’ 온다고 하는 사무친 고백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글에서도 어느 라디오 사연에서 듣게 된 ‘아내의 편지’를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시대 대표 시인 24인이 첫사랑 혹은 추억속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할 때 도종환은 죽은 아내를 고개 숙여 그리워 했다.
원이 아버지께 사뢰어 올립니다.
당신이 늘 나에게 말씀하시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십니까? 나하고 자식은 누가 거두어 어떻게 살라하고 다 던지고 당신만 먼저 가십니까? 당신이 나를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당신을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습니까?
매양 당신에게 내가 말씀드리기를 한데 누워서 ‘이 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와 같을까요?’ 하며 당신에게 말씀드리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하니 나를 데리고 가소.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 내 마음을 어디에나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까요? 이 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말씀하소. 내가 꿈에 이 보신 말씀 자세히 듣고저 하여 이리 써서 넣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씀하소.
당신, 내가 밴 자식 나거든 보고 말씀하실 일을 두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하십니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리 가 계실뿐이거니와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그지그지 가이없어 다 못써서 대강만 적습니다.
이 나의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보이시고 자세히 말씀하소.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보리라 믿고 있습니다. 몰래 보이소서. 하도 그지그지 없어 이만 적습니다.
-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이 애절한 편지를 읽고서 도종환 시인은 아마도 조용히 울지 않았을까. 이 편지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 개발지구내 한 무덤에서 발굴된 ‘이응태공 부인의 언간’ 이라 불리는 편지이다. 아내의 뱃속에 유복자를 남긴 채 서른 한 살 나이에 병들어 죽은 남편에게 아내는 제발 꿈속에 와서 나를 똑똑히 보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남편의 관속 수의에 집어 넣고 집에 돌아와 아내는 얼마나 울었을까... 4백 년 전 어느 아내가 흘린 눈물의 양과 의미를 시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시인은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사랑할 수 없었던 영혼들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은하수 어디쯤에서 만나고 있으면 좋겠’다는 칠석날 밤에 이렇게 적었다.
이 편지를 미처 못 읽고, 그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던 부부의 영혼이 그 사이에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 아프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 사랑하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다시 부부가 되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뒤에 남아 아내에게 눈물로 편지를 쓰고 그렇게 업연을 갚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이 그 아내를 위해 울어 주었기를 바랍니다. 아니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여 머리가 세도록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세월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 107, 아내의 편지 中, 도종환 / 『떨림』, 2007
신경림 시인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에서 도종환을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이라 말한다. 슬픔, 사랑, 눈물의 부드러움이 곧 연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접시꽃 당신』만 생각하면 과격한 교원노조 활동과 문예활동에의 헌신하는 결단력 같은 모습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 부드러움은 타자에 기대는 바가 아닌 직선으로 나아가는 곧고 강함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시인의 삶의 모습은 연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드럽지만 곧은 것이 아니다. 그 곧음을 안고 있기 때문에 부드러운 것이다. 이 같은 메시지를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담고 있는 시가 <부드러운 직선>이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 <부드러운 직선> 부분
- 111p,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도종환 中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나는 시집보다 시를 해설하고 평을 덧붙여 주는 시읽기 산책(?) 에 속하는 책이 더 좋다. 『떨림, 2007』같이 시인들이 쓴 에세이는 부력이 많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또 달달한 설레임이 필요할 때 본능적으로 집어 들게 되는 매력이 있다. 조금 더 수준이 높은 시론집도 소설가의 산문과는 또 다른 전문성이 느껴져서 언제나 시보다 나를 유혹하는 책들이다. 도서관에서 이수영 시론집 『횡단, 2011』을 빌려왔는데... 이 책은 덮고서 리뷰를 써볼까 싶기도 하다.
#3.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하게
마지막, 시 읽기에 썩 마땅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 책을 소개, 추천한다. 시 읽기 좋은 날이 따로 있을까마는 그래도 이 책을 집어 드는 날이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책을 덮고서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았을 눈물 몇 방울을 닦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시 읽기 좋은 날은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 날일지 모른다. 시가 필요한 날은 사실 시 읽기 좋은 날은 아니었을 것이나 시가 더 좋아질 수 있는 날인 것은 확실하다. 우연히 끌려서(어쩌면 충동구매에 가깝게)집어 든 책인데 이참의 우울함을 많이 치유해 준 듯해 고마운 마음이다.
여고에서 국어 선생님을 지낸 동생 같은 분이 쓴 책. 의외로 넘기는 맛이 풍부하다. 정석대로 차려진 한정식 밥상. 그러나 지루하지 않아 기분이 좋아지는 점심 한 나절.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공동 집필한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은 교과서적인 단아함이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편집도 시원하고 중간에 매치된 사진들도 꼭 여학교 때 주고받던 편지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이다. 선정된 50편의 시도 교과서와 참고서에 주로 언급되었던, 그러니까 서정윤과 도종환이 베스트셀러 1,2위를 휩쓸던 그 시절 연습장 표지에 주로 등장하던 분위기의 시들이다. (그게 참 반가웠다. 나는 1987년 이후 시집을 거의 모른다...) 곁들여지는 저자의 이야기와 성찰 및 깨달음이 어렵지 않고 지나치게 달달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핵심을 전달하며 올곧게 끝까지 애를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 일 년에 책을 열권이하로 읽는 분들에게도 선물로써 유용할 듯하다. 가장 많이 생각난 건 故 장영희 교수의 수필정도를 취미삼아 읽으시던 내 어머니였다. 이런 책 참 좋아라 하실텐데....흑흑흑.... 글자도 크고 여백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보편성과 대중성에서 기획력이 돋보인다.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무리 없이 읽어내는 독자라면 조금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어렵다고 모두 기억나고 쉽다고 모두 잊혀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는 분들은 알고 계실 터이다.
저자는 詩가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 말’이라 말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들의 경전에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세 가지 관문을 통과 했는가’를 미리 점검해보라는 가르침을 빌어 첫째, 그 말이 진실한가. 둘째, 그 말이 필요한가. 셋째, 그 말이 친절한가를 따져본다고 한다. 시는 그 자체로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 말이기에 공해처럼 해로운 말들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는 더없이 친절하다.(내 글은 과연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가를 한참 생각하다가 답을 못 내렸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에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가 소개되어 있다. 미치겠다. 책과 사연과 우연이 꼭 겹쳐지는 이 지겨운 나날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어쩔 수 없는 벽’... 이 구절을 읽다가 목이 컥 하고 걸려왔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를 끝내고 나니 나 혼자서 나 혼자만이 저 막막한 벽 앞에 서있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한숨이 비어졌다. 시인은 절망을 넘는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혼자서가 아니라 ‘꼭 여럿이 손을 잡고’ 넘어가야 한다고 희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시 한수 읽었다고, 소설 한 편 읽었다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웃고 저렇게 울었다고 말하는 것에 나는 늘 갈망하고 희망하고 순간의 절망을 이겨보려 담쟁이처럼 질기게도 벽을 타고 있었을까. 누군가는 나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그 벽을 타다가 반가운 마음에 같이 엉겨 붙어 힘을 보태어 주었을까. 안 보이는 연대와 숨겨진 우정은 얼마나 소중한가... 추위도, 슬픔도, 그리움도, 겨울 모든 시름도 그렇게 함께 올라타고 넘어가는 것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절망이라는 무시무시한 벽을 힘 모아 오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언제나 마지막에 습관처럼 하는 말, 당신도 나와 같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