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 부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F 세대에 묻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 워낙 책 읽고 매번 충격 받는 스타일이라 감안해주시길 바란다 - 내용은 어렵지 않고 대담형식으로 서술된 경어체라 전달방법도 무척 친절하다. 예도 많이 들고 비교도 많고 추상적인 문구 없이 상황 정리도 명쾌하다. 주로 <시사 IN>의 이종태 팀장이 아젠다를 펼쳐내 어떻게 생각하시냐 질문을 하면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위원이 답을 하는 구성이다. 최근 시즌을 맞아 반 MB정서, 반 자본주의에 몰두해 있던 나로선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새롭다기보다 낯설었달까. 정확히는 당황스런 수치심이다. 이 책엔 한마디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진보, 좌파에 대한 일침이 한 가득이다. 당신들의 주장과 논리는 여기서부터 이렇게 틀려먹었으니 정신 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말로 들린다. 마침 책 제목도 선거철을 맞아 무엇을 택할 것인지 - 결국 누구를 택할 것인지 - 묻고 있지만 덮고 난 심정이 책의 결론처럼 분명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독자로서 개인적인 한계일 것이다.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나와 같은 세대들이 앞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주장을 면밀히 비교해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뭘 알아야 비교도 해 볼 것이니까.

 

 

나와 같은 세대라 한정지은 것은 내 세대가 요즘 언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잊혀진 세대, F 세대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태어나 80년대 컬러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90년대 말에 결혼해 2천 년대에 아이를 낳고 지금은 학부모가 된 사십대. F는 ‘Forgotten’, ‘Fire’, ‘Facebook’, ‘Formidable members’를 두루 의미한다. 민주화 운동권 선배를 두었지만 데모는 하지 않았고 취직해서 결혼할 무렵에 IMF를 만났을 것이다. 사교육 열풍 속에서 아이가 걸음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었을 것이다. 집값이 자꾸 오르자 불안감에 무리하게 대출하여 집이라도 장만했다면 분명 이자에 허덕이며 ‘하우스푸어’로 전락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들 사십대가 2030세대와 합쳐지면 유권자의 반이 넘어가기 때문에 표심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로 생각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보았듯이 박빙일 때엔 이들이 보수로 기우느냐 야권으로 기우느냐가 당락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이 F세대의 특성을 말해보라 누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뒤쳐지지 않는 삶’이라고 본다. 사실 사십대에 들어서 직장인으로서 서울 어느 구에라도 번듯한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한 부부라면 그 삶은 지난날 지겨운 경쟁에서 잘도 살아남은 축에 속한다. 대학입학, 취업, 결혼, 육아, 집장만에 이르기까지 그 이십 여 년의 세월은 분명 메인 프레임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념투쟁이라는 추상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행복이나 실질적인 혜택 등의 실용적 가치이다. 그래서 명예나 도덕을 따지는 사람은 위선이라 여기며 속물정신이나 편법 등의 수법으로 성공한 사람을 크게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그렇게 해서라도 한 계단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준화 속에서의 궁극적 차별화. 삼성을 욕하지만 삼성에 들어가고 싶고 이명박을 욕하지만 이명박처럼 재산을 불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들 많았는가.

 

 

역사의식과 사회참여도 도덕성, 지식수준도 386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 심지어는 머리가 나빠 공부도 못하고 날라리만 많은 세대라 - 운좋게 취직해 지금은 사회의 중진이 되었건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 이들에게 향후 십년은 이제 막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 붐 세대의 십년과도 다르며 결혼과 육아를 늦추고 있는 삼십대의 십년과도 다르다. 이들의 미래 십년은 정확하게 한국이 선진국으로 돌입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데 지금부터의 십년은 F 세대의 자녀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는 세월이다. 지출항목이 더 많아지고 커지기만 하는 시기, 평범한 직장생활로는 더 이상의 재산증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시기이다. 여기까지 잘 달려온 세월에 미안해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쉽지 않고 어쩌다 추락할까봐 두려운 시기이다. 그 전에는 성장이나 발전도 중요했지만 지금부터는 복지라는 말이 아주 구체적으로 와 닿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4년 동안 양극화 때문에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와 절망을 감추기 어려웠던 시기인 것이다. 보수신문은 지난 일년 내내 복지를 과하게 시행하면 나라가 망하는 수가 있다며 다음 세대를 위해 복지포퓰리즘은 안 된다 주입해 왔다. 하지만 서민이라면 그 기사 때문에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가난하면 복지혜택은 받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늘 재벌개혁하자는 불가능하고 진부해 보이는 진보쪽 보다는 '생애 맞춤형 복지'라는 그럴듯한 대안을 내세운 박근혜가 우리에게 더 유리한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마치 방황하는 F 세대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복지교본을 툭, 제공한 느낌이다. 혹시라도 언뜻 구호만 보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무조건 옳고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라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F 세대는 공정 한가

 

 

불안한 F세대는 부자의 재산을 나누어 빈곤층에 나누어주는 식의 미국식 잔여 복지에 끌린다. 하향식 평준화는 아무래도 나의 추락을 방지해 줄 안전망으로 기능할 것 같기 때문에. 그러나 더 생산적인 의미의 북유럽 식 복지, 즉 퇴출당해도 실직수당이 보장되어 있고 직업 교육, 그를 통한 재취업이 보장되어 있는 선순환 식 복지도 흥미롭다. 언제 조직에서 나가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복지는 북유럽식 복지이다. FTA 가 발효되면 농업, 제조업, 제약업 등에서 피해자가 생길 것이므로 악영향을 최소화 하려면 복지 국가를 만들어 피해자들이 재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FTA는 분명 해서는 안 되는 계약이었지만 비준까지 한 상태에서 폐기는 말이 안 되니까, 지금 상황에서 대책을 세우자는 것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은 단순히 생활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구조, 생산체제와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패자부활전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재벌이나 부자의 세금을 더 걷어서는 택도 없으므로 어쨌든 국민이 세금을 더 내는 수 밖에 없는데 장하준은 이를 두고 ‘복지 공동구매’라는 개념으로 복지를 재정립하자고 한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탁아, 교육, 의료, 노후대비, 질병 등에 대한 보험을 온 국민이 공동구매해서 가격을 낮추자는 것’이니 세금은 공동구매를 위한 자금임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새삼 박근혜가 치밀하다는 것이었다. 야권에서 누가 후보가 되건 박근혜보다 치밀하진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이미 이슈만으로는 ‘보편적 복지’를 선점했다. 공식만으로는 아버지의 잘한 점, 이명박의 잘못한 점, 그리고 야권의 오류를 다 더해 복지 밑그림을 짜 놓은 듯 하다. 다만 큰 그림만 있고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데 이 부분은 아마 상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준비된 시나리오를 척척 끼워 맞출 것이 분명하다. - 그러니까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게 전략인데 야권에서 박근혜 복지는 내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걸려드는 것이다 - 좌파가 더 공부해야 할 것은 새누리당이 기존에 잘못한 것들을 나열하여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것보다 자신들도 잘못한 것을 빨리 정리해서 그동안의 오류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우리가 한 잘못은 니들이 한 것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도 안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도둑질은 나만 한 것이 아니라는 보수 프레임에 갇히는 꼴이다) 어차피 나도 잘못한 것이 맞다면 이걸 반복하지 않는 방안이 더 중요하다. FTA든 재벌이든 비리든 사찰이든 노무현도 했지만 이명박은 더 하지 않았느냐, 는 논리를 제발 거두어 주었으면 한다.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한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정부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박근혜보다 먼저 말해야 한다. 글쎄, 정치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인정하기 싫은 건 이명박 정부가 사악하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안 죽어도 되었을 사람이니 면죄부 주고 싶은 심정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을 박정희 시대로 끌어올려 결국 그의 딸인 박근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밀어붙이는 식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장하준은 우리가 외적 성장에 비해 내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외환위기 이후 지속, 강화되어 온 ‘신자유주의 논리화’의 결과라 말한다. 금융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그것이다. 좌파들이 말하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도 결국 신자유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방법이 아니고 외려 재벌해체로 적대적 M&A를 불러와 엉뚱한 해외 큰손들만 재산을 늘리게 되었다 주장한다. 주주중심 경영도 결국 단기수익에 집착해 점점 신규 개발을 꺼리게 되어 국가적으로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양극화가 된 건 금융자본과 주주 자본주의가 문제인 것이지 재벌이나 이명박 때문이 아니라는 것. 모든 걸 박정희와 재벌 탓으로 돌리는 건 박근혜는 절대 안 되고 이건희만 물러나면 다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들린다. 그러다보니 야권의 주장은 늘 재벌해체이고 국가의 개입은 절대 안 된다는 식이다. 관치와 토건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재벌에 대한 분노가 얽혀 정작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가 되는 것은 혹시 이러한 주장들이 역으로 재벌옹호나 박정희 찬양, 혹은 박근혜 복지의 홍보의 수단으로 쓰이게 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좌파도 우파도 잘못된 정책은 공정하게 비판했다고 보여 진다. 중요한 건 더 많이 알고 더 분석하여 더 적절한 대안을 구상하는 일일 터이다. 그런 면에서 F 세대들이 더욱 역사적 위치를 인식하고 책임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더 이상 우리는 젊지만도 그렇다고 완전한 기득권층도 아니다. F 하면 퍼뜩 Fair(공정)이 떠오르는데 이는 언급되지 않았으니 우린 공정함을 주요가치로 내세우진 않았나 보다. 그래서 문득 F 세대는 공정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오늘 우리의 경제 현실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묻고 있다. 경제를 내세웠지만 결론은 경제민주화가 복지의 다른 말이라 가르친다. 복지가 향후 정치의 핵심이라 알려준다. 복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30년에 걸쳐 시행하면  북유럽을 따라 갈수 있다고 그 처음 5년을 누구와 시작할 것인지 묻는다. 아니 누가 되더라도 복지는 필연인데 당신들은 어떤 복지를 택할 것인지 묻는다. F 세대는,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

 

 

F 세대여 돌을 던져라

 

 

저자들은 이탈리아 무시하지 말고 그리스 비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탈리아가 마피아 조직만 있고 선진국하고 한참 거리가 멀 것 같아도 복지 수준은 OECD 중간이고 우리가 이탈리아를 따라가려면 십년이 걸린다고 한다. 또 그리스가 최근 재정위기에 빠졌다고 국민이 게을러서 혹은 은행이 방만해서라며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주에 그리스의 은퇴한 약사 한 명이 국회의사당에서 약 100m 떨어진 아테네 중심가 신타그마 광장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해버렸다. 놀랍게도 그는 사회빈곤층이 아니라 94년 은퇴할 때까지 35년간 약사로 일하며 성실하게 연금을 납부했던 전문직 출신이었다. 긴축재정에 나선 그리스 정부가 복지 축소로 연금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장하준은 보수와 수구언론이 마치 그리스가 복지를 시행하다가 재정위기가 온 것처럼 떠들고 있다고 반박한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복지와 아무 상관이 없고 단일 통화를 사용하지만 단일한 연방국가가 아닌 유로 존 때문이라 말한다. 유로 존에서는 화폐만 통합되었을 뿐 자유무역으로 인한 소득격차, 생산성 격차는 모두 각국의 소관이다. 쉽게 말해 관광업 발달한 그리스는 제조업 발달한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독일이나 프랑스, 국제 금융 자본가들은 그리스의 방만한 경영, 그리스의 내재적 결함이 재정위기를 초래했다고 18세기식의 청교도 윤리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 모습은 지난 97년 외환 위기 때 우리가 들었던 비난의 내용과 꼭 같다.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도 그런 줄 아는 것이다. 보수가 강력히 주입해온 가치들은 다시 우리가 보수적인 시각으로 남의 나라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 듯하다. 장하준은 같은 유로존 속에서 그리스를 도와주지 않는 유럽 국가(특히 독일)들을 강원도가 부도났는데 나라가 해결하지 않는 것에 비유하며 상당히 비윤리적인 행태라 꼬집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재벌은 원래 성질이 나쁜 개인데, 누가 돌을 던져서 개가 미친 듯이 사람을 물려고 하면, 돌을 던진 사람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한 정승일 위원이었다.(장하준보다 더 예리하다고 느꼈다) 즉. 중소기업 단가를 깎는 재벌이 나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주들이 자기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에 하청단가를 내려칠 수밖에 없는 경영방식의 근본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 인원감축하고 단가를 깎아야 주가가 올라가는 비정한 현실은 단지 대기업의 문제이기만 한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대기업에는 공정한 내실경영이겠지만 중소기업엔 불공정이 따로 없다. 이렇듯 금융자본과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하지 않고 단순히 공정을 주장하거나 불공정을 비난해선 안된다 말한다.

 

 

결국 이 책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좌파에 대한 따끔하고도 현실적인 충고. FTA 발효 이후 벌어질 현상에 대한 대책. 그 준비로서의 복지에 대한 개념 정립. 복지의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서의 증세에 대한 공감대 형성. 재벌을 공격하기보다 이미 커져버린 재벌을 잘 이용하자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잘 정리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다행히 이 책의 장점은 너무 먼 미래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추상적인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한국은 전후 아프리카 가나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소득 수준에서 눈부신 신흥 공업국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국민의 힘을 모으면 복지 또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미래를 위해 국민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세금 더 내라는 말 하려고 이렇게 길고 복잡하였던 것인가,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완벽한 정부도 시행착오가 없을 순 없다. 정권의 말기엔 언제나 집권 정당과 현직 대통령이 모든 잘못의 원흉이었다. 이 책이 10년 뒤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지금처럼 절망에 가득한 분노로 그 이전의 정부와 정책을 비난하지는 않도록, 부디 우리 아이들의 희망에 일조하는 정보가 되길 바란다.

 

 

선택이란 것은 늘 새롭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늘 같은 방식으로 하며 살아왔다. 선택이 새롭다기 보다는 선택으로 새로워지길 바란다가 맞을 것이다. 그러니 같은 방식, 같은 생각으로 선택을 해놓고 새로워지길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선택하기 전까지 집요하게 따지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년만이 아닌 십년 후, 이십 년 후까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아는 F 세대는 투쟁에 익숙하지 않고 누가 돌을 던지면 같이 동조하거나 아니라 생각했다면 침묵으로 고개를 돌릴 사람들이다. 고독한 독립투사보단 외롭지 않은 연대를 택할 사람들이다. 2002년의 삼십대는 이제 노란저금통의 추억으로 남았다. 십년이 지나 어느덧 중년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택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나 분명한 건 그 공감대의 키워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 우리와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난 십년을 반성하는 기회도 될 것이다. 더 이상 우린 삶의 단기이익을 좇아서는 안 된다. 공무원이 꿈이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우리의 책임이 있다. 개를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박을 터뜨리는 심정으로 돌을 던지자. 개는 이미 개가 된 이상 우리가 아니라도 개의 삶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행운의 박을 향해 함께 던지면 돌도 빛나는 희망이 될 것이다. 그렇게 집어들어 선택된 돌이라면 F 세대가 앞장서도 될 것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세대가 이번엔 맨 앞줄에 서서 돌을 던져볼 기회인 것이다.

 

 

그렇게 모두 친구Fellow가 되어 파이팅Fighting하는 물결Flow이 되자.

세상을 향해 Follow me!, 한번은 이렇게 외쳐보자.

꼭 한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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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4-0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립간입니다. 저는 F세대라는 단어를 보고, '뭐지?'라고 생각했고, 60대말 7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을 알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Fail'입니다.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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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술을 좀 마셨다. 오늘도 바로 리뷰를 써야지 생각은 했지만 좀처럼 가슴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았다. 머리도 뜨겁고 눈도 시리고 목도 따끔거렸다. 몇 번이나 울컥한 심정에 물을 몇 잔이나 벌컥거리며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오늘 오전(2012. 4. 3) 주진우 기자의 트윗엔 “쌍용차에서 22번째 비명을 들었습니다.”라는 멘션이 올라왔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한 조합원이 또 투신을 한 모양이었다.(작년까지 열 몇 명이었는데...그새 또 늘었다) 원래는 지난달 말에 사망했는데 부모도 배우자도 없어 뒤늦게 알려졌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조중동엔 저녁때까지 기사 한 줄도 뜨지 않았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건 한국계 미국인 남성이 총기난사로 학생들을 몇 명이나 죽였다는 기사였다. 방금 전 메인 페이지를 확인하니 총기난사 기사 바로 아래에 김용민 후보가 (인터넷 방송에서)몇 년 전에 한 말을 문제 삼아 지겨운 자질론을 들이대며 무슨 시국사건처럼 보도하고 있다. 오늘 업데이트된 봉주 10회의 내용이 천안함 합조단의 보고서 일부가 조작이라는 내용에 황급히 보복대응한 기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 총기난사로 숨진 피해자를 실어 나르는 사진 밑에 ‘테러’라는 제목이 들어간 기사 타이틀과 함께 절묘하게 배치된 김용민의 사진은, 지나가다 언뜻 보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지기까지 한다. 적지 않은 세월 나도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갇혀있던 사람이라 이런 기사를 보고 바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나 잘 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나꼼수 죽이기 프로젝트는 참 디테일하고 꼼꼼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어쩜 그리 내가 아는 한 사람과 똑같은 행보인지 알면서도 매번 새로운 오늘이다.

 

 

중요한건 오늘 쌍용자동차 해고자 한 분이 자살한 소식 같은 건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뉴스로 안쳐줄 뿐만 아니라 뉴스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지방에서 상경해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 한 십 오년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해고를 당하고 삼년동안 무직으로 살았던 한 남자가 빨갱이 소리나 들으면서 주변으로부터 냉대를 받다가 결국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일 같은 건 주진우 기자나 트윗으로 올려주지 우리 사회 메인 언론들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 정도 억울한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기 때문인 걸까. 그런 자살쯤이야 너무나 흔해서 일까. 어쩌면 돈 있고 권력있는 자들은 아예 피해자들이 다 죽어버려서 시끄럽고 귀찮게 하지 말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반도체에서 한 2조를 빼내어 집집마다 LG 대신 삼성으로 냉장고를 바꾸어 주라는 이건희의 발상을 보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서다. 실제로 약 7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에 삼성 브랜드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세워질 무렵, 일조권을 침해받은 아파트 단지에 일제히 최신형 지펠 냉장고가 선사된 일이 있었다. 가시는 발걸음에 한 치라도 피곤한 일이 생기면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 돈으로 안 되면 주먹으로, 주먹으로 안 되면 법을 만들고 바꾸어서라도 자기들 재산을 불리는 일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이 책은 돈과 땅, 그리고 힘을 가진 자들이 더 가지고 더 불리고 더 오래 해먹기 위해 불철주야 혈안이 된 사건들만 쫒아 다닌 한 기자의 피같은 현장기록이다. 현장을 찾아 직접 발로 뛰어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진상을 파헤친 기자라 그런 것인지 김어준, 김용민, 정봉주의 글보다 온도는 더 높았다. 아직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몸의 체온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늘 하는 일이 그러므로 어쩌면 주기자는 남들보다 고온으로 일상을 살아갈지 모르겠다. 나라도 뻔히 피해자를 만나고 일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했는데 기사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꼴을 본다면 혈압은 매번 정상이 아닐 것이다. 시기적으로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 된 후 출간이고 얼마 전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기소청탁 건으로 맘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행간에 비치는 울분도 상당해 보였다. 같은 사람을 욕해도 언어는 모두 다르다. 김어준이 냉소와 조롱이라면 김용민은 은유와 모사이다. 정봉주가 유머와 풍자라면 주진우는 단연 디테일과 증거다. 이 책을 생각보다 빨리 읽지 못한 것은 팩트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많은 증거와 디테일한 정황묘사 때문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주기자의 실전 이야기, ‘일단 가본다, 일단 해본다’의 취재기법을 가진 그의 체험 삶의 현장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다.

 

 

주기자가 가장 먼저 칼을 간 대상은 이 나라 검찰조직이었다. 주기자는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이 박은정 검사에게 기소청탁을 한 사실을 나꼼수에서 처음 말할 때에도 목소리 톤이 올라가 있었다. 이 나라에선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검사가 기소를 하거나 죄를 묻지 않으면 죄가 안 되기 때문이다. 무슨 뇌물을 무슨 목적으로 얼마를 주었건 검사가 묻지 않으면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 뇌물도 주지 않았어도 검사가 물으면 죄다. 묻겠다는 건 죄를 잡겠다는 것이기에 일단 불려 가면 설령 죄가 없어도 어떻게든 죄인 취급을 면할 수는 없다. 무죄판결나기 전에 이미 하이에나처럼 물어 뜯어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여론은 의구심을 확산해 놓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살아있는 권력뿐이다. 그는 검찰조직에서 법과 양심, 진실과 정의는 철저하게 출세보다 하위개념이라 꼬집는다. 그런 검찰에도 천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독재천재를 총수로 둔 삼성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정래의 <허수아비춤>이 콕 집어 삼성소설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조정래 작가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을 만나 오랜동안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는 그 기자가 주기자다) 소설에 대기업에서 승진에 목숨 건 인물이 공무원의 이삿날 이삿짐을 날라주며 청소는 물론이요 화분을 옮겨다 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주진우 기자가 일러준 실제 인물의 이야기였다. 삼성은 검찰(과 경찰, 기자)에 하도 떡값을 뿌려 놓았기에 검사들은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독립시킨다 하면 권력에서 소외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외려 정권의 개가 되길 자처하는 집단. 민주주의 보다는 독재를 사랑하는 집단. 우리나라에서 가장 염치 없으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집단. 주기자가 10년 넘게 피의자로 불려 다니면서 깨달은 검찰은 올라갈수록 더 유치하고 확실하게 더럽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고소를 무릅쓰고 짱돌을 던진다는 주기자는 자기가 쓰는 기사가 대단한 특종은 아니라 말한다. 조금만 열심히 다니면 누구나 쓸 수 있는데 기자들이 눈치만 봐서 그렇단다. 다들 명절에 오십만원, 백만원씩 받은 게 켕겨서 그렇단다.  예를 들어 경찰과 매춘업주가 결탁하고 검찰이 묵인하는 것은 너무나 오래된 관행인데 내가 봐도 굳이 여수까지 가서 여자 몇 명 구하자고 경찰 간부들을 잘라야 할까, 이런 생각을 어찌 안 하겠나 기자님들이. 다른 맛있고 돈 되는 사건들도 많아 죽겠는데.

 

 

삼성전문가가 된 것도 모든 기자가 물러서 있었기에 자신이 조금만 해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란다. 김어준도 지적한 바 있지만 이건희가 물러난다고 삼성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기자 역시 이건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씨등 오너만 삼성에서 떼어 놓으면 더 훌륭한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삼성은 주기자에게 앞날을 책임지겠다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 삼성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이 나라의 중요인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주기자는 삼성의 비자금 수법을 폭로한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다고 했다. 비록 삼성에 누릴 것을 얼마간 누리고 나왔지만 ‘사회를 위해 자신의 편안함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평가했다. 꼭 지금 나꼼수 멤버들이 그렇다. 좌파도 우아하게 강남으로 가는 길이 없지 않다. 글빨과 말빨이 있는데 지금보다 편하게 사는 방법이 왜 없겠는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 어렵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슬펐던 건 바로 그들 가진 자들은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인과 친척들 중에 대기업의 프레임에 속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한때 사업 망하기 전까지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모님이 찍는 후보에 표를 던진 사람이었다. 돈을 더 벌게 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자연스레 그들 세계에서 행해지는 방식대로 살게 된다. 더 조용하고 더 편한 호텔. 더 수준 높고 더 깨끗한 음식. 더 고급이고 더 우아한 옷. 돈이 많아지면 자연 돈 없는 사람들과 무엇이든 같이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오로지 단 한사람 이건희만을 위한 단독 슬로프를 보라 - 도로공사가 이건희 길을 안 닦은게 이상하다 - 말로하면 현실이 되는 그들이다. 이건희가 그 정점이요 극단이라고 하지만 그 나머지 추종자들도 그를 욕할 자격은 없다. 그건 쌍욕하면서 투표소에서 이명박을 찍은 심리와 똑같다. 그리고 특별히 이들이 처음부터 오만하고 허영심 많아서 라기 보다는 돈맛을 봤더니 오만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더 맞다. 알고 봤더니 돈으로 안 되는게 은근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한 검사들만 하는 게 아니다. 돈으로 생긴 우월감은 자연 도덕에의 불감증을 초래한다. 검사들이 스폰서의 지원으로 매번 룸살롱에서 술 마시고 골프 치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처럼 세금 안내고 장부 속이고 횡령하고 하는 것들은 점점 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비자금 빼돌려 투자하고 먹튀하는 건 일종의 능력이다. BBK는 기업가로서 이명박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일상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젭니까? 그 정도 머리도 안쓰고 어떻게 사업 합니까? 그럴 사람들이다. 필요하면 조폭도 부르고 그들에게 청부 폭력도 시키는 것이 꼭 대기업 오너들만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벤처 사업가는 90년대 말 벤쳐 붐을 타고 코스닥에 상장해 유망기업이 된 후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의 사장이 된 사람이 있다. 그도 처음엔 순수했고 열정과 자존심으로 뭉친 말 그대로 장래 촉망받는 벤쳐 사업가였다. 지금은 한강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시원하게 생일파티를 한다. 조선일보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사업가의 칼럼은 항상 그의 몫이다. 내용은 언제나 같다. 수출은 희망적이며 기술은 세계최고이며 대기업과 공조는 자기네 장점이라고. 보수 프레임에서 메인의 위치에 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안착하면 또 그렇게 굳건하고 탄탄할 수가 없다. 이른바 검찰, 경찰, 정치, 언론의 커넥션이 구축이 되었다는 뜻이다. 슬픈 건 일단 올라가면 무슨 자동 제어장치 처럼 알아서 연결된다는 것이다. 사촌오라버니 중에 대기업 임원이 세 명 있다. 그들 모두 학창시절 때부터 성격 좋고 사람 좋고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은 불온서적이다. 그들은 나꼼수같은 종북좌파들의 괴담방송은 듣지 않는다. 일단 가지게 되면 사는 동안 어떻게든 가진 것을 부풀려 놓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메인 스트림이 해온 방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또 슬픈 건 그들 앞에서 누구도 그러한 방식을 욕하거나 잘못된 관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려 어떻게 하면 나도 그 틈에 끼어 뭐라도 얻어 먹을까를 생각하면 했지. 대통령이 사기꾼인데 뭐하러 도덕찾고 법따지고 할 것인가. 좋은 자리 있는 동안 한 몫 챙기면 그만이다.

 

 

주기자는 검찰과 삼성 외에도 종교와 언론, MB와 친일파의 속성도 잘 정리했다. 모든 특징은 이명박으로 통하는데 그 중에서 ‘친일파의 애국백년사’는 우리나라 보수의 뿌리와 정체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실마리라 생각된다. 종교가 조폭과 연대하고 언론이 거짓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보수의 도덕불감증의 연원은 결국 친일파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일은 결국 박정희와 수구언론을 상징한다. 반미친일은 반공친미로 발전했고 오늘날 이명박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나라 팔아 자기 챙긴 협잡꾼 들이 권력위에서 외려 나라 살리자 하는 형국이었다. 친일파가 주장하는 것은 빨갱이로 대변되는 김대중 죽이기와 대안논리로 내세우는 박정희 찬양이다. 이는 오늘날 보수 프레임에서의 종북좌파와 박근혜의 대립구도로 요약된다. 친일파의 불감증은 주기자가 지적했듯이 어쩔 수 없어서 일본을 도와 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신대를 모집하고 징병을 부추긴 파렴치함에 있다. 지들 가진 자들만 잘 먹고 잘살면 나머지 국민은 피 눈물을 흘려도 되는 태도가 오늘날 속물과 위선, 염치불구와 안하무인의 보수를 잉태한 것이다. 독립운동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못먹고 못사는데 친일 끄나풀 들은 대대손손 떵떵거리면서 사는게 우리나라이다. 그래서,

 

 

주기자는 기자생활이 독립운동이라고 말한다. 기자의 결론은 더 서글프다. 지극히 평범한 당신도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명심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약자이고 저들은 강한 자들이니까. 약자는 평생 살아온 터전이라도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하면 때려 맞으면서 나가야 한다. 안 그러면 용역깡패 피하려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게 된다. 재수 없어 불에타서 죽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미군기지가 들어온다고 해군기지가 세워진다고 잘 살고 있던 마을을 하루 아침에 떠나야 한다. 삶과 터전이 무너져서 시위라도 하면 바로 빨갱이라 손짓하고 억울하다 자살해봐야 신문에 한 줄도 안 나온다. 단순 교통사고 사망자는 이름과 나이, 사는 곳, 사고 경위까지 나온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에서 아무리 더 살고 싶어도 내일 그 곳이 개발될지 어떨지 이 놈의 나라에선 이명박과 그 측근만 안다. 제기럴, 조폭을 세탁한 때 아닌 철거회사만  밤이고 낮이고 호황인 시절이었다. 아! 정말로 무식하고 탐욕스런 쥐새끼들이 코끼리처럼 판을 치는 시절이었다.

 

 

우리가 이명박을 뽑은 건 우리의 탐욕 때문임을 인정하자. 우리는 그가 국가를 잘 경영해 다 같이 잘살게 되는 나라를 만들어 주길 기대했지만 그는 보기 좋게도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오로지 자기네 식구와 측근들만 잘사는 것이 가능하다 증명해보였다. 삼성의 절대 안 들키는 돈을 받은 검찰과 기자들. 이명박이 눈감아준 검찰과 정치인. 종교가 눈감아준 조폭. 조폭이 뒤를 봐준 건설사. 삼성과 언론에 동조한 지식인.... 주기자는 ‘친이인명사전’을 작성해 끝까지 추적하겠다 말했다.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알고 나꼼수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 말했다. 수줍은 꼴통, 열일곱의 심장을 가진 기자는 혼자 피하면 쪽팔리는 거라 말한다. 약한 사람들이 당할 때 옆에서 같이 욕이라도 해주고 비록 진흙탕이지만 같이 범벅이 되어 싸워주면 그놈들도 흠칫 당황한다고 주장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자살소식에 얼마나 더 아파해야 하는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지 마음에도 비가 온다고 한다.

 

 

오늘 우리 가슴에 내리는 비가 그저 약자들의 젖은 옷자락으로만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살면서 봄비가 내릴 때 나는 우산위로 하나둘 떨어지던 빗소리가 좋았다. 여름 소나기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가을비처럼 을씨년스럽지도 겨울비처럼 쓸쓸하지도 않은 것이 이상하게 어떤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약자들에겐 다행히 희망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마지막 가능성이 있다. 진실이 뜨거운 것이라면 그 뜨거운 맛을 꼭 거짓된 자들이 맛보기를 소원한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나는 이렇게 쫓아가서 욕을 할 주제는 못된다. 하지만 당신들이 골치 아픈 "주기자를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야" 이렇게 떠들 순 있다. 생각보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보수들이 갈등하는 건 언제나 자기 혼자 깨끗해서 무엇하느냐는 것이었다. 다들 입다물고 속이고 빼돌려서 잘 먹고 잘 사는데 혼자 아무것도 안 챙기면 무엇을 얻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진실은 뜨겁고 거짓은 시리다. (하필 이 책에서 마지막이 최진실의 이야기이다...) 심장이 따스하고 죽음은 차가운 이유다. 살아있는 한 우리 심장은 적어도 진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서 숨쉬며 하늘과 땅을 번갈아 바라볼 줄 안다면 저 위에서 군림하는 거짓된 자들의 심장에 진실이라는 비수는 꽂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잠못들고 있는 내 부끄러운 영혼의 고백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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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5-1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기자를 주기지 말아주세요~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차트랑 2012-05-12 00:48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요...
저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만,
저의 페이퍼 하나가 당선되었답니다 ㅠ.ㅠ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이가 강으로 추락할 때 사람들은 그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말했다. 마술은 실패한 것일까 성공한 것일까. 마술사는 제이의 몸을 토막 낸 다음 머리와 몸통을 분리해 뼈를 발라냈을 것이다. 피로 범벅된 뼛조각에 다시 살을 입혀 제이를 소생시키고 밧줄을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을 것이다. 관객들은 제이가 밧줄을 사용해 승천하는 묘기를 신기한 듯 지켜보았을 것이다. 티벳 신화에 의하면 밧줄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장치였다. 밧줄을 타고 왕래를 하는 사람은 초능력을 가진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밧줄이 끊어진 뒤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건 오직 죽은 자의 영혼만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고 믿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누군가 올라갔다가 내려왔으면 좋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비록 마술이라도 누군가 실종이 되거나 충격을 받아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모른다. 마술은 실패한 것도 성공한 것도 아닌, 꼭 성공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왜 하필 제이였을까. 제이는 분명 선택받은 사람인 듯하다. 비록 어리지만 자신도 일찌감치 그걸 알고 있었다. 제이는 자신의 영혼을 이탈시켜 다른 존재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갇혀있는 개의 붉은 눈을 보고 눈물이 맺히고 밧줄로 묶여진 의자에서도 사물이 느끼는 고통의 무게를 체감했다. 친구들에게 흉기를 휘둘렀지만 그 고통이 바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지만 그가 느끼는 분노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를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저 하늘에서 누군가 제이에게 밧줄을 묶어 놓았다면 그건 고통의 탯줄, 그 속박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제이는 고통 하는 존재들과 소통하는 자유를 누렸지만 과거에 속박당한 채 자신이 저지른 모든 행동의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밧줄은 자유이면서 동시에 구속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제이가 쇠바늘의 바리케이드에 몸이 잘려 나갈 때 그만 내게도 달려있던 보이지 않는 밧줄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우리는 신들이 밧줄을 매달아 만들어 놓은 꼭두각시는 아닐까 하늘에선 우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위해 인형극을 연출한 건 아닐까, 하는 섬직한 생각이 들었다. 내면을 지탱하는 무언가가 끊어지고 나니 비로소 그 장면은 먼 훗날 우리의 마지막은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삶이라는 이 길의 끝에서 죽음과 마주칠지 알면서도 달려가는 나, 그리고 당신, 그리하여 멈추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 제이를 닮았다고 느꼈다. 제이가 느낀 고통의 무게가 소름끼치듯 선명하고 둔중하게 다가왔다. 우리도 혹 제이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연결된 존재들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묘기를 연출한 마술사는 제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죽어야 함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마술사로 분한 소설가는 제이의 죽음을 구경한 관조자 동규도 죽었다고 알려 주었다. 제이의 죽음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끔찍한 마술 현장의 관객이었던 우리는 남겨진 동규의 절망과 충격을 헤아리지 못했다. 소설가는 동규의 고통을 배려하지 못한 자괴감에 괴로워했다. 제이가 죽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동규의 죽음은 우리 모두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제이라는 배우의 이야기가 아닌 제이가 출연하는 공연을 관람한 동규의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소설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도 결코 마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마술의 고통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중얼거리는 듯 했다. 나아가 사람이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면 사람답지 못하게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하는 듯 했다.

 

 

 

제이(提耳)는 ‘귀에 입을 가까이하고 말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나 제이의 속삭임은 이제 폭주족의 굉음이 되어 최후의 비명으로 남았다. 환청이나 이명이 아니고 화인처럼 선명하게 각인되는 슬픔의 낙인으로. 오늘 우리가 슬픈 것은 우리 존재가 모두 고아(孤兒)와 같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고아(苦我)로 살아갈지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다. 제이가 이승과 저승 사이를 이어주는 밧줄이었듯이 소설가는 신음하는 고아와 그에게 손을 내미는 세상을 이어주는 단단한 밧줄이길 소망한다. 소설이 사라진 시대, 소설가의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네 고아 같은 지독한 고통을 될수록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아인 우리를 이승의 부활로 이끌어줄 가장 튼튼한 밧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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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2-04-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역시.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이 작품 읽어줬는데
처음 부분과 제이와 동규가 만나는 부분을 읽어줬어.
마지막을 못들었는데, 혹시 마법사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으이.

너의 한자 명명 솜씨는 최고야!
어릴때 서당을 다닌게야??
논어를 읽으면 잘 읽을 사람이야.^^

서평 잘 봤어. 등긁어 준 느낌이야~

보물선 2012-04-04 18:36   좋아요 0 | URL
난 요즘 나온 논어는 너무 방대해 보이고
신정근 교수의 <마흔, 논어...>를 봐볼까 해^^
(마음은 원이로되, 쉰은 되어야 읽을 수 있을라나...ㅋㅋ)

가연 2012-04-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서두를 마술사 이야기로 시작했었던가요. 저는 다 못읽고 프롤로그부분에 해당하는 마술사이야기만 읽고 내려놓았는데,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부활하기 위해서는 일단 죽어야 한다..ㅋㅋ 하지만 왕이 보고 즐거워서 마술사가 다시 살려줄거라고 하면서 칼로 베어버렸던 신하는 끝내 못살아났으니... 부활하려면 선택받은 사람이어야 하나봐요, 풋. 끝까지 못읽어서 어떻게 내용이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 유하 산문집, 개정증보판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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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의 이십대를 참혹하게 관통하고

나머지 세월도 그 흔적으로 자주 놀라게 하던

한 사람을.

 

 

 

 

 

나 그대를 몰랐었네

 

 

 

그는 꼭 유하감독과 같은 나이였다. 유하 감독과 같은 공부를 했다. 같은 시기 이소룡에 열광하고 존 덴버를 들었던 사람. 만화 가게에서 흑백 TV를 시청하고 해적판을 찾아 청계천과 세운상가를 돌아다녔을 사람. 동시상영관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이나 한자리에서 보았을 사람. <미워도 다시 한번>의 여배우 문희의 눈물을 기억하는 사람. 육영수 여사의 마지막 가는 날에 비가 왔다는 걸 아는 사람. 백마가 없어지기 전 해후의 풍경을 아는 사람. 생애 첫차가 프라이드나 엑셀이었을 사람. 나의 뜨거웠던 90년대가 자신의 가장 멋져 보인 삼십대였을 사람. 그래서, 이제는 그도 유하처럼 쉰 줄에 들어섰을 사람. 그러나, 다시는 만나기 힘들어 그리워만 해야 될 사람.

 

 

유하와 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던 사람들이지만 추억은 이렇듯 삶의 경계를 허물며 거미줄처럼 인연의 손을 내민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유하의 추억을 매개로 나의 한 시절을, 나아가 그의 한 시절을 고스란히 겹쳐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 정확히 말하자면 유하와 동시대인으로서 같은 추억을 가졌을 그를 회상하는 시간이었지만 - 어떻든 추억은 꼬리를 물고 연대를 이어 관계를 확장하는 기특한 구석이 있었다. 유하는 나의 옛사랑을 불러 들였고 나의 그 사람은 유하를 더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감독의 첫 데뷔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를 어느 저녁 (아마도)압구정동 근처에서 구경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한 겨울이었다. 그땐 커다란 극장이 모두 강 건너 있을 시절이었는데 씨네하우스라는 어정쩡한 크기의 영화관이 강남에 있긴 했다. 당시엔 한국영화가 그리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라 연인들이 아니면 평일 객석은 썰렁하기만 했다. 물론 지금 영화의 내용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고 성형하기 전의 발연기 수준의 엄정화만 희미하게 기억난다. 그때 나는,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유하 감독이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내게 별다른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그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나「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쌍화점」의 감독이었다는 사실도 인상 깊게 기억하진 않았다. 유하라는 이름은 대중문화예술의 영역에 위치한 사람이긴 했으나 ‘압구정동’으로 대표되는 유행현상과 소비문화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얼마 전 개봉한「하울링」과도 유하를 연결 짓지 못했다.

 

 

웃긴 건 그 당시 ‘바람 부는(이하 중략)’ 이후로(그것이 시집이든 영화이든 혹은 기사 제목이든) 정말로 바람이 불면 압구정동에 가고 싶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청춘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을 모르고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관심이 없던 사람도 ‘바람 부는’이라는 제목의 범국민적 확산효과 덕에 압구정동의 홍보만 더 강화되기도 했다. 제목 특유의 시적 감성이 압구정동을 천박한 소비문화의 쓰레기통이 아닌 어쩐지 고급스런 문학적 아우라가 입혀진 장소로 격상시키는 꼴이었다. 계층 간 위화감은 만약 제공하는 쪽이 내 쪽이라면 충분히 무시될만한 분위기였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당시 우리에겐 속으로는 매혹을 느끼면서 겉으로는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중적 심리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시 속에서 압구정동을 향한 욕망을 인정하고 매혹의 원인에 의문을 제기했는지는 몰랐었다. 우리들 욕망의 다양한 모습을 반성하고 스피드 문화 대신 쉼의 문화를 제시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유하 감독의 시집이든 영화든 어떤 현상으로만 정보를 받아 들여왔지 그것의 원작자로서 작품세계 같은 건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관객이자 독자였다. 그러면서 세간에 많이 회자되고 소비되었으므로 내심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그동안 의외로 단 방향으로 해석되어진 언론의 정보로만 작품과 작가를 이해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듣고 보았으니 많이 안다고 믿는 것. 나는 이 책을 덮고 내가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이름 두 글자였다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우린 꿈이 있었다네

 

 

 

돌이켜보면 나의 이십대로 상징되는 90년대는 엄청난 대중문화의 양적 질적 팽창의 시기였다. 광고에선 연일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라 부추겼고 뮤직비디오는 핑크 프로이드의 그것처럼 감각적으로 발전했다. 영동대로와 도산대로에 나가보면 빠르게 전파되던 외국계 자본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즐비했고 주차장엔 굉음을 과시하던 스포츠카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퍼머의 여성들은 삼삼오오 로바다야끼와 재즈카페로 모여 들었고 어쩌다 물주가 등장하면 럭셔리 가라오케로 이동했다. 동호대교 남단에서 성수대교 입구까지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유흥문화는 지금 생각해봐도 분명 활기차고 밝았던 것 같다. 적어도 IMF 전까진 희망의 프레임 안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시도 읽었다. 지금 ‘나가수’나 ‘불후의 명곡’같은 서바이벌,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메인으로 등장하는 노래는 언제나 90년대 중반의 히트곡들이다. 핑계, 일과 이분의 일, 마법의 성, 그냥 걸었어, 넌 할 수 있어, 사랑할수록, 나는 문제없어, 달의 몰락, 날 떠나지마(이상 1994년), 날개 잃은 천사, 가질 수 없는 너, 잘못된 만남, 이별공식, 사랑을 할거야(이상 1995년) 같은 노래가 한국가요 발전의 정점에 있었던 노래들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노래 한곡마다 추억 한 가지를 말할 수 있다하면 당신도 혹 나와 같은 세대는 아닐까.

 

 

그때 우리는 신입이었고 유하 세대는 회사의 실질적인 허리들이었다. 그들은 민주화 투쟁을 지나온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고 중학교 때부터 치열한 입시지옥을 통과한 경력에다가 본고사를 보았거나 본 사람을 형으로 두었기에 엘리트에 대한 야망도 남달랐다. 우리는 선경의 스마트 자전거를 준다는 장학퀴즈를 시청만 했지만 그들은 직접 참가하고 장학금을 받아본 세대였다. 우리는 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고 주윤발과 장국영만 외쳤지만 그들은 성인이 된 후 영화의 ‘의리’, ‘신념’, '충성'의 가치를 내면 깊숙이 받아들여 주요 기업 창업자들의 비전을 뒷받침하는 실행의 고수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70년대 후반 콩나물처럼 지어진 아파트 아스팔트에서 서필로 땅따먹기를 했지만 그들은 지방 농촌 출신으로서 땅과 흙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하 역시 고향의 대나무 숲과 뛰어놀던 들판을 유년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햇빛, 꽃들의 아우성, 바람의 감촉을 에너지 삼아 길 위에서 희망을 품고 청춘의 한때를 배회했다. 그 떨림의 에너지가 곧 시적 영화적 상상력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뒤늦게 삐삐라는 통신수단을 체험했지만 그들은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던 시절 투박한 아나로그 매체와 통기타의 낭만으로 첫사랑을 경험한 세대였다. 그들과 우리는 대체로 국가와 사회가 주입하려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차이가 있었다면 억압의 정도와 방법이었던 것 같은데 우린 그들의 눈에 띠는 투쟁 때문에 사실 그들에게 빚졌다고 해야 맞을지 모른다. 또 하나 우린 80년대 컬러TV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들은 흑백이었다는 것도 다르다. 그들은 교복을 입고 까까머리로 극장을 드나들었지만 우린 교복자율화에 핀컬 퍼머를 하고 성인영화를 보았다는 것도 달랐다.(십년의 차이가 꼭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한, 문화적으로 서구화된 그림의 차이일 것이다)

 

 

아무튼, 그때 우리가 그들과 함께 꾸었던 꿈이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중산층의 진입에 대한 ‘장밋빛 로망’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이건 유하 감독이 어린 시절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핑크빛 꿈’의 포로가 되었다는 느낌과 유사할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한 계단만 더 올라가면 외제차도 탈수 있고 번듯한 아파트도 장만하고 크리스마스에 북유럽 해외 여행 같은 특별한 추억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막연히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옳지 않다거나 진부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회 대다수의 행복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벌어서 잘 먹고 사는 것이라는 생각 이상을 해보지 못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대학을 간다고 하듯 직장도 열심히 다니면 당연히 승진도 하고 집도 사게 되는 줄 - 물론 중간에 변수는 있겠지만 참고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라 믿었다 - 알았다. 아... 당시 우리가 꿈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생각들이 오늘 나를 울게 한다. 나처럼 한때나마 가졌던 꿈이 슬프다면 당신도 혹 나와 같은 세대는 아닐까.

 

 

 

다시 미래를 나누겠네

 

 

 

그 후로 이십년이 지났고 이제는 그들이나 우리나 (누구 말마따나)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이 자꾸 슬퍼지던 이유는 이소룡 세대라 불리우는 그들의 현재 모습에 있다. 55년~63년생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베이비 부머들은 이제 코앞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청춘을 바쳤고 헐리우드 영화대로라면 이태리 어느 해변에 근사한 별장 하나쯤은 마련해두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들의 대학등록금과 결혼자금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노후은퇴 자금은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 것일까. 우리나라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이들 중에 나의 옛사랑이 있고 유하 감독이 속해 있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우리가 백 살까지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 모두가 이소룡을 우상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조용필이 제일이라 해도 꼭 전영록이나 이용을 들고 나오는 친구들이 있었듯이. 모두 존 덴버만 듣진 않았을 것이다. 간혹 팝송보다 샹송이나 클래식에 뜻을 둔 매니아도 있었으리라.(이 책의 후반부에 소개되는 재즈평론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희망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추억은 이 순간의 생명성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재가 절실한 사람만이 그 유한성을 견디기 위해 추억을 꺼내든다고. 추억은 한 시절의 절실했던 이미지들을 고이 보관하는 가슴의 영토라고. 우리가 오늘 추억이라는 영토를 함께 서성이는 이유는 과거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미래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어느 세대건 자신의 빛나는 시절을 더 빛나게 해준 영웅이 있다. 그들이 한때 자신들의 영웅이었던 이소룡을 잊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그때 보았던 희망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소룡 세대에게 이소룡을 회상하는 일은 단지 청춘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일은 아닌 것이다. 굵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이소룡은 배우이기 이전에 미국 워싱턴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무도인으로 살다간 사람이었다.(나는 그가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역시 무술에 인문학적 성찰이 배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그들에게 이소룡의 죽음은 엘비스 프레슬리나 제임스 딘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겉멋없는 이소룡의 정직하고 단단한 진정성, 몸과 정신이 하나되는 진실성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이소룡은 지금처럼 컴퓨터 그래픽이나 조작이 아닌 맨몸으로 단련한 자기만의 리얼리티로 영화에 승부를 걸었다. 그의 죽음은 영화배우를 넘어 진정한 무도인의 길을 가던 동양인 지도자의 죽음을 의미하진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이소룡 세대에게 바친다는 유하의 산문집은 같은 시기를 체험한 동시대인들에게 삶의 진정성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유하 세대와 인연을 맺은 우리 세대에게 강렬한 향수를 드리운다. 같은 유형의 추억 속에서의 진정성은 같은 사람을 향한 희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룡이 맹활약 하던 시기는 한국 정치사의 암흑기였다. 이소룡이 사망한지 사십년이 다 되가는 오늘날도 불황이긴 마찬가지다. 이소룡이라는 진정성에 열광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꿈꾼 세대라면 아직도 이소룡의 추억은 유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들에게 커다란 현재진행형의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추억은 과거만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미래를 공유하는 희망이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한 시기를 같이 겪었던 사람들은 한 시절이 남긴 절실함을 알고 있다. 기억의 창고에서 그 절실함 들을 꺼내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들만은 알 것이다. 아니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에 십분 공감할 수 있을 터이다. 추억의 풍경들은 우리 아픈 현실을 껴안는다. 그리운 시절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미래로 복원된다. 우리는 점점 진부해진 미래, 과거화된 미래, 박제화된 미래를 견디기 위해 그때를 더욱 추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이 공감에서 시작한다면 추억은 바로 그 시작인 것이다. 추억하고 나눈다면 함께하는 그곳에 희망의 미래가 있다고 믿어 본다. 그들이 그리운 봄이다. 더불어 봄 이었던 나의 그 시절도 사무치는 밤이다...(아마도 나는 살면서 혹시 이 글을 보게 될지도 모를 한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의 위로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그저 추억이라는 불변의 믿음 하나만 가지고...)

 

 

 

 

 

사랑할 것이다. 앞으로 더 오랫동안.

나의 이십대를 추억으로 물들이고

나머지 세월도 그 기억으로 자주 그립게 하던

한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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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28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요하고 깊은 밤이 흘러
오늘 또 새 아침 맞이합니다.
쉰 줄을 살아가는 사람도
쉰을 바라보는 사람도
앞으로 쉰 해 이 땅에서 살아갈 아이들도
모두 좋은 이야기 건사하기를 빌어요

stella.K 2012-03-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곧...ㅋ
이 사람은 글도 잘 쓰고 영화도 잘 만드는데
꼭 뭐 하나가 삐긋해요.
의욕이 너무 앞서는 건지, 대중의 입맛대로만은 하지 않겠다는 오만인지
그걸 모르겠어요. 언젠가 자라나는 자기 자식 생각해서 야한 영화 자제하고
어린 아이 눈높이에 맞는 영화 만들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사람은 하겠다면 하는 사람 같아 기대하고 있는데 아직 동화 같은 영화는
안 만들고 있나 봐요.ㅋ 책 읽어 보고 싶긴해요.^^

2012-03-2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03-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밤에 추천하며 보고는 이제 댓글 다네요ㅎㅎ 아휴, 어제는 진짜 정신없어서ㅠ
말죽거리 잔혹사랑 비열한 거리를 보면서 참.. 이런 저런 감정들을 많이 느꼈었는데, 이렇게 책을 내었네요. 저야 이소룡 세대는 아니지만..ㅋㅋ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1
김훈민.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기존에 책 이야기를 하는 책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목적이 분명하고 차별화 되었다. 저자는 경제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 그 수단으로써 책도 예술도 역사도 가져온 경우이다. 경제학자들의 서재엔 어떤 인문학 서적이 있을까, 하는 보편적인 소개를 예상 했지만 그건 짧은 생각이었다. 굉장히 효율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을 적용했다.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다.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 중 가장 알차다. 며칠 전에 아이가 ‘기회비용’이 무슨 뜻이냐고 설명해 달라고 해서 대충 간단히 답을 해줬는데 왜 이 책처럼 설명해주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책에는 분식회계, 포획이론, 한계효용 같은 경제용어 100여 가지가 재미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정말 재미나게 넘기다 보니 어느새 경제학 입문서 한권을 독파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과학자가 주장하는 기획독서를 실천해 보려고 이번엔 경제학자가 말하는 인문학을 살펴본 것이었다. 한번 읽었다고 서재에 꽂아둘 것이 아니라 경제학 사전처럼 곁에 두고 자주 꺼내어 보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경제학이 어려운 학문이 아니고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분야가 아니라 주장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실생활의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경제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경제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이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많아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보면 경제학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여 저자는 인문학을 빌어 경제학의 여러 개념들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경제학에 흥미를 갖고 그 속에서 인간의 모습과 삶의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궁극에 경제학이 은행원이나 금감원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학문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해법이자 우리의 본 모습이 투영된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듯 하다.

 

 

 

저자가 맨 처음 제시한 경제는 우리 역사의 시초인 단군신화였다. 대체로 건국신화의 주인공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정당성을 천명하는데 반드시 경제문제를 거론한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올 때 바람과 비, 구름을 주관하는 주술사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온다. 이들은 모두 농업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날씨를 관장하는 역할이었다. 따지고 보면 경제활동인 농사를 번성시키기 위해 온 사람인 것이다. 농사는 분업을 촉진시켰고 분업은 신분제 사회의 배경이 되었다. 지배계층은 오늘날에도 경제관련 공약으로 피지배계층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는 정치의 다른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밖에도 북유럽 신화의 주신 오딘의 눈에서 ‘기회비용’의 개념이, 오르페우스의 지하세계여행에서 ‘매몰비용’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외양간 청소에서는 ‘절대우위’와 ‘비교우위’가 설명된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병사의 이야기는 ‘한계 원리’와 ‘한계비용’을 설명하는 사례로 훌륭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저축은행 사태도 과거 역사 속에서 이미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은 내가 경제에 문외한이어서 그런 것인지 놀랍기만 했다. 저자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18세기 영국의 무역위기와 같다고 보았다.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은 두 나라간 무역 불균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편 무역을 통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영국이 아편을 생각해 낸 것은 무역상의 이익이 중국으로만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바로 2008년 금융위기도 중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이었다. 미국은 과거 80년대 일본이 지금의 중국과 같을 때 일본의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끼리 엔화를 절상하는 담합을 시도했다. 위안화 절상을 위해 미국이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을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금 중국은 세계 제 2의 강대국이 되어 지들끼리 하는 협상을 가만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2001년 미국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과 최근에 일어난 AIG 사태-2009년 회생의 목적으로 정부에서 받은 공적 자금을 임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로 지급-는 그 깊숙한 배경에 프랑스 혁명이 거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건 모두 경영진에 대한 부당한 보상금 지급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경영진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있지도 않은 계약을 했다고 이윤을 부풀린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촉발되기 전에 미국 은행의 경영진과 꼭 같은 네케르라는 은행가가 엔론 사태와 동일한 분식회계를 사용했다. 쉽게 말해 회계장부를 흑자로 사기쳐서 외려 귀족들로부터 거액의 기금을 조성한 방식이다. 프랑스 왕실이 몰락한 이유는 미국은행처럼 단기간에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이는 꼭 미국과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시행착오는 아닌 듯 하다. 큰 돈을 만지는 1%에겐 양날의 검처럼 부여되는 운명의 기회가 아닐까.

 

 

 

책을 읽다보니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에게 잘 한 일도 있었다. 일본은 주인 없는 산림으로 분류된 산림을 민간에게 소유권을 넘겨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소유권이 없는 공유지, 공유자원이 과다소비로 인해 고갈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조선의 산림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해 황폐화된 우리 산림을 복원하는데 기여한 일이 자기네 이익을 위한 발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겐 다행인 일이었다.(공유지의 비극은 꼭 다시 써먹고 싶은 용어이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문학 속에서 인물들이 경제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때 더 신명나는 듯 했다. 문학이 경제학의 나래를 펼치는 상상마당이라고 했듯이 나 역시도 문학 속 경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저자의 해석이 다른 경제학의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문학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과 양키>에서는 카멜롯의 아서왕이 다른 왕국의 대장장이와 물가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실질 GDP와 명목 GDP를 비교 이해하는 장치로 소개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베르테르가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시간비일관성’의 문제로 연결 짓는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는 약혼녀 아들과의 결투를 ‘게임이론’과 ‘내쉬균형’을 설명하는데 활용한다. <레미제라블>의 교훈은 ‘넛지’의 개념으로 정리한다. <좀머씨 이야기>와 라인강의 기적을 말하는 부분에선 독일 경제발전에 날개를 달아준 결정적인 사건이 한국전쟁이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국전쟁으로 군수물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결과 독일은 몇 배로 수출을 하게 되어 경제가 안정된 것이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이성, 감성적으로 모두 이해시켜 준건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모질게 만든 건 재산세, 다름 아닌 세금이었다고 분석한다. 세금을 내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고 얼마나한 부담인지 사실 돈 없을 때 때려 맞아 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밖에 공연표가 항상 남아도는 이유와 미술관에서 그림을 모두 전시하지 않는 이유, 왜 푸치니의 오페라는 언제나 볼 수 있는지, 공연예술 포스터가 노리는 효과는 무엇인지 등의 문화예술적 측면을 경제논리로 설명한 부분도 유익했다.(상식적인 면에서) 마지막 장에 우리도 애덤스미스 못지않은 정약용 같은 경제학자가 있었으며 민주주의는 금권선거에서 발전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맨 마지막 장이 ‘경제학자들에게도 윤리 강령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알다시피 경제학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방하는데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영학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세계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역시 세계적인 기업의 이사직이나 자문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고 찔러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이 사실을 숨기고 -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 해당기업이 속한 분야에 대해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어찌 보면 뒤로는 돈과 명예를 알뜰히 챙기면서 앞에서는 공익을 위해 세금을 내자고 하는 꼴이다. 경제학자들이 월스트리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금융위기를 부추겼다는 지적은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이라는데 동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오늘날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인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다. 저자는 이들이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 배경을 돈을 빌려주는 이유에 대한 개념이 일찍부터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돈이 없어 실현을 할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유대인은 돈을 빌려주고 그 사업이 더 큰 돈을 번다면 채무자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업은 그 어떤 분야보다 사회구성원들의 후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유대인의 사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오늘날에는 어떤 부패와 불공정에 연루 되었는지 믿을 수 없으나 분명 최초의 사고는 우리가 되새겨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하면 남는 돈, 아니 없는 돈이라도 빼돌려 한 푼이라도 내 수익으로 불리려는 파렴치한 사고를 가진 금융인들이 오늘날 돈 가지고 돈 굴리는 권력을 이용해 열심히 욕심 부리지 않는 대다수의 서민을 얼마나 궁핍하게 만들었던가. 사회전체의 후생과 복지, 경제 전체의 활성화를 위해 금융은 몸 안에 흐르는 피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금융일을 맡게 되는 사람은 자기 몸에만 피를 수혈하거나 피를 뭉치게 하거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위험인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는 경제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 아주 유용한 시간이 되었다. 역사와 문학, 예술과 철학속의 경제는 우리가 발견하고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경제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평소에 ‘경제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효율적이고 계산이 정확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딘가 씀씀이가 크지 않아 밥 한번 안사는 사람이라는 뜻도 없지 않다. 이번 기회에 경제적인 사람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인간은 원래 경제적 성향과 본성을 타고 났는데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사람이라면 그는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더 많이 이해하고 깨우친 사람이므로 살아가는 지혜가 더 풍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사람은 결코 짠돌이나 짠순이가 아니다. 경제 아닌 모든 분야에서 번득이는 해법을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일 것이다. 시간대비 성과를 효율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마도 인생 전체에 대한 지혜의 결과물이 다양한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인생을 진하고 깊게 사는 것이므로 가끔 짠 맛이 느껴질 수도 있긴 하겠다. 그럴 땐 우리네 피도 눈물도 모두 진하고 짠 것이니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면 되겠다. 그러니까, 짠순이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보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 욕은 아니지만 우린 바보인 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그러므로 짠순이에게 짠순이는 욕이 아닐 것이다. 단지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짠순이인지 몰랐다는 것 만이 중요하다. 이제 알게 된 이상 나는 짠순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겠다. 아니 누가 좀 나를 짠순이라 불러준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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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2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경제하면 과학과 함께 저에겐 꽝인 분얀데
한사람님 초두부터 저리 쓰시니 끌리는군요.
일단 보관함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cyrus 2012-03-2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특정 분야와 관련되어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모아서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네요.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많이 도움이 될 책일거 같아요.
저는 요즘에 <안철수의 서재>를 읽고 있어요. 특정 인물이 자신이 읽어 본 책들을 소개하는 글이
좋더군요. 그리고 추천한 책들도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러기에는 읽을 책이 너무 많네요 ^^;;

보물선 2012-03-26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의 중심에서 일을 하면서도
경제학 전공이 아닌 나는,
사실 굉장히 경제개념이 약한 사람이야.
당신 소개글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봄이 좀 왔으면 좋겠어. 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