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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장을 낱낱이 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책 붙들고 고민하는 시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엊그제도 지인들끼리 모여 이놈의 자본주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해가며 도대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삼 자본주의 비판하자고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식사와 음주가 이어지는 어디에서든지 이런 풍경은 익숙하다. 내 세대들은 입을 모아 그동안 우리가 좇아온 가치들에 대해 눈물겨운 탄식을 멈추지 않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최근엔 모두가 투사가 된 기분이다. 지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전에 우리의 주된 대화는 이번 명절엔 남들처럼 해외여행을 감행해볼까, 였다.
우린 386 선배들의 투쟁과 성공, 몰락을 바로 곁에서 뒤에서 지켜본 후배들이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학번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지겹도록 데모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민주화 운동(그땐 싸잡아 빨갱이 운동이라 했다) 하다가 죽거나 폐인이 되는 사례 수백 가지를 성문 기본 영어의 1장 부정사의 사용법 다음으로 들어왔다. 전두환, 노태우가 주입하고 강요한 가치는 단연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헝그리 정신과 애국심이었다. 금메달을 따면 방송에선 일률적으로 ‘나가자 빛을 내자 대한의 건아들’이런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줬다. 마트에 가면 과일도 모두 금메달 수박, 금메달 참외였다. 아직도 소름끼치게 기억나는 건 여고시절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분류된 학생들만 사박오일 동안 어디로 끌고 가(?) 의식화 교육을 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명분은 신사임당 교육이었고 예절과 충효와 애국심을 가르친다고 했다. 실제로 그 교육을 받게 된 학생들은 마치 국가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는 과정처럼 보여 지기도 했다. 동선까지 기억나는 그 방에서 우리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약 십 분짜리 영상을 보고 모두 울었다. 아직도 왜 울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소수 정예만 모아놓고 대한민국의 발전사와 비전을 상영해주니 예민한 감수성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애국심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놓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시간엔 마르크스가 죽일 놈이고 김일성은 친척이고 공산주의는 사회의 악이라는 강의를 들었고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는 대학생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라고 했다. 당시 열일곱 살의 나는 영상물의 마지막 장면 휘날리는 태극기를 가슴에 간직하며 대학에 가서 죽어도 데모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모두의 바람대로 대학에 들어가 나는 시험거부 같은 집단 시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얼굴 들고 시험을 치루는 학생이 되었다. 평소 친분 있던 한 선배가 강경대 학생이 맞아 죽은 후 단식투쟁에 돌입했지만 그냥 못 본 척 하고 도서관으로 향한 날을 기억한다. 그런데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한 회사에서 우연히 그때 보고 울었던 영상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 회산 정부에서 의뢰한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곳이었고 나는 영상물 시나리오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웃긴 건 그 영상물 바로 옆에 장산곶매의 <파업전야>와 <닫힌 교문을 열며>의 비디오테잎이 나란히 있었다는 것.(나는 그날 집에 테잎을 가져가 울면서 영화를 보았다. 일부 선배들이 같이 보자고 했을 때 일없다고 했던가. 회사에선 보기 드문 수작이니 꼭 참고하라고 흔한 외국 CF 자료영상처럼 말했다...) 나는 그때 정부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정부를 치장하고 홍보하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걸로 월급을 받아먹었다. 어찌 보면 우린 민주화 선배들에게 빚진 세대일지 모른다. 우린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 같다. 우린 좀 다르게 살고 싶었다. 변명을 하자면 우린 교복자율화 1세대였고 강남 8학군을 누비는 신흥중산층이었다. 옷과 머리, 아파트와 자가용이 신분을 가르는 기준임을 학교에서부터 배운 첫 세대였다. 우린 돈의 가치가 민주화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일찍 깨우친 영악한 세대였다. ‘벤지’를 보고 자라면서 동물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ET’를 보고 외계인을 상상했고 ‘람보’를 보며 미국식 영웅주의에 길들여졌고 ‘주윤발’을 보면서 폭력을 미화했고 ‘마돈나’를 보면서 여성평등을 내재화했다. ‘마이클 잭슨’을 보면서 돈 있으면 흑인도 백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끔 우울할 땐 조용필과 변진섭과 이문세, 이승환의 넋두리를 함께 들어주면서.
그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소련은 붕괴했다. 회사에서 미국비자는 어엿한 신분이었고 자가용 소유는 신세대직장인임을 증명하는 라이센스였다. 우린 IMF가 터지기 직전 너도나도 압구정동에서 연애를 한 세대였다. 부모님은 강남에서 이주하며 부동산 차액으로 자식들 결혼을 시키셨다. 민주화 선배와 IMF 후배와 부모님에게까지 빚을 진, 대단히 운 좋은 우리 세대는 신도시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이 대단한 속물들은 영어에 맺힌 한 때문에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조기영어교육에 매달렸다. 남들에게 지기 싫어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았다. 남들처럼 대출받아 집도 샀다. 남들 보는 눈이 있으니 때가 되면 차도 바꿨다. 가끔 주식으로 대박 난 후배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주식 때문에 거리로 나앉은 동창 소식을 들으며 그건 남일 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두세 번 바뀌고 그나마 그 중에 존경하던 대통령은 약속이나 한 듯 세상을 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고 맘 편하게 사는 작자만 오래 행복하게 사는 건 맞았다. 그러는 사이 더 이상 승진의 기회는 사라졌고 아이는 커버렸고 우린 늙어 있었다. 하우스 푸어로 대변되는, 이젠 언론에서 조차 어쩌다 한번씩 2030 세대에 양념으로 뿌려주는 40대가 되었다. 가끔 <정의를 무엇인가>를 사본 주된 세대가 40대 남성이라며 이들이 움직이면 사회에 변화가 생긴다는 의미심장한 멘트가 덧붙여지는.
시즌이 시즌이어서 그런 것인지 언제부턴가 우리끼리 화두는 대한민국과 정치, 대기업과 실물경제, 부동산과 금융대출, 학교폭력과 배금주의 이런 것들이다. 결론은 모두 돈으로 귀결된다. 특히 가진 자들이 이미 가진 것들을 발판 삼아 못 가지거나 덜 가진 자들과 더욱 엄청난 격차를 벌이게 된 이 현실이 슬프고 분노스러워 죽을 지경인 것이다. 삼년 전 보다 나아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있다면 우리가 볼 수는 없다. 우리 사는 이곳에서 떠난 지 오래이니까. 비강남 지역에 33평 전세, 중형차 1대, 초중생 자녀를 둔 우리 세대 월급쟁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MBC 사장이 퇴진하는 것도 정봉주가 석방되는 것도 강호동이 컴백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궁금한 건 학교와 부모님의 바람대로 대학도 가고 졸업 후 취직도 했고 나이가 차서 결혼도 하고 정상적으로 아이도 낳고 이 사회에 반하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고 살았는데, 아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이다. 왜 우린 지금보다 도통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리는가 이다. 우리의 결론은 앞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건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로또일 뿐이라는 것에 몰표를 던진다. 우리 같은 99%는 허구한 날 솟구치는 이자와 날아오는 고지서와 늘어나는 가격표에 둘러쌓여 주름살만 늘어날 뿐이라는 것. 중간에 어떤 극적인 일확천금의 기적이 없다면 우린 어쩌면 아이들에게 빚을 물려주면서 이 세상을 하직 할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 세대가 특별히 더 나라를 걱정하고 특별히 성격이 더 불안하고 유달리 아이를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을 우리 세대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아가 우리나라만 이 꼴인 것 같진 않다.
회의(會議)는 언제나 회의(懷疑)스럽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뉴요커에 대한 환상은 좀 필요이상이었다. 증권가, 패션잡지, 변호사, 검사 등의 전문직으로 상징되는 뉴욕의 능력자들은 정장을 입고 백팩을 매고 스니커즈를 신고 베이글을 먹는다고 들었다. 마천루의 회색빛 이미지와 블랙톤의 슈트, 금발 단발머리, 그리고 빌딩 사이로 언뜻 지나가는 뉴욕의 차가운 하늘.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크하고 무표정한 얼굴. 낮엔 실용성을 따지다가 밤엔 시스루룩으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미드열풍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뉴요커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꽤 근사한 인종의 표상임을 각인 시켰다. 혹시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보시라. 뉴욕의 브로드웨이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모여들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시라. 물론 우리가 떠올리는 DKNY 슈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델처럼 걸어가는 젊은 남자들은 거기 없다. 모두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어쩌다가 노숙자, 주정뱅이와 마주칠 확률도 있다. 2008년이 되기 전에 뉴욕에 갔을 때 엠파이어트 스테이츠 빌딩 맨 꼭대기 기념품 샵에는 모든 물건에 ‘I LOVE NY’ 라고 적혀있었다. 그땐 거기서 보는 뉴욕의 야경이 부럽긴 했다. 허나 이제 더 이상 우린 뉴욕과 뉴요커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월가에 모여든 사람들에 관심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일까. 전후 60년 동안 우리는 미국이 하는 일은 거의 빼놓지 않고 충실하게 따라하는 나라가 되었다. 자발적으로 따라한 것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따라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누가 뭐래도 따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이 내세운 가치를 누구보다 적극 수용하고 악착같이 실행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1년 가을 뉴욕 월가에서 일어난 시위를 기록한 점령보고서이다. 9월에 시작하여 두 달 간 치열한 점령의 시간을 가진 후 현재 혹한과 탄압을 맞아 중단 되었다. 새해가 된지 석 달이 되지 않았으니 시기적으로 따끈따끈한 최신의 뉴스에 해당한다. 책은 실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목격이 주가 되는 체험담과 기자, 편집자, 작가, 교수들의 칼럼 릴레이로 교차 편집되어 엮여졌다. 칼럼을 쓴 지식인들도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거나 연설을 했거나 공개총회에 참석했거나 어떤 식으로든 시위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어제까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같은 장소에 모여 그날부터 천막을 치고 공동체를 조직해 회의를 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행진을 하며 주장을 내세웠다는 이야기다. 뭐 그렇다고 월가의 은행들이 이참에 정신 들여 반성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모여서 떠들고 행진을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 것이다. 아니, 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 일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시민의 휴식공간인 근린공원이 동네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곳이 시위대의 점령 장소가 되어 하나둘 천막촌이 형성되더니 밤마다 각종 악기소리가 들려오고 주변 상가들은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으며 곳곳에 경찰들이 배치되 있어 불안해서 죽겠는 날들이 두 달 째 이어진다면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린 아마 ‘책에서 읽은 대로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현실의 중요한 순간에 와서는 체질적으로 옳은 행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로 변심하여 민원을 넣기 바쁘지 않을까.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단적 반성에 여념이 없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에 이어 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로 세계경제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1%가 독식하고 99%가 소외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會議)는 너무 오래된 회의(懷疑)가 되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자본주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얼마나 지겹게 들어왔던가. 그런 가운데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아온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한목소리로 '경제 민주화'를 제시하고 있다. 시장을 공정한 경쟁 체제로 만들고 결실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에 역점을 두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민주화의 주체인 ‘국민’이다. 바로 경제 민주화라는 한국적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몫이며, 이는 국민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중략... 조선일보. 2012. 3. 12) - 정말 지겹다. 국민의 힘이며 국민의 몫이라는 말. 왜 늘 책임 이야기 할 때만 국민을 그다지도 챙기는 것인지.
나는 어쩐지 ‘국민의 몫’이 국민이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국민이 지는 책임이라는 소리로 들렸다.(그러니 앞으로 선택이나 잘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보수 언론은 여전히 경제위기의 책임을 국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 안에서 규정지으려 한다. 이는 세계경제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규정한 미국의 주장을 근거로 한 시각이다. 불공정한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은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가 시장에 던진 질문에 시장이 국가에 반론하는 전형적인 대립구도이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언제나 설득과 통제의 대상이 되고 기득권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결국 가진 자들이 달라지는 건 하나 없고 국민만 가르치려 드는 작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점령시위를 해석하고 보도하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점령시위를 자본주의에 맞서는 범세계적 운동으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저 특정 시기 미국 내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거나 금융권의 비도덕성을 성토하는 규탄대회이거나 개인화를 주장하는 행위라며 그 집단성의 의미를 축소하고 퇴색시키는 것이다. 어딜 봐도 시위현장에서의 폭력 장면을 주로 노출하면서 시민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제공하고 현장에서 일어난 주장이나 평화적 의지 같은 건 묻히도록 의도한다. 미국도 장애인을 앞에 두고 최루탄을 쏘는 나라인지 미처 몰랐다. 단지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몸수색을 당하고 체포가 되는 나라인지 몰랐었다. 시위의 ‘시간’, ‘장소’, ‘방법’에 대한 규제가 우리나라처럼 꼼꼼한지 처음 알았다. 질서유지에 강박관념을 가진 뉴욕경찰은 사소한 위법행위에도 엄격한 단속을 시행하는 조직이었다. 낮은 수준의 무질서를 단속하여 공동체의 건강에 기여하겠다는 야무진 발상을 도시이념으로 삼아온 곳이었다. 이 돈 가진 윗 것들이 안 가진 아랫 사람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어찌 이리 똑같은 것일까. 예를 들어 통장해지를 위해 은행에서 줄을 선 것도 점령시위대 소속이다 싶으면 바로 무질서 현행범으로 잡혀 들어가는 나라, 그 나라의 가장 쏘 쿨한 도시. 그럴 수 있는 것과 실제로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미래의 한 단면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뉴욕의 경찰은 물대포가 아닌 어떤 방법으로 시위대를 탄압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먼저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데자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산 일보 직전의 월가 은행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받고 시민은 그 덕에 파산했다.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원지에 해당하는 AIG는 2009년 회생의 목적으로 받은 공적 자금을 임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로 지급했다. 핵심인재관리를 위해 회사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지만 미국인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만한 작태였다. 우리가 지금 미국을 걱정할 주제는 아니지만 우리처럼 미국인 대다수는 한 평생 채무자의 삶을 살고 있다. 서브프라임 쇼크 이후 일반가정은 주택담보 압류, 강제퇴거, 학자금대출, 실업의 수순을 밝으며 고통을 떠안게 되었다. 금융권의 불공정 행위와 지속적인 착취, 도둑질의 결과 노숙자는 늘어갔고 방만 경영의 대표주자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GM은 파산했다.
월가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20,30대의 고학력 이면서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버거킹에서 굴욕적으로 화장실 사용을 금지 당하고 맥도널드에서 줄을 서야 했다. 그래도 커피는 마셔야 하므로 그 앞 스타벅스에 앉아 관광객들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의아해 할 때 답해주는 친절을 행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편집자의 집에서 샤워를 하게 된 날 트위터에 그 한 줄 기쁨을 알려가면서 말이다. 이들은 60년대 히피나 괴짜도 아니고 부잣집 철없는 도련님도 아니고 대단한 사회운동가,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냥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저 1퍼센트가 아닌 그 나머지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만나서 대화하면서 모든 게 이루어지는 형국이었다. 날 것으로 노출된 그들의 대화는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았고 대단한 결론은 아니지만 합의가 창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협력의 문화임을 보여주었다. 공개총회나 대변인 모델의 시도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지도자가 없이도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점령시위대는 뜻있는 사람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모여 앉아 북치고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 아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천막으로 이루어진 점령 공동체의 생활이 분명 자본주의를 넘어선 하나의 대안으로 또렷이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시위대는 분권화된 여러 작업 그룹으로 나뉘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음식, 의료, 법률과 같이 가장 필수적인 분야부터 예술, 교육은 물론 여성, 장애인, 이민자, 퇴역군인 등 소수자에 대한 평등과 배려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박세길의 『자본주의, 그 이후』(돌베게, 2012)에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상생의 인본주의 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창조력이 자본이 되고 구성원이 복지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풀뿌리 지역경제의 이상향이 바로 점령 시위대속에 있었다. 시위대는 ‘대안 경제 작업 그룹’을 만들어 지역자치회와 연대하고자 노력했다.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비록 경찰에 의해 해산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야별로 다양하게 구성된 직능조합의 형태와 유사했다. 자율적이면서 독립적인 창조자들의 수평적 연합체는 승자독식의 원리에서 벗어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상생의 생태계 구축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월가 점령은 시위라기보다는 ‘대안적 미래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사례’인 것이 맞았다. 칼럼니스트 들은 이를 ‘점령 생태계’라 칭했고 점령을 무언가 아름다운 것으로, 무언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라 평가했다. 사랑과 행복과 희망을 부르는 것이니 ‘공동체 정원’의 베이스캠프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있다고 해도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들이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는 가운데 수면위로 떠오르는 또 다른 ‘정의’에 대한 성찰이다. 이들은 분명 고용불안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느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같은 분노와 같은 희망으로 모여들어 같이 가슴이 뛰는 시간을 경험했다. 사실 그곳에 다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점령운동의 승리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거대 은행의 파렴치한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방법만 고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위대 주변 차이나타운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이민자의 문제를 그들 다음으로 고민하기 시작 했다. 백인과 흑인의 발언권이 같다는 인종적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시위대에 걸림돌로 작용하던 노숙자 문제를 끌어안으려 고민하고 설득해야 했다. 사회운동에 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던 드럼서클과 연대하며 주민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시위대 안에서도 소수민족과 백인, 남성과 여성, ‘가치 있는 빈민’과 ‘가치 없는 빈민’으로 나뉘어 지는 이분법의 한계에 부딪혀야 했다. 소수 시위자의 폭력 때문에 다시 경찰의 폭력을 유발하는 전술을 반성하기도 했다. 갓 성인 된 혈기 왕성한 백인 청년들(무정부주의자)의 치기어린 난동을 이해해야 했다.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폭력, 강간 등의 범죄 및 안전 문제, 빨래와 용변 같은 위생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확인되지 않은 각종 ‘카더라 통신’으로 인한 내부분열을 막아야 했다. 이들은 공동체 속에서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연대와 동맹의 새로운 형태와 모습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점령운동의 본질은 ‘누군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표현의 형태’라는 것을 깨닫는다.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처럼 ‘말소리를 들은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그 말을 반복하며 말을 한 사람의 독특한 운율에 응답하는’ 펄스의 원리를 체험한다. 정신과 육체의 단절이 해제되는 순간이다. 연대는 단지 이익집단끼리의 단순한 악수가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과 세상에 대한 종합적 견해까지 서로 공감하는 것’임을 깨닫고 점령운동의 가치가 포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점령은 특정 공간을 정복하여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든 장소에서 서로와 손을 잡고 마음을 일치시킨 후 그것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 미래사회의 초기 모델을 보여준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는 점령을 테러리스트의 행위와 유사하게 재구성하여 무질서한 폭력집단으로 중계하는 것이다. 물대포는 경찰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대포를 쏠 만큼 과격한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할 뿐인 것이다.
분노했다면 점령하는 것이 다음이다
세상은 변했고 세대도 달라졌고 방식도 진화했다. 그저 우리 생각만 변하면 된다. 아니 맞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행하면 된다. 우린 생각은 하지만 그저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 7,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아직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 가슴이 아팠다. 그가 월가의 점령시위를 보고 블로그에 10월 달에 올린 글이 안타깝게도 유언이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2012년을 점령하라’ 였다.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조문행렬, 2011년 희망버스... 그리고 다음은 무엇인가. 그는 미국이 비호감이더라도 우리가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 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 2011년 10월 故 김근태
‘나꼼수’는 시종일관 쫄지마라고 했는데 ‘웃음을 잃지 않는 분위기’와 ‘비폭력적인 방법’은 월가 시위대에서도 일관된 기본방침이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연설한 슬라보예 지젝의 일침은 매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훗날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그땐 우리가 젊었고 뜨거웠다고 곱씹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충고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자기 합리화에 빠지며 현실에 안주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시다시피 자본주의의 역사는 체제적 배제, 사회적 배제, 경제적 배제의 역사였다. 대한민국 1 퍼센트는 이제 그 옛날 쌍용 자동차 추억의 렉스턴 광고가 아니다. 우리는 이대로 가다간 살아있는 동안 1퍼센트를 위해 배제된 99퍼센트로 사는 길 말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점령해야 할 것은 변화를 불신하는 아주 오래된 비겁함이다. 1퍼센트의 철벽같은 굳건함과 금빛 찬란한 위력을 믿고 의심 없이 현실을 체념하고 포기하며 온갖 종류의 절망을 푸념하고 사는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와 연대하기도 지레 겁을 내며 만연된 불신으로 체제에 순응하여 온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 책에 어느 편집자가 미국의 대형은행 경영진에 편지 보내기 운동을 독려하면서 느꼈던 심정을 적은 글이 더욱 고개를 숙이게 한다. 편지는 미국의 중산층이 주축이 된 부르조아의 시위였다. 직접 은행에 편지를 전달하러 간 편집자는 편지들이 청소부에 의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점령시위대와 함께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교수이고 수입은 좋았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었다. 부친은 은행에 다니고 도서관과 박물관이 집처럼 편하다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금융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안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건전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그가 과연 그들만 비판하는 것이었을까.
당신 역시 은행가들과 늘 함께 있다 보면 잘못된 일도 괜찮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잘못인 줄 모른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거품 안에서 살고 있다. 만약에 하나의 메시지가 날아가 그들의 거품을 깨뜨릴 수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는 당신이 믿고 있는 그런 게 아니라 국가적 재앙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은 분명히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 p181, 마크 그리프, <n+1>의 창간 편집자
혹시 왜 여러 방법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질책은 아닐까. 나같이 먹고 살기 편한 사람이 봐도 문제인건 빤한데 왜 당신들은 아무 말도 안하느냐로 들렸다. 사람은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관점과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모으게 만들었고 그렇게 돈을 모은 사람이 왕이 되는 세상이었다. 1%만 가지는 것이었지만 그 1%가 나도 될 수 있다는 착각을 희망으로 여기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새삼 이제와 가진 자들의 도덕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가지지 못해봐서는 아닐까 싶다. 지젝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부패와 탐욕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이 부패를 만든다면 우린 시스템에 대항하는 삶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본이 되고 스스로 경제와 복지에 주체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필멸한다. 다만 그 속도를 앞당기는 일은 우리에 달린 듯하다. 특히 우리 다음 세대의 지속가능한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라면 더 절실하다. 누군가 세상을 바꾸어 주리라 기대만 하는 것은 만약 안 바뀌더라도 할 수 없이 살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분노했다면 다음엔 일어서서 점령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먼저 우리들 자신의 절망부터 점령하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99%의 절망으로 가득 찬 가슴이라 할지라도. 나머지 1%의 희망을 믿어 보는 것이다. 나와 같을 것이라 믿는 당신들의 가슴도 같을 것이라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