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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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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껏 이분의 책이 이렇게 도발적인 시선을 유발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수채화라기 보다는 아크릴물감의 빨강색을 두른 책표지가 그야말로 '의미심장'했다.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번 벗겨본 줄리앙 슈나벨의 그림(붉은 상자, 1986)은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고 할 정도로 강렬하고 솔직했다. 자유롭게 뻗어 가는 나뭇가지들이 내게는 오래전부터 자라온 뿌리로 느껴졌으며 마침 같은 가지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상자들은 뜨겁게 봉인된 열매로, 붉은 바탕을 메우던 눈처럼 뿌려진 흰 꽃들은 주체할 수 없는 생명의 환희로 다가와 온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지금껏 살아왔음에도 새삼스럽게 살아있음이 감사한...이것일까.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생명의 경이로움이란.

그래서였는지 그동안의 소설과 산문에서 버릇처럼 느껴온 감동의 색깔도 보다 더 진하고 원색적으로 느껴졌음이다. 책의 본문에 작가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고 느낀 글이 서술일뿐 서평이 아니라 언급하였는데 그건 내가 이 작품을 읽었다고 글을 쓴다 할때 해야 할 말이었다. 달리 이러쿵 저러쿵 말이 필요 없는 글들을 내가 감히 책의 내용에 대해 평評할 수가 있을런지 내 앞에 놓여진 붉은 심장에 가만히 고개만 숙일 따름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내게 있어 현실과 세상에 대한 모든 핑계를 침묵하게 하는 분이었다. 부모님이 가신 이후론 더욱더 부모님과 동시대인으로서 늘 언제라도 마음 한구석 그리움의 시원처럼 유현하게 자리하던 분이었다. 매일을 부족함 없이 풍요로운 식단에 다양한 메뉴를 찾다가도 때가 되면 어머니가 차려주는 찌개와 김치로도 허기진 밥심을 채우고 또 한번 기지개를 펴듯 그렇게 내게는 문학의 고향이자 소설의 친정같은 분. 언제나 좋아하는 작가를 적어내라고 할 땐 '박완서', 한 치의 고민 없이 대답해왔다. 불혹이 된 내가 늘 못 가본 길을 떠올릴 땐 그 길의 대로변엔, 아니 길의 최초 시작지점 이정표엔 늘 그 이름 석자가 있었기에 그분에게도 못 가본 길이 있을까...마땅히 가야했고 죽어도 가보고 싶었던 길을 선택했다고 느껴지는 그분이었기에 많이도 궁금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이 꽃보다 붉은 책이 몇 년 전에 헤어진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초조한 기다림이었기에 그 재회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언젠가 나도 현역작가로서 꼭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기에 첫사랑에 대한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을 무색케 하는 뜨거운 청춘소설을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연재작으로 만나보는 발칙한 상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터 였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지만 나는 그 재회의 기쁨만큼은 정성껏 서술하고 가슴으로 느낀 것들을 예를 다해 기억해 내고 싶다. 그래서 이럴 땐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온다. 화려한 문장이나 절절한 단어로 잘 구성된 글이 꼭 그 감동의 정도도 극대치였다고는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치하지만 의학이나 과학에서 사용되는 혈액, 체온, 눈물, 맥박등과 같은 객관적 검사치를 통한 결과로서 감동의 정도가 평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분명 환자로선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을 테니까. 이 작품은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비슷한 말과 근사한 수식을 아무리 찾아봐도 역시 사랑해 그것보다 더한 말이 필요 없는 고백처럼 나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낮의 더위가 염증이나 여름을 포기 하고 싶을 때 진한 몸보신의 엑기스라도 마신 기분, 나는 그 생명水에 대해 서술해보겠다.

작품은 크게 자연과 생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뭉근히 감지 할 수 있는 사유의 글과, 신문에 연재했던 '친절한 책읽기', 그리고 먼저 생을 달리한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전반에 저 깊은 밑바닥 어딘가에도 쉬지 않고 꿈틀거리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자각은 마치 고향의 땅속에서 무심코 버려진 씨앗이 한줌의 흙과 바람과 공기를 마시고 아주 천천히 싹을 틔우는 생명의 발아와도 같다고 할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어렵게 틔운 싹이 계속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마침내 책을 덮었을 때엔 기어코 흐드러진 꽃잎 위로 보석같은 열매가 오롯이 남겨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가슴에 맺히는 것이 恨 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가슴에도 맺히던 붉은 열매...누구나, 누구라도 각자의 가슴에 붉디 붉은 열매 하나쯤 자라날 토양은 있었나보다. 누가 심어 주었을까. 혹시 원래부터 자라날 씨앗이었건만 몰랐거나 모른 척 했던 것은 아닐까.

푸르게 토해내는 질긴 뿌리

많은 정신의학 연구에서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정원을 가꾸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생명에의 관심을 다시 쏟을 수 있고, 혹시 동반자가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에도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정원에는 일종의 불멸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지금이 아닌 다음 계절, 그 이듬해 봄 까지 죽지 않고 계속 살아 남을 것에 대한 기대와 자신이 돌 본 것이 자라남에 대한 기쁨과 보람, 그로 인한 삶의 감사등으로 스러져 가는 노년에 품위있는 노화를 선사한다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의 상당 부분에 자신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소설의 배경처럼 흘려 놓고 있었다. 흙과 씨앗의 생명력, 계절에 따라 미묘하게 움직이는 정원의 변화, 온갖 식물들의 행태등을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신문을 보는 하루의 일상적 일과처럼 담담하게 전해준다. 그리고 흙을 상대로 자유와 평화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 기원을 유년시절 고향의 앞마당과 추억이 깃든 살구나무로 찾아간다. 경기도 산골짜기 마을로 이사 간 이유를 어린 시절 고향과의 유사성에서 원형을 찾는다.

나는 흙을 밟으며 자라지도 않았고 실개천이 흐르는 마을에 살아보지도 못한 도시의 아파트 세대지만 한강변에 살아보았기에 사계절 시시각각 변하는 한강의 풍광을 조망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는 실감할 수 있었다. '물속을 노닐던 신비한 물고기가 잠시 그 아름다운 비늘을 드러내 보여준 그 짧은 순간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는 작가의 표현에 무릎을 탁치며 고개를 끄덕여 버린 것도 내가 바라본 한강과 다르지 않았음이다. 자주 이용하던 양평길도 마치 인문학 강의를 마주 앉아 듣는 것처럼 역사에서부터 사상, 문학적 배경까지 공시적, 통시적 시각을 편하게 담아내는 문장의 드라이브는 실제 한강변 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토록 깊은 사유와 통찰의 근원적 힘은 아마도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작가의 질긴 생명력이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작가가 기뻐하고 환희하듯 그를 통해 독자 역시 같은 힘을 느낀다면 생명의 힘은 얼마나 막강한 것일까.

붉은 기억의 열매

다수의 작품에서도 직접,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전쟁이나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애끓는 고통에 대한 기억은 이제 상실감을 초월해 치유에 대한 자긍의 단계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극심한 고통의 시간들을 끊임없이 견뎌온 그 세월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는 <남한산성> 이라는 작품을 기억할 때도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전쟁 속 피난당시 느꼈던 뼛속 추위와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이야기 하고,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말 할 때도 결국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서 같은 고통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하루키의 달리기를 보면서 그가 느꼈다는 '고통이 극에 달하면서 뭔가가 돌담을 뚫고 훌쩍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느낌' 즉, 나는 나이고 내가 아닌 것 같은 아주 조용한 경지를 맛보고 고통까지 사라진 기쁨을 자신의 기쁨처럼 완벽하게 공감하고 우리를 이해시키기 까지 한다.

척박한 땅에 질기게 뿌리내린 생명력은 무엇으로 열매 맺은 것일까. 그녀는 불타는 남대문이나 2002년 월드컵을 기억 할 때도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사회전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 하다가도 그 근원적이고도 성숙치 못한 우리의 자의식 밑바탕에 자신의 소심함과 비겁함을 곁들여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갈래머리 여학생일 때도, 4.19 현장을 바라보면서도 애국심이나 승리감, 우월감으로 피가 끓고 가슴이 울렁거린 적이 있었고 그렇게 살아온 시간동안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확인 하는 것이 이제 삶의 골인지점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오늘에서 이 비슷한 기억들을 어떻게 남겨 둘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답하고 있었다.

죽음을 초월해 보이는 성찰이 심원한 고백으로 느껴져 새삼 작가의 지나온 시간에 경건하고도 무연한 경외감이 들었다. 작가의 가슴에 피어난 붉은 열매는 상처로 묻혀질 봉인된 기억이 아닌 생명과 사랑으로 치유된 삶의 희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죽음과,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그를 뛰어 넘은 삶의 의지야 말로 작가가 맺어 놓은 열매이자 충만한 기쁨이 아니었을지.

그리움의 꽃잎 

나는 2008년도에 신문에 연재한 '친절한 책읽기'를 자신하게 기억한다. 그중 두어 개 이야기는 당시 읽었던 순간의 느낌은 물론이고 마음에 드는 문구를 보고 블로그에 적어 옮기기 까지 한 그날의 날씨까지 기억한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는 문장을 재차 확인하고 벅찬 반가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야말로 '강력한 정신한테 허약한 정신이 한바탕 휘둘리고 난' 독자로서 그렇다면 나는 분명 앞선 문장에서 '시'를 '박완서'로 바꾸어야 할듯하다. 시간이 지나도 가시에 찔린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뇌리에 남아 이렇듯 잊었던 감성을 다시 일깨워 주다니 새삼 고마움에 전율했다.

글의 후반부에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 작가, 박수근 화백에 대한 그리움은 마치 한껏 피었다가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는 심정이었다면 작가의 회고에 누가 될런지 모르겠다. 하얀 꽃이 눈처럼 흩날리며 감사의 향기를 퍼트리니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글이었다.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마 박완서 작가도 후배 문인들에게 더 진한 향기로 사랑을 베풀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 순간 작가는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다로 느껴졌다고 한다면 얼마간 무례한 발언일까. 작가에게서 지금 순간이 참 행복하다고 느껴졌고 그 기쁨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늘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우연히 그녀의 집에 초대받아 정원을 거니는 느낌, 또 우연히 빈집을 봐주는 행운이 찾아온 느낌...그리곤 그녀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전해받고 온 느낌.

나는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하게 글 쓰고 그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란다. 빨갱이 콤플렉스에 짓눌려 피하기만 하던 붉은 색이 아닌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원초적 붉음에 삶의 희열을 느끼고 그 감정을 그대로 말해주길 바란다. 그녀의 길이 누구에게는 못가본 길, 아름다운 길이 되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의 길이 되길 바란다. 그리곤 나 역시 아직 가보지 못한 길, 꼭 한번은 가 보고 싶은 길에 고개를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어쩌면 계속해서 그녀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처럼 나는 소망한다, 그녀의 행복을, 그리고 내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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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0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어오질 말던지,리뷰를 읽지를 말던지...
아웅,내가 살면서 책 살 돈이 없다는 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ㅠ.ㅠ

한사람 2010-09-02 07:1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이...
워낙 독서애호가 시니..그렇죠..ㅋㅋ

하지만 이 책은...소장가치도 있고..
작가란 이렇게 나이 들어야 해...이런 생각이 드네요^^
 
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대체로 죽은 사람은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죽은 사람은 용서하고 싶다. 아니, 용서 받을 수 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제외한다면 한 인간의 죽음은 사후 프리미엄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물며 종교적 신앙을 이유로 목숨을 잃는 것은 최후의 순간이 비록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이 숭고하다고 느껴진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순교자'라는 종교적 죽음보다 사실 '민주열사'나 '전사자'를 익숙하게 배출해왔다는 점에서 한 인간의 죽음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는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평가도 정치적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어떠한 변동이 있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였는지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대적 순명을 헤쳐 나온 우리들에게 '순교자'라는 아젠다는 그다지 매력적인 물음표로 선뜻 다가오지 않았었다.

올해 유난히도 한국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해 득세하고 있는 전쟁관련 영화나 문화 컨텐츠들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작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번 일방적인 '반공세대'였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획일적, 주입식의 교육이야 알고들 있는 폐해지만 구체적인 사건과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면 고정된 시각과 강요된 애국에 얼마나 머물러 있는지 특히 혼자만의 성찰을 요구하는 문학작품을 대할 때면 그만 얼굴이 달아 오른다. 더불어 문학에 있어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관련한 소재들은 결국 세상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진실을 질문하고 끝내 환기시킬 것이기에 이 또한 독서의 즐거움에 적잖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독자인 나로서는 선호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전쟁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배경으로 종교라는 부담스런 주제를 얹어 놓은 이 작품이 내 호기심을 이끌었을 리는 만무했다.

재미교포 작가 김은국의 『순교자』는 먼저 접한 지인들의 이른바 '강추'로 엉겁결에 떠밀려 받아든 작품이었다. 대부분 '기대이상'이라는 평과 '완성도'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었고 한국적인(?) 시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실 이러한 호평은 그냥 시간이 나서 맘 편하게 집어 들기에는 또 미안감이 없지 않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에 밀려 여름의 끝자락에 겨우 턱걸이 하는 심정으로 작품과 대적했다. 그리곤 반신반의 하며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선택한 만큼 그 결과는 참 뿌듯했다. 한국계 최초의 노벨문학상 후보가 아니라 실제로 수상을 하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학계와 문단의 전문가들이 세계문학의 위대한 성과들을 소개하는「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테두리 안에 위치하게 된 배경에도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평양의 종소리

소설의 시작은 전쟁의 시작과 함께였다. 지금으로 보아도 지식인층에 속하는 대학강사였던 나(이대위)는 육군본부 정치정보국 대위라는 고위직에 편제 되면서 유엔군이 북한 수도 평양을 점령함에 따라 평양으로 파견대 본부를 옮기게 된다. 그 후 소설의 배경은 폐허로 회색도시가 된 평양이 주 무대가 된다. 주인공이 바라보고 오가는 길엔 언제나 쓰러져 가는 교회의 십자가, 시체처럼 솟아있는 종루와 함께 휑뎅그레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 위로 흩날리는 눈가루는 더할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를 자아낸다. 시종일관 화자의 눈에 비친 이 풍경은 이국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작품의 배경으로 각인되며 진실을 찾아가는 내면의 동선을 유도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내게 있어 평양은 어찌되었건 38.5도를 기점으로 북측에 위치하는 북한의 도시였기에 북쪽의 도시, 북한의 사람들, 북한의 종교인들은 모두 한결 같이 공산주의자일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오류를 수정할 길 없었던 고착된 도시이다. (우리로선)작품의 배경이 (서울, 혹은 남한이 아니고)평양이었다는 사실, 주인공은 전쟁이 실행되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가 아닌 좀 더 바깥에서 그 현장을 내려보는 듯한 관점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 사건의 발단과 경과, 결과가 주로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보고받음으로써 서사가 구성되는 방식 등은 이 작품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인이 되었고 끝까지 동요하지 않는 주인공의 중립적 시선 역시 독자로 하여금 냉정한 판단을 잃지 않게 하는 주도면밀하고 촘촘한 작품이었다. 이 부분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과 종교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루면서 될 수 있으면 많은 부분 작가의 개입 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려한 작가의 의도로 읽혀졌으며, 그 결과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이고도 특수한 사건을 전 인류의 보편적 진리와 결부시켜 오랫동안 주목받는 세계문학의 반열에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그 완성도와 성과가 확실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진실게임, 그후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누구나 가져보았고 가질만한 질문이 결국 대답으로 자리하는 어찌 보면 불친절한 매력을 지닌 작품인 듯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작품의 시작과 동시에 모여들던 한 지점에서 종착역에 이르면 어느덧 위치이동이 불가피 했음을 깨닫게 되는 조금은 언짢은 소설이기도 하다.

전쟁 직전 평양에서 공산군 비밀경찰에 체포된 열네 명의 목사 중 열두 명은 총살당했고, 두 명의 목사는 살아남았다. 중요한 건 모두 죽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즉, 총살당한 비극보다는 살아남은 의혹에 포커스가 맞춰 지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실을 좇아 가게 된다. 이 대위와 같은 소속의 선임격인 장 대령은 이 사건을 국가와 조직을 앞세운 대의명분과 여론형성에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지금으로 본다면 자신이 처한 임기 중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공무원이 일단 발생한 사건이기에 어떻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론이 매듭지어 지길 바라는 심정일 것이다. 장 대령은 자신이 바라는 결과대로의 진실을 얻으려 하고 진상파악의 임무를 위해 일선상에 이 대위를 배치한다. 희생당한 열 두명의 목사 중 한명인 박 목사의 아들이면서 이 대위와 친구인 박 군은 보다 개인적인 진실을 찾고자 신목사와 대질한다. 아들을 무신론자라 업신여기고 아들에게 광신도로 인식된 박 목사가 최후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신에 대한 허무로 인간의 나약함을 느꼈는지 박군은 아버지의 인간적인 최후를 그 진실로 기대하게 된다. 한편 신목사와 친구이면서 공산당 제보자라는 죄책감을 안고 있던 고 군목은 신 목사에게 총살당한 열 두명의 목사가 순교자가 아니라는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기독교인들의 거짓자존을 폭로하라고 한다.

여기서 사건의 내막과 진상,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이 대위는 열두 명의 목사가 순교자인지의 여부, 박 목사의 최후의 모습, 신목사의 증언의 향방 보다 더 선행하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당신의 신은 사람들의 고난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의 여부-을 던짐으로써 신목사의 인간적인 고뇌와 가장 내면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이미 발생한 하나의 사실에 알고자 하는 진실은 여러 개가 중첩되면서 작품 초반은 신목사가 왜 살아 남았는지가 아니라 왜 진실을 말해야 하는지(혹은 왜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실게임이 펼쳐진다.

우리는 여기서 각자 처한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극명했던 한 가지 사실이 여러 개의 층위로 쪼개져 개인에 요구된 진실로 분리될 수 있음을 목격한다. 국군 장 대령에게는 목사들 모두가 빨갱이 손에 죽었다는 비인간적 잔혹행위가 중요했고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 짓는 요인으로서의 진실만이 의미있음을 증명한다. 고 군목에게는 신 목사가 어떤 부끄러운 짓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해명하여 목사로서의 직업적 권위와 인간적 양심을 세우고자 했기에 종교인로서의 자격을 가늠하는 진실이 가장 중요했음을 암시한다. 박 군에게는 목사인 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인간적인 고뇌를 가진 동일한 인간인지가 보다 중요했기에 그에게는 부친의 인간성을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서만 진실이 의미 있었다. 이 대위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마술사의 연기를 바라보며 막연하게 추측이나 하고 있는 무력한 구경꾼 같다는 느낌'이 자신을 지배했기에 신이 있는가, 있다면 그는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에 대한 신의 역할과 종교의 실존적 의미를 대답하는 종교인의 양심적 대답만을 진실로 추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된 진실 그 무엇과도 상이한 반응으로서 신 목사는 침묵에서 거짓으로, 거짓에서 거짓고백으로, 그리고 끝내 거짓의 정당화에서 진실화로 자신만의 진실을 보여주며 진실게임을 회피함으로써 진실한 승자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공산주의자들의 박해에 맞선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를 기리기 위한 합동추도예배가 개최된 후 장 대령, 고 군목, 박군의 심경변화와 그 후 전개되는 그들의 행보는 얼마간 신목사의 승리를 예감케 하는 반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평양을 사수 하지 않으려던 국군의 의도를 알고 끝까지 신 목사를 남한으로 피신시키려는 장 대령, 고 군목, 이 대위의 의지 역시 종교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존경과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신 목사를 의지하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단서라 할 것이다. 결국 신 목사는 왜 진실을 찾아야 하는가 보다는 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은 이미 질문함과 동시에 답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 스스로의 희망을 바라보게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종교인에게는 그가 보호해야 할 교회와 교회의 명예가 있고 군인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명분이 있다는 장 대령의 명분론보다는 처참하게 실존하는 전쟁에 놓인 피해자들의 가난과 굶주림, 추위와 두려움, 절망을 견뎌내는 방안으로서의 희망을 뺏지 않기 위해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신목사의 보다 현실적인 실리론이 정작 종교인으로부터 발화되었다는 점은 이 작품의 아이러니이자 반전요소일 것이다. 이는 전쟁의 중심에 서있는 군인이나 신앙의 중심에 위치한 종교인 이전에 생명의 보존에 대면한 인간으로서의 최선의 선택이 아닌 대안적 선택으로서의 종교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왜 전쟁소설이나 종교소설로 자리하지 않고 세계문학의 대열에서 박수 받을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제의식이었다.

최선의 답안이 아닌 대안으로서의 선택을 이야기 하고 있기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살아갈 능력 보다는 살아내는 용기가 더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고나 할까. 이는 옳고 그름을 밝혀내는 능력보다는 희망으로 삶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할 용기를 강조한다고 생각되었다. 신 목사에게는 밝히고 나서 절망을 안겨줄 진실 보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할 현실이 더 중요했다. 열 두명의 목사가 순교자가 아니라고 증언 함으로써 진실의 수호자가 되기 보다는 그들을 순교자라 위증하면서 진실을 희망으로 끌어안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실 대신 택한 희망의 옳고 그른 여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자 개개인의 십자가로서 평생 지녀야 할 숙제로 남겨진다. 

희망의 종소리

작품의 후반부에 신 목사가 이대위에게 '평생 신을 찾아 헤메었다'는 고백과 '나는 나의 십자가를 당신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으니 우리는 죽을 때까지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대답의 진실은 순교자 처형의 진실 그 이상으로 눈물겨웠고 기독교인이 아닌 나도 한 인간으로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종교나 신에 대한 필요성 보다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야 한다는 고통과 마주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사형선고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내내 냉정함을 잃지 않던 이 대위의 울음이 무겁도록 가슴을 짓누르는 대목이었다.

순교자는 결국 누구 였을까. 외향적으로는 열 두명이 순교자였고, 내면적으로는 신목사가 순교자 였겠지만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순교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특정한 종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살아갈 희망과 믿음을 저버려야 한다면 生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피 비린내와 참혹한 박해 없이도 전쟁과 종교와 인간에 대해 근원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는 내실있는 시간이었다. 비록 작가는 고인이 되었지만 이미 36년 전에 종교인으로서 전쟁의 참상을 겪은 증언자로서 작가적 역량을 이토록 유감없이 발휘한 그의 업적이 오랫동안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문득 작품 속 평양 거리가 떠오른다. 이 대위는 소설 시작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음산한 교회종소리에 가슴이 폐허가 되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비로소 난민촌에서 들려오는 피난민의 고향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종소리가 진실이었다면 고향의 노래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 내 마음 깊은 어딘가에서도 희망의 종소리가 깊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평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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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1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헤르타 뮐러를 떠올렸었거든요~
근데,우리나라 작가 거네요~

리뷰가 너무 좋아 호기심 발동,장바구니에 넣습니다.

한사람 2010-08-15 19: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주로 활동을 미국에서 하신 분이더군요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거여요^^

감사합니다..


cyrus 2010-08-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안녕하세요~^^~
방금 서재에 들어가보니깐 한사람님이 남기신 댓글이 두개나 있더라구요+_+
썰렁한 저의 서재를 찾아오신 것에 감사합니다ㅠㅠ
열린책들 카페에서의 인연이 여기서도 이어질줄이야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사람님 서재 즐겨찾기해놨어요^^ 자주 들릴께요ㅎㅎ
<순교자> 리뷰 잘 읽었습니다^^ㅋ 꼭 적립금에 당첨되셨으면 합니다~

한사람 2010-08-29 17:12   좋아요 0 | URL

닉네임이 어디서 많이 본듯 해서요 ㅋㅋ
썰렁한 열린책 카페에서 제 글에 댓글 달아주셨잖아요^^
전 세계문학쪽은 학창시절에 들쳐보다가...요즘은 거의
신간 위주로만 읽어요..cyrus 님은 고전쪽에 다양한 독서로
사유의 힘을 기르신것 같았어요..반가워요 !!!!!!!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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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에 앞서

나는 이 책을 예판으로 만났기에 벌써 책을 덮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때 느꼈던 개인적인 감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작가의 전작인 『개밥바라기 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그 여운도 가시지 않았었지만 대대적인 광고나 황석영 작가라는 이름 석자의 마케팅 파워를 제쳐 두고서라도 나는 이미『강남몽』을 꼭 읽어야 할 세대라 각오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작품의 주력 타겟으로 이미 정해졌다는 사회적 요구와 암묵적 인식이 한몫 했음을 부인치 않겠다. 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의 개발사와 같이 하는 나의 유소년기와 오늘날 그토록 한 많은 강남夢으로 탄생한 강남 아파트에서 7,80년대를 살아왔고 부동산 버블의 핵심요인인 학군에서도 강남의 8학군을 졸업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강남에서 사회생활을 했으니 마치 백화점이 무너지는 현장을 눈앞에서 목도한 목격자라도 된 듯한 증인으로서 이 작품을 숙제처럼 집어 들 수 밖에 없었던 터였다. 그렇게 작가는『강남몽』앞으로 나의 출석을 요구하였다는 생각이 들자 주사도 먼저 맞는 것이 낫겠다싶어 자진 출두를 하였던 것 같다.

책을 덮고는 마치 나의 강남주거史를 돌이켜 본 듯한 뿌듯함도 있었고, 그 시절 부모님,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강남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마냥 뛰어 놀던 옛날 아파트도 애틋하게 떠올랐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강남에 살았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엔 하나의 이력으로 인식되기도 했었기에 그쪽 속사정은 다 알고 있지 하는 (한번이라도 부러워 했을 사람들을 향한)우월감이나 초등학교부터, 여중고 시절을 강남학교에서 지내온 덕에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도 우리끼리 출신학교를 거슬러 유치하게 오리지널을 따져가며 패거리를 만들곤 했던 포스트 강남증후군(?)에 대한 웃음 섞인 그리움 같은 것도 슬며시 피어올랐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많은 것을 뒤돌아 보았다.

1995년 당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바로 전날 법원에 일이 있어 백화점 지하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도너츠를 먹으며 시간을 기다리던 내가 다음날 같은 시간에 논현동 회사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던 순간 붕괴소식을 듣고는 집에 돌아가 멍하니 뉴스 화면만 바라보던 그날 밤도 기억났고, 또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잊고 살아왔던 우리들의 오늘을 반추해보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의 대형사고 참사가 이어진 후 유학 갔다온 직장 동료에게 한국에선 백화점에 들른 후 지하철을 타고 성수대교를 건너면 꼭 한번은 죽는다는 뼈있는 농담을 외국친구들 한테 들었다며 고개 들고 다니기 창피했다는 이야기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고백 하나, 타고난 바이러스

90년대 말 IMF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 세대의 20대는 오렌지족과 압구정동이라는 대명사로 강남을 소비하고 성숙하지 못했던 국력에 대한 패배감을 개인적인 욕망으로 대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강남의 탄생과 생성의 시기가 같은 1970년 즈음에 태어난 내 세대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한반에 70명이나 되던 오전 오후반을 거쳐 80년대 컬러시대와 전두환 정권의 4S(Speed, Screen, Sports, Sex)정책에 힘입어 프로야구나 비디오 영화를 통해 취미에 눈을 뜨게 되었고, 겉으로는 두발 및 복장 자율화라는 공교육의 허울 속에서도 반공과 주입식, 획일적 교육의 억압이라는 이중성을 가장 혼란스럽게 체험한 과도기 세대였었다. 평균 대입 경쟁률이 4:1이라 한 분단(8명)에 두 명만 대학을 가는 현실이긴 했지만 청년백수가 이십대의 상징인 오늘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 때의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은 아니었고 좋은 일자리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쪽에서 부르짖던 운동권 친구들의 정의로와 보이던 모습에 동참하지 못했던 대다수의 소심한 우리 세대가 미덕으로 강요당한 것은 언제나 남들 하는 만큼만인 남들과 다르지 않음이었다. 학급회의 때도 건의사항에 손을 드는 것은 밉상을 부르는 일이라 인식되어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은 결코 다양성이라는 격려와 칭찬으로 조명받기 어려운 현실이었던 것이다.

마침 강남땅도 우리의 아노미적 성장기 시절에 불철주야 포크레인으로 아파트 숲을 창조하게 되었고 우리 세대가 국가적 패배감과 무늬만 자유로 보였던 이중성을 그 뿌리로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었을 때엔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되는 한 두개의 스펙만으로도 한 계단 위를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우리 부모님들은 바로 법적인 울타리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기득권으로 획득한 부동산이라는 재산의 강남夢을 그 결과로서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신 분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부모님의 재산을 무위로 받아 먹은 마지막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 하는 만큼은 꼭 따라잡아야 했던 우리 세대는 바로 다음 세대보다 부동산에 대한 불신과 증오만큼이나 그 믿음이 견고하다는 생각이다. 자라온 환경적인 영향으로 부동산을 추종하는 세대가 되었다고 합리화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강남을 증오하면서 그리워하는 특유의 이중성의 기원은 내가 아닌 남이 기준이 되어야 했던 그 시절 교육에 있다고 자책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었던 우리 시대의 꿈은 그래도 낭만적이었다고 같은 세대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궁극에는 결국 2010년 오늘까지 살아온 결과로 아파트(혹시라도 강남이면 다홍치마이고)를 한 채 소유하고 있느 냐의 여부가 앞으로의 인생을 판가름 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는 것에 씁쓸한 공감을 느끼며 강남에의 애증을 안주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님 세대의 순수했을지 모를 강남夢을 더 위악적으로 계승해온 후발 주자(우리를 포함한)들 덕에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도 많은 발전을 하였건만 강남에 대한 집착은 더 뿌리 깊고 강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세대들 중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무조건으로 받은 전세금(전세금의 규모에 따라 지역이 달라졌지만)을 가지고 되건 안되건 꾸준히 분양권에 접근해왔고 또 운 좋게 분양권을 획득한 사람들은 자고나면 하루 아침에 억 단위가 바뀌는 신기한 강남夢을 꾼 사람들도 많다. 신기한 강남夢은 무슨 전염병과도 같아 너도나도 꾸기만 하면 보물이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꼭 강남이 아니더라도 아파트라면 무리한 대출로 일단 집문서를 확보하는 것으로 남 따라하기의 전형을 집요하게 실천해왔다.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은 옷집에 가서도 남들과 다른 디자인 보다 남들이 제일 많이 선택하는 스타일의 옷을 고르는 것이 한결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이미 태어 날때부터 강남夢 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항체는 커녕 바이러스를 지니고 세상에 등장했던 것은 아닐까. 


고백 두울, 밥은 굶어도 집은 강남으로

시간은 흘러『강남몽』도 내게 멋진 교훈으로 자리 잡으려 할 즈음 아이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로부터 자주 볼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뉴스에선 연일 부동산 경기침체며 집값 하락과 입주 거부현상, 건설사 위기에 따른 심각한 실태를 자세히 조명하고 있었다. 곧이어 '강남'의 한 아파트 4000세대의 경우 세대 대부분은 떨어지는 집값과 대출금, 이자 등에 허덕이고 있으며 '비싼 아파트'에 살지만 '생활은 어려운', 말 그대로 '하우스 푸어(House Poor)' 신세로 전락했다는 경제관련 칼럼 메일을 받았다. 언니 역시 무리한 대출로 아파트를 구입한 처지라 네 식구 살림에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집을 내놓았으나 오다가다 물어보면 파리만 날리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3년 전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2억이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했으니 어찌보면 집문서 하나 들고 월세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 오히려 전세신세를 면치 못하더라도 맘 하나는 편하지 싶은 내가 부러울 지경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강남夢은 장밋빛 행복을 약속할 꿈이 아니라 미래를 덮어 씌우는 거대한 암흑의 덫이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실로 씁쓸하고 허탈한 꿈이 아닐 수 없었다.

충격이 컸다. 한때는 서로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했던 이웃이어서가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세대마다 저마다의 현실에 처한 절실한 고민들이 존재 할 것이고 그 고민들은 어느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덜하고 더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의 사연인 것도 알고 있다. 사실 우리 세대는 미모를 무기로 회장님의 세컨드가 된 박선녀나, 철저하게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던 김진 회장, 초창기 부동산 수혜자인 한강개발의 심남수와 박기섭을 대 놓고 욕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생각한다. 그것은 강남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몇몇 고급의 아파트를 지나갈 때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패턴, 그들이 자주 들러 쇼핑한다는 백화점과 명품샵, 눈부신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는 고급 외제 승용차들을 목격할 때 한번쯤은 저들이 오로지 실력과 노력만으로 획득한 자리가 아닌 운 좋게 부동산이나 주식 아니면 부모덕으로 쌓아 올린 외양적인 성공의 모습일 뿐이라 그들을 깍아 내리면서도 속으로는 늘 부러운 마음을 살짝 덮어 버리곤 했던 우리의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 나보다 먼저 입성한 사람들을 부럽지 않은 척 했기에, 드디어 내가 입성하게 되었을 때 겉으로 좋은 척 하지 않았기에, 지금 와 그것은 헛된 꿈이었다고 말할 용기도 말하고 싶지도 않기에 아직은 괜찮은 척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옳은 것이라 말은 못하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고 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나도 한번' 이라는 생각에 왜 강남夢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외제차가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오면 주유소 아르바이트 직원들도 허리 굽히는 각도가 틀려지는 한국의 현실에선 일단 할 수만 있다면 강남에 입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들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토록 어렵사리 입성한 강남에서 남들에게 보이는 성공에선 성공했으나 정작 실제 행복이라는 성공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니 그동안 뒷짐지고 구경하는 입장인 척한 나로서는 고소하다고 해야 할 지 동정해야 할 지 사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과는 별개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열심히 가꾸었던 강남夢이 지금에 와 이토록 서글픈 우리들의 자화상이 되었다는 현실 자체가 너무나도 화가 나고 억울하고 무망하다. 불타고 있는 심정에 기름을 붓는 꼴인지 모르겠으나 강남夢을 꾼 덕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강남몽』의 이차 타켓으로 부전승의 자격을 이미 획득한 처지이니 출석 요구서와도 같은 이 작품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 세엣, to be continued

강남에서도 모두 잘 살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빈부의 격차와 학력격차는 엄연히 존재하였고 어쩌면 차라리 같은 강남에 살지 않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에서 더 자유로울 수도 있었다. 95년 당시 삼풍 백화점은 강남에 있긴 하였으나 젊은 세대가 자주 드나들던 갤러리아 백화점(당시 압구정동 한양쇼핑센터)이나 롯데백화점(당시 역삼동 그랜드 백화점)과는 사뭇 분위가 달라 주로 샤넬풍의 사모님(박선녀 부류의)들이 자주 들르는 백화점이었다. 이미 강남중에서도 더 유달리 고위 특수계층이었던 그들이 자주 방문하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면 그 위치를 제대로 공략한 당시 이준 회장(김진 회장)의 탁월한 안목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다른 백화점과는 달리 중앙이 시원하게 뚫린 중정 구조로 매장수가 많지도 않고 중년 대상의 고급 브랜드가 많아 언제나 붐비는 백화점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수만을 위한 공간이었기에 그나마 다른 백화점이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 생각하면 강남의 백화점 들 중 꼭 하나가 무너져야 한다면(?) 애석하게도 암묵적으로 마땅히 지목되어야 할 백화점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백화점이 무너짐과 동시에 같이 묻혀 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묻혀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히 묻혀 지는 것으로 끝나 버린 것일까. 만약 붕괴현장에서도 죽지 않고살아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다시는 꾸지 말아야 할 강남夢 이었을까.

우선 실제로 백화점에 묻혀버린 박선녀의 꿈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면면히 이어지는 꿈이라 생각한다. 박선녀의 서울 상경 이야기는 이미 강남의 룸살롱에서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진 어느 유명한 여배우의 경우처럼 잘 풀릴 경우 대선에 도전하는 정치인의 내조여왕으로 까지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운좋은 선망적 꿈의 기회로 더 다양화 되고 있는 듯하다. 김진 회장의 경우는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떠나 그가 걸어온 길에 우리 현대사가 질곡히 새겨져 있는 터라 나라의 운명에 따른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경우는 많지 않을지 모르나 정치권력을 이용해 자손 삼대가 누릴 만큼의 부를 축적하는 양상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아파트 건설회사 사장으로 암시되는 박기섭이나 심남수의 경우는 법제가 형성되기 전 초기 기득권을 대량으로 획득한 운 좋은 경우로서 오늘날에도 강남불패 신화처럼 아파트 분양권이 하나의 로또처럼 인식되는 한탕식 꿈을 계속 대량생산해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홍양태나 강은촌처럼 주먹계로 대표되는 조직폭력배들은 국가의 이권사업이나 개발사업 등에서 드러나지 않게 정치와 경제권력 사이를 오가며 불법 브로커의 역할로서 더 견고하고 체계적으로 그 꿈이 변형된 형태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에 비해 임정아의 부모로 등장하는 가장 하층 부류의 집 없는 서민격인 임판수와 김점순의 경우는 그들의 딸이 붕괴현장에서 기적같이 생존 하는 것으로 살아서 다시 행복에의 꿈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소박한 꿈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강남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꿈은 비록 백화점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들의 꿈도 같이 묻혀지는 것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어쩌면 요술쟁이 지니의 램프 속으로 잠시들 숨어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기에 마법이 다시 살아나면 언제든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덕적이든 불법적이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꿈은 여기까지 이어졌다.

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아직도 행복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몇몇 그들이 꾼 꿈의 결과가 비록 막대한 사회적 피해로 도출되었을 지라도 꿈을 꾸었던 개인만큼은 각자 자신의 행복을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남夢의 꿈을 꾼 사람들의 공통점은 꿈 이전의 도덕이나 준법같은 것을 묻기 전에 모두 현재보다는 더 높이 한 계단 씩 올라가려 했다는 것에 있다. 강남이 라는 곳이 저 높은 곳에 위치했으니 당연한 결과 이겠지만 결국 그 높은 곳에서 추락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며 올라 간 것이었을까. 높이 올라갔을수록 추락하는 높이와 그 고통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미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올라 가 있는 사람들은 추락에의 안전장치가 너무 견고해 절대로 다시는 내려올 리가 없어 보이고 꼭 나중에 끝 무렵에 억지로 막차를 탄 사람들의 경우가 발버둥 치며 추락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어쩐지 꿈을 꾼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애초부터 부실했던 강남夢을 원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다음호에 계속 이어질 강남夢을 꾸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니 강남夢을 꾸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인가.

마지막 참회, 리모델링으로 리턴

꿈도 리모델링 할 수 있을까.

7,80년대 강남의 대단위 아파트들은 2000년대 들어와 고가의 건축자재와 첨단의 인테리어로 재건축되었다. 그때보다 두세 배 높이 치솟은 아파트를 볼 때면 적어도 당분간은 붕괴될 꿈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고가로 분양된 고급의 아파트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의 가슴에 버티던 꿈 역시 그 옛날 강남夢과 다르지 않아 보였고 오히려 욕망의 높이는 더 아득해보였다. 묻혀 지지도 묻어 버리지도 못할 꿈이었기에 몰래 가슴에 새기고 이어나갔던 것일까. '꿈'이라는 단어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공존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었다. 강남夢은 과거의 꿈이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져온 현재진행형의 꿈이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 되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쯤에서 고백을 마치고 참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자진이든 요구에 의해서건 우연적인 것이든 여기 모인 우리 세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야 할 것만 같다. 나는 그것이 자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해야만 할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우리세대가 실감하던 국가적 패배감은 오늘날 세대적 패배감으로 공감대를 위치이동하면서 사실상 역전의 기회를 강남夢으로 삼으려 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더 이상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막다른 골목이라는 위기감은 작가가 짚어 주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이다. 아닌 척 뒤돌아서 가슴을 부여잡기 보다 당당히 가슴속에서 꺼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축 하는 모습이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참회해 본다.

그런데 막상 리모델링을 하려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고 어제까지 꿈이 같다는 '경쟁자' 였다가 오늘부터 같은 꿈을 꾸는 '동반자'가 되려하니 여간 쑥쓰러운 게 아니다. 우선 리모델링 사업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동안 강남夢을 '수단'이나 '목표'로 인식해왔던 관행에서 '가치'혹은 '열정'의 개념으로 과감한 전환이 필요함을 대전제로 하기로 한다. 우리 세대가 주로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집착하며 남에게 근사하게 보이는 겉모습으로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려 했으니 분명 수단으로서의 강남夢이었다. 또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성공에의 만족감을 얻었으니 목표로서의 강남夢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의 꿈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강요되어 남에게 뒤쳐져서는 안 되는 아이들로, 정글시대에서 살아남기라는 꿈보다 해몽이 더 처절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하루종일 시발택시를 대절해 좋은 땅을 물색하던 그들의 도전정신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지 않은가. 알몸뚱이 하나로 강남에 상경하여 타관객지에서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버텨내었던 그들의 열정만은 다시 불태워 보고 싶지 않은가.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던 그들의 양심만은 기억할만하지 않은가. 그저 마음하나 편하게 살고 싶었던 그들의 소박한 꿈만큼은 소중하게 담고 싶지 않은가.

어렸을 적 장독대가 있던 뒤뜰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눈앞에서 어른거린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마음에 너무 높지도 않고 꼭 내가 두 손을 뻗어 올려 잡을 수 있을 만큼만 높아 보였던 나비의 나풀거림이 너무나 생생했다. 몇 번이나 뒤좇아가 잡으려 했지만 애꿎은 손뼉소리만 찰랑거리던 봄날이었나 보다. 그렇다. 우리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재발견 해야 할 것이다. 뿌리가 깊거나 꼭꼭 감추어져 있다손 치더라도 바보같은 꿈이 아니라면 다시 찾아 내어 보석같이 세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봄날처럼 꿈을 꾸겠다. 다시 돌아와 똑똑한 꿈을 그린 후 불신이라는 동반자를 배신하여 떳떳하고 튼튼하게 가꾸고 싶다. 혹시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얼마든지 다음 세대가 도전할 만한 가치있는 꿈으로 남기고 싶다. 그들은 그들의 강남夢을 꾸었지만 우리의 강남夢은 우리가 꾸자. 지금 우리의 꿈이 다음 세대의 예지몽이 될 지 모른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향한 수단과 방법을 물려주었지만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시선에 진실할 가치와 열정을 전해주자. 이렇게 약속하자고 하는 것 자체가 꿈만큼이나 벅찬 오늘, 꿈을 다시 만드는 시간을 다짐한다. 지난 강남夢에 숨겨진 가능성과 여기 모인 동세대인들의 약속과 믿음을 더해 나는 오늘밤 강남夢을 다시 한번 제대로 꾸어 보겠다. 혹시나 꿈속에서 그대 마주치게 된다면 이번엔 손 내밀어 웃어보겠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같은 꿈이라 더욱 반갑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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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동아에서 이 작품에 표절혐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더군요.

삼풍백화점과 관련된 이야기는 생각할 여지를 주네요. 물론 주인장의 의도는 인지했지만 말이죠.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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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만남, 그 후  

사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일본인을 알게 된 것은『미식견문록』이 먼저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맛나는 음식여행에 관한 에세이쯤으로 생각하고 경쾌하게 집어 들었지만 다 덮고 나서 음식자체 라기 보다는 음식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맛본 것으로 느껴졌다. 책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던 '러시아 문화'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나 음식을 소재로 하면서도 밑바탕에 평화를 기원하는 바램을 느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것의 모태가 된 그녀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교육받았다던 프라하에서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며 여섯 끼를 먹었다는 그녀의 끼니마다의 식사메뉴는 과연 그 시절이 60년대인가 싶을 정도로 호화생활과 고급메뉴였기 때문이다. 『미식견문록』의 이야기는 러시아속담에서부터 시작해 러시아 술 보드카나 케비어에 관한 사회경제적 배경, 러시아에 감자가 보급된 역사, 프라하 시절 친구들과 사먹었다던 터키사탕, 러시아 친구가 건네준 할바등에 관한 추억을 지나 그녀가 읽었다는 책, 동료나 친척들과 생긴 에피소드를 회상할 때에도 늘 러시아는 근원적인 배경으로 뚜렷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20년간 러시아 동시 통역사를 하면서 200번이나 러시아를 왔다 갔다 했다는 사실을 염두 해 두고서라도, 거의 러시아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사고방식과 통찰력의 기원은 일본을 넘어선 그 어딘가로 느껴졌기에 색다른 인생길을 걸어온 그녀의 실제 이야기가 궁금했던 터였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요네하라 마리'라는 러시아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일본인으로서 자신의 독특한 체험을 당시 만났던 동구권 유럽친구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으로 믿었다. '프라하'라는 다분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배경과 '소녀시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미식견문록』을 통해 더욱 촉발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7,80년대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낸 내가 기억하는 당시 소련과 동독, 동구권 유럽은 거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에서의 칼같은 피겨스케이팅이나 절도있는 동작의 체조선수들의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얼음같은 이미지가 전부였다. 체조요정 코마네치나 드라큘라의 나라이기보다는 김일성을 추종했다는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으로 인식되어 버린 루마니아나 주로 구기 종목에서 우리보다 머리하나는 더 커보였던 장신선수들로 우리선수들이 무릎을 꿇기도 했던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던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무시무시하던 공산주의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국가들이 아니었다.

1989년 대학입학과 동시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성인이 된 후 유럽공산주의의 몰락, 소련의 붕괴도 한참이나 지난 오늘날엔 동유럽여행도 낭만적인 휴가상품으로 치부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로서 무의식중에 남아있을 적대적 감정은 동유럽 소녀들의 이야기를 향한 호기심보다 더 오래된 객관적 거리를 두려했음이다. 그렇게 호기심 반 거리감 반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해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이 작품『프라하의 소녀시대』를 만나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곤,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덮고 나서는 그제서야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참 귀중한 기록을 남겨준 분을 잃었구나'라는 뒤늦은 애석함을 '그래도 살아 생전에 남겨주어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더 늦은 고마움으로 스스로를 달래어야 했었다. 진실로 더 할 수 없이 귀중하다고 자각했다. 더불어 내가 알고 있었던 혹은 안다고 생각하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과 그 국적을 가진 우리와 다르지 않던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애국심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고자 했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간과하고 살아왔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그녀가 사망한 이후였고 벌써 3,4년이 지났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8,90년대에 활발하게 러시아 동시 통역사라는 직업으로 이미 사회적 성공을 거둔 유명인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러시아라는 선택은 그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고 당시 일본공산당 간부였었던 아버지의 행보를 따르는 것으로 시작된 운명이었다. 그녀는 1960년에서 1964년까지(아홉살에서 열네살까지) 5년간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외교관들, 공산당 간부의 자제를 위해 소련 대사관이 운영했던 국제학교)를 다녔다. 일본 내에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터라 그녀의 아버지가 프라하에 본부를 둔 국제 공산주의 운동 이론지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에 일본 공산당을 대표한 편집위원이었다는 사실도 무슨 빨치산의 후손을 만나는 것처럼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1995년 일본 방송사의 도움으로 소비에트 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세 친구를 찾아 나선 것이 계기가 되어『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집필했다고 한다. 그 시절 친구들인 그리스 출신의 리챠, 루마니아 출신의 아냐,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야스나를 찾아가 만나는 과정이 책의 각 챕터 후반부를 장식한다. 마치 우리로 본다면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유명인사가 그 옛날 시골마을에서의 첫사랑이나 소꿉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는 눈물나는 여정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60년대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고 50개국에서 모인 다국적의 외국 소녀들이 머나먼 타국 프라하라는 도시의 어느 학교에 모여 모국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가지고 세계 다른 지역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울고 웃고 화내고 즐기며, 그들만의 소녀시대를 보내었다는 것은 굉장한 특수상황의 흔치 않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지금의 프라하도 멀기만 한 내게 어쩌면 그녀가 제시한 사진 몇 장이라도 없었다면 혹시 그냥 소설 속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세 명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원제가 '거짓말쟁이 아냐의 진홍색ㆍ眞紅色 진실' 인 것을 보면 세 명 중 애국심이 남달랐던 루마니아 출신의 아냐를 통해(아냐를 찾아가며 생각을 펼치는 과정이 다른 친구들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저널리즘 적이기에)아마도 자신의 조국인 일본인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주려 한 것은 아닐까 싶었고 세 명의 친구에 비해선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데올로기나 이념부분에선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녀만의 강대국 특유의 우월감을 여러 차례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이야기 하고자 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에 관한 통찰보다는 그녀들과 같은 소녀시대를 지내온 한 인간으로서 세 친구들에게서 느낀 '소녀적 감수성'과 그를 통해 그녀들의 인생에 밑거름이 된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그녀들이 나눈 우정속에서 자라난 '자아의 성장'에 보다 주목하고 싶었다. 30년이 지난 후에 단순히 옛 친구에 대한 향수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그녀가 친구들을 찾아 간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러시아 문화를 주고 받는 역할로 살아온 그녀가 일본인이 아닌 전 세계를 향해서라면 끈질기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답을 얻고 싶었다.

자유를 향한 푸른 안테나

그리스 공산당 대표로서 프라하로 망명한 아버지를 둔 리챠는 개방적인 어머니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오빠, 핸섬한 외삼촌을 둔 말괄량이 소녀였다. 수학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일찍 '성'에 눈을 뜬 리챠는 스포츠 만능에, 영화광에 배우가 꿈인 외향적 성격의 친구였다. 한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쨍하고 깨질듯이 눈부신 조국 그리스의 하늘을 늘 자랑스러워했던 리챠의 감수성은 훗날 그 하늘 만큼이나 넓고 깊은 포용성으로 발전해 내적인 성장을 이룬 듯하다. 예상 밖의 진로와 이어지는 불운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았던 리챠의 마음 한구석엔 늘 고향의 하늘을 향한 자유의지가 꼿꼿한 안테나 처럼 푸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에서는 특권계층으로 인식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노동자 출신의 남성과 결혼을 하였고, 학비가 무료인 사회주의 체제 덕에 교육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소련군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많은 기회를 잃었던 아버지이지만 공산주의라는 정체성만큼은 잃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를 떳떳하게 생각하며 보따리 무역상으로 전락한 아버지의 자동차 사고를 절망으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오빠 미체스의 불운은 그동안 많은 여자를 울린 댓가로 생각하며,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난 아들에게서도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리챠는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고국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리스의 방송을 시청하는 것으로 오늘의 자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서독의 나우하임이라는 마을에서 터키, 그리스, 동유럽에서 온 일용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을 위한 진료소를 운영하는 모습으로 만나게 된 리챠는 특유의 낙관적인 성격과 독일인, 체코인, 러시아인, 그리스인의 장단점을 모두 이해하고 다문화, 다민족의 다양성을 몸으로 체험 한 후 가장 자신답지 않았을 모습으로 자신다움을 찾아간 꽤 기특한 친구로서 그녀의 걱정을 무색케 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배우를 지망했던 리챠로선 의외의 선택으로 인식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을 진료할 때 진솔함과 자유로운 사고방식, 편안함을 매력으로 환자들과 소통하고자 한 리챠의 본성은 십분 발휘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기인하는 건강함과 그를 향한 그리움은 오랜 세월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든 그를 그답게 할 수 있는 순수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리챠가 그리워한 그리스의 하늘과 바다는 많은 이들이 손에 꼽는 베스트 여행지이기도 하다. 그리스에 갈 기회가 온다면 꼭 눈부신 하늘을 뚫어져라 보고 싶어 질 것만 같다.

이데올로기 보다 떳떳한

루마니아 공산당 대표를 아버지로 둔 아냐는 어린 나이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여 과장된 혁명적 표현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려는 성향의 친구였다. 똑같이 공산주의라는 지하생활을 파란만장하게 견뎌온 아버지를 두었다는 동지의식이 그녀와 아냐를 가깝게 하기도 했지만 이념으로서만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정작 실천적인 면에서는 귀족과도 같은 부르주아적 생활과 그를 지향한 선택 및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주며 훗날 재회할 때까지도 거리감과 의문점을 지울 수 없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일상에서도 쉽게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나 과다한 형용사로 치장한 이야기 꾸며대기는 아냐가 거창하게 예찬하는 공산주의적 성향을 지녔음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부모나 가족의 허황된 자랑은 유대인으로서의 아냐의 내재된 민족적 열등감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친구들은 거짓말 하는 사실만 빼면 학급에서 친구들에게 상냥하고 혹시나 친구들이 다치거나 위험에 빠질 때 굉장히 의협적인 행동으로 친구들의 믿음을 사곤 한다. 즉, 자신을 괴롭히는 민족적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이 아닌 모든 것에는 평등적 시선을 주장해 친구들로부터 거짓말에 대한 어느 정도 관용을 미리 확보해두는 미워하기 힘든 존재 인 것이다.

아냐는 독재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특권층의 생활을 향유했던 아버지덕에 영국으로 유학은 물론 영국인과 결혼하여 여행잡지의 편집이라는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직업을 가지며 그토록 유창했던 러시아어를 까마득하게 잃어버린다. 아냐가 러시아어를 잃어버렸던 것은 그 시절 루마니아를 찬양하던 자신을 거짓말처럼 버려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궁극에는 국적이나 민족, 언어에 대한 고집보다는 현실에 맞추어 자신을 합리화 하게 된 아냐는 또다시 90프로는 영국인이라는 거짓말 속에서 자신다움을 버리는 것으로 자신다움을 찾은 친구였다. 그녀는 아냐가 프라하 시절 가장 따스한 가슴으로 기억하는 친구였기에 재회의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냐를 보며 같은 길을 택했더라면 자신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황폐한 거리의 어두움과는 달리 부쿠레슈티의 호화맨션에서 아냐의 부모님과 조우한 그녀는 유난히도 걸끄럽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을 마치 심문하듯이 조목조목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본의 아니게 그녀의 내셔널리즘을 엿볼 수 있었다. 아냐의 아버지를 보면서 그녀(마리)의 아버지가 꿈꾸었던 공산주의는 가짜가 아니었고 법적,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모순을 느껴 당신의 혜택을 모두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역으로 강조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했고 가이드에게 사회의 변동에 자신의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다고 자신있게 언급하는 부분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 이은 조국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떳떳함을 의미심장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비열한 아버지와 특권을 거절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냐의 오빠 미르차의 인생을 자세히 소개한 부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 아냐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녀의 조국에 간접적으로 자신이 걸어 온 길에 대한 못다한 고백이자 사회적 동의를 구하는 진홍빛 사연이 아니었을까.

의연함으로 남은 하얀 우수

지금은 여러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유고슬라비아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선언이 발단이 된 다민족 전쟁보다는 유럽 축구의 전통 강국인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합친 옛 국가로서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더 친근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80년대 동계올림픽도 같은 맥락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보헤미안의 거리로 상징되는 '하얀도시'라는 뜻의 베오그라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유고슬라비아의 소녀 야스나는 천재적일 정도로 놀라운 두뇌와 어른스러움, 그림에 대한 재능으로 너무나 완벽해서 다가갈 수 없었던 친구였다. 야스나의 아버지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우스타시에 대항한 파르티잔 출신이었는데 사실 그녀가 야스나의 집에서 우연히 야스나의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일화는 작품 전체를 통털어 가장 뭉클한 에피소드였다. 야스나의 아버지는 그녀들의 나이일 무렵 학교에 갑자기 들이닥친 우스타시들의 검열당시 파르티잔 마크를 지니고 있던 친구를 대신해 연행된 선생님의 숭고한 희생을 계기로 파르티잔에 가담하게 되었다. 훗날 보스니아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탈출을 거부한 채 언제 폭격당할 지 알 수 없는 사라예보의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 리챠의 아버지나 비겁한 루마니아의 특권층으로 떳떳하지 못했던 아냐의 아버지나 지하생활을 16년 동안이나 감행했다는 그녀의 아버지와 더불어 격동의 시대에 역사와 민족, 이데올로기에 자유롭지 못했던 개인의 운명에 이념을 떠나서 인간적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야스나는 내전의 혼란속에서 보스니아 무슬림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외교부 통역 번역관이라는 일자리도 잃고 인간관계에서도 외면과 상처를 받지만 학생시절의 당당하던 모습 그대로 착실하게 삶을 이어간다. 깨진 다음 맛볼 슬픔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 컵 하나도 새로 사지 않은 아스냐지만 자신다움을 감내하고 받아 들임으로써 자신다움을 의연히 지켜나갈 수 있었기에 세 명의 친구들 중에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여고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고 모든 과목에 완벽하던 미모의 내 친구는 5공화국 시절 유명한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했고 훗날 중견 건설사 집안의 며느리도 되었지만 남편이 교통사고로 결혼한 지 1년도 안되어 사망하는 불운과 정권이 바뀌어 집안이 몰락하면서 소식이 끊겨버렸다. 시대와 환경과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어떻게 자신다움을 지켜 나왔을 지 새삼 궁금해졌고 아마 아스냐처럼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꼿꼿이 그 상황을 담담히 받아 들이는 것으로 자신을 세우고 있을 것 같다는 믿음도 느껴졌다.

세 명의 친구들 중 가장 조마조마 했던 야스나를 찾아 가는 과정은 ‘명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칭으로서의 야스나 같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끝내 그녀가 친구를 찾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만약 찾아가는 도중에 야스나의 불행의 소식을 접하게 되지는 않을까 내내 초조하고 긴장스러웠다. 30년 만에 소식이 끊긴 친구들의 진실을 알아가는 두려움과 비슷한 감정 때문에 “두려운 작품”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을지.  

그리고 곧 그 두려움은 조금은 더 복잡한 감정으로 확산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프라하라는 과거의 공간과 소녀시대라는 과거의 시점으로 우리를 데려다준 요네하라 마리에게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저 회상이나 기록의 의미에서 한번의 박수로 고개를 숙이는 것 그 이상의 의무감이 무의식중에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같이 웃고 말자는 연예인도 아니고  자신의 여행에 같이 울어 달라는 리포터도 아닌 작가로서 우리에게 질문과 같은 대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다운 그녀

'나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 명의 친구들을 끝내 찾아 내고 말던 그녀를 보며 난 '그녀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그녀가 그녀로서 그녀다웠다면 그것을 느낀 나는 과연 어떤 것이 나다운 것일지 그녀를 보며 반문하게 되었다. 그녀는 서문에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접하고서야 자기를 자신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애쓰게 되었다 했는데 그렇다면 혹시 세 명의 친구들에 비해 가장 순탄한 길을 걸었던 그녀가 자신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행운의 수혜자로서 친구들을 찾아야 했던 것이 그녀 자신이 꼭 해야 할 의무와도 같은 일이라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찾았던 것은 그렇게 어렵사리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은 물론이고 혹시 프라하에서의 소녀시절 그녀들 속에 있던 그녀자신의 자신다움은 아니었을까. 작품 속에는 그녀가 친구들과 재회 했을 당시 자신의 감회와 반가움만 표현되었기에 친구들이 그녀를 보며 어떠한 생각을 했을 지는 우리 몫이 되었지만 아마도 세친구들 역시 그녀를 보며 똑같이 조국을 사랑하고 많은 꿈을 가졌었던 누구보다 자신다웠을 소녀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답다는 것',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내가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상처를 받게 된 시기는 거의 성인이 되고 난 후 였던 것 같다. 나다움을 한창 만들어가는 시기인 유년기, 사춘기엔 크고 작은 좌충우돌의 시행착오적 사건들로 나다움의 피와 살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격동의 시기에 나다움의 태도와 방식과 표현을 만들어간 세 명의 친구들과 그녀의 소녀시대가 참으로 진하고도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지금은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세 명의 친구과 재회한 그녀는 무슨 약속을 하였을까. 그들이 나눈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서로 약속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나도 그녀와 약속을 하나 하고 싶다. 나다운 나, 나이고 싶은 나를 잃지 않고 살고자 가끔은 당신을 생각하겠다고. 당신은 참 당신다웠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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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8-0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 리뷰대회 2등 당선작이 이거였군요.
상금도 빵빵하던데~~ 축하드려요!^^
정말 대단하네요~~~ 리뷰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쩜 이리 길게 쓰는지 감탄했어요@@

한사람 2010-08-03 17:02   좋아요 0 | URL

어머, 순오기님이다 !!!
글쎄..제가 좀 길죠..? 잘 줄이질 못해서^^
리뷰야 언제나 운인 것같아요, 글잘쓰시는 분들 워낙 많아서요
자주 놀러갈께요~~다른 분들 블로그에 잘 안들어가봤는데
순오기님한텐 가보고 싶었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2010-08-0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3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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